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74화
“아니, 알게 된지 한참 지났는데 이제서야 서운해?”
멍하니 동공만 흔들고 있던 휘건이 퍼뜩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강문에게 되물었다. 예리하게 찔러 오는 질문에 강문이 윽, 하는 소리를 내며 가슴께를 부여잡고 눈을 흘겼다.
물론 예능 촬영 때 작곡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꽤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그동안 물어볼 타이밍이 없었던 것뿐이다. 왜 현실 세계로 돌아가지 않는지 고민하느라 정신이 없었기도 하고.
“됐어. 이제서야 서운해서 정말 죄송하게 됐네요. 문이가 그렇죠, 뭐. 문송합니다~”
“그 말투 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문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잔뜩 토라진 티를 내는 모습에 허, 하고 헛웃음을 흘린 휘건의 입꼬리가 묘하게 씰룩거렸다.
“……둘이 뭐 사랑싸움 해? 시찬이는 갑자기 불청객이 되어 버렸어요. 시찬이 들어갈 거야.”
못 볼꼴을 봤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시찬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우우우 하고 야유하며 방으로 사라지자 휘건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으며 굳게 닫힌 방문을 힐긋거렸다.
“…….”
조용히 시찬이 사라진 방향과 강문을 번갈아 쳐다보던 휘건이 부드럽게 팔목을 그러쥐었다.
“……뭐야?”
“이리와 봐.”
강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휘건의 손길에 끌려갔다. 목적지는 제 방이었고, 강문까지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휘건이 서둘러 문을 잠갔다.
“갑자기 왜…….”
말이 이어지는 것보다 입술이 부딪히는 게 더 빨랐다. 성급하게 맞붙어 온 입술이 금세 열을 머금고 불덩이라도 삼킨 것처럼 뜨거워졌다. 이렇게 안달 내길 바라고 심술을 부린 건 아닌데, 이번엔 또 어느 포인트에서 마음이 동한 건지 궁금했다.
“으응…….”
그래도 늘 그렇듯 휘건의 이런 반응이 싫지 않았다. 툭 건드리면 건드리는 대로 솔직하게 구는 모습이 좋았다. 항상 서투르게나마 제 감정을 곧게 표현하려 노력하는 게 참 예뻐서, 어쩔 때는 그냥 이대로 여기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놀랄 때도 있었다.
좀 더 밀착하며 목덜미를 세게 끌어안자 호흡이 더욱 깊어졌다. 부드럽게 훑어 오는 혀에 여린 점막을 넘어 온몸이 간지러웠다. 혀끝에서 심장이 뛰는 것 같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게 그렇게…… 하…… 서운했어?”
잠깐 틈이 벌어진 사이 휘건이 강문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물었다. 강문은 대답 대신 휘건의 뒷머리를 움켜쥐고 다시금 입술을 머금었다. 혀를 뽑아버릴 것처럼 깊숙이 빨아대자 휘건이 미간을 살풋 구겼다. 커다란 손이 마른 허리를 휘어 감고 제 쪽으로 좀 더 끌어당겨 안았다.
“흐…….”
휘건이 자세를 숙이고 있기는 하지만, 뻣뻣하게 들어 올려진 고개가 불편했던 강문이 저도 모르게 칭얼거리자 휘건이 기다렸다는 듯 번쩍 안아 들었다. 그 잠깐 떨어진 시간도 아쉬워 강문이 서둘러 휘건의 양 볼을 감싸고 다시 입을 맞추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에서 휘몰아쳤다.
그 감정에 정확히 이름을 붙일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제 안에서 홍수처럼 불어난 감정으로 인해 훗날 아주 많이 힘들어질 것 같다고.
“…….”
“…….”
새액 새액 숨을 고르며 두 눈동자를 마주했다. 휘건은 강문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저 심호흡만 하고는 강문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대었다.
“적응이…… 되기는 하려나…….”
“응?”
너무 작게 웅얼거려 제대로 듣지 못해 되묻자 휘건이 도리도리 고개만 저었다.
“너 진짜 큰일 나겠다. 자꾸 그렇게 귀엽게 굴래?”
“뭐래. 난 원래 귀엽거든? 어쩔 수 없어.”
강문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휘건의 머리카락을 쭉쭉 잡아당기자 휘건이 푸스스 따라 웃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어 호흡 가득 강문의 체취를 머금은 휘건이 천천히 움직여 침대로 향했다.
“작곡 공부 언제부터 했는지 궁금해?”
침대에 걸터앉으며 강문을 제 허벅지 위에 앉힌 휘건이 허리를 꼬옥 끌어안으며 물었다. 강문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렇게까지 궁금한 건 아니었지만, 저렇게 숨기고 드니 괜히 더 집요하게 굴고 싶어지는 것이다.
“쑥스러워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휘건의 손이 슬금슬금 강문의 엉덩이 쪽으로 갔다. 진지한 분위기를 잡으려다 갑자기 이게 뭔가 싶어 가만히 있던 강문이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손은 별로 쑥스러워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아하하. 들켰어?”
“이거 아주 변태 아니야? 존나 내 스타일이야.”
강문이 키득키득 웃으며 휘건의 얼굴 곳곳에 쪽 쪽 입을 맞추자 간지럽게 내리는 입술이 기분 좋은 듯 휘건이 강문을 조금 더 끌어당겨 안았다.
“그냥…….”
그렇게 가만히 서로를 안고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를 공유하다 휘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문은 휘건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네 노래 평생 듣게 해 주겠다고 했잖아, 네가.”
강문은 자신이 휘건의 마음을 이용하기 위해 던졌던 말을 떠올렸다. 연습실에서 대뜸 뽀뽀하고 도망가 방에 꽁꽁 숨은 휘건에게 저렇게 말하며 자신을 좀 도와 달라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깊이 빠져들 줄은 몰랐는데.
“그게 내가 만든 곡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
“……부담스럽게 생각하지는 마. 나도 재밌어서 하는 거지, 아니었으면 진작에 그만 뒀어.”
내가 욕심으로 내뱉은 말이, 너에겐 그렇게 큰 의미가 되었구나.
담담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아이러니하게도 귓가에 아프게 박혔다. 저를 향한 휘건의 감정을 더 이상 가볍게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아닌 강문 자신이 그렇게 만든 거였다. 당장 앞에 떨어진 보상에 눈이 멀어 누군가의 마음을 쥐고 흔들어보려 했던 대가가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되돌아왔다.
“……휘건아.”
휘건의 어깨에 기대어 나지막하게 이름을 불렀다. 달콤하기 그지없던 이름을 내뱉는 목구멍이 모래라도 낀 것처럼 까끌거렸다.
“나 많이 좋아해?”
강문은 차라리 휘건이 대답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미안할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끝까지 참 이기적이다 싶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 건지, 휘건은 말없이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 한참이나 숨을 골랐다. 그게 그 어떤 대답보다 확실해서, 하늘을 보며 쉴 새 없이 눈을 깜빡였다.
* * *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깬 휘건이 뒤척이다 손에 딱딱한 무언가가 툭 걸리는 것을 느끼고 천천히 눈을 떴다. 일어난 직후의 모습부터 찍어야 한다고 난리를 피우는 통에 머리맡에 두고 잔 브이로그 촬영용 카메라였다.
“부끄럽게, 진짜…….”
다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가, 그러다 다시 잠들면 큰일이라 뺨을 두어 번 찰싹찰싹 때리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다른 멤버들이 카메라를 분신처럼 들고 다니며 찍을 때는 마냥 웃겼는데, 막상 제 차례가 오니 썩 유쾌하지 않았다.
잠이 채 달아나지 않은 눈을 비비고는 카메라를 들어 이리 저리 살폈다. 어제 시찬이 이것저것 작동법을 알려 주기는 했는데, 손에 익지 않아 그런지 영 어색했다.
“음…… 이건가?”
누가 봐도 전원 버튼처럼 생긴 것을 꾸욱 누르자 화면이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밝아진 화면에 눈을 살짝 찌푸렸다가, 작은 화면 가득 비치는 방 안 풍경이 신기해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걸로 오늘 하루 종일 제 모습을 찍어야 한다니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깊게 심호흡을 한 휘건이 카메라 렌즈가 제 쪽으로 오도록 고쳐 잡고 액정을 돌렸다. 아무 생각 없이 요청 받은 대로 자다 깬 모습을 찍으려 한 건데, 화면에 비친 제 머리가 너무 산발이라 퍼뜩 슥슥 만져 좀 차분하게 정리만 했다.
“어…… 안녕하세요. 와인의 메인 댄서 휘…… 하아…….”
녹화 버튼을 누르고 채 한 문장도 완성하지 못하고서 고개를 푹 숙였다. 카메라에다 대고 혼자 말하는 것일 뿐인데 왜 그렇게 쑥스러운지. 강문이나 다른 멤버들, 심지어 호재까지도 뻔뻔하게 잘만 하던데, 저만 어려워하는 게 억울했다.
“후우…… 다시.”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녹화 버튼을 눌렀다. 화면 속에 비치는 얼굴이 여전히 뻣뻣했지만, 어쩔 수 없는 제 성정이지 싶었다. 자신이 잘못된 게 아니라, 오히려 데뷔한 지 몇 달 만에 익숙하게 해치우는 다른 멤버들이 대단한 거라고 애써 위로했다.
“안녕하세요, 휘건입니다. 오늘은 저희 와인의 첫 팬 사인회가 있는 날이고요, 이제 막 일어나서 얼굴이 엉망이네요. 목소리도…….”
열심히 말을 이어 가다 문득 이렇게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모습까지 과연 팬들이 좋아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팬들은 무대에서 멋있게 꾸며진 모습을 더 좋아하는 거 아닌가? 어쩌면 다른 멤버들이 저를 놀린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 찝찝해졌다.
“아무튼, 팬 사인회라니 조금 떨리네요. 이렇게 가까이서 와이너리를 보는 건 처음이라 많이 기대됩니다. 저는 이만 준비하러 가 볼게요.”
서둘러 멘트를 마무리한 뒤 녹화를 종료했다. 어쩐지 얼굴에 열이 확 오르는 것 같아 뺨에 손등을 가져다 대니 예상대로 뜨끈했다. 아이돌 생활은 퍽 적성에 맞지만, 이런 쑥스러움엔 언제쯤 적응이 될지 앞날이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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