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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49화 (49/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49화

“안녕~ 잘들 지냈어?”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대기실 문이 열리고, 또 다른 반가운 얼굴이 문틈 사이로 쑤욱 등장했다.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예한에 멤버들이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려 하자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옆 대기실에 세팅 중이니까, 식사 천천히들 하고 넘어와.

까르르 웃으며 순식간에 사라지는 예한의 모습 위로 이번에도 대표의 모습이 겹쳐졌다. 두 사람이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지금껏 친구로 지내고 있는지는 잘 알 것 같았다.

식사를 마무리하고 옆 대기실로 넘어가니 의상과 메이크업 박스들이 세팅되어 있었다. 전체적인 스타일링은 예한이 기획했지만, 모든 걸 혼자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메이크업과 헤어는 지난번 뮤직비디오 촬영 때 도와주었던 스텝들이 맡았다. 다들 예한과 건너건너 아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경우 지인 위주로 구성되어 굴러가는 회사의 미래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지만, 그걸 떠나 그들의 실력 하나만큼은 강문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예한도 그래서 데리고 다니는 거겠지 싶었다. 능력도 안 되는 이를 지인이라고 꽂아줄 그런 물렁한 인물은 못 되어 보이니까.

“무대 조명 받으면 다 날아가서, 색조가 좀 진하게 올라갈 거야. 그래야 무대에서도 예쁘게 보이거든. 나 믿지?”

예한의 말대로 뮤직 비디오와 자켓 촬영 때보다 더 진하고 화려한 메이크업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뮤지컬 배우나 오페라 가수들이 하는 무대 화장처럼 과하게 이목구비를 강조하는 건 또 아니라서, 크게 부담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좀 많이 열심히 꾸몄구나 싶을 뿐.

“뿌리 새로 한 거야?”

“넹. 어제 했어여. 깔끔하져?”

시찬은 막내다운 면모로 스텝들에게도 귀여움을 받았다. 친화력 좋은 성격 덕에 금세 누나, 누나하며 사근사근 굴었다. 그 정도는 성격 좋고 친절한 아티스트의 참된 모습이겠지만 강문은 내심 불안했다. 초반에 ‘연애에 관심이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던 탓이다.

그래도 과하게 긴장하는 모습보다는 차라리 나아 보였다. 시찬도 아주 멍청하지는 않으니, 당분간은 알아서 잘 처신하겠지 싶기도 했고. 저래 보여도 그룹의 미래를 걱정하고 다 같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똑같으니.

“어디 보자…….”

메이크업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강문은 미리 받아 두었던 큐시트를 확인했다.

오프닝에 이어 타이틀곡 무대 후 간단한 소개와 인터뷰 시간을 가지고, 두 번째 무대 후 의상을 갈아입는다. 그동안 MC가 간단한 관객 참여 이벤트를 하고, 그 뒤에 다시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인터뷰 및 질의응답 시간이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앉아서 부르기로 한 2곡까지 무대가 끝나면 마무리 되는 순서였다.

다른 아이돌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알차게 구성한 게 보였다. 콘서트는 몇 번 가 봤지만 쇼케이스는 생소해서, 사실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다만, 부디 곧 만날 관객들이 자신들에게 실망하지 않고 완벽한 ‘코어팬’이 되어 주길 바랄 뿐이었고, 미니 쇼케이스라 공연 시간이 짧은 게 아쉬웠다.

“아이고, 예뻐라. 사진 하나만 찍을까?”

헤어와 메이크업이 끝난 뒤 예한과 사진을 찍고 있는데, 똑똑 노크 소리 뒤에 성수가 들어왔다. 그는 의상까지 갖춰 입은 멤버들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박수를 짝짝 쳤다.

“이야……. 어느 집 애들인지 참 잘났네, 잘났어. 영상 하나 찍어야 하니까 이거부터 빨리 외워.”

성수가 건넨 종이에는 멤버별로 짧은 멘트가 적혀 있었다. 쇼케이스 시작 전 공식 계정에 올라갈 짧은 영상용이라고 했다. 한 사람당 할당된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 금세 외우고 영상 촬영을 준비했다.

리더인 강문이 가운데에 서고, 왼쪽으로는 시찬과 호재, 오른쪽으로는 차율과 휘건이 섰다. 강문은 휘건을 가운데에 세우고 싶었지만 키 때문에 균형을 맞추려면 이게 최선이었다.

“We Are Insane! 안녕하세요, 와인입니다!”

영상 속에서 멤버들은 각자 기대되고 떨리는 마음을 짧게 표현했다. 몇 번 버벅대서 다시 찍기는 했지만, 성수는 오히려 자연스러워 좋다고 했다. 영상 앞에 실수한 컷들을 조금 붙여서 올리면 팬들도 분명 좋아할 것이다.

W.A.IN @weareinsane_official

안녕하세요, 와인입니다!

http:vide.pl/72515359

#WAIN #와인 #강문 #박휘건 #강호재 #차율 #이시찬 #데뷔 #쇼케이스

우렁찬 구호와 함께 찍은 영상을 성수가 간단하게 편집해 공식 계정에 올렸다. 이번에도 업로드 되기가 무섭게 공유와 하트 숫자가 무섭도록 올라갔다.

성수는 자신이 잡았던 줄이 썩은 동아줄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새삼 감격했다.

산삼뿌리 @healthy_ssbr

우리 뿌뿌즈 누가 이산가족으로 만들었어

휘파람총 @gnlqkfkachd

미친 오늘 헤메 미쳤다

곰차 @bearchachaa

쇼케 현장중계 해주실 분ㅠㅠㅠㅠㅠㅠ 나 왜 한국 아님? 시발 인생아……

문토끼 @moonlight_rabbit

뎀 드릴게요!

율무주전자 @yoolintheteapot

앞에 틀리고 웃는거 존나 귀여우ㅠㅠㅠㅠㅠㅠ 빨리 보고싶다 말랑구들

성수가 팬들 반응을 살피는 사이 카메라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객석에서는 대표와 다른 직원이 모니터링하고 있어 성수는 바깥을 슬쩍 살펴보러 나갔다. 아직 쇼케이스 시작 시간까지 3시간은 남았는데, 벌써 도착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런 날도 오네…….”

로비와 공연장 바깥을 채우고 있는 인파를 보며 성수가 감격에 겨워 중얼거렸다. 그동안 맘 졸이며 고생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이제 막 데뷔 쇼케이스를 앞두고 있는 주제에 표정은 꼭 대상이라도 받은 것 같았다.

<나의 첫 쇼케이스!(2)>

곧 카메라 리허설이 시작됩니다. 미니게임 점수를 얻어 인기도 획득 확률을 높이세요.

[시작]

그리고 같은 시간, 강문은 또다시 등장한 퀘스트 창을 보며 미니게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까 몸풀기 때의 미니게임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딱 그 정도 수준의 게임이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한 뒤 버튼을 누르자 어김없이 10부터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MINI GAME START!

첫 곡의 전주가 흘러나오고, 긴장하던 강문이 주변을 살폈다. 스트레칭은 동작 따라하기였던 걸 생각해 보면 이번엔 리듬 게임 같은 게 아닐까 예상했는데, 갑자기 허공에 오선지가 그려지더니 음표가 나열되었다. 그리고는 기다란 막대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박자에 맞춰 스르륵 움직였다.

“파도가 되어 쏟아진 수많은 별 속에 있는 나.”

강문이 첫 소절을 내뱉자 막대가 정확히 음표 위를 지나갔다. 저게 뭔가 싶어 가사를 살짝 절었더니 음표 하나가 빨갛게 변했다. 음정, 박자, 가사까지 완벽하게 넘어가야 하는 일종의 커다란 노래방 기계인가 보다.

씨익 입꼬리를 올려 웃은 강문이 다시 무대에 집중했다. 이 정도는 눈 감고도 완벽에 가깝게 해낼 자신이 있다. 평소 연습하던 대로만 하면 무리 없이 클리어가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 음표까지 여유롭게 넘기자 강문의 귀에는 박수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Excellent!’라는 경쾌한 효과음도 함께였다.

“의상 준비해주세요!”

“체인지 하고 메이크업 수정 들어갈게요!”

카메라 리허설은 본 공연과 똑같이 진행되기 때문에 드라이 리허설보다 훨씬 더 정신없었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두 번째 무대까지 마치고 난 뒤 상의 단추를 풀며 백스테이지로 이동했다. 옆으로 다가온 스텝들이 발맞춰 걸으며 인이어 마이크를 빼는 걸 도와주었다. 다음 무대는 핸드 마이크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히든 챌린지 등장!

150초 안에 의상을 갈아입으세요.

“이건 또 뭐야?”

대기실로 들어와 의상을 갈아입으려는데, 미니 게임 클리어 창이 뜨기도 전에 ‘히든 챌린지’가 뜬금없이 등장했다. 당황할 틈도 없이 150부터 숫자가 거꾸로 카운트되기 시작했다. 강문은 속으로 욕을 씹으며 허겁지겁 옷을 벗어던졌다.

옷에 몸을 욱여넣다시피 갈아입고 난 뒤 헉헉대며 화면을 보니 숫자가 5에서 멈추었다. 아슬아슬하게 남은 시간을 보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언젠가 TV에서 제한시간 안에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그대로 커튼을 내려 버리는 예능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출연했던 연예인들도 꽤 필사적이었겠다 싶었다.

히든 챌린지 성공!

“이건 보상도 없어? 뭐 이래?”

작게 투덜거리고 있으니 예한과 스텝들이 들어왔다.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메이크업을 수정하자 잠깐의 쉴 틈도 없이 스탠바이 사인이 떨어졌다. 서둘러 물만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무대로 나가기 위해 대기했다. 정말 최소한의 시간동안 최대한의 효율로 움직이고 있다는 게 새삼 실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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