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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44화 (44/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44화

쇼케이스 날짜가 다가올수록 멤버들은 더욱 바빠졌다. 타이틀 외에도 한 곡을 더 퍼포먼스와 함께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앉아서 노래만 부르는 2곡까지, 총 4곡을 준비해야 했다. 녹음을 위해 귀가 닳도록 듣고 부르긴 했지만, 부스에서 노래하는 것과 관객들 앞에 서는 것은 각오부터 남달랐다.

티저가 공개되고 난 뒤부터는 안무와 함께 라이브 연습도 시작됐다. 차율은 본인의 성량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압박감이 몰려올 때면 연습실을 냅다 빙빙 달리면서 노래했다. 그게 나름대로 효과가 있어 보여서 나중엔 멤버 모두 나란히 연습실을 질주했다.

그렇게 연습의 일부로 자리 잡힌 달리기는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최후의 1인은 ‘거절 불가 소원권’을 하나 얻을 수 있었다. 정작 아이디어를 낸 차율은 한 번도 소원권을 손에 넣은 적이 없지만.

“와…… 헉…… 나 죽어…….”

호재와 둘이 남아 있다 결국 나가떨어진 시찬이 바닥에 털썩 드러누우며 숨을 몰아쉬었다. 호재도 힘들긴 한지 발갛게 익은 얼굴로 무릎을 짚고 헉헉거렸다. 차율이 둘 다 사람 아닌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강호재 소원권 몇 개야?”

“세 개.”

“나 하나만. 제발.”

“어림없지.”

“치사해. 나 하나 줘도 장원이면서.”

지금까지의 스코어는 호재가 3개, 휘건과 강문이 각 1개씩이었다. 시찬과 차율은 자기들도 하나씩만 좀 갖게 해달라며 억울해 했지만, 아무도 설렁설렁 봐주지 않았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거라며 휘건은 비장한 태도로 임하기까지 했다.

“좀 쉬었다 할까?”

“좀 쉬었다가도 안 할래.”

“어쭈.”

강문이 바닥에 딱 붙을 기세로 누워 고개만 도리도리 젓자 휘건이 웃으며 손가락으로 볼을 쿡 찔렀다. 진짜 더는 못하겠다며 칭얼거리는 모습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형이 저러는 걸 보니 진짜 힘들긴 한가 보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수건으로 땀을 닦던 호재가 강문을 신기한 듯 쳐다보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문은 멤버들이 아무리 우는 소리를 해도 늘 ‘한 번만 더!’를 외치곤 했기 때문이다. 다들 강문은 지치는 법을 모르는 줄 알았다.

“힘든 것도 맞는데, 이틀 남았으니까 이제 컨디션 관리해야지. 이렇게 열심히 연습했는데, 막상 쇼케날 아프면 억울하잖아.”

“이야……. 역시 깡문이 형은 다 생각이 있구나?”

시찬이 감탄하며 양손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다들 열심히 연습하는 것만 생각했지, 거기까진 미처 예상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은 이만 마무리하기로 하고, 다들 숙소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시찬이 욕실로 뛰어 들어가고, 빨리 씻고 나와서 쉬겠다며 차율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우리도 같이 들어가서 씻을까?”

호재가 상의를 벗으며 휘건에게 물었다. 분명 농담일 텐데, 이상하게 호재 입에서 나오면 농담이 맞는지 헷갈렸다.

“미안한데, 혹시 미쳤냐?”

휘건이 정색하며 묻자 호재가 낄낄 웃으며 싫음 말고, 하고 대답했다. 먼저 씻겠다며 방 안 욕실로 들어가는 호재의 뒷모습을 보던 휘건이 그제야 무언가 깨달은 듯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내가 먼저 씻으려고 했는데…….”

“아하하. 말려들었네.”

소파 아래에 털썩 주저앉은 강문이 낄낄 웃자 휘건이 머쓱하게 입술을 삐죽였다.

“아. 이거 봐봐.”

“뭘?”

가까이 오라는 강문의 손짓을 따라 휘건이 그 옆에 조금 떨어져 앉았다. 강문이 휘건 쪽으로 살짝 당겨 앉으며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강문의 얼굴과 화면을 번갈아 본 휘건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이게 뭐?”

“우리 티저 뜬 다음에 별스타 계정 하나 만들었거든. 근데 여기 봐.”

강문의 손가락이 ‘팔로워’라는 글자 위 숫자를 가리켰다.

“팔로워 수가 벌써 이만큼이나 늘었어.”

나중에 공식 카페나 커뮤니티가 생기면 본격적인 소통 창구가 열리겠지만, 그 전까지 소소하게 사용할 용도로 만든 것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면서 사적인 SNS들은 다 탈퇴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고민하느라 어디 알리지도 않고 정말 만들어만 두었는데, 어디서 알고 온 건지 그새 팔로워가 많이 늘었다. 덕후들의 정보력은 정말 대단했다.

“나한텐 셀카나 몇 장 올리고 하지 말라더니.”

“아, 그랬었나?”

휘건은 연습실에서 온갖 하트를 만들어대며 꺼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솔직히 흘러가듯 했던 말이라 머릿속에 잘 담아뒀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의외였다.

“뭐…… 머글들은 이런 SNS에 올라오는 사진이나 게시글로 입덕하기도 하거든. 물론 때에 따라선 안 하느니만 못 한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거기까지 말한 강문의 머릿속에 SNS 때문에 구설수에 올라 논란이 된 연예인들이 스쳐 지나갔다. SNS는 양날의 검이라, 정확하게 득실을 따지기 어려웠다. 그저 계정 주인이 손가락을 함부로 놀리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그럴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게 낫다.

“역시 넌 만들지 마. 모든 멤버가 다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또 괜히 만들고 싶네?”

“이 청개구리가.”

강문이 눈썹을 찡그리고 웃으며 휘건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휘건 역시 낄낄 웃으며 강문이 손바닥으로 내려친 자리를 슬슬 문질렀다.

“그래서 이게 왜 좋은 거냐고.”

아무래도 휘건은 SNS가 뭔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운동하는 애들이 이런 데 관심 없는 경우가 많던데, 실력은 확실하지만 팬서비스를 제대로 해주기는 할지 갑자기 걱정되었다.

“그만큼 나한테 관심이 있다는 거잖아. 여기 이 사람들이.”

“아아…….”

휘건이 대충 이해간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러고는 손끝으로 턱을 슬슬 쓸며 무언가 고민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역시 나도 할래. 나도 관심 많아.”

“뭐?”

어처구니없는 말에 강문이 고개를 홱 돌려 휘건을 쳐다보았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얼굴이 눈만 찡긋 웃으며 강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관심이 아니라…….”

“형! 씻어!”

마침 타이밍 좋게 나온 차율이 허리에 수건을 두르며 강문을 불렀다. 휘건이 강문에게 가서 씻으라는 듯 턱짓했다.

“만들지 마라? 나중에 우리 프롬 게시판 생기면 그거나 써.”

휘건은 대답 대신 씨익 웃으며 어깨만 으쓱였다. 아무래도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도 휘건이라면 다른 멤버들보다 사고 칠 걱정이 좀 덜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 개운하다.”

빠르게 샤워를 끝내고 나오니 다들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휘건도 조금 전에 막 씻고 나온 모양인지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

“형! 이거 봐봐!”

욕실에서 나온 강문을 발견한 시찬이 얼른 와 보라며 손짓했다. 옷만 입고 나오겠다며 방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니 다들 그 속에 들어갈 기세로 시찬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뭐해?”

“형, 빨리!”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가가자 시찬이 눈앞에 휴대폰을 척 들이밀었다. 너무 가까이 다가와 부딪힐 뻔해 얼굴을 뒤로 살짝 물렸던 강문이 눈을 깜빡이고는 화면을 자세히 보았다.

“뭘 보라는…….”

휴대폰 화면엔 요즘 핫한 배우가 올린 게시글 하나가 띄워져 있었다. 그런데, 그냥 평범한 글이 아니었다.

김채고 @kimbestofbest

요즘 이 친구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노래 너무 좋지 않나요?

잘 됐으면 좋겠다! ㅎㅎ

http:vide.pl/s8hgfd78a0

게시글 속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오늘 선공개 된 와인의 타이틀곡 뮤직비디오가 재생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대한민국에서 높은 주가를 자랑하는 배우가 아직 데뷔도 안한 쌩신인의 뮤직비디오를 추천이랍시고 SNS에 올린 것이다.

“김채고가…… 여기도 있어?”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다들 신기해서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것과 달리, 강문은 또 한 번 놀랐다. 김채고는 강문이 살던 현실에서도 꽤 인지도 높은 유명 배우였다. 물론 갑질 논란으로 지금은 인기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드라마 판에선 잘 나갔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처음엔 낯선 사람들만 존재하던 이 세계에 자꾸만 현실과 겹치는 부분이 생겨나고 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시스템이 원하는 게 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게 과연 긍정적인 신호일지도,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어 불안하기만 했다.

“혹시…… 대표님이 김채고 선배님이랑 아는 사이인 걸까?”

“에이, 그럼 벌써 자랑 엄청 했을 걸?”

“하긴.”

강문 혼자 심각한 가운데, 시찬과 차율이 의미 없는 추리를 계속했다. 지금 여기서 더 고민해봤자 답이 나올 리도 없으니, 잡념을 애써 뒤로 밀어두며 크게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결심한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 우리 별스타 라이브 할래?”

“별스타 라이브?”

“사실 내가 얼마 전에 계정 하나 만들어 놨는데…….”

강문이 소파 팔걸이 위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을 가져와 별스타 계정을 보여주었다. 조금 전 올라온 게시글의 영향인지, 휘건에게 보여주었을 때보다도 팔로워가 훨씬 더 늘어 있었다.

“헐, 미친. 팔로워 대박 많아.”

시찬이 감탄하며 입을 떡 벌렸다. 옆에서 보고 있던 차율도 감탄사를 내뱉으며 호재에게 한쪽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호재가 귀찮은 표정으로 대충 하이파이브를 쳐주자 만족한 듯 씨익 웃었다.

“근데 보는 사람이 있을까? 팔로워가 다 우리 팬인 건 아니잖아. 아직 데뷔도 안 했고.”

휘건의 말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강문은 딱히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안 본다고 해서 손해 볼 것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종종 데뷔 전부터 팬이 있는 연습생들이 라이브 방송으로 소통하는 걸 보기도 했고.

모처럼 김채고가 판을 깔아 줬는데, 그냥 그대로 고이 접어버리기엔 좀 아깝지.

“그럼 연습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한 명이라도 봐주면 고마운 거고.”

“흐음…….”

딱히 반박할 여지는 없어 보였는지 휘건이 한쪽 눈썹을 까딱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W.A.IN의 비공식 첫 팬 라이브가 즉흥적으로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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