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롤로그 (1/21)

목차

프롤로그

01. 돌아온 복귀 유저

02. 쪼렙의 길은 험난하다

03. 거너 신고식

04. 온라인 스토커 주의보

05. 파티원, 개나소나

06. 그놈이 그놈이다

프롤로그

더 세이렌(The Seiren).

전투 중 상대방 건물을 파괴하면 이기는 AOS 게임으로, 건물을 보호하며 캐릭터를 조정해 전투를 벌이는 전략 게임이다. 제작 기획 당시부터 미리 공개된 일부 캐릭터의 그림체와 성우진들의 발표로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출시 이전부터 기대작이었던 게임이라 그런지, 출시된 즉시 놀라울 정도로 인기가 급상승했다.

화려한 스킬들과 다양한 캐릭터에 남성 유저들이 환호하고, 예쁜 캐릭터와 다양한 코스튬에 여성 유저들이 관심을 가졌다.

게임 플레이 각종 영상과 장인들의 명장면이라는 제목의 캡처들도 떠돌았다.

유저 수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랭커들도 생겨났고, 그렇게 더 세이렌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 게임이 되어갔다.

손지언도 그 많은 유저들 중 하나였다. 그가 중1 때 출시된 더 세이렌은 굉장히 매력적인 게임이었다.

미성년자도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었지만 폭력성의 노출을 줄이기 위해 미성년자가 가입하면 게임 캐릭터가 죽었을 시에 피가 흩뿌려지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게 아쉬웠던 손지언은 이제 막 성인이 된 사촌 형의 주민 등록 번호로 몰래 가입했고 또래 남자애들이 그렇듯 매일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밤을 새워가며 해서 부모님께 혼나기 일쑤였지만, 그는 친구들도 인정한 게임 중독이었다.

다만 그는 노력한 시간에 비해 게임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다행히 그에게도 운명처럼 맞는 캐릭터는 있었다.

그것이 바로 레벨 30이 되어서야 사용 가능한 거너 캐릭터였다.

거너는 앞머리가 눈이 가려질 정도로 길고, 검은 목티가 숨이 막힐 정도로 코를 덮고 있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음침한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였지만, 손지언에게는 신비함 그 자체였다.

실제로 이 캐릭터는 남성 유저들에게 인기 있는 캐릭터 3위 중 하나였다. 광역기가 대부분인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한 적을 노릴 수밖에 없지만, 그 공격력이 다른 캐릭터의 1.5배나 높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작성이 어려웠기에 캐릭터 자체는 멋있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로 게임을 시작했다가는 평생 들을 욕을 한순간에 듣기 딱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거너 캐릭터를 잘하는 사람은 다른 유저들보다 유난히 추앙받았는데 손지언은 아이러니하게도 거너 캐릭터로 랭커가 된 사람이었다.

물론 그건 5년 동안의 한 캐릭터로 우물을 판 결과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랭커가 되어 이름도 알려져 대형 길드인‘WINNER’에 가입 초대도 받고 지언은 게임 내에서 승승장구 중이었다.

이제는 사촌 형 덕분에 과거형이 되었지만.

“누가 네 마음대로 내 주민 등록 번호를 써? 이거 범죄다, 죽을래?”

“죄송합니다…….”

주민 등록 번호는 처음 가입 목적으로만 사용했기에 금세 까먹었다. 그리고 그 뒤로 거래가 필요할 때나 코스튬을 사고 싶어도 본인 인증을 해야 했기에 실망하며 기본 의상으로만 만족했었는데…….

[길드] 불경한눈깔: 랭커면서 옷은 그게 뭐야. 존나 촌스럽넼ㅋㅋㅋ

비웃음 이모티콘을 띄우며 같은 길드에 있던 또 다른 거너 캐릭터가 시비를 걸었다.

그는 같은 거너 캐릭터인데 랭커라고 추앙받는 내가 무척이나 아니꼽던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꾸준히 시비를 걸어와 그에게 무척 짜증이 난 상태였는데 가뜩이나 신경 쓰였던 점을 지적당하니 더욱 화가 났다.

일일이 대꾸하던 손지언이 그의 시비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길드 무리에서 이동하자 길드원들이 그 거너 캐릭터를 말리는 게 보였다.

그나마 저 녀석을 제대로 말려주었던 길드장은 최근 수능 준비 때문에 접속률이 낮아져 녀석의 만행을 제대로 말려줄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이 부길드장이었니까.

엿 같은 녀석.

그래서 보란 듯이 알바를 한 돈으로 코스튬을 사려고 또다시 사촌 형의 주민 등록증을 빼내려다가 이번에 딱 걸린 것이다.

잘못한 것은 알았기에 무릎을 꿇고 고개만 숙이고 있으니 사촌 형은 당장에 컴퓨터 화면 앞으로 걸어갔다.

헐, 설마.

“너 내년부터 수험생이야. 수능 준비할 시간도 모자란 데 언제까지 이런 걸 할 거야? 애도 아니고. 그렇게 하고 싶으면 대학 가서나 해!”

[기존의 아이디를 삭제하시겠습니까?]

“형!! 제발, 내 5년 동안의 노력들이!!”

“그래 봤자 내 주민 등록 번호야. 무엇을 하든 내 마음이지.”

[한 번 삭제하시면 복구는 불가능합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형!! 아, X발!!”

“남자는 후진 따위 없다.”

[삭제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 친구에게 차인 화풀이를 여기서 푸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그날 형의 다리를 붙잡고 엉엉 울었던 것 같았다. 물어내라면서.

이게 다 그 망할 부길드장 때문이었다.

‘불경한눈깔’ 그 개자식.

그렇게 한동안 충격으로 게임을 다시 시작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사촌 형의 감시로 인해 1년 동안은 공부만 했었다.

어차피 고3이라서 길드장을 본받아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런 식으로 전념하게 될 줄은…….

그리고 1년이 흐르고 부모님이 만족해할 만한 대학에 입학하고 자취를 시작했다.

그렇게 열성적으로 했던 게임도 1년이나 놓고 지냈더니 어느새 열정도 식어서 대학 생활만 즐기고 있었다. 어느 날, 친해진 동기가 더 세이렌의 이야기를 꺼냈다.

“야, 너 더세함? 요즘 그거 신규 유저들 대상으로 랜덤 코스튬 준다더라. 나 그래서 부캐 하나 만들려고.”

“헐, 랜덤 코스튬?”

“응, 그중에는 레어 코스튬도 있대!! 완전 대박이지.”

네, 완전 대박이네요.

코스튬을 욕심내는 것은 여성 유저뿐만이 아니었다.

버프 효과도 있고 화려하고 멋진 코스튬도 많았기에 남성 유저들에게도 더 세이렌의 코스튬은 인기가 있었다.

다만 현질을 해야 해서 학생들은 잘 못하는 게 슬프지만…….

[더 세이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용하실 아이디를 입력해 주세요.]

네, 그래서 다시 한번 게임 폐인이 되어보려고 합니다. 사촌 형이 대학 가서 하라고 했으니 이제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거야.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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