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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67화 (67/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67화

“형. 나 라방 켜도 돼?”

메이크업까지 다 마치고 난 뒤 가만히 앉아 있기도 좀이 쑤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을까 고민하던 강문이 성수에게 넌지시 물었다. 별다르게 사고칠 거리는 없어 보여 흔쾌히 허락하자 강문이 들고 왔던 가방 속에서 셀카봉을 꺼냈다.

“그런 걸 들고 다녀?”

“이 정도는 필수품이지. 이거 펼치면 삼각대로도 쓸 수 있어.”

재빠르게 휴대폰을 셀카봉에 끼운 강문이 짜잔 하는 효과음을 내며 호재에게 자랑스레 내밀었다.

“이거 봐. 여기 손잡이 버튼 누르면 사진도 바로 찍힌다?”

호재 옆에 나란히 선 강문이 카메라 어플을 켜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역시 본판이 받쳐줘서 그런지 아무렇게나 막 찍어도 인물이 살았다. 휘건이 지독하게 제 취향이어서 그렇지, 멤버들 모두 객관적으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실물보다는 못하지만, 호재의 뚜렷한 이목구비는 휴대폰 카메라에서도 충분히 빛을 발했다. 이젠 익숙해진 제 뽀얀 얼굴도 그렇고. 그냥 시범 삼아 한 번 찍어본 것 치고는 결과물이 꽤 마음에 들었다.

“오. 잘 나왔다. 이거 올려도 돼?”

“그러든지.”

별스타에 올릴지 아니면 프롬 게시판에 올리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멀찍이 앉아서 보고 있던 차율과 시찬이 스윽 일어나더니 두 사람의 뒤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도! 나도 찍을래!”

“소인도 껴주시오.”

셀카봉을 사용하니 확실히 사람이 많아도 구도를 잡기 편했다. 이리 저리 각도를 바꿔 가며 사진 찍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잠깐 자리를 비웠던 휘건이 어느새 뒤에서 스윽 나타났다.

“니들 진짜 이러기냐? 잠깐 통화하고 온 사이에 나만 빼고 이러고 있어?”

휘건이 굉장히 서운하다는 말투로 멤버들을 나무랐다. 휘건은 혼자 밥 먹는 걸 싫어하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 혼자만 동떨어져 있는 걸 굉장히 불편해 했다. 뭐든 마이웨이일 것처럼 보이는 외모와 참 어울리지 않는 특성이라 더 귀여웠다.

“인생은 타이밍이라오.”

“타이밍 한번 지독하네.”

투덜거리느라 삐죽 튀어나온 입술이 어찌나 귀여운지, 강문은 저도 모르게 끄응 앓는 소리를 낼 뻔한 걸 겨우 참았다. 이 정도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꽤 중증이었다.

“누구랑 통화했는데?”

“알아서 뭐 하게?”

“안 알려주면 사진 안 찍어 줄 거지롱.”

“뭐?”

시찬의 말도 안 되는 억지에 휘건이 어이없어하며 입을 떡 벌렸다. ‘사진은 강문이 찍는데 왜 네가 생색이냐’며 진지하게 반박하는 게 우스워 입술을 꾹꾹 씹으며 지켜보다 퍼뜩 원래 하려던 것을 기억해 냈다.

“아, 그만! 나 라방 켜려고 한 거란 말이야. 사진 찍다가 시간 다 가겠어.”

이러다간 잡담만 떠들다 시간이 다 가버릴 것 같아 강문이 서둘러 멤버들을 조용히 정리했다. ‘난 찍지도 못했는데’하고 중얼거리는 게 들려 뒤를 홱 돌아보자 그만 하라는 뜻으로 알아들은 휘건이 손으로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W.A.IN 채널에서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고, 조금 기다리니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각자 아이디 앞에 조그맣게 국기 아이콘이 붙어 있었는데, 외국인들도 꽤 많이 있어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로웠다.

“안녕하세요~ 주말인데 다들 뭐 하고 계세요?”

질문을 던지기 무섭게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 창을 읽어내기 아직은 좀 서툴렀지만, 그래도 저마다 한 마디씩 대답하며 일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꼭 재잘거리는 참새들을 보는 것 같아서 귀엽기도 하고.

“다들 열심히 잘 보내고 계시네요. 저희는 오늘 축제 축하공연이 있어서 호장시에 와 있어요.”

“꽃이 엄청 많아요!”

호재와 시찬이 처음 공원에 도착해서 본 녹음이 우거진 풍경과 꽃으로 장식된 무대에 대한 소감을 늘어놓았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선선해서 무대가 더 기대된다는 말도 덧붙었다.

무대 얘기가 나오니 또 강문은 리허설 때 보았던 대포 카메라를 떠올렸다. 리허설이 끝난 후 도시락을 먹으며 잠깐 SNS를 서치했을 때, 그새 프리뷰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들을 찍으러 온 카메라라고 짐작하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빠를 줄은 몰랐던 터라 신기했다.

“아, 팬 분들 어떻게 그렇게 빨라요? 아까 리허설에서 카메라 보고 손 흔들었는데, 벌써 올리셨더라구요. 진짜 신기했어요.”

“헉. 왜 형만 봐? 나도 궁금한데.”

“그러게 민첩한 하루 보냈어야지.”

매번 차율의 입에서 나오던 ‘민첩한 하루’를 그대로 돌려주자 차율이 한방 먹었다는 듯 웃으며 강문을 팔꿈치로 툭 쳤다.

[우리 문이 서치왕이구나;;;;]

[민첩한 하루 유행어야?ㅋㅋㅋㅋㅋ]

[써방 열심히해야겠다]

[오빠 저 오늘 생일이에요]

[헐 문리버님 프리뷰 봤나봐]

[미친 오늘 의상 레전드]

각자 떠들기 바쁜 채팅 창에서 의상 얘기를 캐치해 낸 강문이 팔을 쭉 뻗으며 옷이 더 잘 보이도록 해 주었다. 하늘거리는 블라우스가 팔을 따라 예쁘게 흘러내렸다.

“의상 예쁘죠? 오늘 날씨도 좋아서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선녀 옷 같소.”

“여기 보시면 이렇게 디테일도 있는데…….”

[근데 차율 말투 왜저럼?]

[차율 쇼케때부터 계속 컨셉질하네ㅋㅋ]

[욕하는것도 아니고 뭔상관]

[차율 사랑해]

[차율 사랑해]

[님들 애들이 못보게 채팅 좀 올려주세요]

[얘들아 사랑해]

스치듯 지나간 차율의 말 한마디에 채팅방이 작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느 판이나 악성 개인 팬들이나 염탐하러 다니는 안티들이 있기 마련이니, W.A.IN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행히 강문을 비롯한 멤버들은 의상에 대해 설명하느라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휘건이 형 오늘 컨디션 안 좋냐고요?”

한창 스케줄이 빡빡해질 시기이다 보니 팬들은 늘 멤버들의 컨디션에 신경 썼다. 평소보다 텐션이 조금 떨어져 보이는 휘건의 상태를 걱정하는 채팅을 발견한 시찬이 강문에게서 셀카봉을 빼앗아 들더니 휘건에게 들이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나름대로 열심히 리액션을 하고 있던 휘건이 놀란 듯 한쪽 눈썹을 살짝 까딱였다.

“지금 자기만 사진 못 찍었다고 삐졌어요.”

“내가 언제 삐졌다고…….”

“다 같이 셀카 찍고 놀고 있는데 혼자만 나갔다 와서 못 찍었거든요. 나중에 문이 형이 별스타에 올린대요.”

“내 말 듣고 있기는 해?”

시찬과 휘건이 삐졌네 안 삐졌네 하며 투닥거리는 사이 이번엔 차율이 시찬의 손에 들려 있던 셀카봉을 낚아채자 화면에 차율과 호재의 얼굴이 비쳤다.

“저희 후속곡 뮤비 촬영할 때 소품으로 쓰인 소파가 엄청 편했는데, 제가 숙소 소파도 그걸로 바꿔 달라고 하자니까 호재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소파 말고 숙소를 바꿔 달라 하라는 거 있죠.”

“원래 꿈은 크게 가지라고 배웠어.”

“너무 큰 거 아니야?”

차율과 호재의 상황도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정말로 숙소를 이사하고 나면 그 뒤엔 또 어떤 큰 꿈을 가지는 게 좋은지 진지하게 토론하는데, 그 광경을 보고 있는 강문은 그저 어이가 없었다.

[얘들아 지금 어디를 비추고 있는 거니]

[벽이 참 멋있네요]

[이게뭐냐곸ㅋㅋㅋㅋㅋ 자기들끼리 떠들기 바쁜데 이게 이렇게 귀여울 일???]

순식간에 각자 와글거리는 멤버들을 멍하니 보고 있던 강문이 자꾸만 바닥으로 향하는 셀카봉을 퍼뜩 받아 들었다. 아직 이런 팬 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금세 딴 길로 새서 자기들끼리 떠들기 바쁜 게 참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좋은 건가 싶기도 했다.

“저기, 얘들아?”

아련하게 불러보아도 상황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강문은 이제 포기하고 허허허 웃기만 했다.

이 귀여운 짜식들. 방송 끄고 나면 꿀밤을 한 대씩 먹여 줘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 집단적 독백 머선일이곸ㅋㅋㅋㅋㅋㅋㅋ]

[존나 와장창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이 표정봨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

[뭐지 나 강경 호찬파였는데 호율 너무맛있잖아?]

[시찬이 막내온탑 아닐 리 X]

강문은 투닥거리기 바쁜 멤버들을 배경 삼아 카메라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예의 바른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애들이 참 밝아요. 하하하.”

해탈한 듯한 강문의 목소리에 지켜보고 있던 팬들이 잔뜩 귀여워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문앜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 귀여워 어뜨케]

[우리 리더 고생한닼ㅋㅋㅋㅋㅋㅋㅋ]

[극한직업 와인리더ㅋㅋㅋㅋㅋㅋ]

[이와중에 휘건이가 시찬이 볼따구 잡아당기고 있음ㅋㅋㅋㅋ커여웤ㅋㅋㅋㅋ]

혹시라도 안 좋게 보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팬들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아 안도했다. 그래도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 서둘러 방송을 마무리했다.

“너무 정신없는 모습만 보여드린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저희는 그럼 좀 있다가 축제에서 만나요. 안녕! 감사해요!”

혼자 마무리 인사까지 마친 뒤 방송을 끄고 나서야 슬슬 멤버들이 눈치를 보며 강문의 곁으로 모였다. 상당히 머쓱해 보이는 표정들에 헛웃음이 나왔다.

강문은 각자 한 대씩 꿀밤을 먹이는 대신 눈을 흘기는 것으로 타협했다. 자연스러운 것도 좋지만 다음부턴 좀 조심하자는 말에 멤버들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율무주전자 @yoolintheteapot

이때 바키건 표정 완전 찐텐ㅋㅋㅋㅋㅋㅋㅋ

(휘건이 차율 째려보는 표정.jpg)

산삼뿌리 @healthy_ssbr

이거 완전 이 짤 아니냨ㅋㅋㅋㅋㅋ

(강문 해탈한 표정.jpg)

(폭발하는 자동차를 배경으로 웃으며 찍은 해외 배우 사진.jpg)

그리고 강문은 몰랐지만, 이미 SNS에서는 W.A.IN의 이런 엉망진창 모먼트를 ‘와장창’이라고 부르며 짤을 생성해내고 있었다. 이는 곧 머글들에게도 퍼져 소소하게 입소문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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