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중퇴마비록-140화 (140/166)

140화

강림 도령.

그의 출신은 불분명하나, 어디에서 왔는지는 몰라도 어떤 자인지는 천상도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 인사.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주 오래전 천상도에, 강보에 싸인 아기가 버려져 있었고, 이름 없는 한 도사가 그 아기를 주워 기른 것이 지금의 강림 도령이라 불리는 사내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도 그의 출신에 대해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았으므로, 이 이야기는 이쯤에 그만두자.

중요한 것은.

그가 현재 천상도에서 수백 년째 근신 중이며,

바로 조금 전.

그의 형벌이 더욱 가중되었다는 것이다.

“……도령님.”

“…….”

“도령님!”

“아잇 씨, 깜짝이야! 인기척 좀 내고 다니거라!”

“우와아아, 소문이 사실이었네요?! 천하의 강림 도령이 꼬맹이가 되다니! 이거 저 혼자는 못 볼 구경거리인데요?!”

“저리 안 가? 선재 너 이 녀석, 관음보살님 불러온 거 너지? 치사하게 일러바치기나 하고, 그깟 복숭아가 뭐라고.”

“그깟 복숭아요? 지금 그깟 복숭아라고 하셨습니까? 천상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귀한 영약이요, 무릉의 특산물인 천도를? 지금 그깟?!”

선재동자는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난다는 듯, 발을 쿵쿵 구르며 분풀이를 했다. 강림은 콧방귀를 뀌며 다시 돌아누웠다.

강림.

????세.

천상도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문제아나 다름없던 그는, 오래전 그를 길러준 도사가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나서 염라대왕의 눈에 든 후, 지옥에서 저승차사들의 대장 직을 맡아 일하고 있었다. 들리는 바로는, 아주 옛날에는 인간의 수가 적고 인간 외의 자연의 영혼, 즉 동물이나 식물, 또는 자연에서 생겨난 혼백들이 많아 인간의 혼과 자연의 혼의 수가 비슷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 어떤 종족보다도 빠른 속도로 개체 수를 늘려갔고, 눈 깜짝할 새에ㅡ물론 언제나 느려빠진 천인들의 기준에서나 눈 깜짝할 새라고 은령은 비웃곤 했다ㅡ지옥은 무질서와 혼란에 빠졌다. 지옥도의 원래 모습은 지금과 같지 않았고, 현재보다도 더 무질서하고 개판 오 분전이었던 과거의 지옥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 바로잡은 것이 바로 저승 시왕十王들과 보살들이었다. 그러나 관리해야 할 영혼과 영역의 범위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들에게도 거느려야 할 수하들이 많아졌고, 그런 일명 ‘관리직’ 중 비교적 빠른 순서로 저승차사의 대장을 맡게 된 것이 바로 강림 도령이었다. 원래 이름은 강림이 아니고, 심지어 도령도 아니었다지만, 알 게 뭔가. 그저 매일같이 불어나는 망자들 때문에 과로사하기 직전인ㅡ저승에서 유행하는 농담이었으나, 은령은 이 또한 싸늘하게 비웃곤 했다ㅡ 염라는 자신의 수족이 되어줄 부하들을 여럿 뽑았던 것이다. 그중 강림 도령은 염라마저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가장 제멋대로인 이였다. 그가 자신의 맡은 바 일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을 너무 잘 해서 문제였다. 점점 강림의 권력과 손이 닿는 범위가 커지자, 염라는 방심한 나머지 그에게 자신의 권능 중 대부분을 물려주었고, 사실상 망자에게 재판을 내리는 일 외에는 대부분 강림의 통솔 하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천방지축이던 어릴 때와 달리 얌전하게 저승차사들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강림은 어느 날, 그로서는 전혀 하지 않을 법한 짓을 저지르고 만다.

“네 이놈! 강림 도령,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아이, 영감이 진짜 목소리만 커가지고. 소리 안 질러도 다 들립니다.”

“뭐, 뭐야? 이런 고오얀…!”

“전 아무 할 말도 없습니다. 주시는 벌 달게 받을 테니, 알아서 처분하십쇼. 날 구워서 삶든 가죽을 벗기든, 다른 시왕들 관할로 보내 혀를 뽑든 발바닥을 인두로 지지든. 대신…”

강림은 예의 그, 여유롭고 살짝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양손을 포박당한 채 염라대왕에게 고하는 것이다.

“제가 형벌을 받는 동안 아무도 제 일을 대신할 수 없을 테니, 앞으로 지옥 꼴도 꽤 볼 만해지겠군요.”

그때 염라대왕이 참지 못하고 내지른 고함을 들었다면, 아마 그의 말대로 후의 지옥도의 모습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도령님, 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그런데 왜 너는 집에 안 가고 자꾸 여기 와서 알짱거리냐?”

“…집에 가면… 상제님께 천도 밭에 대해…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다시 시무룩해진 동자의 안색에 강림은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 앉았다.

“알았다, 알았어! 복숭아 먹은 거 미안하게 됐다, 알겠냐? 상제님께도 내가 말씀드릴 테니까, 집에 가, 임마!”

“…정말이죠?”

“속고만 살았나.”

“…내 천도들이…”

“아! 거 참, 알겠다고!”

강림은 투덜거리며 저만치 밀어두었던 앉은뱅이책상을 끌어다 앞에 놓았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서 돌연 먹과 벼루, 흰 종이 한 뭉치와 잘 다듬어진 붓 한 자루가 튀어나와 저마다 달그락거리며 책상 위에 자리를 잡았다. 강림이 검지를 까닥거리자 붓이 홀연히 일어나 꼿꼿하게 서더니, 먹이 벼루에 저절로 갈리고, 종이가 반듯하게 펴졌다.

“대신 서찰을 보낼 테니까, 그만 징징대. 너는 혼날 일 없을 거니까 걱정 말고.”

“……정말, 언제 봐도 당신의 도력은 보통 도사님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네요.”

동자의 감탄에도 강림은 시큰둥한 얼굴로 손가락을 공중에 대고 휙 그었다. 춤을 추듯 붓이 허공을 움직이며 종이 위에 글씨를 써 내려갔고, 동자는 신기한 얼굴로 얼굴을 바짝 대고 붓과 먹이 저절로 움직이고 갈리는 모습을 구경했다.

“아까 궁금하다고 한 건 뭐냐?”

“…왜 굳이 거짓말을 하시고 대신 벌을 받으신 겁니까?”

“뭐?”

동자는 선하고 올곧은 눈으로 도령을 빤히 쳐다보았다. 강림이 천상도에서 크고 작은 사고를 칠수록 그의 근신 기간은 더욱 길어져, 결국 수백 년에 달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이번 천도 사건처럼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은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명백한 고의에 대한 괘씸죄까지 더해져 결국 관음보살의 언질대로 염라는 강림에게서 아주 중요한 것을 압수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진작에 그러지 않았던 것이 이상할 정도였지만.

‘죄인 강림의 근신은 앞으로 별다른 지시가 없는 한 무기한으로 선고되었음을 알린다. 또한, 자네에게 줬던 나의 권능 중 일부를 영원히 금지할 것이며, 나의 허락이 있기 전까지 죄인 강림은 본 모습을 잃은 채 근신한 것을 명한다.’

염라의 서슬 퍼런 선고와 함께 강림은 정신을 잃었고, 그 뒤로 눈을 떠보니 다시 천상도에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염라의 말이 농담은 아니었는지, 강림은 스스로도 자신의 힘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몸은 어찌나 불편한지. 다리도 팔도 짧고, 그저 인간의 어린아이와 다를 바가 없는, 시간이 지나면 배고프고 지치는 아주 쓸모없는 몸뚱어리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잠도 꼬박꼬박 자야 하고. 불편해 죽겠단 말이지. 어차피 천상도에 있는 한 다치거나 배를 곯을 일은 없을 터이나, 그 말은 즉 강림 스스로 천상도 밖으로 나갈 수 없게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런 강림에게, 왜 거짓말을 하고 대신 벌을 받았냐고 묻다니. 아무도 그에게 그런 것은 물어본 적이 없었다. 강림은 입을 다물었고, 그와 동시에 이리저리 움직이던 붓과 벼루도 얌전히 몸을 떨어트렸다.

“…천상도에서는 그 누구도 배를 고파하지 않는 건, 세 살 먹은 아기도 아는 상식입니다. 그 많던 천도를 도령님 혼자 드셨을 리는 없잖습니까.”

선재동자의 맑은 눈을 피하던 강림은 끙, 소리를 내며 팔짱을 낀 채 몸을 돌렸다. 벽에 반쯤 기댄 채 시선을 피하는 그를 보며 동자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유야 어찌 되었건 천도를 훔친 죄는 예로부터 아주 엄중히 다스렸다. 그러니 염라도 이번에는 강림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으리라. 게다가 하필이면 그 관음보살님이 천상도에 들르셨을 때 그런 일을 저지르시다니… 동자는 혀를 차며 마루 밑으로 내려가 신을 신었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천도의 향기가 문득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 것 같았지만, 동자는 고개를 내젓고는 마당을 가로질러 강림의 거처를 떠났다.

강림은 동자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마자 다시 마루에 철푸덕 드러누웠다. 천상도의 하늘은 인간도나 지옥도의 하늘과는 다르게 언제나 푸르고 드높았다. 이곳에는 비도 눈도 내리지 않지. 폭풍우나 거센 바람이 불지도 않고, 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아. 그저 언제나, 똑같은 시간이 흐를 뿐.

강림은 팔베개를 하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소매 안에 넣어두었던 천도의 씨앗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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