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남자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해강은 더 이상 그에게 손을 댈 수 없었으므로 빈손을 거두고 마음속으로나마 짧게 애도를 전했다. 물끄러미 시체를 내려다보는 해강의 어깨 옆으로 고개를 내밀어 그가 보는 것을 확인한 재희가 쿡쿡 소리 내어 웃었다.
“웃기지 않아? 죽을 때도 저렇게 추하게 발버둥 치다 죽다니. 그러게 생전에 착한 일을 많이 했어야지. 언제나 생각하지만 말이야… 자신의 끝을 예상하지 못한 인간의 말로는 언제나 파괴적일 정도로 재미있어.”
“….”
“…아, 이번에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그냥 타이밍이 안 좋았어. 원래 내 생각대로라면 이 남자는 네가 오면 알아서 이 방에서 걸어 나갔어야 하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는지 그대로 술을 마셔버리더라. 그렇게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형이 마시지 말라는 게 마시라는 소리잖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누가 들으면 내 성격에 하자 있는 줄 알겠다.”
있었다. 매우. 많이. 심각하게도. 해강은 애써 불쾌함을 억누르며 남자의 시체를 두고 재희가 나왔던 안쪽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도 따라 들어왔다. 중간 문으로 나뉘어 안쪽에 위치해 있던 안방은 외국인 사업자들을 주로 서비스하는 호텔치고 꽤 한국적인 구조와 디자인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아마 침대는 사용하지도 않을 게 뻔한 재희의 침실은 북악산이 내려다보이는 넓은 통 유리창 앞에 작은 테이블과 푹신한 소파가 놓여 있었고, 역시나 말끔한 침대에 비해 소파는 금방이라도 앉았다가 일어난 듯 쿠션이 조금 꺼져 있었다. 작은 테이블 위에는 사용하지 않는 재떨이와 메모지, 만년필 한 자루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직도, 이런 짓 해?”
“뭐가?”
“돈 받고 사람 죽이는 거.”
“말은 바로 해야지, 동생아. 돈 받고 사람 죽이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다가 죽어버린 것뿐이야. 나는 그들이 알고 싶어 하는 걸 알려주고. 그 후의 일은 내 알 바가 아니지. 엄연한 비즈니스야.”
재희는 또박또박 걸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침대에 누워 자는 일이 없는 그로서는 침대란 그저 소파의 조금 더 큰 버전으로 느껴질 것이다. 예전부터 그는 그런 인간이었다. 어딘가 한구석 핀트가 엇나간, 아니 아예 부품 하나가 영영 사라져버린 인간. 다른 어떤 걸로 대체하려고 노력하기도 했고, 꽤나 비슷한 걸 찾아 끼워 넣은 적도 있지만 이내 가짜는 태가 나는 법이었다. 재희는 그럴 때마다 더욱 지금처럼 변했고, 아마 앞으로도 조금씩 변할 것이라고 해강은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변하지 않아. 재희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해강도 어느 정도는 그에 동의했지만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임재희라는 남자가 하는 말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것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럼 정정할게. 돈 받고 사람 죽이는 정보 팔고 물건 파는 거.”
“영 틀린 말은 아니구나.”
다정하게 웃은 재희의 눈가에 약한 노여움이 서려 있었다. 그만 기어오르라는 뜻이겠지. 해강도 더 이상 말꼬투리를 잡으며 그와 있는 시간을 한시라도 더 늘리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기에 바로 본론을 꺼냈다.
“찾았어. 그리고 충분히 검증했어.”
“충분히?”
“죽었다가 살아나는 거, 그리고 형이 말했던 능력도. 아마 그 이상으로 더한 게 있을 거야.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애가 형이 말한 사람이 맞았어.”
“그렇단 말이지. 예상보다 조금 빠르네. 그래서 내가 너를 예뻐하는 거지만.”
재희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깍지 낀 손을 무릎 위에 얹었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는 것을 보니 아마 해강을 안내해 주었던 남자가 시체를 정리하고 있는 듯했다. 잠시 맨 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듯하던 재희가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축배라도 들어야 하지 않겠니? 오늘 내가 기분이 좀 좋거든. 가만있어 보자, 좋은 와인을 하나 선물 받았는데…”
“…형.”
“여기 있었네. 차게 보관해둘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프론트에 전화해서 칠링 해달라고 할까? 사실 이거, 아까 저 남자가 나한테 잘 보인답시고 들고 온 와인이야. 원래 계약서를 쓸 때부터 그렇게 선물 공세를 하는 인간들이 있잖아. 내가 와인은 잘 안 마시는데, 그래도 안 받으면 피차 예의가 아니니까 받아두기는 했거든. 방이 이래서 직원을 부를 수가 없었다니까. 일단 잔을…”
“형!”
선반 위에 두었던 와인병을 들고, 빈 잔을 찾는 재희의 뒷모습에는 이유 모를 조급함이 어려 있는 듯했다. 조급함, 아니 그보다도 더 그를 그답지 않게 만드는 무언가였다. 해강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재희의 팔을 잡아채며 그를 돌려세웠다.
그래, 이 얼굴이다. 꿈에라야 잊을 수가 없던,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고 내가 어찌하는지 보려는 이 얼굴과 눈빛, 그리고 지난 과거 내내 이 눈으로 점철되어 있던 나의 유년기가 반응하는. 해강은 잠시 말문이 막혀 머뭇거리다가, 재희가 슬쩍 팔을 빼자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형, 나 이제 술 못 마시는 거 알잖아.”
“무슨 헛소리야?”
“한국에서는 아직 나 고등학생이야.”
재희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뭔가를 어림하는 듯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병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아, 내 정신 좀 봐. 그렇겠네. 내가 이렇게 시간 개념이 없다니까.”
“……”
“아니면 술이라면 지긋지긋해졌다거나? 안 그래, 주해강?”
영 틀린 말은 아니었으므로 해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약간의 원망과 애증을 담은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을 뿐이다. 재희는 이미 술이라도 마신 사람처럼 몸을 약간 비틀대며 유리창 앞에 높인 소파로 다가가 몸을 누였다. 생각해 보니 항상 빳빳하고 주름 하나 없는 그의 정장이 온통 엉망에 피까지 튀어있다는 걸 떠올렸다. 해강이 다시 그에게 다가가 재희의 팔을 들어 찢긴 소매나 얼룩진 셔츠를 확인했다. 상처가 없는걸 보니 재희의 피는 아닌 모양이었다. 해강이 한숨을 쉬며 그의 팔을 놓았다.
“…시체는 어떻게 할 거야?”
“윤 실장이 알아서 하겠지. 한국이라고 청정 구역은 아니니까. 정 안되면 돈이라도 쥐여주고 의대에 카데바로라도 넘기라고 해야지.”
“하, 프로 골퍼의 시체를 의대에 실험하라고 보낸다고? 아무리 죽어 있어도 몸값이 장난 아닐 텐데.”
“너도 알아봤구나. 하지만 어떡해, 갑자기 나를 죽이려고 드는데. 내가 죽을 수는 없으니까.”
“저 남자는 새로 고용한 비서라도 되는 건가? 나를 데려오라고 할 필요 없이 곁에 두고 있었으면 경호원 노릇이라도 했을 거 아냐.”
“저 인간은 그런 쪽으로는 도움이 안 돼. 그리고 내가 고용한 거 아니야.”
“시멘트에 공구리쳐서 바다에 던지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저 정도로 유명한 사람의 얼굴은 지나가던 일곱 살짜리도 알아본다고. 죽이지는 말았어야지.”
해강이 무겁게 속삭이자, 재희는 눈을 감은 채 이마를 지압하다가 돌연 손뼉을 짝, 소리 나게 치며 눈을 떴다.
“그래, 그러면 되겠네! 얼굴만 없으면 되는 거지?”
“형.”
“아, 네 말대로 바다에 버리는 게 빠르려나. 루트를 알아보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아무래도 배를 하나 빌려서…”
“…형.”
“농담이야.”
재희는 재미없다는 듯 혀를 쯧, 차며 다시 눈을 감고 이마를 꾹꾹 눌렀다.
“와인도 됐다 하고, 자꾸 와서 잔소리나 하고. 그래도 보고는 잘 했으니 앞으로 그 애 감시나 똑바로 해. 눈치채고 도망가거나 일 틀어지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
“가 봐. 머리가 또 아파서 쉬어야겠으니까.”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재희가 손을 내젓자 해강은 군말 없이 뒤돌아 방을 나왔다. 어느새 골프 선수의 시체는 사라져 있었고, 피나 분비물도 하나 없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어지러이 놓여 있던 잔이나 병, 종잇장들과 가구들도 전부 제대로 정돈되어 있었다. 손이 빠른 편이네. 일 처리도 괜찮고. 해강은 무의식중에 그렇게 생각한 뒤 스위트룸의 문을 닫고 나와 복도를 걸어갔다. 발소리의 가벼운 소음마저도 먹어 들어가는 카펫이 깔린 복도. 엘리베이터가 와서 멈추고, 해강은 그 안에 올라탔다.
버튼을 누르고 잠시 그대로 있다가, 양옆으로 붙은 거울로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거울 안에는 익숙하지만 낯선 표정의 자신이 있었다.
그를 만나고 오면 자연히 짓게 되는 표정, 얼굴, 태도가 여전히 해강의 몸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였다. 3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그 못된 버릇들도. 해강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평소와 같은 다정하고 완벽한 미소였지만, 해강은 얼굴 근육이 이상하게 경련하는 것을 느끼고 웃음을 거두었다.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들여다본 휴대폰은 2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려주었다.
문득 참을 수 없어지는 기분에 해강은 연락처를 뒤졌다. 수백 개의 전화번호와 이름들이 있었지만 아무 이름도 누를 수가 없었다. 잠시 망설이던 엄지가 한 이름을 선택한다. 톡톡 자판을 누르며 메시지를 보냈다.
그 애, 그 애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권영서. 네가 보고 싶어.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