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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퇴마비록-55화 (55/166)

55화

주민이 키득거리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러는 주민이야말로, 도톰한 카디건을 입고 편한 슬랙스에 짧은 머리칼이 드리운 앳된 얼굴이, 제일 이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 사장이 미리 일러준 대로, 주민등록증 검사를 소홀히 하는 뒷문으로 미리 숨어들어온 보람이 있었다. 누가 봐도 운동화에 후드티를 입은 영서와 동그란 귀에 카디건을 입은 주민을 성인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앉아있는 바는 보통 바가 아니었고, 아는 사람 중에서도 알음알음 소문이 난 숨겨진 가게였던지라 이런 곳에 설마 미성년자가 들어오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손님이라고는 온통 남자뿐인, 어둑한 조명과 무어라 하는지 모를 외국의 재즈나 팝이 흘러나오고, 브랜드도 알 수 없는 어딘가 고급스러운 향이 나는 가게.

영서는 정문 입구 쪽 벽에 붙어있는 고풍스러운 장식을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마른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것처럼 생긴 새 둥지 모양의 장식 위에 휘날리는 필기체로 새겨진 가게의 간판이나 다름없는 장식품이었다. 술집 이름이라고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이름이었다. 영서와 주민은 열심히 자세를 낮춘 채 얼굴을 가리고 해강 쪽을 감시하기로 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둥둥거리는 분위기의 음악과 술에 젖은 사람들로 술집 안은 적당히 차 있었다. 그 사람들이 모두 남자라는 것만 빼면 별로 이상할 것도 없겠다고 영서는 삐딱하게 생각하며 빨대를 깨물었다. 오히려 주민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지, 누구보다 열심히 해강의 주변을 살피며 구슬을 훔쳐 간 범인이 오진 않을지 감시하고 있었다. 영서는 왠지,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았다. 주해강 쟨 왜 저렇게 능숙한 거야? 참나, 어이없어. 주민의 감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술집 안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의 대부분이 바에 앉아 있는 해강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쯤은 영서도 알 수 있었다. 원래는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나 각자 자신의 눈길을 끄는 상대방을 찾아 이리저리 시선을 두는 것일 텐데, 해강이 가게 안에 들어선 후부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해강 쪽을 흘긋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게 그의 옆에 다가가지는 않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집 안에는 보이지 않는 미묘한 긴장감이 팽팽하게 서려 있었다.

“주민아, 콜라 안 마셔?”

“응? 아, 나 탄산은 안 마셔서. 그냥 시킨 건데, 너 마실래?”

“응.”

뭐가 좋다고 헤실헤실 웃고만 있는 거야, 주해강. 영서는 괜히 답답한 속에 자신의 빈 잔을 옆으로 밀어버리고 주민의 콜라까지 갖다가 입에 털어 넣었다. 익숙하게 터지는 탄산과 달달한 콜라의 맛이 혀를 적시고 목구멍을 타고 들어갔다. 왠지 음악이 점점 더 크게 쿵쾅거리는 기분이었다. 입안이 묘하게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어, 저기, 저 사람 좀 봐, 영서야.”

“…우…”

“…엥? 여, 영서야! 괜찮아? 왜 그래?”

자세를 낮추다 못해 아예 테이블에 고개를 박고 엎드려버리자, 주민이 영서의 팔을 찌르다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챈 지 영서를 흔들어보았다. 어슴푸레한 조명이 비치는 귀가 사뭇 빨갰다.

“야, 영서야, 괜찮아?! 갑자기 왜…어…”

주민이 이상하다는 얼굴로 빈 잔들을 번갈아 보았다. 분명 콜라를 시켰을 텐데? 이런 어른스러운 바에 콜라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애초에 주민과 영서는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와 메뉴판을 내밀었을 때 제대로 읽을 수도 없는 온갖 종류의 어려운 외국 술의 이름들 사이에서 그나마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던 것이다.

-Jack coke-

코크라니, 아무리 어려운 이름 속에서도 콜라 하나는 찾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주민과 영서는 자세히 보지도 않고 잭콕을 두 잔 주문했던 것이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주민은 잔에 남은 음료 방울을 핥아볼 생각도, 직원에게 그것에 대해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민이 몰랐던 사실은 바로, 권영서는 소위 말해 ‘알콜 쓰레기’일 정도로 술에 약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민이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당황한 주민의 시야 너머로, 해강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지, 지금은 안 되는데!! 테이블 위에 엎어진 영서와 자리를 떠나는 해강을 번갈아 보며 울상이 되는 주민이었다.

“안녕하세요, 혼자 오셨나요?”

한 남자가 옆에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잔을 기울이던 해강이 고개를 들자, 생각보다 훤칠한 키에 단정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잔잔하게 웃고 있었다. 단 1, 2초 사이에 해강은 남자에 대한 파악을 거의 끝냈고, 직감적으로 이 남자다, 하고 알 수 있었다.

동행인은 없어 보였다. 여 사장이 말해준 대로 이런 곳과는 어울리지 않게 꽤나 고급스러운 양복과 향수를 쓰는 남자였다. 한 번의 눈길로도 그가 입은 양복의 브랜드와 라인의 이름, 향수 종류까지 읽어낸 해강은 예의 그 무해하고 달콤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혼자 와서 그런지 조금 심심하네요.”

“옆에 앉아도 될까요? 자리가 비어있다면.”

“아, 그럼요.”

남자가 들고 있던 코트를 바텐더에게 건네고는 정장의 재킷 단추를 풀며 해강의 옆자리에 앉았다. 바텐더가 눈치로 아는 척을 하는 걸 보아하니 꽤 단골인 모양이지. 여전히 눈웃음을 지은 채 해강이 잔을 흔들며 물었다.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 저는 이번이 두 번째라.”

“처음 오시는 게 아니었나요? 이런 곳에서는 한 번도 뵈지 못한 분이라,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난번에 친구가 소개시켜줘서 한 번 따라오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조용히 술만 조금 마시고 싶어서…”

해강의 입가에 머무른 잔을 유심히 지켜보던 남자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진토닉이네요. 술 마시고 싶다고 하시니 제가 한 잔 사도 될까요? 추천하는 게 있는데.”

“아, 술을 잘 아시나 봐요? 관련 업계에서 일하시나?”

“하하, 그냥 취미죠. 진수 씨, 여기 내 거랑 똑같은 거로 한 잔 더 줘요.”

바텐더가 짧게 대답하며 두 개의 똑같은 잔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해강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부드러운 미소를 빼문 채 남자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나이는 마흔 언저리… 아니 그것보다 더 젊을 수도 있겠고. 취향은 꽤나 고전적이고 신사적인 타입인가. 사장님 말대로 키가 크고 넘긴 머리에 정장을 자주 입는 사람 같네. 의외로 외모는 단정하고 평범한 편.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남자가 가게에 들어와 바를 가로질러 나에게 다가올 때까지, 모두가 한 번씩 이 남자를 쳐다본 걸로 보아하니 단골이다 못해 거의 이 주변에서는 유명한 모양이었다.

해강은 다른 의미의 웃음을 잔 너머로 숨기며 별로 남지 않은 술을 홀짝였다.

실패하지 않아야 하는데.

내가 성공해야, 영서가…

그러고 보니, 영서와 주민은 이 상황을 잘 모니터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해강은 바 안쪽의 진열장을 구경하는 척하며 몸을 돌려 영서 쪽을 바라보았다. 주민이 흘금거리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영서 또한 몸을 낮추고 있었지만 조명이 어두워 어떤 표정인지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말을 걸지 않았다면 해강은 본분을 잊고 영서의 얼굴을 살피느라 계속 고개를 돌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나이가 조금 어리신 것 같은데. 대학생?”

“…재희라고 합니다. 임재희.”

이 이름을 쓰게 될 줄은 몰랐지.

해강은 꾸며낸 웃음으로 화답하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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