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중퇴마비록-71화 (71/166)

71화 (특별편)

나, 유혜리.

방년 18세. 아니, 향년 18세라고 해야 맞겠다.

죽은 지 3년은 되어가는, 이미 정신적으로나 나이로나 성인에 가까운 나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출중한 인재는 이미 죽은 몸인지라. 크으…! 이런 인재가 죽다니, 나라의 손해가 막심하다…!

…뭐, 사실 내가 죽었다는 걸 알아 챈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원래 귀신들은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기도 허다하니까 말이다. 나도 아마 처음에는 그런 무자각 상태로 정처 없이 학교 안을 떠돌았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조금씩 정신이 들었고, 영서를 마주친 후에는 거의 모든 기억을 되찾게 되었지. 아마 영서를 마주치지 않았다면 평생을 그렇게 학교에 묶인 채 빙빙 돌며 살았을 것이다. 그것도 살아간다고 할 수 있는 거라면 말이지.

내가 처음 의식을 찾은 것은 그 기분 나쁜 대가리가 둥둥 떠다니는 걸 봤을 때부터. 물론 그 대가리는 지금의 권영서라는 애가 퇴치해 줬지만, 초반의 그것의 상태는 그렇게 심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영기도 희미해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잡귀 중 하나겠거니 했었으니 말이다. 이 학교에는 잡귀들이 다른 학교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물론 다른 학교들은 가 본 적이 없으니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풀려나고 나서 다른 곳을 갈 수 있게 되었고, 내 생각대로 남중고등학교는 너무 많은 영혼들이 흘러넘치고 있는 장소였다. 아무튼, 그건 그때는 몰랐던 이야기고.

그리고 처음부터, 자꾸 그 머리는 내 눈가에 거슬렸고, 그러던 중 나는 잃었던 생전의 기억 중 여러 부분을 되찾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난 깨닫고 만 것이다.

아, 저 새끼다.

나를 죽게 만든 원흉.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저 새끼 이전에 그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싸가지 없는 여자애가 있었지만, 이상하게 걔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만큼 걔에 대한 원망이나 증오도 별로 남아있지 않았던 걸까. 물론 나를 괴롭히고 슬프게 만들었던 건 기억하지만, 직접적으로 나의 죽음에 일조하게 된 것은 저 대가리, 아니 교장 새끼였으니 말이다. 그래, 그 살이 뒤룩뒤룩 쪄 있던 돼지 같은 교장 놈. 머리는 벗겨져서는 얼굴에 개기름이 흐르고, 욕심만 더럽게 많아서, 좀 사는 학생들 학부모한테 촌지란 촌지는 다 받아먹은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운이 좋게 여러 가지 증거를 수집한 덕에ㅡ이래 보여도 살아있을 때는 신문방송부 회장이었다ㅡ언론에 학교 비리와 교장의 부패에 대해 터뜨리려고 했지만, 직전에 교장에게 들켜버려 전부 허사로 돌아갔었다. 그다음 일은…

사실 아직도 기억이 잘 안 난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로 그 부분은 기억할 필요가 없어서 영영 없어져 버린 내 기억의 조각인지.

마치 내가 죽던 순간처럼.

내가 죽던 순간은 누가 가위로 종이를 오려 떼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런 기억도 남지 않았다. 기억이란 보통 꼬리에 꼬리를 물기 때문에, 그 전후의 기억이 남아있다면 분명 그 가운데 부분에 대해 기억이 남을 법도 한데.

내 마지막 기억은, 목이 터져라 울며 옥상의 난간을 붙잡고 주저앉았던 기억밖에 없다.

누가 나를 밀쳤던가? 아니, 그냥 내가 뛰어내린 게 확실했다.

어쨌든 난 자살한 영혼이 되었고, 삼도천 같은 걸 건너 염라대왕이니 뭐니 하니 하는 아저씨한테 재판조차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학교에 묶인 지박령으로 영영 남아있을 뻔했고. 죽음 이후의 삶이란 무엇일까, 하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애초에 삶이란 것은 지속적이지 않은데, 그렇다면 지금의 죽은 난 대체 뭘까 싶기도 하고.

아- 이럴 거면 좀 더 살아볼걸.

죽으면 다 끝인 줄 알았는데.

애초에 나는 무신론자였기에, 죽으면 그저 몸이 흙으로 돌아가고 내 의식과 우주도 거기에서 멈추는 거라 믿었다. 영혼이니 뭐니 하는 건 다 거짓말인 줄 알았으니까. 어렸을 때 책에서 본, 죽기 직전의 사람과 죽은 직후의 사람의 몸무게의 차이가 영혼의 무게라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런 건 완전 비과학적인 사기라고만 생각했었지. 하지만 웬걸, 죽고 나서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귀신이 되어 학교에 떠돌고 있는 신세라니. 이렇게 꽃다운 나이에 죽을 거면 진짜 미친 척하고 별 짓 다 해보는 거였는데.

그래, 예를 들면 저기 저 잘생긴 남자애한테 입술 박치기라도 해보고… 음…

아냐, 내 취향은 좀 더 날렵하고 차갑게 생긴 타입이다. 음, 그래, 역시 저 선생님이 좋으려나. 깔끔하게 넘긴 머리와 잘생긴 이마, 조금 짙은 눈썹에 가로로 긴 눈은 약간 수척해 보이지만 그만큼 퇴폐미와 차가운 매력을 동시에 풍기고 있다. 게다가 얇은 은테의 안경이 걸쳐진 높은 콧대와 흰 피부까지. 그저 수수하게 걸친 셔츠와 가디건까지, 무슨 모델도 아니고. 와, 그런데 진짜 볼수록 대박이다. 묘하게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기는 한데… 어디서 봤더라? 그리고 저런 얼굴로 왜 선생님을 하는 걸까? 그리고 왜 하필 여고였을 때는 저런 잘생긴 교생이 없었던 거지? 저런 교생 왔었으면 안 죽고 좀 더 버텼을 지도… 순 어중이떠중이 같은 자식들만 교생으로 와서 거들먹거리고. 학교가 남고로 바뀌니까 저렇게 잘생긴 교생도 오고, 정말 불공평한 일이었다. 물론 세상은 원래 공평한 법이 없지만.

“…뭐하냐?”

-아아아아아아악!!! 까, 깜짝이야!!!!

“잘생긴 교생 처음 보냐?”

혜리의 말투를 따라 하며 이죽거리던 교생이, 안경을 고쳐 쓰며 비틀린 입매로 웃었다. 바, 방금… 내 말을 들었어?? 엥???

“어허, 이 자식 이거, 정신 안 차려? 유혜리, 내가 남자애들 구경하라고 다시 놔 준 줄 아냐? 시킨 일은 똑바로 해야지, 임마. 근무태만이네, 이거.”

…이…이 말투는…

교생은 정확하게, 혜리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헛웃음을 지은 그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머리를 대충 헝클었다.

-…일직차사?!!?!

“자식이 이거, 상사도 못 알아보고. 정신 교육 다시 들어가야 하나.”

-으, 그, 그것만은…!! …그런데 차사 님, 왜 그런 모습으로…? 왜 갑자기 인간이 되셨어요?

“아, 말 안 했었나? 차사 씩이나 되는데 인간들 사이에 섞여 드는 법도 없을 줄 알았어?”

-그렇지만…! 그렇게 잘…! 아, 아니. 그런데 갑자기 교무실에는 왜…?

“오늘부터 교생으로 부임했으니까 그렇지.”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혜리는 놀라움을 숨기지도 않고 입을 딱 벌리며 놀라고 말았다. 교, 교교, 교생이라니?? 묻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놀라서 벙찐 귀신 하나를 두고 이래저래 시간을 끌 상황이 아닌 저승차사, 아니, '교생 강이도'였다.

“강 선생, 여기 좀 와 봐야겠는데-”

“아, 네.”

어울리지도 않게 상냥한 음성으로 대답한 그가 다시 야차 같은 얼굴로 구석진 곳을 노려보았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교무실 구석진 곳에서, 혜리가 여전히 설명이 필요하다는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시킨, 일이나, 해. 입 모양으로 중얼거린 이도가 안경을 고쳐 쓴 뒤 휙 돌아서 버렸다. 혜리는 어버버하며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계속 있다가는 저 풀풀 풍기는 일직차사의 살기에 쥐도 새도 모르게 지옥도에 끌려갈까 두려워 교무실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렇다. 혜리는 영서와의 해후 이후에, 일직차사의 임시 부하직원이 된 상태였다. 부하직원이라니, 아직 어리디 어린 고등학생 영혼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저승차사의 밑에서 일을 도우게 됐느냐고 하면…

얘기가 길어지겠다.

혜리는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고는 교무실을 향해 메롱을 해 보이곤, 다시 학교 내부를 떠돌기 시작했다. 아, 영서는 뭐 하려나. 친구들이라는 애들하고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으려나. 방학의 끝물인 학교는 무척 한가로워서, 자율학습이니 프로그램이니 하는, 고등학교에서 으레 학생들의 방학 기간을 깎아먹고 어떻게든 공부를 시키기 위해 하는 것들 때문에 온 착실한 학생들 빼고는 거의 텅 빈 수준이었다. 혜리는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것을 멈추고, 바닥에 발을 붙이고 서서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겨보았다. 이렇게 인파가 없는 복도라면 아무하고도 부딪히지 않고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육체를 잃은 지 3년은 지난 혜리지만, 그래도 가끔 이렇게 걸어본다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빼앗길 수 없는 소박한 위안이 되었다. 비록 남학생들만 있는 건 아직도 적응이 안 되지만, 혜리도 예전에는, 이 2학년 복도를 걸으며 창가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찌푸리곤 했던 학생이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강이도라니, 생각보다 멀쩡한 이름이란 말이지. 물론 그게 본명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지만. 혜리는 팔짱을 낀 채 복도를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생각했다. 강이도. 다른 말로는, 일직차사의 인간 이름. 애초에 그 남자에 대한 거라면 뭐든지 수수께끼나 다름없었다. 제대로 제 입으로 알려주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꼬치꼬치 캐묻기에도 좀 그런 문제니 말이다. 나만 해도 내 죽음에 관한 얘기를 그렇게 물어보면 기분이 나쁠 테니까… 그러던 중 생각은 다시 영서에게로 가 닿았다. 권영서는 뭐하고 다니길래 방학 때 코빼기도 안 비치는 거람. 물론 학원이니 뭐니 바쁘다는 건 알았지만, 사실 방학도 전부터 혜리는 영서를 만나지 못했다. 이게 다 일직차사 그 호랑말코 같은 놈 때문에… 더한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냈다가는 밑에 층에서 사람 좋은 얼굴로 웃고 있는 그의 귀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혜리는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지만 말이지, 이렇게 애들도 빠진 휑한 학교에서 무슨 정찰을…

“아, 미안.”

-아, 아니에요.

골몰한 채로 복도를 걷던 혜리의 어깨를, 어떤 남자가 가볍게 치고 사과를 건넸다. 혜리도 무럭무럭 자라나던 공상 속에 빠진 채 앞을 보지 않고 걷고 있었기에, 반사적으로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이고 다시 지나갔다. 작게 웃어 보인 남자가 다시 혜리를 지나쳐, 복도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

…잠깐만.

그 순간 뒤를 돌아보자, 복도 끝에는 아무도 없었다.

혜리는 사고가 정지한 채, 방금 전 마주쳤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 하지만 키가 크고, 교복을 입지 않은 어른 정도라는 것 밖에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희미하게 웃는 인상의 얼굴의 선이 얇았고, 퍽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 정도나 생각났을 뿐이다. 하지만… 혜리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나를, 봤어?

…그것도 나하고, 닿았다고…?

혜리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지나쳐 온 복도를 다시 거슬러 계단으로 다가갔다. 계단 끄트머리에 남자의 뒤통수가 잠시 보였다가, 금방 사라졌다. 꿈도 아니고, 환각도 아니었다. 애초에 귀신인 혜리가 그런 걸 꿀 리가 없지 않은가.

…뭐지?

방금… 그 남자는…

혜리는 문득, 이전에 일직차사가 자신에게 해 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 학교는, 근본적으로 뒤틀린 곳이니 조심해야 할 것.

언제나 권영서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것.

…그리고,

오히려 귀신이 아닌 쪽이, 더 위험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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