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남자가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크게 실망했다.
양수에 젖은 입으로 첫 울음을 터뜨리기도 전에 땀 범벅이 된 의사는 산모에게 아기가 아들임을 알렸고, 탯줄을 잘리고 눈부신 빛에 울음을 터뜨린 아기와 동시에 산모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탄생을 축하하는 아기의 첫 울음과 달리 산모의 눈물은 처절한 배신감과 실망, 앞으로의 일에 대한 공포를 의미하는 눈물이었다.
‘아들이라고? 분명 딸이라고 했잖나!’
‘죄송합니다, 어머님. 의사가 처음에는 분명…’
‘시끄러워! 애초에 내가 자연 임신은 못 믿겠으니 내가 아는 정 박사한테 맡기라고 했잖아! 그랬다면 당연히 딸이 태어났을 텐데!’
‘하지만 어머님, 그건 불법적인…’
‘불법? 지금 자네, 나한테 불법을 운운했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그게 아니고…’
‘엄마, 엄마! 이 사람은 건드리지 말아요, 제발 부탁이야, 응?’
‘이 철없는 것아, 네가 모든 일의 근원이야! 그렇게 이 어미 말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저런 시정잡배 같은 놈과 눈이 맞아서 새끼를 낳더니, 게다가 분명 딸이라고 나한테 거짓말을 해?! 태어나기 전이라면 어떻게든 손을 썼을 텐데, 이미 사주를 받아 태어나버린 것을 나보고 어찌하란 게야!!’
남자는 요람에 누운 채 자신의 외할머니의 고함소리에 놀라 자지러지듯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 남자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맞아 쓰러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적막한 집 안을 깨웠고, 평소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쥐 죽은 듯 고요하던 집 곳곳에서 인기척이 두런두런 들려왔다. 새벽녘 잠에 젖어 있던 가족들이 하나 둘 깨어나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오다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모두 요람이 있는 작은방으로 모여든 것이다.
‘어머, 세상에, 저것 좀 봐, 아기잖아!’
‘막내 이모가 돌아온 거야? 이모, 이모!’
‘그럼 저 애가…?’
‘엄마,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수희가 돌아왔어요?’
‘누가 쟤 우는 것 좀 어떻게 해 봐!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네.’
‘귀엽다, 나 아기 처음 봐…’
저마다 높고 낮은 목소리들이, 그리고 작고도 큰 목소리들이 기절할 듯이 울던 아기를 진정시켰다. 남자는 용하게도 울음을 멈추고 젖은 눈으로 자신의 하늘을 가득 채운 얼굴들을 올려다보았다.
‘어머머, 울음을 뚝 그쳤네! 우리를 알아보나 봐!’
‘수희 이모, 이모!’
‘수희야! 이게 무슨 일이야? 이 새벽에 대체, 이렇게 핏덩이 같은 아기를… 잠깐, 당신은…?’
‘…오랜만입니다. 처형.’
‘…엄마, 이게 무슨…’
남자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를 움직여 열심히 제 피붙이들을 올려다보았다. 자지러지듯 울던 아기가 울음을 멈추고 자신들을 신기한 눈으로 보자 법석을 떨던 여자 중 제일 어린 소녀가 서툰 자세로 아기를 안아 들었다.
‘이모부, 얘가 제 사촌 동생이에요?’
‘도희야, 아기 내려놔라! 너희들은 들어가 있어!’
노인이 신경질적인 어투로 소녀에게서 아기를 빼앗으려고 손을 뻗자, 도희라고 불린 소녀는 재빨리 아기를 안고 뒤로 물러났다. 백색의 잠옷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제 할머니의 눈치를 보면서도 이모와 이모부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눈물을 훔친 남자의 어머니, 소녀에게는 막내 이모인 수희가 메마른 얼굴로 아기를 건네받았다. 그녀조차도 아기를 안는 법은 익숙하지 않았기에, 약한 아내가 혹시라도 휘청거려 둘 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그의 남편이 재빨리 아기와 그녀를 부축했다. 잠옷을 입은 여인들 중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가 피곤하고도 당황스러운 얼굴로 미간을 꾹꾹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 또한 실크 잠옷에 가디건 하나만을 두른 채였다. 아직 코트도 채 벗지 못한 동생 부부와 화를 누르지 못해 씨근거리는 엄마를 번갈아 보며 그녀는 물었다.
‘엄마, 수희야, 대체 이 오밤중에 무슨 야단들이야? 그리고 수희랑 박 서방은 다음 주에야 온다고 하지 않았어? 집안 식구들 다 자는 시간인 거 알면서 왜 지금 와서 난리니?’
‘언니, 나는…’
‘미희 너, 애들 데리고 얼른 다시 들어가 자. 내일 시장님 가족하고 점심 식사 있는 거 알지? 일찍 일어나서 준비할 게 많으니까, 특히 도희는 늦잠 안 자게 잘 챙기고.’
‘할머니, 아기 이름 지었어요?’
소녀가 눈을 빛내며 묻자, 옆에 있던 조금 더 큰, 소녀라기보다 어엿한 성인 여성의 모습을 한 키가 크고 창백한 여성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너는 눈치도 없니? 사촌 동생에게 작게 속삭이며 다시 방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그녀의 팔을 뿌리친 도희가 잠옷 원피스 자락을 붙들고 한 발짝 나서서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제 사촌 동생, 이름 지었어요?’
자리에 모인 이들은 모두 잠시 침묵했다. 저마다 표정과 그 안에 품은 마음은 모두 달랐지만, 오로지 어린 도희만이 또렷한 얼굴로 제 할머니에게 묻고 있었다.
‘…그건 아직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도희야.’
‘저 아기도 우리 핏줄이잖아요. 여자애가 아니라도 괜찮잖아요. 네? 할머니.’
‘임도희, 그만해! 너 정말 혼나고 싶어?’
‘둘 다 그만! 내 앞에서 자매끼리 싸우는 꼴은 못 본다. 도희랑 서희, 어서 방으로 들어가. 그리고 그 아기, 이리 내놔라.’
‘엄마!’
‘목소리 낮춰!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그렇게 눈 시퍼렇게 뜨고 노려볼 거 없다! 위층에 네가 쓰던 방이 그대로 있으니, 네 남편하고 가서 자든가 말든가 해.’
‘하지만…’
‘미희야, 너는 따라 들어오거라.’
노인은 표독스러운 목소리와는 달리,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기를 안아 들고 자신의 큰 딸에게 턱짓했다. 흐느끼기 시작하는 동생의 어깨를 다독여준 여인은 가디건을 여미며 노인을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타깝게도 그때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태어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아기에게 더 많은 기억을 요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리라. 아무튼 그 방에 들어간 후부터 남자는 이름이 생겼고, 그렇게 임재희가 되었다.
물론 지금의 임재희가 되기까지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한 얘기가 아니므로.
“…임재희 씨, 사정은 충분히 들어서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희 성당의 규칙상 4촌 이내의 친척일지라도, 원생을 마음대로 입양할 수는 없어요. 가족 관계 증명서와 입양 희망자 본인의 호적 증명서는 물론, 통장 내역과 현재 본인의 재산 가치도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범죄 내역 조회서는 당연한 수순이고요.”
그런 것들은 여전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재희는 눈앞에 앉은 나이든 수녀가, 고작 스물몇 살밖에 먹지 않은 젊은 남성이 어린 남자애를 입양하려는 데에 여러 가지 합리적인 의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재희는 당황하지 않고 유들유들한 웃음을 띤 채 들고 온 서류 가방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봉투는 두 개였다.
“하나는 방금 원장님, 아니 수녀님께서 말씀하신 필요 서류들입니다. 혹시 몰라 제 가족들, 그러니까 아이의 친척들의 등본도 같이 떼 왔으니 확인해 주시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더 말씀해 주세요. 오늘 안에 다 준비해올 수 있으니까요. 다른 하나는…”
“…재희 씨, 먼저 이 서류를 다 확인해야 확실해지는 것이겠지만, 이 봉투는 필요 없습니다. 받지 않겠습니다.”
“아직, 필요 없는 거겠지요, 수녀님.”
재희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얼굴로 웃으며 큰 봉투보다 두 배는 더 두툼한 작은 봉투를 그녀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수녀는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수심 어린 눈가에는 그동안 성당과 고아원을 같이 운영하면서 자연스레 새겨진 경제적 궁핍과 고충들이 고스란히 배어있었다. 그런 것들을 아주 잘 알아채는 사람이었다, 임재희는.
“그저 마음의 표시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아니면 위대하신 성모마리아를 위해 사용할 성금이라거나, 부디 좋을 대로 쓰십시오. 저희 집안에서는 오히려 마지막 남은 저희 집 핏줄을 무사히 찾을 수 있게 되어 기뻐하고 있으니, 그동안 아이를 길러주신 보답이라고 하면 되겠군요. 필요하시다면 제 계좌를 장기 후원자로 등록하셔도 좋습니다. 필요한 서류를 보내주시면…”
“임재희 씨,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해강이는 보낼 수 없습니다.”
“…왜죠?”
남자의 얼굴이 단박에 굳어지는 것을 본 원장은 떨리는 손을 맞잡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남자의 뒤에 선 두 명의 덩치 큰 남성들은 누가 봐도 위협용이었으나, 이곳은 성당 안. 쉽게 무력을 가하거나 폭력적으로 굴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문밖에는 아이들이 있다. 이 남자도 마음대로 난리를 칠 상황은 아닌 것이다. 아그네스 수녀는 또렷하게 말했다.
“해강이는 부모가 일찍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고아원에 들어올 때, 분명 연락이 닿는 친척이 없었습니다. 저희 성당 부설 고아원은 그런 아이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니까요. 아무런 핏줄도, 혈연도, 가족도 남지 않은 아이들만 거두어 보살피는 곳입니다. 이제 와서 친척이라니요, 그것도 돈다발만 주고 아이를 데려가겠다니요? 당신 말대로 이곳은 성모 마리아가 굽어보시는 곳. 그런 인신매매나 다름없는 짓을 감히…”
“아니요, 아니요. 수녀님.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신 모양입니다. 저를 그런 추악한 파렴치한으로 몰다니요. 해강이가 이곳에 들어올 때 분명 조사를 제대로 하신 게 맞나요? 정말 혈연이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나요?”
남자의 말에 수녀는 잠시 침묵했다. 납득을 했거나 이해를 해서라기보다는, 이 남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애를 데려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과연 이 남자를 내치고 해강이를 보호하는 게 맞는 것일지, 그리고 과연 그게 아이에게도 좋은 일일지 늙은 수녀는 고민했다.
주해강, 해강이는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는 아이였다.
그토록 착하고 천사같이 예쁜 아이를 두고 간 부모의 영혼도 아마 편치 못할 것이리라. 수녀는 매일 밤 잠들기 전 모든 아이들을 위한 기도를 올리면서, 해강이의 차례가 되면 아이와 함께 그의 죽은 부모의 몫까지 기도를 하는 그녀였다. 작고 어린 영혼이 길을 잃지 않고 온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일찍 울타리를 잃은 어린 양이 길을 엇나가지 않고, 비바람에 지쳐 울거나 쓰러지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비록 제가 남은 생에 그 아이를 얼마나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제 숨이 다하는 날까지 만이라도 그 애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게 도와주소서.
지금 눈앞에 등장한 이 남자가, 과연 그 아이를 보듬어줄 수 있을지.
해강이에게 울타리가 되어줄지, 아니면 비바람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한 번 보고 싶군요. 짐은 저녁에 가지러 오겠습니다.”
…부디, 다른 곳에서도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너는 그럴 자격이 충분한 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