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81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나 직장에 있을 평일 낮 시간이라 그런지 카페는 한산했다. 케이크와 커피를 고르고 자연스레 구석자리로 가려다, 다시 주변을 살피고 밖이 훤히 보이는 창가 근처로 자리를 잡았다. 조용한 골목이라 이 정도 자유는 누려도 될 것 같았다.
“여긴 언제 와 봤어?”
“여기? 고…….”
저도 모르게 대답하려던 강문이 멈칫했다. 잘못 대답했다간 휘건의 기억과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괜한 의심을 사기는 싫으니 능청스럽게 ‘언제였더라…….’ 하고 중얼거리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아. 고등학교 올라가기 직전에 학원 친구들이랑.”
그러다 주인공이 중학생 때부터 보컬 학원을 다녔다는 말을 얼핏 들었던 게 떠올라 대충 얼버무렸다. 그리고는 더 깊은 대화를 나누다간 금세 거짓말이 등통날 수 있으니 서둘러 말을 돌렸다.
“오랜만에 이렇게 나오니까 좋다.”
휘건과 단둘이 있을 때는 이상하게 날씨가 참 좋다. 비가 올 것처럼 구름이 낀 하늘도 같이 걷다 보면 어느새 말끔하게 개곤 했다. 그땐 그냥 그렇구나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신기했다.
“……하나도 기억 안 난다더니.”
무어라 중얼거린 휘건이 포크로 케이크를 쿡 찔렀다. 바깥 구경을 하느라 제대로 듣지 못한 강문이 되물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방금 그 집이나 학원 친구들은 기억하면서, 나만 기억 못하네.”
“아, 그게…….”
너무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멤버들이 일부러 기억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피해 줬기도 하고, 저 역시 휘건과 주인공간의 과거사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잠깐 잊고 있었다. 자신은 지금 공식적으로 기억을 잃은 상태라는 걸.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는 강문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휘건이 픽 웃고는 케이크를 조금 잘라 입으로 가져갔다.
“장난이야. 너도 어떤 기억이 얼마나 사라졌는지 모르겠다며.”
“…….”
“……그래도 좀 질투는 난다?”
오물오물 케이크를 먹으며 말하는 휘건의 입술이 묘하게 삐죽거렸다. 그제야 평소엔 배려하느라 잘 묻지도 않던 질문들을 이렇게 술술 쏟는 게 이해가 갔다. 휘건은 지금 자신의 입에서 자꾸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 게 못마땅한 것이다.
청평과 SNS 맞팔로우를 했을 때나 젠가 벌칙 때문에 빨갛게 부어 오른 시찬의 손목을 쓰다듬어줬을 때도 그렇고, 질투가 나면 나는 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미치도록 귀여웠다.
“이…… 깜찍한 놈…….”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당장 씹어 먹고 싶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휘건의 귓바퀴가 금세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그러더니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애꿎은 케이크만 포크로 푹푹 찔렀다.
“케이크 맛있네. 차율 사주면 좋아하겠다.”
부끄러우니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간접적인 표현이었다. 휘건은 늘 먼저 속마음을 내비쳐 놓고는 막상 반응해주면 온몸으로 부끄러운 티를 내며 한발 물러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을 괴롭히던 복잡한 고민과 생각들이 말끔하게 지워졌다. 물론 본인은 그게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르는 듯하지만…… 그것마저도 매력이었다.
금세 기분이 좋아져 키득키득 웃고는 딸기가 큼지막하게 박힌 부분을 떠서 먹으며 창밖을 보는데, 유리에 비친 모습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주인공 얼굴이…… 원래 이렇게 생겼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꼭 주인공이 아니라 현실을 살다 온 제 얼굴처럼 보였다. 당황해서 눈을 꼭 감았다 뜨자 조금 전의 위화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왜? 밖에 뭐 있어?”
“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강문은 콩닥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케이크에 집중했다. 사실 케이크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딴 데 가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하아…….”
작곡 공부 때문에 작업실에 들렀다 가겠다는 휘건과 헤어져 혼자 숙소로 돌아온 강문이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가, 손톱을 슬슬 문질러 메인 메뉴 화면을 불러 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곳이 자꾸 현실처럼 느껴지니, 자신이 게임 속에 있다는 사실을 한번 더 자각하기 위해서였다.
“요즘은 퀘스트도 잘 안 뜨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퀘스트가 등장하는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던 선택지 이벤트조자 요즘은 잠잠했다. 발동 조건을 알 수 없으니 그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뭐 하나 쉬운 게 없네, 쉬운 게 없어.”
가뜩이나 이런저런 상황과 일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시스템 오류였는지 이젠 제 얼굴마저 헷갈리게 만드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깊게 한숨을 내쉬고 카드 목록이나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에 천천히 탭을 눌렀다.
목록엔 지난번에 뽑았던 키워드를 포함해 꽤 많은 카드가 쌓여 있었다. 처음 뽑기를 할 때만 해도 이 모든 카드를 전부 사용하게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이벤트가 자주 발생하지 않았다. 이게 정말로 게임이라면, 카드 뽑기 게임 보다는 비주얼 노벨 게임에 더 가깝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간다면 메인 퀘스트를 완료할 때까지 이 키워드를 모두 쓰는 일은 없겠다 싶어서, 나중을 위해 아껴 두었던 카드들을 감흥 없이 합성하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시스템이 인도하는 상황에 맞춰 잘 따라가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차라리 게임 시스템이 완전히 사라지고 진짜 현실이 되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도달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디어 미쳤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떠올린 자신이 한심해 이마를 찰싹찰싹 때렸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나중에 돌아온 멤버들이 빨갛게 부어버린 이마를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렀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후속곡의 마지막 방송 날이 되어 있었다. 오늘은 데뷔 때부터 내내 함께 달리느라 고생한 팬들을 위해 녹화가 끝난 뒤 짧은 미니 팬미팅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어째 첫방 때보다 더 기분이 이상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뭔가 아쉽네…….”
늘 잠이 부족해 고생하던 호재도 아쉬운 모양인지 괜히 대기실 소파를 쓰다듬었다. 그 아련한 분위기만 보면 무슨 은퇴하는 사람 같아 퍽 우스웠다.
“이번 활동만 하고 접을 거야? 다음 앨범도 잘 만들어서 다시 와야지! 1위도 한번 해 보고!”
아쉬운 마음에 축 처진 멤버들을 다독이기 위해 강문이 평소보다 더 쾌활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 모습에 다들 ‘뿌에엥’ 하며 강문에게 찰싹 달라붙어 안겼다.
“어어어……!”
시찬을 제외하고는 다 저보다 큰 멤버들이 꾸역꾸역 안기니 자연스레 몸이 뒤로 밀렸다. 그러다 결국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넘어가는 걸, 마침 대기실로 들어오던 휘건이 후다닥 달려와 잡아 주었다.
“나, 참. 애들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는 휘건 역시 뒤에서 강문을 꼬옥 끌어안았다. 다 같이 엉겨 붙어 안고 있는 꼴이 우스우면서도 따뜻해서 키득키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날마다 펼쳐지는 새로운 즐거움, 뮤직 카펫! 다음 주에도 만나요, 안녕~”
굿바이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클로징 무대까지 함께 한 뒤 조금은 후련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오니 주차장 한 쪽에 펜스를 쳐 두고 대기하고 있는 팬들이 보였다. 사전에 공지가 된 덕분인지 꽤 많은 수가 모여 있어 반가운 마음에 힘차게 손을 흔들었더니 출구로 나오는 멤버들을 발견한 팬들의 박수와 환호, 카메라 플래시가 동시에 터졌다.
어수선하고 어색한 가운데 미리 무대처럼 만들어 둔 공간으로 이동했다. 괜히 쇼케이스 때처럼 마음이 떨려와 스태프들에게 마이크를 하나씩 건네받고 일렬로 서서 크게 한번 심호흡을 했다. 평소보다 더 가까이서 만나는 건 팬 사인회와 비슷했지만, 그때와는 또 느낌이 달랐다.
“춥지는 않아요?”
10월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으니 이제 해가 지고 나면 제법 쌀쌀해진다. 호재의 질문에 팬들이 저마다의 대답을 내놓는데, 그 모습이 귀여워 다들 기분 좋게 웃었다.
“저희가 오늘…….”
이어서 무어라 말 하려는 시찬의 옆에서 갑자기 성수가 커다란 케이크를 들고 등장해, 사전에 들은 것이 아무것도 없던 멤버들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우와, 이거 뭐야?”
“헐…….”
‘고생했어 베이비들’이라고 장식된 문구를 보니 대표가 미리 준비해 둔 막방 기념 케이크인 듯했다. 팬들 역시 예상치 못한 이벤트와 기뻐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감동한 모양인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더니,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 진짜. 뭐야아…….”
팬들의 손에는 ‘사랑해 고마워’라고 적힌 종이 슬로건이 들려 있었다.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한 거냐고 물으려는데, ‘하나 둘 셋’하는 작은 구령이 들리더니 다들 입을 모아 소리쳤다.
“이 길 끝에 선 내게 오는 네게 끌리는 나-, We are insane!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데뷔곡의 한 소절을 부르고 준비한 구호까지 외치는 팬들의 표정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벅찰 만큼 가득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돌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건 자신들인데, 매번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애정을 보여주니 감동이 배로 몰려왔다.
다른 멤버들은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라는 구호가 귀엽고 웃겨 키득거리기 바쁜데, 강문은 이상하게 울컥했다. 영문도 모르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세계에 떨어져 데뷔를 위해 고군분투한 한 달과 처음 팬들의 앞에 섰던 순간, 혼자 고민하던 나날들이 한데 뒤엉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참 이상했다. 이곳엔 흔히 말하는 ‘빌런’이 아무도 없었다. 물론 팬 사인회에서 무례하게 굴었던 악성 개인팬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주변에 다가오는 사람들은 전부 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마치 자신을 위해 누군가가 일부러 안배해 둔 것처럼.
“……형 울어?”
옆에서 팬들을 향해 열심히 하트를 날리던 차율이 깜짝 놀라며 강문을 쳐다보았다. 강문 역시 그저 조금 울컥 했다고 생각했는데, 울고 있던 줄은 몰라 당황했다.
수도꼭지라고 놀림 받는 시찬과 차율도 가만있는데, 저 혼자 뜬금없이 눈물바람이라니. 영문을 알 수 없는 것보다도 부끄러운 마음에 서둘러 옷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추워서 그래, 추워서…….”
아무리 날씨가 쌀쌀했다고 한 들 눈물이 날 정도로 추울 리는 없지만, 다들 모르는 척 넘어가 주었다.
그러나 조용히 저를 따라 훌쩍거리는 팬들을 보고 있으니 더욱 기분이 이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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