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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76화 (76/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76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대기실에서 나온 휘건은 전에 지나가다 우연히 본,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계단 옆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조용한 곳에서 혼자 생각을 좀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하…… 어렵네.”

계단에 걸터앉은 휘건이 앓는 소리를 내며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감정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머리로는 자신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맞는 건지 이해하고 있었다. 아이돌의 본분을 떠나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곧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강문을 계속 마음에 담아 두는 게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알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잘 보내 주기 위해 멀어지는 연습을 하는 중이었지만, 그게 맘처럼 잘 되지 않았다. 여전히 눈을 보면 안고 싶고, 입술을 보면 입을 맞추고 싶었다. 저를 보며 웃을 때는 농담처럼 말했던 것처럼 정말 설 것 같았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었는지는 지금의 강문 덕분에 처음 알았다.

잘 참다가도 한 번씩 머리가 돌아버릴 때면 속으로 애국가를 1절부터 4절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불렀다.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타입은 아니라고 믿으며 살아 왔는데, 강문 앞에서는 모든 게 다 무너졌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게 그리 싫지 않다는 거다.

이래서야 강문이 사라지고 난 뒤 혼자 남겨질 삶에 적응이 되기나 할지 걱정이었다. 꼭 데이터에 ‘강문’이라는 단어 하나만 남겨진 고장난 로봇이 된 기분이었다.

「나…… 키스 하고 싶어.」

그래서일까.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에서 돌아가기까지 아직 시간이 조금 더 남았다는 걸 깨달았던 날, 당분간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는 제 모습을 보며 소름이 끼쳤다. 좋아하는 사람의 불행을 기뻐하다니, 스스로가 너무 쓰레기 같았다.

다시 생각해도 그 순간의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 너무 별로라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울 것 같은 얼굴로 물어 오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나 많이 좋아해?」

그때 휘건은 그러지 않으려 노력 중이라고 속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지금까지 노력으로 이루지 못한 게 없으니, 이번에도 꽤나 자신이 있었다. 지금 당장은 상상만으로도 죽고 싶지만, 시간이 지나면 감정도 점점 꺼져가는 불씨처럼 사그라들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번 역시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특히나 강문과는 같은 그룹 멤버라는 관계 때문에 더 어려웠다. 그냥 평범한 친구라면 거리라도 두고 지낼 수 있지, 한 집에서 부대끼며 사는 것도 모자라 하루 종일 붙어 있으니 고문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노력해야겠지.”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은 뒤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다짐이 무색하게 ‘엉덩이도 두드려 줘?’ 하고 장난스레 묻던 얼굴이 떠올라 반사적으로 이마를 찰싹찰싹 때렸다.

* * *

음악 방송 녹화가 끝나고, 바로 팬 사인회 장소로 이동했다. 방송국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소극장 홀이었는데, 사인회를 마치고 난 뒤에는 한 곡정도 무대도 예정되어 있었다.

“아직 입장 안 했으니까 잠깐 보고 와도 돼?”

팬 사인회용 의상으로 갈아입고 메이크업도 수정한 뒤 쉬고 있던 시찬이 성수에게 물었다. 딱히 문제될 건 없다고 판단한 성수가 조용히 다녀오라며 허락해 주자 마찬가지로 궁금해하던 멤버들이 나란히 통로를 통해 무대에 올랐다.

“우와…… 뭔가 신기하다.”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무대와 숫자 종이가 붙은 객석을 보며 강문이 중얼거렸다. 휘건 역시 감회가 새롭긴 마찬가지였다. 까마득하기만 했던 데뷔를 지나 이렇게 팬 사인회까지 하는 날이 오다니 신기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강문과 함께 했다는 것도.

짧은 감상 뒤에 대기실로 다시 돌아오고 나서는 늘 그렇듯 강문의 잔소리 폭격이 시작되었다. 시찬과 차율은 이번에도 ‘왜 우리한테만 그러냐’는 얼굴을 하면서도 묵묵히 잔소리를 받아냈다.

“머리띠든 모자든 주는 건 그냥 다 해. 한 명, 한 명 눈 잘 마주쳐 주고. 혹시라도 동태 눈으로 ‘아 진짜요?’만 하면 우리 다 끝나는 거야.”

“형은 우리를 뭘로 보고!”

자기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며 발끈하는 시찬과 그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기 바쁜 차율을 보던 휘건이 한숨 섞인 웃음을 흘리고는 앉아 있던 소파에서 일어섰다.

“애들도 아니고 그 정도면 다 알아 들었겠지. 시작도 전에 지치겠다. 항상 말하지만, 넌 걱정이 너무 많아.”

“맞아!”

멤버들이 휘건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맞장구를 치자 강문이 머쓱한 표정으로 입맛을 쩝 다시고는 볼을 슬슬 긁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다 같이 잘 되자고 그러는 거잖아.”

휘건은 ‘그 때도 같이 있을 거냐’고 저도 모르게 물으려던 것을 꾹 참았다. 그 대신 가방에 챙겨 두었던 카메라를 꺼내 들고 익숙하게 촬영 버튼을 눌렀다.

“이제 정말 팬분들과 가까이에서 만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요, 점점 더 떨리고 긴장됩니다. 의상은 좀 편하게 매치해 보았는데,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오오, 형 이제 완전 프로 브이로거 같다?”

“당연하지. 난 뭐든 다 잘해.”

휘건이 차율을 향해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에 차율과 시찬은 재수 없다며 질색하고, 호재는 쯧 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휘건은 저런 반응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콧방귀만 뀌었다.

“저희가 이렇게 우애가 깊어요.”

뻔뻔하게 카메라를 보며 말하는 휘건에 다들 못살겠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끝내는 휘건 역시 이 상황이 우스워 한쪽 눈썹을 찡그리고 낄낄 웃었다.

“형, 이걸로 나 팬싸 하고 있는 모습 좀 찍어 줘.”

“오케이.”

적당히 무대의 뒷모습을 영상으로 남기던 휘건이 성수에게 카메라를 넘겨주었다. 무대 옆 대기하는 공간에서 사인회를 보는 구도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물론 편집은 그런 게 아니어도 회사에서 잘 해주겠지만.

간단하게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기다리고 있으니 어느새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작은 크기의 홀이라 그런지 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무대 뒤쪽까지 전부 들렸다.

“와…… 어떡하지? 토할 것 같소.”

차율이 가슴께를 붙잡고 발을 동동 굴렀다. 열심히 노력하며 고치는 중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긴장하면 이전과 같은 말투가 튀어 나왔다.

“난 수전증 있는 아이돌로 유명해지는 거 아니야?”

안 그래 보이는 호재도 이렇게 가까이서 팬들을 만나는 건 긴장되는 모양인지 손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긴장감으로 떨던 두 사람이 긴장도 나누면 나아질 거라며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심호흡을 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휘건 역시 땀이 배어나온 손바닥을 바지에 슥슥 문질러 닦았다.

사인회 담당 관계자가 먼저 나와 사전 안내를 한 후 멤버들이 무대로 입장했다. 반갑게 손을 흔들며 들어서자 환호와 박수 소리가 멤버들을 반겼다. 촬영에 대한 별도의 제지가 없었던 터라 이번에도 대포 카메라가 여럿 보였다.

처음엔 누가 누굴 찍는 건지 헷갈렸는데, 이젠 어떤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는 건지 눈에 들어온다. 커다란 렌즈가 멤버의 동선을 따라 이동하니 모를 수가 없다. 휘건은 자신을 찍는 게 분명해 보이는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어 주었다.

빠쉐 @dabbushow

미친 오늘 명동 팬싸 착장 레전드ㅠㅠㅠㅠㅠㅠ

율무주전자 @yoolintheteapot

우리 기염방댕이들 오늘도 미모 열일하나요ㅠㅠ 나 왜 안명동……

빠쉐 @dabbushow

진심 미쳤어요 저 20번대인데 심장 터져서 죽을것같아요 헠헠,,,

휘파람총 @gnlqkfkachd

적금 깨길 잘했다 조오오온나예쁘네 끼발ㅠ

LOVE SHOT @loveshot0117

2X0928 명동 팬싸 프리뷰

저 보고 웃은 거 맞죠……? 우기면 사실될 일

#와인 #WAIN #휘건 #박휘건 #HWIGEON

“안녕하세요. 와, 이거 뭐에요?”

“오빠 주려고 제가 그려서 만들었어요!”

“직접 그렸다고요? 대단하다. 저 가져도 돼요?”

“헐, 네네! 어떡해…….”

휘건이 팬이 만든 스티커를 떼서 손등에 붙이고는 씨익 웃었다. 발을 동동거리며 좋아하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조잘조잘 말하는 모습들이 참 귀엽다고 생각했다. 사랑이 눈에 보인다는 말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저 오빠 수영 경기 보러 간 적도 있어요.”

“진짜요? 언제?”

“오빠 고등학교 1학년 때요. 친구랑 같이 보러 갔는데 인사도 해 줬었어요!”

“그럼 그 때부터 저 좋아했던 거예요? 대박이다…… 고마워요.”

그래도 이렇게 스케줄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개인적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좋았다. 팬들이 주는 긍정적인 기운 덕분인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 부여도 되었다. 시간을 쓰고 마음을 써서 만나러 와주는 팬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웠다.

“저기, 이거…….”

다음 순서로 넘어온 팬이 흰 털에 분홍 포인트가 들어간 토끼 머리띠를 건넸다. 휘건은 손에 받아 들고 갸우뚱 했다.

“이건 저보다 문이가 더…….”

그렇게 말하면서 강문이 앉은 방향을 쳐다보니 이미 똑같은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그제야 왜 토끼 머리띠가 자신에게 왔는지 알아챈 휘건이 웃음을 터트렸다.

“똑같은 거 챙겨 왔구나?”

머리띠를 건넨 팬이 수줍은 얼굴로 끄덕였다. 휘건이 웃으며 머리띠를 쓰고 윙크를 한번 하자 팬이 꺄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촤르르륵 터지는 카메라 셔터 박스 소리는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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