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얼마를 주면 되지?”
“뭐, 큰 거 하나 정도면……”
백성들을 돌아보기 위해 처음으로 변장을 하고 호위병들과 궁 밖을 나선 날이었다. 가장 가까운 주막 구석 자리에 앉아 대강 국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오며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차였다. 주막은 매우 시끌벅적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 갔다. 노래를 하는 이, 그림을 그리는 이, 글을 쓰는 이, 아무것도 없이 그저 입으로 이야기를 해주며 먹고사는 이들도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탁주 한 사발을 마시더니, 아주 오래전부터 요 옆 마을에 돌던 무시무시한 소문을 이야기해 주겠다며 운을 띄운 것이다. 모인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 얘기의 처음 부분을 듣자마자 자신들도 아는 얘기라며, 너무 진부하다고 야유했다. 그래서 그 이야기꾼은 머쓱한 얼굴로 남은 탁주를 마시며 듣고자 하는 이가 없으니 자신도 더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입을 닫았다.
그가 주막을 나서는 것을 지켜본 문휘는 주모에게 값을 치르고 일행과 함께 그의 뒤를 밟았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어정어정 걸어가는 그를 따라가다가, 이야기꾼이 한 외진 골목길로 들어섰을 때 문휘의 호위병들이 그 남자들 순식간에 감싸고 섰다.
“아까 주막에서 했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자세히 이야기해 보게.”
문휘가 턱짓하자 옆에 서 있던 무사 중 한 명이 소맷부리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 안에서 돈 꾸러미를 들어 이야기꾼에게 건네자 그는 술이 깬 얼굴로 어리둥절하게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가 의미한 ‘큰 거 하나’라는 건 그저 엽전 하나를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또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눈앞의 수상한 무사들과, 그 사이의 수상할 정도로 곱고 부드러운 얼굴에 귀한 옷을 입은, 그러나 어딘가 본능적으로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는 기분이 드는 남자를 번갈아 본 이야기꾼은 공손히 손을 모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는 금방 끝났다.
애초에 물증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오래전 있었던 일에 대해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살을 붙여 소문으로 만든 이야기였다. 그러나 문휘는 이미 이야기가 끝날 때쯤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제야 자신이 그동안 애타게 찾던 것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
“말도 안 되는 뜬소문입니다.”
영신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문휘는 웃지 않았다.
“그러니까, 저하의 말씀은, 제가 그 소년소녀들이 단체로 사라지게 만든 원인이다, 이 말씀이신 겁니까?”
“자네가 원하지 않았던 일이라도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다고 볼 수 있지.”
“아무래도 세자 저하께서는 궁 안에서만 지내시다 보니 세상의 이치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소녀가 한 말씀 드리자면.”
영신은 웃는 얼굴로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누가 볼 수도 없는 곳에서 그렇게 특정 대상의 많은 아이들을 누가, 무슨 수로, 왜 데려간다는 것입니까?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 정말로 그런 아이들을 데려간 나쁜 작자들이 있다고 칩시다. 대체 왜요? 그리고 그 많은 아이들을 흔적도 없이, 어디로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나?”
“네.”
영신의 단호한 대답에 문휘는 골똘한 표정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분명 뭔가 반박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조용한 모습에 영신은 조금 당황해 그를 흘긋 살펴보았다. 잠시 뒤 입을 연 그의 말을 상당히 뜻밖의 이야기였다.
“효녀 심청의 이야기를 아는가?”
“……모를 리가 있습니까.”
어려서부터 전해 들어오던 효에 관한 구전을 모를 이가 있겠는가. 시작은 그저 누군가가 지어낸 소설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어린아이들을 정말로 심청이 실제로 존재하던 사람인 줄로만 알고 안타까워하며 감정이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신은 이제 그런 이야기를 그대로 믿기에는 나이를 먹었기에, 난데없이 세자가 웬 효녀 이야기를 꺼내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어쩌면 심청 같은 자가 자신의 가족을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도 희생해서 이런 일을 벌인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지 않습니까.”
“이야기 속의 효녀는 눈먼 아버지 심학규를 위해 공양미를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몸까지 인당수에 던져 가며 희생했다고 하지 않나.”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의 영신을 건너다보며, 문휘는 지긋이 웃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거지. 그러니까, 자신의 하나뿐인 자식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한 몸 바친 부모의 이야기라면 어떨까.”
영신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바로 곧 태연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긴 했지만, 그 찰나에 스쳐 지나간 미묘한 변화를 문휘는 놓치지 않았다.
“인신 공양이란 것에 대해 들어보았나?”
“…인신…공양이라면……”
“내가 어렸을 때, 우습게도 어려운 서책들은 읽을 수 없어 유명한 고전 소설이나 우화, 민담집 같은 것들을 읽곤 했었네. 그때 내게 글을 가르쳐주던 대신 한 명이 그런 얘기를 해주었지. 그런 고전 민담 중에서는 실제 있었던 일이나, 아니면 실제로 듣는 이들에게 주의를 주게 하려고 만든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고 말일세. 어른뿐 아니라 어린아이들도 들을 수 있게끔 이야기의 흐름이나 요소를 고친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의 예로 심청의 이야기를 해주셨지. 여기서 공양미는 지금으로서는 쌀을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는 가설도 있었다고 하더군. 당연히 제물로 인간을 공양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값을 치러야 하니, 그걸 삼백 석이나 되는 쌀로 바꿔서 구전시킨 것이라는 말일세.”
영신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문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물론 그저 옛날 가설일 뿐이고,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애초에 이치에 맞지 않는 일 아닌가. 인간을 바친다고 해서 봉사가 눈을 뜨게 될 리가 없으니.”
“…저도…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하나의 가설일세. 우리가 흔히 이치에 맞지 않다, 도리가 아니다, 하는 일들은, 다른 상황에서 보면 전혀 쓸모없는 소리고 오히려 이치에 맞지 않는 것들이 이치일 때가 있다고 말이네. 원래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분수를 지키고 도리에 맞게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언제든지 자신의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면 그 반대의 일도 거리낌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존재니까.”
“……”
잠시 문 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산들바람 같이 가벼운 바람이 마치 문을 두드리기라도 하듯 얇은 문을 흔들고 사라졌다. 둘은 그대로 침묵했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역시 문휘였다.
“만약… 만약에, 그런 자들이 있다고 해보겠네. 하나뿐인 자식을 낳았는데, 그 자식이 몹쓸 병을 얻어 생사의 기로에 선 거지. 아니면 심학규처럼 정말 눈이 멀게 되었을 수도 있고. 어쨌든… 그들은 자식을 위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는 자들이었네. 돈이든 사람이든, 자식의 병을 낫게 할 수만 있다면 무슨 방법이든지 다 시도했겠지. 그렇지만 자식의 병은 낫지 않았고, 그러던 중 그들은 어떤 방법을 한 가지 알게 된 거야. 척 들었을 때는 말도 안 되고, 인간으로서의 도리도, 이치에도 맞지 않는 일. 인간이 어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나 싶은, 그런 일. 하지만 절박한 부모에게 그건 마지막 동아줄이나 다름없었겠지.”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영신은 결국 그의 말을 끊고 버럭 화를 냈다. 남들이 본다면 당장 그녀의 모가지가 날아갈 것이라 예상했겠지만, 오히려 방 안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문휘와 영신만이 있었다. 그리고 문휘는 절대로 영신을 죽이지 않을 사람이었다. 문휘의 입은 어느덧 웃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서슬 퍼런 눈이, 눈앞의 영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딸들은 어찌 되어도 좋았던 것이겠지.”
“…….”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더 가르쳐 주지. 사라진 아이들 중 몇몇은 남자아이들이 있었다고 하지? 조사를 해보니, 그 남자아이들은 혼자 있다가 사라진 게 아니었네. 다른 여자아이들, 그러니까 네 살에서 열 살 사이의 여자아이들은 전부 혼자 있다가 사라졌지만, 사라진 남자아이들은 모두 사라진 자신의 누이들, 그러니까 그 여자아이들과 같이 있었다고 했네. 추측하자면 여아들을 데려간 작자들이, 자신을 목격한 남자 형제들도 같이 데려갔다는 거지. 왜일까? 필요한 것은 그 나이 대의 어린 여자아이였는데. 왜 굳이 번거롭게 남자아이까지 같이 데려간 걸까?”
영신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리에 앉게.”
“더는 들어주지 못하겠습니다! 대체 왜 저희 집까지 찾아오셔서, 이렇게 사람을 붙들고 이런 해괴한 얘기를 하시는지, 제 목이 잘리는 한이 있어도 더는 참지 못하겠습니다. 돌아가십시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제안을 하러 온 거야. 이야기 아직 안 끝났네. 나는 여러 번 말하게 하는 걸 싫어해.”
영신은 입술을 꾹 깨문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문휘는 그런 영신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 남자아이들까지 데려간 이유는, 분명 그 아이들이 자신들을 알아보기 때문이었겠지. 목격자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한 명이라도 자신들을 본 아이가 살아 나간다면, 분명 동네에 삽시간에 소문이 퍼질 테니까. 누가 짐작이라도 했겠나? 그렇게 어린아이들도 모두 알 정도로 유명한 집안의 사람들이, 자신의 딸 한 명을 살리기 위해 감히 그런 엄청난 일을 벌였다는걸.”
영신의 눈에서 기어코,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러나 영신은 우는 게 아니었다. 원치 않는 눈물이, 본능적으로 눈가에서 흘러 떨어질 뿐이었다. 오히려 영신은 빨개진 얼굴로 화를 참고 있었다. 문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앉게.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가 아주, 아주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