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65화 (65/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65화

사전 녹화와 생방송이 모두 끝나고 난 뒤 서둘러 다음 스케줄 장소로 이동했다. 후속곡 활동을 위해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려면 일정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스튜디오 촬영으로 진행되었는데, 아기자기하고 아늑하게 꾸며진 거실 공간이 주 배경이었다.

후속곡은 쇼케이스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던 ‘피넛 버터 젤리’라는 곡으로 선정되었다. 타이틀인 ‘마그넷’보다 더 포근하고 귀여운 분위기의 곡이라, 친근함을 어필하기 좋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인지 스튜디오 컨셉도 봄날의 햇살을 가득 머금은 듯 화사하고 따뜻했다.

“와, 이 소파 진짜 푹신푹신하다. 우리 숙소도 이걸로 바꾸면 아니 되오?”

“야, 차율.”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도록 배치된 소파가 마음에 드는 듯 손바닥으로 팡팡 두드리는 차율을 호재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불렀다.

사람들이 많을 때는 조심하기로 했는데, 또 튀어나와 버린 말투 때문이라 생각한 차율이 입을 합 다물고는 불쌍한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제 앞에 선 호재를 올려다보았다.

“꿈은 크게 가져. 소파 말고 숙소를 바꿔달라고 해야지.”

하지만 호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라, 옆에서 소품으로 놓인 곰인형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던 강문이 저도 모르게 풉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씨, 무슨 그런 말을 이렇게 무게 잡고 해?”

“재밌잖아.”

가슴을 부여잡고 발을 동동 구르는 차율을 보며 호재가 재밌다는 듯 낄낄거렸다.

어느새 의상 피팅과 메이크업을 마치고 돌아온 휘건과 시찬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만 데구르르 굴렸다.

“컨디션은 좀 어때?”

“괜찮다니까 자꾸 그러네.”

“안 괜찮아 보여서 그러거든요?”

확실히 아침보다는 좀 덜하긴 했지만, 여전히 휘건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피곤하다기보단 생각이 많아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프로답지 못하다고 잠깐 생각했던 게 미안해질 정도로 스케줄은 또 너무 잘 소화해내서, 강문만 계속 휘건에게 신경 쓰는 중이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입술만 삐죽거리고 있는데, 휘건이 피식 가볍게 웃고는 아직 메이크업을 받지 않은 강문의 양 볼을 손가락으로 주욱 잡아당겼다. 휘건의 손을 따라 뽀얀 찹쌀떡처럼 잘도 늘어났다.

“넌 걱정이 너무 많아.”

“으에?”

입술까지 길게 늘어나 있어 제대로 발음이 되지 않아 우스운 소리만 튀어 나왔다. 그게 또 재밌는 모양인지 휘건이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웃었다. 딱 강문이 귀여워서 씹어 먹고 싶을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손을 떼고 잡아당겼던 자리를 슬슬 문질러주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평소라면 ‘으이구 저 팔불출, 내가 숨만 쉬어도 귀엽지’ 하며 넘어갔겠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별거 아닌 행동에도 마음이 쓰였다. 어제 있었던 일이 뇌리에 꽤 선명하게 박힌 건지, 휘건이 뭘 해도 어제의 그, 안쓰럽게 구깃구깃 안겨 오던 모습과 겹쳐 보였다.

휘건은 강문 못지않게 눈치가 빠르고 감이 좋았다. 본능적으로 이별을 직감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곧 돌아간다는 설렘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얼굴에서 다 티가 났으리라. 휘건이라면 충분히 알아채고도 남았다.

“저기, 휘건아.”

“응?”

밤잠을 설친 이유와는 별개로 참 여러 모로 신경 쓰여 뭐라도 한 마디 해 주려 했는데, 막상 부르고 보니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팬들이 나보다 더 큰 사랑을 줄 거야’라고 말해도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고, 그렇다고 ‘불안해 할 필요 없어’라거나 ‘나 어디 안 가’라는 거짓말을 할 수도 없으니까.

“그냥……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그러니 결국 싱겁고 심심한 말 하나만 툭 튀어나오는 게 고작이었다. 제 욕심으로 이 이상 깊게 관여했다간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 혼자 고민해 봐야 해결되지 않을 문제로 속을 썩이지 않기로 분명 다짐했는데, 이상하게 휘건의 앞에서는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너도.”

휘건의 손바닥이 강문의 정수리 위에 툭 얹어졌다. 그게 왜 그렇게 울컥하는지, 코끝이 시큰해져 괜히 딴청 부리며 자리를 피했다.

마냥 후련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무엇이든 이별을 준비하는 건 참 유쾌하지 않았다.

* * *

문토끼 @moonlight_rabbit

칭구들아(0명) 이거 뭐임? 진짜임? 아직 피셜 뜬건 없는데 우리집앞에 현수막 붙어있음

산삼뿌리 @healthy_ssbr

헐?? 토끼님 거기 어디에요??

문토끼 @moonlight_rabbit

뎀 드릴게요!

휘파람총 @gnlqkfkachd

애들 지방행사 가는거같아서 일단 냅다 숙소부터 예약함^^;;;;

율무주전자 @yoolintheteapot

스트 공지내놔 맡겨놨으니까

빠쉐 @dabbushow

여윽시 구멍가게 클라스 공식보다 비공식 현수막이 더 빠르다!

“최 실장, 이게 뭐지?”

“네?”

“우리 여기랑 계약서 썼던가?”

“……아니요?”

첫 주 음악 방송이 전부 끝나고, 슬슬 행사와 예능 등 다른 스케줄이 잡히던 도중 일이 터졌다. 아직 구두로 계약 논의 중이던 지방의 한 행사가 홍보 현수막에 W.A.IN의 이름부터 냅다 박아걸어 버린 것이다. 성수는 머리 끝까지 차오른 화를 겨우 억누르며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여쭈어도 될까요?”

처음 출연 계약을 논의할 때부터 평균 출연료의 반도 안 되는 금액으로 요구하며 후려치는 통에 어이가 없었는데, 이렇게 치사한 수를 쓸 줄은 몰랐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의 신인이라고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 안 그래도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저희 홍보팀 직원과 의사소통에 착오가 좀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아, 그래요?”

이미 일은 저질러 놓고 뻔뻔한 태도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성수는 사회생활에 도가 튼 사람이었다. 소리 없이 숨을 후후 뱉으며 좋게 얘기하려 했다. 빈말이나마 사과라도 해 오면 다시 천천히 계약 내용을 논의해보자고 할 참이었다. 하지만 휴대폰 너머의 행사 담당자는 생각보다 더 낯이 두꺼웠다.

-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오는 걸로 하시죠? 어차피 구두로 계약 다 된 거나 마찬가지인데.

뻔뻔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성수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아하하…… 저기, 과장님?”

- 네, 말씀하세요.

“그…… 실수로 벌어진 일인데, 일단 사과부터 하시는 게 먼저 아닐까요? 그리고 출연료 부분에서 아직 협의가 안 된 걸로 기억하는데요.”

- 아…….

정곡을 찌른 성수의 말에 상대방이 떨떠름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잠시간 짧은 침묵이 흐른 뒤, 휴대폰 너머로 한숨 소리가 길게 들려 왔다.

- 예, 뭐. 죄송합니다. 어쨌든 오실 거죠? 이미 다들 출연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와…… 사람이 이렇게까지 경우가 없을 수도 있구나.

한 편으로 경이로운 마음까지 들 정도의 태도에 성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부 회의 후 다시 논의하는 걸로 마무리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미처 끊기지 않은 틈사이로 ‘더럽게 비싸게 구네’라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대표님, 얘네 진짜 안 되겠는데요? 회사 작고 신인이라고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처음부터 출연료 후려치는 것도 맘에 안 들었어요.”

“놔 둬. 이게 다 우리 애들이 잘난 탓 아니겠어? 너무 열 내지 마.”

“대표님은 화 안 나세요?”

“왜 안나? 내가 예의 없는 것들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화가 난 것 치고는 너무나도 평온한 얼굴로 휴대폰을 툭툭 두드리던 대표가 허허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루살이들은 내일을 볼 줄 몰라. 출연료 그냥 원하는 대로 계약 해버리고, 좀 지켜봐. 누구한테 더 이득일지.”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묘하게 자신감 넘쳐서, 성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돌 산업에 좀 많이 무지하고 취향이 특이하기는 하지만, 경영 능력은 믿어도 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마지못해 출연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직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기사가 올라왔다. 정확히 대표의 예상대로였다.

[단독] 호장 꽃 축제, 위기를 기회로? W.A.IN 출연 소식에 관련 업계 호평

[쿠쿠뉴스 김덕순 기자] 신인 아이돌 ‘W.A.IN’의 소속사 에스티엔터테인먼트(ST 엔터테인먼트)가 내달 호장에서 열리는 ‘호장 꽃 축제’ 출연 소식을 전했다. (사진 출처 = 에스티엔터테인먼트, 개인 SNS)

지난 11일 SNS를 통해 비공식으로 출연 여부가 유출되었을 당시 아직 구두로 계약을 논의 중일 뿐이라며 부인했으나, 많은 팬들이 ‘W.A.IN’을 만나기 위해 기대하고 있고 또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결국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의리가 돋보인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등 호평을 보냈다.

한편, ‘호장 꽃 축제’는 몇 차례 비슷한 이슈로 논란이 된 전적이 있어 더 눈길을 끌고 있다. 이 같은 논란 속에서 출연을 결정한 것은 ‘ALN’ 이후로 ‘W.A.IN’이 두 번째이다.

김덕순 기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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