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정박 (1)
희찬의 손에 손목이 붙잡힌 도준은 조금의 저항도 없이 희찬이 이끄는 대로 발을 놀렸다. 희찬이 향한 곳은 도준이 사는 A동이 아닌, 희찬이 사는 B동이었다. 익숙하게 공동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열리는 유리문 너머로 성큼성큼 걸음을 놀리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지내는 고급 빌라는 층마다 한 세대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하지 않으면 해당 층으로 이동할 수 없는 구조였다.
한번 층수가 입력된 엘리베이터는 다른 층에서 호출을 불러도 중간에 멈추지 않고 곧장 해당 층으로 향하게끔 설계되어 있었고, 덕분에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누군가와 마주칠 일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생활을 중요시하는 입주민이 대부분인 탓에 엘리베이터에는 그 흔한 CCTV도 없었다. 혹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경우 공동 현관문에 달린 CCTV로 출입 기록을 확인하고, 해당 인물이 어느 층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는지의 정보로 충분히 보안을 지켜 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를 충분히 인지한 도준과 희찬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기 무섭게 입술을 마주 댔다. 맞닿아 있음에도 부족했다. 희찬이 갈구하듯 도준의 윗입술을 머금었다. 도준의 단단한 팔이 희찬의 허리를 받쳤다. 도준이 희찬의 아랫입술을 머금자 희찬의 새빨간 입꼬리가 예쁜 포물선을 그렸다.
상대를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거칠게 입술을 부닥치는 두 사람 사이에 질척한 소음이 도사렸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신음이 입 안에서 울리고, 타액이 실선을 그리며 길게 늘어졌다. 그러다 다시 입을 맞추고 물컹한 살덩이를 뒤섞었다.
고개를 비틀 때마다 코끝이 스쳤다. 유달리 달게만 느껴지는 타액이 뒤엉키고, 뜨거운 입 안을 헤집다 보니 숨이 점점 가빠졌다. 혀를 세워 치열을 훑고, 입천장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그러는 중에도 손으로는 서로의 몸을 쉴 새 없이 탐했다.
축축한 소음과 신음이 뒤섞여 엘리베이터의 온도가 후끈 달아오를 무렵, 도착을 알리는 맑은 소리가 울렸다. 이내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 오랜만에 서로를 마주한 두 사람은 상대의 손을 꼭 쥐고, 오롯한 행복을 피워 냈다.
희찬의 새하얀 손가락이 비밀번호를 치려는 듯 도어락을 향했다. 이번에는 도준이 그 손가락을 거머쥐었다.
“내가 열래.”
“비밀번호가 뭐일 줄 알고?”
“뻔하지, 뭐.”
장희찬이 저를 주무르는 동안 도준이라고 가만히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희찬이 제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희찬의 속 역시 뻔히 알 수 있는 도준이었다.
도준은 주저 없이 희찬의 집 비밀번호를 삑삑 눌렀다.
‘061748’
도준의 집과 같은 비밀번호였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애초에 희찬이나, 도준이나 휴대폰 번호 뒷 네 자리도 같은 ‘1748’이었다. 데뷔 전 함께 사용하던 번호를 이어 사용하는 희찬도, 데뷔 직전에 휴대폰을 산 도준도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전화번호는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희찬은 도준을 꼭 껴안은 채로 놓지 않았다. 도준의 레더 재킷에 얼굴을 묻고, 도준의 걸음을 따라 엉거주춤 걷는 것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도준에게서 떨어지는 게 더 싫었다.
도준이 피식, 웃었다. 옆구리를 꼭 안은 채로 어정쩡한 걸음을 걷는 희찬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자, 희찬의 입에서도 얕은 웃음이 터져 흘렀다.
드디어 희찬의 집 앞에 섰다.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새삼스레 그 시간의 무게가 도사려 도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희찬의 집은 온 사방에 불이 환하게 켜진 채였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아, 희찬은 여전히 적막과 암흑을 무서워하는 모양이다. 몰려오는 씁쓸함에 도준이 쓴 침을 삼켰다.
현관에 선 채로 둘러본 희찬의 집에서 불현듯 기시감이 들었다. 분명 처음 온 공간이었는데 익숙했다. 도준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희찬이 도준의 뼈대가 도드라진 손을 거머쥐었다.
“너희 집이랑 비슷하지.”
아, 그래. 도준이 지내는 집과 같은 분위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러게.”
“취향 어디 안 가나 봐.”
두 팔로 단단하게 도준의 목을 옭아매고, 제 무게를 실은 희찬은 도준의 등에 매달린 채로 질질 끌려다녔다. 도준은 희찬이 그랬던 것처럼 온 방의 문을 다 열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희찬의 흔적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너도 여기가 옷방이야?”
“응.”
“그럼 저기는 서재야?”
“서재라기보다는, 그냥 대본 보는 방.”
“여기는 침실?”
희한하게도, 희찬의 집에 있는 모든 방의 위치가 도준과 같았다.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집이라 그 방향이 달랐을 뿐, 현관을 기준으로 오른쪽과 왼쪽이 분명하게 나뉜 집은 신기하리만치 똑같았다.
“신기하지. 나도 네 집 갔을 때 되게 신기했어.”
“침실 열어 봐도 돼?”
“으응, 아니. 안 쓴 지 오래됐어.”
“왜?”
“침대에서 잘 못 자, 그냥 소파에서 자.”
희찬이 손가락을 뻗어 소파를 가리켰다. 소파 위에는 희찬의 말대로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이불과 베개가 놓여 있었다.
그에 도준이 인상을 바짝 찌푸리고 희찬을 바라봤다. 번듯한 침실을 만들어 두고서 왜 소파에서 자는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눈이었다.
“내 맘이야.”
하지만 이렇게 나오면 달리 할 말이 없다.
도준은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체로 화사한 분위기의 집은 희찬과 잘 어울리는 인테리어를 갖추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심플하지만 화려하게 꾸며 놓은 모습이, 처음 달동네로 이사 갈 때 이것저것 알아보던 희찬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도준의 입가에 싱그러운 미소가 피었다. 보지 않아도 요란법석을 떨었을 희찬의 모습이 훤히 보인 탓이었다.
“야, 근데 이거 좀…….”
한참을 돌아다니던 도준이 우뚝 멈추어 섰다. 아까부터 엉덩이를 묵직하게 누르는 희찬의 중심부가 이제는 거슬릴 정도로 팽팽하게 부풀었다. 어느 정도 돌아다니다 보면 가라앉겠거니, 애써 무시하는 중이었건만 아예 허리를 바르작거리는 희찬의 행동에 도준이 난감한 듯 미간을 긁적였다. 희찬은 아무것도 모르는 양, 해맑은 표정으로 도준을 응시했다.
“어쩔 수 없어, 오랜만에 키스한 거란 말이야.”
“했었잖아, 저번에도.”
“그건 연기였잖아. 이도준 아니고, 해인이었잖아.”
하여튼, 장희찬은 당해 낼 수 없다.
도준의 검은 눈이 희찬을 직시했다. 옅은 시선 가득 사랑이 핀 것이 못내 간지러웠다. 희찬은 두 팔을 여전히 도준의 목에 두른 채였다. 도준은 갈 곳 잃은 두 손으로 희찬의 허리를 꼭 부여잡았다.
희찬이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면, 도준이 한 발 물러섰다. 제 등 뒤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구조의 집이었지만, 도준은 그저 희찬이 이끄는 대로 뒷걸음질을 쳤다.
이내 도준의 종아리에 푹신한 것이 닿았다. 직감적으로 소파라는 것을 알아챈 도준은 다리에 힘을 풀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희찬은 기다렸다는 듯이 도준의 허벅지 위에 올라앉았다. 도준의 목에 두른 팔로 늘씬한 목을 매만지며 그를 내려다보는 희찬의 눈빛에는 욕망이 가득했다.
도준이 편하게 몸을 뉘었다. 갑자기 풀썩 몸을 누인 도준의 행동에 희찬이 도준의 양옆을 짚고 두 팔로 제 몸을 지탱했다.
흐트러지는 애쉬톤의 밝은 머리카락에 불빛이 부딪쳐 반짝거렸다. 도준은 손을 들어 희찬의 새하얗고 작은 얼굴을 거머쥐었다. 부드럽기만 한 피부가 손바닥에 붙는 느낌이 좋아, 한참이고 하염없이 그의 말랑한 뺨을 매만졌다.
아까부터 쿵쿵, 시끄럽게 뛰던 심장이 이제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꼴깍 침이 넘어가는 아주 작은 소리마저 생생하게 들릴 정도로 두 사람은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고 싶어.”
희찬의 짧은 말이 뚝 떨어져 도준의 가슴에 닿았다. 가만히 희찬을 올려 보던 도준이 희찬의 새빨간 입술에 입을 맞췄다. 쪽, 가볍고 귀여운 소리와 달리 도준의 손은 능숙하게 희찬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도준의 투박한 손이 닿자 희찬이 몸을 움찔거렸다. 지난 수년간 다른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으니, 도준의 손길이 유독 자극적인 건 어쩔 수 없다.
“근데…….”
희찬은 주저되는 듯 도준의 손을 떼어 내고 인상을 찌푸렸다. 지난 세월 숱하게 머릿속에 남았던 말은 도준이 남겨 두고 떠난 ‘강간’이라는 단어였다.
아무리 숱한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나, 사랑하는 사람과 눈물겨운 재회를 하여 몸이 달떴다고는 하나, 사랑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도준은 희찬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손을 놀려 희찬의 바지를 벗겨 냈다.
바지가 벗겨지자 드러난 살갗에 시원한 공기가 닿았다. 이윽고 검은 드로어즈까지 도준의 손에 끌어 내려졌다. 이미 제 크기를 다한 희찬의 페니스가 위상을 뽐내며 꺼떡, 꺼떡 춤을 추는 중이었다.
희찬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도준의 손이 매만지는 자신의 페니스를 쳐다봤다. 앞으로 닥쳐올 쾌감은 익히 잘 아는바, 아찔한 자극에 괜히 쭈뼛쭈뼛 전신의 털이 다 서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머릿속에서는 눈물에 흥건히 젖은 얼굴로 ‘너도 날 강간하고 싶은 거냐.’라고 묻던 도준의 얼굴이 그려져 행위가 달갑지 않았다.
도준이라고 사정이 다른 것은 아니었다. 도준은 희찬의 페니스를 마주하기 무섭게 다른 의미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머리채를 붙잡고 우악스럽게 욱여넣던 그 끔찍한 것들과 희찬의 것이 겹쳐 보였다. 거친 숨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막아 낸 도준은 제 앞에 있는 상대가 그 무자비한 남자들이 아닌, 희찬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하려 노력했다.
도준은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희찬의 페니스를 감싸 쥐었다.
“으읏.”
쿠퍼액이 비집고 흘러 번들거리는 요도를 문지르자, 희찬의 가지런한 미간이 삽시간에 찌그러졌다. 도준은 마음속에 가득 도사린 공포를 애써 무시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짓궂은 도준의 모습에 약이 바짝 오른 희찬이 허리를 비틀며 입술을 이죽거렸다.
도준은 희찬의 페니스를 손에 쥐고 빳빳하게 선 기둥을 훑었다. 뭉툭한 귀두를 문지르고, 손에 그악스러운 힘을 줘 바짝 조이자 희찬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손바닥의 힘을 풀고, 부드럽게 만지기를 반복했다. 희찬이 뜨겁고 무거운 숨을 터뜨렸다.
도준은 다른 손으로 제 바지의 버클을 풀었다. 도준의 눈은 집요하게 희찬과 마주한 채였다. 희찬은 왜인지 서글퍼 보이는 도준의 눈을 부러 피하지 않았다. 이 얼마나 마주하길 바랐던 눈인지 이도준은 모를 것이다.
희찬이 더듬더듬 도준의 가슴을 문질렀다. 하얀 티셔츠 아래에 손을 넣어 탄탄한 가슴을 훑자, 도준의 인상에도 차츰차츰 변화가 생겼다.
희찬의 손이 불쑥 들어와 부드럽게 가슴을 만지는데, 왜 이렇게 소름이 돋는지 모르겠다.
도준은 가파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런 도준의 노력과 달리 귀가 먹먹해졌다. 저를 반찬처럼 올려놓고 제 마음대로 주무르고 탐하던 수십 개의 시선과 숨소리가 생생하게 닿는 것 같았다.
도준의 숨이 절로 가빠졌다. 탐스러운 흉통이 크게 부풀었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도준이 희찬과 시선을 마주했다. 저를 탐하는 상대가 그 누구도 아닌 장희찬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희찬의 행동과 표정 하나하나를 가슴에 담았다.
당연히 페니스가 반응할 리도 없다. 스폰을 끝내고 지난 숱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발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희찬의 목소리를 들으면 반응이 왔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희찬이 눈앞에 있어도 반응하지 않는 페니스에 도준은 속으로 남모를 한숨을 삼켰다.
도준이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희찬의 얼굴을 거머쥐었다. 분주하게 희찬의 페니스를 문지르는 손길과는 사뭇 다른 손이었다. 희찬이 턱을 꺾어 도준의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간지럽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촉촉한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터졌다.
“흐으…….”
거듭 터지는 희찬의 신음을 듣던 도준이 허리에 힘을 주고 윗몸을 일으켰다.
“너 뭐 해.”
“……넣어.”
도준의 말에 희찬이 눈썹을 들썩거렸다. 도준은 소파 등받이에 팔꿈치를 대고, 몸을 숙여 엉덩이를 내밀었다. 오랜만에 하는 행위에 희찬이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도준의 몸은 의도와 달리 덜덜 떨리고 있었다.
희찬이 침을 꼴깍 삼켰다. 희찬은 버클이 풀린 도준의 바지를 허벅지까지 끌어 내렸다. 짙은 색의 드로어즈를 천천히 걷어 내자, 언제 봐도 참 예쁜 엉덩이가 드러났다.
희찬이 도준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도준의 몸이 일순 흠칫 떨렸다. 흡, 숨을 들이켜는 도준의 모습에 희찬은 마치 긴장을 풀어 주려는 것처럼 부드럽게 도준의 허리와 골반, 엉덩이를 번갈아 어루만졌다.
애정 어린 희찬의 손길에 도준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잔뜩 긴장한 도준의 모습에 희찬은 의아함과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욕구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희찬은 이를 악문 채로 도준의 허리 대신 어깨를 그러쥐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바들바들 떠는 도준을 붙잡고 자신의 욕구를 풀 만큼 제 욕망이 중하지도 않았고, 준비가 되지 않은 도준을 붙들고 억지로 관계를 이어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 말자.”
“괜찮아.”
털이라고는 한 올도 남지 않은 도준의 몸이 심하게 낯설다. 분명 이렇게까지 체모가 없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 역시 도준에게 물어봐야 할 것 중 하나였으므로, 침을 꼴깍 삼킨 희찬은 허리를 숙여 도준의 탄탄한 허리에 입을 맞췄다.
그에 또 도준의 몸이 크게 튀었다. 예상치 못한 감촉에 흐으, 달뜬 숨을 흘렸다.
“안 괜찮아 보여, 괜찮을 때 하자.”
“…….”
희찬이 도준의 몸을 안고 뜨거운 숨을 터뜨렸다. 배려가 물씬 묻어나는 말은 진심인 건지, 구태여 허리를 바르작거리지도, 한껏 열을 머금은 페니스를 비비적거리지도 않는 희찬의 모습에 도준이 입술을 잘근 씹어 물었다.
희찬과의 관계 후에는 남자들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려 했는데 희찬의 말대로 괜찮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가다듬은 도준은 엉덩이를 내어 주는 대신 몸을 돌려 희찬의 꺼떡거리는 페니스를 쥐었다. 단단하고 몽톡한 페니스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희찬이 허리를 비틀었다.
“흣…….”
“이렇게 해, 그럼.”
이건 괜찮은 걸까.
이번엔 희찬이 승낙하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열망을 머금은 페니스에 부드러운 살결이 휘감겼다. 귀두 끄트머리를 집요하게 매만지다가 기둥으로 내려와 세게 조이는 손아귀의 힘에 희찬의 얼굴이 조각조각 일그러졌다.
도준은 제 위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쾌감을 느끼는 희찬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최대한 정성스레 손을 놀렸다.
탁, 탁.
요란한 마찰음이 거실에 쌓이기 시작했다. 도준의 손에 페니스가 붙잡힌 희찬은 도준의 어깨를 세게 움켜쥔 채로 허벅지에 힘을 주고 자극을 견뎌냈다.
오랜만에 타인의 손이 닿으니 페니스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저릿한 감각이 뇌를 찌르고 드는 탓에 자꾸만 시야가 아득해져, 희찬은 목에 핏대를 세우고서 가쁜 숨을 연신 터뜨렸다.
도준은 희찬의 페니스를 주무르고 흔드는 동안에도 다른 손으로 희찬의 엉덩이와 그 사이의 움푹한 골짜기를 탐했다. 굳게 다물려 열리지 않는 구멍 주변의 주름을 손끝으로 헤아리고, 말랑한 엉덩이를 주무르자 희찬의 이마에도 핏줄이 불끈 솟아났다.
오래간 열리지 않아 꽉 닫힌 구멍은 빡빡했다. 마치 예고라도 하는 것처럼 주변을 배회하다, 천천히 손가락을 밀어 넣자 희찬이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았다.
“읍……!”
오랜만에 느끼는 속이 꿰뚫리는 쾌감에 희찬의 교근이 불끈 솟았다.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 흐른 터라 도준의 손가락이 안기는 느낌은 생경하고 또 낯설었지만, 꾸물꾸물 밀고 들어오는 손가락은 금방 익숙해져 전신이 발악을 해 댔다.
후끈한 열기에 머리가 다 얼얼해지는 것 같았다. 도준의 손가락이 개수를 늘려 가고, 페니스를 조였다가 풀어 주며 자극을 더하는 행동에 발끝이 절로 오므라들었다. 희찬은 도준의 어깨를 움켜쥐었던 손을 내려 도준의 페니스를 쥐었다.
“아…….”
“흣, 으……. 읍! 아, 거기…….”
“응, 여기 좋아하지.”
“아……!”
도준의 여러 갈래로 흩어진 손가락이 요란하게 요동치는 희찬의 속을 아무렇게나 헤집었다. 뜨겁고 여린 살이 손가락을 휘감는 게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도준은 조심스레 움직이던 손가락에 힘을 더했다.
도준이 관계에 적극적으로 임할수록 희찬도 도준의 음낭과 페니스를 주무르며 그가 이 행위에 함께 희열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가 이 관계를 ‘강간’이라 생각하지 않도록, 우리가 하는 이 행위는 오롯한 사랑에서 비롯된 관계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흐읏! 아, 너무…….”
“후으…….”
“아, 아흣……. 흡, 읏……!”
오랜만에 정신을 지배하는 아득한 감각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했다. 눈앞이 컴컴해지는 아찔한 쾌락에 희찬이 전신을 바들바들 떨었다. 속을 탐하는 도준의 손가락은 부드럽고, 상냥했다. 도준의 손가락이 여린 속을 눌렀다가, 다시 빠져나갈 때는 요동치는 속살이 부끄러워 희찬의 고개가 푹 수그러졌다.
희찬이 도준의 잘생긴 귓불을 물었다. 예민한 목덜미에 따뜻한 입김이 닿자 도준이 퍼뜩 어깨를 움츠렸다. 탄탄한 희찬의 허벅지 근육이 팽팽하게 솟았다. 엉덩이 근육이 한껏 오므라지더니 이내 감전된 사람처럼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도준의 얼굴에 차가운 물기가 닿았다. 뚝, 뚝 떨어지는 점액이 없는 투명한 물기는 희찬이 흘리는 눈물이었다. 페니스를 쥐었던 손으로 눈물을 닦아 줄 수는 없어, 도준이 허리를 들어 희찬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촉촉한 눈물이 입술을 적시는 것이 기껍다. 도준은 오래간 자신을 괴롭혔던 수많은 남자들의 신음 위에 희찬이 터뜨리는 신음을 쌓으며 상처를 그 눈물에 지워 내려 무던히 노력했다.
그런 노력을 아는 걸까. 희찬의 몸짓은 더욱 다정해졌다. 페니스를 만지던 것도 그만두고 도준을 꼭 안은 희찬은 자신의 사랑을 온몸으로 전하려는 모양이었다.
“후으, 하……. 하으읏…….”
“사랑해, 희찬아.”
“내가, 아! 내가, 더……! 아!”
사랑한다, 가슴속에 숨겨 두고 오래간 꺼내지 않았던 말을 전하자 희찬의 페니스에서 진득한 액체가 힘차게 뿜어져 나왔다. 손바닥을 축축하게 적시는 비릿한 액체 역시 남자들의 것과 겹쳐 느껴져 달갑지 않았지만, 도준은 상대가 희찬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자신의 사랑을 읊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사랑해, 사랑해.”
“흑……. 사, 랑해, 도준아…….”
사정을 맞은 희찬이 간헐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여전히 열감을 머금은 페니스는 뜨겁기 그지없었으나 눈물이 치밀어 페니스를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도준을 껴안은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도준은 옷을 추스를 생각도 하지 않고, 가슴을 들썩이며 우는 희찬을 꼭 안은 채로 무거운 한숨을 터뜨렸다. 분명 기분 좋은 재회를 했는데, 어째 또 장희찬을 울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그래도 희찬의 숨소리가 거북하지 않았다. 사정을 맞고 신음을 터뜨리는 희찬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그건 내게도 좋은 신호가 아닐까.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고를 돌렸더니 무거운 숨은 조금이나마 무게가 덜어졌다.
“나…….”
“응.”
희찬이 도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채로 웅얼거렸다. 그에 도준이 희찬의 뒤통수를 그러안았다.
“너 강간한 거 아니야…….”
“…….”
예상치 못한 희찬의 말에 도준이 입을 꾹 다물었다. 평소의 장희찬이라면, 아니 과거의 장희찬이라면 무턱대고 달려들었을 텐데 그 행위를 막은 것이 과거의 실수라는 게 못내 도준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때도 그러려고 그랬던 거 아니야.”
“……응. 알아.”
“네가 그때 그렇게 느낀 게 나 때문이라면…….”
“…….”
“미안해, 내가.”
희찬은 차마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느냐고는 묻지 못했다. 그저 하염없이 사과를 읊조리고, 되뇔 뿐이었다.
축축하게 젖어 돌아오는 사과가 무겁다. 도준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해야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없으므로 도준은 그저 아득해지는 시야를 눈꺼풀을 내려 가려 버렸다.
두 사람은 한참의 시간이 흐르는 내내 서로를 품에 안은 채로 놓아주지 않았다. 가슴이 맞닿아 심장이 뛰는 모양을 생생하게 느끼면서도 자신이 안고 있는 상대가 혹시나 꿈은 아닐까, 겁이 나 확인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입은 얼마나 맞추었는지 모른다.
도준은 희찬을 꼭 안은 채로 냉랭했던 가슴 한편이 따뜻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자신 못지않게 상처받았을 희찬이 건네는 사과는 남자들의 책망을 물리치기에 충분했다.
거칠게 들썩거리던 두 사람의 흉통이 가지런해졌다. 호흡이 골라질 정도로 오랜 시간을 보낸 후에야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하며 잔잔한 미소를 나눌 수 있었다.
도준이 새빨갛게 산이 오른 희찬의 눈가를 매만졌다. 차가운 눈물이 닿을 때마다 희찬이 눈을 찡그렸지만, 그 눈을 감지는 않았다. 마치 저와 함께 누운 도준을 한시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집요한 눈동자에 도준은 근사한 미소를 보여 줬다.
“도준아.”
“응.”
“너 나 사랑해?”
희찬의 말이 조심스럽다. 잔잔하게 떨리는 목소리에 도준의 검은 눈동자에 얕은 파동이 일었다. 도준은 대답 대신 바싹 마른 입술로 희찬의 귀, 턱, 목덜미에 진한 애정이 담긴 입맞춤을 건넸다.
“아까도 말했잖아.”
“또 듣고 싶어.”
“……내내 사랑하고 있어.”
도준이 건넨 대답이 반갑다. 그 대답은 도준이 남겼던 쪽지의 마지막 문장과 같은 것이었다.
‘내내 사랑할게’
희찬은 도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치미는 감정을 애써 추슬렀다. 울면서만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바지를 추켜 입던 희찬의 시선이 도준의 가랑이 사이에 닿았다.
어느새 저와 같은 모양으로 가지런히 바지를 챙겨 입은 도준의 모습을 본 희찬의 정갈한 눈썹이 일순 들썩거렸다.
“근데 이도준.”
“왜.”
“너 발기 부전이야?”
“뭐?”
예상치 못한 질문에 도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희찬은 도준의 가슴을 짚은 채로 도준을 내려봤다. 왜인지 그의 눈빛이 제법 날카롭다. 희찬을 응시하던 도준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 애꿎은 천장을 쳐다봤다.
“왜 안 서?”
“…….”
“너 이제 서른이야, 담배를 얼마나 피우면 벌써 발기 부전이 와?”
희찬의 맹랑한 말에 웃음이 터진다면 미친놈일까.
도준은 아무것도 모르는 희찬이 매섭게 몰아붙이는 질문에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뭐, 어떤 의미로 보면 발기 부전이기도 했다. 도준은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 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희찬의 말 한마디에 무거웠던 분위기가 사뭇 가벼워졌다. 분위기 전환 역시 희찬의 방법대로 해내는 그의 모습에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도준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에 희찬이 의아한 듯 도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기껏 와놓고, 잠도 자지 않고 돌아가려는 도준의 모습이 탐탁지 않았다.
도준이 무릎을 짚고 일어서며 희찬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그에 희찬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도준을 흘겨봤다.
“가려고?”
“응, 오늘은 일단 집에 가고…….”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희찬과 함께 눕고 싶었으나, 밤사이 끙끙 앓는 모습이라든가, 혹시나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다 못해 살려 달라 빌게 될지도 모를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천천히 합치자.”
“얼마나 천천히? 너 곧 온다고 하고 8년 걸렸는데, 천천히는 30년인 거 아니야?”
희찬은 뾰로통한 기색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그에 갈 준비를 하던 도준이 단호한 눈으로 희찬을 마주했다.
“한 달 안에.”
“진짜?”
“내가 언제 허투루 말하는 거 봤어.”
“좋아. 그럼 나 내일부터 짐 싼다?”
방방거리는 희찬의 모습에 도준은 뭉근한 울림을 느꼈다. 공포에 허덕거리던 심장이 이제는 아까와 다른 의미로 쿵덕쿵덕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두근거림은 나쁘지 않았다.
도준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희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흩어지는 결 좋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다 천천히 손을 내려 희찬의 조그마한 얼굴을 어루만졌다.
“잘 자. 내일 심심하면 전화해.”
“오늘 자기 전에 전화해도 돼?”
희찬의 눈이 새까만 바다에 뜬 달처럼 밝게 빛났다.
“응.”
“그럼 전화하면서 자도 돼?”
“그래.”
참 귀엽다. 변함없이 귀엽고 해맑은 모습에 도준이 행복을 느꼈다.
“내일 일어나자마자 너희 집에 가도 돼?”
“스케줄 없으면.”
“완전 없어.”
“그래, 와.”
현관문을 닫으려던 도준은 문이 닫히는 찰나에 희찬이 입 모양으로 속삭이는 말을 살폈다.
‘사랑해.’
도준의 눈이 무언가 놀라운 것을 본 것처럼 크게 뜨였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삽시간에 몸이 무거워졌다. 허리를 울리는 통증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것이었다.
지극히 오랜만에 도사린 안정이었다.
*
지난밤, 집으로 돌아온 도준은 얼른 샤워를 마치고 약을 챙긴 후 침대에 누워 희찬의 전화를 기다렸었다. 하지만 결국 희찬의 전화는 받지 못했다.
침대에 눕기 무섭게 아득한 암흑이 도준을 집어삼켰다. 덕분에 도준은 밤새 끙끙 앓았다. 어지럽게 얽혀 드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검은 시야에 섬뜩한 눈알이 둥둥 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새빨간 로프가 복잡하게 얽히는 광경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팠다.
온갖 열이 다 터져 피워 낸 열꽃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열감이 도준의 전신을 에워쌌다. 이불을 덮어 나신을 가리면 더위가 몰려와 땀이 흘렀고, 그렇다고 이불 바깥으로 팔, 다리를 내밀면 차가운 공기에 오한이 서렸다.
으슬으슬한 몸을 웅크리고 숨을 토해 내면 뜨거운 숨에 더위가 몰려왔고, 그렇다고 숨을 참자니 가슴이 답답하게 짓눌려 도준은 그저 괴로웠다.
귀가 먹먹하게 먹어 가는 듯한 느낌은 익숙한 일인데, 눈이 빠질 것처럼 아픈 것은 또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누군가 쇠붙이로 관자놀이를 꾹 누르는 지끈거림에 눈을 질끈 감았다.
목이 간지러워 기침을 토해 내기 무섭게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웅크렸다. 그저 기침 몇 번 했을 뿐인데 옥죄인 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팠다.
지난 몇 달, 추운 겨울에 얇은 옷을 입고 여름 배경의 장면을 촬영하며 혹사당한 몸이, 바닷물에 젖어 가며 포스터를 촬영하느라 상한 몸이, 희찬을 대하느라 온갖 힘을 주고 견뎠던 몸이, 희찬에게 돌아간 어제를 기점으로 긴장이 풀리며 요란하게 발악하는 모양이다.
아프긴 지독하게 아파도, 마음만은 편안한 것이 퍽 어이가 없었다. 도준은 아픈 와중에도 몰려오는 안정에 편안함을 느꼈다.
“아…….”
쩍 갈라진 목소리가 볼품없다.
조금의 물기도 남지 않아 성대가 붙었다가 떨어지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갈증이 일었지만, 감히 일어나 물을 마실 생각도 하지 못했다. 도준은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운 몸을 힘겹게 돌려 휴대폰을 찾았다.
온통 새까만 방 안을 휴대폰이 훤히 밝혔다. 도준은 어렵사리 뜬 눈으로 부재중 목록에서 희찬의 이름을 찾아 눌렀다. 아픈 모습을 가장 숨기고 싶은 상대가 희찬이었으나, 지금 가장 보고 싶은 것도 희찬이었다. 게다가 숱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도준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역시 희찬일 것이다.
― 응, 일어났어?
신호가 걸리기 무섭게 희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희찬아.”
― 너 목소리가 왜 그래?
“나, 아파.”
― 아프다고?
“나…….”
― 지금 갈게.
앞도 뒤도 재지 않고 당장 달려오겠다는 희찬의 말에 문득 아주 어릴 적, 어리석기만 했던 시기가 떠올랐다.
그때는 아픈 것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희찬에게 걱정을 끼치지는 않을까,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제 길을 찾아 성큼성큼 나아가는 연인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느라 아픈 것도 몰랐다.
그때 아프다고 말 한마디 제대로 했으면 좀 달라졌을까.
아득한 후회가 드리워 도준의 입에서 무거운 숨이 터졌다. 하지만 이제 와서 과거를 후회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도준은 주저하지 않고 같은 길을 선택할 것이니 아마, 우리는 또 헤어질 것이다.
“흐으…… 아.”
도준이 다시 뜨거운 숨을 터뜨렸다. 묵직한 숨이 미처 다 터지지도 못한 채로 공기의 무게를 더했다. 답답하게 옥죄는 숨통에 도준의 전신이 바들거렸다. 그 어떠한 소음도 용납하지 않는 공간에는 오로지 도준의 신음만이 맺혀 들었다.
그러길 몇 분, 벌컥 문이 열리더니 바람의 상쾌함이 도준의 코에 닿았다.
“야, 너 어디가 아파?”
개운한 목소리와 함께 드리운 것은 도준이 그토록 갈망하던 자신의 빛, 희찬이었다.
컴컴한 방 안에 들어선 희찬은 성큼성큼 걸음을 놀려 도준의 앞에 당도했다. 땀에 젖은 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은 모양이 안쓰럽다. 희찬이 선뜻 손을 내밀어 도준의 이마를 짚었다. 뜨거운 열이 느껴져 화들짝 놀라 도준을 바라보자, 열을 머금은 도준의 눈이 느릿하게 끔뻑거렸다.
“나랑 붙어먹고 바로 아프면 내가 뭐가 되지?”
희찬의 뾰로통한 목소리에 아픈 와중에도 웃음이 터졌다. 헛헛한 숨을 터뜨렸던 도준이 아린 몸을 부둥켜안았다.
희찬을 잃고 고장 났던 몸뚱어리가 희찬을 만나 제자리를 찾느라 요란을 떠는 것 같은데, 희찬은 그를 알 리가 없다.
도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쌕, 쌕 힘든 숨을 몰아쉬었다.
그에 희찬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도준의 집은 꼭 제집 같았다.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훤히 보였다.
어렵지 않게 작은 수건을 찾은 희찬은 당장 차가운 물에 수건을 적셨다. 저렇게까지 열을 내는 도준은 또 처음 보는 모습이라, 낯설고 또 생소했다. 다시 방문을 열었을 때는 도준의 열감에 후끈함이 다 느껴졌다.
도준은 눈도 뜨지 못한 채로 끙끙 앓는 중이었다. 희찬은 도준의 몸을 덮은 이불을 훌렁 걷어 냈다. 도준의 몸이 흠칫 떨리는 게 보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차가운 수건으로 도준의 몸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 냈다.
차가운 수건이 닿기 무섭게 살갗이 아렸다. 도준이 희찬의 손을 저지하려 했으나 희찬의 눈빛은 단호하기만 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방을 들락거리던 희찬이 이번엔 도준의 이마에 차가운 물수건을 얹었다. 그리 무겁지도 않은 수건이 닿자마자 머리가 땅으로 쑥 꺼지는 것 같았다.
“감기인가?”
“모르겠어…….”
“목소리도 맛이 갔네.”
“…….”
“아파도 괜찮으니까, 계속 열 내. 내가 있을게.”
아파도 괜찮다는 말이 어찌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도준은 제 아픈 모습을 보면 걱정할 희찬을 걱정해 왔건만, 우려와 달리 희찬은 마냥 편안해 보였다. 그게 또 좋았다.
“손, 잡아 줘.”
열이 올라 새빨간 도준의 손이 이불 밖으로 빼꼼 튀어나왔다. 그에 희찬이 도준의 뜨거운 손을 마주 잡았다.
희찬은 한참의 시간을 들여 도준을 간호했다. 말투는 퉁명스럽고 행동도 투박하기 그지없었으나, 도준을 향한 마음만큼은 정성이었다.
오랫동안 도준의 몸을 돌보던 희찬의 눈이 한곳에 머물렀다. 드로어즈를 터뜨릴 것처럼 불끈 솟은 페니스가 경이로웠다. 분명 어제만 해도 어떤 자극을 줘도 서지 않아 ‘발기 부전이냐’며 놀렸는데 말이다.
희찬이 도준의 페니스를 우악스럽게 쥐었다. 도준의 탄탄한 허리가 순식간에 비틀렸다. 무겁게 짓눌리는 와중에도 튕기는 허리가 당황스러웠다. 도준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희찬의 손을 걷어 내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 흣…….”
“있어 봐.”
“아니, 아……. 아읏.”
희찬은 손을 쳐 내는 도준의 힘없는 손짓은 가볍게 무시했다. 희찬이 드로어즈 위로 도준의 페니스를 집요하게 어루만지자, 부드러운 천에 닿은 귀두가 펄떡거렸다. 뜨거운 기둥을 쥐고, 집요하게 요도 부근을 문질렀다. 도준의 탄탄한 허벅지가 바짝 쪼그라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득한 정신에 전신을 헤집는 전율이 얹혀 도준이 이를 으깨 물었다. 희찬의 손을 쳐 낼 힘도, 희찬에게서 벗어날 힘도 없었기에 그저 희찬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길 뿐이었다.
몇 번 쓰다듬고, 툭 건들다가 귀두를 조이고 문질렀을 뿐인데 금방 정액이 비집고 나왔다. 드로어즈가 끈적하게 젖는 것을 보던 희찬이 한 손에 드로어즈를 벗겼다. 새하얀 정액이 묻은 것을 빨래 바구니에 넣어 두고, 페니스를 닦아 주기 위한 물티슈를 챙겨 다시 이불을 걷었는데,
“얼씨구.”
페니스는 죽지도 않고 여전히 위용을 뽐냈다.
이제는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도준의 페니스는 이전보다 더 크게 부풀어 있었다. 울룩불룩 솟은 핏줄에 눈을 의심하게 하는 커다란 사이즈의 페니스가 힘차게 꺼떡거리는 모양에 입이 떡 벌어졌다.
“너 이거 왜 안 죽어?”
“뭐가…….”
“너 섰어.”
희찬의 말에 도준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끙끙 앓느라 발기한 것도 자각하지 못했다. 희찬이 전하는 소식은 도준 역시 당황스럽기만 했다. 온몸에 도사린 열기에 페니스가 반응한 걸까,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려봤지만, 결국 답은 희찬이었다.
아무래도 어제 희찬과 가진 관계가 잊었던 리비도를 깨운 모양이지.
아픈 와중에도 도준이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런 도준의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도준은 뜰 수 없는 눈을 억지로 뜨고 희찬을 쳐다봤다. 눈을 뜨기 무섭게 곧장 흰자위가 시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뜬 도준의 눈앞에는 어느새 나체가 된 희찬이 서 있었다.
“뭐 하게.”
“죽여야지, 이거.”
“아니, 괜찮…….”
가벼운 몸짓으로 침대에 오른 희찬이 두 다리 사이에 도준을 두고 앉았다. 제 손가락에 침을 묻혀 흥건히 적시고, 엉덩이 사이로 밀어 넣는 희찬의 모습이 색스럽기 그지없다. 도준은 잔뜩 찌푸려지는 미간을 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마치 환상 같은 희찬의 모습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겼다.
한참이나 손가락으로 제 뒤를 넓히던 희찬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도준의 페니스를 잡았다. 반질거리는 뭉툭한 페니스를 뻐끔거리는 구멍에 가져다 대기 무섭게 도준이 뿜어대는 열기가 제게 전이되는 것만 같았다.
희찬이 허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내려앉았다. 두 손으로 도준의 아랫배를 짚고, 천천히 도준의 페니스를 집어삼키는 희찬의 얼굴이 조각조각 일그러졌다. 뜨거운 페니스가 마치 인두처럼 속을 지졌다.
“아, 아흐읏.”
“하, 하으…… 아…….”
“아, 너무, 너무 커……!”
얼마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희찬의 판판한 배가 불룩 솟았다. 여전히 버겁기만 한 도준의 페니스가 장기를 아무렇게나 짓눌렀다. 희찬이 가쁜 숨을 터뜨렸다. 도준은 바르르 떨리는 손을 들어 희찬의 가슴부터 허리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이내 희찬의 엉덩이와 도준의 골반이 맞닿았다. 희찬은 무지막지한 도준의 페니스를 머금기 무섭게 도준의 몸 위로 풀썩 쓰러져 큰 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도준의 페니스는 점점 더 부풀어 크기를 더했다. 그에 희찬은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아, 흐읍.”
“가만, 가만히, 있어.”
“아, 안 돼, 아!”
“후으, 흐……. 가만, 히. 있어.”
둘 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도준은 제 페니스에 도사린 희찬의 열기에 아득함을 느꼈고, 희찬은 아무렇게나 벌어지는 속이 망가지는 건 아닐까 두려워 도준을 꼭 끌어안았다.
꿈틀거리는 속살이 페니스에 끼치는 자극은 대단하기만 했다. 도준은 도무지 움직일 수 없는 몸을 하고서도, 울렁거리는 희찬의 내벽에 상당한 자극을 느꼈다. 도준이 희찬의 허리를 부드럽게 거머쥐었다.
이내 희찬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도준의 배를 짚었다. 단단한 두 팔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희찬은 앞뒤로 움직이며 도준의 페니스를 머금었다가 뱉어 내기 시작했다. 발끝이 오므라들고, 자꾸만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달뜬 신음이 나왔다.
뇌를 찌르고 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쾌락에 희찬의 페니스에서도 찔끔찔끔 쿠퍼액이 비집고 나왔다. 희찬이 새빨간 아랫입술을 짓이겨 물고 조금 더 속도를 붙여 움직였다. 유연한 허리를 돌려 페니스를 자극하면 제 속에 닿는 느낌도 생생해, 자꾸만 안달이 났다.
예민한 부위의 살들이 부딪쳐 만들어 내는 적나라한 소음이 귓가에 닿았다. 도준의 잘생긴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슬금슬금 깨어나는 욕구를 깨우친 도준이 희찬의 두 팔을 부여잡고 허리를 쳐올려 페니스를 쑤셔 박았다.
“하악, 아!”
희찬이 높은 신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한껏 젖히고 파르르 떨었다. 도준이 한 번 더 허리를 쳐올렸다. 속을 깊이 찌르고 들어온 페니스가 여린 살들을 무지막지하게 들쑤셨다. 속을 함부로 헤집는 도준의 페니스에 희찬이 점멸하는 정신의 끄트머리를 겨우 부여잡았다.
이도준은 환자고, 당장 이성을 잃고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니 자신이 잘 처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허공을 향했던 희찬의 옅은 눈이 툭 떨어져 도준을 응시했다. 도준의 검은 눈동자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열망이 가득했다.
“흐, 아흐읍……. 아! 히익, 흣!”
“후으, 흐…….”
“아흑! 읍, 좋, 좋아, 아!”
힘을 주고 처박는 도준의 허리와 힘겹게 바르작거리는 희찬의 허리가 빠듯하게 맞물렸다. 빈틈없이 닫혔던 속을 아무렇게나 열고 들어와 가차 없이 휘젓는 것이 버거워, 희찬이 가쁜 숨을 헐떡거렸다.
열이 올라 피가 빨갛게 몰린 희찬의 페니스에서 새하얀 정액이 뿜어져 흘렀다. 도준도 이미 사정을 맞은 듯했지만, 속에 든 페니스의 크기는 여전했기에 희찬이 이를 악물고 열심히 방아를 찧어 댔다.
“읏, 흑……. 아! 흐읏, 흡!”
구멍에 흐르는 도준의 정액 덕분에 움직임이 한껏 수월해졌다. 도준의 아랫배를 짚고, 허리를 움직여 행위에 속도를 붙이는 희찬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도준의 복근에 닿았다. 두툼한 근육 사이 움푹 팬 골짜기에 모여든 땀에 도준이 손을 들어 희찬의 얼굴을 거머쥐었다.
여전히 열이 가득한 도준의 손이 뜨겁다. 불현듯 닿는 열기에 놀란 희찬이 도준을 바라봤다.
“……희찬아.”
“응, 흐읏, 말, 말해…… 아!”
“너도, 너도 나 사랑해?”
도준의 목소리는 힘겹기 그지없다. 분명 지난밤 관계를 맺을 때 희찬에게서 들은 말이었지만, 도준 역시 다시 듣고 싶은 말이었다. 한 자, 한 자 뜨거운 숨과 함께 터지는 목소리에 희찬은 문득 감정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저를 올려 보는 도준의 새까만 눈동자는 그윽하고 또 아릿했다. 희찬의 옅은 눈가에 투명한 눈물이 차올랐다. 희찬의 얼굴을 거머쥔 도준이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쳐 냈다.
이내 희찬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도준의 입꼬리가 뭉근하게 치솟았다.
“말로, 해 주라.”
“아…… 사랑, 사랑해, 준아.”
희찬의 몸이 풀썩 쓰러져 도준과 맞닿았다. 도준의 등 아래에 손을 넣어 도준을 힘껏 끌어안은 희찬은 도준의 귓가에 쉴 새 없이 사랑을 읊었다. 듣고 또 들어도 황홀한 희찬의 쏟아지는 고백에 도준은 차츰차츰 주변의 공간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한 번에 전신을 잠식한 뜨거운 열에 정신을 빼앗긴 도준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아마 그렇게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도준은 무언가 가슴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갑갑함에 눈을 떴다. 어두컴컴한 방 안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으나, 도준의 시야에는 낯설면서도 한없이 익숙한 것이 들어찼다.
도준의 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다름 아닌 희찬이었다. 그에 도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몸 위에 누워 있는 희찬을 살폈다.
개운하다 못해 멍하기까지 한 머릿속을 헤집어 기억을 더듬었다. 정신을 지배하는 열감에 허덕거리며 희찬과 했던 모든 행위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헉.”
도준이 놀란 듯 제 입을 텁 틀어막았다. 조심스레 이불을 들어 희찬의 몸을 살폈다. 속옷을 다 챙겨 입고 누운 걸 보니, 도준이 정신을 잃은 후 혼자 뒤처리를 한 모양이었다. 잔잔한 미안함이 몰려와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씹어 물었다.
“아…….”
탄식을 터뜨린 도준이 마른세수를 거듭했다.
희찬은 어릴 때도 이렇게, 몸 위에 몸을 맞추고 눕는 것을 좋아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도 변함없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준이 희찬의 몸을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제정신으로 들어도 모자랄 ‘사랑한다.’라는 말을 정신이 아득해지는 와중에 들은 것이 문득 억울해졌다. 두 볼이 빵빵할 정도로 입 안을 부풀렸던 도준이 입술을 쭉 내밀어 희찬의 매끈한 턱선에 뽀뽀했다.
오로지 저만의 공간이었던 침실에 희찬의 산뜻한 봄바람과 비슷한 상쾌한 향이 섞였다. 그게 나쁘지 않아, 도준이 빙긋 웃었다.
도준이 천천히 몸을 빼내어 희찬을 내려놓자, 희찬이 도준의 허리를 끌어안고 품으로 파고들더니 가슴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살랑거리는 희찬의 가는 머리카락을 소중히 매만지던 도준이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자신을 옭아맨 희찬의 팔을 풀어놓고, 다시 이불을 덮어 준 후에는 다리를 내려 바닥을 디뎠다. 차가운 바닥이 발바닥에 닿는 느낌이 새삼스레 생경했다.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온 도준은 머리에 수건을 얹은 채로 바지와 티셔츠를 갖춰 입었다. 찬물도 시원하게 들이켠 후에는 거실의 풍경을 훑었다.
그러다 문득 돌아본 탁자 위에 웬 시나리오가 놓여 있었다. 어제 회사에 들러서 챙겨 왔던 액션 영화의 시나리오였고, 희찬의 집에 놓고 온 것이었다. 아침에 전화를 받고 달려오는 와중에도 시나리오를 챙겨 온 희찬이 놀랍다.
덜렁거리기로는 장희찬이 장인이었는데, 이제는 나이 먹었다고 제법 꼼꼼해진 모양이지.
피식, 웃음이 다 나왔다.
탁자 앞에 앉은 도준은 긴 다리를 쭉 펴고, 허리를 숙여 발목을 잡았다. 유연하게 옆구리를 늘이고, 어깨를 비틀며 한참이나 이어진 스트레칭 후에는 상쾌한 숨을 터뜨리며 시나리오를 쥐었다.
오늘 중으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었는데, 어느새 하루가 다 지나가는 중이었다. 창밖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모양에 도준이 얼른 종잇장을 넘겼다.
도준은 금방 시나리오에 빠져들었다. 눈을 끄는 흥미로운 줄거리와 긴박한 상황들이 연신 이어지는 스토리에 흠뻑 젖어 들었던 도준의 귓가에 저벅저벅 걷는 발소리가 들렸다.
희찬이 일어난 걸까, 도준이 눈을 들어 바라본 곳에는.
“얼씨구? 일어나 있었어? 전화는 왜 안 받아, 연락 안 돼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어?”
잔뜩 성이 난 대표가 씩씩거리는 중이었다.
그에 도준이 퍼뜩 몸을 일으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제 회사를 벗어나며 전화하겠다고 했던 자신의 말이 떠올랐다.
“아, 맞다. 제가 전화 드린다고 했었죠.”
“아, 맞다? 아? 마앚다아?”
걱정한 기색이 역력한 대표를 바라보는 도준의 눈에 난감함이 서렸다. 대표는 상당히 어이없다는 듯, 온갖 이목구비를 확장하며 도준을 흘겨봤다.
“죄송해요, 대표님. ……저 아팠어요.”
어쩔 수 없다. 도준은 치트키를 쓰기로 했다.
도준의 선택은 효과적이었다. 괘씸하기는 해도 아팠다는 도준에게 더 화를 낼 수는 없었던 건지, 인상을 차분히 한 대표가 도준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들 새끼 키워 봐야 소용없다는 말이 다 이런 데서 나오는 말이야, 어? 어디가 아팠는데. 지금은 괜찮아 뵈는구만.”
대표가 도준의 이마를 짚었다. 열이 없고, 표정도 개운해 보이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몸을 물려 그의 자세를 살폈다.
앉아 있는 모양새도 괜찮아 보이는데, 어디가 아팠다는 건지.
도준을 향한 시선에는 금세 걱정이 서렸다. 그에 도준이 환하게 웃었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아까 열나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괜찮아졌어요.”
“약 먹었어?”
“아, 아직이요.”
대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약도 안 먹었는데 괜찮아졌어?”
도준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른 대답은 남기지 않았다. 저 방에 장희찬이 자고 있고, 아픈 와중에 장희찬과 섹스하다 보니 나았다는 말은 곧 죽어도 못 할 말이었다.
“악몽 때문에 아팠던 건 아니고……. 몸살이었던 거 같아요.”
“허, 네가? 몸살을?”
대표가 손을 휘휘 저으며 고개를 함께 도리질 쳤다.
신인 시절, 장래가 유망한 신인의 기를 꺾어 놓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 한겨울에 도준을 홀랑 벗겨 얼음물에 던져둔 일이 있었다. 오랜 시간 살갗이 다 찢어질 정도로 차가운 물에서 촬영을 한 후에도 도준은 감기 한 번 앓지 않았다.
그런 그가 몸살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에 대표가 못 미덥다는 눈빛을 보였다.
“……그렇게 괴물 취급하지 말아 주실래요?”
“아, 티가 났구나.”
도준이 인상을 한껏 누볐다. 비틀린 고개에서는 그의 못마땅한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대표가 결국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어찌 되었든, 지금 건강하면 됐지. 다른 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잘생긴 도준의 얼굴을 미술품 감상하듯 지그시 쳐다보던 대표가 갑자기 몸을 당겨 도준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양 눈을 게슴츠레 늘인 채로 도준을 올려 보는 대표의 눈빛에 장난기가 다분했다. 왜인지 음흉해 보이는 눈에 도준이 몸을 물렸다.
“왜 이래요.”
질색하는 목소리는 덤이다.
“그래서, 너 어제 희찬이랑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다시 가 봤어?”
도준의 눈앞에 얼굴을 들이민 대표가 묻는 것은 결국 희찬과의 이야기였다. 돌아가겠다는 비장한 말을 남긴 후로 연락이 없었으니 대표는 정말 밤새 잠 한숨도 못 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민망함이 몰려왔다. 도준이 괜히 목덜미를 긁적거렸다. 두 볼에 홍조가 앉은 것은 도준은 자각하지 못한, 대표만 볼 수 있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아, 주책이에요.”
“주책은 네 뺨이 더 주책이다. 빨리 말해 봐. 어떻게 하기로 했어?”
“제가 천천히 말씀드릴게요.”
“왜, 뭔데. 화해를 아직 안…….”
온갖 호들갑을 떨며 도준의 허벅지를 퍽퍽 내리치던 대표의 손이 공중에 멈췄다. 말이 점점 느려지더니, 시선이 한 지점에 머물렀다. 도준이 의아한 듯 대표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부스스한 표정으로 방에서 나온 희찬이, 속옷만 입은 채로 이불을 두르고 서 있었다. 눈도 뜨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희찬의 모습에 도준이 이를 악 깨물었다.
“도준아, 우리 이제 콘돔을 좀…… 어.”
“…….”
그와 동시에 희찬이 몸에 둘렀던 이불이 스르르 흘러 맨몸이 드러났다. 석상처럼 굳은 대표가 눈만 도르르 굴려 도준을 쳐다봤다. 도준은 건조한 손바닥에 얼굴을 묻으며 마른세수를 거듭했다.
여전히 몽롱한 희찬은 발치에 이불이 떨어진 것도 줍지 않고 눈을 감은 채였다. 도준은 벌떡 일어나 이불을 주워 몸이 드러나지 않도록 꼼꼼하게 감싸 묶었다.
목까지 꼼꼼하게 싸매는 통에 숨이 답답해진 희찬이 인상을 찌푸리며 도준의 손을 짝, 짝 소리 나게 쳤다.
“숨, 숨 막혀……!”
“가만히 좀 있어.”
“아, 왜.”
“아니, 좀…….”
도준은 대표의 시야에서 최대한 희찬을 가리고서 혹시 빠진 곳은 없나 세심하게 둘러봤다. 필사적인 도준의 손짓에 대표가 어이없는 숨을 터뜨렸다.
그에 희찬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도준을 쳐다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다. 왜인지 난감해 보이는 도준의 모습에 희찬이 시선을 돌려 도준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넘겼다.
“……내가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네?”
“아니, 어, 대표님, 안녕하세요.”
대표를 발견한 희찬은 도준의 등 뒤에 저를 숨기고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그림체가 다른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대표를 바라보자, 대표의 눈썹이 흥미롭게 까딱거렸다.
거참 다르게 잘생기고, 예쁜 한 쌍이었다.
“도준이가 아팠다던데, 아아……. 그래서 괜찮아졌구나.”
이내 대표가 짓궂게 도준을 놀렸다.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니고요.”
라기에는 희찬이 꺼낸 말이 하필 콘돔이었다.
에둘러 변명하려던 도준이 결국 변명을 포기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도준아. 네가 생각해도 지금 상황이 참, 변명하기가 그렇지?”
“…….”
“좋은 거 사서 해, 좋은 거 사서. 돈도 많이 벌면서. 허허허…….”
대표의 목소리에서 웃음 이모티콘(^^)이 보이는 건 왜일까.
도준이 결국 고개를 푹 수그리고 희찬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잠시 어안이 벙벙한 듯 보이던 희찬은 금세 자신의 페이스를 찾았다. 대표와 같은 모양으로 덩달아 웃음을 피우고서는 도준의 등을 여유롭게 토닥토닥 두드렸다.
잔잔한 공간에서 대표와 수줍은 시선을 나누던 희찬이 순간 표정을 굳혔다. 희찬이 도준을 달래는 손에 힘을 더해 세게 끌어안고서 대표를 향해 조심스러운 질문을 건네었다.
“대표님, 근데 혹시 동성애…….”
곽 대표라면 사람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은 한다만, 어쩔 수 없는 트라우마였으므로 확실하게 대답을 들어 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곽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어, 괜찮아. 신경 안 써.”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곽 대표였다. 인복이 좋은 건지, 도준의 주변에는 항상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 같다.
이내 희찬이 해사하게 웃으며 도준을 토닥토닥 달랬다. 도준은 여전히 희찬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웅얼거렸다.
“우리 대표님 사람 괜찮지.”
“그러네.”
마치 남 일을 대하듯 얘기하는 도준의 모습에 엉덩이를 토닥거리자 도준도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조심해서 다녀, 알잖아. 대한민국이야.”
안 그래도 워낙 튀는데 말이야.
등 뒤에서 들리는 말에 희찬의 콧잔등에 입을 쪽 맞춘 도준이 고개를 돌려 대표를 바라봤다. 도준은 희찬에게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인상을 찡그리고,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마치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듯한 도준의 행동에 대표가 인상을 굳히고 한숨을 푹 쉬었다.
재회한 두 사람이었으나, 아직 회포는 풀지 못한 모양이다.
아무튼 궁금한 것도 해소했고,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했던 도준의 모습도 확인했으니 이제는 가야겠다.
대표는 무릎을 짚고 일어서서 온 세상의 빛을 다 흡수하는 듯한 화려함을 뽐내는 두 사람을 향해 부러 단호한 눈빛을 보였다.
“갈게. 도준이 너, 저거 보고 연락 꼭 하고. 반찬 가져왔으니까 밥 먹고. 희찬이 너도, 밥 잘 챙겨 먹고.”
“네.”
“이제 희찬이 있으니까 너 밥 먹는 거 감시는 좀 덜 해도 되겠다. 희찬아, 너도 빼먹지 말고 밥 다 먹어.”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아유, 그렇지. 우리 희찬이 내 아들이었지, 참.”
희찬이 큰 몸짓으로 자신이 느끼는 즐거움을 나타냈다. 희찬의 거센 몸짓에 도준이 꽁꽁 묶어 둔 이불이 스르륵 풀려 흘렀다. 도준이 미간을 좁혔지만, 기분이 좋아진 희찬은 대충 이불을 다시 둘러메고 현관까지 나가 대표를 배웅했다.
비적비적 걸음을 옮겨 거실로 돌아왔을 때는 도준이 시나리오를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희찬은 몸에 걸쳤던 이불을 털어 내고, 바닥에 앉아 도준을 올려봤다.
일하는 이도준을 이렇게 지켜보는 날도 오게 될 줄이야.
촬영장에서 대본을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퍽 보기 좋았다.
희찬은 무릎에 턱을 괸 채로 하염없이 도준을 지켜봤다. 도준의 손짓 하나, 눈꺼풀의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마음에 새겨 담았다.
그래, 저렇게 눈이 반짝이던 이도준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면 저렇게 티가 나는데 정작 본인은 잘 모르던 이도준이었다.
희찬이 비뚜름하게 고개를 틀었다. 이내 도준의 검은 눈동자가 시나리오에서 떨어져 희찬에게 닿았다.
“왜?”
“보기 좋아서.”
“……배는 안 고프고?”
“응. 야, 그거 시나리오 좋더라. 어제 나도 봤는데 너랑 잘 어울려.”
“그래?”
희찬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도준이 보는 시나리오 속 남자 주인공은 군인이었다. 그것도 엄청난 육탄전을 벌이는 군인. 연기를 해야 하는 도준은 힘들겠지만, 역할 상 웃통을 벗을 일이 많아 많은 사람이 도준의 몸을 보게 되는 것은 싫었지만, 분명 배우 이도준에게는 제 옷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역할이 분명했다.
어느덧 희찬의 머릿속에는 군복을 입은 도준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때도 다 같은 군복을 입었는데 유달리 태가 나던 이도준이었다. 그리고 그때도 온갖 남자들의 시샘을 한 몸에 받았었다.
뭉근한 과거를 떠올린 희찬이 슬금슬금 도준의 옆에 붙어 앉았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도준의 허벅지 안쪽을 어루만지자 도준이 시나리오를 내려놓고 희찬을 쳐다봤다.
얄궂게 웃는 희찬의 낯이 의미심장하다. 도준이 괜한 긴장에 마른침을 삼켰다.
희찬의 손이 우악스럽게 도준의 사타구니를 붙잡았다.
“읏.”
“이도준 고추 내 거라고 했는데, 이거 다른 데 썼어?”
“아, 아니.”
“그럼 아직도 내 거야?”
“응, 아, 네 거야.”
“진짜 한 번도 안 썼어? 다른 사람한테?”
“그래, 안 썼다니까.”
다른 연애 경험을 빙빙 돌려 묻는 희찬의 말이 얄궂다. 귀엽기도 하고, 우악스러운 손이 밉기도 해서, 도준이 희찬의 볼을 아프지 않게 쥐었다.
도준의 사타구니를 쥔 희찬의 손에 힘이 실릴수록 희찬의 볼을 잡은 도준의 손에도 힘이 실렸다. 그렇게 서로 다른 것을 붙잡은 두 사람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누구 하나 힘에서는 밀리지 않는 터라, 두 사람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하나, 둘, 셋 하면 놔.”
“아, 싫어! 야, 나 얼굴에 멍들어!”
“안 들어. 아, 아프다고.”
“나도 아파! 너, 놔라, 진짜.”
이상한 데서 경쟁이 붙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자고로 어릴 때 만난 친구는 언제 만나도 다시 처음 만났던 때로 돌아가는 법이라, 두 사람은 여섯 살, 천진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아, 아파, 진짜.”
결국 도준이 먼저 엉덩이를 뒤로 빼며 희찬의 손에서 벗어났다. 희찬의 하얀 얼굴을 세게 쥐었던 손으로 제 사타구니를 가린 도준은 다리를 배배 꼬았다.
“아팠어? 호 해 줄까?”
“됐거든.”
도준은 짓궂게 다가오는 희찬의 머리를 턱, 막아 냈다. 땅과 가까워지던 해가 어느새 사라졌다. 창밖에 짙은 어둠이 드리운 것을 본 희찬이 도준의 허리를 안았다. 도준은 아주 익숙한 일이라는 양, 두어 번 희찬의 어깨를 다독였다.
“너 대표님한테 빨리 연락드려. 한다고.”
“아, 응.”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희찬까지 말을 보탠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도준은 그렇지 않아도 스토리가 마음에 들었던 중, 희찬의 말로 확신을 갖고 대표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희찬의 귀가 도준의 가슴 어딘가에 집요하게 닿았다. 콩닥콩닥 단정하게 뛰는 도준의 맥박이 가지런하다. 희찬이 도준의 탄탄한 허벅지 위에 손을 얹고, 심장 박동을 따라 도준의 허벅지를 딱, 딱 두드렸다.
“뭐 해.”
가볍게 터진 도준의 숨에 희찬의 하얀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에 희찬이 귀는 도준의 가슴에 댄 채로 눈만 올려 도준을 쳐다봤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그의 입체적인 이목구비가 더욱 도드라졌다.
희찬이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도준과의 재회는 성공적이었으나, 그의 과거를 알 수 없으니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자꾸만 과거의 일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다고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감이 잡히는 것도 아니었다.
“근데 준아.”
“응?”
“너 왁싱샵 다녀?”
희찬은 다른 질문 대신 함께 드라마를 촬영하던 어느 날부터 가졌던 의문을 조심스레 건넸다. 도준이 입을 꾹 다물고 희찬을 바라봤다. 빨간 입술이 움찔거리더니, 잘생긴 고개가 끄덕거렸다.
“왜?”
“……더럽잖아.”
예상도 하지 못했던 답이 돌아왔다. 체모가 있는 것이 왜 더럽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더러워? 지저분하다는 말이야?”
희찬이 눈을 끔뻑거렸다. 도준은 구태여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남자로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고, 자신을 해하던 남자들과 조금이라도 차별을 두고 싶었다. 그 남자들을 떠올리게끔 하는 모든 것을 차단하고 싶었다.
라는 말은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도준의 탐스러운 울대가 오르내렸다. 말을 아끼는 도준은 왜인지 긴장을 느끼는 것 같았다.
“비슷해. 밥 먹을까? 배고프네.”
도준이 유연하게 말머리를 돌렸다.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해 탐탁지 않은 심정이었지만, 배가 고픈 것은 희찬도 매한가지였다.
“응, 나 오랜만에 오므라이스 해 주라.”
“오므라이스?”
“응, 너 잘하잖아.”
“음……. 해 주고 싶긴 한데, 지금 냉장고에 재료가 없어. 일단 오늘은 대표님이 가져다주신 걸로 먹고, 다음에 해 줄게.”
도준이 일어서며 희찬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도준의 걸음을 졸졸 쫓은 희찬이 생글생글 웃었다. 도준은 몸을 휙 꺾어 촉촉한 입술에 입을 맞춘 후, 대표가 가져온 반찬들을 식탁 위에 펼쳐 놓았다.
희찬과 마찬가지로 도준 역시 희찬에게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마지막에 수화기 너머로 들었던 목소리는 물기가 가득했는데, 그 뒤로 밥은 잘 먹었는지. 전광진과 계약을 마치고, 다른 소속사로 옮길 때 뒤탈은 없었는지, 너는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았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희찬과 마찬가지로 조금씩 시간을 두고 천천히 물어보기로 했다. 질문의 내용은 대체로 무거운 것이었으므로, 금방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이 분명했다.
일단은 웃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며 울고 싶지는 않았다.
도준은 희찬에게 따뜻한 밥을 한 그릇 내어 주며 꾸역꾸역 질문을 삼켰다.
<5권에 계속>
눈부신 항해 [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