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7년 전, 여 사장이 어느 아이를 안고 귀가한 날이었다.
당연히 모든 조직원들은 당황과 혼란에 빠졌다. 피도 눈물도 없기로 유명한 그 여 사장이, 스스로 임무를 나간 것도 모자라 돌아오는 길에 어떤 아이를 안고 오다니? 원래 그가 오늘 맡았던 임무는, 하나의 사전 계획대로라면 타깃들을 모두 제거한 후 한 명도 남김없이 배후를 몰살시키는 일이었다. 모두 깨끗하게,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더더욱 여 사장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임무였기에 그 또한 자원해서 오랜만에 현장에 나간 일이었다. 혹시 몰라 그의 백업으로 하나 또한 자원해서 나갔었다. 그녀는 매우 탐탁잖은 표정으로, 그러나 별다른 언질 없이 상사를 무사히 에스코트해 귀가했다. 하나까지 아무런 말 없이 묵인할 상황이라면, 조직의 그 누구도 이 일에 대해서는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여 사장이 내뱉은 말로 결국 석규는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부터 이 애는 우리가 키운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형님?!?”
“석규야.”
“여기가 무슨 애들 유치원입니까? 갑자기 웬 어린애를 데리고 오셨습니까? 이번 일은 후환이 남으면 안 될 일이었잖아요. 대체 무슨 일입니까?!”
하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제지했지만, 석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번 일은, 그동안 하나와 석규는 물론, 조직원들 모두 오랜 시간을 들여 설계해온 임무였다.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누구도 도망치거나 살려두지 않고 모조리 없애는 것이 제1원칙인 임무였던 것이다. 게다가 여 사장 본인이 직접 갔다 왔으면서, 웬 어린 핏덩이를 데려오다니. 그것도 인간 아기를. 그때쯤은 석규가 아직 인간에 대한 혐오를 숨기지 않고 드러낼 때였다. 그리고 임무의 타깃 조직은 바로, 과거에 석규가 갇혀 있던 동물원의 모기업이 되는 회사를 실질적으로 굴리던 조직이었다. 근본적인 원수나 다름없는 조직을 나락까지 밀어 넣어 소탕하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계획했는지, 하나는 물론 여 사장이 더욱 잘 알 것이었다. 그리고 석규가 무슨 기분으로 이 일에 임했는지도. 답지 않게 화를 내는 석규를 가만히 지켜보던 여 사장이 대답했다.
“이 애는 죽으면 안 돼. 내가 키울 거야.”
이게 무슨 길에서 강아지를 주워오는 일도 아니고, 이 천진난만한 대답은 대체 뭐란 말인가. 석규가 어이가 없다 못해 말문이 막히자, 눈치를 보던 두식이 강경한 어조로 거들었다.
“형님, 석규 말도 일리가 있어요. 이게 대체 뭡니까? 뉘 집 애인지도 모르겠고, 설마 그놈들의 자식을 주워온 건 아니죠?”
“형님, 그 애는 대체 누굽니까.”
석규가 감정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만약 여 사장이 조금이라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면, 아무리 여 사장의 뜻일지라도 석규는 저 아이를 죽여 버릴 셈이었다. 여 사장의 성격상 제가 데려온 아이일지라도 곧 관심을 거둘 것이고, 아직 어린놈이니 내가 빼돌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면…
“몰라, 내 애라는데?”
충격적인 대답에 자리에 모인 조직원들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이, 아이라니. 그것도 여 사장의?
“…그게 무슨…하하, 형님, 농이 지나칩니다?”
“맞아요, 하하, 것 참, 너무 장난이 심하신 거 아니요?”
“농담 아닌데? 내 애래.”
그걸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해도 되는 거냐고!!!
“형님!!!!”
“대체 무슨 소립니까, 형님은 구미호잖아요!!!”
“뭐 임마, 구미호는 애도 못 낳냐?”
“그렇지만…!”
여기서 모두가 아는 사실은, 구미호는 후손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구미호도 암컷과 수컷이 있기는 하나, 본디 그들은 수백 년의 수행을 거쳐 영물이 된 자들이었다. 단순히 암컷과 수컷이 정을 통한다고 해서 암컷이 임신을 할 리가 없었으며, 애초에 현재는 남은 구미호의 개체 수 자체가 거의 없었다. 옛날처럼 산에 여우가 많이 살던 때면 모를까, 이제 와서 새로운 구미호가 생길 일도 없었다. 그리고 모든 조직원들이 또 암묵적으로 아는 사실은, 여 사장은 여자를 안지 않는 사람이었다.
혹시나 하는 가능성 때문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풍류와 색을 즐기는 그의 성격상 아예 수절하고 지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으며, 성별 가리지 않고 나이가 어린 자만 아니라면 여 사장은 오는 인간 가는 인간 막지 않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여 사장은 절대 여자를 임신시키지 않았다. 같이 즐기기만 하면 그뿐, 굳이 위험을 감수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구미호는 머리가 좋고 약삭빠른 것들이니.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애를 덜컥 데려오다니.
충격에 빠진 부하들이 보이지도 않는지, 여 사장은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한 팔에 안고 있던 어린아이를 두식에게 덥석 안겨줘 버리곤 소파에 푹 기대앉았다.
“이름은 이레. 오늘부터 우리랑 같이 살 거다.”
담담한 사장의 말투에, 자리에 있던 모두는 소란스럽던 당황감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두식은 처음 안아보는 아이를 어떻게 안아야 할지 쩔쩔매며, 대충 아이의 뒷목을 받쳐 안았다. 그래도 남의 품이 불편한지, 어린 아이의 표정이 찡그려지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울망거렸다.
“…사장님, 이곳은 아이가 살 곳이 못 됩니다. 아시잖아요.”
내내 침묵을 지키던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을 죽이니, 어디에서 누구를 처리하니, 어느 항구에서 물건을 받아 계약금을 넘기니 마니 하며 온갖 어둡고 더러운 일의 온상이, 바로 이 사무실이었다. 여 사장도 이리저리 손을 댄 사업은 많았으나, 그가 성공한 일의 수만큼 적이 많은 일이기도 했다. 난데없이 이렇게 어린아이를 키우라니. 분명 조직의 약점이 될 것이 뻔했다.
“…괜찮을 거야. 쉽게 죽지는 않을 거니까.”
사장이 중얼거린 미묘한 대답에, 석규와 두식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두식의 품 안에서 칭얼거리며 손가락을 빠는 이 어린 아기가, 대체 무슨 수로?
“아, 그리고.”
다리를 꼬고 소파에 기대듯 앉은 여 사장이 손톱을 들여다보다 말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걔, 딸이란다.”
그렇게 이레는, 여 사장의 조직에서 자라게 되었다.
***
“…그런 고로, 이 꼬맹이를 맡아 키워 줄 녀석. 자원해라.”
“네에에에에에에--?!!?!”
여 사장은 시끄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귀를 후비적거렸다. 부하들이 턱이 빠지도록 놀라건 말건 그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지, 그저 제 뒤에 숨어 옷자락만 쥐고 있는 어린아이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이름은 다들 알겠지. 이름은 이레. 그리고 내 성을 따서 여이레. 이 중에서 애 보기 해 본 적 있는 놈으로 부탁한다.”
“…사장님.”
“왜?”
측은한 눈으로 여 사장의 옆에 서서 자신의 부하들을 내려다보던 하나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런 놈은 없습니다.”
“…역시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렇군.”
“…아니, 이보쇼!! 지금 그렇게 태평하게 얘기할 때가 아니잖소!!!”
보다 못한 두식이 나서자, 얼이 빠져 있던 부하들까지 웅성대며 두식을 두둔하기 시작했다. 그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두식의 성질머리로 이런 상황을 고분고분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여 사장의 표정은 아무 변화 없었지만.
“적어도 우리가 납득은 가게 설명은 해주고 애를 키우라 마라 해야지, 난데없이 뉘 집 새끼일지도 모르는 애새끼를 업어다 놓으면, 우리가 탁아소도 아니고 키워야 합니까, 형님!”
“뉘 집 새끼가 아니다. 내 새끼라니까.”
“그러니까…!!!!”
“정말 다들 쪼잔한 구석에서 좀스러운 면이 있구만. 이 애가 인간의 피를 타고나서 배척한다는 거냐? 그렇게 치면 너희들도 전부가 동물이 아니고 전부가 인간이 아닐진대, 이 어린애를 그럼 갖다 버리기라도 하자고?”
“사장님. 만약 사장님이 친부가 맞으시다고 해도, 사정상 이쪽은 아이를 키울 환경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걸 아시잖습니까. 사장님이 본인의 아이라고 주장하고 데려오신 거라면, 그렇다면 아이의 엄마는 어디 있는 겁니까?”
석규의 질문에 여 사장은 잠시 침묵했다. 할 말이 없는 자의 침묵이 아닌, 이걸 어떻게 잘 설명해야 이해할까, 싶은 사람의 침묵이었다. 마침내 생각이 정리된 듯 사장은 금방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짐작했다시피… 이레의 어미는 나와 같은 구미호가 아니다.”
의외로 담담한 그의 표정에, 당혹감이 한차례 파도처럼 쓸고 간 사무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작은 짐승은, 자신을 향한 어른들의 적대감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걸까. 부들부들 떨던 몸을 참지 못하고 순간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