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중퇴마비록-138화 (138/166)

138화

해강이 눈을 뜬 것은 자신의 침대에서 까무룩 잠에 든 직후였다. 내가 잠들었나.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았는데. 해강은 자신이 지금 꿈속이라는 것쯤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는데, 최근 들어 유달리 그런 꿈을 많이 꾸던 참이었다. 원래 어려서부터 잠을 자면 깊게 자는 터라 선명한 꿈을 꾼 적은 별로 없던 해강이었다. 그러나 요즘, 특히 한국에 오고 나서부터, 이상하리만치 자각몽을 많이 꾸고 있었다. 자각몽이라는 것보다 루시드 드림, 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게 다가오는 해강이었지만, 아직까진 꿈속에서 높은 빌딩에서 떨어진다거나 손가락을 반대로 구부린다든가 하는 것은 자유롭게 할 순 없었다. 그저 아, 꿈이구나, 하고 생각만 들 뿐, 마치 영상 속에 나오는 자신을 보는 것처럼 해강의 정신은 꿈속의 몸 안에 갇힌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곤 했다. 지금도 그런 순간이었다. 분명히 낯선 동네에, 낯선 골목길에 혼자 서 있는 자신.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누군지도 해강은 알 수 없었지만.

그나저나 여기는 어디일까. 보통 꿈속에서 표지판이나 간판을 보면 뒤죽박죽 엉킨 글자들만 꿈틀댈 뿐, 실제 지명이나 이름은 적혀있는 경우가 드물었기에 해강은 대충 주변 풍경만 둘러보았다. 앞에는 대로변이 보였고 맞은편 길에는 아파트 단지가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집 주변은 아닌데. 멀뚱거리며 길을 바라보던 해강의 눈앞에 한 소년이 지나쳐갔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저 애 얼굴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얼굴이 정면을 향하지 않고 거의 바닥을 보며 천천히 걷는, 손은 양쪽 점퍼 주머니에 넣은 채, 안에는 처음 보는 교복을 입은 소년은 길을 건너려는 듯 자리에 멈춰 섰다. 마침 해강의 시선이 닿는 길목이었다. 해강의 발은 그제야 떨어져 골목을 벗어났다. 뭔가 아는 얼굴을 만난 게 반가워 그 애한테 다가가려던 찰나,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아, 안녕?

방금, 분명, 눈이 마주쳤다. 아닌가? 그저 내 뒤에 있는 신호등을 바라본 걸까? 해강은 알쏭달쏭했지만, 개의치 않고 한 발짝 더 다가갔다. 소년의 눈은 자신을 향하고 있는 듯했지만, 어쩌면 해강을 통과해 그 너머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다.

-너, 누구야? 이름이 뭐야?

좀 더 목소리를 내어 물었지만, 이상하게 자신의 목소리는 투명한 막에 가려 허공으로 흩어지듯,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증발하고 말았다. 꿈이라 그런가. 답답한 기분에 해강은 아예 소년의 팔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순간.

빠아아아아앙----!!!!

끼이이이이이익---

쾅!!!!!

-꺄아아아아아아악!!

-어머, 세상에!! 누가 구급차 좀 불러요!!

-어떡해, 어떡해!

소년은 해강을 무심하게 지나쳐 길을 건넜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소년을 잡으려던 해강의 등으로 섬뜩한 기운이 스쳐 지나가고, 그 순간.

커다란 트럭이 난폭하게 소년을 들이받았다.

희뿌연한 형체로만 돌아다니던 주변 인파들이 점점 형체를 갖고 모여들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비명, 고함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해강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바로…

바로 앞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차에 치여서.

해강은 손을 떨면서 주변으로 모여드는 인간들을 두리번거렸다. 누군가가 고함을 지르고, 누군가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고, 또 다른 누군가는 멀찍이 떨어져 사진을 찍으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그 누구도 해강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해강은 그 순간 자신을 통과해 지나간 것이 소년을 친 트럭이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왜…왜….

충격에 굳어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해강의 시선이 쓰러진 소년의 몸에 가 닿았다. 소년의 머리는 어느덧 피 웅덩이에 잠겨 있었다.

해강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소년의 얼굴이 유독 낯익었던 이유.

항상 이 소년이 나오던 꿈을 꿨던 이유.

그리고 꿈의 끝이 어땠는지도.

소년은 언제나 해강의 꿈에서 죽고야 말았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꿈의 마지막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끝난다.

눈물이 고인 해강의 눈에, 피로 얼룩진 흰 이름표가 어른거렸다.

‘권 영 서’

그리고 그것이, 해강이 영서를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

숨을 급히 들이켜며 잠에서 깬 해강은 멍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권…영서.”

해강은 다시 한번 이름을 중얼거렸다. 손가락이 달싹거리며 허공에 이름 석 자를 그려보기도 했다. 권, 영, 서.

“…누구지, 대체.”

너는 대체 누굴까. 누구길래 내 꿈에 자꾸 나와서, 내 꿈속에서 죽고 마는 걸까. 해강은 저릿저릿한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자면서 저도 모르게 너무 힘을 주고 있었던지, 손등과 팔목까지 전부 저릿한 통증이 흐르고 있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가만히 손을 들여다보던 해강이 상체를 일으켰다. 잠깐 잠에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창밖은 벌써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분명 훤한 대낮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흐른 거지. 아직 묵직한 눈꺼풀을 비비며 해강은 멍하니 방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거실에서 흘러온 불빛이 방문 사이로 새어 들어와 해강의 침대 발치까지 좁은 길을 비추고 있었다. 인기척이 들리는 것을 보아하니 형이 다시 돌아온 모양이라고 짐작한 해강은 비틀거리며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형…?”

거실에 있는 사람은 재희가 맞았다.

그러나 재희의 모습은 평소의 그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는 마치…

마치 울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해강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해강은 단연코, 그동안 재희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그가 눈물을 흘리거나 슬퍼하는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재희는 그런 얼굴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인 양 굴었다. 언제나 무표정하거나 아니면 짜증이 난 얼굴, 가끔씩 오만하게 웃거나 한심하다는 듯 눈을 내리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재희의 얼굴에,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재희는 반쯤 불이 꺼진 거실의 발코니 유리창 앞에 놓인 흔들의자에 앉아있었다. 그 의자는 재희가 미국에서 살 때부터 항상 창 앞에 두고 애용하던 의자였다. 낡기는 했지만 관리가 잘 된 가죽이 은은한 광택을 내뿜고, 푹신한 쿠션과 짙은 갈색의 팔걸이를 가진 의자였다. 언젠가 지나가듯 들은 바로는 재희도 누군가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으나, 해강은 집에 항상 있는 가구 따위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타입이 아니었으므로 정확히 누구의 의자였던 건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실제로도 재희가 그 의자에 크게 애착은 가진 것 같지는 않았고, 그저 오래전부터 집에서 사용하던 크고 편한 흔들의자였기에 때때로 그 의자에 기대 잠에 들곤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한국에 들어올 때 그 의자를 한국 집에 옮기기로 결정한 것은 해강으로선 약간 뜻밖의 일이었다. 왜 굳이 그걸? 더 좋고 비싼 의자도 널렸는데. 그러나 재희는 언제나 해강의 이해 범주를 약간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그곳에 있는 배경같이 묵묵히 놓여있는 그 의자에 푹 파묻힌 채, 재희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건지 그는 아직 외출복을 입은 채였다. 재희는 방에서 나온 해강을 분명 눈치챘을 것이 분명한데도, 그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저 모로 앉아 양 무릎을 한 팔로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괸 손에 가려진 입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재희의 살짝 가로로 긴 눈을 타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뚝뚝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형…”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해강은 주춤주춤 걸어 거실로 나갔다. 여전히 재희는 석상처럼 꼿꼿하게 굳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사람 같았다. 해강은 가슴 한가운데가 쑥, 하고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발걸음은 재희가 앉은 의자 앞에 다다라 있었다.

“형.”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언제까지고 온몸의 수분을 눈물로 쏟아 내버릴 것처럼 울던 재희가, 살짝 메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늘게 떨리기까지 하는 그 약한 목소리에 해강은 오른손을 달싹거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마른 재희의 어깨가 더 작아 보였다.

“언제야 끝나는 걸까.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어쩌면 죽을 때까지?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살지 않고 더 살 수가 있기는 한 걸까? 내가… 평범하게 살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

“…….”

“있지… 나도 때로는… 정말 가끔은… 무서워.”

해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뻗어, 당장에라도 재희의 어깨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아니, 안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냥 형이 너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저 어깨가 너무 외로워 보여서… 해강은 여전히 재희의 눈에서 쉼 없이 눈물이 흐르는 걸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너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점점 더 자주 들어. 널 보면… 널 보면, 내가… 내 모든 것을 의심하게 돼.”

알 수 없는 말을 속삭이듯 털어놓으며, 재희는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재희의 우는 얼굴은 기묘했다. 보통 사람들이 우는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거나, 소리를 내거나, 숨을 헐떡이거나 하지 않고, 그저 재희는 가만히, 마치 도자기로 만든 얼굴의 안쪽에서 누군가 몰래 수도꼭지를 열어놓은 것처럼 가만히 눈물만 펑펑 쏟아냈다. 살짝 빨개진 눈과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아니었다면 그의 얼굴은 우는 사람의 얼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화가 난 사람의 얼굴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해강은 재희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기이한 아름다움. 아름답다고 칭할 수도, 칭해서도 안 되는 상황이었으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해강은 그런 기분을 느꼈다.

어쩌면 그것은, 주해강이라는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날 것의 욕망을 고스란히 느껴본 순간이기도 했다.

…이 모든 일에 의미가 있는 걸까.

의미가 있다면 내가 하는 일에도 그런 것이 있는 걸까. 내가 하는, 이, 모든, 것들에도.

…너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

부드러운 잔디가 깔린 성당의 넓은 뒷마당에서,

바람을 따라 가볍게 나부끼던 흰 이불보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밝게 웃으면서 깡충깡충 뛰어다니던 어리던 너, 너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던 그 수녀의 눈,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이…

…어쩌면.

정말 어쩌면.

너만 없으면 모든 게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할머니도,

이모도,

누나들도.

끝날 것 같지 않던 이 모든 지긋지긋한 일들을.

너만 없애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

…하지만 말이야, 해강아.

어쩌면 정말로 방해가 되는 쪽은 네가 아니라 나였는지도 몰라.

네가 아니라,

내가 없어지면 끝나는 걸지도.

…다른 사람들이, 가족들이 내게 방해가 됐던 것처럼, 너도 나에게 그렇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아니야.

…나는 네가 필요해.

주해강.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