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51화 (51/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51화

“여기, 이쪽부터 할까?”

무대 왼쪽에 선 이상상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서 있는 휘건을 가리켰다. 코로 심호흡을 크게 한 휘건이 눈을 반짝이며 객석을 훑었다. 언제 이렇게 데뷔까지 다다른 건지 감회가 새로워 보였다.

“안녕하세요, 와인의 메인 댄서 박휘건입니다.”

휘건의 인사가 끝나자 그를 최애로 점찍은 사람들이 손바닥이 터져라 박수치며 함성을 내질렀다. SNS 반응을 살펴보니 휘건은 주로 20대 중반 이상의 누나 팬들이 많았는데, 요란하고 소란스럽게 덕질하며 내 새끼의 잘남을 널리 이롭게 알리는 데 혈안이 된 타입 같았다. 마치 영업사원처럼 W.A.IN의 좋은 모습만 꾹꾹 눌러 담은 글을 온갖 커뮤니티에 나르는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와인의 유일한 이중국적자, 차율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소!”

이번엔 차율이 반듯한 소개와 함께 냅다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강문과 약속한 뒤로 공적인 자리에선 차츰 사라지나 싶던 사극 말투가 긴장한 탓인지 마지막에 조금 튀어나와버렸지만, 본인은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익숙한 일인 양 태연하게 양쪽에서 팔을 잡고 벌떡 일으켜 세우는 휘건과 강문의 모습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차율은 주로 힙스터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멤버들보다 개성 있는 팬들이 많았다. SNS엔 티저와 뮤직비디오만으로도 팬아트가 꽤 많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팬아터들 중 대부분은 최애가 차율인 것 같다.

“이중국적 얘기는 왜 해.”

무슨 상견례 자리도 아니고, 뜬금없는 국적 어필에 강문이 이마를 짚었다. 이제 저 사극 말투는 익숙해져서 그런지 문제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질린다는 듯한 강문의 표정에 팬들은 비명 섞인 폭소를 터트렸다.

“안녕하세요, 와인의 리더 강문입니다. 오늘 이렇게 저희를 보러 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많이 보여드릴테니 끝까지 잘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온 자신의 차례에, 강문은 미리 외워두었던 멘트를 숨도 쉬지 않고 내뱉고 꾸벅 인사했다. 리허설 때는 대충 인사만 했던 터라 멤버들도 멘트를 듣는 건 처음이었다. 옆에서 호재가 오오, 하고 탄성을 흘리며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강문의 팬들은 다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베푸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어쩌다 그런 사람들끼리 모였는지 모르겠지만, 오프에서 만나면 강문이 최애인 덕후들은 다들 서글서글하고 포용력이 좋았다. 벌써부터 단합이 잘 되는 걸 보면 악개(악성 개인팬)나 까빠(까면서 빠는 덕후)로 인한 내부 분열이 일어날 시 중심을 단단히 잡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리더는 리더네. 말 잘한다, 그치?”

강문은 길게 인사를 나눈 적도 없는데, 아까부터 자꾸 이상상의 말이 짧아지는 게 영 거슬렸다. 대놓고 지적할 수는 없지만, 이상상이 멤버들을 어리고 신인이라는 이유로 은근히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즈니스적 친목을 일부러 과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뭐야, 왜 갑자기 반말이야?”

“저 아저씨 누구야?”

“몰라. 진행 존나 못해.”

“아, 씨발. 친한 척 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건 그곳에 있는 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옆에 있는 덕후들과 수군대며 이상상을 욕하거나,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이 불편한 상황을 전달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이상상만 시종일관 싱글벙글이었다.

“안녕하세여. 저는 와인의 깜찍한 막내이자 멋있는 래퍼 이시찬입니다.”

“오~ 깜찍한데 멋있기까지?”

“네. 저는 가능해여.”

시찬이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오른손으로 만든 브이를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댔다. 함성소리와 함께 귀엽다며 앓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시찬은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비슷한 또래의 학생 팬들이 많았다. 보통 학생 팬들은 돈이 없는 대신 시간과 열정을 무한대로 쏟았고, 그 덕에 화력이 가장 좋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자유로워서인지 SNS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팬층이었다.

“와인에서 메인 래퍼를 맡고 있는 강호재입니다. 반갑습니다.”

마지막으로 호재가 다시 한 번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SNS에서는 벌써부터 와인을 억지로 까는, 일명 억까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럴 때마다 어디서 활동하는지도 모르겠는 호재의 팬들이 어느새 우르르 몰려와 싸우고 있었다. 호재처럼 겉으로는 점잖아 보이지만, 친해지면 재미있는 사람들 같다.

“이렇게 자기소개만 해 봐도 우리 와인 멤버들의 성격이 다 보이는 것 같네요.”

간단한 소개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쇼케이스가 시작되었다. 첫 인터뷰 시간은 개인적인 질문보다는 그룹이나 앨범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 공식 기사로 쓰기 좋은 내용들이라, 거의 기자들에게 던져주기 위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한 번씩 버벅대는 구간이 있기는 했지만, 미리 연습했던 대로 큰 문제없이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이상상도 돌발 질문을 던지지는 않아 안심했다.

“그럼 이번 앨범에서 타이틀을 제외하고 가장 추천 드리고 싶은 곡은 뭐가 있을까요? 강문 씨가 한번 소개드려볼까요?”

“모든 곡이 다 좋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6번 트랙인 ‘Neverland’를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오오…… 이유가 뭐죠?”

질문에 대답하기 전 강문이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여 오른편에 서 있는 휘건을 슬쩍 쳐다보았다. 대답을 듣느라 강문을 보고 있던 휘건이 왜 갑자기 저를 보냐며 눈썹을 찡긋거렸다.

“이 곡 중간에 댄스브레이크가 있는데, 저희 메인 댄서인 휘건 씨가 굉장히 열심히 춤을 추시거든요. 팬 분들도 좋아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타이틀곡 안무도 우리 강문 씨가 ‘박휘건이 센터가 아니면 안 된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해서 한번 수정이 됐다고 하던데, 두 분 사이가 참 좋으신가 봐요?”

“그냥, 뭐. 누가 봐도 잘생겼잖아요. 제가 잘생긴 사람에 좀 약하거든요.”

강문의 대답에 두 사람을 같이 엮어서 파는 덕후들, ‘뿌뿌즈’의 팬덤이 객석에서 자지러질 듯 소리 질렀다. 실시간으로 현장 소식을 전하던 SNS 계정들도 난리가 났다. 흡사 파티라도 열린 분위기였다.

산삼뿌리 @healthy_ssbr

잘생긴 사람에 약하거든요…… 드르륵 탁…… 잘생긴 사람에 약하거든요…… 드르륵 탁…… 잘생긴 사람에 약하거든요…… 드르륵 탁…… 잘생긴 사람에 약하거든요…… 드르륵 탁…… 잘생긴 사람에 약하거든요…… 드르륵 탁…… 잘생긴 사람에 약하거든요

빠쉐 @dabbushow

데뷔 쇼케가 아니라 결혼식이었다니

문토끼 @moonlight_rabbit

얘들아 나 축의금도 못 냈는데;;; 진짜 너무 당황스럽고 감사하다;;;;

감빵순 @bbanggams

엄마 내가 드디어 되는 주식을 샀어

“이렇게까지 말하시는데 또 안 들어볼 수 없죠. 와인의 ‘Neverland’ 듣고 오겠습니다!”

이상상이 퇴장하며 무대에 불이 꺼지고, 멤버들은 재빨리 대열을 맞춰 섰다. 각자의 자리로 가며 휘건이 강문의 어깨를 팔꿈치로 툭 치고 지나갔다.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그러냐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강문이 소리 없이 피식 웃었다.

“Baby, 널 보면 부셔 눈이-“

차율이 도입부 문을 열며 무대가 시작되었다.

타이틀보다 격렬함은 덜하지만 리듬감이 중요한 곡이라 강문은 신경을 더욱 곤두세웠다. 그렇게 잘 흘러가고 있던 도중, 예기치 못한 곳에서 사고가 터졌다. 동선을 이동하다 발을 헛디뎌 미끄러질 뻔한 것이다.

하마터면 넘어지거나 발목이 삐끗할 뻔한 것을 마침 옆에 있던 휘건이 잡아주고는 원래 안무처럼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강문 역시 티는 내지 않고 속으로만 안도하고는 안무를 이어나갔다. 미니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했다면 무조건 부상을 입었겠구나 싶었다.

무대가 끝나고, 의상을 갈아입기 위해 서둘러 백스테이지로 이동했다. 상의 단추를 풀면서 대기실로 뛰어가 히든 챌린지를 할 때처럼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무선 마이크를 빼고 메이크업을 수정하느라 무대나 인터뷰가 어떠했다는 소감을 나눌 틈도 없었다. 겨우 물 한 모금으로 목만 축이고 다시 대기했다.

“괜찮냐?”

“응?”

간단한 추첨 이벤트가 진행되는 것을 인이어로 들으며 나갈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으로 스윽 다가온 휘건이 물었다. 뭘 말하는 거냐고 물으려다 조금 전 무대에서 미끄러질 뻔했던 것을 떠올렸다.

“아아, 덕분에 괜찮지. 나 뒤통수 깨질 뻔 했잖아.”

일부러 더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뒤통수를 살살 문질렀다. 순발력 좋다며 웃었더니 휘건이 덩달아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또 왜 이리 근사해 보이는지. 정신을 차리려 양손으로 뺨을 가볍게 툭툭 쳤다. 휘건의 얼굴만 보면 사리분별을 못하게 되는 스스로에게 어이가 없었다.

“왜? 긴장 돼?”

“아니, 뭐…… 그것도 그렇고.”

네 웃는 얼굴만 보면 퀘스트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키스나 갈기고 싶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

강문이 입맛을 쩝 다시며 대충 말을 얼버무리는데, 곧 나가야 한다는 대기 사인이 떨어졌다.

잠시 후 이상상의 멘트와 함께 순서대로 대열을 맞춰 무대에 올라 리허설 때처럼 나란히 놓인 의자에 차례로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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