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9화 (21/22)

09.

“쌍둥이입니다.”

“…네?”

“여기. 이거 보이세요?”

보이긴 보였으나 윤조는 들은 말이 놀라워 보고 있어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버릇처럼 정한을 찾았다. 그는 이마를 짚고 있었다. 보고 있자니 큰일이 난 것 같았다.

“두 분 다 남성체셔서 아들일 확률이 높을 겁니다. 제 경험상….”

넋을 놓은 두 사람을 두고 의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윤조는 뒤늦게 제 손을 잡아 오는 정한을 보고 퍼뜩 정신 차렸다.

“어… 아들이요?”

“네. 제 경험상으론 남성체 분들의 자녀로 여아를 본 일이 없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아… 그렇군요. 근데, 그… 쌍둥이요?”

“네.”

“여기, 지금… 둘이 있다는 거죠? 애가 둘이나…?”

“보시겠어요?”

“그게 지금 보여요?”

“그럼요.”

의사는 친절하게도 화면 이곳저곳을 가리켜 윤조가 이해할 수 있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쌍둥이를 가졌을 경우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서도.

윤조는 정한의 손을 맞잡았다. 기뻐야 하는데, 숙제처럼 벅차게 느껴져서 당황스러웠다. 그건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어떡해요? 이건 예정에 없는 일인데….”

“최대한 모르는 척해.”

“네…?”

“알면 몰라도 됐던 것까지 힘들 거야. 그냥 배가 커진다, 숨이 찬다, 이런 것만 느껴. 서포트는 내가 다 할게.”

“…….”

“쌍둥이든 뭐든 이제 임신에 관해서 공부하지 마. 넌 이미 충분히 알아. 그게 아니라도 너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책임질 거니까. 알았어?”

마음이 놓였다. 더는 모르는 채로 그냥 지내라는 정한의 말에. 그의 명령을 받고 또 따르는 건 그를 알게 된 후부터 숨 쉬듯 해 왔던 일이니 어렵지 않으리라. 윤조는 제 납작한 배를 매만지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 * *

즐거운 임신 기간이란 사치스러운 바람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둘이나 되는 생명을 잉태한 탓일까. 어쩌면 몰라도 너무 몰라서일까. 아니, 예정된 순서였을 게다.

윤조는 입덧이란 고초에 시달리게 되었다. 구역질은 둘째 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고통은 상당했다. 정한에게 사랑을 느꼈을 때처럼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면 좋을 텐데. 배는 배대로 고프고 먹으려고 하면 족족 구역질이 나서 힘들었다.

“억울해….”

냄새에도 민감해진 윤조를 위해 정한은 집에서 음식을 먹지 않게 되었다. 그건 또 무슨 고생인가 싶어 윤조는 정한에게 식사를 권유했지만, 막상 그가 먹는 걸 보고 있자니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만 삐뚤어지는 제 태도가 우스워 미칠 지경이었다. 제 기분을 읽은 정한이 숟가락을 내리고 냉장고에 있는 모든 음식을 버렸을 때는 미안함에 우울하기까지 했다.

그 마음도 다 안다는 듯 정한의 태도는 항상 일정했다. 온도가 같다고 해야 할까. 윤조는 제 기분이 들쭉날쭉할 때마다 정한을 보며 안정을 찾았다. 매우 어렵긴 했지만.

“그거 맛없잖아요.”

정한이 다시 냄새도 맛도 없는 영양 주스를 먹게 되었다. 윤조는 제 멋대로인 자신이 미워졌다. 제 말에 이제 영양 주스도 버릴 것 같은 정한의 손목을 급히 붙들었다.

“미안하다는 거예요. 맛없는 거 먹게 해서.”

정한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윤조는 급히 안도하며 그의 손길에 몸을 기대었다.

정한이 집에 돌아오면 윤조는 내내 그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 탓에 그가 물 한 잔 마시는 순간도 놓치지 않아, 본의 아니게 그를 괴롭히게 되었다.

여러모로 미안한 일이 많았던 윤조에게 정한은 기꺼이 저를 괴롭히라 했다. 이것이 네 먹지 못하는 괴로움에 비할 바는 되지 않는다고. 윤조는 그의 말에 크게 감복했다.

정한이 출근한 낮에는 황 집사가 집에 머물러주었다. 낮에는 황 집사를, 밤에는 정한을 괴롭히는 하루하루가 괴로우면서도 두 사람이 없으면 꼼짝없이 집에 갇혀 우울할 것 같았다.

-이를 어쩌냐. 내가 다 속상하네.

이제는 거의 메라크에 정착했는지 보기 힘든 명우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메라크에서 필요한 거 있음 언제든 말해. 바로 보내줄게.

“말만 들어도 배부르네.”

-그냥 말로만 하는 거 아니야. 그렇지 않아도 삐쩍 마른 애가 얼마나 고생이겠어.

윤조는 명우의 마음만 감사히 받기로 했다. 제게 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두베에 있었다.

“내 밥….”

거부감 없는 냄새는 정한의 페로몬이 유일했다. 윤조는 그의 페로몬을 밥처럼 여겼다. 실제적인 포만감은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풍요한 덕에 배고파 잠들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윤조는 밤마다 정한의 맨살에 코를 묻고 잠들었다. 그나마 잠은 잘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약도 잠깐이고….”

“그래도 오늘은 좀 먹긴 했어요.”

안쓰럽게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윤조는 보란 듯이 입술을 내밀었다. 그에게는 종일 응석을 부려도 모자랐다.

구토로 거칠어진 입술을 쓰는 손길이 다정했다. 윤조는 그의 살냄새를 맡으며 몽롱한 의식을 즐겼다.

“속상해 죽겠네….”

“죽지 마요….”

“못 죽어. 너랑 오래오래 살아야지.”

“네… 죽지 마….”

잠결에 중얼거리는 윤조를 끌어안은 정한이 등을 다독였다.

그날, 꿈속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이 찾아왔다. 윤조는 거대한 음식들이 제게 굴러오는 꿈을 오래도록 꾸었다.

* * *

음식이 굴러오는 꿈을 꾼 뒤로 윤조의 입덧이 잦아들었다.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윤조는 그간 먹지 못한 한을 풀 듯 끝도 없이 먹어댔다. 살이 지나치게 빠져 병원에서도 걱정을 표했는데, 한시름 놓았다.

“꼭꼭 씹어 먹어.”

윤조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으로 음식을 밀어 넣었다. 배 속에 바닥이 없는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 같다는 그의 말이 맞아 보였다.

문득 깨어난 새벽, 정한은 비어 있는 옆자리를 알아채고 서둘러 방을 나섰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총이 든 서랍을 더듬으려다 퍼뜩 떠오르는 일이 있어 소리가 난 방향으로 가 보니 윤조가 냉장고를 열어 놓고 그 앞에서 과일을 먹고 있었다.

“…….”

저를 눈치채고 먹기를 멈춘 윤조가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왜 불도 안 켜고 먹어.”

정한은 윤조를 의자에 앉히고, 바닥의 과일을 식탁으로 옮겨주었다. 그사이 많이 먹은 모양인지 그의 입가에 과일 물이 흥건했다.

“이번엔 과일이 굴러왔어?”

딸기를 입에 밀어 넣으며 윤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조는 곧잘 꿈에서 나온 음식을 다음 날 꼭 먹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아침까지 참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정한은 연신 윤조의 입가에 흐른 과일 물을 닦아주며 그가 먹기 좋게끔 과일을 전시해주었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깨고….”

“아냐. 너 보고 좋네, 뭐. 천천히 먹어.”

딸기처럼 얼굴을 물들인 윤조가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정한은 턱을 괴고서 그런 윤조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배 속의 구멍을 채우는 쉼 없는 저작 운동이 이렇게 재미있을 일일까. 볼록한 두 볼을 매만지고 싶어져 정한은 팔짱을 끼고 그가 다 먹기를 열심히 기다렸다.

째깍. 째깍. 깊어 가는 새벽. 제 손끝을 지분거리는 정한의 기다림은 꽤 길었다.

* * *

병원에 비상이 걸렸다. 며칠 정한의 퇴근이 어려워지게 되자 윤조는 저택으로 향했다. 홀로 있는 저를 불안해할 정한을 생각해 스스로 움직였다. 윤조는 말동무가 필요한 참이라 저택에 머무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다. 정원 산책도 하고 싶었고.

낮 동안은 집에서처럼 황 집사가 내내 곁에 머물러주었다. 이따금 보안 팀장과 함께 산책하기도 했는데, 팀장은 꼭 저를 민들레 홀씨라도 되는 듯이 대해서 부담스러웠다. 어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목이 잘릴 사람 같았다.

이따금 홀로 있고 싶을 때는 서재에 갇혀 공부하거나, 집에는 없는 책을 읽기도 하고, 권 회장이 뉴스만 읽고 내버려 둔 신문의 십자말풀이를 했다. 정한의 도움이 없어도 거뜬히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아져 뿌듯했다.

권 회장은 회장의 직함을 이용해 일찍 퇴근하여 윤조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그 불 같은 성격으로 제멋대로인 떼나 투정을 잘도 받아주었다.

“정한이?”

“네. 정한 씨 얘기 해주세요.”

서로 공통분모가 있어서 대화의 물꼬를 트기는 편했다.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면 되었다. 윤조는 하루하루 정한의 어릴 적 이야기를 알아 갔다.

“대학 들어가고서는 정한이도 나도 바빠서…, 원.”

빼곡하게 외우고 있는 어릴 적 기억에 반해, 정한이 성인이 되고서는 몇 없는 추억을 간직한 권 회장이었다. 윤조는 그런 권 회장이 조금 안타깝게 느껴졌다. 제 빤한 시선이 민망했는지 권 회장이 어쩐 일로 저에 대해 물어왔다.

“음….”

윤조는 저만 기억하고 있는 제 어릴 때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미자르에서의 반복적인 일상은 어디에다 꺼내 보이기에는 너무나 초라해서 짧게 던지기만 했는데도 권 회장은 매우 흥미롭게 들었다. 윤조는 권 회장의 반응에 신이 나 잊고 있었던 이야기도 꺼내어 떠들었다.

“하루는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솔직히 삼촌 집에 훔쳐 갈 게 없었는데, 그래도 먹을 거는 있으니까…. 근데 그거 뺏기면 우린 어떡해요. 나까지 달려서 입이 얼만데.”

“무기를 가지고 있진 않았고?”

“에이, 미자르 도둑이 무슨 무기가 있겠어요? 서로 몸으로 싸워야죠. 하필 그날 저 혼자 집에 있어서 무조건 지켜야 했어요. 잘못되면 얼마나 혼나겠어요? 우리 삼촌 아시죠?”

“알다마다. 그…, 흠. 그래, 그럼 주먹다짐이라도 한 게야?”

“아뇨, 전 그때 다림질하고 있어서….”

“지지기라도 했어?”

“…네.”

그때 살 타던 냄새가 아직도 생생해요.

제 대답에 잠시 말을 잃은 권 회장이 헛기침하며 용감하다고 칭찬했다. 윤조는 이게 과연 용감한 게 맞나 생각하면서도 그의 칭찬에 뿌듯해졌다.

“정한이 기다리지 말고.”

“그건 장담 못 하겠어요.”

“아무튼…! 어서, 자.”

밤이 깊도록 저와 말동무를 해준 권 회장이 비워 둔 정한의 방으로 배웅을 해주었다. 윤조는 돌아서는 권 회장을 다급히 불렀다.

“혹시 지금 일 가세요?”

“일은 무슨.”

“나가시는 소리 들리던데요?”

빤히 보던 권 회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한이처럼 귀가 밝네.”

“에이, 정한 씨 귀를 어떻게 따라가요. 언제 오나 귀 기울이고 있으면 아버님 나가시는 소리 들려서 그래요. 바쁘신데 저 말동무 해주셔서 감사해요.”

권 회장이 쑥스러운 얼굴로 이만 자라고 하며 돌아갔다. 윤조는 계단을 내려가는 권 회장을 배웅한 뒤,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누였다. 멀리, 저택을 나서는 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천장 조각을 보며 정한의 퇴근을 기다리다 잠드는 일이 며칠. 고대하던 정한의 비상이 풀렸다. 외롭거나 섭섭할 사이 없는 저택 생활을 끝내고 윤조는 다시 본래 집으로 돌아갔다.

“저택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여기가 집이 아니라 방 같아요, 방.”

“더 큰 데로 갈까?”

“아뇨. 넓은 데 가고 싶으면 저택 놀러 가죠, 뭐.”

정한이 웃으며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윤조는 느긋하게 집 안을 어슬렁거렸다. 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배가 커져서 더 움직이기 어려워지기 전에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었다.

“괜찮아?”

“네.”

돌아보면 늘 정한이 있었다. 근거리에서 저를 지켜보던 정한이 가까이 다가와 몸을 끌어안았다. 기다리다 지친 모양이었다.

윤조는 정한의 품에 얼굴을 비비다가 고개를 들어 그의 턱을 살살 깨물었다. 의사가 권고하기로는 다음 달이나 되어야 관계를 가져도 괜찮다고 했는데, 그 다음 달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집 안을 돌아다닌 이유에 이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봤더니 그와 하고 싶어 애가 탔다.

“하고 싶어?”

“…네.”

제 페로몬을 느낀 정한이 입만 맞추고 멀어졌다. 윤조는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며 다시 집 안을 돌아다녔다. 폴폴 떠다니는 제 페로몬에서 그를 빨고 싶다는 말이 왜 이리도 선명히 읽히는 건지. 허공을 휘휘 저으며 윤조는 정한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눈물 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깊은 새벽, 윤조는 정한의 다리 사이로 기어들어 가 그의 성기를 입에 물고 말았다. 그가 제 어깨를 붙들며 저지하긴 했으나 그 힘은 아주 미약했고 윤조는 정한의 정액을 말끔히 삼키고 나서야 개운하게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던 그 날이 왔다.

“이제 해도 되죠?”

함께 온 황 집사는 밖에 있는데 괜히 문을 돌아본 뒤 물어보았다. 윤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담당의가 눈을 크게 떴다. 윤조는 제 아랫입술을 깨물며 작게 중얼거렸다.

“섹스요….”

“아아, 예. 그럼요. 이제 충분히, 음….”

잠시 머뭇거린 담당의가 곧 본격적으로 주의점을 일러주기 시작했다. 남편이 의사인 것을 알면서도 둘의 성격을 일찌감치 파악한 뒤라 그런지, 주의에 주의를 거듭하였다. 얼마나 마음에 걸렸으면 체위까지 직접 그림으로 그려 알려주었다.

“자극이 심하다 싶으면 물리세요.”

“입으로 하라고요?”

윤조의 물음에 담당의의 얼굴에 난감한 빛이 감돌았다. 윤조는 담당의를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구강을 이용하라는 게 아니라…. 남편분께 삽입하고 있던 걸 빼라고 하세요. 그리고 몸을 진정시키셔야 합니다. 서윤조 씨는 남성체라 위험이 덜하지만, 남편분이 서윤조 씨에겐 매우 자극적인 사람일 테니까요. 반응이 무척 빠를 테고, 흥분도 클 겁니다.”

거기다 각인까지 했으니, 이성의 끈도 짧을 거라며 담당의는 걱정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이 부부의 관계가 사고로 이어지지 않게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다시 설명 드립니다. 옆으로 하세요.”

“네. 옆으로….”

“자극이 심하면 어쩌라고요?”

“빼야 해요.”

“이것만 명심해도 병원에 실려 오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병원에, 실려 온다구요?”

“가끔, 노팅 하시는 분이 계시거든요.”

윤조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임신 상태에서 노팅이라니…!

“서윤조 씨 부부와 반대인 케이스죠. 상대가 강하면 쉬이 흥분하게 됩니다.”

“아… 네.”

저와 반대되는 케이스라고는 해도 정한이 제게 의도치 않게 노팅 한 전적이 있었기에 윤조는 조금 겁을 먹었다. 윤조의 고민을 읽은 듯 의사가 덧붙여주었다.

“아무리 노팅이라고 해도, 성기가 질에 들어가는 정도니까, 태아에겐 해가 없을 겁니다. 다만 명심하세요. 지나친 자극은 독이 됩니다.”

“네.”

“옆으로.”

“심하면 빼고.”

“잘 아시네요.”

담당의가 만족한 듯 웃었다. 윤조는 새로 배운 단어처럼 말을 외며 황 집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밤. 퇴근한 정한에게 병원에서 배워 온 말을 전수하였다.

“옆으로.”

“네. 온다 싶으면 빼래요.”

“뭐가 오는데?”

“어, 오르가슴?”

“아아.”

다 아는 내용일 거면서 정한은 처음 아는 듯 유쾌하게 제 말을 들어주었다. 어째 말만 했는데도 자극적일까. 윤조는 제 배를 감싸며 진정하려 애썼지만, 저를 더듬듯이 바라보는 정한의 눈짓을 읽었을 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탁.

숟가락을 내려놓는 소리에 정한이 몸을 일으켰다. 채 반도 먹지 않은 저녁 식사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흐으….”

어떡하지. 너무 좋았다.

그가 제 옷을 벗기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소름이 돋았다. 윤조는 제 부른 배를 감싸며 입술을 빠는 정한의 목을 끌어안았다. 다리 사이가 미끌미끌했다.

어느새 무릎까지 흘러내린 물을 정한이 손으로 매만졌다. 허벅지를 타고 올라온 손이 쉴 새 없이 물을 쏟아내는 자리를 더듬었다. 주름 하나하나를 쓰다듬는 정한의 손길에 다리가 덜덜 떨렸다. 저도 모르게 벌어지는 무릎을 다잡으며 그에게 매달렸다.

“어떡해요…?”

“음?”

“너무 좋아….”

울먹거리는 윤조의 목소리에 정한이 웃었다. 윤조는 저만 이렇게 난리인가 해서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슬슬 입술이 튀어나오려는데, 배를 찌르는 단단한 성기와 불끈거리는 그의 관자놀이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위험하게도 강한 향이 저를 움켜쥐었다.

“어떡하지, 서윤조 씹어 먹고 싶네.”

“네…?”

“귀엽게 배도 나오고.”

그가 제 배를 쓸며 입을 맞추었다. 윤조는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정한의 움직임에 뒷걸음질 쳤다. 정말 그가 저를 씹어 먹을 것 같았다.

“이젠 유즙도 나오고.”

“아아….”

젖꼭지가 비틀렸다. 쌍둥이를 가져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가는 배도 벅찬데 남성체인 이유로 가슴 발달도 빠른 탓에 요즘 퍽 시달리고 있었다. 윤조는 정한의 손끝에 맺힌 액체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밤마다 다정히 유즙을 빨아주던 다정한 남편은 온데간데없는 듯했다.

“아, 흐….”

정한이 허리를 안으며 가슴을 빨았다. 윤조는 정한의 혀에 눌리고 또 이에 씹히는 자극에 제 발목까지 젖어 가는 걸 느꼈다. 그가 아이처럼 이 끝으로 유두를 물며 쭉쭉 빨아 당겼을 때는 애원하고 싶기까지 했다.

“흐, 으…, 사, 사장님….”

“그만해?”

허벅지 안을 쓸어 올리며 묻는 정한의 말에 윤조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은 버틸 만했다. 윤조의 대답에 정한이 다시 젖꼭지를 콱 물었다. 윤조는 허리를 떨며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음…, 응….”

혀끝을 튕기며 제 밑으로 중지를 꽂아 넣은 정한이 내벽을 더듬듯 돌려대었다. 윤조는 덜덜 떨리는 무릎을 어찌할 바 모르고 정한의 머리칼에 입술을 묻고 그의 페로몬에 취했다.

“아아… 여보….”

정한이 가늠하듯 손을 깔짝거리다 손가락을 하나 더 밀어 넣었다. 윤조는 가쁜 숨을 내쉬며 의사의 말을 되새겼다. 지나친 흥분은 독이 된다는 말. 하지만 의사의 말은 말뿐으로, 실전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윤조는 발가락을 오므리며 정한의 손가락을 빠듯하게 조였다. 그의 성기를 먹고 싶었다. 위로 아래로 모두. 제 배에 출렁이는 것이 그의 정액이었으면. 감히 아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히트 사이클이라도 온 듯 페로몬이 저를 지배하는 듯했다.

“후, 흐… 하, 하.”

“윤조야, 숨 크게 쉬어.”

“하아… 흐, 으응… 흡.”

“천천히.”

얌전히 먹히고 있던 손가락이 천천히 벌어졌다. 정한은 꼼꼼하게 내부를 확인한 뒤에야 삽입을 시도했다.

의사의 말대로 침대에 모로 누운 윤조는 저를 이불처럼 덮고 있는 정한을 올려다보았다. 정한의 신중한 태도가 꼭 집도하는 의사처럼 보였다. 그가 시선을 들어 눈을 마주했다. 윤조는 숨을 홉 들이마시며 애써 긴장을 멀리했다.

회음부와 주름 위를 가늠하듯 비비던 정한의 귀두가 움푹 쑤시고 들어왔다. 바닥까지 적신 터라 충분하다 여긴 제 예상과 달리 정한의 확인이 없었다면 꽤 고전했을 테다. 고작 몇 달 닫혀 있었던 통로가 빠듯하게 벌어지며 정한을 삼켜대었다. 아니, 윤조는 자신이 먹히는 듯했다.

“윽…!”

“아파?”

“아뇨, 아프진 않은데… 너무 꽉 차요….”

“그래서 싫어?”

“…좋아요.”

정한이 웃으며 엉덩이를 쓸어주었다. 윤조는 제게 몸을 숙여 입을 맞춘 정한을 보았다. 그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움직여도 돼?”

아직도 꾸물꾸물 들어오고 있는 그였다. 윤조는 정한의 까만 눈동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천천히….”

“그래, 천천히.”

“하… 후….”

“괜찮아?”

“네… 좋아요. 너무… 하, 좋아서…, 울 것 같아….”

“울어. 침대잖아.”

입가에 웃음을 지은 정한이 제 노곤한 숨을 구경하듯 삼켰다. 윤조는 정한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그를 제게 당겨 입을 맞추었다. 끈적이는 침이 제 허벅지를 적신 물만큼이나 시트를 적셨다.

“으음, 응… 하, 흐….”

“조금, 빠를 거야.”

“아… 하, 좋아….”

“좋아?”

“응…. 너무 좋, 아요….”

“나도 좋아.”

얼굴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치우며 정한이 정중하게 입을 맞추었다. 윤조는 침대를 디디고 있는 정한의 손목을 그러쥐고 가까이 당겼다. 제 몸이 바닥에 넘실거리는 그의 페로몬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천천히.”

“으응…, 더 해주면, 안 돼요?”

“이렇게?”

윤조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정한의 손목에 입술을 대었다. 은근한 자극에 애가 탈 때마다 그의 피부를 혀로 핥고 또 빨았다. 정한이 넘칠 듯 말 듯 저를 자꾸만 놀려대었다.

“자꾸, 우네.”

좋다는 말은 부족했다. 윤조는 그가 계속해서 제게 머물길 바랐다. 눈물로 눈가가 짓물러 가도 그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정한은 담당의가 지도해준 것보다도 꼼꼼하고 정확한 움직임으로 저를 달래주었다. 윤조는 기분 좋게 제 욕구를 잠재워 갔다.

“이제 좀 살 만해?”

“네… 딱 하나만 더…, 있음 좋겠어요.”

윤조의 마음을 어렵지 않게 읽은 정한이 배앓이를 핑계로 사정은 모두 제 입에다 해주었다. 윤조는 정한의 정액을 마시며 그날의 저녁 식사를 마쳤다.

이런 날이 여럿이었다. 윤조는 자주 저녁을 반만 먹고 나머지는 정한의 정액으로 배를 채웠다. 태동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제 불순한 저녁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꼭 태동뿐만이 아니더라도 무더운 여름을 지나며 무럭무럭 배가 자라 숨쉬기도 어려워진 참이라 은밀한 저녁 식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여기서 배가 더 커진다는 게 믿을 수 없어요.”

처음에는 낯설던 마사지도 이제는 부탁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제가 보기에는 배가 터질 것 같은데 둘 치고는 작다고 하니 만삭일 때가 도무지 상상되지 않았다.

어찌나 걱정했던지 배가 찢어지는 꿈을 자주 꾸었고, 윤조의 얘기를 들은 정한이 병원에 자주 검진을 받게 했다. 늘 아무 문제 없다는 대답을 들었지만, 그래야만 잠을 잘 수 있는 윤조였다.

“저는 도련님이 이리도 말씀이 많으신 분이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멀찍이 선 자리에서 무언가를 펜으로 정리하던 이 비서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잔소리가, 잔소리가….”

질린 얼굴로 고개를 내저은 이 비서를 향해 황 집사가 눈짓을 주었다. 그제야 입을 다문 이 비서가 슬그머니 자리를 비웠다.

“사장님이 잔소리하세요…?”

“잔소리는요. 다 윤조 님 챙기는 말씀입니다.”

“잔소리네요.”

“하하하하.”

황 집사가 의미 있게 웃었다. 그때였다. 윤조는 제 배가 불룩하게 튀어 오르는 것을 보고 놀라 숨을 멈추었다.

“보셨어요?”

“예, 봤습니다.”

“와… 이렇게 선명한 거 처음 봐요.”

“그럼 전 잠시….”

“어디 가세요?”

“보고를 드리러….”

“보고, 요?”

“네. 어떤 이벤트도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되어서요.”

마사지를 끝낸 황 집사가 주변 정리를 하고 몸을 일으켰다. 윤조는 느긋하게 앉아 총총히 사라지는 황 집사를 보았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정한이 아침마다 그들이 자신이라 생각하고 마땅히 대접받으라는 말을 하고 갔으므로 그러기로 했다. 거동이 어려운 저와 말동무를 하러 찾아오는 권 회장의 불편도 당연하게 여겼다.

“어딜 걸어와. 앉아 있어.”

“종일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가 짓무를 것 같아요.”

서둘러 다가온 권 회장이 멀찍이 앉았다. 배에 닿은 시선이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오늘 하루는 어떠셨어요?”

자주 봤더니 서로가 좋아하는 이야기도 바닥이 났다. 윤조는 자신이 권 회장과 서로의 일과를 묻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게 자연스러워진 것도.

“복잡한 얘기 해도 돼?”

“들어 드릴게요.”

“그거 고맙네.”

권 회장은 언젠가 둘을 알게 된 사람 같았다. 특별히 자각한 순간은 없지만, 언제부턴가 안정감이 느껴졌다.

“다음이 문제야, 다음이 문제.”

그는 두베의 제일가는 부자인 만큼 열정이 넘치는 알파였다. 불 같은 성미답게 하는 일도 거침없어서 회장직에 있으면서도 어느 하나 가만히 두는 게 없었다. 그의 사업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윤조는 저도 모르게 솔깃해지고는 했다. 꼭 그가 자신을 회사로 부를 것처럼 꼬드겨댔기 때문이다.

“고르고 골랐는데 영 탐탁지 않아. 정한이가 의사 하겠단 뜻만 없었어도….”

“어머니 일 있고 나서 의사 꿈꾸셨다고 들었어요.”

13구역의 수도라고 칭해지는 두베의 제일가는 부자도 병마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 그러니 내가 그 마음에 어떤 반기를 들겠어.”

“글쎄요. 꼭 그 이유가 아니라도 아버님… 정한 씨 하는 대로 두셨을 것 같은데.”

“그래?”

“네. 그게 정한 씨 잘못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아버님은 늘 평탄히 걸을 수 있게 길을 닦아주시니까. 저한테 정한 씨도 그래요. 무조건 밀어주거든요. 그러고 보면, 두 분 참 많이 닮았어요.”

“정한이가 들으면 기겁하겠네.”

“그래도 틀린 얘긴 아닌 것 같아요.”

“차암, 겁이 없어.”

“그래서 저 좋으시죠?”

권 회장은 대답하지 않고 황 집사가 내어온 차를 꿀꺽 삼켰다. 곧 뜨겁다고 발을 동동 굴러 대는 참에 윤조는 부른 배를 잡고 하하하 웃었다.

“정한이 뒤에 숨기 바쁘던 놈이.”

혀를 찬 권 회장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웃음을 지었다.

“내가 그땐 참 막무가내였지.”

“저도 일정 부분 그런 것 같아요. 요즘 황 집사님 보면서 과거의 제 이력에 대해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알면 됐어.”

차를 식혀 호로록 마신 권 회장이 정한이 도착한 소음에 귀를 쫑긋했다. 윤조는 그가 정한을 맞이하는 모습을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조용히 관망했다. 여전히 별말 없는 부자 사이이긴 했지만,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진 게 보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렇게 둘의 분위기를 살필 일도 없어질까. 윤조는 뒤늦게 소파를 짚고 일어나 정한을 맞이했다. 남에게는 잔소리 많은 그가 일절 내색도 없이 저를 챙기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 * *

앙상한 몸에 배만 볼록했다. 정한은 윤조를 볼 때마다 속이 타다 못해 문드러지는 듯했다. 저 몸을 하고서 표정은 어찌나 밝은지. 그는 늘 제게 어른이다, 멋지다, 대단하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말을 그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왜 멈췄어요?”

바로 앉을 수도 없어 늘 등을 기대고 있는 참이라 원하던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정한은 태교 대신으로 윤조가 공부하고 싶어 하는 것을 매일 읽어주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감상이 지나쳤던 탓인지 그만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윤조가 웃으며 볼을 꼬집었다. 정한은 책을 내려놓고 그에게 몸을 기울여 입을 맞추었다. 꼼짝없이 기대앉아 있는 윤조가 제 배를 매만지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정한은 윤조의 손등 위로 제 손을 덧대었다. 눈치를 주는 아들들이 얄밉기 그지없었다.

“누굴 닮아서 이렇게 말이 많을까요?”

윤조는 배 속의 아이들이 발길질할 때마다 제게 말을 건다고 표현했다. 그 말 많은 아이들이 말을 거는 때가 꼭 제가 윤조에게 애정을 표현할 때니, 정한으로서는 어디 나오기만 해 봐라, 하는 마음이 되었다. 어째 점점 어린애가 되어 가는 마음이라 정한은 열심히 표정을 갈무리해야 했다.

“아빠 잔소리를 닮아 가나…?”

그 탓에 윤조가 중얼거리는 말을 듣지 못했다.

“응?”

“아뇨. 계속 읽어주세요. 당분간 입원하면 공부는 손도 못 댈 거니까.”

이틀 뒤로 예정된 입원을 이야기할 때마다 윤조는 굳은 표정을 보였다. 몸에 칼을 대는 공포가 상당한 듯했다. 그런 그가 저를 구하려고 몸에 상처를 내어 가며 뛰어든 건, 어쩌면 운명이지 않았을까. 이런 결말의 예고편 같은.

“왜 또 멈췄어요? 자꾸 나 보네? 왜요? 또 예뻐요?”

“어. 예뻐.”

“그렇게 예쁘면 예뻐도 해주지.”

정한은 윤조의 배 언저리를 손으로 덮어 싸고 그에게 다시 몸을 기울였다. 숨죽인 아이들의 침묵 속에 정한은 꽤 오랫동안 윤조에게 머물렀다. 윤조가 매달리듯 당겨댄 옷깃에 조금씩 주름이 더해졌다.

* * *

연둣빛 봄 새싹도 청명한 여름의 녹음도 모두 지나고, 잎이 붉게 물든 가을에 이르렀다. 윤조는 숨을 짧게 끊어 쉬며 창밖 너머의 풍경을 응시했다. 페로몬 불균형으로 괴로웠던 게 언제였을까. 임신한 뒤로 하루하루 달라지는 몸의 변화를 맞이하느라 자신이 왜 임신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도 잊고 지냈다.

“서윤조 씨.”

부름에 고개를 돌리자 병실에 들어선 간호사가 보였다. 윤조는 대답도 하지 않고 우선 정한부터 찾았다. 제 손을 잡고 있던 정한이 몸을 일으켜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오래 기다려온 만남과 잊은 듯 지내온 제 병의 쾌유가 찾아온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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