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침착한 일상이 돌아왔다. 윤조는 제게 제동을 걸어준 정한에게 감사했다. 그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지금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었을지, 저조차도 알 수 없었다.
개학을 맞이한 학교는 전과 달리 윤조에게 이렇다 할 흥미를 끌지 못했다. 좋은 성적의 실체를 알았기 때문인지, 제게는 필요 없는 고등학교 성적 때문인지는 몰라도 윤조는 학교 공부보다 내년에 있을 대학 시험 준비에 집중하게 되었다.
반 친구라고 여겼던 이들과의 교류도 줄이고, 선망하듯 바라본 선생님들에 대한 마음도 사그라져서 윤조는 형식상의 학교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침착한 윤조의 생활과 달리 두베에는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아 정한의 퇴근이 들쭉날쭉하게 되었다. 한정 없이 그를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윤조는 정한의 권유에 따라 집으로 곧장 하교했다. 그림자처럼 맴돌던 경호원을 옆에 끼고서.
“아이스크림 드실래요?”
경호원은 윤조의 말에 조용히 길가의 아이스크림 가게를 응시했다. 윤조는 냉큼 그의 팔을 잡아끌고 아이스크림 가게 앞으로 갔다.
“무슨 맛 드실래요?”
선글라스 너머의 눈이 방황하듯 화려한 쇼케이스를 훑어보았다. 윤조는 자신이 먹어 봤던 것을 골라 나름대로 추천을 하였는데, 경호원은 개중 가장 화려하고 과자도 많이 박힌 맛을 골랐다. 윤조는 경호원과 사이좋게 같은 맛을 손에 쥐고서 집으로 향했다.
경호원은 윤조가 집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정한이 퇴근할 때까지 집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격일 스케줄인 모양인지 번갈아서 나타나는 경호원에게 윤조는 공평하게 대했다. 덕분에 하굣길의 군것질은 꼭 이틀은 같은 메뉴였다.
슬슬 주변 가게의 군것질은 모두 섭렵했을 무렵의 일이다. 오늘도 윤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경호원과 함께 하교해 홀로 들어선 집에서 돌아오지 않을 인사를 했다.
“다녀왔습니다.”
어제 정한이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병원 근처에 있는 학교였기에 사이렌이 많이 울리는 날이면 으레 정한이 일이 많겠구나, 했다. 그렇게 예감한 날은 정한이 엄청나게 늦거나, 이번처럼 아예 돌아오지를 못했다. 늦어야 하루 이틀이라 버틸 만했지, 예전처럼 그의 속옷을 가져다주게 될 만큼 오래 못 보게 되면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각인 때문인지, 혹은 별 의미 없게 느껴지는 학교생활 때문인지는 몰라도 윤조는 요즘 정한을 볼 수 없는 시간을 잘 견디지 못했다. 아마 이런 일이 있으려고 그런 걸지도 모른다.
늦은 밤, 서재에서 공부 중이던 윤조는 시간을 확인하고 퍼뜩 고개를 들었다. 정한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괜히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바쁠 때면 연락 한 번 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딘가 섭섭해지는 마음이 들 찰나였다. 선득한 한기가 느껴지는 기분에 서재 입구를 바라보니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윤조는 테이블을 짚고 일어나 문을 닫으려 했다. 제아무리 가을이라고는 해도 집 안은 바깥 날씨를 모를 만큼 생활하기 좋은 온도를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는데, 이런 한기가 느껴지는 건 무언가 고장이 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고장 난 것이 제 몸이라는 것을 윤조는 아주 뒤늦게 알았다. 거실 소파에 걸터앉아 아려오는 살갗을 매만졌다. 몸살처럼 제 몸을 순식간에 덮친 것은 익히 아는 감각이었다. 잊은 듯이 살고 있었던 탓에 낯설게 느껴지는 그것은 히트 사이클이었다.
마지막으로 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이상하게 이르게 했던 때도 있었고, 그 후로 잠잠했으니 할 만한 시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문제는 약이 없다는 것이었다.
윤조는 정한이 약을 넣어 두는 서랍장을 뒤적이며 수면제를 찾았다. 억제제도 없고, 제 몸을 달래줄 남편도 없으니 남은 건 수면제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뭐야…?”
하고 많은 약병 중에 수면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애초에 수면제가 있기는 한 걸까. 윤조는 흐려지는 시야를 다잡으며 약병에 붙은 작은 글씨를 읽으려 애썼지만 계속해서 초점이 빗나가고 말았다. 차츰 숨이 가빠지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쿠당탕!
기어이 약병을 놓치며 비틀거린 몸을 서랍장에 기댔다. 안쪽에 빼곡한 약병이 흔들리며 서로 몸을 부딪쳤다. 윤조는 서랍장을 꽉 붙들고 앉을 곳을 찾아 겨우 몸을 돌렸다. 차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서든 그랬을 테다.
“사장… 님.”
정한이 온 것을 알게 된 순간 제 몸이 엄살을 부리듯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윤조는 바닥에 모로 누워 두 팔을 끌어안았다. 정한이 왔다는 사실에 제 모든 통제가 무너진 듯했다. 축축하게 젖어 가는 아래를 느끼며 숨을 몰아쉬었다. 진득하고 노골적인 페로몬이 코끝을 간질였다.
“윤조야.”
정한이 들어왔는지 자신을 찾는 소리가 났다. 윤조는 몸을 뒤척이며 정한을 불렀지만, 목소리가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순식간에 오른 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토록 단번에 열이 오른 적은 처음이었다.
“서윤조.”
대답이 없자 조금 초조해진 정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조는 손끝만 까딱이며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가오는 발소리. 활짝 열린 문 너머에 선 긴 그림자.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물속처럼 웅웅 울리게 들렸다.
윤조는 자신을 끌어안은 정한의 품에서 숨을 헐떡였다. 힛싸인가 봐요. 약이, 없어요. 사장님이 필요해요, 하는 말 따위를 계속해서 웅얼거렸다. 정한이 이제 괜찮다는 듯 땀에 젖은 머리칼을 넘겨주었다. 윤조는 정한의 손목에 코를 묻고 그의 냄새를 맡았다.
“하… 흐….”
기다렸던 향이었다. 윤조는 정한의 손목을 뜯어 먹을 것처럼 이를 박고 빨았다. 잠시 그런 윤조를 가늠하듯 살피던 정한이 윤조의 헐렁한 바지 사이로 손을 넣어 축축하게 젖은 속옷을 매만졌다.
“아아….”
젖은 속옷 위로 오가는 손가락을 따라 윤조는 제 몸을 붙이듯이 흔들어댔다. 윤조는 정한의 손목을 빨다, 그것마저 모자라 그의 목을 끌어안고 목덜미를 핥았다. 그와 맹세한 자리가 불끈거리며 열이 났다. 저와 마찬가지로 반응하는 향을 맡으며 윤조는 제 속옷 사이를 가르고 들어온 손가락을 느꼈다.
녹진하게 젖은 주름을 매만지는 손끝에 애가 탔다. 윤조는 다급함에 정한의 목덜미에 이를 박으며 그에게 어서 저를 안을 것을 종용했다. 정한의 낮은 웃음이 온몸을 타고 전해졌다.
“잠깐만 있어.”
윤조는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도 견디기 어려운데, 잠깐이라니. 윤조는 저를 침대에 눕히고 유유히 사라지는 정한의 온기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무언가를 뒤적이는 소리와 정한의 페로몬을 따라 시선을 헤맸다. 그러다 불쑥 제 앞으로 다가온 정한의 얼굴에 윤조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 으윽… 흑….”
꺽꺽대며 우는 윤조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정한이 곁에 무언가를 던져 놓았다. 윤조는 정한의 늘어진 넥타이를 움켜쥐며 그를 제게 당겼다. 시원한 샘과 같은 정한의 입 속에 윤조는 마구잡이로 혀를 찔러 넣었다.
“우… 음…, 읍.”
결 좋은 정한의 넥타이에 윤조의 땀과 손톱자국이 새겨졌다. 다급한 저와 달리 정한은 느긋하게 바지를 벗겨 내리고 질펀하게 젖은 속옷의 표면을 매만졌다. 윤조는 애가 타다 못해 서러워졌다. 젖은 눈을 깜박이며 발을 동동거리다 다급히 몸을 뒤집었다.
속옷을 내리고 제 엉덩이 양쪽을 벌려 보였다. 안쪽에 고여 있던 질척한 액이 시트 위로 주르륵 쏟아졌다. 윤조는 가쁜 숨을 내쉬며 몸서리쳤다.
“빨, 읏…, 리!”
지퍼 내리는 소리가 귀를 잡아끌자마자 꼼짝할 수 없게 정한의 두 손에 붙들렸다. 윤조는 베개에 고개를 묻고 뭉개져 제대로 된 발음이 나지 않는 신음과 침을 질질 흘려댔다.
“우읍… 읏….”
이미 그가 저를 찔러 들어온 순간부터 성기에서 물이 줄줄 샜다. 그의 바지 지퍼가 엉덩이에 쓸려 생채기가 나고 있음에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더 깊이, 더 빨리, 더 뜨겁게, 그가 제게 닿기를 원했다.
“어! 윽! 흐! 으읏!”
정한은 윤조의 엉덩이 양쪽을 움켜쥐고 위로 올리듯 벌려 대었다. 윤조는 그때마다 더 깊이 들어오는 정한을 느끼며 허리를 떨었다. 정한의 숨이 목덜미에 닿았다. 저를 감싸듯 안고서 허리를 쳐올리던 정한이 제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순간 아랫배가 당기며 내벽이 콱 조였다. 신음을 내뱉은 정한이 윤조의 귓바퀴를 빨며 사정했다.
“하아….”
윤조는 제 위에서 긴 숨을 내뱉는 정한을 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번들거려 보였다. 저만큼이나 취한 듯한 정한에게 입술이 삼켜졌다. 윤조는 뜯기듯이 정한에게 빨렸다.
“으읍….”
입술과 밑이 맞물린 채 정한의 손길에 몸이 돌았다. 엉덩이 밑으로 축축하게 젖은 시트가 느껴졌다. 윤조는 쉼 없이 다시 제게 틀어박히는 정한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제게 담뿍 페로몬을 흘리던 정한이 잊은 듯이 고개를 들었다. 윤조는 떨어진 입술을 아쉽게 바라보며 밑을 조였다. 정한이 조르는 윤조의 콧잔등을 간질이고는 옆으로 팔을 뻗었다. 그가 제 옆에 수도 헤아리지 않고 던져 둔 것은 콘돔 꾸러미였다. 윤조는 그의 입술처럼 제게서 빠져나가는 정한의 성기를 보았다. 정액으로 젖은 성기를 정한이 손으로 감싸 당겨 깨끗하게 만들었다.
“괜찮을 거예요… 그때 이후로 잘 안 했잖아요.”
잦은 섹스는 열성인 윤조에게 임신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기에 아이를 원하지 않는 둘에게는 콘돔 착용이 필수가 되었다. 하지만 신혼과 함께 윤조의 학업이 시작된 참이라 임신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 만큼 자주 하지 못했다.
거기다 제 공부 페이스에 맞춰 주에 두 번씩 하던 섹스가 정한이 바빠지고는 주말에 한 번으로까지 줄어들었다. 이번 주는 과연 가능할까, 싶었는데 오늘 히트 사이클 때문에 어떻게 성사되기는 했다. 이런 식이니 그가 제게 사정한다고 해서 임신이 되리란 생각은 없었다. 정한은 다른 의견인 듯했지만.
“사정해도 괜찮겠지. 다만 이건 노팅 방지 차원에서 하는 거야.”
“노팅, 하고 싶어요?”
정한이 웃으며 제 옷을 하나둘 벗어 대었다. 윤조는 넥타이를 푸는 정한을 보며 제 셔츠를 벗어 올렸다. 정한의 시선이 윤조의 유두에 머물렀다. 공부할 때 몸이 불편하지 않도록 그가 많은 부분을 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윤조는 정한의 시선을 귀엽게 보았다.
“딱 두 번만 더 하자.”
한 번의 섹스로 어느 정도 진정된 몸이었지만, 윤조 역시 정한의 권유를 내치고 싶지 않았다. 가슴이 빨리고 싶기도 해서 그의 머리를 안고 제 가슴으로 인도하기도 했다.
정한은 윤조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았다. 봉긋하게 솟은 젖꼭지를 삼키듯이 빨아들이고 혀로 뱅뱅 돌려대었다. 그가 혀끝으로 부푼 끝을 튕길 때는 허리도 따라 흔들렸다.
윤조는 제 몸 곳곳을 빨면서도 쉼 없이 제게 몸을 찔러 넣는 정한을 감탄스럽게 여겼다. 그가 얼마나 저를 참아주고 있는지, 이 짧은 순간에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노팅의 욕구가 얼마나 강한 건지도.
또 한 번의 배설 이후, 정한이 새 콘돔으로 갈아 끼우고서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의 일이었다. 윤조는 정한의 페로몬에 절여져 온몸이 축 늘어진 채 그를 받아내고 있었다. 제게 히트 사이클이 찾아온 것도 내일 등교해야 하는 일도 모두 잊은 채 오로지 정한만 바라보고 있을 때, 익숙한 충격이 배를 자극한다 싶더니 무언가 빠듯하게 안을 채웠다.
“헉….”
생각지도 않았던 일에 놀란 윤조는 제 몸을 관통하는 아픔보다 단순하게 놀란 반응을 먼저 보였다. 그건 정한도 마찬가지였는지 매우 당황한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당황스러워하는 정한은 처음 보는지라 윤조는 아픔에 반응할 사이도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웃지, 마… 조이잖아.”
윤조는 웃음을 잠재우며 배 속에 빠듯하게 자리한 정한을 매만지듯 제 마른 배를 쓸었다. 정한이 곤란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윤조는 그의 복잡한 얼굴을 매만지며 웃었다. 그가 꼭 어린애처럼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게 정한은 반성하듯 꼼짝도 없이 제게 몸을 묻고만 있었다. 난감한 얼굴을 쓸어 올린 정한이 결심한 듯 제 계획을 설명했다.
“천천히 뺄 테니까, 최대한 몸에 힘 빼. 잘못하면 터지니까.”
“그럴게요.”
질구에 침입해 들어간 정한의 성기가 그의 말대로 천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윤조는 최대한 몸에 힘을 빼고 그가 무사히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히트 사이클 중인 몸이 그걸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제 마음과는 달리 빠져나가는 정한에게 정액을 내어놓으라는 듯 마구잡이로 그를 조여대었다. 정한이 달래듯 윤조의 아랫배를 매만지며 침착하게 몸을 물렸다.
실제로는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을 테지만, 둘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윤조는 정한이 거의 빠져나갔을 때쯤 방심하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 툭, 하고 터지는 듯한 느낌이 나 서로 시선이 마주친 순간에는 이미 늦어 있었다.
“…터졌나 본데.”
콘돔은 노팅에 적합하지 않았기에 이따금 이런 사고가 난다고는 들었지만, 자신이 겪을 줄은 몰랐다. 윤조는 제 질구를 타고 안으로 쏟아지는 정액의 묵직한 흐름을 느끼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손에 난 땀이 끈끈하게 시트를 적셔 갔다.
“하….”
정한이 제 얼굴을 쓸며 급히 몸을 물러 냈다. 윤조는 저릿하게 제 몸을 빠져나간 아픔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억지로 몸을 뺀 탓인지 정한의 성기는 노팅 상태 그대로였다. 저 거대한 게 제 속에 틀어박히다 못해 흔들릴 때도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정한이 제게 꽉 끼듯이 붙은 콘돔을 벗겨 조각을 맞춰 보았다. 정액 받이 부분이 터져 있었다. 제 몸에서 남은 조각을 찾아야 할 수고는 덜어 다행이었지만, 아랫배에 힘을 줄 때마다 새어 나가는 그의 정액을 어찌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미안.”
정한이 제 얼굴을 두 손으로 쓸고서 말했다. 윤조는 고개를 내저었다. 설마, 임신하겠어, 하는 마음이 가장 강했지만, 혹여나 임신이 된다면 그와 저 사이에 조금 이르게 아이가 찾아왔다 여기면 될 일이었다. 물론 학교에는 면목이 없을 테지만.
“약 가져올 테니까, 자지 말고 기다려.”
정한은 윤조의 안에 고인 정액을 남김없이 빼주고 병원으로 향했다. 윤조는 정한의 말대로 꼼짝없이 누워 자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떴다. 히트 사이클을 보낸 몸이 쉬고 싶다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착실히 그를 기다려 약을 먹고 잠들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주일 후, 불현듯 찾아온 충동에 윤조는 시달렸다. 일상은 평범하다가 정한이 돌아온 밤만 되면 몸이 달아올랐다. 주말에만 질펀하게 젖어 가던 침대 시트가 하루가 멀다고 젖어 갔다. 머리만 대어도 잠이 들던 윤조가 밤마다 옆구리를 찔러 대니 정한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던 탓이다.
“후으….”
왜 이럴까.
왜 해도 해도 모자랄까.
윤조는 정한에게 안기는 순간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정한이 제게 적당히 내어주는 페로몬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깊은 밤, 정한의 품에서 잠을 청하며 윤조는 고민에 빠졌다.
“이거 해 볼래?”
윤조의 혼란함을 읽은 정한이 주말 아침 눈을 뜨자마자 길쭉한 상자를 내밀었다. 윤조는 정한이 내미는 상자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본 글자를 확인한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임신 테스트기였다.
“불안해서 잠 못 자잖아.”
“…불안하지는 않아요. 좀 이상한 건 맞지만.”
“그럼 확인해 봐. 아닌 거 알면 잠은 푹 잘 거야.”
윤조는 제 마음에 남은 일말의 불안감도 종식시키기 위해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마주한 당당한 한 줄에 깊이 안도했다.
“이상해요.”
“한 줄인 게 이상해? 아기 갖고 싶어?”
“아뇨… 분명 그땐 애가 생겨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렇게 막상 한 줄인 거 보니 안심이 돼요. 근데, 또… 좀 아쉽기도 하고. 복잡해.”
윤조의 말에 정한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그곳에 입을 맞추었다. 결혼 생활을 시작한 것치고는 전과는 다름없이 지낸 일상 때문일까. 임신과 같은 이벤트가 무척 버겁게 느껴졌다. 나름대로 결론을 이야기하자 정한이 의아하게 물었다.
“나랑 결혼한 게 실감이 안 나?”
“실감해요. 어딜 가나 내 남편이라고 얘기하고 다니니까. 그런데… 애가 생기는 건 엄청 큰일이라서, 그게 바로 목전까지 오니까 그 느낌이 남달랐어요.”
“하긴, 그건 좀 다르긴 할 거야.”
노팅의 순간, 당황하던 정한의 얼굴을 떠올리며 윤조는 웃었다.
“그럼 다녀올게. 불안하면 전화해. 바로 올 테니까.”
“아뇨, 느긋하게 있다가 와요.”
한동안 방문이 뜸했더니 황 집사에게 연락이 온 모양이었다. 정한은 30분 거리에 있는 저택으로 권 회장을 만나러 갔다. 윤조는 정한을 배웅하고 서재에 종일 박혀 있었다. 테스터를 확인한 덕분인지 마음이 홀가분했다.
* * *
느닷없는 히트 사이클과 예기치 못한 임신의 예감을 뒤로하자 어느새 중간고사가 다가와 있었다. 윤조는 학교 성적에 미련이 없어진 후로 성적에 연연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더는 밑으로 떨어지고 싶지도 않았다. 대학 시험도 고등학교 공부가 포함되는 일이라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도 있었다.
성적은 기대하지 않았어도 전과 다름없이 열심히 하루를 보냈다. 문제는 공부 이외에도 열심인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윤조는 잠을 청해야 마땅한 시간에도 자주 정한을 찾았다.
스트레스려니 하며 거의 밤마다 그에게 안겼는데도 어딘가 부족한 마음이 들어 주말 밤에는 제 페로몬까지 쥐어짜며 그를 꾀어내었다. 시험이 끝나면 그치겠지, 하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고대하던 시험이 끝난 날. 집으로 돌아온 윤조는 오답 체크를 하고서 시무룩해져 서재 테이블에 고개를 묻었다.
어떻게 이렇게 쪼잔한 문제를 낼 수 있지.
이를 갈며 다음 공부를 위해 책 끝을 손으로 더듬는데 손가락에 스치는 책 모서리가 이상하게도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윤조는 테이블에 뺨을 댄 채 제 교복 셔츠 안으로 손을 넣었다. 어젯밤 정한이 빨아준 젖꼭지와 느낌이 닮아 있었다. 윤조는 제 손끝으로 젖꼭지를 튕기다 정한이 쥐듯이 제 가슴을 움켜쥐었다.
“으응….”
이렇게 가슴을 잘 느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윤조는 계속해서 제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슬슬 제 몸에서 페로몬이 피어났다. 밤마다 정한의 옆구리를 찌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홀로 제 몸을 만지고 있다니, 이게 무언가 싶어졌다.
“쇼크인가…?”
문득 통나무집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 뜨겁다 못해 넘치던 오크통. 거기에 빠져버린 듯했다. 정한이 제게 무한히 쏟아주었던 페로몬이 제게 쇼크 증상을 일으키는 것이리라, 그렇게 여겼다. 윤조는 제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정한에게 연락하려 휴대폰을 찾아 손을 더듬었다. 약이 필요했다.
“후….”
찾으려는 휴대폰은 안 잡히고, 윤조의 손길에 애꿎은 시험지만 구겨졌다. 필통도 엎어지고 펜은 데굴데굴 굴러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다. 쌓아둔 책이 미끄러지듯 흘러내려 테이블 위에 전시되었다. 윤조는 점점 달아오르는 몸에 테이블을 손톱으로 긁어대었다.
이상했다. 쇼크라고 하기에는, 히트 사이클처럼 자신을 제어할 수 없어서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 윤조는 눈물을 글썽이며 정한을 나직이 불렀다. 그가 제 목소리를 듣고 찾아올 것도 아닌데 그렇게 부르고 있자니 어딘가에서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윤조는 겨우 고개를 들어 제 시선 정면에 있는 휴대폰을 보았다. 그곳에서 반짝이는 이름. 제 사랑하는 이가 꼭 제 목소리를 들은 것처럼 연락해 오고 있었다.
“허어, 허….”
윤조는 겨우 팔을 뻗어 전화를 받았다. 채 귀에는 대지 못하고 입가에 아무렇게나 당겨 두었다.
-시험 끝났겠네. 집이야?
“사장… 흐….”
-윤조야 왜 그래?
“자기, 자기야….”
-윤조야?
“아… 흐… 형….”
눈물이 고이다 못해 콧대를 스치며 뚝뚝 흘러내렸다. 손대어 보지 않아도 제 바지 밑단까지 축축하게 젖은 게 느껴졌다. 배 속이 뒤틀리며 계속해서 그를 찾고 있었다.
-지금 갈게, 잠시만.
누군가에게 지시를 전달한 정한이 다시 제게 말을 걸었지만, 윤조는 그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뒤척이는 윤조의 엉덩이 밑으로 질척한 물이 맺혀 바닥으로 길게 떨어졌다.
“형… 빨리 와….”
-잠깐 경호 먼저 들여보낼게. 조금만 기다려.
“안… 안 돼… 형이 와야 해….”
복도를 달리던 발소리가 뚝 그쳤다.
“형… 나… 이상해.”
윤조는 숨을 헐떡거리며 계속해서 정한을 찾았다. 자신이 그를 부르는 모든 말을 중얼거리며, 그가 제게 다시 달려오도록.
-금방 갈게. 조금만 참아.
통화가 끊어졌다. 윤조는 번쩍거리다 꺼진 휴대폰을 더듬거리며 뒤틀리는 배를 끌어안았다. 정말로 오크통에 빠진 듯했다. 온몸이 흐물거리며 녹았다.
“형….”
그를 지칭하는 가장 짧은 말만 겨우 뱉으며 윤조는 정한을 기다렸다. 흐리멍덩한 시야 너머로 아까까지 자신이 쥐고 있던 펜이 보였다. 윤조는 홀린 듯 펜을 움켜쥐고 제 허리 뒤로 가져다 댔다. 찔러 넣을 것처럼 엉덩이 주변을 더듬거리던 손이 미끄러지며 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정신이 든 이후에 보면 다행인 일이었으나 현재 윤조는 그 펜이 아쉬워 짜증으로 이를 악물었다. 어서 무엇이라도 집어넣어야 할 것 같았다. 땀이 배어난 손으로 다시 테이블을 뒤적이던 윤조의 몸이 순식간에 들렸다.
“하… 형….”
정한이었다. 달려왔는지 숨을 가쁘게 내쉰 정한이 윤조의 얼굴을 살피고 곧장 테이블 위에 몸을 눕혔다.
“혀엉….”
알싸하게 퍼진 그의 페로몬이 온몸을 들끓게 하는 열을 붙잡듯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윤조는 겨우 숨 쉴 구멍을 찾은 사람처럼 크게 안도하며 웃음을 흘렸다.
“나… 왜 이래요?”
“글쎄.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
윤조는 땀에 젖은 몸으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정한의 얼굴을 보았다. 엉망으로 젖은 제 교복 바지를 벗겨 내린 그가 잠시 넥타이 쪽으로 시선을 두고는 그것을 옆으로 접어 치웠다.
“형….”
“왜 하필 지금 형인데?”
의문을 표할 사이도 없이 정한이 치고 들어왔다. 윤조는 고개를 뒤로 꺾으며 제게 빠듯하게 밀려 들어온 정한을 오롯이 느꼈다. 무자비하게 젖은 틈을 벌리는 정한의 움직임에 테이블이 뒤로 밀릴 듯이 흔들렸다.
“하, 윽… 형, 으응! 어, 으윽…!”
정한이 입을 다물라는 듯 입술을 물어왔다. 테이블이 덜그럭거리며 크게 흔들릴 때마다 입술이 떨어졌다.
“형, 혀… 흣, 형….”
윤조의 잇새로 끊임없이 그를 찾는 소리가 이어졌다. 정한이 또 입을 다물라는 듯 윤조의 입에 넥타이를 물렸다. 윤조는 형이라고 부를 때마다 정한이 세게 들어오는 것을 알고 보란 듯이 제 넥타이를 퉤, 뱉어내었다.
“형아….”
끼익!
테이블이 완전히 밀리며 정한의 성기가 질구에 닿을 듯 깊이 들어찼다. 윤조는 어깨를 세우며 정한의 목을 다급히 껴안았다.
“아! 아아! 형, 흐… 형아, 형… 흑, 으윽! 형….”
책장까지 밀려간 테이블이 고정되듯 자리 잡았다. 윤조의 몸도 꼭 그것처럼 정한에게 고정되었다.
“왜, 지금, 형이냐고, 윤조야, 응?”
정한이 이를 악물고서 물었다. 윤조는 흔들리는 고개를 그의 얼굴에 딱 붙이고서 가쁜 숨만 내쉬었다.
“덕분에, 큿, 억울할 일은, 이제, 후우… 없네.”
뭐가 억울했다는 걸까.
윤조는 정한의 목에 코를 박고 그의 냄새를 잔뜩 맡았다. 녹진녹진하게 녹은 안이 그의 성기를 삼킬 듯이 빨아대었다. 그를 정말 먹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언젠가, 저를 먹고 싶다던 그의 말을 이제야 이해한 듯이.
“하아… 하… 하아….”
정한의 팔에 들려 흔들리는 발끝에 시선을 둔 윤조는 제 하얀 양말 속의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단단하게 부푼 정한의 성기가 곧 사정을 앞둔 듯했다. 윤조는 정한의 목에 입을 맞추며 그의 등을 세게 껴안았다.
“후으… 하… 서윤조.”
서재 창으로 들어오는 빛줄기에 먼지가 피어나 있었다. 윤조는 제 배 속에 퍼지는 정액을 느끼며 그의 어깨에 턱을 대었다.
“하아… 하….”
제 이름을 부르며 사정한 정한의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가 뿜어낸 농도 짙은 페로몬과 뜨거운 체온, 그리고 땀까지. 윤조는 그의 삐져나온 셔츠 속으로 손을 넣어 하나씩 더듬어 만져 보았다.
“병원엔 뭐라고 하고 나왔어요…?”
“남편 발정 났다고.”
“…정말?”
“농담.”
상체를 든 정한이 이어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덩달아 시선을 내리자 아찔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서로의 체액으로 뒤엉킨 밑에서 눈을 뗀 윤조는 정한을 끌어안고 어깨에 턱을 대었다.
“나, 이상해요.”
“내일 학교 쉬어. 병원 가자.”
“병원 가야 하는 거예요?”
“오면서 생각해 봤어. 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나. 그럴 만한 계기는 뭐였을까.”
윤조는 정한의 어깨를 밀어내고 그와 눈을 마주했다. 서로 같은 시기를 의심하고 있었다. 동시에 두 입술이 움직였다.
“통나무.”
“카프.”
대답은 달랐지만, 같은 말이기도 했다. 윤조는 고개를 끄덕이는 정한을 다시 끌어안았다.
“그때랑 다른 샤워 할까.”
“네….”
정한이 윤조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안아 들고 서재를 나섰다. 미끄러질까 싶어 정한의 허리를 감은 다리에 힘을 주자 그의 성기로 막고 있는 틈새를 타고 정액이 흘러내렸다. 윤조를 안아 든 정한의 걸음 끝에 그의 발자국처럼 백탁의 액체가 뚝, 뚝, 떨어졌다.
* * *
다음 날 아침, 윤조가 또 한 번 발정했다. 정한은 겨우 윤조를 달랜 뒤에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제 심장 문제가 아니라 무헌을 찾아왔는데, 승주가 같이 있어 졸지에 넷이 있게 되었다. 승주가 교복 차림으로 오지 않은 윤조를 매우 아쉽게 보았다.
“페로몬 불균형이야.”
무헌의 진단에 윤조가 자신을 바라보았다. 쇼크라고 이해하고 있을 윤조였기에 정한은 그를 향해 무헌의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실 정한은 내심 윤조가 페로몬 불균형에 빠진 건 아닌가, 하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쇼크라고 하기에는 그의 정도가 심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저와 있을 때 유난하게 페로몬을 방출하고 있었기에 불균형으로 인한 증상이라 짐작했다.
“둘, 관계 빈도가 대충 어떻게 돼?”
윤조가 눈만 굴려 정한을 바라보았다. 정한은 무헌의 질문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가늠하느라 잠시 침묵했다. 그런 정한의 눈치를 읽은 무헌이 알기 쉽게 기간을 정해주었다.
“각인 후. 그 이후부터 대략 규칙적인지 아닌지만 이야기해주면 돼.”
“규칙적이라고는 할 수 없어.”
빠져 있겠다고 멀찍이 앉은 승주가 첨언했다.
“왜? 테라피 때처럼 매일 붙어 있어도 모자랄 텐데. 그 갈망하던 각인까지 해 놓고 왜 규칙적이지 않아?”
정한은 잠시 승주를 노려보다가 무헌도 같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얼굴이라 얕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입학시험 있고, 학기마다 시험 두 번, 그 사이사이 대학 시험 준비까지. 어쩔 수 없이 안 하는 기간이 있었어.”
“안 하는 기간?”
“어. 일부러… 아니, 못 하는 기간.”
“아하.”
“그리고 여름쯤에, 길게 한 달은 쉰 적도 있고.”
무헌이 다 알았다는 얼굴로 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윤조의 상태를 잠시 눈으로 훑었다.
“폭우가 쏟아졌다가, 건기가 왔다가 하니, 몸이 정신을 못 차릴 만해.”
혀를 찬 무헌이 다시 말을 이었다.
“각인했기 때문에, 서로의 페로몬을 늘 적정량 필요로 할 거야. 보통, 일상적인 정도의 페로몬 교류만으로도 이런 불균형이 오지는 않아. 단지, 두 사람은… 서로 간극이 커서, 한쪽이 혼란하게 될 위험이 있지.”
“제가, 페로몬이 옅어서 그런 거죠?”
무헌이 인자한 얼굴로 질문을 던진 윤조를 보았다.
“쉽게 말하자면 그래요. 정한인 너무 많고, 또 금지 기간을 가졌다면, 한 번 할 때 윤조 씨한테 쏟아내는 양이 상당했을 거니까. 안 그래요?”
“…네, 전 그래서 쇼크가 온 줄 알았어요.”
입구 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승주가 기어이 데스크까지 와서 끼어들었다.
“그래, 그 쇼크가 심하게 일어나면 불균형이 오는 거야. 너네 패턴으로 봐서는 이게 축적돼서 이번에 팡! 터진 거고.”
“그럼, 어떡해야 해요? 이것도 약이 있겠죠?”
“물론 약이 있지만, 이게 능사는 아니에요.”
무헌이 정한을 보며 처방을 내리듯 말했다.
“둘, 이제부터라도 규칙적으로 관계 가져. 대신, 적당한 한도 내에서. 요 며칠간 매일 했다며?”
“어.”
“윤조 씨가 괴로웠나 보다. 몸이 알아서 방법을 찾았네.”
윤조가 답지를 들여다본 것처럼 낮은 감탄을 했다. 무헌이 뿌듯하게 웃음 지었다.
“아무튼, 약 먹고, 정기적으로 관계하고, 페로몬은 적당히 나누고. 그러면 잠잠해질 거야.”
어렵지 않은 해결책이었다. 정한은 안도한 윤조를 경호원 편으로 돌려보내고 무헌을 다시 찾았다. 승주는 가고 없는지 무헌만 있었다.
“다시 올 줄 알았어.”
기다렸다는 듯 팔짱을 낀 무헌이 정한을 올려다보았다. 정한은 제 마른 입술을 축이고 용건을 이야기했다.
“규칙적으로 관계한 지도 꽤 됐고, 좀 넘칠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하게 줬어. 나도 아는 게 있으니까.”
“하지만 둘의 간극이 예상보다 컸고. 그건 네가 안다고 해서 어떻게 될 게 아니었을 거야. 또… 의도치 않게 노팅까지 간 거 보면, 너 엄청 쌓였나 보다?”
정한은 조용히 웃음만 지었다. 신혼. 그 어느 때보다도 달콤한 한때인 지금, 제 눈앞에서 살랑거리며 돌아다니는 윤조를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게 고문이 아니고서 무엇일까.
“약은 임시방편인 건가?”
“지금은 그게 전부일지도 몰라.”
“솔직하게 말해 봐.”
“들을 자신 있어?”
정한은 무헌의 흥미로워하는 눈동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 분야가 아니더라도 쉬이 예측되는 결론에 절로 한숨이 났다.
“준비됐음 말해. 솔직해져 줄게.”
정한은 턱짓으로 제 의사를 표현했다. 무헌이 제 입술 밑을 가볍게 쓸며 말을 이었다.
“보통 이럴 때 우리는, 환자에게 자녀 계획을 물어봐.”
“…….”
“물론, 약으로 안 다스려질 때 묻는 거지만.”
정한은 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런 정한을 보며 무헌이 방긋 웃었다. 소리 없이 입술을 모았다가 벌리는 걸 보며 정한은 무헌이 제게 욕을 하나 생각했다.
“뭔데.”
“조카.”
“하….”
“생기면 재미있긴 하겠지만, 윤조 씨가 너무 어리긴 하지. 그 나이에, 애라니. 그 작은 배에, 애가… 어휴.”
“…….”
“되게 죽을상이네. 어차피 가질 애 좀 일찍 가지면 뭐 어때?”
“윤조 하고 싶은 게 많아.”
“애 낳고 하면 돼. 네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너, 다 해줄 거잖아. 승주가 그러더라. 윤조 씨 미래는 네가 다 만들어준다고. 보나 마나 학교도 없는 절차 만들어서 보냈을 거라던데. 아냐?”
“…….”
“괜찮아, 괜찮아. 아직 약 안 써 봤잖아. 걱정은 나중에 하고 약 먹는 시간이나 잘 체크해.”
정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무헌의 방을 나섰다. 집에 도착했는지 윤조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돌아가자마자 약부터 먹었는지, 약발이 잘 들으라고 한숨 자겠다는 연락이었다. 정한은 윤조가 보내준 약병 사진을 쓸며 부디 이 약이 그에게 효과가 있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