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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9화 (9/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9화

“진짜 바꿔 준대요? 일단 데려오라고 거짓말하는 건 아니고?”

“이게 진짜. 대표님 그런 사람 아니거든?”

성수가 숙였던 허리를 벌떡 세워 올리며 반박했다. 반응을 보니 확실히 빈말은 아닌 것 같았다.

“너는 그렇다고 문자 하나 남겨 놓고 사라지냐? 대화로 풀 생각을 해야지, 기억이 아니라 지능 자체에 문제 생긴 거 아니야?”

“와…… 지금 그거 되게 문제 있는 발언인 거 알아요? 그룹이 잘되려면 매니저도 말조심 좀 해야…….”

“시끄러, 새끼야.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개고생이냐?”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하려는 듯 손을 들어 올리더니, 그 대신 길게 한숨만 내뱉는다.

그 모습에 강문은 말을 덧붙이지 않고 입술을 삐죽거리며 눈만 흘겼다. 스스로 판 무덤이기는 하지만, 어디 아픈 사람 취급하는 게 영 짜증났다.

“에휴……. 얌전하던 애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쉴 새 없이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던 강문이 입맛만 쩝 다셨다. 성수가 뚱하게 서 있는 강문을 향해 따라오라는 듯 손을 휘적거렸다.

“진짜 어디 아픈 건 아니지?”

강문은 느릿느릿 고개만 끄덕이며 다리를 움직였다. 가까이 다가간 강문의 머리통에 성수의 손이 턱 하니 얹어졌다.

“그래. 그럼 됐어.”

조금은 우악스러운 손길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쓰다듬는다기엔 엉망으로 헤집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거칠었지만, 저를 탓하는 말은 더 이상 없었다.

갑작스러운 이탈이 매니저로서도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을 텐데. 가는 내내 잔소리를 쏟아부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을, 나란히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며 걷기만 하니 강문은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저기…… 형.”

“말 걸지 마. 뛰어서 힘없어.”

말은 퉁명스레 해도 퍽 다정한 목소리였다. 우물쭈물거리던 강문이 입술을 한번 꾹꾹 물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형 고생시키려던 건 아니었어요.”

“됐어. 어차피 대표님도 별로 화 안 나셨고.”

물론 막 엄청나게 미안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안 미안한 것도 아니지만……. 그러니까 이건,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꺼내는 말이기도 했다.

멤버들과는 관계를 잘 유지해서 데뷔를 성공시켜야 하니 당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미지 관리는 필요했다. 연예인은 원래 만들어진 이미지로 먹고 사는 직업이니까.

그래도 어차피 다시 돌아가면 안 볼 사람들이니 불필요한 정은 주지 말아야지.

“그것보다 그 징그러운 존댓말 좀 치워. 너 아닌 것 같아서 어색하니까.”

뜻밖에 돌아온 성수의 말에 강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안 그런 척 걱정을 담아 건네는 말이 마음을 자꾸만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고작 하루도 채 안 본 사람에게 느끼기엔 우스운 감정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정이 넘쳤다고,

“……응.”

이 사람들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 조각에 불과하다. 그러니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다시 돌아가는 데에만 집중하자.

강문은 스스로 세뇌시키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왜인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아이고, 우리 문이 왔네!”

연습실에 도착하니 대표가 두 팔을 벌리며 요란하게 맞았다. 처음 보는 대표의 얼굴은 위엄과는 퍽 거리가 멀었다. 번듯한 회사의 대표라기보단, 놀기 좋아하는 철없는 재벌 3세처럼 보였다.

특히 저 공격적으로 느껴질 만큼 화려한 하와이안 셔츠가 제일 이상했다. 한여름도 아닌데 웬 하와이안 셔츠?

캐릭터를 보아하니 분명 보기와는 달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게 뻔했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뛰쳐나갈 정도로 컨셉이 싫었나 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소파 구석에서 휘건의 목소리가 들려 강문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소파에 삐딱하게 앉아 있는 휘건은 상당히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고 갔던 차율은 어디가고 왜 내 새끼가 저기 앉아 있지? 그나저나 저렇게 앉아 있는 것도 예술이네. 거기다 예민한 표정이라니, 저 정도면 화보 장인 아니냐? 어쩜 저렇게 완벽…….

“그래서. 뭐가 하고 싶은데?”

“……네?”

저도 모르게 속으로 휘건을 향한 감탄을 쏟아내다 갑자기 질문이 날아 와 놀란 강문이 반문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선 대표가 한쪽 어깨를 가볍게 툭툭 털어주며 씨익 웃었다.

“따로 바라는 게 있어서 저질렀을 거 아니야.”

일단 원래의 그 거지 같은 컨셉부터 집어치울 생각이었지, 그 이후는 딱히 계획한 바가 없어 눈만 크게 굴렸다.

곡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있었지만, 구체화하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게임 안에서나 5성급 달성률을 보이는 능력 있는 프로듀서였지 실제로 이런 상황을 마주한 적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설마…….”

한쪽 눈썹을 까딱거린 대표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뒷일 생각 없이 일단 막 저지르고 볼 정도로 멍청하진 않겠지, 우리 문이가?”

대표의 말엔 뼈가 있었다. 이러다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되어 버릴까 봐 그건 아니라고 되받아치려는데, 주변이 회색빛으로 멈추더니 익숙한 상태 창이 나타났다.

키워드 제시 시스템을 발견하였습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이벤트의 경우, 보유 카드를 이용하여 키워드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다음]

“카드? 그런 거 없는데?”

강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지 주머니를 뒤적였지만 당연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키워드는 R, S, A, B, C 총 5등급으로 나뉘어 있으며, 등급이 높을수록 성공 확률이 올라갑니다. 키워드 제시 실패 시 패널티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됩니다.

[다음]

여기서까지 카드 등급을 신경 써야 하다니. 강문은 절로 나오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다음 버튼을 눌렀다. 정말 쓸데없이 디테일했다.

키워드 카드는 휴대폰의 ‘캔디머신’ 어플 또는 메인 메뉴의 ‘뽑기’ 탭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왼손 엄지손톱을 문지르면 메인 메뉴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다음]

마지 지금 당장 문질러보라는 듯 강문의 왼손 엄지손톱이 반짝반짝 빛났다. 제법 친절한 튜토리얼이 새삼 우스워 어이없는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설명대로 손톱을 문지르자 게임 ‘크레바스’의 것을 꼭 빼닮은 메인 메뉴가 나타났다. 왼쪽의 퀘스트 목록, 달성도, 호감도, 보유 카드 탭을 지나 가장 아래에 있는 ‘뽑기’ 탭을 눌렀다.

뽑기 이용권은 퀘스트 보상으로만 얻을 수 있으며, 10연속 뽑기 진행 시 S등급 이상 카드 한 장이 확정으로 등장합니다.

첫 뽑기 기념으로 이용권 5장을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확인]

상태 창이 사라지자 눈앞에 커다란 캔디 머신이 등장했다.

반짝거리는 색색의 구슬이 가득 든 머신 상단엔 소지한 뽑기 이용권의 개수가 나와 있었고, 하단엔 [1회 뽑기] 버튼과 [10회 뽑기] 버튼이 각각 있었다.

“다섯 개, 다섯 개 받아서 총 열 개네? 그럼 당연히…….”

10연뽑으로 가야지.

강문은 긴장감에 혀로 입술을 한번 축인 뒤 10회 뽑기 버튼을 과감하게 눌렀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캔디 머신 옆에 나타난 건너뛰기 버튼을 누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국인의 피란 원래 그런 거니까.

뱅글뱅글 돌아가는 구슬들이 빨리 감기 한 듯 지나가고, 빠른 속도로 펑! 터지며 폭죽처럼 반짝이는 이펙트와 함께 카드 열 장이 펼쳐졌다. 하나씩 순서대로 뒤집히며 뒷면에 있던 키워드가 나열되었다.

[귀농 (C)]

[사과 (B)]

[사탕 껍질 (C)]

[방학 (A)]

[흑염룡 (B)]

[청량함 (R)]

[향수 (A)]

[두통약 (B)]

[파스텔 (S)]

[어둠 (A)]

“오…… 나쁘지 않은데?”

강문은 뽑은 키워드 카드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R등급 ‘청량함’ 카드였다. 등급이 높아서 그런지 다른 카드들보다 훨씬 번쩍거렸다.

대화를 이어 가기 위해 보유 카드 탭으로 이동한 강문은 고민도 없이 ‘청량함’ 카드를 선택하고 제시하기 버튼을 눌렀다. 귀농이나 흑염룡 따위 키워드는 볼 가치도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흑염룡은 왜 B등급인 거야? 두통약은 또 뭐고. 저 키워드 카드를 쓰는 날이 오기는 할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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