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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28화 (28/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28화

딴생각에 빠진 강문이 한두 번 박자를 놓친 탓에 결국 두어 번 정도 더 맞춰본 후에야 연습이 끝났다. 마지막에 차율이 살짝 기우뚱하기는 했지만, 재빠르게 무마하는 것을 본 시영이 그냥 못 본 척 넘어가 주었다.

“다들 고생했어. 내일 틀리지 말고 촬영 잘하고, 너무 떨지 말고.”

“에이, 형. 우리 그래도 한 번 찍어 봐서 긴장 안 해여.”

격려가 담긴 말을 건네는 시영을 향해 시찬이 어깨를 으쓱이며 장난스레 웃었다. 그런 시찬이 귀여운 듯 시영 역시 눈썹을 찌푸리며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래. 이번 주는 나 없이 연습하는 거 알지? 게으름 피우면 다음 주에 더 빡세게 굴릴 거야.”

“네엡.”

시영이 멤버들에게 크게 손을 흔들고는 연습실 밖으로 사라졌다. 시영의 뒷모습에 꾸벅 인사를 하던 차율이 시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코웃음을 쳤다.

“긴장 안 하기는 무슨. 너 또 내일 아침에 얼굴 시퍼렇게 질려서 토할 것 같다고 할걸?”

멀찍이 떨어져 있는 휘건과 호재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도 바이크 자꾸 넘어트려서 깡문이 형 다칠 뻔했잖아! 감독님한테 뒤지게 혼났…….”

장난기가 그득한 목소리로 신이 나서 떠들던 차율이 문득 말을 멈추더니 강문의 눈치를 살살 봤다. ‘뒤지게’라는 단어 때문에 그런 거라 생각했는데, 다른 이유인 듯해 보여 강문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

이내 무언가 깨달은 강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차율은 저들만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 때문에 불편할까봐 강문의 기분을 살피는 것이었다. 유난히 지난 이야기보다 미래를 더 많이 입에 올리는 게 그냥 성향 탓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첫날 속내를 숨긴 휘건이 ‘이것저것 듣다 보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던 것처럼 기억을 떠올리게 하려 과거를 떠들어대며 귀찮게 굴 거라 예상했는데, 그러지 않는 것도 다들 유순한 성격이라 그러는 거겠지 싶었다.

하지만 이들은 저 나름대로 자신을 배려하고 있었던 거였다. 함께 있어도 외로운 기분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제가 있지만 또 없기도 한 기묘한 그 기억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해서.

다들 참 마음이 예쁘고 착한 아이들이었다. 거칠고 때론 잔인하기까지 한 연예계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로.

“시찬이가…….”

침묵 속에서 저 하나만 보고 있는 네 쌍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강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바이크에 토했다고?”

“뭐어? 아, 안 했어! 넘어트리기만 했단 말이야!”

“아, 이번엔 토할 거라고?”

“안 해!”

분위기를 풀어 보려 가볍게 툭 던진 말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얼굴까지 빨개져서 씩씩거리던 시찬도 결국 참지 못하고 와하하 웃어 버렸다.

언젠가 헤어져 다시는 못 보게 될 사람들일지언정, 멤버들이 좋았다. 어쩌다 떨어져 버린 게임 속 세상에서 의연하게 버틸 수 있는 것도 다 멤버들 덕분이었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러니 더 기를 쓰고 열심히 달려야 했다. 이들이 마음껏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달아 주기 위해. 비록 그 미래에 저는 없겠지만.

“아~ 배고프다. 나랑 같이 떡볶이 먹어 줄 사람 없나?”

“헐. 나! 형, 나나나!”

과장스럽게 배를 문지르는 강문을 향해 시찬이 눈을 반짝이며 손을 번쩍 들었다. 조금 전까지 찌그러져서 눈치만 보던 차율 역시 슬쩍 손을 들었다. 그 모습을 본 호재가 기가 막힌다는 듯 작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숙소 가서 씻고 떡볶이 시켜 먹을까?”

활짝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인 시찬이 잽싸게 뛰어갔다. 반쯤 열린 연습실 문을 잡은 시찬이 나머지 멤버들을 향해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뭐해? 지금도 떡볶이가 1초씩 멀어지고 있다고!”

막내의 귀여운 닦달에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졌다. 부드럽게 돌아온 주변 공기가 다섯 사람을 연습실 밖으로 기꺼이 인도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누가 먼저 씻고 나올 건지 순서를 정하느라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골목을 메웠다. 시찬은 가위바위보를, 차율은 선착순을, 호재와 휘건은 나이순을 고집했다.

그냥 두 명씩 들어가서 씻으라는 강문의 말에 네 사람 다 질색을 하며 몸을 떨었다. 그게 또 우스워 걸음을 멈추고 배를 잡고 웃었다. 조금 이르게 연습실에서 나와 노을이 머리 위로 펼쳐진 것까지, 퍽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민첩한 하루 보내시오!”

“아, 형!”

숙소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거실 쪽 욕실로 재빠르게 들어간 차율이 문을 잠갔다. 시찬이 씩씩거리며 욕실 불을 껐다 켰다 하는 사이 휘건과 호재의 발걸음이 약속한 듯 동시에 빨라졌다. 강문은 신발을 벗으며 경보하듯 우스꽝스럽게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시무룩해진 호재가 방에서 나와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휘건과의 경보 싸움에서 진 모양이었다.

“흥. 먹고 싶은 거 다 시켜버릴 거야.”

갈증이 나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는데, 시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냉장고 문을 닫고 물통 뚜껑을 열며 보니 차율의 휴대폰을 든 시찬이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금세 주문을 마쳤는지 시찬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휴대폰을 소파 팔걸이 위에 올려 두었다. 아무래도 오늘 떡볶이는 차율이 사게 되어버린 듯했다. 본인의 동의는 없었지만.

“……어?”

물을 마시며 바닥 어딘가에 의미 없이 시선을 두던 강문의 눈에 무언가 이상한 게 들어왔다. 식탁 밑 구석에서 홀로그램 영상처럼 깜빡깜빡하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어떤 물체였다.

“뭐지, 저게?”

시찬과 호재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리며 강문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그것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몸을 숙였다.

“노트?”

정체불명의 물체는 얇은 노트 한 권이었다. 자꾸 흐릿하게 깜빡거려 확인하기 힘들었지만, 꽤 오래 사용한 듯 표지가 조금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또 왜 이렇게 이질적으로 깜빡거리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는지 알아보려 손을 뻗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리며 눈앞에 빨간 경고 창이 떴다.

ERROR CODE : 004-1

메모리 오류로 시스템을 재가동합니다.

“뭐? 잠깐……!”

손쓸 틈 없이 눈앞이 순식간에 암전됐다. 그러나 머릿속의 경고음은 여전히 시끄럽게 울려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헉!”

의지와 상관없이 번쩍 눈을 뜬 강문은 몇 초 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냉장고 문을 열고 있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멍청하게 입을 벌린 강문의 눈앞에 다시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일시적인 오류로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사과의 의미로 보상이 지급되었으니 확인해주세요.

보상 : 블랭크 카드

“블랭크 카드?”

“형, 뭐해?”

어정쩡하게 냉장고 문을 열고 굳어 있는 강문을 향해 시찬이 물었다. 호재와 함께 떡볶이를 주문하기 위해 차율의 휴대폰을 쥐고 있는 채였다.

“아니……. 아무것도.”

대답을 얼버무리며 얼른 물을 집어 들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가끔 이렇게 예기치 못한 돌발성 이벤트가 터지니, 자신이 게임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이번엔 이벤트가 아니라 에러였지만. 에러 코드는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는 했다.

“이유가 뭐지…….”

차가운 물을 한 모금 삼킨 강문이 작게 중얼거렸다. 눈동자만 굴려 조금 전 노트가 있었던 식탁 밑 구석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노트는 뭐였을까. 왜 메모리에 갑자기 오류가 생긴 걸까.

풀리지 않은 의문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해소되지 못한 의문들이 쌓여만 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아, 맞다.”

식탁 의자에 옆으로 비스듬히 앉은 강문이 메뉴로 들어가 보유 카드 목록을 확인했다. 전에 뽑은 키워드 카드들 옆에 ‘NEW’라는 아이콘이 붙은 하얀 카드가 새로 추가되어 있었다.

“이건가?”

‘사과’ 카드를 확인했을 때처럼 집어 들자 다시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블랭크 카드를 획득하였습니다.

블랭크 카드는 1회에 한해 원하는 키워드를 작성할 수 있는 카드이며, 작성과 동시에 사용됩니다. 사용한 카드는 소멸되니 신중하게 사용하세요!

설명을 읽어 보니 포커 카드의 조커와 비슷한 듯했다. 원하는 키워드를 작성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큰 강점이었다. 나중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잘 보관해 두었다가 정말 급할 때 써야지.

“하아아…….”

메인 메뉴 화면을 끄고 나오자 급격히 피곤해져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자신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시스템에 오류가 생길 거라고는 예상 못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아무래도 확인하지 못한 노트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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