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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56화 (56/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56화

“내가 뭐라고, 참…….”

처음엔 그저 휘건의 마음을 잘 이용해 두 사람의 관계성을 끌어 올려, 성공적인 데뷔를 위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일으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과연 그게 맞는 선택이었을까 하고 후회가 되었다.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파렴치한 몹쓸 놈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돌아갈 날이 머지않아서 그런지 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에이, 몰라.”

강문이 머리를 가볍게 흔들며 생각을 떨쳐냈다. 첫 음방과 팬 사인회까지 잘 마무리하고 나면 어느 정도 퀘스트가 원하는 ‘망하지 않는다’의 조건에도 충족할 테니, 돌아갈 준비에만 집중해도 모자랐다.

저 역시 현실 세계로 돌아가면 해결하고 수습해야 할 일들이 분명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것이다. 교통사고가 나던 그 날에 시간이 멈춰 있다면 좋겠지만, 똑같이 몇 주 혹은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을 수도 있으니까.

“어우, 사람 봐. 바글바글하네.”

“저기 있는 이들은 전부 누구의 팬이오?”

“오늘 출연진들 팬 아닐까? ALN도 오늘 컴백이던데.”

“다들 새벽부터 고생이 많네……. 뭔가 부럽다. 언젠간 우리도 저렇게 기다리는 팬들이 생기겠지?”

방송국 근처에 다다르니 주차장 입구 쪽에 우르르 몰려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모습이 신기한 듯 호재와 차율이 창문에 딱 달라붙어 바깥을 살펴보았다. 커다란 대포 카메라를 들고 대기 중인 기자와 찍덕들, 그리고 그들을 통제하고 있는 경호원들을 보니 새삼 정말 연예인이 되었구나 싶어 더 긴장되었다.

어차피 대기실에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을 거라 머리엔 신경을 못 썼는데, 후드티를 입거나 모자라도 가지고 올걸 그랬나 하고 조금 후회되었다. 마스크라도 챙겨서 그나마 다행이다.

“저기 문 보이지? 내리면 곧장 저기로 직진해서 들어가.”

차에서 내리기 전, 성수가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 후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얼른 인사해야지, 하고 신이 나서 안전벨트를 풀던 시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인사하면 안 돼?”

“인사 하고 있을 여유가 어디 있어? 늦었어, 우리.”

“아하…… 넵.”

빠르게 수긍한 시찬이 머쓱하게 끄덕이며 조금 아쉬운 듯 입맛을 쩝 다셨다. 호재야 늘 그렇지만, 그동안의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오늘은 유난히 시찬도 잠에서 깨기 힘들어 했다. 제 탓도 있기에 뭐라 할 말이 없는 표정으로 입술만 삐죽였다.

마스크를 쓰고 내릴 준비가 되자 성수가 신호를 보내고, 바깥에서 경호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차례로 내린 멤버들은 성수가 당부했던 것처럼 곧바로 후문으로 향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슬쩍슬쩍 눈인사를 했다. 캄캄한 밤도 아닌데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가 정신없이 번쩍거리고, 카메라 셔터 소리가 귀를 때렸다. 첫 무대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응원을 들으며 건물로 들어서 대기실을 찾아 나섰다.

“이게…… 맞아? 우리 오늘 첫방인데?”

“왜?”

많은 대기실 중 ‘W.A.IN 님’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은 문 앞에서 강문이 중얼거리자 차율이 왜 그러냐며 물었다. 강문은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예전에 아이돌들이 나오는 토크 프로그램에서, 보통 신인은 여럿이서 공용 대기실을 사용하는 게 관례라고 하는 걸 본 적 있다. 출연진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인지도와 연차가 있는 가수들부터 우선 배분해도 대기실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탓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막 데뷔한 신인, 그것도 오늘 처음으로 생방송 무대에 오르는 그룹에게 단독 대기실을 내어 주다니. 아무리 슈퍼 루키라고 해도 너무 과한 특별대우인 거 아닐까? 업계에서 유명한 프로듀서가 키운 그룹도 아니고, 누구나 다 알만한 대형 기획사 소속도 아닌데. 아무리 게임 속 주인공이라지만 나쁘게 오해한다면 회사가 로비라도 하는 거 아니냐고 뒷말이 나올 여지가 있을 것 같다.

“조심해야겠네…….”

데뷔만 잘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언제든 그룹에 위해가 될 만한 소문이 퍼질 수 있으니,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퀘스트 실패를 막고 무사히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깜찍이들 왔어?”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예한과 스텝들이 메이크업 박스를 열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서둘러 의상을 갈아입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았다. 이번 의상은 자켓 촬영과 쇼케이스 때와는 달리 댄디한 캠퍼스 룩이었다.

“의상 예쁘지? 곡이랑도 잘 어울릴 거야.”

과연 예한의 말이 딱 맞았다. 본방에서는 타이틀인 ‘Magnet’을, 사전 녹화는 강문이 서브타이틀로 밀었던 ‘Neverland’를 선보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몽환적인 비트와 중반부 댄스 브레이크 구간에 있는 휘건의 독무를 생각하면 이렇게 깔끔하면서도 포인트가 있는 세련된 의상이 잘 어울릴 것이다.

그리고 강문의 예상대로 쇼케이스에서 타이틀 만큼이나 화제가 된 무대는 ‘Neverland’ 무대였다. 촬영이 비공식적으로 허용된 덕에 SNS와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 직찍과 직캠이 쏟아졌고, 그로 인한 유입도 많이 늘었다.

현재 눈에 보이는 가장 큰 개인 팬덤은 역시 휘건의 팬들이었다.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돌아보게 만들 미모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강문은 자식새끼 잘 키운 부모처럼 괜히 뿌듯해졌다.

“마지막 한 번만 더 갈게요.”

“네!”

한 곡만 촬영하기에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사전 녹화는 카메라 동선을 비롯해 이것저것 미리 맞춰 보느라 리허설과 녹화가 꽤 여러 번 진행되었다. 그래도 미리 방청 신청을 받아 당첨된 팬들이 응원해주어서 조금 긴장이 덜 되었다. 음악 방송 녹화는 처음이지만, 그래도 팬들은 쇼케이스 이후로 두 번째 만나는 거니까.

한 번만 추기에도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안무를 여러 번 연속해서 춰대니 이제 슬슬 한계다 싶을 때쯤 녹화가 끝났다. 감독과 스텝들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팬들에게 손 인사를 하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힘들어서 몸이 축축 늘어졌지만 최대한 티내지 않고 예쁘게 생글생글 웃었다.

리허설부터 녹화까지 정신없이 휘몰아치느라 팬들과 많은 대화를 주고받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 동안 응원법까지 야무지게 외워 새벽부터 달려온 팬들에게 고마웠다. 온전한 내 편인라고 생각하니 생각보다 더 많이 의지가 되었다.

“우리 이제 뭐 해?”

대기실로 돌아와 대충 땀을 닦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휘건이 성수에게 물었다.

“대기실에서 좀 있다가 밥 먹고 쭉 대기해야지.”

“언제까지?”

“본방 녹화 시작할 때까지.”

성수의 말에 시계를 한번 본 차율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떡하니 벌렸다.

“5시간이 넘게 남았는데…….”

그래도 어쩌겠냐는 듯 성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차율이 망연자실하게 대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답답해서 잠깐 나갔다 오면 안 되냐는 제안도 당연히 기각되었다.

“그럼 좀 자도 돼? 나 너무 피곤한데.”

호재가 어느새 무거워진 눈꺼풀을 힘겹게 끔뻑거리며 물었다. 어차피 본방 올라가기 전에 헤어와 메이크업을 한번 수정해야 하니, 피로라도 풀라며 성수가 미리 챙겨온 매트를 바닥에 깔아주었다. 소파 옆 구석 바닥에 담요를 두르고 누운 호재가 어째 좀 안쓰러워 보였다. 요즘 뭔가 공부한다며 평소보다 더 늦게 잠들더니, 그 탓인지 더 피곤한 듯했다.

“호재는 나중에 시킬 거니까, 너네부터 해.”

“뭔데?”

되물어오는 휘건에게 성수가 앨범 여러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옆엔 출연진 리스트가 적힌 종이도 같이 있었다. 강문은 단번에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알아챘다.

“사인 정성스럽게 잘 하고, 멘트도 여기 준비해놨으니까 PS도 또박또박 예쁘게 써.”

신인의 필수 코스, 대기실 투어. 슈퍼 루키든 아니든 신인이라면 무조건 본방 녹화가 시작되기 전, 대기실을 돌며 선배 가수와 스탭들에게 앨범을 선물하고 인사를 다니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잘 부탁드린다며 얼굴 도장도 찍고, 덕담도 한 마디씩 들으며 인지도와 친밀감을 쌓아야지.

“원래 이렇게 다 직접 해서 주는 거야?”

“당연하지. 그대는 대충 프린트 된 성의 없는 걸 받고 싶은가?”

“절대 아니지. 존나 열심히 할 거야. 내가 제일 열심히 할 거야!”

“둘 다 앉아서 펜이나 들어. 휘건이는 벌써 시작했잖아.”

어차피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 자고 있는 호재를 제외하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천천히 앨범에 사인했다. 금방 하겠지 싶었는데, 피디나 스텝들에게 나눠줄 것까지 하니 개수가 제법 많았다. 나중에 팬 사인회를 하면 이보다 더할 텐데, 그땐 정말 팔에 감각이 없어지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되었다.

“도시락 먹고 해, 이 복 받은 녀석들아.”

열심히 앨범에 사인을 하다 지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성수가 커다란 박스를 들고 대기실로 들어왔다. 박스에는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W.A.IN 님’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평소엔 주문하거나 직접 구매해 온 도시락을 종이 가방에 담아 가져왔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뭐야?”

“뭐긴, 도시락 서포트지. 팬들이 너네 잘 부탁한다고 스태프들 것까지 전부 준비했어. 진짜 감사해야 돼, 짜식들아.”

휘건의 물음에 앨범을 옆으로 잘 치우고 박스를 열며 성수가 대답했다. 박스 속에는 리본으로 예쁘게 포장된 3단 도시락이 들어있었는데,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 도시락 옆에는 밥과 간식, 음료가 개별 포장 되어 있었다. 각 용기마다 예쁘게 디자인 된 멤버들의 이름까지 붙어 있어 더욱 정성이 가득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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