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더 이상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영신의 손이 자신의 뒷덜미를 다시 잡아챘다고 느낀 순간.
“네 이노오오오오옴-!!!!”
“…하…할머니…?!”
“할머니!”
“네 이놈, 이것이 감히 누구 안전이라고 발톱을 들이대는 게야!! 얌전히 뒷산에서 숨어 지내겠다고 빌 때는 언제고, 무고한 어린아이들을 해치려 드느냐!!”
호통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도의 할머니였다. 언제나 백발이 성성하고 삐쩍 말라 허리가 굽은 채 느릿느릿 다니던 노파는, 마치 삼국시대를 호령하던 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벼락같은 호통과 넘실넘실한 노기를 풍기며 우물 뒤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지팡이는 당장이라도 우물을 때려 부수기라도 할 것처럼 기세 등등해 보이기까지 했다.
“….할머니…”
거의 제자리에 주저앉은 이도의 눈앞까지 다가왔던 머리카락이, 마치 그대로 굳어진 석고상처럼 가만히 공중에 멈춰있었다. 영신 또한 잔뜩 겁먹은 얼굴로 우물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둘은 곧, 이 공포스러운 상황 속에 나타난 것이 다른 어른이 아닌 바로 이도의 할머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
이도가 가슴을 진정시키고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이도의 할머니가 ‘그것’을 다시 우물 안으로 집어넣은 후였다.
“이도야, 이 할미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느냐? 이 우물 터로 다니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녀는 짐짓 엄한 얼굴로 손자를 나무랐다. 평소의 농이 섞인 그녀 특유의 말투와는 정반대의, 진심으로 손자를 꾸중하는 목소리였다. 영신이 그들의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만신님, 너무 그러지 마세요. 이도가 알고서 그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