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몇 시간 전.
여 사장은 영서에게 ‘거울’을 보여주었다.
흰 진주와 푸른 자개 장식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작은 거울은 옛날 귀부인들이나 쓸 법한 고급스러운 모양의 화장거울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거울을 마주한 순간, 영서는 걷잡을 수 없는 명백한 분노에 휩싸이는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자기 자신도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그 거울은 보는 이로 하여금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데가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예스러운 디자인과 어울리지 않을 만큼 이상하게 녹 하나 슨 곳이 없는, 금방이라도 누군가 애지중지 사용하던 것 같은 그 물건을 보며 단지 이상하다거나 나아가 소름 끼친다는 기분 정도나 들 것이었다.
그러나 영서는 그 거울을 보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괴로움과 분노가 몸 안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왜… 왜 이렇게…
홀린 듯이 거울에 다가간 영서가 유리관에 손바닥을 대자마자, 딱딱하게 만져질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어이없을 만큼 쉽게 손이 통과해버렸다. 놀란 눈으로 여 사장을 돌아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역시 손자는 손자네.”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리관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저 투명하게 너울지며 사라진 안개 사이로 그 거울이 오롯이 놓여있었다.
“이 거울은… 뭔가요.”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던진 물음이었다. 영서는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 물건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 것 같았다. 그 거울은, 이상하고 아름다운 생김새만큼이나 사람의 정신을 홀리는 물건 같았다. 익숙한 기분이 드는 물건. 언젠가 이런 비슷한 종류의 물건을 본 적이 있었지. 그래, 그 나무 인형. 영서는 기억 속에서 흐릿하게 남아있던, 묘 앞에서 불에 그슬려 없어져 버린 그 서툰 모양의 목제 인형을 끄집어냈다. 보통 사람 눈에는 그저 인형과 거울일지 몰라도, 영서에게는 다르게 보였다. 실제의 물리적 형태를 넘어 그 안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이 덧씌워진, 손끝 하나도 대고 싶지 않은 기분 나쁜 것들.
그 말은 즉, 거울에서부터 그 인형과 같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기운이 흘러넘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그 인형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네 고모할머니가 나한테 줬던 물건이지. 정확히는 너의 조상들이 쓰시던 물건이라던데.”
할머니의 할머니. 영서는 고모할머니를 떠올렸다. 분명히, 그 일이 끝나고 자신을 다시 만나러 오라고 일렀던 할머니의 말을 아직 잊지는 않고 있었다. 중간에 자신이 병원에 입원하느라 양해의 연락을 드리기는 했었지만, 할머니는 몸이 나으면 꼭 다시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었다.
할머니를 만나야 했다.
이 여 사장이라는 인간과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이 거울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했으니까.
“…그럼, 설마 선물이라는 게…”
“응, 이거야.”
“…네에에에에엑???!!?!?”
“왜? 맘에 안 드나?”
“아, 아니 맘에 들고 안 들고의 문제가 아닌데요…?!?”
“역시, 옛날 양반집 여자들이 쓰던 거라 남자애가 가질 만한 물건은 아니긴 하지.”
“그게 문제가 아닌데…”
영서가 식겁을 하며 고개를 흔들자, 여 사장은 흐음, 하는 소리와 함께 턱을 매만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여기 둘 수는 없는 일인데 말이지. 우리도 꽤 곤란하거든, 요즘.”
“네?”
“말했잖냐, 네가 갑자기 보지 못하게 된 이유.”
여 사장이 턱짓으로 거울을 가리켰다.
“이 거울 때문이야.”
거울… 때문에…?
영서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자 여 사장이 덧붙였다.
“음… 이를테면 이런 거지. 세x코.”
네…? 세…뭐?
영서의 머릿속에 문득, 언젠가 광고에서 보았던 바퀴벌레를 웃으며 퇴치하는 모델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x코라면… 그거?
“솔직히 말하면 말이지, 나도 너만큼은 아니지만 도력을 꽤 쌓은 덕에, 영혼이나 악귀 같은 놈들은 가끔 보곤 해. 물론 도깨비나 괴물이 아니라서, 영혼들은 그저 보이기만 하고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네? 그럼 저를 왜…”
“당연히 구슬이 없으면 안 보이니까 그런 거지. 아무튼, 말의 요지는, 이래 보여도 내가 보통의 구미호가 아니잖냐? 그동안 살아온 세월도 있고, 경험도 있고, 여러 인간들도 많이 만나 봤고. 아마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많이 말이야.”
여 사장은 버릇처럼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꽂은 채 거울 쪽으로 다가갔다. 순간 그를 저지하려던 영서는, 생각해 보니 어차피 이 사람은 인간이 아니니 괜찮나, 싶어 그만두었다.
“네 고모할머니인 영숙이와는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자세한 얘기는 뭐, 네 할머니한테 듣도록 하고. 간단히 말하자면 이 거울은 너희 친가 쪽 조상에게서 물려져 내려온 가보야.”
“가보요?”
“그래, 권재혁이라고 했던가? 네 아버지 말이야. 그 꼬맹이가 벌써 이렇게 커서 자식까지 낳고 살다니. 인간의 시간은 정말 눈 깜짝할 새라니까.”
“저희 아빠를 아세요?”
“그럼, 임마. 영숙이가 처녀 적부터 봐왔는데. 고놈도 그렇게 쪼그맣고 앙칼지던 게 벌써 쭈그렁 할망구가 되었잖아. 인간사 다 부질없어.”
고모할머니와 정말 아는 사이인지, 거침없이 고놈이니 할망구니 부르며 투덜대는 여 사장을 보며 영서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름까지 나왔을 때, 자신의 아버지와 고모할머니의 이야기를 아는 자라는 것을 깨닫자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 할머니나 아빠한테 들은 게 없는데요.”
“그거야 네가 원래는 ‘타고난’ 놈이 아니었으니까.”
“타고난 놈…”
“그래, 너는 원래대로면 네 엄마를 닮아 보통 인간으로 살고 있어야 했어. 그런데 갑자기 큰 사고를 당했다며? 게다가 금방 회복까지 해버린 데다, 죽다 살아난 애가 갑자기 영안을 얻었다? 이건 아무래도 그들이 개입한 게지.”
“그들이라뇨?”
“뭐… 음, 그 치들에 대해서는 함구 서약이 있어서 내가 함부로 말할 수는 없고. 아무튼! 원래대로면 너는 그냥 거쳐 지나가는, 수많은 대를 잇는 보통의 자식 중 하나였을 거라는 거지. 그전에 이 거울의 주인은 네 고모할머니인 영숙이였고. 알다시피, 네 아비도 보통 사람이나 다름없잖냐.”
“하지만 이 거울… 단순한 거울이 아닌 것 같은데요. 맞죠?”
“그래. 보통 거울은 아니지. 나도 정확한 역사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주인 외에는 아무도 거울을 만져서는 안 된다는 거야. 영숙이가 말한 거니까 아주 확실하지.”
이것도 영숙이가 20년 전에 와서 놔주고 간 걸 그대로 보관하고 있는 거거든. 여 사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영서는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20년 전부터 이곳에서 주욱…? 하지만, 거울에는 으레 유리에 잘 낄 법한 보얀 먼지나 때 같은 것은 한 톨도 묻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방금 전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깨끗하게 반짝거리는데.
“주인 외에 거울을 만지는 자는 모두 비참한 끝을 맞게 된다고, 뭐 옛날 조상들이 그랬다나 뭐라나. 하지만 오래된 전설일 뿐이지.”
“그래서 사장님도…”
“그래, 그동안 영숙이가 보관해오긴 했지만, 갑자기 20년 전쯤에, 부탁할 게 있다고 연락을 한 거야. 이제는 자신이 이 거울을 갖고 있을 수가 없다고 말이지.”
“네? 갑자기 왜요? 할머니가 주인이라고 하셨잖아요.”
“정확히 말하면 이 거울은 세대를 거쳐 내려오는 유품 같은 거야. 아까 언급한 네 조상, 그러니까 바로 그전에는 네 고조할머니가 되겠군. 그녀가 죽기 전, 네 고모할머니인 영숙이에게 물려줬다고 하더라. 원래면 그렇게 한 대를 걸러 내려오는 건 안 되지만, 그럭저럭 영숙이의 신력이 강해서 무사히 받은 뒤에 할머니의 장례를 치렀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수십 년간, 영숙이가 이 거울을 보관한 거지.”
“그렇다면…”
왠지 모르게 불안한 감각에 영서는 어깨를 떨었다. 분명 사방이 막혀있는 방인데도,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 같이 느껴졌다. 정말이지 이상했다.
“이제는 네가 이 거울의 주인이 될 차례라는 거지.”
순간, 멀리서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린 듯했다.
“…제가 이 거울의… 주인이라니… 아, 아니 잠시만요,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이 거울에 손끝 하나도 대기 싫거든요?!”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야. 그리고 우리라고 언제까지 대신 보관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리 영숙이 부탁이라지만, 이런 괴상한 물건을 부탁받은 우리 입장은 또 어땠겠냐? 하아, 나 참. 안 그래도 곧 손주를 볼 것 같다고,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찾아갈 테니까 걱정 말라고 하더니. ‘여자애가 아니라 남자애’라는 연락만 남기고 연락 두절이 된 거 있지?”
“찾아가지 그러셨어요?”
“찾아갔지.”
"그런데요?"
"고새 튀었더라고. 하여튼 능구렁이 같은 것."
“빠르네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여 사장이 말을 이었다.
“네가 딸이었으면, 글쎄다, 좀 더 일찍 영안이 틔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 아니면 아예 갖고 태어났을 수도. 어쨌거나 운명 아니냐? 물론 죽다 살아난 건 안 됐지만, 이제라도 그 능력을 이어 받은 손주 놈이 생겼으니 내가 대신 맡아주는 것도 끝! 이 기분 나쁜 재앙 덩어리도 영영 끝! 권영서, 이제부터 네가 이 거울의 주인이 된다는 거지!”
정말 신난다는 듯 밝게 웃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영서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재앙 덩어리라니, 하지만 정말… 정말로…. 잘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거울의 생김새는 언뜻 보면 꽤 고풍스럽고 비싸 보이는 아름다운 장식품 같았지만, 이건 아무리 신기가 없는 보통 인간이라도 눈치챌 수 있을 만큼 귀기가 서려 있었다. 영서의 눈에는 마치 무시무시한 오라를 내뿜는 것 같이 보이는 이 거울의 주인이 되라니. 손끝 하나라도 댔다가는 분명 어딘가 몸 한 부분이라도 아프게 될 것 같은데… 차에 치인다거나… 가족이 사고를 당한다거나… 아무튼 그런…
“…이게 저희 집안 가보라는 걸 어떻게 믿어요? 막말로, 여 사장님이라면 어디서 저주받은 물건 같은 거 받는 바람에 저한테 떠넘기려는 걸 수도 있잖아요!”
“에에에~ 너무하네,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
"…."
"…너무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