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40화 (40/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40화

“이렇게 하는 건가?”

한참을 웃던 강문이 조금 전 차율이 했던 동작을 흉내냈다.

손등이 보이도록 펼친 브이 두 개를 알파벳 W처럼 붙이고, 그 다음 엄지와 검지만 펼쳐 고개를 까딱이며 총에 맞는 시늉을 하는 동작이었다.

“오~ 몸이 기억하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호재가 과장스럽게 칭찬하며 손뼉을 짝짝 쳤다. 묘하게 로봇 같은 반응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끅끅대며 웃음이 터졌다. 휘건은 돌아서서 입을 틀어막고 어깨를 떨었고, 시찬은 쭈그리고 앉아서 거의 울다시피 했다.

강문 역시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플 정도라 찔끔 배어나온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쳤다. 얼마 만에 이렇게 웃어보는 건지. 이젠 정말 함께 있는 멤버들이 가족 같았다.

각자 눈물을 훔치며 웃고 있는 멤버들을 스윽 훑어본 강문이 코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물론 여러 매체로 기록이 남겠지만, 두 번은 없을 지금 이 순간을 제 손에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 사진 하나 찍자.”

“사진?”

“응. 다들 좀 모여서 서 봐.”

강문의 말에 띄엄띄엄 서 있던 멤버들이 가까이 붙어 모였다.

“와이인 하면서 찍을까?”

“오! 좋다, 좋다.”

시찬이 강문의 제안에 아주 만족한 듯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강문은 휴대폰 카메라를 셀카 모드로 두고 손을 뻗어 높이 들었다.

각도에 맞춰 쪼르르 서 있는 얼굴들이 너무 귀엽고 예뻤다.

“옆으로 좀 가 봐. 나 반밖에 안 나오잖아.”

“힘줘서 가늘어지시든지.”

휘건과 호재가 자리 싸움을 하며 아웅다웅하는 것마저 코끝이 시큰해질 정도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할 수만 있다면 잠시만이라도 이 시간을 묶어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찍는다?”

강문이 타이머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5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멤버들 모두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 빨강과 초록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 옆으로 새로운 사진이 자리했다. 텅 비어있던 사진첩 속에 새로운 추억 하나가 생겼다.

“나 먼저 씻을게.”

“나랑 같이 들어가자. 빨리 씻고 잘래.”

“그러든지.”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시찬과 차율이 터덜터덜 욕실로 함께 들어가고, 그 뒤로 나머지 멤버들도 빠르게 씻고 나와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촬영이 즐겁기는 했지만, 몸이 피곤한 건 어쩔 수 없다. 이제 진짜 곧 해가 뜰 시간이기도 하고.

저 역시 최대한 빨리 씻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스프레이를 그렇게 뿌려대더니, 팁이라고 알려준 대로 린스로 먼저 떡칠을 하고 감아도 뻣뻣한 머리를 풀어내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메이크업이라도 현장에서 지우고 온 게 다행이었다.

점점 무거워지는 눈을 끔뻑이고 있으니 오매불망 기다리던 퀘스트 완료 창이 떴다.

<첫 촬영의 두근거림> 퀘스트 성공!

뽑기 이용권 10장

모든 능력치 +10

모든 인물 호감도 +10

모든 인물 신뢰도 +10

[확인]

멍하니 바라보다 생각보다 후한 보상에 조금 놀랐다. 이정도의 보상이면 그 고생을 하고 돌아다닌 보람이 아주 조금은 있는 것 같다.

“하긴…… 존나 힘들기는 했지.”

짧은 시간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인지 어제의 일도 벌써 까마득했다. 이미 일주일은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확인 버튼을 누르고 다시 멍하니 천정을 보고 있으니 즐거웠던 감정과 거울을 볼 때마다 마주하는 낯선 얼굴이 자꾸 겹쳐졌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원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던 소름끼치는 순간까지. 이러다 현실의 자아를 전부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무서웠다.

“……절대 안 잊어버릴 거야.”

옆으로 돌아누운 강문은 눈을 감고 자신이 돌아가야 할 현실의 일들을 떠올렸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열심히 공부해서 들어간 학교, 지긋지긋한 과제, 아르바이트, 다 꺼진 매트리스 하나만 겨우 들어가는 자취방…….

꾸벅꾸벅 졸다 까무룩 잠들 때까지 강문은 제 모든 것을 최대한 기억 속에 못박아두려 노력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잊어버리지 않도록. 주인공이 아닌, 현실의 ‘강문’으로 계속 남을 수 있도록.

* * *

[잡담] 너네 진짜 나 믿고 기다려봐 곧 케팝 부활한다

익명 | 조회 1327

정확하게는 말 못해주는데 아무튼 곧 갓남돌 하나 나올거임 늦어도 한달 안에

어케아는데

┗ 셀털이라 자세히 말못함 근데 진짜임 믿어주라

┗ 구라까고있네

케팝 죽은적 없는데 ㅋㅋㅋ

┗ 222

┗ 333 왜 멀쩡한 우리 케팝 죽임ㅠㅠ

┗ 44444444

┗ 5555

┗ 66666 케팝둥절

와 제발 나와라 요즘 다 못생긴게 아이돌이라고 나대서 개킹받는데

┗ ^^???

┗ ㅋㅋㅋㅋ 응 니얼굴이나 봐~

┗ 먹금 댓ㄴㄴ

┗ 원댓인데 내 의견도 얘기못함? 내 눈엔 못생겼을수도 있지 왜 눈치주고 지랄ㅋㅋㅋ

┗ 어그로임?

근데 맞말이지않음? 요즘 다 개성있게 잘생기긴 했어도 객관적으로 확신의 미남은 없지 않냐

┗ ㅇㅇㅇ 나도 이렇게 생각

┗ 그럼 생각만해

┗ 와 입막음 오진다ㅋㅋㅋㅋ

* * *

대표의 말대로 촬영이 끝난 뒤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었고, 그 다음날부터는 다시 틈틈이 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바뀐 안무로 시영 없이 멤버들끼리만 하는 연습에 처음에는 조금 우왕좌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제 제법 모양새가 나와 뿌듯했다.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고 첫 티저 영상이 공개되는 날이 되었다. 대표는 가장 어린 시찬을 시작으로 매일 한 명씩 영상과 컨셉 포토가 공개될 거라고 했다. 대표가 생각해둔 라스트는 강문이었지만, 강문이 바락바락 우겨서 결국 휘건으로 만들었다. 뿌듯해하는 강문의 옆에서 휘건은 상당히 민망해했다.

“오늘 시간 왜 이렇게 안 가? 6시까지 어떻게 기다려?”

다들 말은 못하고 두근거리는 심장만 부여잡고 있는 가운데, 특히 시찬은 자기 티저가 공개되는 날이라 그보다 배는 더 긴장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표는 이상하게도 멤버들에게 최종 영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확인하는 재미도 있어야 한다나 뭐라나. 하여튼 특이했다.

“나 막 이상하게 나온 거 아니겠지?”

시찬은 제 모습이 이상하게 보여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강문에겐 그보다 다른 포인트가 더 문제였다.

이대로 그냥 묻히면 어떡하지.

요즘 한 달동안에도 몇 팀이 데뷔하는데, 대형 기획사도 아니고 이제 막 생긴 작은 기획사에서 나오는 아이돌을 누가 알고 봐줄까. 다른 것보다 그게 제일 걱정되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전부 보여주지도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가라앉을까봐.

“집중 안 돼서 연습도 못 하겠어…….”

손톱을 물어뜯으며 안절부절못하던 시찬이 연습실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아무래도 연습은 글러 보여 강문 역시 시찬의 옆에 주저앉았다.

“그럼 우리 인터뷰 연습이나 할까?”

“헐, 맞아. 완전 까먹고 있었어.”

힘없이 널브러져 있던 시찬이 눈을 반짝이며 벌떡 일어났다. 티저가 전부 공개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데뷔 쇼케이스가 있다. 기자들을 불러놓고 진행하는 거라 혹시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호재에게 눈짓하자 호재가 자기 가방에서 미리 받은 질문지를 꺼내 가져왔다. 보통 대본에 모범답안까지 써서 만들어주는데, 대표는 일단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며 예상 질문만 덜렁 던져주고 갔다. 도대체 뭘 믿고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첫 번째 질문. ‘와인’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We Are Insane’ 이라는 문장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입니다!”

시찬이 손을 번쩍 들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하지만 강문이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기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지. 그런 거 말고, 이름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말해봐.”

“어…… 의미?”

딱히 생각해본 적 없는 듯 시찬이 당황한 채로 볼을 긁적였다.

“우리는 미쳤……다……?”

어이가 없어 미간을 찌푸리는데, 가만히 보고 있던 호재가 불쑥 끼어들었다.

“여러분들에게 ‘와, 미쳤다’라는 감탄사를 자아내는 그룹이 되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습니다.”

“오오…….”

기다렸다는 듯 나오는 대답에 휘건이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호재는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미쳤다는 말 써도 되겠지?”

“나쁜 의미가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나중에 대표님한테 물어보자.”

애매할 때는 저보다 높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안전하다. 지금 여기서 머리 다섯 개를 맞대고 고민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아무튼, 누구한테 물어볼지 모르니까 다들 기억해 놔. 알겠지?”

강문을 제외한 네 명이 말 잘 듣는 병아리처럼 동시에 끄덕였다. 강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데뷔를 준비하면서 어떤 게 가장 힘들었나요?”

“솔직하게 말해도 돼?”

“일단 해봐.”

그간 시찬의 언행을 보면 대충 짐작이 가기는 했지만, 모르는 척 대답을 끌어냈다. 입술을 우물거리며 고민하던 시찬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식단 관리하느라 너무 배고팠어요.”

너무나 시찬다운 대답에 멤버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다들 바닥을 치며 웃어대는 가운데 시찬만 혼자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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