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서명훈과 임진희는 중학생 때부터 알던 사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둘은 동창이었고, 1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던 것 말고는 별다른 접점은 없었다.
임진희가 학교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야, 너도 귀신 본다며?”
그때로서는 딸을 학교에 보내는 집이 많지 않았다. 임진희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후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치기는 했으나, 진희는 중학교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엄격한 복장과 학칙들은 물론, 전쟁을 멈춘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때의 한국 학교들은 저마다 과도기를 거치고 있었다. 그날도 진희는 평소처럼 언덕을 넘어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중학교에 등교했다. 새벽안개가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고, 아직 찬 공기가 상쾌하게 감돌던 등굣길이었다. 숲에 난 오솔길을 따라 한 시간을 걸어가면 학교가 나왔다. 같은 학교 학생을 마주치는 게 싫어 진희는 언제나 아침 일찍 해가 뜨기도 전에 길을 나서곤 했다. 그날도 진희는 오솔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분명 조용하고 고요해야 할 숲에서 다른 발자국 소리가 들린 것이다.
“뭐야, 누구야?!”
“깜짝이야, 왜 그렇게 놀라?”
“…누구야, 너는? 왜 나한테 말을 걸지?”
귀밑으로 짧게 자른 단발머리의 진희가 눈을 사납게 치켜뜨고 눈앞에 나타난 소년을 노려보았다. 난데없이 오솔길 앞쪽에서 나타난 소년은 진희와 같은 모양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까까머리에 눌러쓴 검은 모자는 비스듬하게 걸쳐져 있었고, 왼손에는 진희가 든 낡은 보자기 가방과는 다른 새까맣고 윤이 나는 가죽 가방이 들려있었다. 소년의 왼쪽 가슴팍에는 검은색 실로 ‘서명훈’이라고 수놓아져 있었다. 소년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너도 귀신 본다며? 진짜냐?”
“…너도, 라고?”
진희가 경계를 풀지 않은 채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되물었다. 여차하면 품에 안고 있던 보자기 책보를 저 녀석 얼굴에 던지고 도망가기라도 할 테다. 새치름한 소녀의 얼굴이 자신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것을 눈치챈 소년은 활짝 웃으며 경쾌하게 말했다.
“진짜네? 성황당 나무 앞집에 사는 여자애가 너 맞지? 반갑다. 나는 서명훈. 나도 귀신 봐.”
명훈은 붙임성이 좋고 구김살이 없는 밝은 소년이었다. 또래보다 홀쭉하니 마르고 큰 키와는 달리 뼈대가 단단하고 힘이 좋았으며, 언제나 불의에 맞서 먼저 나서는 전형적인 선한 인간상이었다. 그와 반대로 진희는 언제나 의심이 많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여의고 고모 댁에서 반 식모살이를 하며 자란 탓일 수도 있고, 계집애가 재수 없게 귀신이 보인다느니 하면서 난리를 친다는 구박을 받고 자란 탓일 수도 있다. 진희는 열두 살이 되면서 자신이 보는 것들, 그리고 ‘알게 되는’것들에 대해 입을 꾹 다물게 되었다. 동네에서 진희는 똑똑하고 예의는 바르지만 왠지 기운이 싸하고 재수가 없는, 어른들조차도 슬그머니 피하게 만드는 아이였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대를 일삼던 부모가 밤에 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의문사를 당하고, 그나마 여유 있는 고모 댁에서 자란 진희는 ‘여자애도 배울 건 배워야 한다’는 고모부의 지론에 따라 주변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촌 언니와 함께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집에서만 집안일을 도우며 지내던 그 동안의 생활과는 달리 학교는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 가득했다. 아니, ‘득실거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학교에 입학하고 한 달 동안 진희는 시도 때도 없이 기절을 하거나 비명을 지르며 까무러치곤 했다. 지나가듯 들은 바로는, 진희가 다니게 된 학교는 6.25 전쟁 때 야간 병원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고쳐 만든 학교라고 했다. 보통 학생들은 새롭게 고친 건물을 마음에 들어 했고, 당시로선 시골에서 드물게 교복을 입고 엄한 교칙을 준수하는 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진희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죽을 것 같았다. 내일 또 학교를 가면 어떤 ‘것’을 볼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자신을 본다는 걸 알고 따라오거나, 나를 놀라게 하거나, 아니면 더 나쁜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진희는 어린애처럼 다음날 학교에 가기 싫다며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진희가 특이하다는 사실은 이미 전교에 일파만파로 퍼지고 말았다. 그 왜, 성황당 나무 앞에 있는 양옥집 여자애, 머리 단발에 키가 작고 얼굴은 하얀, 걔 귀신을 본대. 뭐어, 귀신? 그래, 밤에 도깨비랑 춤을 추는 것도 누구누구가 봤대. 누구는 걔가 밤에 저 동네 입구에 있는 묘지 있잖아, 거기서 혼자 덩실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것도 봤대. 어머, 무서워. 걔 제정신이긴 하대? 무당 아냐?
진희는 아주 빠르게 혼자가 되었다. 딱히 붙임성 있거나 친근한 성격도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으나, 고모 내외는 그런 소문을 아주 불쾌해했다. 남의 집 멀쩡한 딸 혼삿길을 막는 것도 아니고, 학교 멀쩡히 다니고 공부만 잘하는 애를 왜 그렇게들 욕하는지. 진희 너도 처신 똑바로 해라. 학교에서 친구도 사귀고, 살갑게 웃으면서 다니면 어른들도 예뻐하고, 그런 이상한 소문도 안 날 것 아니냐. 너 거둬준 고모를 생각해. 열심히 공부하고 성공해서 좋은 배필 만나야지. 당시로서는 꽤 깨어있는 어른 축에 들었던 고모부는 자신의 딸인 진희의 사촌 언니와 진희를 자매처럼 대했다. 그러면서도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계속해서 번져나가자 이제는 진희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진실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어느 쪽에도 들지 않는 진희였다. 이상한 걸 보고 듣는 건 맞지만, 정확히 말하면 귀신을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진희는 보는 것보다 듣는 쪽이었다. 심지어 소문에서 등장하던 남의 묘 앞에서 춤을 췄다느니, 도깨비랑 있는 걸 봤다느니 하는 것도 전부 헛소문이었다. 그러나 작은 마을에서 한 이상한 여자아이에 대해 험담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들의 유희거리였으므로, 진희의 소문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나갔다.
“뭐? 귀신 보는 게 아니라고?”
그런 진희에게 처음으로 살갑게 다가온 사람은 바로 명훈이었다. 명훈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학교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친구가 많고 누구나 친근하게 대해 인기가 좋은 학생이었다. 성적은 고만고만했고 운동 실력도 그저 그랬지만 그는 본디 갖고 태어난 기운 자체가 좋은 사람이었다. 진희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한테 동질감을 느끼고 반가워하는 명훈이 더욱 이상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정확히는 보이는 게 아니라… 들리는 쪽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래. 나도 이런 거에 대해 누구랑 정확히 얘기를 해본 적이 없어서…”
“오호, 그렇군. 나는 학교 애들이 얘기하는 것만 듣고 정말 네가 무당이라도 된 줄 알았는데.”
“…그러는 너는? 너도 귀신이 보여?”
명훈은 대답 없이 씩 웃었다. 어느새 아침 해가 빼꼼 고개를 내밀어 찬 공기가 적당히 따스해지고 있었다. 명훈과 진희는 여전히 상쾌한 숲속을 헤치고 학교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명훈이 한참 만에 대답했다.
“보여. 지금도.”
“…지금이라니?”
“…넌 안 보여?”
오히려 놀란 눈치인 명훈의 표정은 거짓이 아닌 듯했다. 진희는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그런 기운을 느끼지는 못했는데. 대체 뭐지? 언제부터?
“저어기. 저기 오솔길이 끝나는 입구 쪽 벼락 맞은 나무. 야, 내가 왜 이 길로 잘 안 다니는 줄 알아?”
명훈이 진희의 귓가에 대고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진희의 발이 뚝 멈췄다.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벼락 맞은 나무라면, 이 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그…
“…저기 맨 꼭대기 위에, 맨날 거꾸로 매달려서 실실 웃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어깨나 머리를 만지려고 손을 뻗어대는 놈이 하나 있거든.”
서명훈의 말은 가끔씩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농담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진희는 결국 고립과 또래들의 편견 섞인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 따위가 지금 당장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허황된 미래를 위해 억지로 피 말리듯 꾸역꾸역 그 학교에 등교하는 것도 싫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야. 항상 보자기에 가득 넣어 다니던 교과서들을 가져다 소각장에 몽땅 버리며 진희는 생각했다. 학교를 나서기 전에 명훈이 급하게 찾아온 것도 바로 그 직후였다.
“학교는 왜 그만두냐?”
“네가 알 거 없다. 너는 얼른 들어가서 수업이나 들어라.”
진희는 매몰차게 대답하며 돌아섰다. 명훈과 처음 그 오솔길에서 만난 후, 그는 꼭 진희가 지나가면 아는 척을 하고 시답잖은 대화나 농담을 걸어오곤 했다. 진희는 그런 그가 보통은 귀찮았으나 가끔씩은 반가운 기분도 들었다. 특히나 ‘그것’들이 자꾸만 따라붙고 진희의 귓가에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릴 때면, 그 이상한 잡음들 사이로 자신을 불러 세우는 그의 목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진희가 학교를 그만두는 이유가 꼭 그것들 때문만은 아니었으므로, 이제 와서 명훈이 그런 사실을 안다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단지 학교에서 좀 알고 지내는 학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