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건 처음 봤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무섭기는 했지만, 그 후에 할머님이…”
“영신아!!”
영신은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선옥이 거칠게 영신의 어깨를 붙잡아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토끼처럼 동그랗게 놀란 눈을 한 영신을 보면서, 선옥이 되물었다.
“어디서 무얼 해? 무얼 봤다고?”
“저…저는……”
“똑바로 말하렴. 뭘 봤다고?”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이런 일이 있을 수는… 어떻게……
…분명 이제는,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다 거짓말이었나?
다 그저, 돈을 뜯어내기 위한 수작이었나? 하지만 그때 영신의 병은 정말로 낫지 않았던가. 병을 떨쳐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건강해진 것을,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 않은가. 선옥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영신의 표정이 겁에 질리는 것을 보고서도, 선옥은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럴 리가 없어.
내 딸은…… 내 딸은 절대 안 돼.
그동안 나는 인간도에 일어나는 수많은 비현실적 사건 사고를 계속 지켜보았다.
그러던 중 한 소년을 만났고, 잠시나마 그와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그동안 내가 조사해왔던 사건들을 해결한 것이 그 소년이었고, 또한 그 사건들의 원흉이 그 소년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바로 조사의 방향을 틀어 그 소년에게서 알게 된 것들로 어느 정도는 체계적인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중간 장이 뜯어져 있다)
이하로 내가 기록한 것들을 일지로 남기며, 이 기록이 훗날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
1. 어둑시니
1) 특징
처음 목격담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다양하게 얽혀 있기는 하나, 현재와 같이 구체적인 모습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은 조선 후기. 게다가 그 무렵부터 단순 목격담이 아닌 실체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기 시작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의 패턴으로는, 언젠가부터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구석에서 조금씩 자라난다고 한다. 어둡고 그림자가 진 곳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처음에는 구분하기 어려우나, 그 어두운 곳을 외면하고 그것에 대해 무서워하며 거리를 둘수록 그것의 힘이 커진다고. 실제로 수십 번이 넘는 목격 기록 및 그것에게 피습당한 사례가 기록되어 있으며, 활동 범위는 한반도 전체에 걸쳐서 나타났다고 한다. 형체가 없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사람이 가장 무서워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단순히 어두운 형체로 나타날 때도 있고, 더러는 얼굴이 까맣고 손이 없는 선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도 하며, 짐승의 형태를 띠고 있을 때도 있다고 한다. 먹잇감의 대상을 정해 그 대상이 자신을 인식하고도 계속 무서워하고 외면하기 시작하면 그 공포를 먹고 몸집을 불린다고 한다. 결국 그것의 몸집이 충분히 커지면 먹잇감이 된 사람을 집어삼키고 그 사람의 행세를 따라 한다고 한다.
2) 퇴치법
사람들의 공포와 두려움을 먹고 자라는 귀신이므로 해결 방법 또한 어렵지 않다. 자신을 두렵게 하는 것을 똑바로 마주하고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힘을 키울 수 없는 법. 만약 어둑시니의 먹잇감이 되었다면, 그것이 자신의 몸집보다 더 커지기 전에 그것을 마주하고 진심을 담아 ‘나는 당신이 무섭지 않습니다’라고 세 번 말해야 한다. 정말로 두려움을 떨쳐냈다면 어둑시니는 자연적으로 소멸한다.
2. 무덤 각시
1) 특징
무덤 각시의 처음 등장 시기는 알 수 없다. 그것을 부르는 이름도 정확히 정해진 바는 없으며, 주로 무덤 주변에서 많이 목격되어 편의상 무덤 각시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고 한다. 생김새는 평범한 처녀귀신으로 보일 때가 많은데 직접적인 모습을 보인 적은 그다지 없다고 한다. 특히 한 명의 사람을 숙주로 정해 그 사람에게 들러붙어 기생하며 힘을 키운다. 특이한 점은 스스로가 먼저 원한을 가지거나 누군가를 공격하지 않고, 큰 맥이 흐르거나 터의 기운이 좋지 않은 곳에 큰 규모의 무덤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고 한다. 일례로 어느 지역에 위치한 한 왕비의 묘에서 무덤 각시가 출몰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무덤 각시는 무덤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돌기만 하다가, 강렬할 욕망과 감정을 가진 인간이 무덤으로 다가와 ‘의식’을 치르면 그 인간에게 자연히 들러붙는다고 한다. 여기서 그 의식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 강렬한 감정을 가진 인간이 닭의 피를 무덤에 뿌리고 자신의 양 손목에 바른다. 이때 시작하는 시각은 축시가 넘어야 한다.
둘째, 제자리에서 뛰거나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이때 춤이나 노래는 종류에 상관이 없으나, 보통 인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택하여 스스로 흥이 나게끔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사례에서는 노래나 춤이 아닌 그저 울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는 무덤 각시를 깨우기 위한 절차.
셋째, 자신이 강렬한 감정을 가진 대상, 예를 들어 무척 사랑하거나, 증오하는 사람의 사진 또는 초상화를 무덤과 자신의 사이에 두고 원하는 것을 외친다. 그러면 무덤 각시가 이를 이루어준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종종 이런 의식을 치르고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한 가지 재미난 것은 이 이야기가 많이 와전되어 현재로는 젊은 여성들이 짝사랑을 이루기 위한 팁으로서 퍼져 있다는 것이다. 현대는 옛날과 달리 그 정도로 큰 규모의 묘, 즉 왕릉에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을뿐더러, 그저 미신으로 치부되는 분위기 때문에 옛날만큼 무덤 각시를 불러내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제물을 바치고 강령 의식을 행한다는 점에서 여타 다른 귀신들과는 심각성이 다른 케이스다. 게다가 무덤 각시는 의식을 행한 사람의 감정을 매개로 상대 인간의 목숨을 아예 가져가며, 결국 의식을 행한 이도 미쳐버리고 만다.
2) 퇴치법
의식을 치르고 나서 무덤 각시로부터 대상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는 오로지 무덤 각시를 소멸시켜야만 하는 것으로, 먼저 도력이 큰 자가 반대 주술을 행하여야 한다.
첫째, 무덤 각시의 먹잇감이 된 인간 대신 가짜 제물을 바쳐야 한다. 살아있는 제물일수록 효과가 좋지만 주술을 행하는 이의 도력의 크기에 따라 단순한 인형으로도 대체할 수 있다.
둘째, 처음 의식을 행했을 때와 같은 시간대에 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새벽닭이 울기 전에 모든 것이 끝나야 한다. 이 말은 즉, 새벽닭이 울 때까지는 절대 끝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셋째, 무덤 각시의 힘은 천차만별인데, 처음 의식을 치른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깊고 강렬한 지에 따라 나뉜다. 강해진 무덤 각시는 섣불리 퇴치하려 들다가는 도리어 화를 입을 수 있으며, 자신 또한 무덤에 평생 갇히게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모든 것이 준비가 되었다면 먹잇감이 된 인간을 무덤 앞에 앉히고, 의식이 끝날 때까지 눈을 가리고 숨소리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한다. 이는 대상의 냄새로 무덤 각시를 끌어내는 절차다.
넷째, 준비한 가짜 제물에 무덤 각시를 봉인한다. 성공적으로 제물 안에 무덤 각시가 봉인되었다면 그 제물을 통째로 봉해 더 깊은 땅속에 묻어야 한다. 이때 봉인된 지 얼마 안 된 제물에 흠집을 내거나 파괴해서는 안 된다.
*주의 사항
대상 인간은 삼불원을 지켜야 한다. 삼불원이란 말하지도 보지도 듣지도 말아야 하는 것으로, 눈을 가리고 아무 소리도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새벽닭이 울기 전까지 들리는 모든 것을 믿지 말아야 한다. 설령 그것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일지라도.
3. 장산범
1) 특징
통상적으로 목격되는 모습은 희고 윤기나는 털과 네 발로 걷는 짐승의 모습. 주로 호랑이나 다른 짐승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주로 부산 장산 지역에서 많이 목격되어 장산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장산범은 주요 특징은 인간의 목소리를 따라 하고, 더 많은 인간을 먹을수록 특정한 인간을 똑같이 흉내 내어 모습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조선 중기부터 후기에 걸쳐 부산 및 강원도, 함경도 등 산이 많은 지역에서 주로 목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사람이 많은 지역에서는 모습을 별로 보이지 않으며, 산골에서는 장산범을 목격했다는 사례가 꽤 많았다. 이는 최근 현대에 들어서도 193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10년에 한 번꼴로 목격담이 등장하고 있다. 몸집은 보통 성인의 키에서부터 2미터가 넘는 크기라고도 한다. 그리고 길고 흰 털이 온몸을 감싸고 있으며 얼굴은 사람의 형태와 비슷한데, 사람 목소리 말고도 물이 흐르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등을 따라 해 여행자를 꾀어내 잡아먹는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장산범은 다른 보통의 귀신들과는 달리 지능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어서인지 그와 대화를 나눴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장산범이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목소리와 말투를 따라 하면서 그들을 자신의 둥지로 홀리는 것뿐이다.
2) 퇴치법
장산범은 안타깝게도 목격담은 많으나 이를 퇴치했다는 기록은 거의 남겨져 있지 않다. 많은 사상자와 실종자를 낸 사례들이지만 실제로 장산범을 물리쳤다는 사례는 없으며, 그저 쫓아내는 것이 전부.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절대로 혼자서 장산범과 대적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다섯 명 이상의 무리를 만들어야 하며, 멀리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더 낫다. 그러나 칼날이나 쇠붙이로 범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는 없다. 만약 장산범이 머무르는 둥지를 발견한다면 그곳을 최대한 빨리 없애버리고 불을 지른 후 다 타고 남은 것들에 제를 지내주어야 한다. 자신의 둥지가 없어지면 장산범은 거처를 옮기며 돌아다니기 때문에 범을 직접 상대하는 것보다 그것이 지내는 둥지를 없애는 편이 낫다.
4. 우주희
1) 특징
아주 특이한 케이스이다. 사람 이름을 붙인 이유는 그것의 진짜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귀신에 대해서는 그동안 그 어떤 비슷한 기록도 없었으며, 올해 처음 목격담을 듣게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새로운 귀신(혹은 그저 괴담일 뿐이라도)이 생겨나는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이 귀신은 매우 위험하고 그 질이 악해서 섣불리 대항하려 들지 않는 것이 낫다. 목격담에 의하면 우주희는 평범한 인간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꿈속에서 그것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꿈속에서 그것의 모습을 보았다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그것이 대상을 정하는 것에는 큰 기준이 없으나, 짧은 내 식견으로 보았을 때 자신 또래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도 우주희와 같은 나이의 고등학생이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우주희는 생전 어린 나이부터 큰 병을 앓았는데, 사망 전 3년간은 거의 혼수상태에 빠져 지냈다고 한다. 우주희가 사망 후 한 소년이 그녀를 성불시켰다고는 하나 최근 들어 다른 병원에서 같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대거 발생했다고 한다. 아직 연구 중이며 무엇 하나 확실히 정해진 것이 없으므로 충분한 시간과 준비 절차를 가진 뒤 접근 요망. 꿈에 빠진 이는 며칠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다시는 깨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현실에서는 그녀를 볼 수 없고 꿈에 빠진 후 볼 수 있으므로 이렇다 할 해결책은 아직 없다.
3) 퇴치법
(밑에 무언가 메모를 했다가 볼펜으로 직직 그어 지워진 흔적이 있다)
퇴치법 없음.
(찢어진 흔적)
(찢어진 흔적)
(찢어진 흔적)
권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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