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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1화 (1/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1화

더러운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을 받아 뽀얗게 피어오르는 먼지가 보이는 낡은 건물. 어두컴컴한 복도 벽에 등을 기대어 선 강문이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며 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냉미남의 정석, 그 자체인 화려한 얼굴에 욕망이 끈적하게 덧씌워졌다. 등줄기가 짜릿해질 정도로 오른 섹슈얼한 분위기에 데뷔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럼, 키스 정도는 얼마든지 해도 된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닿을 듯 말 듯 공기를 간지럽히며 안달 나게 만들던 입술이 마침내 부딪혔다.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통통한 입술이 얼른 혀를 내어 빨아 달라 재촉했다. 저 깊은 곳에서부터 치솟은 갈증을 잠재우기 위해 마지못해 입술을 벌렸다.

“으응…….”

뜨겁게 얽혀 오는 혀를 받아내며 눈을 감은 강문은 생각했다. 자신이 어쩌다, 왜 이곳에 와서 이 남자와 숨결을 맞대고 있게 되어버린 건지. 기억이 약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모든 놀라운 일은 늘 예고 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중 이유 없이 찾아온 행운은 응당한 대가를 필요로 하기 마련이었다. 여느 때보다 유난히 맑고 화창하던 어느 한낮, 강문에게 일어난 일도 그랬다.

“헐, 미친…… 미친!”

카드 뽑기형 아이돌 육성 게임에 한창 빠져 있던 강문은 길 한복판에서 그토록 원하던 SSS등급 최애캐 카드를 뽑았다.

누구는 무료 뽑기권으로 뽑았다느니, 누구는 몇 백만 원을 써도 머리카락 한 가닥도 못 봤다느니 하는 극과 극의 후기로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만든 바로 그 카드. 역대급 일러스트와 능력치로 최애캐가 아니었던 사람들의 마음마저 단번에 사로잡았다는, 게임 ‘크레바스’의 역사에 길이 남을 바로 그 카드!

“미친 거 아니야? 와, 씨발! 개좋아!”

그동안 레어 카드를 한 장이라도 더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 부었던가. 그러나 이번만큼은 제작사의 과금 유도에 넘어가지 않을 거라 호기롭게 다짐했었다. 카드 값이 예산을 한참 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료로 주는 다이아를 야금야금 모아 겨우 교환한 뽑기권 하나가 선녀였을 줄이야.

자신이 걷고 있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강문은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열심히 화면을 캡처했다. 파들파들 떨리는 손끝과는 달리 광대가 하늘로 치솟았다. 커뮤니티에 인증 글이 올라올 때마다 ‘저 포도는 실거야’라며 자기합리화 하는 여우의 심정으로 애써 외면하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강문은 어떻게 글을 써야 효과적으로 약을 올릴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벌써 배 아파하는 댓글들이 눈에 선해 짜릿했다.

“학생! 위험해!”

그래서였을까. 지나치게 신난 나머지 음주운전 차량이 도보를 넘어와 자신에게 돌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주위를 시끄럽게 만드는 경적과 비명소리가 귓구멍을 통과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평소라면 머리가 위험을 감지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피했을 텐데. 어이없을 정도로 바보 같았다.

“학생! 정신 차려! 학생!”

“누가 119 좀 불러 주세요!”

“어머, 어떡해…….”

자신이 차에 치였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보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는 게 먼저였다. 대낮부터 환하게 밝힌 헤드라이트가 흐릿한 시야를 어지럽혔다.

웅성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물속에 가라앉는 것처럼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눈앞이 암전되었다. 마치 고요한 잠에 빠져드는 듯 편안한 기분이었다.

아. 뽑은 카드 자랑해야 하는데.

그런 와중에도 강문의 머릿속엔 조금 전 기적적으로 뽑은 SSS급 카드만 가득했다. 그게 자신의 목숨값이었던 것은 추호도 모른 채로.

“으음…….”

그렇게 눈을 감은 뒤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도 개운하게 깨어난 강문은 제자리에 누운 채로 멍하니 눈만 끔뻑거렸다. 어찌나 푹 잤는지, 무엇을 하다 잠들었는지도 가물가물했다.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가만히 머릿속 기억을 더듬던 강문은 마침내 눈을 감기 전 마지막 장면에 도달했다.

너무 가깝게 들리던 불안한 엔진음, 사방에서 울리던 경적들, 모르는 아저씨의 다급한 목소리, 경악으로 가득 찬 웅성거림.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밝았던 헤드라이트.

“……헉!”

튕겨 오르듯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강문은 제 몸 여기저기를 손으로 더듬었다.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아 잠시 잊고 있었는데,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자신은 지금 병원에 있어야 하는 게 맞았다.

그게 아니라면, 너무나도 현실적인 꿈을 꾸었거나.

“이상하다? 분명 차에 치였는데…….”

계속해서 몸을 더듬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고통이나 병원의 차가운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아도 교통사고로 인한 통증은커녕 오히려 가뿐하기만 했다.

“근데…… 여기 어디야?”

뒤늦게 이상함을 감지한 강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도르륵 굴러갔다. 아무리 봐도 여긴 자신의 집이 아니었다. 평소 술을 싫어해 입에 대지도 않으니 필름이 끊길 일도 없었다. 그러니 이 상황은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이럴 때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을 택하는 게 제일이다. 강문은 여전히 자신이 꿈속에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제 볼을 세게 꼬집었다.

“……아야!”

꼬집은 부위에 뜨끈하게 열이 오를 정도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이건 꿈이 아닌 현실이다.

그렇다면…… 난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연식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아 보이는, 깔끔하지만 좁은 방에 정적이 감돌았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사고가 멈춰버린 것이다.

“…….”

짧은 침묵 뒤에 강문이 선택한 행동은 일단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재빠르게 침대 아래로 뛰어 내려가 문 쪽으로 향했다. 보통 문은 안쪽에서 잠그는 게 상식이니 당연히 쉽게 열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씨발, 뭐야?”

문고리에서는 철컥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마치 실재하는 문이 아니라 장식으로만 달아놓은 것 같았다. 어쩌면 이 문 너머가 벽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저기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미동도 없는 문고리를 하염없이 돌리다 문짝을 세차게 두드렸지만 제 손만 아파질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당황이 지나간 자리에 자연스레 두려움이 몰려왔다. 조금 전과는 다른 이유로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씨발, 내가 왜…….”

띠리링♬

망연자실함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것과 동시에 어디선가 경쾌한 효과음이 들렸다. 푹 처박았던 고개를 들자 눈앞에 반투명한 화면이 둥실 나타났다. 타닥타닥 타자 소리가 천천히 문장을 만들어 냈다.

현재 당신은 W.A.IN 멤버들과 아이돌 데뷔를 앞두고 있습니다. 기념비적인 첫 앨범의 컨셉은 ‘양아치’입니다.

“뭐?”

눈앞에 나타난 화면이 밝게 빛날수록 반대로 주변의 색은 점점 사라졌다. 어느새 좁은 방 안에 색을 입은 물체라고는 강문 자신과 느닷없이 나타난 화면, 둘만 남아 있었다.

그룹의 미래가 당신의 손에 달렸습니다. 해당 컨셉을 유지하겠습니까?

[Yes] [No]

“이게…… 무슨 개소리야?”

눈을 떠보니 태어나 처음 보는 공간에 갇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당황스러운데, 게임에서나 보던 선택 창 비슷한 게 눈앞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으니 이젠 살짝 불쾌하기까지 했다.

……잠깐. 게임?

“W.A.IN…… 어디서 들어 봤…… 헐……?”

강문의 머릿속에 순간 하나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떠올랐다.

「아무래도 저는 한 번 좌절한 경험이 있기도 하고…….」

친구들이 ‘차라리 들어가서 살라’며 핀잔을 할 정도로 강문이 미친 듯이 매달렸던 게임 속 주인공이자 최애인 캐릭터의 인터뷰. 멋쩍은 웃음과 함께 지나가던 회상 장면. 그리고 그 구석 선명하게 박혀 있던 그룹의 이름.

“에이…… 설마.”

강문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저도 모르게 떠올린 가설의 가능성을 애써 부정했다. 물론 이 방에서 눈을 뜨고 난 뒤 그 짧은 시간 동안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건 정말 말이 안 됐다.

내가 무슨 영화나 게임 속 주인공도 아니고, 이렇게 뜬금없는 빙의가 말이나 돼?

“…….”

하지만 침을 꼴딱 삼키자 냉정한 생각과는 달리 심박은 제멋대로 점점 빨라졌다. 주저앉았던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폈다. A4용지에 인쇄된 악보 더미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책상 구석에 작은 거울 하나가 놓여 있었다.

쩍쩍 바닥에 달라붙는 발걸음이 책상 쪽으로 향했다. 하늘로 향한 거울의 반사면엔 뽀얗게 먼지가 앉아 있었다. 강문은 손을 뻗어 거울을 집어 들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냥 확인만 한번 해 보는 거야.

하루에도 몇 번은 봤던 거울인데 이상하게 긴장이 됐다. 손바닥엔 벌써 축축하게 땀이 배어 나왔다.

“후우…….”

길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는 실눈을 떴다. 먼지가 앉은 탓인지 제대로 보이지 않아 소매로 문질러 닦으며 눈을 조금 더 크게 뜨자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이 빤히 눈을 마주쳐 왔다.

……마땅히 있어야 할 얼굴이 아니었다.

“으아악!”

소스라치게 놀라며 놓친 거울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꽤 둔탁한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하늘로 향하고 있는 반사면을 보니 깨지거나 금이 간 곳은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거울이 아니었다. 동그랗게 커진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는 바닥에 손을 짚고 엎드린 채로 거울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몇 번이고 들여다보아도 비친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왜……?”

거울 속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그건, 현실을 살고 있던 스물다섯 살의 ‘강문’이 아닌, 게임 ‘크레바스’ 속 주인공 ‘강문’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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