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재희가 열두 살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부고가 날아들었다.
재희의 부모, 그러니까 진희의 막내딸인 수희와 그녀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즉사했다는 소식이었다. 사고의 원인은 상대방 화물트럭의 브레이크 고장으로 인한 충돌이었고, 이상한 점이 있다면 6차선 도로에서 일어난 4중 추돌 사고였지만 다른 운전자들은 모두 경미한 부상만 입은 채였다는 것이다. 그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은 수희와 그 남편뿐이었다. 심지어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한 것도 아닌, 바로 그 뒤 차량이었는데도.
진희는 부고를 전달하는 경찰의 연락에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말을 잇던 경찰이 어색하게 듣고 계십니까?라고 되물을 때까지 그녀는 담담했다. 끝내 그녀가 한 말은 이거였다.
“그래서, 제 딸애의 과실은 몇 퍼센트나 됩니까?”
장례는 바로 다음날 치러졌다. 사고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에서였다. 크고 넓은 빈소는 새고 꾸민 시설과 단정하고 눈치 빠른 도우미들로 유명한 곳이었고, 진희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녀는 서릿발 같은 표정으로 내내 빈소를 지켰고, 그녀의 지인들로 빈소는 사흘 내내 북적거렸다.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유족들이자 진희의 자식들인 그녀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검은 상복을 입고 머리에 흰 핀을 단 채 묵묵히 진희를 따라다녔다. 일은 모두 도우미들이 하고 있었고, 유족들은 그저 오는 손님들을 맞으며 인사를 받았기에 장례식장에서 제일 큰 공간을 빌린 수희 부부의 빈소는 얼핏 보면 그저 인기 많은 식당이라고도 착각할 정도였다. 조용히 식사를 하고 가는 손님들도 있었지만, 한쪽에서는 떠들썩하게 노름판을 벌이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이 죽은 장례식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떠들고 노름을 즐겨야만 가는 이가 평안하다는 미신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어두운 얼굴로 조용히 빈소를 방문했다가 떠나는 이들도, 자리를 잡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수군거리는 이들도, 방 한 켠에서 왁자하게 술자리를 벌이는 이들도… 그 모두가 재희의 죽은 부모가 아닌, 진희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상주는 당연히 진희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가문의 주인이자 제일 연장자이고, 남편은 이미 죽은 지 오래이며 그녀는 그전에도 몇 번 그런 식으로 자식을 먼저 떠나보냈다. 수희의 바로 손위 누이들도 젊은 나이에 요절했기에 이제 와서 진희가 무너질 이유는 없었다. 미희도 처음 동생을 잃었을 때는 눈물을 보였지만 이번에는 메마른 얼굴로 그저 손님들을 맞이할 뿐이었다. 마냥 울면서 슬픔과 비탄에 잠겨있어 봤자 해결되는 것은 없다는 걸 이미 10년 전에는 깨닫지 않았는가. 눈물을 보이는 것은 아직 어린 서희와 도희, 예희 정도였다. 재희는 장례식에 올 수 없었다. 어리기도 했거니와, 아직 열두 살밖에 안 먹은 애가 자기 부모 죽은 장례에 와서 사람들에게 무슨 좋은 얘기를 듣겠냐는 게 진희의 뜻이었다. 딸들 중 제일 어린 도희가 낮에만 빈소를 들렀다가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 재희와 있어주곤 했다. 재희는 그저 죽음이 의미하는 것을 정확히 모르기도 했고, 항상 집에 붙박여 있던 식구들이 어딘가로 가서 계속 집을 비운다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게다가 고용인들이 모두 슬픈 눈으로 재희를 쳐다보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어린 재희로서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틀린 방식으로라도 그런 식으로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는 것, 그래도 이 집안의 사람으로서 인정을 받는다는 것으로 느껴져 재희는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부모라고 해 봤자 거의 본 적이 없었으므로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지만, 괜히 어른들이 자신을 보면 더 안타까워하고 불쌍해한다는 사실이 좋았다. 재희에게 있어 가족이란 진희와 큰 이모, 사촌 누이들이 전부였으므로, 부모가 죽었다고 해서 이제 와 특별히 다를 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더욱 재희를 안타까워하고, 어린 나이에 어쩌다, 애는 어찌하고, 불쌍해라, 같은 말을 중얼거릴 때면, 오히려 재희는 더욱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재희는 진희가 다시 집에 오기를 기다렸다.
그녀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었기에.
“재희야, 자니?”
“아직요. 하지만 일과를 모두 끝내서, 그냥 씻고 누워있었습니다.”
부부의 시신을 화장하던 날 밤, 평소보다 늦게 집에 들어온 도희가 재희의 방문을 노크했다. 재희의 대답에 도희가 살짝 창백해진 얼굴로 웃으며 들어왔다.
“저녁은?”
“조금 전에 먹었습니다. 누나는요?”
“그냥저냥 때웠지. 할머니도 너무하셔. 그래도 네 부모님인데 오지 말라니…”
도희는 피곤한 얼굴로 방 안에 들어와 잠시 서성거리다가, 어색하게 재희의 책상 의자를 빼 걸터앉았다. 여전히 검은 상복을 입은 채였다. 재희는 덮고 있던 이불을 치우고 일어나 앉았다. 이불에 덮여있던 재희의 흰 맨발이 서늘한 바람에 꼼지락거렸다. 도희는 울적한 눈으로 그런 사촌동생의 작은 발등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있지, 재희야…”
“네.”
“…나는 이제 더 이상 이런 걸 못 참겠어.”
재희는 무슨 의미냐는 듯 눈을 둥그렇게 뜨고 도희를 쳐다보았다. 도희의 창백한 얼굴은 어느새 일그러져, 곧 커다란 눈물방울을 후두둑 떨어트리고 있었다. 재희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의자에 앉은 도희의 가는 어깨가 떨리고 앞으로 굽어지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이따위 것들이 다 뭐라고… 난…나는…”
“…누나.”
“흑…흐윽… 이모… 수희 이모…”
“누나, 울지 마세요.”
재희는 그저 누군가 울 때에는 위로를 해주면 된다는 것 정도의 지식만 있는 상태였으므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렸다. 이렇다 할 공감이나 진실한 위로는 없었지만, 적어도 어린 재희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최선이었다. 도희도 재희와 비슷한 나이에 부모를 잃었다고 했다. 재희로서는 그저 말로만 전해 들은, 이미 죽은 이모와 이모부라는 사람들에 대해 떠올렸다. 할머니께서 도희 누나는 이모부를 꼭 닮았다고 했었지. 그래서 처음엔 도희 누나를 싫어했다고 하셨지만, 성격이나 습관들이 죽은 이모를 꼭 닮아, 결국 예뻐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재희는 도희도 자신처럼, 자신의 부모가 죽었을 때 그 장례식에 가지 못했던 걸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우는 걸까? 자신의 부모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해서, 이렇게라도 나의 부모의 장례에 참석하고 깊이 마음 아파하는 걸까? 여전히 재희로서는 알 수가 없는 감정이었다.
도희는 한참을 어깨를 떨며 울다가, 조용히 고개를 들더니 젖은 눈으로 재희를 올려다보았다. 재희는 이제 점점 지치기 시작했으므로, 다시 도희 누나가 특유의 환하고 다정한 웃음을 짓길 원했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다시 따뜻하게 꼭 안아주고 나가기를.
그러나 재희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뭐, 뭐야… 누구…”
“…네? 누나, 무슨…”
도희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뜨였다. 커다란 눈망울이 몇 번 깜박거리더니, 자신의 앞에 있는 사촌동생의 어깨너머를 쏘아보았다.
“…아… 아아……”
도희의 흰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재희는 그녀가 자신이 아닌 자신의 뒤쪽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따라 뒤돌아보았다. 그러나 뒤에는 회색빛의 벽지가 발린 벽만 있을 뿐이었다. 그 옆에는 닫혀 있는 창문이 두 개. 도희의 몸이 갑자기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재희는 의아한 얼굴로 양손으로 도희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손은 놀라울 정도로 차게 식어있었다.
“이…이건… 아니야… 난…”
도희는 재희가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것도 모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턱이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니,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순식간에 의자와 재희를 밀치고 방문으로 달려갔다. 문을 벌컥 열어젖힌 도희가 우당탕 소리가 날 정도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재희는 얼떨떨한 얼굴로 멍하니 앉아 열린 방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에서 떨어진 흰색 핀이, 방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손을 뻗어 핀을 집어 들었다. 조악한 흰 리본이 달린 핀 사이로 도희의 머리칼이 한 올 끼어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재희는 조용히 핀을 자신의 책상 구석에 올려둔 후 다시 침대로 가 누웠다. 눈을 감고 숨을 죽이자, 아래층에서 서희가 무어라고 중얼대다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 들렸다. 내용은 정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 도희가 서희의 방으로 뛰어 들어간 듯, 서희가 중간중간 도희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내려가 보고 싶었지만 재희는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끼어들 일이 아닌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미희 이모는 언제 오시지… 서희 누나도 집에 있었구나.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인 걸까. 둘이 싸우는 건 아니겠지. 도희 누나는 왜…
재희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눈을 꼭 감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썼다.
오늘은 어쩐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