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5. 두 항해사 (6/18)

05. 두 항해사

해가 중천에 떴다. 쨍쨍 내리쬐는 뙤약볕이 뜨거운 열을 머금었다. 햇빛은 볕이 들지 않는 곳이 없도록 자상하게 세상을 보듬었다. 높은 언덕에 지어진 작은 판잣집까지도 말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자, 잠기지 않는 철문이 요란하게 삐걱거렸다. 바람이 스며든 집은 대체로 깔끔했다. 한쪽 벽에는 벽에 바짝 붙은 침대 하나가 있다. 침대 위에는 두 청년이 한 몸처럼 뒤엉켜 잠든 채였다.

침대 바로 옆에는 달달거리는 선풍기가 힘겹게 바람을 만들었다. 고작 머리카락이 살랑거리는 정도였지만, 그조차도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가웠다. 그 옆에는 사람 하나 서기에도 벅찬 작은 싱크대가 있다. 싱크대 위에는 각종 식기가 꼭 두 개씩 한 쌍을 이루어 나란히 정리되어 있었다.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고, 신식보다는 구식에 가까운 집이었지만, 곳곳에 사랑이 묻어 다정함을 자아냈다. 애정으로 가꾸고, 조금씩 쌓아 둔 시간이 드러나는 집은 침대 위 두 청년에게 소중한 공간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두 사람이 함께 맞은 휴식이었다.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탓에 매일 나가던 공사 현장에서 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노동자의 복지라나 뭐라나. 아무튼 그렇게 갑자기 맞게 된 휴식은 한가롭고, 또 포근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밀린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던 두 사람은 한 침대에 몸을 뉘고서 달콤한 낮잠을 청하는 중이었다. 도준의 팔을 베고 누운 희찬이 잠들기 무섭게 도준을 끌어안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으응…….”

희찬이 도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더워…….”

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희찬을 밀어냈다.

“으으응.”

“조금만 떨어져 봐.”

“아, 싫어.”

도준이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희찬의 단단한 팔은 더욱 세게 도준을 옭아맸다.

“일어나자.”

결국 도준이 먼저 일어났다. 온몸을 휘감은 희찬의 팔을 걷어 내자 희찬이 도준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올리고 뾰로통한 눈을 떴다.

“왜, 조금만 더 누워 있자.”

“나가서 눕자. 더워.”

도준의 손이 부드럽게 희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흩어지는 머리카락을 쥐었다가, 다시 놓아주길 반복하는 도준이 다정하게 희찬을 바라봤다.

“밖에 바람 불어?”

“선풍기보다 시원한 거 같아.”

오물오물 움직이는 빨간 입술이 예쁘다. 도준은 하염없이 희찬을 바라보다가 그 입술 위에 입을 맞췄다. 희찬의 입꼬리가 예쁘게 휘어졌다. 갑작스러운 도준의 뽀뽀가 마음에 드는지, 희찬도 고개를 들어 도준의 입에 입을 맞췄다.

“비나 오면 좋겠다.”

“그럼 빨래 걷고 비 오게 해 달라고 하자.”

몸을 일으킨 도준이 희찬의 눈앞으로 큰 손을 디밀었다. 희찬의 또렷한 눈이 도준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살폈다. 딱 5분만 더 누워 있으면 여한이 없겠건만, 부지런한 이도준은 잠시도 누워 있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희찬도 곧 체념했다. 눈앞에서 휘적거리는 도준의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해가 뜨거운 탓에 아침에 널어 둔 이불이 금세 말랐다. 홑겹의 얇은 이불이 금방 마를 것은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빨리 마를 줄은 몰랐다.

바람을 따라 흙먼지가 일었다. 혹시 이불에도 먼지가 묻었을까, 두 사람은 이불의 양쪽 끄트머리를 잡고 ‘하나, 둘’ 구호를 붙여 가며 이불을 털었다.

얇은 파란색의 이불이 두 사람의 힘에 따라 펄럭거렸다. 위로 크게 부풀었다가 아래로 쑥 꺼지는 형태를 보이던 이불은 이내 도준의 어깨에 얹혀 방 안으로 휙 던져졌다.

이불을 방 안에 던져 둔 두 사람은 마당의 평상 위에 나란히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청명한 하늘에서 곧장 쏟아지는 햇살이 뜨거웠지만, 그래도 후덥지근한 집 안에서 서서히 익는 것보다는 나았다.

도준의 손이 희찬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었다. 그저 얼굴만 가리는 그늘이었음에도 그게 제법 시원했다. 희찬은 만족스러운 듯 웃더니 이내 우산을 팡 펼쳐 들었다.

“이리 들어와. 좀 덜 더워.”

“파라솔을 살까?”

이따금 보이는 도준의 엉뚱한 면모가 재밌다. 우산을 펼쳤더니 금세 파라솔을 생각하는 도준 덕분에 희찬의 입에서 커다란 웃음이 터져 흘렀다.

“됐네요. 그거 또 어느 세월에 펼쳤다 접었다 해.”

“왜, 피서지 느낌도 나고 좋겠는데.”

“강씨 아저씨한테 물어볼까? 파라솔 같은 거 있냐고?”

희찬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곧은 팔로 평상을 짚고서 윗몸을 세워 눈을 반짝거리는 것이 사뭇 예뻤다. 도준도 환한 미소를 피웠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때는 언제고, 금세 동네 고물상 아저씨를 찾는 희찬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어느새 희찬의 하얀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다. 밖으로 나오면 해가 뜨겁고, 해를 피해 집으로 들어가면 바람이 없다. 폭염은 이 작은 동네에도 자비 없이 몰려들어 기어코 사람을 괴롭혔다.

“응, 근데 일단 너 수박부터 먹자.”

도준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은 뭐라도 시원한 것을 먹여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없이 산다지만, 그래서 아무거나 잘 먹고 지낸다지만. 하다 하다 더위까지 먹이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 돈 얼마 남았지? 전기세 내고 할 돈 있나?”

“응, 있어. 잔업 했던 거 어제 돈 다 받았잖아.”

도준이 지난 밤 가득 채워 둔 돈통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더운 날 수박 한 통 사 먹을 돈이 없어 걱정하는 것이 새삼스럽다. 언제라고 마음 편하게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은 것도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유달리 속이 쓰렸다.

처음 보육원에서 나올 때, 성인이 다 되도록 입양도 가지 못하고 독립하는 두 사람에게 원장이 쥐여 준 돈은 각 100만 원씩이었다. ‘자식같이 키운 너희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는 용돈이니 귀하게 쓰라.’라는 잔소리는 덤이었다.

이 나라는 고아에게 퍽 관대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병역의무에서도 고아는 제외되었다. 하지만 보육원에서 나온 두 사람은 당장 지낼 곳이 없었고, 선택한 곳이 군대였다. 밥 주고, 옷 주고, 돈도 준다는 그곳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제대 후에는 복무하며 꼬박꼬박 모은 월급과 원장님이 쥐여 준 돈, 그리고 보육원에서 나올 때, 보호 종료 아동에게 국가에서 자립 지원금으로 넣어 준 500만 원씩을 합쳐 산 중턱에 있는 다 무너져 가는 집을 얻었다. 그렇게 이 집은 두 사람이 처음 갖게 된 ‘우리의 것’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상황에서도 돈은 최대한 아끼고 또 아꼈다. 그런다고 모이는 돈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아낀 덕분에 오늘 수박 한 통 정도는 먹을 수 있다.

“그럼 우리 딱 수박 한 통만 사 먹을까?”

“좋아. 가위바위보 해.”

“왜, 네가 사 온다며.”

“내가 언제?”

희찬은 도준의 질문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꾹 말아 쥔 주먹을 내밀 뿐이었다. 도준도 못 이기는 척 주먹을 내밀었다.

“가위, 바위.”

“보!”

“가위, 바위.”

“보!”

“아!”

도준의 고개가 젖혔다. 아쉬운 탄식을 터뜨리며 젖혀진 고개 끝에는 햇살이 닿아 앞머리가 반짝거렸다.

희찬이 부리나케 일어나 방에서 돈을 가져왔다. 구겨진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정성스레 펴서 도준의 손에 쥐여 준 후에는 환하게 웃으며 도준의 등을 떠밀었다.

슈퍼까지 가는 길이 먼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언덕을 내려가야 했고, 이 더운 날 묵직한 수박을 들고 다시 올라와야 했다. 성가신 것을 느낀 도준은 귀찮은 듯 미간을 긁적거렸다.

“가는 길에 강씨 아저씨네 들러서 파라솔 있나 물어봐.”

“응.”

“돈 남으면 아이스크림도 사 와.”

“아이스크림 말고 사이다 사서 화채 해 먹자.”

“좋아.”

경쾌한 결론을 내린 두 사람의 손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도준이 금세 발을 돌려 집에서 벗어났다. 정수리를 곧장 때리는 뙤약볕에 현기증이 날 것도 같았지만, 수박을 먹으면 가실 더위라고 생각하니 기분도 금세 좋아졌다.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에는 까슬한 지폐의 표면이 만져졌다. 꾹 쥐었다가 주먹을 펴 돈이 떠난 후에는 손바닥에 스며들 특유의 돈 냄새가 남겠지. 어딘가 시큼하면서도 눅눅한 향을 떠올린 도준은 쯧, 괜히 혀를 찼다.

기름칠이 되지 않아 삐걱거리는 미닫이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섰다. 동네의 인심을 믿는 건지, 항상 비어 있는 계산대 앞에서 도준은 멀뚱히 주인을 기다렸다.

“어, 도준이 왔어?”

계산대 뒤의 쪽방 문이 열리고 주인이 얼굴을 드러냈다. 인심 좋게 웃어 보인 주인은 바깥으로 나와 반갑게 도준을 맞이했다. 뜨거운 기온은 가게 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잠시 방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더운지, 주인이 선풍기를 바깥쪽으로 돌려 바람을 쐬었다.

“안녕하세요.”

“뭐 줄까?”

“수박 있어요?”

“있지, 우리 수박 엄청 맛있어.”

주인은 금세 큼직한 수박을 들고 나왔다. 무게가 꽤 되어 보이는 무거운 수박을 옮기는 주인의 걸음이 힘겨워 보였다. 도준이 얼른 달려가 수박을 받아 들었다.

돈을 지불하고 보니 남은 돈도 없었다. 화채를 해 먹기로 했는데, 사이다는 1,500원이었고, 손에 남은 돈은 고작 300원이 다였다. ‘외상은 하지 말자.’라는 주의였기에, 화채는 다음번으로 미뤘다.

인사를 마치고 나온 도준이 성큼성큼 걸음을 놀려 집으로 향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것은 퍽 힘겨운 일이었지만, 희찬과 함께 수박을 잘라 먹을 생각을 하니 그마저도 행복했다.

“아, 진짜 너무 높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다. 겨우겨우 집 앞에 다다른 도준은 저도 모르게 잔뜩 수그렸던 허리에 힘을 주고 몸을 젖혔다. 허리에서 우두둑, 뼈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왔어?”

“응. 아, 너무 더워.”

“사이다는?”

“수박이 비싸더라.”

“그래? 그럼 수박만 먹자. 앉아, 잘라 줄게. 강씨 아저씨한테 가 봤어?”

아, 깜빡했다. 뭘 빼먹었다 싶었더니 고물상에 들르는 것을 잊었다.

도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희찬이 피식 예쁜 웃음을 보였다.

희찬은 도준이 없는 사이에 최대한 시원하게 수박을 즐기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 냉동실에 꽁꽁 얼려 둔 얼음을 왕창 들고 나와 투명한 볼에 담고, 멀티탭을 연결해 바깥에다 선풍기까지 틀어 놨다. 바람이 부는 덕일까, 선풍기는 집 안에서보다 훨씬 좋은 바람을 만들어 냈다.

평상 위에 시원한 여름이 앉았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 해변도 아니고, 고즈넉한 산속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휴가철의 여유를 만끽하기에는 충분했다.

“우리 내년에는 계약금도 받고 할 거니까, 꼭 피서가자.”

“그래, 좋아.”

“근데 촬영 스케줄 바빠서 못 가면 어떡하지?”

“그럼 겨울에 따뜻한 나라에 가면 되지.”

“아! 생각만 해도 너무 좋아.”

제법 진지하게 서로를 쳐다보던 두 사람의 낯이 장난스레 휘어지더니, 이내 동시에 커다란 웃음이 터졌다. 파하게 터지는 웃음소리는 시원하고 경쾌했다.

물론 꿈같은 일이다. 단역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도 몇 달 되지 않은 데다가 아직은 이렇다 할 캐스팅이 없었기에 ‘계약금’이라는 말은 아직 머나먼 일만 같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꿈을 꾼다는 것 자체에 만족을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꿈을 갖고, 같이 걷는 일은 실로 행복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희찬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수박을 도준에게 건네었다. 수박을 받아 든 도준은 희찬이 든 수박에 제 수박을 부딪쳤다. 마치 술잔을 부딪치는 모양에 희찬이 크게 웃었다.

“짠 한 거야?”

“응.”

“우리의 성공을 위하여?”

희찬이 샐룩 웃으며 건배사를 읊었다. 고개를 비스듬히 꺾는 희찬의 모습에 도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아저씨 같아.”

“좋은 말로 할 때 장단 맞춰.”

“위하여!”

조심스럽게 부딪쳤던 수박이 다시 세게 부딪쳤다. 그에 수박의 끄트머리가 평상에 떨어졌지만, 그마저도 즐거운 두 사람은 와하하!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의 소소한 웃음소리가 동네 골목골목으로 퍼져 흘렀다.

*

어느새 여름의 무더위가 많이 가셨다. 길기만 했던 해의 꼬리가 차츰차츰 짧아지고, 따갑게만 느껴지던 볕도 한껏 수그러들었다.

덮쳐 오는 어둠에서 도망이라도 치듯 거칠게 덜컹거리던 버스가 멈췄다가 다시 요란하게 출발하기를 반복했다. 도준은 제일 뒷자리에 앉아 종점을 기다렸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창밖에는 익숙한 풍경이 하나, 둘 자리하기 시작했다. 언제 봐도 반가운 동네에 다다른 버스가 이내 푸르르, 기운 빠지는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뒷문이 열리자마자 도준이 버스에서 뛰어내렸다. 도준과 비슷한 타이밍에 앞문으로 내린 기사님의 모습에 도준은 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금세 뒤로 돌아 예의 바른 인사를 건네었다.

“기사님 감사합니다.”

“도준이 오늘도 수고했다.”

“기사님도 고생하셨습니다!”

그런 도준의 등을 뿌듯하게 보는 눈이 있었다. 도준이 언덕을 다 올라가는 것까지 지켜보는 것을 제 하루의 마무리로 생각하는 버스 기사가 뒷짐을 진 채로 도준을 바라봤다.

장희찬과 이도준. 이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잘난 두 청년은 ‘요즘 애들’답지 않게 참 성실하고 밝았다. 빠듯한 삶에 지친 이 동네 어른들에겐 저들의 긍정적이고 활기찬 모습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매일 아침 새벽 5시 반. 여름에는 푸르른 해가 떠오르고, 겨울에는 짙은 땅거미가 내려앉는 시각에 출발하는 첫차는 도준의 일상이었다. 그리고 밤 12시 반. 어스름이 깔리다 못해 드문드문 길을 밝히는 주황빛 가로등까지 끔뻑거리는 시간이 되어야 도준의 하루도 마무리가 된다.

“아이고……. 무릎이야.”

마을버스는 저 윗동네까지는 운행하지 않는다. 산 중턱의 마을에서도 가장 윗동네에 있는 집까지 오르는 내내 도준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한 발, 한 발 발을 디딜 때마다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어두운 골목 곳곳을 깜빡거리는 주황빛 가로등이 비추었다. 대체로 지붕이 낮고, 허름한 모양을 한 집들은 그럼에도 아기자기하게 모여 다정한 마을을 이루었다.

얼핏 보면 초라한 동네라 할 수 있겠으나, 곳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따뜻하고 정이 많은 동네였다. 어른들은 마을에 유일한 젊은이인 두 사람에게 한없는 온정을 베풀었다. 비가 오면 후다닥 달려와 빨래 걷으라며 재촉하기도 했고, 간혹 맛있는 반찬을 하면 ‘아들 같아서.’라는 말과 함께 나눠 주기도 했다.

그래서 힘들어도 좋았다. 부모 없이 자란 두 사람에게는 남들에겐 하나밖에 없는 부모가 수십 쌍이 생긴 격이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래도…….”

이 길은 오를 때마다 참 벅차다. 벌써 1년이 넘게 매일 오르는 길인데도, 참 높다.

“희찬이 있으면 덜 힘들 텐데.”

도준이 허리를 펴고 뜨거운 숨을 뱉어 냈다. 이 긴 언덕길을 오를 때 희찬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혼자 걸을 때는 ‘언제 도착하나.’ 하며 하염없이 걷게 되는 길이었지만, 이상하게 희찬과 함께 걸을 때는 유달리 길이 짧았으니 말이다.

“도준아!”

그저 희찬을 떠올렸을 뿐인데 등 뒤에서 희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준이 걸음을 멈추고 냉큼 뒤로 돌아 상대를 확인했다. 저 아래서 뛰어 올라오는 사람을 본 도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도준, 같이 가!”

“뭐야?”

“뭐가 뭐야, 나도 이제 끝나서 왔지.”

당연히 집에서 자고 있을 줄 알았던 희찬의 모습이 왜 이렇게 반가운지 모르겠다. 도준이 제게로 한달음에 달려오는 희찬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희찬은 기다렸다는 듯이 도준에게 달려들어 그 품에 와락 안겼다.

“오늘 늦게까지 했네? 고생했어.”

“아, 택시 타느라 용돈 다 썼어.”

도준이 두 팔에 힘을 주고 희찬을 있는 힘껏 안았다. 희찬의 귀여운 투정에는 작은 머리통을 정성스레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두 사람은 각자가 번 돈을 한곳에 모았다. 그리고 혹시 모를 비상시를 대비해 일주일에 3만 원씩 용돈을 나눠 가졌다.

희찬은 그 용돈을 종종 촬영이 늦게 끝나는 날 택시비로 사용했다. 도준은 매일 점심, 저녁을 해결하는 데에 사용했다. 아주 적은 돈이었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어떻게든 아껴 쓰려 노력했다. 그렇게 아껴서 남긴 돈은 서로의 생일이나 혹은 축하할 일을 대비해 다시 각자의 저금통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

“조금 더 가져가. 아직 주 초잖아.”

도준이 싱그러운 미소를 보였다. 작고 부드러운 희찬의 얼굴을 두 손으로 거머쥐고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는 빨간 입술 위에 입을 맞췄다.

화려한 낯을 휘어 웃어 보인 희찬이 도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서 경쾌한 걸음을 놀렸다.

“임 감독님이 다음 주에는 너랑 같이 오라고 하셨어.”

“그랬어?”

자신을 찾는다는 감독의 말에 도준이 환하게 웃었다 언제, 어디서든 자석처럼 함께하던 두 사람이 함께 공사판에 가던 일은 이제 아득한 과거가 되었다. 그렇다고 함께 촬영장에 가는 일이 흔한 것도 아니었다. 어쩌다 한 번씩 이미지에 맞는 단역 자리가 생길 때마다 걸려 오는 전화에 한 명이 촬영장으로 나가면, 다른 한 명은 공사판에 나가 돈을 벌었다.

같이 촬영장에 가는 것보다 한 명이라도 일용직을 하는 것이 벌이가 나은 탓이었고, 한 명이 일하러 나갔다고 해서 다른 한 명이 쉬었다가는 큰일이 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어, 불 안 들어온다.”

이렇게 전기가 끊기는 일 말이다.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신발장 바로 옆에 있는 스위치를 눌렀다. 하지만 스위치는 틱틱 소리만 낼 뿐 방을 밝히지 못했다.

“아, 어제 내러 간다는 게!”

여름 내내 공사판이 한가해 출근하지 못했다. 당연히 돈을 벌 수 없었고, 전기세도 내지 못했다. 나름대로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도 하고, 마트 정리 아르바이트도 했는데 그 돈으로는 먹성 좋은 두 청년이 생활하기에는 빠듯하기만 했다.

“내일 일어나면 제일 먼저 전기세부터 내러 가자. 오늘만 어둡게 자자?”

“음, 근데…….”

두 사람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가슴이 부풀 정도로 큰 숨을 들이켰다가 다시 훅 내쉰 희찬은 곤란한 것이 있는 듯 괜히 쭈뼛거렸다.

“왜, 씻는 거 때문에?”

“응, 불 안 들어오는 거 싫은데.”

“내가 밖에서 손전등 비춰 줄게. 먼저 씻어.”

도준은 신발장 위에 얹어 둔 손전등을 흔들어 보였다. 장난기 많고 무서운 것이 없는 장희찬이 무서워하는 것이 하나 있다.

어둡고 조용한 공간에 혼자 있는 것.

나이 먹고 그런 게 뭐가 무섭냐고 놀릴 법도 했지만, 도준은 절대로 희찬을 놀리지 않았다.

희찬은 여섯 살 생일날, 터널에서 일어난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다. 그 때문일까. 어둡고 조용한 공간에 혼자 있을 때면 사고 직후의 적막이 떠오른다고 했다. 당연히 그런 희찬을 두고 놀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희찬에게는 공포의 대상일 어둠을 같이 견뎌 주고 싶은 도준이었다.

도준이 희찬의 어깨를 쥐고, 자신의 품으로 들였다. 한쪽 어깨를 단단히 거머쥔 도준의 손이 제법 믿음직스럽다.

도준과 희찬이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많은 집은 화장실도 다른 건물로 분리되어 있었다. 몇 발자국 걸어 화장실에 도착한 도준이 희찬을 문 안으로 떠밀었다. 문을 빼꼼 열고서 손전등으로 화장실을 훤히 비춰 주자, 희찬이 언짢은 표정으로 도준을 바라봤다.

“너부터 씻어. 너 지금 되게 씻고 싶다는 얼굴이야.”

“들켰어?”

“응, 들켰어.”

“그럼 같이 씻어. 피곤한데 빨리 씻고 자자.”

도준이 희찬과 함께 화장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세면대 위에 어정쩡하게 올려놓은 손전등이 뒤집혀 천장을 비추었고, 천장 타일에 빛이 산산이 부서지며 화장실을 밝혔다.

도준은 금세 옷을 훌렁 벗어젖혔다. 얇은 티셔츠를 벗어 내자 보기 좋게 자리한 예쁜 근육이 드러났다. 일부러 만들어도 갖기 힘들 형태의 예쁜 근육을 도준은 타고났다. 그를 가만히 지켜보던 희찬이 짓궂게 인상을 찌푸렸다.

“너어는 진짜. 옷 아무 데서나 벗지 마.”

도준은 어느새 나체였다. 신이 정성 들여 빚은 것이 분명한 그 몸은 탐스럽고, 아름다웠다. 도준이 곧게 뻗은 다리를 성큼성큼 놀려 샤워기 가까이 다가갔다. 천장 가까이에 걸린 샤워기를 손에 쥐더니 여전히 옷을 입고 있는 희찬에게로 샤워기 헤드를 돌렸다.

“너나 빨리 벗어. 물 튼다?”

“아, 잠시!”

장난기가 물씬 묻어나는 도준의 목소리에 희찬의 손이 분주해졌다. 희찬이 한 겹 한 겹 벗어 낼 때마다 매력적인 몸매가 드러났다. 조각조각 갈라진 근육부터 탄탄한 허벅지며, 도준의 것과 다르지 않게 쭉 뻗은 다리가 하얗고 매끄러웠다.

두 개의 조각상이 한 곳에 섰다. 키가 큰 탓에 천장에 곧 닿을 것 같은 정수리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샤워기를 고정한 후에는 쏟아지는 물줄기를 함께 맞았다.

“아, 장희찬. 가만히 있어. 너 그러다 미끄러져.”

“눈 따가워. 아, 이거 불 없으니까!”

“있어 봐, 야, 잠시만.”

손전등마저 배터리가 다 된 모양이다. 깜빡거리던 불이 뚝 꺼지니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어둡던 욕실에서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도준의 단단한 손이 휘청거리는 희찬을 꽉 부여잡았다. 도준은 미끄러운 타일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희찬을 먼저 씻겨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이 묻은 몸 위에 비누를 묻혀 바르자 희찬의 몸이 움찔거렸다. 희찬은 도준의 단단한 어깨를 붙잡은 채로 온몸에 힘을 주고 떨리는 호흡을 삼켰다.

시야가 차단되니 몸에 닿는 감각이 더욱 예민해졌다. 도준의 손이 닿는 자리마다 열꽃이 피는 것 같았다.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흠칫흠칫 놀라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흣.”

“너는…… 이 와중에도.”

도준의 손에 빳빳하게 선 희찬의 페니스가 닿았다. 도준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희찬을 쳐다봤다. 어두운 와중에도 희찬의 얼굴이 붉어졌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희찬의 고개가 푹 수그러졌으니, 의심할 것도 없었다.

“……생리현상이야. 그러는 너는, 이거 뭔데?”

“읏…….”

희찬의 손이 도준의 페니스를 툭 건드렸다. 바짝 서기는 제 것도 같으면서 놀리고 드는 것이 괘씸했다.

순식간에 욕실이 달아올랐다. 도준의 손이 능숙하게 제 페니스와 희찬의 페니스를 한 번에 거머쥐었다. 귀두가 부딪치는 느낌에 전신의 털이 쭈뼛 섰다. 아랫배에 피가 몰렸다. 불끈 솟은 페니스가 한 곳에 어우러지며 쓰다듬는 손길에 요도가 저렸다.

“아, 야.”

“좋잖아.”

“아, 제대로 쥐어.”

“응, 어깨 꽉 잡아, 허리 힘주고.”

도준의 어깨를 거머쥔 희찬의 손에 힘이 실렸다. 하얀 손에 푸른 핏줄이 불끈 솟았다. 희찬의 입에서 달뜬 숨이 나왔다. 뜨거운 기운을 머금고 훅 빠져나온 숨이 도준의 귀에 닿았다. 도준은 아랫입술을 잘근 씹어 문 채로 페니스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도준의 손이 귀두 아랫부분을 조이고, 귀두 끝의 갈라진 부분을 엄지손가락으로 매만지자.

“아!”

“흐…….”

두 사람 입에서 동시에 거친 숨이 터졌다. 조금씩 새어 나오는 쿠퍼액이 손을 적셨다. 물기가 다 마른 손이 젖는 것을 느낀 도준은 보다 더 거칠게 페니스를 흔들었다.

희찬의 허벅지가 잔잔하게 떨렸다. 허리에 힘을 바짝 준 채로 몸을 곧추세우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푹 쓰러질 것 같았다.

“으읏, 아…….”

“후으.”

희찬의 작은 엉덩이가 한껏 오므라들었다. 이내 진득하고 새하얀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이윽고 도준의 페니스에서도 정액이 뿜어져 나왔다. 사정을 맞은 두 사람은 헐떡이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희찬은 도준의 어깨를 짚은 채로 제법 오래간 숨을 골랐다. 오랜만에 한 발 뺐더니 유달리 여운이 길었다.

“들어갈까? 감기 걸리겠다.”

“으응. 아, 현타 와.”

“왜. 한두 번도 아닌데.”

“불 꺼진 화장실은 처음이잖아.”

희찬은 이내 도준의 어깨 위에 머리를 묻고 입술을 삐죽거렸다. 도준의 말대로 분명 한두 번도 아닌 일이었다. 몸을 섞는다거나, 서로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은 흔한 일상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역시, 이 좁아터진 화장실에서 그것도 불도 안 들어오는 그 안쓰러운 상황에서 열을 내며 정액을 뿜어낸 것은 쑥스럽다.

도준의 낮은 웃음이 희찬의 머리를 간질거렸다. 작은 숨에도 흐트러지는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희찬이 더 깊숙이 도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샤워를 마친 두 사람의 몸이 침대 위에서 포개졌다. 얇은 홑이불을 가로로 돌려 겨우 배만 덮고서 서로를 꼭 껴안은 두 사람은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오늘 촬영장에서 백기령 선배 봤다?”

“우와, 어땠어? 좋았겠다.”

“진짜 대박이더라. 저래서 대배우, 대배우 하나 싶었어. 오늘 되게 어려운 씬도 있었는데…….”

희찬이 도준의 가슴에 입술을 가져다 댄 채로 우물우물 즐거운 소식을 전했다.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는 것은 두 사람에게는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이었다.

도준이 소중한 보석을 품듯 희찬을 품에 들이고서 쉬지 않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들뜬 희찬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지친 몸도 다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하얀 달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거닐었다. 꿈을 피워 내는 만면이 휘영청 밝은 달빛에 더욱 화사하게 빛났다.

지저귀는 새의 노랫소리에 도준이 미간을 좁혔다. 역시 첫 타임부터 야간 잔업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건 무리였던 걸까. 몸 구석구석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

겨우겨우 윗몸을 일으켜 앉은 도준은 제 허리를 꼭 감싸 안은 채로 잠든 희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가 그새 많이 길었다. 한번 자를 때 눈썹 위로 껑충 올려 앞머리를 자르던 희찬인데, 어느새 눈을 다 가릴 정도로 자란 앞머리가 시간의 흐름을 알려 주었다.

잠든 희찬의 말랑한 볼 위에 입을 맞춘 도준이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나눠 덮었던 이불은 세로로 돌려 희찬의 몸 위에 가지런히 얹어 주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도준이 대충 손에 걸리는 바지를 챙겨 입었다. 목을 왼쪽으로 훅 꺾자 뚜두둑 요란한 뼈 소리가 났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뒤에는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냉장고 문을 열었다. 희찬이 일어나기 전에 맛있는 아침을 차려 주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도준의 눈에 딱히 꽂히는 재료가 없었다.

달걀프라이를 해 줄까 했는데 달걀이 없다. 그럼 소시지라도 구워 줄까, 찾아보아도 그 역시 없다.

“그럼…….”

아무래도 나가서 사 오는 게 좋겠지.

도준은 주머니에 넣어 뒀던 어제의 일당을 떠올렸다. 아직 돈통에 넣지도 않았으니, 주머니에 그대로 있을 터였다. 주머니에 든 흰 봉투가 제법 두툼하다. 그간 받지 못한 일당까지 한 번에 몰아 받은 덕이었다.

한 번에 받은 두둑한 지폐가 뿌듯해, 싱긋 웃었던 도준은 딱 필요한 돈만 꺼냈다. 만 원짜리 한 장, 오천 원짜리 한 장. 그리고 나머지는 희찬과 함께 돈을 모으는 철제 틴케이스 안에 밀어 넣었다. 제법 수북하게 쌓인 지폐가 퍽 든든했다.

“희찬아, 나 슈퍼 갔다 올게.”

곧장 집 밖으로 발을 디디려던 도준이 발을 돌려 희찬에게 향했다. 성큼 걸음으로 세 걸음이면 도달하는 침대 앞에서 희찬의 머리를 쓰다듬고서 자신의 외출을 알렸다. 혹시나 눈을 떴을 때 없다는 것에 불안해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으응.”

“먹고 싶은 거 있어?”

“나……. 아무거나.”

희찬은 게슴츠레 눈을 뜨고서 도준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그 품에 쏙 안겨 준 도준은 뻐끔거리는 희찬의 입술 위에 입을 맞췄다. 희찬의 입꼬리가 만족을 머금었다.

“좀 더 자.”

도준의 다정한 목소리에 희찬이 이불 밖으로 팔을 쭉 뻗어 손을 흔들었다. 쫙 펴진 손바닥이 살랑살랑 흔들리다 사라졌다. 희찬은 이불 속에서 바르작거리며 몸을 둥글게 만 채로 꼼지락거렸다.

“도준아.”

이제는 정말로 집에서 벗어나려는 도준의 발목을 희찬의 목소리가 붙들었다. 도준은 고개를 뒤로 젖혀 희찬을 바라봤다. 이불속에서 빼꼼 나온 희찬의 눈은 여전히 게슴츠레 뜨인 채였다.

“너 티셔츠 안 입었어. 그러고 가면 안 돼.”

“아…….”

아, 몰랐다. 어쩐지 시원하더라니.

도준이 신을 신은 채로 무릎걸음을 걸어 침대 아래에 떨어진 티셔츠를 주워 들었다. 그런 도준의 머리에 희찬의 손이 툭 닿았다. 예쁜 뒤통수를 소중한 것 어루만지듯 쓰다듬는 희찬의 손이 좋았다. 도준은 떨어져 가는 손바닥 위에 또 입을 맞췄다.

“갔다 와. 얼른 와.”

“응, 너도 안 잘 거면 일어나. 밥 먹고 바로 나가자. 나간 김에 감독님 사무실에 들러서 대본도 받아 오고.”

“으응.”

이내 도준이 희찬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희찬은 침대에 누운 채로 가만히 시간을 곱씹었다.

슈퍼까지 내려가는 데에 3분, 물건 고르는 데에 2분……. 그리고 올라오는 데 5분. 10분 정도 걸릴 거니까, 8분만 더 누워 있어야지.

희찬은 스르르 감기는 눈을 꾹 감았다.

8분만 더 누워 있겠다고 다짐했던 것과 달리 잠들었던 희찬은 코끝을 간질이는 구수한 냄새에 눈을 번뜩 떴다.

그새 돌아온 도준이 티셔츠를 벗은 채로 불 앞에서 고군분투 중이었다. 다행히 전기와 달리 가스는 끊기지 않은 건지, 타닥타닥 먹음직스러운 소리가 났다. 그에 희찬도 슬금슬금 몸을 일으켜 도준에게 다가갔다. 도준의 등 뒤에서 허리를 껴안고 어깨 위에 턱을 괴자 도준의 부드러운 손이 희찬의 볼을 쓰다듬었다.

“일어났어? 너 되게 피곤했나 보다.”

“언제 왔어?”

“나…… 좀 됐어. 가서 씻고 와. 밥 먹게.”

“뽀뽀해 주면 씻고 오지.”

희찬의 말에 도준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졌다. 엉덩이 사이에 허리를 붙이고 몸을 바르작거리다가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 웅웅거리는 희찬의 모습이 마냥 귀여웠다.

혈기 왕성한 20대 아니랄까 봐.

꼿꼿하게 선 희찬의 페니스를 느낀 도준이 난감한 웃음을 터뜨렸다.

“야, 우리 바빠. 아침에 안 돼, 얼른 씻고 와.”

도준의 단호한 손이 희찬을 밀어냈다.

“아, 이건 어쩌고?”

“알아서 해결하고 와.”

“매정한 이도준…….”

항상 말은 잘하지.

정작 도준이 대 주겠다고 누우면 ‘따 먹는 건 성공하고 할 거다.’라며 손으로 해결하는 희찬이었다. 그런 주제에 내는 목소리가 제법 뾰로통한 것이 퍽 웃겼다.

삐죽거리던 희찬이 어깨에 수건을 두른 채로 집에서 벗어났다. 터덜터덜 집 밖으로 나가는 희찬을 본 도준은 요리하는 손을 재촉했다.

“맛있다. 너 진짜 달걀프라이 잘해.”

“맛있지. 우리 이따가 저녁은 밖에서 사 먹을까? 돈 많이 받았는데.”

기대에 부푼 도준의 입가가 둥근 모양을 그렸다.

“안 돼, 이사 가야지.”

그리고 단호한 희찬의 목소리에 삐죽 내려앉았다. 죽어라 일하고 돈을 벌어도 외식이라든가, 맛있는 걸 먹을 기회는 드물었다.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유독 그놈의 ‘맛있는 것’이 당겼다.

“아, 스파게티 먹고 싶어.”

오랜만에 일없이 도심으로 나가는데 밥이라도 한 끼 먹고 들어오면 좀 좋아.

도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로 마을 어른이 나눠 주신 김치를 찢었다.

“아구, 우리 도준이 돈 벌어서 스파게티 먹고 싶었어?”

“뭐냐, 그 애 달래는 말투는.”

“뭐긴, 반찬 투정하는 애새끼 달래는 거지. 조금만 참아, 나중에 먹자.”

“나는 진짜 성공하면 너랑 맨날 먹고 싶은 거 먹을 거야.”

한 그릇을 뚝딱 비워 낸 도준이 금세 빈 그릇을 들고 싱크대로 향했다. 미적거리며 느리게 밥을 먹는 희찬의 그릇도 비워지기 무섭게 도준의 손에 의해 싱크대에 담겼다.

설거지는 희찬의 몫이었다. 평소 같으면 설거지까지 기꺼이 도준이 했겠지만, 도준은 오랜만의 나들이에 무척 신나 보였다. 하긴 최근 며칠은 서로 일만 했으니, 이렇게 함께 밖으로 나가는 일이 참 오랜만이기도 했다.

은행에 들러 볼일을 마친 두 사람은 곧장 임 감독의 사무실로 향했다. 환한 형광등이 밝히 비추는 사무실은 파티션으로 각 자리가 분리되어 있었다.

임 감독의 책상 위에는 수많은 대본이 켜켜이 쌓여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 틈에는 신인 배우들의 프로필 서류철이 끼어 있었다.

도준의 눈이 흥미롭게 사무실을 훑었다. 감독을 따로 만난 일은 몇 번 있어도 이렇게 직접 사무실로 오는 것은 또 처음 있는 일이다.

흥미롭게 공간을 훑는 희찬과 도준에게 불쑥 대본이 들이밀렸다. 간간이 단역으로 출연 중인 드라마의 표제가 큼지막하게 적힌 대본이 그저 반가웠다. 도준이 냉큼 대본을 받아 쥐었다. 표제를 넘겨 대사가 적힌 페이지를 보는 도준의 눈이 반짝거렸다.

“좋아?”

“그럼요.”

임 감독은 두 사람의 처음을 기억한다. 첫 촬영 준비로 아주 분주했던 어느 새벽, 방송국 앞에서 웬 잘생긴 청년들이 쭈뼛거리며 주변을 훑고 있었다. 어디 소속사에서 새로 키우는 신인인가 싶어 눈여겨보던 중, 두 사람의 걸음이 임 감독에게로 향했었다.

걷는 모습마저 그림 같았던 두 사람이 다가와서 한 말은 대뜸 ‘연기가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해야 하냐.’라는 말이었다. 그 모습이 참 순수하고, 귀여웠다.

저 얼굴로 여태 캐스팅이 안 된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할 무렵, 두 사람과 가까워진 임 감독은 캐스팅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쭙잖은 엔터에 보낼 바에 꼭꼭 숨겨 뒀다가 인재를 찾는 대형으로 보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몇 줄 없긴 해도, 대사 있는 거 자체가 기회인 거 알지? 잘 준비해 와, 다음 주에 언제까지 오면 되는지 연락할게.”

“네, 감사합니다.”

단역이라 비록 몇 줄 안 되는 대사였지만, 그럼에도 매번 대사가 있는 역할로 챙겨 주는 임 감독의 정성에 두 사람이 해사하게 웃었다.

“도준이는 오랜만에 보니까 더 잘생겨졌네. 그동안 희찬이는 자주 봤는데 말이야.”

“아, 둘 다 나가기는 조금 생활이 어려워서요. 그래도 뵐 수 있을 때마다 찾아뵐게요.”

“그래, 네가 할 수 있는 역할도 정말 많아. 언제든지 와. 일단 너희는 얼굴부터가 감탄사잖아.”

생활이 어렵다는 그들의 어깨를 다독인 감독은 열의를 보이는 두 사람의 손에 대본을 몇 개 더 쥐여 주었다. 그중에는 이미 방영이 끝난 드라마도 있었고, 한창 상영 중인 영화도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연습하라고. 열심히 해서 성공해야지.”

“감사합니다.”

감독이 인자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어깨를 부드럽게 거머쥐었다. 그건 그들의 앞날을 응원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었다.

도심을 스치는 버스가 높은 빌딩이 우거진 곳으로 향했다. 차창 밖의 도로는 부산하기 짝이 없다. 짝을 지어 움직이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바쁜 걸음을 재촉했고, 각 매장 앞에서는 사람을 꾀기 위해 갖가지 향긋한 향을 내고, 노래를 크게 틀어 이목을 끌었다.

바쁜 도로 위의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두 사람의 눈을 끄는 것은 가장 커다란 건물 외벽에 걸린 대형 스크린이었다.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닿은 스크린에서는 내로라하는 연예인들을 내세운 광고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도준아, 우리 꼭 저기에 같이 광고 걸자.”

“응.”

희찬의 손가락이 스크린을 가리켰다.

“저기에 너랑 나, 나란히 꼭.”

“좋아.”

도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윽고 희찬이 두 눈을 반짝이며 들뜬 목소리를 냈다. 도준은 오물오물 아이스크림을 먹는 희찬의 입가를 엄지손가락으로 훔쳐 내며 함께 웃었다.

그저 함께 꿈을 꾸는 것이 좋고, 행복했다.

희찬은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감독에게서 받은 대본들을 훑었다.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침대에 엎어져 누워 다리를 달랑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아이 같았다.

도준도 침대에 몸을 던졌다. 희찬의 허리를 베고 누워 대본을 쥔 팔을 하늘로 뻗어 대본을 팔락거렸다.

처음에는 이 대본 하나 받아 보는 게 그렇게 신기했었다. 일단 인생 자체가 연예계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으니, 이렇게 대본을 보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당연히 대본은 볼 때마다 가슴 벅찬 뿌듯함을 안겼다.

대본을 보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렀다. 어느새 집 안도 어둑해졌다. 도준의 눈이 창밖으로 향했다. 어스름이 내려앉은 하늘이 참 예뻤다.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던 도준이 얼른 몸을 일으켰다. 주변이 조용해지기 전에 불을 밝히려는 요량이었다. 틱틱 두어 번 들리던 스위치 소리에 이어 번쩍 불이 들어왔다. 희찬의 얼굴도 환하게 피었다.

“찬아, 밖에 별 떴어. 나가서 눕자.”

“그래.”

도준이 희찬의 말간 얼굴 앞에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세게 잡아 쥔 희찬이 힘차게 일어나 도준과 함께 집에서 벗어났다. 밖으로 나갈 때는 불을 다시 끄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방 안을 훤히 밝히는 빛은 별을 가리는 방해 요소밖에 되지 않으니 말이다.

도준이 평상 위에 앉았다. 희찬도 그 옆에 앉아 평상 끄트머리를 쥔 도준의 손등을 거머쥐었다.

한발 물러난 태양 대신 달이 어둠을 밝혔다. 금세 내려앉은 땅거미를 검은 보자기가 감싸 안았다. 깜깜한 하늘에는 투명하고 하얀빛을 내는 별들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고지가 높은 데다가 밤이 되면 불이 전부 꺼지는 동네였기에 밤하늘의 별이 유달리 돋보이는 것은 이 집의 장점이기도 했다.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집이었지만, 그 단점들 보다 장점의 크기가 컸기에 밤만 되면 가슴이 풍족해졌다.

“준아.”

“응?”

어느새 희찬은 도준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채였다. 도준의 잘생긴 얼굴 너머로 보이는 까만 하늘이 황홀해 희찬이 도준의 갸름하고 예쁜 턱을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우리 힘들어도 조금만 더 힘내자, 금방 잘될 거야.”

“나 안 힘든데?”

“아까 스파게티 먹고 싶다고 했는데 다음에 먹자고 해서 미안해.”

하늘보다 더 새까만 도준의 눈이 툭 떨어져 희찬의 하얀 얼굴 위에 닿았다. 희찬의 예쁜 얼굴에 속상함이 서려 있었다. 아침의 반찬 투정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침을 꼴깍 삼켜 가며 사과를 전하는 희찬의 말에 도준이 싱그럽게 웃었다.

안다. 형편이 여의치 않다는 것도 알고, 매번 그렇게 열심히 벌어도 돈이 빠져나가는 것은 바다의 썰물과도 같아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도 안다.

당연히 희찬의 태도가 서운하지도 않았다. 도준은 두 손으로 희찬의 볼을 소중히 감싸 쥐고서, 허리를 숙여 빨간 입술 위에 입을 맞췄다.

“괜찮아, 나도 너 신발 사고 싶다고 했는데 안 들리는 척했잖아.”

입술이 떨어지며 뜨인 희찬의 눈에 얄미움이 담겼다. 희찬의 곧은 손가락이 도준의 볼을 세게 쥐고 비틀었다.

“아아!”

“못 들은 게 아니라 안 들리는 척한 거였어? 나보다 더 양아치네, 이거.”

도준의 입에서 고통 서린 신음이 터졌지만, 도준의 볼을 쥔 희찬의 손가락에 힘이 사그라들지는 않았다.

신발이 좀 비싸긴 했어도, 다음에 사자든가, 어? 그런 말은 했어야지. 못 들은 줄 알고 다행이라 생각하며 안도의 숨이나 푹푹 쉬었더랬다.

희찬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도준을 째려봤다.

“나중에 네가 살고 싶다고 한 집도 사고, 광고도 나란히 걸리면…….”

“응.”

“그때는 꼭 신발 열 켤레 사 줄게.”

도준이 눈덩이 굴리듯 조심스레 희찬의 볼을 매만졌다. 말랑한 볼이 손바닥에 닿아 스칠 때마다 도준의 입에서 희찬을 향한 사랑이 흘러내렸다.

도준은 마치 계약서에 도장을 찍듯이 희찬의 입술 위에 제 입술을 꽝 찍어 눌렀다. 감질나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도준의 입술이 아쉽다.

이번엔 도준의 뒤통수에 희찬의 손이 닿았다. 떼지 말라는 것처럼, 뒤통수를 꾹 누르는 희찬의 손힘에 도준의 고개가 다시 희찬의 얼굴에 가까이 닿았다. 희찬의 입술이 쭉 튀어나와 도준의 입술을 반겼다.

촉촉한 입술이 부드럽게 닿았다. 휘영청 밝은 달빛이 도준의 뒤통수를 부드럽게 쓸었다. 도준은 제 뒤통수를 감싸 쥐고 놓아주지 않는 희찬의 힘을 느끼며 정성스레 희찬의 입술을 핥았다.

뻐끔 열린 도준의 입술이 희찬의 윗입술을 머금었다. 이내 두 사람의 혀가 부드럽게 뒤엉켜 타액이 섞이는 야릇한 소리가 들렸다.

“우음…….”

뭉근한 신음이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도준은 제 손에 닿은 말랑한 희찬의 볼의 감촉을 느꼈다. 입술에 닿는 촉촉한 살결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도준의 뒤통수를 쥐고 누르던 희찬이 아예 도준의 목 뒤로 팔을 둘렀다. 언제 해도 황홀한 키스를 끝내기 싫다는 행동이었다.

부드러운 살덩이가 뒤엉키는 느낌은 언제 느껴도 색다르다. 입 속에서 뒹구는 혀가 내 것인지, 상대의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숨 가쁘게 입술을 맞대었다.

아랫배가 뻐근해졌다. 희찬은 저도 모르게 다리를 오므리고서 집요하게 도준의 입술을 빨아 당겼다. 중심부에 피가 몰리는 것은 도준도 마찬가지였다. 단단한 도준의 페니스가 고개 드는 것을 느낀 희찬의 입에서 먼저 얕은 웃음이 흘렀다.

“들어갈까?”

“응.”

자석처럼 딱 달라붙었던 입술이 떨어지기 무섭게 또 쪽 소리가 났다. 진한 키스에 흥이 오른 두 사람은 이내 가뿐하게 걸음을 옮겨 집 안으로 향했다.

삐걱거리는 철문이 쾅! 요란하게 닫히자마자 두 사람이 다시 뒤엉켰다.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침대였음에도 두 사람은 침대까지 가는 것조차 멀어 현관에서부터 거칠게 입을 맞추고 혀를 뒤섞었다.

도준의 손이 희찬의 상의 속을 침범했다. 탄탄한 가슴 주변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다가 손끝에 걸리는 작은 돌기를 부드럽게 쓸었다. 아찔한 감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도준의 손이 스치기 무섭게 움찔거린 희찬은 부러 더 집요하게 도준의 입술을 찾았다.

한 손으로 유두를 조몰락거리고, 다른 손으로 허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도준의 손은 친절하고 다정했다. 희찬은 다리를 배배 꼬아 대면서도 도준의 어깨를 부여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하읏, 아!”

끈질기게 맞추던 입술이 떨어졌다. 도준은 희찬의 달뜬 얼굴을 보며 싱그러운 미소를 피워 냈다. 희찬의 티셔츠가 말려 올라갔다. 티셔츠 끄트머리를 희찬의 입에 물려 준 도준은 본격적으로 희찬의 허리를 부여잡고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부드럽고 축축한 살덩이가 희찬의 가슴에 닿았다. 혀를 세워 돌기 주변을 깔짝거리다, 한입에 머금고 빨아들이는 도준의 행동에 희찬의 고개가 젖혔다. 툭 튀어나온 희찬의 울대가 울렁거렸다. 도준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니 손등에는 파란 핏줄이 불룩 솟았다.

희찬의 가슴에 파묻혔던 도준의 눈이 치켜 뜨였다. 어깨를 쥔 희찬의 손이 파들파들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희찬의 얼굴이 사랑스럽다. 도준의 입에서 터져 나온 웃음에 희찬의 몸이 한 번 더 들썩거렸다. 바짝 선 유두 끝에 뜨거운 숨이 닿은 탓이었다.

도준의 손에 희찬의 바지가 훌렁 벗겨졌다. 희찬의 다리가 오므라들었다. 허리를 매만지던 도준의 손이 희찬의 엉덩이를 쥐었다. 한 손에 잡히는 엉덩이는 탄탄하고 말랑했다. 촉감이 좋은 엉덩이를 조몰락거리자 희찬이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그에 도준이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도준이 슬금슬금 기어 내려갔다. 불룩 솟은 희찬의 앞섶을 마주하고 드로어즈 위에 입을 맞췄다. 판판한 면에 갇힌 페니스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거칠게 요동쳤다.

당장에라도 드로어즈를 벗겨 낼 것처럼 구는 도준의 손을 희찬이 거머쥐었다. 차가운 도준의 손과 달리 희찬의 손은 열이 잔뜩 올라 뜨거웠다.

“침대로, 안 가고?”

“여기서 한 발 빼.”

가뜩이나 전신을 지배하는 전율에 서 있는 것조차 어려운데, 저를 올려 보는 잘생긴 낯에 희찬이 숨을 들이켰다. 도준의 손이 거침없이 드로어즈를 끌어 내렸다. 퉁 튕겨 오른 페니스가 도준의 볼에 닿자, 도준이 낮은 웃음소리를 냈다.

희찬의 얼굴이 화르륵 타올랐다. 짜릿한 쾌감에 전신이 잠식된 것은 둘째치고, 느긋한 도준과 달리 저만 안달 난 듯한 상황이 부끄러웠다.

도준의 뜨거운 입김이 페니스에 닿았다. 도준의 어깨를 쥐었던 희찬은 도준의 부드러운 머리칼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희찬의 엉덩이를 조몰락거리는 도준의 손이 둔덕 사이의 은밀한 곳으로 향했다.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것처럼 움찔거리는 구멍 주변에 손가락이 닿자 엉덩이가 잔뜩 오므라들었다.

“흡!”

두껍고 묵직한 귀두가 뜨겁고 말랑한 공간에 갇혔다. 귀두를 감싸 적시는 부드러운 혀의 촉감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도준의 머리를 거머쥔 희찬의 손에도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귀두부터 조금씩 입 안에 머금은 도준은 정성스레 희찬의 페니스를 빨아들였다. 머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목 뒤로 깊이 넣을 때는 도준의 울대가 불룩 솟았다. 그러다 다시 천천히 뱉어 내며 혀로 기둥을 핥는 도준 덕분에 희찬의 허벅지가 잔 지진을 일으켰다.

“아, 하악! 아!”

도준이 거침없이 귀두를 빨아들이고, 혀끝으로 귀두의 끄트머리를 핥았다. 뒤에서 노는 손가락은 어느새 은밀한 곳 안으로 들어와 내부를 마구 휘저었다.

앞과 뒤를 동시에 희롱당하는 희찬의 눈에 핏발이 섰다. 허리를 흔들고 싶었으나 그렇지 않아도 무지막지한 페니스를 머금은 도준이 버겁지는 않을까 애써 몸에 힘을 주고 자제하던 차였다.

“아읏, 야, 도준, 아!”

도준의 손가락이 은밀한 곳의 기분 좋은 곳을 꾹 눌러 찔렀다. 마치 어디를 누르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익히 잘 알고 있다는 것처럼, 그 주변을 배회하며 놀리던 손가락이 원하는 곳을 누르자 희찬의 입에서 더 높은 신음이 터져 흘렀다.

도준의 다른 손이 희찬의 낭심을 쥐었다. 손바닥에 얹어 두고 부드럽게 쥐었다가 굴리는 턱에 이제는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

이내 울컥 정액이 뿜어져 나왔다. 도준의 입 안에 페니스가 모두 갇힌 채로 사정을 맞은 희찬은 맥이 풀리는 느낌에 스르르 무너지려는 몸을 겨우겨우 곧추세웠다. 희찬은 제 정액을 꿀꺽 삼키는 도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다 빠져나간 힘이 다시 불끈 솟는 것 같았다.

엉덩이 사이에서 빠져나온 도준의 손가락은 네 개였다. 하나인 줄 알았는데, 쾌락에 젖어 숨을 헐떡이는 동안 착실하게 개수를 늘린 모양이다.

희찬의 발이 도준의 페니스를 짓눌렀다. 바지 위로 불룩 솟은 것이 보이는 커다란 페니스가 힘겨워 보였다. 도준의 잘생긴 낯이 조각조각 일그러지는 것을 보자 희열이 몰려왔다.

“아, 하지 마…….”

희찬은 하지 말라는 도준의 저지에도 발끝에 힘을 실었다. 단단한 기둥을 따라 발가락을 쓸었다. 그러다 닿은 뭉툭한 끄트머리를 세게 눌러 밟았다. 도준이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원망 어린 시선으로 저를 올려 보는 모양새가 희찬의 눈에는 한없이 예쁘게만 보였다.

“아파?”

“아윽, 파.”

희찬의 낮은 목소리에 장난이 서렸다. 희찬의 발은 여전히 도준의 페니스를 짓이겨 밟는 중이었다.

“또 나만 홀랑 다 벗기고.”

“그럼 너도 벗겨.”

“…….”

“못 하겠어?”

“내가 이도준을 어떻게 이겨.”

도준의 입꼬리가 치솟았다. 여유를 머금은 낯이 잠시간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다시 황홀한 빛을 머금었다. 도준의 눈앞에 희찬의 페니스가 보였다. 그새 고개를 들고 우뚝 선 것이 그의 활기를 알려 주는 것 같았다. 도준이 기꺼이 입술을 내밀어 희찬의 귀두 끝에 입을 맞췄다. 그에 희찬의 몸이 스르르 무너졌다.

침대에 도달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희찬의 손에 옷가지가 전부 벗겨진 도준은 제 위에 몸을 맞추고 눕는 희찬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도준의 몸 위에 맨살을 마주 대고 누운 희찬이 페니스를 비비적거렸다. 불끈 솟은 도준의 페니스와 부딪치며 살결이 쓸리는 느낌에 전율이 일었다. 물 밀듯 밀려오는 쾌락에 희찬의 허리 짓이 가빠졌다. 도준은 그저 희찬의 등과 허리,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왔다.

“으읏, 하……. 아…….”

“후음, 읏.”

등을 어루만지던 도준이 희찬의 얼굴을 감쌌다. 페니스에 페니스를 비비는 행위가 격해질수록 희찬의 숨이 가빠졌다. 도준이 희찬의 얼굴을 끌어 쥐고 입을 맞췄다. 입술을 마주 대기 무섭게 희찬의 혀가 도준의 입 안을 탐했다. 입술을 열어 서로의 입술을 빨아들이고, 그러다 다시 혀를 섞는 동안에도 희찬의 거친 허리 짓은 멈출 줄을 몰랐다.

“우음, 으흐응…….”

희찬의 단단한 손이 도준의 어깨 아래 시트를 세게 움켰다. 희찬의 주먹 주변으로 주름진 시트가 모여들었다. 도준은 희찬의 날갯죽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다 손을 내려 엉덩이를 쓸어 만졌다.

차라리 삽입을 하지, 그저 페니스만 비비적거리며 세게 허리 짓을 하는 희찬이 힘겨워 보였다.

츕, 츄읍. 타액이 섞이는 야한 소리가 좁은 집 안을 메웠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공기가 예민하게 살갗을 쓸었다. 희찬의 허리 짓에 힘이 실렸다. 박차를 가하는 모습에 도준이 입술을 떼고 희찬의 머리를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희찬의 입술이 도준의 목덜미에 닿았다. 뜨겁게 열이 오른 숨이 예민한 곳에 닿자 도준의 입에서도 달뜬 신음이 흘렀다.

“아윽.”

희찬이 도준의 목덜미를 세게 씹어 물었다. 일순간 서리는 통증에 도준이 아픈 신음을 흘렸다. 조금씩 흐르는 쿠퍼액이 도준의 배를 적셨다. 엉덩이에 힘을 주고 쳐올렸다가, 다시 힘을 풀며 페니스를 비빌 때에는 요도가 열리는 듯한 짜릿함이 몰려왔다.

또 한 번 사정을 마친 희찬이 온몸에 힘을 풀고 축 늘어졌다. 도준은 희찬을 감싸 안고서 헐떡이는 등을 토닥토닥 부드럽게 달래었다. 곧 죽어도 삽입은 하지 않는 희찬의 고집에 또 웃음이 터졌다.

“이럴, 거면 그냥 박으라니까…….”

“……싫어, 나, 읏, 성공하면…… 그때.”

희찬의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이유도 모를 신조가 퍽 귀엽다. 도준은 희찬의 귓바퀴를 조몰락거리며 쉬지 않고 얼굴 곳곳에 입을 맞췄다.

희열을 머금은 희찬의 몸이 잔잔하게 파들거렸다. 손이 닿는 것만으로도 자극적인지, 움찔거리는 몸이 귀엽다.

도준의 손이 다시 희찬의 엉덩이 사이로 향했다. 양손으로 엉덩이를 벌리고, 그 사이로 동시에 양 검지를 밀어 넣었다. 도준의 어깨에 파묻은 희찬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터져 흘렀다.

“나 이제 해도 돼?”

“으응.”

희찬의 허락에 도준의 입술이 둥근 포물선을 그렸다. 도준의 뜨거운 손이 희찬의 말랑한 얼굴을 거머쥐었다. 예쁜 이마, 가지런한 눈썹, 잘생긴 코, 오밀조밀한 입술. 어디 하나 빼놓지 않고 완벽하게 예쁜 희찬의 얼굴 곳곳에 부드러운 입맞춤을 한 도준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도준이 몸을 일으키는 것에 맞춰 희찬도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았다. 두 손으로 시트를 잡고, 무릎을 꿇은 채로 엉덩이를 쳐든 희찬의 허리를 도준의 손이 부드럽게 거머쥐었다.

도준은 열이 오를 대로 올라 꺼떡거리는 페니스를 희찬의 엉덩이 사이에 대고 비볐다. 한껏 예민해진 희찬의 몸이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도준은 제 페니스에 닿은 주름진 구멍이 얕게 움찔거리는 것을 느끼며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넣을게.”

“응.”

희찬은 손끝에 걸리는 시트를 세게 움켜쥐었다. 은밀한 곳에 닿은 뭉툭한 귀두가 금방이라도 안으로 들어올 것처럼 입구를 쿡 찔렀다. 도준의 손에 잡힌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허리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오므리자 도준의 손이 부드럽게 허리를 눌렀다. 마치 힘을 빼라는 것처럼, 어르는 듯한 손길에 희찬의 몸이 유하게 풀렸다.

“아읏.”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단단한 귀두 끄트머리가 엉덩이 사이를 찔러 댔다. 단단한 것이 비좁은 구멍 사이를 파고들자 희찬의 허리가 단단하게 굳었다.

희찬의 허리를 쥔 도준의 손에도 힘이 바짝 실렸다. 분명 부드럽게 풀어 뒀는데, 꽉 끼어 버렸다. 도준은 더 밀어 넣지도, 그렇다고 빼지도 못하고 갇힌 채로 아랫입술을 잘근 씹어 물었다.

“찬아, 힘 조금만…….”

“아, 파……!”

“조금……만…….”

희찬의 발버둥에도 도준의 밀어 넣는 힘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다고 가만히 있으면, 흔쾌히 엉덩이를 내어 준 희찬이 더욱 힘들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도준은 희찬의 허리를 부드럽게 주무르며 허리에 힘을 주고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요란하게 요동치는 내벽이 따뜻하게 페니스를 휘감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도준은 부러 느릿하게 몸을 움직였다. 전신에 힘을 주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 대는 희찬이 적응할 때까지 아주 천천히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아, 아직이야……?”

“응, 응……. 거의 다 들어갔어.”

“윽, 아흐윽…….”

“미안해, 미안해. 희찬아, 미안해.”

“아……. 뭘, 또 흣, 아!”

희찬을 달래는 도준의 행동은 아주 다정했다. 한 손으로는 엉덩이를 주무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희찬의 페니스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희찬이 희열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왔다.

드디어 희찬의 엉덩이에 도준의 허리가 닿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뿌리 끝까지 밀어 넣은 도준은 희찬을 위로하듯 엉덩이를 귀엽게 토닥였다.

희찬의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고통에 발버둥 치던 그의 아픈 신음과는 다른 몸의 반응이었다. 굵고 큼직한 것이 속을 꽉 메웠다. 배 속을 깊이 찌르고 들어온 딱딱한 것에 절로 숨이 턱 막혔다. 찌릿찌릿한 감각은 몸을 넘어 뇌까지 전해졌다.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시트를 말아쥔 희찬의 손에 서슬 퍼런 핏줄이 지도를 그렸다.

“아프게 해서 미안해.”

“그거 말고…….”

“사랑해.”

도준이 몸을 숙여 희찬의 뒷덜미에 입을 맞췄다. 도준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희찬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제 속에 들어찬 것이 이리저리 요동치는 것이 자극을 안긴 탓이었다.

희찬은 제 속에서 점점 부피를 더하는 도준의 페니스에 마른 숨을 터뜨렸다. 무지막지한 것이 크기를 더하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시트를 비틀어 쥔 손이 빠듯하게 저릴 정도로 세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속에 든 것이 조금씩 움직였다. 뒤로 빠져나갔다가, 다시 조금씩 밀려 들어올 때마다 아랫배가 간질거렸다. 여린 피부가 마찰을 일으키며 뜨거운 열을 냈다. 도준의 페니스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다 들어왔다던 그의 말과는 달리, 뒤로 빠졌다가 다시 들어올 때는 이전에 닿았던 곳보다 더욱 깊은 곳으로 향했다.

“아, 아윽, 흣, 후으, 아!”

날카로운 쾌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뭉근하게 눌러 찍기 시작한 도준의 허리 짓에 속도가 붙었다. 둥글게 허리를 놀리고, 내벽을 긁듯이 찔러 넣어 깊은 곳으로 향하는 도준의 페니스는 숨 가쁜 쾌락을 안겼다. 은밀한 부위의 살들이 부딪치며 야릇한 소리를 냈다. 좁은 공간에 울리는 소리는 그저 뜨겁기만 했다.

희찬의 얼굴이 베개에 처박혔다. 뒤에서 처박는 도준의 힘에 지탱하던 팔에 힘이 풀렸다. 틀어막힌 입에서 나온 윽, 윽 무거운 신음이 솜덩어리에 묻혀 죽었다.

“하악! 아, 도준, 도준아! 흐읏!”

희찬의 허리를 쥐고 엉덩이를 주무르던 도준의 손이 희찬의 어깨를 쥐고 상체를 일으키자 희찬의 몸이 휙 들렸다.

도준의 손에 의해 몸이 들리기 무섭게 희찬의 페니스에서 희멀건 정액이 뿜어져 나왔다. 이미 두 번이나 사정을 마친 탓에 퍽 묽은 액이 뚝뚝 흘렀다. 아래에서 위로, 거침없이 찌르고 올라오는 도준의 페니스는 잔뜩 성이 나 있었다. 이리저리 함부로 휘젓고, 날카롭게 파고드는 굵직한 것에 절로 눈물이 났다.

희찬은 더듬더듬 손을 놀려 도준의 탄탄한 허벅지를 쥐었다. 다른 손으로 도준의 엉덩이를 매만지며 온몸에 도사린 자극을 견뎌 보려 했지만, 속절없이 몸이 무너져 내렸다.

기운이 빠진 몸이 무너질 때마다 도준의 페니스가 더 깊은 곳으로 찌르고 들어왔다. 이러다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는 거 아닌가, 그런 희한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준, 도준…… 아흐윽, 끅, 아!”

희찬의 고개가 젖혔다. 뒤통수에 닿는 단단한 도준의 어깨가 듬직했다.

“응, 희찬아. 나 여기 있어.”

“아! 너무, 너무 깊……어! 아!”

“흐……. 좋아하잖아. 그치.”

도준은 다정하게 희찬을 달랬다. 급기야 눈물을 보이는 희찬의 볼에 입을 맞추고, 말랑한 귓불을 입술에 머금었다. 귓바퀴를 잘근 씹기도 하고, 아예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 조곤조곤 사랑을 읊었다.

“아, 존……나 좋아, 더, 더 깊……!”

도준이 한 번 쳐올릴 때마다 희찬의 큰 몸이 자지러졌다. 복근이 오밀조밀 새겨진 뱃가죽이 도준의 페니스 모양대로 불룩 솟았다가 사라졌다. 그때마다 희찬의 커다란 페니스가 함께 꺼떡거렸다.

방금 막 사정을 마쳤음에도 희찬의 귀두 끄트머리에서 투명한 액체가 흘렀다. 희찬은 어렵게 팔을 올려 도준의 뒤통수를 쥐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에 힘을 주고 도준의 머리를 끌었다. 젖힌 고개를 비스듬히 꺾어 도준과 입을 맞췄다. 도준은 쉬지 않고 허리를 움직이면서도 희찬의 요구에 충실히 응했다.

철썩철썩, 요란한 마찰음 사이사이에 타액이 엉키는 소리가 섞여들었다. 찌걱, 찌걱, 듣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저릿해지는 소리가 두 사람의 귀를 자극했다.

도준의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옹골찬 근육이 잔뜩 오므라들었다가, 펴질 때 도준 역시 사정을 맞았다. 상체를 고정하는 힘이 사라지니, 희찬의 몸도 풀썩 쓰러졌다. 베개에 얼굴을 처박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희찬의 흉통이 크게 부풀었다가 쪼그라들기를 반복했다.

도준은 막 사정을 마친 탓에 자극에 예민한 페니스를 조심스럽게 쥐고 뺐다. 커다란 것이 메웠다가 빠져나간 희찬의 구멍이 요란하게 뻐끔거리며 공허함을 여실히 표했다.

“얼굴 보고 할래. 너 사정할 때 인상 찌푸리는 거 보기 좋거든.”

“응, 얼굴 보고 하자.”

희찬이 몸을 돌려 누웠다. 희찬을 생각해 그만두려 했던 도준은 자신의 허리를 휘감은 희찬의 다리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힘없이 축 늘어졌던 페니스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한 번 들어가서 머물렀다고, 두 번째는 수월하게 페니스가 밀려 들어갔다. 따뜻한 내벽이 페니스를 빨아들이는 것에 도준의 가지런한 미간이 좁혔다. 움찔거리는 내벽이 오늘따라 유난스럽다. 희찬의 예쁜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더니 이내 탄성을 터뜨렸다.

희찬의 목덜미가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 자극적이다. 도준은 제 아래에서 높은 톤으로 신음을 터뜨리며 다리를 오므렸다가, 온몸을 덜덜 떨어 대는 희찬의 모습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자극을 느꼈다.

허벅지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부드럽게 허리를 놀리려 했으나, 자극에 약한 페니스에 귀두가 열리는 느낌은 도준의 행동에 조급함을 얹었다.

“아흑, 아! 흐읍, 흣!”

“흐으, 하…….”

희찬의 손이 더듬더듬 허공을 짚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을 쥐고 깍지를 끼었다. 희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조차 지독하게 예뻤다. 도준은 허리를 숙여 페니스를 깊은 곳까지 밀어 넣으며 희찬의 얼굴 곳곳에 입을 맞췄다. 뜨거운 열이 올라 입술에 닿는 피부가 뜨끈했다.

이내 입을 맞췄다. 분명 희찬이 내는 신음이었으나, 그 신음은 입술을 넘어 도준의 입 안에서 울리며 오감이 날뛰었다. 페니스를 조이는 감각과 뇌를 찌르는 전율에 도준의 허리 짓은 도무지 멈출 줄 몰랐다.

“으흣, 아! 하악!”

묽은 정액이 희찬과 도준의 배 사이에서 분출했다.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정액이 희찬의 목덜미까지 닿았다. 그리고 희찬의 속에서도 끈적한 액체가 뿜어졌다. 사정을 맞을 때의 도준의 표정은, 희찬이 말했던 것처럼 황홀함 그 자체였다.

희찬의 성난 속이 다치지 않도록 천천히 페니스를 꺼낸 도준은 뻐끔거리는 구멍 사이로 흐르는 제 정액에 인상을 찌푸렸다. 제 페니스 크기만큼 벌어진 구멍이 안쓰러운 것과 별개로 잔뜩 벌어진 곳 사이로 빨간 속살이 보이는 것은 또 자극적이었다. 도준은 애써 눈을 돌리고, 희찬의 엉덩이를 부드럽게 쥐었다. 달뜬 숨을 헐떡이는 희찬의 판판한 배가 가쁘게 오르내렸다.

“흐으, 흣, 아…….”

전희로 들썩이는 희찬의 몸을 도준이 정성스레 어루만졌다. 도준의 손이 닿을 때마다 희찬의 몸이 감전된 듯 튕겨 올랐다. 전신이 자극에 노출된 탓에 작은 손길에도 크게 반응하는 희찬의 몸이 퍽 재밌었다.

“사랑해.”

“내가…… 더 사랑해.”

도준이 희찬의 페니스에 입을 맞췄다. 단단한 귀두 위에 입술을 맞추자 촉촉한 액체가 입가에 닿았다. 부드럽게 낭심을 쥐고 달래듯 주무르니 희찬의 몸이 튀었다.

도준이 희찬의 옆에 풀썩 누웠다. 몸을 돌리고 누운 희찬은 도준의 페니스에 대고 엉덩이를 비비적거리며 애교를 떨어 댔다. 희찬의 잔망스러운 행동에 도준은 희찬을 옭아매듯 팔로 꼭 끌어안고서 희찬의 귓불을 잘근잘근 씹었다.

한창 귀를 내어 준 채로 누워 있던 희찬이 몸을 돌려 도준을 마주 안았다. 다리 사이의 죽지 않은 페니스 두 개가 부딪쳤지만, 서로를 위해 꾹 참았다. 희찬이 도준의 볼을 부드럽게 거머쥐었다.

“이도준…….”

“응?”

“네 고추 내 거야.”

희찬의 말에 도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싶었다.

“고추 꺼낼 때마다 허락받아. 내 거니까.”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럼 화장실은 어쩌라고?”

도준은 질색하는 낯을 보이면서도 희찬의 말에 하나하나 반응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아니 그냥 무시하면 될걸, 또 그때는 어떡하냐고 묻는 제 꼴이 어이없었다.

희찬의 눈이 흥미롭게 뜨였다. 예쁘게 휘어지는 눈꼬리 끝에 장난이 가득 내려앉았다.

“그것도 허락받아야지. 해 봐, 허락받는 거.”

“뭐, 주인님 저 화장실 가고 싶어요. 이렇게?”

하라면 또 한다.

희찬이 만족한다는 듯 파하게 웃었다. 이도준은 그렇게 칠색 팔색을 하면서도 해 보라는 제 말에는 잘도 ‘주인님’이라 말했다. 학창 시절 이도준을 알던 사람들이나, 함께 보육원에서 지내던 친구들이라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이도준의 모습일 터였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보여 주는 짓궂고, 귀여우면서, 또 장난스러운 이도준 본연의 모습이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웠다. 희찬이 손을 들어 도준의 머리를 정성스럽게 쓰다듬었다.

“옳지, 잘한다. 그렇게 해.”

“진짜 별꼴인 거 알지. 일어나, 씻게. 씻겨 줄게.”

“하긴, 이건 고추가 아니라 가지, 읍.”

“……그만해.”

도준의 큰 손이 희찬의 입을 텁, 틀어막았다. 도준의 귀 끝이 붉어졌다. 민망한 듯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두면서도 입을 감싼 손은 치우지 않기에 희찬의 얼굴이 장난스럽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핥았다. 희찬의 혀가 도준의 손바닥을 날름, 핥아 버렸다.

“아, 장희찬!”

도준이 다시 질색하며 손바닥을 뗐다. 축축하게 침이 묻은 손바닥을 희찬의 가슴에 비볐다. 희찬은 입꼬리를 예쁘게 올린 채로 헤-하고 웃어 보였다.

아, 나는 장희찬을 당해 낼 재간이 없다.

도준이 체념하듯 큰 숨을 들이켰다가 후, 내뱉자 탐스러운 흉통이 보기 좋게 들썩거렸다.

*

새벽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것은 도준에게만 익숙한 일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희찬은 몽롱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앉은 채로 눈을 끔뻑거렸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도준이 행동을 멈추고 희찬을 바라봤다. 침대에 멍하게 앉아 도무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는 희찬의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도준이 희찬의 팔을 잡아 일으켜 놓으면, 희찬은 청개구리처럼 도로 침대에 누웠다. 몇 번이나 다시 눕길 반복하던 희찬에게 결국 도준의 매서운 잔소리가 떨어졌다.

“8시까지 오라고 하셨다며.”

“응…….”

“지금 나가야 지각 안 해, 오랜만에 같이 가는 건데, 쌍으로 혼날래?”

“아니…….”

“후딱 움직여, 시간 없어.”

도준이 희찬의 널따란 등을 퍽퍽 두드리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도준은 희찬이 얼른 화장실로 가서 씻고 오도록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그의 행동을 재촉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두 사람이 함께 촬영장에 가는 날이었다. 빠듯한 생활에 함께 촬영장에 가는 일은 꿈만큼 먼 일이었기에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분주한 촬영장을 떠올린 도준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피었다. 희찬이 연기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그리고 그런 희찬과 어울려 함께 연기를 하는 것은 더없이 행복한 일이었다.

“무슨 생각해?”

희찬의 손가락이 말랑한 도준의 볼을 쿡 찔렀다. 그에 도준이 얼굴을 돌려 희찬을 바라봤다. 부스스한 표정의 희찬은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몽롱하게 도준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냥, 이 생각 저 생각.”

“예쁘게 웃던데.”

“너랑 촬영장 같이 가는 거 좋아.”

도준은 자신의 볼을 찌른 희찬의 손을 쥐고 손바닥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다섯 손가락 끝에 순서대로 입술을 대었다가, 손바닥에 입을 맞추고, 또 볼을 비비적거리는 도준의 잔망에 희찬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희찬이 도준을 한 품에 안았다. 희찬에게 안긴 도준은 희찬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자꾸 너만 공사장 가게 해서 미안해. 다음 주에는 내가 갈까? 너 촬영장 갈래?”

“아니, 너 촬영장 가. 나 아저씨들이랑 절친 됐어.”

도준의 목소리가 희찬의 목덜미에서 웅웅 울렸다. 그저 좋기만 한 도준의 순한 면인데, 오늘은 조금 속이 상했다.

제 욕심도 좀 부렸으면 좋겠는데.

희찬이 도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세게 쥐고 눈을 마주쳤다. 도준이 두 눈을 크게 떴다. 희찬의 얼굴에 못마땅한 심경이 읽히는 것이 의아했다. 도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련하게 착해서는……. 너 그렇게 착해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래?”

“나 별로 안 착해, 너니까 그래.”

“욕심도 부리고 살아, 도준아. 너도 연기하고 싶잖아.”

희찬의 말에 도준이 제 볼을 쥔 희찬의 손을 걷어 냈다. 이번엔 도준의 손이 희찬의 얼굴을 쥐었다. 희찬의 불을 꾹 누르자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도준이 새빨간 입술 위에 도장을 찍듯 꾹 입술로 찍어 누르자 희찬이 방긋 웃었다.

아니, 내 꿈은 배우가 아니다.

도준은 그저 희찬과 같이 있는 게 좋고, 뭐든 희찬과 함께하는 게 좋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장희찬이 한다는 건 뭐든 하고 싶었고, 장희찬이 하기 싫다는 건 덩달아 하기 싫었다.

그러니까 내 꿈은, 그냥 장희찬이다.

이 말을 그대로 했다가는 희찬이 불같이 화낼 것이 뻔하므로, 도준은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얼른 씻고 와.”

뭉그적거리던 희찬이 드디어 발을 떼어 사라졌다. 도준은 조리대 앞에 서서 먹을 것을 살폈다.

아무리 단역이라고는 하나, 뭐든 밥은 든든히 먹어야 대기를 하든, 연기를 하든 힘이 생기는 법이다.

게다가 장희찬이라면 더더욱.

희찬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훤히 꿰뚫어 보는 도준은 프라이팬을 가스 불 위에 올렸다.

잘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 식용유를 두르자 치익, 경쾌한 소리가 났다. 희찬이 좋아하는 소시지를 프라이팬 위에 굴렸다. 덩구르르 구르던 소시지가 이내 탁탁 튀는 소리를 내며 맛있게 익어 갔다. 도준은 소시지 껍질이 터지기 전에 가위로 칼집을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살이 벌어진 소시지를 접시에 담은 후에는 남은 기름에 달걀을 깨트려 구웠다. 지난밤, 밥이라도 좀 미리 해 놓고 잘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시간이 촉박한 지금 후회는 사치였다.

“아, 맛있는 냄새!”

“케첩은 없네. 일단 그냥 먹고, 오늘 들어오면서 장 좀 보자.”

“콜! 그럼 저거, 할인 쿠폰 저거 챙겨 가야겠다.”

“응.”

어쩌다 한번, 함께 장을 보러 가는 날에는 먹고 싶은 것을 고르고 골라 저녁 만찬을 하고는 했다. 오늘 하루 일정에 기대를 머금은 두 사람의 입가에 즐거움이 내렸다. 오늘따라 지겹게 먹어왔던 달걀프라이도, 소시지구이도 유달리 맛있게만 느껴졌다.

바쁜 촬영장은 그 특유의 향이 있다. 상쾌한 틈틈이 사람들 발에 인 먼지가 뿜어내는 냄새라든가. 의상실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라든가. 아무튼 다른 곳에서 맡으면 인상이 찌푸려지는 향도 촬영장에서는 달랐다. 도준은 그 냄새를 기분 좋은 냄새를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폐부 깊이 빨아들였다.

한쪽에서 주연 배우들의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단역 배우들을 비롯한 엑스트라들이 감독의 호출을 기다렸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차가운 바람이 불자 도준이 몸을 움츠렸다. 어디 실내라도 들어갈 곳이 없는지 눈을 굴려 봤지만, 딱히 몸을 들일 곳은 없어 보였다.

그런 도준의 어깨에 익숙한 팔이 닿았다. 도준이 추위를 심하게 탄다는 것을 익히 아는 희찬이 나름대로 제 체온을 나눠 주기 위해 도준을 안으려는 것이었다. 도준이 피식 웃었다. 희찬도 덩달아 가벼운 숨을 터뜨렸다.

“희찬아, 도준아. 이리 와 봐.”

다정하게 자신들을 부르는 목소리에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꺾였다. 두 사람을 다정하게 부른 것은 다름 아닌 임 감독이었다. 두 사람은 스태프들이 진을 친 곳을 비집고 들어가 감독 옆에 섰다. 감독은 인자한 표정으로 두 사람 눈앞에 대본을 들이밀었다.

“이제 이 장면 촬영할 건데, 여기 서서 잘 봐.”

“네?”

“너희는 액터 스쿨도 안 다니니까, 이런 데서 봐야지. 아, 키가 커서 걸리겠다. 좀 앉아서 봐.”

두 사람을 아끼는 마음을 드러낸 감독은 두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서 베테랑 연기자들의 연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왔다.

그 배려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덕분에 스태프들보다 앞에서 배우들을 보게 된 희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었다. 그를 본 도준도 함께 웃었다. 수준급의 연기를 펼쳐 내는 배우들을 볼 때 제 눈이 반짝인다는 사실은 깨닫지도 못한 채 말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보기 드문 청년들이다. 두 사람을 본 감독은 그렇게 생각했다.

감독은 꾀부리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임하는 두 사람을 보며 괜한 뿌듯함을 느꼈다. 욕심이 있으나 그 욕심을 과하게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열정을 갖고 모든 상황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고는 했다.

그래서 더 돕고 싶었다. 좋은 역할이 있으면 어떻게든 두 사람에게 주고 싶었고, 좋은 소속사에서 신인 배우를 찾는다는 소식이 들리면 꾸준히 두 사람을 추천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희찬에게 좋은 소식을 안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를 떠올린 감독은 희찬이 해맑게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고, 희미한 미소를 피웠다.

“자, 점심 먹고 다시 모입니다! 희찬 배우, 도준 배우 씬 있습니다. 두 시간 후에 동선 체크 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촬영이 끝났다. 오전 내내 배역 없이 감독 옆에서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본 희찬과 도준의 얼굴에 경이로움이 피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감독이 지시하는 대로 척척 연기를 해내는 배우들을 볼 때면 그 속의 자신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게 참 설레었다.

“오늘 밥 뭐래?”

“이모님한테 여쭤봤는데 안 알려 주시더라. 맛있는 거 나오면 좋겠다.”

“배고파…….”

“아침도 제대로 못 먹어서, 그치.”

식당으로 향하는 내내 희찬의 입에서 찡얼찡얼 투정이 나왔다. 간소하게나마 챙겨 먹고 나왔으니 망정이지, 그조차 먹지 못했으면 장희찬은 벌써 쓰러졌을 거다.

희찬은 도준의 목에 두 팔을 두르고 대롱 매달린 채로 질질 끌려다녔다. 희찬의 그런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 중 한 조각이었으므로, 도준은 아무렇지 않게 희찬의 팔을 붙들고 식당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식당에 들어서기 무섭게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보기 드문 비주얼을 가진 두 사람이 어울려 환하게 웃을 때는 주변이 다 밝아지는 듯한 환상이 보였다. 숱한 촬영을 거듭하며 많은 연예인을 봤다는 스태프들의 눈도 가뿐히 홀리는 두 사람의 비주얼은 가히 대단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 더 큰 키에 떡 벌어진 체격을 자랑하는 두 사람은 비슷한 듯, 전혀 다르게 생긴 얼굴로 대단한 합을 자랑했다. 성격은 또 얼마나 좋은지. 아무하고나 쉽게 어울렸다가 금세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또 적당히 선을 지켜 예를 갖추는 덕분에 어느새 두 사람은 단역 판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두 사람이 식당에 들어섰을 때 소란이 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연스레 붙어 오는 시선은 익숙한 것이라, 두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넉살 좋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배식받아 가장 구석진 자리로 향할 뿐이었다.

“너 계란말이 먹을 거야?”

희찬의 맑은 목소리가 도준의 귓전을 때렸다.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집었던 도준의 손이 멈칫했다. 희찬이 먹음직스러운 계란말이와 도준의 잘생긴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를 본 도준의 인상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그러면 그럴수록 희찬은 고개까지 갸웃거리며 의도가 다분한 눈빛을 보였다.

“먹을 거야.”

“나 하나 부족한데.”

“가서 받아 와, 나 먹을 거야.”

도준이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희찬의 손이 더 빨랐다. 도준의 입으로 곧장 향하던 젓가락이 희찬의 손에 꺾여 희찬의 입 안으로 쏙 들어갔다.

“아, 야.”

“맛있다.”

눈 뜨고 계란말이 빼앗겼다. 도준이 뾰로통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율무차 사 줄게.”

“좋아.”

이도준은 장희찬의 손바닥 위에 있다. 희찬은 어떻게 하면 도준이 풀리는지 잘 안다는 양, 희찬이 부드럽게 도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율무차면 뭐, 계란말이랑 바꿀 만했다.

도준은 금세 기분 좋게 웃으며 희찬의 손바닥에 볼을 문질렀다.

나란히 서서 양치질을 마친 두 사람의 가벼운 걸음이 율무차 자판기로 향했다. 겨울이 성큼 다가와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부는 오늘, 따끈한 율무차처럼 맛있는 후식도 없을 거다. 희찬은 즐거운 듯, 주머니에서 손을 굴려 동전을 흔들었다.

주머니 속 동전은 희찬이 출근할 때부터 오로지 ‘율무차’를 위해 일부러 챙겨 온 동전이었다. 도준과 같이 촬영장에 출근해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율무차까지 마시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되리라고 생각한 작은 마음이었다.

“엇…….”

곧장 자판기 버튼을 누르려던 희찬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자판기 화면에는 희찬이 넣은 100원짜리 동전 여섯 개가 만들어 낸 ‘600’ 세 글자가 깜빡거렸다.

“왜?”

“여기는 율무차가 400원이네. 우리 동네는 300원인데. 그치.”

도준이 희찬의 어깨에 턱을 괴고 희찬과 얼굴을 나란히 했다. 희찬의 하얀 손가락이 가리킨 율무차 아래에는 매정한 400원이 적혀 있었다.

도준이 희찬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주머니에 든 200원을 꺼내 자판기 안으로 쑥쑥 굴려 넣었다.

“이러면 됐지?”

자판기 숫자가 800으로 바뀌었다. 깜빡거리는 빨간 불을 본 희찬이 고개를 푹 떨구었다.

“이게 뭐야……. 우리 불쌍해.”

속상한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희찬의 모습이 못내 마음 아팠다. 도준이 희찬의 볼에 입을 맞추며 정성스레 희찬을 달래었다.

“안 불쌍해, 여기 율무차 가격을 잘 몰랐던 거지.”

도준이 허공에 멎은 희찬의 손을 거머쥐었다. 곧게 뻗은 희찬의 손가락을 잡고, 희찬의 손가락을 이용해 ‘율무차’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삑’ 소리가 나더니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이어 들렸다.

“희찬아, 나 다음 주부터 소장님이 일급 올려 준다고 했어. 그러니까 200원 때문에 속상해하지 마.”

“…….”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 우리는 남들보다 조금 더 고생했으니까, 나중에 조금 더 행복할 거야. 응?”

도준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뜻한 율무차를 희찬의 손에 쥐여 주었다. 한껏 침울해 보이는 희찬을 꼭 껴안고 토닥토닥 등을 다독이자 희찬이 도준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응……. 이따가 장 볼 때 율무차 티백 사자.”

“그래, 그러자.”

도준의 가슴 한편이 찌르르 울렸다.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태어났으면 고작 몇백 원에 일희일비하지는 않을 텐데.

‘율무차’를 생각하며 알뜰하게 600원을 챙겨 온 희찬의 모습이, 그리고 200원이 부족해 속상해지는 이 상황이 그렇게 안타깝고, 또 미안했다.

도준이 희찬의 앞머리를 매만졌다. 남들보다 어려운 생활을 하는 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서로가 있어 참 다행이었다. 남들은 가지지 못할 귀한 사람이었으니,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이 부럽지 않았다.

희찬이 호호 입김을 불어 율무차를 식혔다.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온도가 손바닥을 데웠다. 종이컵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그리 춥지 않은 날씨에도 괜히 긴장한 탓에 얼었던 얼굴이 따뜻한 온도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따뜻한 율무차를 호록, 한입 들이켰다. 고소하고 따뜻한 율무차가 기분 좋아 희찬의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었다.

“맛있어?”

“응, 맛있어.”

뭐든 잘 먹는 희찬을 보는 것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다. 도준은 홀짝홀짝 맛있게 율무차를 마시는 희찬의 모습에 싱긋 웃었다. 그리고 제가 쥔 율무차를 희찬에게 내밀었다.

“이것도 너 마실래?”

희찬의 눈이 뚝 떨어져 도준의 손에 닿았다가 다시 도준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은 어른이라는 것처럼, 어린 동생에게 맛있는 것을 양보하는 모양을 보이는 도준이 마뜩잖았다.

희찬이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입술을 쭉 내밀고 삐죽거리자 도준의 손바닥이 희찬의 입술에 닿았다. 꾹 누르는 힘에 희찬의 입술이 쑥 밀려 들어갔다.

“혼자 어른인 척하기 없어.”

“들켰네.”

희찬의 말에 도준의 빨간 입술 사이로 얕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웃음에는 희찬을 향한 애정이 잔뜩 묻어났다. 희찬이 도준의 눈앞에 새하얀 손바닥을 들이밀었다. 쫙 펴진 손은 무언가 주무르는 형태를 보이며 접었다가 펴지기를 반복했다.

“이도준 내 손바닥에 있잖아.”

희찬이 손을 둥글게 말아 손바닥에 무언가를 얹어 놓고 흔드는 모양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를 지켜보던 도준이 희찬의 큰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세게 잡아 쥐었다.

“내려놔라. 누가 올려놓으래?”

“내 맘이거든.”

찬 바람이 휭 불었다. 날씨가 춥지 않아도 바람은 제법 매서웠다. 차가운 바람에 발치에 널린 낙엽이 나뒹굴었다.

희찬이 어깨를 움츠리고서 도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도준이 큰 웃음을 터뜨리며 희찬을 감싸 안았다. 한 손에는 율무차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 희찬을 어루만지는 도준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희찬아! 희찬이 어디 있지?”

어디선가 희찬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차츰차츰 가까워지는 소리에 서로를 마주 본 두 사람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무리 감독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도준과 희찬이라고는 하나, 그들을 찾는 목소리가 현장에 울리는 것은 퍽 드문 일이었다. 희찬이 자판기가 즐비한 골목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조연출 스태프 중 한 명이 건물 곳곳을 뒤지며 자신을 찾는 모습이 보였다.

“가 봐, 찾으시잖아.”

“율무차 아직 다 안 마셨는데.”

희찬이 도준에게 제가 든 율무차를 건네었다. 도준이 뜨끈한 종이컵을 받아 들고, 재촉하듯 희찬의 등을 떠밀었다.

“나 저기 안에 있을 테니까 얘기 끝내고 와.”

“응, 따뜻한 데 들어가 있어.”

“그럴게. 잘하고 와.”

도준이 입에 제 컵을 물고, 희찬이 입은 옷의 매무시를 다듬어 주었다. 후드티 모양을 단정하게 잡아 준 후에는 정성스레 희찬의 정수리를 어루만졌다. 희찬은 그저 도준의 손바닥에 제 머리를 가져다 댄 채로 행복하게 웃었다.

희찬은 걸음을 옮기기 전, 자신의 머리를 어루만지는 도준의 손을 잡아 쥐고 하얀 손바닥 위에 입을 쪽 맞췄다. 도준이 피식, 웃었다. 희찬은 아무도 모르게 입 모양으로 ‘사랑해’ 속삭였다. 도준의 미소가 짙어졌다.

“저 여기 있어요!”

이내 타닥타닥 희찬의 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조연출에게 뛰어가는 희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도준의 입가에는 싱그러움이 앉은 채였다.

희찬은 조연출의 뒤를 쫄래쫄래 따랐다. 조연출이 향하는 곳은 일반 출연자들은 갈 수 없는 감독의 개인 컨테이너 사무실이었다. 그곳은 세트장 촬영이 있을 때마다 감독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작은 공간이었다.

똑똑, 묵직한 노크에 안에서 “어.” 하는 대답이 들렸다. 문이 열리자, 노란 장판에 작은 책상을 두고 앉아서 촬영 스토리보드를 보는 감독의 눈이 희찬에게 닿았다. 희찬이 멋쩍은 듯 웃었다. 그에 감독이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벌려 희찬을 환영했다.

“희찬아, 여기 앉아.”

“네!”

“커피 마실래?”

“방금 도준이랑 율무차 마셨어요.”

“그랬어? 잘했네.”

컨테이너 안쪽은 작은 탁자를 가운데 두고 두 개의 1인용 소파가 마주 보고 자리했다. 희찬이 감독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아서 조금 어색한 듯 컨테이너 내부를 구경하며 목덜미를 긁적거렸다.

감독에게 대본을 받으러 종종 그의 사무실로 가는 일은 있었어도, 이렇게 촬영장에서 감독이 자신을 따로 찾는 일은 드물었기에 괜한 긴장이 도사렸다. 희찬은 입 안 가득 바람을 불어 넣었다가,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로 큰 숨을 뱉으며 심호흡을 거듭했다.

“긴장돼?”

“네, 조금?”

“긴장할 게 뭐가 있어.”

“하하, 그래도요.”

감독이 연신 인자한 낯을 보였다. 율무차를 마셨다고 말을 했음에도 희찬 앞에는 희찬 몫의 따뜻한 차가 놓였다.

향이 좋은 차를 보니 도준이 생각났다. 도준이도 향이 좋은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데, 함께 마시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 그런 것들 말이다.

감독이 희찬 앞에 낯선 종이를 들이밀었다. 희찬의 눈이 종이에 닿았다가 다시 감독을 바라봤다. 감독이 얼른 살펴보라는 듯, 몸을 느슨하게 풀고 턱을 까딱거렸다.

하얀 종이 상단에 크게 적힌 글자가 희찬의 눈에 박혀 들었다. 그에 희찬의 두 눈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뜨였다. 그 아래에는 장희찬, 장희찬. 자신의 이름이 무수히 적혀 있었다.

“이게 뭐예요?”

“JR 알지?”

“그럼요!”

“JR 대표가 얼마 전에 촬영장 왔다 갔었는데, 너랑 계약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 원래 오늘 와서 직접 계약하려고 했는데, 내가 계약서 사본부터 좀 달라고 했어. 이런 거 계약하기 전에는 충분히 먼저 읽어 보고 해야 하는 거거든.”

JR 엔터테인먼트. 배우라면 모두가 꿈에 그리는 기획사 중 하나인 대형 기획사였고, 희찬은 상상조차 버거워 생각도 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계약 제의가 왔다니.

친절하고, 다정하게 하나하나 알려 주는 감독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이 모든 일이 황홀하기만 했기에 희찬은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얼씨구, 신났는데?”

“아, 당연하죠!”

“그래도 덥석 계약한다고 하지 말고, 잘 살펴봐.”

희찬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계약서 뭉치를 손에 쥐었다. 이것저것 알 수 없는 어려운 말로 적힌 장황한 조항들은 대체로 희찬이 알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래도 꼼꼼히 보려 노력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저건 또 무얼 뜻하는 건지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계약 내용이 마냥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어려우면 같이 봐 줄까?”

“그래 주실 수 있어요?”

“그럼.”

주변에 보호자는 없지만, 좋은 어른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었다. 흔쾌히 제 시간을 내어 함께 계약서를 검토해 주겠다는 감독의 말이 기껍다.

오늘은 촬영이 있으니 어렵고, 주말 중에 사무실로 오면 함께 봐 주겠다는 말에 희찬이 애교 섞인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핏 본 계약서에는 계약금을 지급한다는 조항도 있었다. 그에 희찬의 인상이 환하게 피었다. 드디어 조금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도준이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도 원 없이 사 줄 수 있고, 원하는 신발도 신겨 줄 수 있고, 예쁜 옷도 입혀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희찬은 다른 것보다 그게 그렇게 행복했다.

그럼 이제 정기적으로 일도 들어올 테니까, 도준이 공사장도 그만 보내야지.

희찬은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도준도 함께 꾸는 꿈이 떠올랐다. 막상 혼자 계약한다고 생각하니, 마냥 행복하던 것은 어디로 가고 도준이 눈에 밟혔다.

사실 연기로 따지자면 이도준도 어디 가서 빠질 사람이 아닌데, 게다가 그 잘생긴 얼굴을 가졌는데. 왜 기회가 오지 않는 걸까.

희찬의 표정이 금세 침울해졌다.

“왜 그래?”

“혹시 도준이는…… 다른 소식 없어요?”

“그렇지, 이도준 안 챙기면 장희찬이 아니지.”

왜 이도준 얘기가 안 나오나 했다.

해맑게 피었던 희찬의 얼굴이 삽시간에 어두워지기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걱정했던 것과 달리 희찬은 못내 도준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저렇게 순수한 두 사람의 모습이 참 좋다. 기뻐하기 바쁜 와중에도 행복을 느끼기 전에, 상대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괜히 가슴 어딘가 찡한 울림이 앉았다.

감독이 희찬의 단단한 어깨를 턱턱 다독였다. 희찬이 들으면 더 없이 행복해할 소식을, 감독은 알고 있다.

“있어. 도준이 찾는 사람도 있는데, 오늘 그쪽 소속 배우가 사고가 났대. 그래서 거기 가 본다고 못 왔어.”

“대박, 거기도 좋은 데예요?”

“그럼. JR보다 더 좋아.”

희찬의 눈에 금세 행복이 도사렸다. 자신에게 제의 온 회사보다 좋다는 말에도 낯이 더 환하게 피는 것 같았다.

“K액터스?”

희찬이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JR보다 좋은 곳은 딱 하나, 희찬이 말한 K액터스뿐이었다.

“응, 곽 대표가 도준이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 도준이한테는 비밀이다?”

세상에 K액터스라니. 희찬의 입이 떡 벌어졌다. 과연 이도준, 뭘 해도 탑으로 간다. 쓰라리던 마음에 삽시간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거기 원래 신인은 계약 안 하는데 욕심나나 보더라고.”

“대박! 근데 도준이한테는 왜 비밀이에요?”

“곽 대표가 도준이 만나서 직접 전하고 싶다고 했거든. 도준이가 신나는 모습 보여야 곽 대표도 말할 맛이 나지.”

“아, 네! 그럼 비밀로 할게요.”

희찬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언지 정확하게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른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는 도준의 모습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저와 같은 모습으로 계약서를 손에 쥐고, 즐거워할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간질거렸다.

희찬은 얼굴 가득 차오르는 행복을 도무지 숨기지 못했다. 행복에 겨워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은 또 처음이었다. 눈가에 금방 열이 올랐다. 금세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아 큼큼, 마른 목을 가다듬으며 눈을 이리저리 굴려 댔다.

“그렇게 좋아?”

“그럼요. 아시잖아요, 저희…….”

“원래 희찬이 너도 K액터스에서 보고 싶다고 했는데, JR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일단 계약서 보고 그쪽이랑 계약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싶어. JR도 신인은 가기 어려운 곳이니까, 너희가 각자 다른 곳을 경험하면서 공유하면 그게 또 풍부해지지 않을까.”

“아, 그럼요! 저희는 뭐든 기회가 오면 좋으니까요.”

혹시 질투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길게 덧붙이는 감독의 말에 희찬이 빙그레 웃었다. 계약 제의가 온 곳이 어디든 상관없다. 정말로 회사 이름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희찬은 누구 하나 우울하지 않도록 동시에 찾아온 기회가 그저 감사했다. 게다가 대형 기획사의 러브콜이라니. 황금 같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기에 각자에게 제의가 들어온 회사의 규모를 따질 겨를은 조금도 없었다.

“그래, 응원한다. 이제 가 봐, 도준이가 기다리겠네.”

“네, 감독님 항상 감사합니다.”

“뭘, 나도 너희 잘되면 좋지. 너희 유명해져도 나랑 작품 하기다?”

“당연하죠, 감독님.”

“그래, 도준이한테는 비밀이야, 말하지 마.”

“네!”

인사를 마친 희찬은 부리나케 도준에게 향했다. 이 소식을 도준에게 전했을 때, 그가 저 못지않게 행복해 할 것은 굳이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 잘생긴 얼굴에 진하게 피어오르는 환한 미소가 보고 싶다. 그와 함께 즐거워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니 희찬의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경쾌한 걸음으로 사라지는 희찬의 뒷모습을 보는 감독은 흐뭇한 마음을 머금었다.

이도준과 장희찬, 장희찬과 이도준.

요즘 참 보기 드문 성실한 청년들이고, 그들의 열정과 성실함은 자신들의 앞날을 보증하는 자산과 같았다. 당연히 좋은 곳에서 연락이 올 줄 알았다. 그리고 좋은 발판이 마련되었으니 앞으로의 승승장구도 당연한 것일 테다.

드디어 저들을 가린 먹구름이 걷힐 모양이다. 두 사람이 맞을 환한 날이 최대한 빠르게 도래하길 바라며, 감독이 가벼운 숨을 쉬었다.

해가 다 지고서야 촬영이 끝났다. 으슬으슬한 몸을 한껏 움츠린 희찬이 픽 쓰러지듯 도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었다. 체력이 좋은 이도준은 무수한 대기 시간 중에도, 잠깐의 촬영 시간에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고된 일정을 소화해 냈다. 그게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희찬이 도준을 올려다보자 도준이 싱그럽게 웃었다. 제게만 보여 주는 다정한 도준의 낯에 희찬이 만족을 머금었다. 이내 도준이 손에 쥔 핫팩을 희찬의 얼굴에 얹었다.

희찬이 애교를 섞어 도준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촬영이 끝났지만, 두 사람은 집으로 가지 못했다. 달동네로 가는 버스는 벌써 끊겼고, 집으로 가려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세트장이 인적 드문 곳에 위치한 탓에 큰 도로변까지 걸어 나가야 했다.

그래서 이왕 늦게 끝난 거, 정리가 끝나면 감독에게 인사나 하고 가자고 말을 모았다. 항상 자신들을 찾아 주는 감독에게 인사를 남기는 것은 도준과 희찬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었다.

“힘들었어?”

“으응, 피곤해.”

“오늘 일찍 일어나서 더 그런가 보다.”

“장 보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너무 늦게 끝났어.”

“내일 가자.”

“좋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뒷정리도 얼추 끝났다. 다른 감독과는 만나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임 감독은 정리가 마무리될 때까지 현장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내 조명이 모두 꺼진 현장에서 스태프들도 사라졌다. 모두가 나가는 것을 지켜보던 두 사람이 걸음을 옮겨 쭈뼛쭈뼛 감독에게 다가갔다. 스태프와 얘기를 나누던 감독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 반갑게 맞이했다.

“아직 안 갔어?”

“인사드리고 가려고요.”

“아이고, 뭘 인사까지. 희찬이는 다음 주에도 나오는 거지?”

“그럼요!”

감독은 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두 사람이 생글생글 웃는 것이 마냥 귀엽기만 했다. 고개를 힘차게 주억거리는 희찬에게 싱긋 눈짓을 준 감독의 눈이 이번엔 도준에게 닿았다.

“도준이는?”

주로 표정이 없는 도준이었지만, 그의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간 걸 보아하니, 상당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저는, 다음 주에 일이 있어서 안 될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연락 주시면 최대한 시간 맞춰 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감독의 두툼한 손이 도준의 어깨를 턱턱 두드렸다.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한 두 사람이 곧 세트장에서 벗어났다. 세트장에서 큰길로 나가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마냥 지루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따라 유달리 기분이 좋아 보이는 희찬이 쉴 새 없이 쫑알거렸고, 그 얘기를 듣는 것은 도준에게도 퍽 재미난 일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기분 좋다. 추위를 많이 타는 도준이었지만, 희찬과 마주 잡은 손이 따스했으니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바람이 찰수록 공기가 상쾌해졌다.

도준이 입을 벌려 숨을 크게 들이켰다. 차가운 공기가 목을 타고 폐까지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금세 온몸이 쾌청함을 머금었다.

“춥지.”

“아니, 안 추워.”

“너 코 빨간데?”

두 사람이 도로변에 멈추었다. 택시가 다닐 법한 거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도준은 제법 추워 보였다. 희찬이 자신의 손에 입김을 호호 불어 도준의 볼에 가져다 댔다. 뜨끈한 손이 닿았다가 금세 다시 차가워졌다.

“너랑 있으면 안 추워.”

도준은 희찬에게 얼굴을 잡힌 채로 눈을 굴렸다. 다니는 사람도 없고, 지나는 차도 한 대 없어 거리가 한산했다. 주변을 살피던 도준이 얼굴을 내밀고 희찬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던 희찬이 눈을 가늘게 뜨고 도준을 흘겨봤다.

“뭐야, 이도준.”

“예뻐서.”

“나도 할래.”

“해 줘.”

이번엔 희찬이 도준의 입에 입을 맞췄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살덩이가 부딪쳐 귀엽게 쪽 소리가 났다.

도준이 환하게 웃었다.

희찬도 덩달아 웃었다.

한적했던 도로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달려오는 차를 확인한 도준이 부리나케 손을 뻗어 휘저었다. 그에 빨간 글씨로 ‘빈 차’를 표시한 택시가 쌩 달려오다가 두 사람 앞에서 끽, 멈춰 섰다.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따뜻한 차에 오르니 노곤노곤 잠이 몰려왔다. 추운 날씨에 잔뜩 얼었던 몸이 풀리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희찬이 따끔거리는 눈을 끔뻑거렸다. 그를 본 도준이 손을 뻗어 희찬의 고개를 제 어깨에 가져다 댔다.

희찬이 몸에 힘을 빼고 도준의 몸에 머리를 편안하게 기대었다. 단단한 어깨에 머리를 대자 솔솔 잠이 몰려왔다. 희찬은 도준의 손을 거머쥐고서 고른 숨을 쉬었다.

“얼마예요?”

“3만 8천 원 나왔어요.”

“아, 잠시만요.”

금방 동네에 다다랐다. 도준은 제게 기대어 잠든 희찬이 깨지 않도록 몸놀림을 조심히 하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도준의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만 원짜리 지폐 세 장과 오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이 나왔다.

“잔돈은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 것은 일종의 버릇이었다. 아주 어릴 적, 고아원 선생님과 택시를 탈 때면 선생님들은 꼭 잔돈을 받지 않고 내렸었다. 하루 일당을 채워야 하는 택시 아저씨들이 안타깝다나 뭐라나. 그때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같이 일당을 받는 처지에 그들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덜고 싶은 건방진 마음이었다.

“읏차.”

“아악, 아파아…….”

“미안, 미안.”

잠든 희찬을 깨우지 않으려 했는데, 본의 아니게 아주 요란하게 희찬을 깨워 버렸다. 희찬을 업으려는 도준의 힘에 윗몸이 들리던 희찬이 차 문틀에 머리를 퍽, 박고서 투정을 부려 댔다. 피곤한 게 역력히 드러나는 모습에 도준이 희찬의 이마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쯤 하면 잠이 깼을까 생각했던 것과 달리 희찬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했다. 도준은 다시 조심스레 몸을 숙여 희찬을 업었다.

저랑 엇비슷한 덩치의 희찬을 업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힘든 일도 아니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도준은 희찬의 엉덩이를 받친 손에 힘을 더했다.

세 걸음에 한 번씩 하늘을 봤다. 휘영청 밝은 달과 그 주변을 장식한 별이 찬란하게 반짝거리는 것이 더없이 예쁜 하늘이었다. 새까만 배경에 반짝이는 꿈을 머금은 하늘은 마치 도준과 희찬의 모습 같았다. 누구보다 암담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 치 앞도 살필 수 없는 하루를 매일매일 견디고 있지만, 그럼에도 꿈을 머금은 우리는 언젠가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빛이 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꿈을 품은 도준의 울대가 크게 울렁거렸다. 별안간 가슴이 부풀었고, 쿵쿵 거칠게 뛰는 심장이 설렘을 머금은 채였다.

도준의 귓바퀴를 차가운 손이 조몰락거렸다. 언제 일어난 건지, 장난스러운 표정의 희찬이 도준의 귀를 만지작거리는 중이었다. 도준이 고개를 꺾어 희찬을 바라봤다. 희찬은 도준이 그랬던 것처럼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깼어?”

“응, 아까. 별 예쁘다.”

“일어났으면 내린다고 해야지, 양심 어디 갔어.”

읏차, 희찬이 도준의 등에서 내려왔다. 도준이 두 손을 허리에 얹고 등을 뒤로 젖히자 희찬이 얼른 도준의 어깨를 주물렀다.

“택시비 많이 나왔어?”

“아니, 4만 원.”

“네 용돈으로 한 거 아니지? 아까 돈 챙겼지?”

“응, 용돈 안 썼어.”

희찬이 도준의 잘생긴 머리를 정성스레 쓰다듬었다.

1주일에 3만 원. 아끼고 아껴도 부족한 용돈이었건만, 이도준은 그마저도 저를 위해 쓰는 일이 드물었다. 희찬은 그게 줄곧 마음에 들지 않아 매번 도준의 용돈을 체크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계약 제의를 받았고, 계약서에 쓰여 있는 계약금은 꽤 큰 돈이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일주일에 3만 원이 아닌, 10만 원씩 나눠 가져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희찬의 입꼬리가 뿌듯함을 머금고 둥글게 치솟았다.

*

눈가를 간질이는 햇살에 눈을 뜬 희찬은 곧장 도사리는 설렘에 함박웃음을 피웠다.

지난밤, 집에 오기 무섭게 기절하느라 도준에게 얘기하지 못한 것이 있다. 희찬이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방에 벗어 둔 옷 속에서 고이 접어 둔 종이 뭉치를 꺼냈다.

계약서.

계약서에 관한 얘기를 하지 못했다. 희찬은 종이를 팔랑거리며 잔바람을 일으키며 잘생긴 눈을 감고 고이 잠든 도준의 옆에 섰다. 피곤하긴 했는지, 깊은 잠에 빠진 도준은 도무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동안 기다리던 희찬이 손을 뻗어 도준의 볼을 잡아 쥐었다. 손가락에 힘을 주고 쭉 잡아당기자 도준의 가지런히 잘생긴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눈은 뜨이지 않았다. 그저 불편한 정도에 불과했던 건지, 도준은 ‘흐음’ 숨소리를 내며 다시 잠을 청했다.

희찬의 손가락에 조금 더 힘이 실렸다. 어찌나 세게 잡아 쥐었는지, 희찬의 손가락 주변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아아.”

드디어 도준에게서 앓는 소리가 났다. 도준의 정갈한 미간에 내 천(川)자가 그려졌다. 얇은 눈꺼풀이 들리고 까만 눈동자가 드러났다. 희찬은 방긋 웃으며 도준의 눈앞에 종이를 들이밀었다.

“뭐야…….”

“계약서!”

“계약서?”

“나 JR 엔터에서 계약하재!”

희찬이 환하게 웃었다. 어안이 벙벙하여 종이를 찬찬히 훑던 도준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가 다시 크게 뜨였다. 동공이 커다래지더니, 입이 떡 벌어졌다. 하나하나 읽어 내리는 도준의 눈이 바쁘다. 한참이나 종이를 들여다보던 도준의 낯에 드디어 화려한 미소가 피었다.

“진짜?”

“응! 계약금도 준대! 우리 이사 갈 수 있어!”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희찬아. 진짜 잘됐다.”

도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을 모두 동원해 축하를 건네었다. 다른 사람들이 축하하는 것보다 몇 배는 크게, 자신이 느끼는 행복을 그대로 희찬에게 전하고 싶어 발버둥 쳤다.

도준이 머리맡에 앉아 저를 쳐다보는 희찬의 몸을 끌어안고 제 위에 눕혔다. 희찬의 드러난 살결 곳곳에 입을 맞추고 사랑을 건네자 희찬도 덩달아 도준의 목을 쥐고 입을 맞췄다.

“잘됐지?”

“축하해. 축하해, 희찬아.”

“뽀뽀 또 해 줘.”

“응, 당연하지.”

희찬의 맑은 웃음소리가 좁은 집을 울렸다. 도준의 입술이 몇 번이고 희찬의 피부에 닿았다가 떨어지길 반복했다. 희찬이 도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도준이 희찬의 뒤통수를 부드럽게 거머쥐고 소중히 쓰다듬었다. 희찬의 귓가에는 끝없이 축하를 읊조리는 낮은 도준의 목소리가 닿았다.

같은 꿈을 꾸는 처지에서 한 명이 먼저 잘된다는 것을 두고 열등감을 느끼거나, 비교의식을 가지고 질투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예외였다. 희찬의 생각대로 착해 빠진 이도준은,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이도준은 질투는커녕, 있는 그대로 축하해 주고 즐거워했다. 덕분에 어제 느꼈던 행복이 배가되었다.

“좋아해 줄 줄 알았어, 사랑해.”

“나는 네가 잘될 줄 알았어. 사랑해.”

“너도 곧 좋은 소식 있을 거야.”

도준의 품에 안겨 즐겁게 웃던 희찬의 머릿속에 감독이 덧붙인 말이 떠올랐다. 도준을 눈여겨보는 대표가 있다고 했다. 신인 배우는 갈 수 없는, 아예 계약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K액터스. 그곳에서 이도준을 찾는다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도준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준을 놀라게 하고 싶은 마음은 희찬도 마찬가지였으니 근질거리는 입을 꾹 다물고 도준의 손길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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