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부른 거지?
이곳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인데.
이도는 잠시 망설였다.
어깨에 멘 두레박을 잠시 바닥에 내려놓은 이도는 천천히 우물로 다가갔다. 조금 전 새끼줄에 두레박을 매달아 물을 길어 올릴 때 들렸던 참방거리는 소리같이, 뭔가가 수면에 닿은 듯한 소리가 났다. 나뭇잎으로는 이런… 소리가 나지 않을 텐데. 돌이라도… 떨어졌나. 이도는 그늘진 우물로 주춤 주춤 다가갔다. 머릿속으로는 당장 그 소리에 신경을 끄고 물통이나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도의 발은 저도 모르게 계속해서, 우물로 다가가고 있었다. 차갑고 축축한 우물 벽에 손을 대고 이도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이끼가 낀 서늘한 느낌의 돌담, 항상 물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이도는 날이 더울 때면 우물에 몸을 대며 열기를 식힌 적도 있을 정도로, 우물을 쌓아 올린 돌들은 큼직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침을 삼킨 후 이도는 까치발을 들어 우물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 이게 무슨…”
우물 안에서 들려오던 참방이는 소리의 정체는 놀랍게도 사람이었다. 어째서 우물 안에 사람이 빠져 있는 거지? 아까 물을 길어 올릴 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어린 소년의 머리로는 그런 논리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우물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도는 충분히 당황하고 말았던 것이다. 강이나 시냇물에 사람이 빠진 것을 본 적은 있어도 우물 안에 사람이? 그럼 어떡해야 하지? 얼른 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소리를 치거나 구해달라고 하지 않는 거지?
“…저, 저기요! 저기… 괜찮으십니까?”
까치발을 더 높이 하며 이도가 외치자, 우물 안쪽 밑바닥, 정말 대체 어떻게 들어간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깊은 곳에서 첨벙대던 누군가가,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혹시 발을 헛디뎌서 우물 안에 빠진 겁니까? 기다려요,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 가지도 않을 그 사람이 뭔가 입을 벙긋거리는 게 보였다. 그러나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에 그의 목소리는 이도에게까지 닿지 않았다. 심지어 빛이 한 줄기도 닿지 않는 각도여서 사람이라는 인식만 될 뿐, 나이대도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설마 너무 오래 물에 빠져 있어서 목소리를 낼 힘도 없는 걸까? 이도는 갑작스레 마음이 급해졌다. 어쨌거나 사람이 물에 빠져 있다. 어서 빨리 구해야 해. 급해진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자 우물 위에 매인 새끼줄과 바닥에 고정된 낡은 말뚝이 보였다.
저 말뚝에 줄을 매서 저 사람한테 내려주면 되지 않을까?
이도는 우물 안에 빠진 사람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외친 뒤, 새끼줄의 매듭을 서둘러 풀어냈다. 줄을 끌어다 옆에 박힌 말뚝에 칭칭 동여맨 후, 물이 가득 차 있던 두레박의 물을 그냥 쏟아버린 뒤 줄 끝에 두레박을 다시 매달았다.
“이걸 잡고 올라오세요!”
물에 얼마나 빠져 있던 건지 그의 얼굴은 매우 창백했다. 흰 가면 같은 얼굴은 무표정해 보였고, 계속 입을 벙긋거리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수면 위로 퍼진 머리칼은 젖은 미역처럼 수면을 따라 일렁이고 있었다. 이도는 아예 우물 위로 몸을 걸친 뒤 두레박을 내렸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벼락같은 노성에 이도는 하마터면 손을 헛디뎌 중심을 잃을 뻔했다. 간신히 우물 가장자리에 날 서게 돋아난 돌을 잡아챈 이도의 손바닥이 살짝 찢어진 건지 뜨끈한 고통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목소리가 들린 곳을 돌아보자 우물가 입구에 영신이 화난 얼굴로 서 있었다.
아까 집으로 돌아간 거 아니었나? 왜 이런 곳에? 아니, 게다가 이 우물 터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외진 곳인데, 어떻게 찾아서 온…
“당장 이리 와!”
“…무, 무슨 짓입니까?!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잖습니까!”
“너야말로 뭐 하는 짓이야? 죽고 싶어서 작정했니?!”
영신은 거의 뛰듯이 걸어와 이도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순식간에 우물에서 떨어져 흙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이도가 짜증 난다는 얼굴로 영신을 올려다보았다.
“이봐요, 이 무슨 안하무인의…”
“쉿!”
“쉿…?”
영신이 손을 뻗어 이도의 입을 막았다. 어리둥절함과 혼란이 뒤섞인 눈으로 영신과 그녀의 손을 번갈아 보던 이도의 시야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
“…내가 신호하면, 그때부터 숨을 참아. 꼭 참고, 속으로 열까지만 세.”
영신은 낮에 만났던 영신과는 다른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언제나 방글방글 웃는 상이었던 소녀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밝고 경쾌하던 목소리도, 지금은 나지막하게 숨을 죽인 듯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다. 영신의 눈은 다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까 그 덤불 속에서 이도의 등 뒤를 말간 눈으로 올려다보았던 것처럼, 그렇게.
“……!”
그때, 우물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아까 전부터 이도의 신경을 잡아채던 그 물이 첨벙이는 소리와는 다른 소리였다. 영신과 이도는 잠시 숨을 죽이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스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