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1. 돌아온 복귀 유저 (2/21)

01. 돌아온 복귀 유저

내 주민등록번호를 등록하고 새로 가입했다.

어쩐지 느낌이 새롭군. 피시방 의자를 뒤로 젖히며 인상을 찌푸렸다.

“흠, 야. 나 닉넴 뭐하지?”

“아무거나 해. 어차피 코스튬만 받을 거 아님?”

뭐라는 거야. 이제 신성한 게임 폐인이 되실 이 몸께.

하긴. 저 동기 놈은 자신이 거너 랭커였다는 사실도 모르니까, 이번에 더 세이렌을 처음 접하는 신규 유저인 줄 알겠지. 깜짝 놀라게 해 주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가만히 있어야지.

“넌 뭐 했는데?”

“호로쯉로록.”

“…중간에 스파이가 끼어있는데.”

“어쩔 수 없어. 겹치는 게 워낙 많아서. 어차피 코스튬만 받을 건데, 뭘.”

아, 시나리오 따윈 다 스킵스킵.

쿨하게 실행하는 동기 녀석의 모습에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전 캐릭터와 비슷한 닉네임을 하기로 했다.

전 캐릭터 닉네임이 ‘염소똥’이었으니까 이번에는 ‘염소구더기’로 하자.

중복 닉네임입니다 창도 없이 다음으로 넘어가는 매끄러운 진행에 스스로가 대견해져 콧등을 쓸었다. 옆에서 동기 녀석이 어이가 없어 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무시했다.

“임해서, 넌 코스튬만 받고 본캐로 들어올 거?”

“엉. 마음에 드는 거 나오면 부캐로 좀 놀고.”

임해서가 캐릭터를 생성하고 바로 신규 유저를 위한 선물이 들어왔는지 인벤토리를 여는 것이 보였다. 호기심이 생겨 나도 피시방 의자를 녀석 옆으로 옮겨 화면을 보았다.

임해서가 떨리는 손으로 랜덤 코스튬 상자를 클릭했다. 기도라도 하는 것처럼 두 손을 마주 잡곤 ‘제발 제발 레어템!’ 같은 헛소리를 했지만 그런 녀석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자에서는 땡땡이 잠옷 코스튬이 나왔다.

“…….”

“축하.”

코스튬 중에서도 가격대가 가장 낮고 초기에 나와서 현질 유저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코스튬. 게다가 간지라도 나면 몰라, 핑크 땡땡이 잠옷 코스튬은 여성 유저들도 유치하다고 착용하지 않는 코스튬이었다.

심지어 근육질의 탱커 캐릭터를 선택한 채 그 코스튬을 받았으니 아마 저걸 입고 다니면 변태 소리는 기본 옵션으로 듣고 다니지 않을까.

“…본캐로 들어온다. 그전에 라면 좀 사 올게.”

“나는 네 얼굴처럼 귀엽게 생긴 너굴이.”

“지능적으로 사람 엿 먹이네?”

칭찬처럼 자연스럽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치 빠른 놈이 노려보며 말한다. 그래도 심하게 욕을 하지는 않고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지간히 기대를 많이 한 모양이었다. 한심한 녀석.

나는 레어템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저 땡땡이만 안 나왔으면 좋겠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인벤토리에 들어가니 똑같이 랜덤 상자가 들어 있었다. 그것을 클릭하니 원하는 캐릭터를 고르라는 문구가 떴다.

신규 유저가 사용할 수 있는 더 세이렌의 캐릭터는 총 5가지. 전사, 궁수, 도적, 마법사, 무투가.

이후의 거너, 힐러 등의 캐릭터들은 레벨 업을 하면 사용 가능했는데, 지난 1년 동안 좀 변했는지 그 세 가지 캐릭터 이외에 얼음을 쓰는 남자 캐릭터와 물방울을 가지고 노는 소녀 캐릭터가 있었다.

아마 신규 캐릭터 같은데 이번에 신규 유저 이벤트를 하면서 홍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모양이었다.

“헐, 얼음 완전 간지……!”

거너에서 갈아탈까.

은발 머리를 묶은 채 길게 늘어뜨린 미중년 스타일이 꽤나 여성 유저들에게 인기 많을 법했다.

어쩐지 스킬들도 멋있을 것 같고. 이걸로 하자!

그렇게 그 남자 캐릭터를 선택하려는데 뒤에서 임해서가 불쑥 튀어나왔다.

“손지언, 내 얼굴처럼 잘생긴 너굴이라고 했지?”

“악, X발!”

놀라서 마우스를 잘못 클릭했어!! 썩을!!

그것도 하필이면 기본 세 가지 직업들이면 몰라, 하필이면 투명한 물빛 머리를 양 갈래로 높게 묶은 소녀 캐릭터를 선택해 버렸다.

“임해서, 이 개새끼야!!”

“헐, 님 취향이 이런 와기였음?”

“너 때문이잖아!!”

[레어 코스튬, 삐약이 우비를 획득했습니다.]

“…헐.”

“…헐.”

임해서의 멱살을 잡고 앞뒤로 흔드는데 보랏빛의 테두리를 지닌 코스튬이 화면 가득 채워졌다.

병아리를 모티브로 삼은 귀여운 우비에 커다란 잎사귀를 우산처럼 들고 있는 모양의 코스튬.

레어템은 전체 창에 공지가 뜨는 모양인지, 코스튬이 뜨자마자 전체 창이 시끄러워졌다.

[전체] 뉴저: 헐, 미친. 레어 코스튬. 오늘 처음 봄.

[전체] 손머리발발: 대박이다. 심지어 신규 캐릭터라서 저 코스튬 아직 상점에 뜨지도 않았는데;;

[전체] 자세히봐야몬생김: 로또 당첨이네.

[전체] 자세히봐야몬생김: 함 입어보셈. 레어템 처음 입으면 특별 효과 있다던데.

한 유저의 말에 내가 서있던 곳으로 많은 캐릭터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으로 둘러싸듯이 전부 나를 빤히 쳐다보았는데, 모두 레어템의 특별 효과를 보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저 충격으로 멍청히 있는데 마찬가지로 궁금했던 모양인지 임해서가 멋대로 마우스를 움직였다.

[삐약이 우비를 착용하시겠습니까?]

[YES]

그러자 민소매의 수수한 원피스를 입고 있던 소녀가 노란 병아리 우비로 갈아입고 커다란 잎사귀 같은 것을 우산처럼 쓰고는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러자 소녀의 주변으로 물방울들이 퍼지더니 그 위로 무지개가 펼쳐졌다.

[‘염소구더기’ 님이 삐약이 우비를 착용하였습니다. 착용 시, 이동 속도 증가, 치명타 확률 증가, 회피율 증가 버프가 적용됩니다.]

그리고 레어 코스튬의 버프가 적힌 말풍선이 캐릭터 위로 떠올랐는데, 덕분에 주변에 구경하러 왔던 캐릭터들이 보고 오오, 하는 반응을 보여왔다.

부담스러워! 뭔가 좋으면서도 미묘한?

[전체] 염소구더기: ㄱㅅㄱㅅ

결국 창피함에 위치를 이동시키자 병아리 우비를 입은 소녀가 아장아장 뛰어간다.

미친, 핵귀엽.

“님 덕분인 듯.”

“…쮸발.”

라면 생각은 멀리 떠났는지 임해서는 다시 자리에 앉아 우울하게 본캐로 접속했다.

어차피 신규 유저는 튜토리얼도 해야 하고 임해서랑은 레벨 차이가 많이 나서 같이 하지 못했다. 그래서 녀석도 권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럴 정신이 없어 보이기도 했고.

그래서 혼자 튜토리얼이나 하려는데 귓말이 화면 위에 떴다.

[귓말] 자세히봐야몬생김: 님

이분은 아까 처음 착용하면 특별 효과 있다고 말했던 분 같은데.

무슨 일로 말을 거는 건가 싶어서 ‘??’ 으로 대답하니 대답이 돌아왔다.

[귓말] 자세히봐야몬생김: 뉴비? 부캐?

[귓말] 염소구더기: 부캐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그렇게 대답하니 얼음 타입의 미중년 캐릭터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짓는다.

한숨 이모티콘이라도 누른 건가, 저렇게 해도 잘생겼네.

[귓말] 자세히봐야몬생김: 저도 부캔데 부럽네요. 전 땡땡이 나왔는데

[귓말] 염소구더기: ㅋㅋㅋ제 친구도 그거 나와서 다시 본캐로 재접속 함.

[귓말] 자세히봐야몬생김: 그래요? 코스튬을 웬일로 뿌리나 했더니 대부분 땡땡이 받았더라고요. 님은 진짜 로또 당첨이네요.

[귓말] 염소구더기: ㅋㅋ ㄱㅅㄱㅅ

설마 나도 레어 코스튬이 나올 줄은 몰랐지. 다시 보니까 캐릭터도 귀엽고 좋은 듯. 거너 캐릭터를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이 캐릭터만 써야지.

뿌듯함에 소녀 캐릭터로 춤추기 행동을 누르니 앙증맞은 다리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헐, 귀여워!

[귓말] 자세히봐야몬생김: 어차피 남자인 제가 그걸 받아도 잘 쓰지는 못했을 것 같지만. 여성 유저들한테는 인기 대박일 것 같네요.

[귓말] 염소구더기: ㅇㅇ 그럴듯

[귓말] 자세히봐야몬생김: 오늘은 좀 그렇고, 다음에 같이 겜해요. 친추해도 되죠?

[귓말] 염소구더기: ㅇㅇ

[귓말] 자세히봐야몬생김: 친추 걸었음요. 전 이만 나가야 해서 즐겜하세요.

미중년의 캐릭터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션을 취하길래 나 역시 인사 모션을 클릭했다. 그러자 소녀 캐릭터가 배꼽 인사를 하듯 허리를 꾸벅 숙였다.

미친, 엉덩이에 병아리 꼬리 있어.

그렇게 ‘자세히봐야몬생김’이 나가고 친구 요청이 들어온 게 보였다.

“어차피 다음에 볼일도 없을 테고.”

미련 없이 누르는 거절 버튼. 절대 기분 나빠서는 아니었다. 아마도.

‘남자가 소녀 캐릭터 좀 쓸 수 있지!’

그리고 나는 또다시 춤추기 모션을 시키고 병아리 꼬리가 달린 궁둥이를 씰룩이며 춤을 추는 소녀 캐릭터를 보며 좌절했다. 춤추는 모션이 내게 좌절하지 말라며 응원하는 것 같았다. 별달리 큰 힘이 된 건 아니지만.

일단 튜토리얼부터 하기로 했다. 이것도 아는 내용이라서 가능하면 스킵을 하고 싶긴 하지만 어느 정도 기본적인 건 실행해야 게임을 할 수 있으니까.

지겨운 기본 조작기를 읽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빠르게 넘기니 어느새 레벨이 2가 되어 있었다.

거너를 사용하려면 레벨 30은 찍어야 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는 작업은 아닐 테지만 벌써부터 조금 지루한 감은 있었다.

‘임해서가 놀라 자빠지는 꼴을 빨리 봐야 하는데.’

예전 같은 컨트롤이 나오라는 보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생각했다.

더 세이렌의 만렙은 300이다. 참고로 내 전성기 시절의 거너 캐릭터는 레벨이 260이었고 내 옆의 대학 동기 녀석은 레벨이 180이다.

레벨 150 근방이면 더세 좀 열심히 하는 놈이었고, 레벨 200이 넘으면 어디 가서 무시 받지 않는 놈들이었다. 만렙에 가까워질수록 레벨을 올리기가 힘들었으니까.

전 소속 길드였던 WINNER가 레벨 250 이상부터 가입을 받아줬던 걸 보면 얼마나 대단한 길드였는지 알 수 있었다.

레벨 50까지는 순식간에 올릴 수 있어 이때까지는 초보 유저라고 불린다. 특히 레벨 30 이상부터 다양한 캐릭터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레벨 30도 되지 않는 유저들은 초보 중의 왕초보였다.

그러니 현재 레벨 3인―튜토리얼로 레벨 상승―내가 레벨 180인 임해서와 같이 게임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레벨이 너무 차이가 나니까 매칭도 안 될 테고.

적어도 레벨 50은 넘어야 같이 게임을 할 수 있을 테니 일단 레벨부터 올리는 수밖에.

“악, 저 미친놈! 저 혼자 튀어 나가면 어쩌자는 거야!”

임해서는 이미 한창 게임 중인지 누군가를 욕하기 바빴다.

일단 레벨 30이 될 때까지는 막노동이나 해야지.

[방을 찾고 있습니다.]

[진행 중인 방에 입장하게 되었습니다.]

“헐, 미친? 처음부터 난입이라고?”

아니, 잠깐만. 아직 새로운 캐릭터 스킬도 제대로 모르는데?

[염소구더기 님이 입장했습니다.]

다행히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아군과 적 기지는 멀쩡했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 밀리는 모양이었다. 들어온 직후에 본 상황은 우리 팀 전원이 죽어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팀] 손머리발발: 미친ㅋㅋㅋㅋ또 죽음ㅋㅋㅋㅋ

[팀] 오메가투: 또 전원 사망……

[팀] 오메가투: 이 얼마나 아름다운 팀워크인가……

[팀] 손머리발발: 팀워킄ㅋㅋㅋ진짜 이 정도면 팀워크닼ㅋㅋ

대화를 보니 전원 사망이 처음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걸 웃으면서 말하다니.

[팀] 도리두리: 난입 들어옴. 아까 욕하던 놈 나간 듯.

[팀] 쟈스민: 안녕하세요! 구더기님ㅋㅋㅋ 닉넴 웃김

[팀] 오메가투: 미친 팀워크에 어서오세요……

[팀] 염소구더기: ㅎㅇㅎㅇ. 난입이라서 당황. 저 이 캐릭터 처음 쓰거든요.

내 말에 쟈스민이 미친, 하고 웃었다.

[팀] 쟈스민: 지금 도리두리님 빼고 다들 처음 쓰는 캐릭터에욬ㅋㅋ

[팀] 오메가투: 그래서 현재 이 상황……

[팀] 염소구더기: 아, 다들 부캐인가요?

[팀] 쟈스민: ㄴㄴ 부캐는 저랑 오메가투님만. 도리두리님이랑 발발님은 본캐래요.

아, 어쩐지.

오메가투와 쟈스민이 레벨이 4와 5인 거에 비교해서 도리두리 레벨은 70, 손머리발발의 레벨은 65였다.

어쨌든 두 사람도 게임을 시작한 지는 오래 안 된 것 같지만.

[팀] 손머리발발: 헐, 닉넴이 익숙하다 했더니. 아까 레어코스튬 떴던 분 아님?

[팀] 쟈스민: 헐, 아까 말했던?? 대박. 그러고 보니 처음 보는 코스튬이네.

제일 먼저 살아난 쟈스민의 캐릭터가 내 캐릭터 주변을 돌아다녔다. 쟈스민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 캐릭터인 얼음 캐릭터를 선택한 모양이다. 미중년이 무표정한 얼굴로 박수를 쳤다.

[팀] 쟈스민: 대박. 신캐의 레어 코스튬이라니. 진짜 부럽닼ㅋㅋㅋ

[팀] 도리두리: 귀여움.

[팀] 손머리발발: 진짜 귀엽네ㅋㅋㅋ 정령사는 어시캐라서 셀렉 안 했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네.

[팀] 오메가투: 이미 눈물로 한강 만듦.

도리두리의 무투가 캐릭터가 살아나고 오메가투의 전사 캐릭터가 순서대로 부활하자 기지 안이 북적거렸다.

손머리발발이가 자기만 빼놓고 놀지 말라며 투덜거리다가 이내 곧 되살아났는지 무리로 이동해 왔다.

손머리발발은 궁수 캐릭터로, 활 통을 어깨에 멘 채 달려오고 있었다.

아니, 그런데 말이야.

[팀] 염소구더기: 이거 정령사였음?? 원래 꼬맹이는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팀] 도리두리: 물 속성은 소녀임. 얼마 전에 신캐 공지 뜸.

[팀] 염소구더기: 속성???

물음표를 잔뜩 늘어놓자 내 캐릭터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귀여웠던 건지 도리두리의 무투가 캐릭터가 내 캐릭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덩치 큰 아저씨 캐릭터가 작은 소녀를 귀여워하는 모습이라서 조금 묘한 장면이기는 했지만.

[팀] 오메가투: 복귀 유저?

[팀] 염소구더기: ㅇㅇ 거의 2년 다 되어감.

[팀] 쟈스민: 그럼 모를 수도 있겠네. 작년부터 레벨 150부터는 캐릭터별로 선택 속성 생김.

[팀] 쟈스민: 속성별로 공격형, 방어형, 치유형, 보조형으로 나뉘어지고 스킬도 좀 바뀜.

[팀] 쟈스민: 참고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건 전사인데 속성은 얼음.

쟈스민이 얼음처럼 투명한 칼로 허공을 몇 번 긋자 얼음이 부서지는 효과음이 들리며 바닥에 얼음 부스러기가 떨어진다. 그것도 금방 사라졌지만.

[팀] 쟈스민: 참고로 평타 빼고는 원거리 스킬이라서 멘붕중ㅋㅋㅋ

[전체] 개나소나: 머함. 단체로 포기? ㅡㅡ

복귀 유저라서 잘 모르는 자신을 위해 쟈스민이 열심히 설명해 주는데 전체 채팅으로 글이 올라왔다. 유저가 전부 살아났는데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아서 이상하게 여긴 모양이었다.

그동안 우리 쪽 기지도 열심히 부순 모양인지 어느새 안쪽 기지만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어쩐지 내 탓인 것 같아서 서둘러 타자를 쳤다.

[팀] 염소구더기: ㅈㅅ 저때매 설명해 주느라ㄷㄷ

[팀] 쟈스민: ㄴㄴ 저새끼 아까부터 시비텀.

[전체] 쟈스민: ㅡㅡ알거없음

[전체] 개나소나: 시간 낭비하지 말고 기권ㄱㄱ

[전체] 오메가투: 님이랑 얘기하는 게 시간 낭비임.

[팀] 쟈스민: ㅋㅋㅋㅋㅋㅋㅋ오메가형님 굿. 근데 저놈 아까부터 시비네.

[팀] 쟈스민: 레벨 130이면서 강제 매칭으로 들어와 놓고는 잘하는 척 쩌네ㅡㅡ

[팀] 도리누리: 강제 매칭 따위 없어져야 함.

[팀] 염소구더기: 강제 매칭임?

이제 보니 적팀의 개나소나는 레벨이 130이었다. 레벨이 100이 안 넘는 나머지 일행들에 비해 독보적으로 높은 레벨이니 계속 전멸을 당할 수밖에.

[팀] 손머리발발: 이번에 신규 유저인 사람이랑 파티해서 매칭 됐나봐요.

[팀] 손머리발발: 레벨 100 넘어가면 몰라도 이런 쪼렙들 사이에 끼고 싶나ㅡㅡ

[팀] 쟈스민: 아!! 본캐로 처바르고 싶다!!

[팀] 오메가투: 욕이 목구멍에서 흘러나옴.

다들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하긴, 레벨이 저만큼 차이 나는 사람한테 계속 전멸을 당하고 무시를 받고 있으니 누가 기분 좋겠냐만.

일단 아군의 모든 캐릭터가 움직이지 않으면 강제로 기권 되는 시스템이 있으니 우리는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일단 신캐라서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쟈스민이랑 나랑은 혼자 다녀봤자 밥이 될 뿐이고, 주 캐릭터가 아니라서 잘하지 못하는 손머리발발도 예외는 아니었다.

손머리발발의 말을 들어보면 지금 아군에서 유일하게 1인 몫을 하고 있는 건 도리두리뿐이었다.

레벨이 낮긴 했지만, 유일한 본캐 유저에, 사용하고 있는 것도 주 캐릭터. 그래서 일단 도리두리가 적군들 사이로 다가가 탱커 역할로 어그로를 끌고 있으면 전사 캐릭터인 오메가투가 보조를 하고, 원거리 타입의 나머지 세 명이 공격하기로 작전을 세웠다.

그리고 당당히 쳐들어간 적진에서 전멸했다.

[전체] 개나소나: 지겹닼ㅋㅋㅋ쪼렙들. 기권이나 하라고.

[전체] 쟈스민: 아, ㅡㅡ 똥매너처럼 쪼렙들 사이에서 유치하게 있지 말고 ㄲㅓ져.

[전체] 개나소나: 내가 왜?ㅋㅋㅋㅋ난 재밌는데. 근데 니들은 너무 못해서 재미 없음ㅋㅋㅋ

개나소나는 마법사 캐릭터로, 우리가 쳐들어가면 일단 탱커인 도리두리를 스턴 마법으로 못 움직이게 하고 원거리 타입의 우리가 당황하고 있을 때 광역기인 궁을 펼쳐 즉사시켰다.

그리고 도리두리는 스턴 마법에 걸린 채로 상대편에게 다굴을 당해서 아무리 단단하게 세팅하고 가도 일방적인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그렇게 우리가 전멸한 사이에 이제까지는 봐주고 있었던 것처럼 아군기지에 쳐들어와 건물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아직 살아나기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 그걸 멀뚱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얼마나 답답하고 화가 나는지.

난입한 내가 이 정도였으니 이전부터 게임을 하고 있던 이들은 화가 단단히도 난 듯 그 시끄럽던 채팅창이 고요해졌다.

[팀] 오메가투: 이 판은 우리가 버림.

그때 오메가투가 얼마 남지 않은 진영이 박살 나는 모습을 보며 말을 올렸다.

[팀] 손머리발발: ??? 오메가 형님 무슨 말?

[팀] 오메가투: 도리두리님, 이 판 나가면 발발님하고 염소님 파초 좀.

[팀] 도리두리: ㅇㅋㅇㅋ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파티 초대를 권유한 오메가투의 말에도 도리두리는 기다렸다는 듯 수락했다.

[팀] 쟈스민: 아, 뭔 말인지 알겠음ㅋㅋㅋㅋㅋ 준비하고 오겠음.

[쟈스민 님이 게임을 종료했습니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쟈스민이 게임을 종료하는데 도리두리가 ‘ㅎㅎㅎ’ 하고 채팅창에서 웃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나와 발발이뿐인가.

[팀] 오메가투: 발발이 주캐 머임.

[팀] 손머리발발: 전사요!

[팀] 오메가투: ㅇㅋ 그럼 이 판 끝나고 전사로 바꾸고 있으삼. 염소님은 그대로도 괜춘.

[오메가투 님이 게임을 종료했습니다.]

[전체] 개나소나: ㅋㅋㅋㅋㅋ뭐야, 패배 기록 안 남기려고 나감? 어이없네.

[전체] 개나소나: 이래서 쪼렙들이란ㅉㅉ 어울려주기 힘들다. 매너도 없어서.

우리끼리 한 대화를 못 본 사람들이라면 오해하기 쉬운 상황이었다.

딱 아군이 지기 직전에 두 명이 게임을 종료했으니 본인 같았어도 상황을 몰랐다면 욕을 했을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상대편이 저런 식으로 이야기하니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 염소구더기: 그쪽이 더 민폐인 거 모름? 님이야말로 쪼렙부심 부리지 말고 끝내.

[전체] 개나소나: ? 레벨 3이 나보고 쪼렙부심이라고 했음?

[전체] 개나소나: 부캐인가본데 그럼 본캐로 오던갘ㅋㅋㅋ받아줄게.

[전체] 염소구더기: ㄴ본캐 랭커. 님 상대하기 아까움.

[전체] 개나소나: ㅈ1랄이 풍년이넼ㅋㅋㅋㅋㅋㅋ 기달. 이 판 끝나고 대전 신청한다.

[게임이 끝났습니다. 아군이 패배하였습니다.]

“아, 겁나 빡치네.”

“왜? 잘 안 풀려?”

임해서가 게임이 끝났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임해서도 레벨이 저 새끼보다는 높은데… 강제 매칭이나 부탁해 볼까?

“야, 나 아까 강제 매칭으로 레벨 130한테 발림.”

“그 새끼 존나 비매너네.”

“근데 나보고 또 대전 신청한대.”

내 말에 대충 무슨 상황이 있었는지 짐작이 갔는지 임해서가 표정을 찌푸렸다. 그리고 ‘도와줄까?’ 하고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쪽지가 도착했다.

[손머리발발 님께서 파티 요청을 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귓말] 손머리발발: 염소님!! 빨리 받아줘요!! 급함

그리고 도착한 귓말까지.

임해서가 아까 너희 팀이냐고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파티 수락을 누르니 나 이외에 도리두리도 파티 멤버에 있었다.

손머리발발이 파티장이었고 처음 보는 두 명도 파티 인원에 포함되어 있었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상황 들음. 대전 신청 옴??

[파티] 염소구더기: ????

[파티] 손머리발발: ㅋㅋㅋㅋㅋ아직 설명 못 해줬어요.

[파티] 손머리발발: 염소님, 이등병님이 아까 쟈스민님이에요. 본캐로 다시 오셨데요ㅋㅋㅋ

[파티] 염소구더기: ???? 헐.

그제야 영원한이등병 옆에 적힌 Lv. 170이 보였다. 그리고 영원한이등병 밑에 Lv. 200이라고 적혀있는 캐릭터는…….

[파티] 염소구더기: 설마……?

[파티] 오메가원: 조질 준비 끝.

그 말과 동시에 알림이 떴다.

[개나소나 님께서 대전 신청을 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와, 레벨 200 쩐다. 저 사람 본캐로 들어 온 거야?”

임해서가 의자를 당겨 컴퓨터 화면을 흥미진진하게 쳐다보았다. 그런 임해서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며 대답했다.

“그런 듯. 아까 부캐 두 명 있다고 했거든.”

“뭐야, 그럼 내가 안 도와줘도 되겠네. 대전 신청 들어온 거는 받았어?”

“아직.”

그러니까 영원한이등병이 아까 얼음 전사 캐릭터의 쟈스민. 오메가원은 누가 봐도 아까의 오메가투구나.

파티로 인해 어느 채널에 다 접속해 있는지 보였다. 손머리발발이와 내가 같은 채널인 걸 확인하고 영원한이등병이 한 채널에 다 모이자고 말했다. 도리두리와 오메가원도 별다른 불만이 없는 모양이었다.

매끄럽게 진행되는 상황을 그저 멍청히 바라보는데 손머리발발이 얘기했다. 이 상황이 무척 재밌는지 채팅으로 봐도 굉장히 들뜬 기색이었다.

[파티] 손머리발발: 구더기님이랑 저는 장비 상점 앞에 있어요!

[파티] 염소구더기: ;; 혹시 제 옆에 전사 캐릭터가 님이세요?

[파티] 손머리발발: ㅇㅇ! 구더기님은 레어 코스튬이라서 눈에 띄네요!

아까부터 내 캐릭터 옆에 전사 캐릭터가 왜 이렇게 주변을 정신 사납게 움직이는가 했더니 손머리발발인 모양이었다.

커다란 대검을 등에 지고 있는 청년 캐릭터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의 밝은 캐릭터였다. 어쩐지 실제 이미지도 저런 텐션을 가진 분이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채팅이 올라왔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ㅎㅇㅎㅇ

[파티] 손머리발발: 헐!! 이등병님 도적이에요??

저 멀리서 캐릭터 하나가 뛰어오는가 싶더니 우리 앞에 서서 인사를 했다. 도적 캐릭터를 선택한 모양인지 검은 복면을 쓰고 작은 단도를 손장난하듯이 가볍게 돌리는 모습이 멋있었다.

“저 사람 레벨이 170이지? 암흑 속성이네. 밑에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걸 보니까.”

임해서의 말대로 영원한이등병 밑에는 그를 따라다니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일반적인 캐릭터들의 그림자와는 달리 좀 더 크고 어두운 형태의 그림자.

하긴 150레벨이 넘으면 속성을 정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암흑 속성 도적이면 강한 편이냐?”

“컨이 좋으면 강하지. 도적이 암살 전문이잖아. 특히 암흑 속성은 암살에 최적화되어 있어서 컨이 좋아야 잘한다는 소리 듣지. 못하면 몸이 종잇장이라서 잘 죽음.”

“그만큼 공격력은 강하고? 거너랑 비슷하네.”

“야, 그래도 거너보다는 낫다! 요새는 거너 하는 사람도 없어. 두 대만 맞아도 죽는 캐릭턴데 뭘.”

맞는 소리라서 부정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거너를 초반에 할 때는 욕을 매일같이 처먹었었지.

[파티] 영원한이등병: 구더기님, 대전 신청 왔어여?

[파티] 염소구더기: ㅇ, 근데 아직 안 받았어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ㄱㄱ 지금 받아요. 저희 지금 파티라서 같이 접속될 거임.

[파티] 염소구더기: 다른 분들은 안 기다려도 돼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어차피 그 대전하려고 다시 모인건데 괜춘할듯ㅇㅇ

[파티] 영원한이등병: 그리고 늦으면 그 ㅅㅐ끼 우리가 피한다고 생각할 것 같네여ㅡㅡ

그런가. 맞는 소리라서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대전 신청 수락을 눌렀다. 그와 동시에 영원한이등병의 채팅이 올라왔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엌ㅋㅋㅋㅋ 오메가형님 잠깐 그

[대전 신청을 수락하였습니다.]

[게임을 준비 중입니다.]

게임이 시작되어서 채팅이 멋대로 잘린 것 같은데, 뭐였지? 어쨌든 게임 매칭 중이라서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임해서는 재미있는 상황에 본인 게임은 하지 않고 열심히 구경 중이었다.

“야, 구경만 하지 말고 빨리 이 정령사 캐릭터 스킬 콤보나 좀 찾아봐!! 이러다가 나만 똥손 될 삘이야!!”

“뭐래. 오늘 처음 시작했는데 당연히 똥손이지. 원래 잘했던 것처럼 말하네.”

그래도 찾아는 주려는 모양인지 임해서는 더 세이렌의 공식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그리고 캐릭터 소개를 클릭하자 물 정령사 캐릭터 설명이 나타났다.

“어시캐네. 공격, 방어 전부 평균보다 좀 떨어지긴 하는데 회복 버프 스킬이 있네.”

“회복 버프? 궁극기는 아니고?”

“엉. 평타는 그냥 물의 정령을 날려서 공격하는 건데 다섯 번 연속 맞히면 상대방 캐릭터가 시력을 3초 잃어. 스킬은 회복 버프 스킬만 있고. 아군에게 물의 정령 가호 스킬을 써서 일정 시간 HP 회복시킨다는데?”

“그게 뭐야! 진짜 어시캐잖아. 킬은 못 따?”

거너였을 때는 내가 적팀 다 킬하고 다녔는데, 솔직히 게임은 적팀을 죽였을 때의 쾌감이 제일 아닌가!! 그런데 스킬이 고작 회복 버프 스킬이라니!!

“궁극기는! 궁극기는!”

“기다려봐, 미친놈아. 야, 게임 시작됨. 내가 궁극기 찾아볼 테니까 일단 하고 있어.”

이렇게 되면 진짜 쓸모없는 캐릭터잖아. 레어 코스튬 나와서 쓸데없이 귀엽기만 한 캐릭터.

암울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임해서는 게임 시작했다며 내 등을 퍽퍽 때렸다. 집중하라는 뜻이겠지.

게임을 시작했다는 알림과 함께 아군의 캐릭터 다섯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와중에도 레어 코스튬의 효과인지 남들은 평범하게 모습을 드러내는데 내 캐릭터 혼자서 자리에서 빙그르르 돌아 물방울을 주변에 터뜨렸다. 그러자 그 위로 작게 펼쳐지는 무지개.

미친, 창피한데 귀여워.

[파티] 도리두리: …….

조금 전에도 생각했지만 도리두리는 귀여운 걸 좋아하는 듯 또다시 내 캐릭터의 머리를 쓰다듬는 행동 모션을 취했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오메가형님 암힐임? ㅋㅋㅋㅋ와, 진짜 힐러인 것도 반전인데 암힐ㅋㅋ

[파티] 오메가원: 나는 나만 치유하는 힐러★

[파티] 영원한이등병: 별도 까맼ㅋㅋㅋㅋ

뭐가 그렇게 웃긴 지 영원한이등병이 계속 채팅으로 웃었다. 아마 실제로도 저렇게 웃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계속.

그게 의아해서 내가 채팅으로 ‘??’을 치자 그제야 내가 복귀 유저인 걸 깨달았는지 영원한이등병이 설명을 해주었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암힐은 힐러 속성인데 속성이 암흑이에여, 저처럼 ㅋㅋㅋㅋ

[파티] 영원한이등병: 근데 암힐은 진짜 힐러라고 할 수가 없음ㅋㅋㅋ 유일한 공격형 힐런데

[파티] 영원한이등병: 평타나 궁극기나 전부 힐인 다른 힐러들에 비해 전부 다 공격형임

[파티] 영원한이등병: 유일한 회복 스킬이 있는데 그게 본인만 치유 가능ㅋㅋㅋㅋ 그래서 유저들 사이에서는 이게 뭐가 힐러냐고 말들이 많은데 궁극기에서 적군을 한 명 죽일 때마다 우리 아군들 HP가 회복되긴 됩니다ㅋㅋㅋㅋ

뭐야, 그게.

영원한이등병의 설명에 내가 어이가 없어 오메가원을 빤히 쳐다보자 현질을 한 건지 고양이 머리띠를 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쑥스러움을 드러냈다.

[파티] 오메가원: (수줍)

[파티] 염소구더기: …….

하지 마.

채팅에 캐릭터의 얼굴이 무표정한 얼굴에서 볼에 빗금만 생겼다.

도리두리 다음으로 가장 큰 덩치의 남자 힐러 캐릭터가 고양이 머리띠에 붉게 물든 얼굴이라니. 눈이 썩어들어 갈 것 같았다.

[30초 뒤에 게임을 시작합니다.]

[전체] 개나소나: 쫄아서 내뺄 줄 알았더니ㅋㅋㅋ랭커는 역시 다르시네?

아군끼리 얘기를 하는데 전체 채팅으로 누군가의 말이 올라왔다. 익숙한 닉네임. 개나소나의 말에 특히나 반응이 빠른 영원한이등병이 얘기했다.

[전체] 영원한이등병: 뭔개솔.

[전체] 개나소나: 구더기 랭커라더만, 지 입으로ㅋ

[파티] 영원한이등병: ? 진짜임?? ㅋㅋ

[파티] 손머리발발: ???!

[파티] 염소구더기: 그냥 아까 홧김에…….

큰일 났다. 랭커인 건 사실이지만, 그건 거너였을 때만 해당되고 벌써 2년 전 얘기였다.

거너 빼고는 컨트롤 거지 같은데. 어련하면 길마가 거너 빼고는 똥손이라고 했을까.

[10초 뒤에 게임을 시작합니다.]

[전체] 니면상도지랄: 그런 것치고는 레벨 높은 애들이랑 파티 맺어서 들어왔네

[전체] 개나소나: 답장하는 거 보니 영원한이등병이 전 판 얼음전사네.

[전체] 개나소나: 닉넴보니 오메가원이 오메가투고. 실력 안되니 본캐 소환ㄱ?ㅋㅋㅋㅋㅋ

[전체] 니면상도지랄: ㅋㅋㅋㅋ 그런다고 없던 컨이 생기나?

개나소나의 파티인 듯 둘이 짜고 아군을 앞에 두고 비하했다.

그러고 보면 니면상도지랄이라는 닉넴을 전 판에서 못 본 걸 보면 저 사람도 본캐로 다시 들어온 모양인데, 저런 식으로 얘기하다니.

레벨은 115. 누가 봐도 레벨은 오메가원과 영원한이등병이 높은데 그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파티] 오메가원: 냅두고. 지금 우리 팀이 탱1, 딜2, 힐1, 어시1. 크게 나쁘지는 않은 조합임.

[파티] 오메가원: 설명 중이라서 반말 이해 좀. 내가 힐이 궁극기에서만 가능하니까 그동안은 염소님이 스킬로 팀 힐 좀 부탁ㄱ

[파티] 염소구더기: ㅇㅇ

[파티] 오메가원: 한타에서는 괜찮은 조합인데 건물 부수는 게 좀 애매한 조합이네.

[파티] 손머리발발: 전반은 건물 먼저 먹고 갈거죠?

더 세이렌은 AOS 게임이라서 누군가를 많이 죽이거나 오래 살아남는다고 이기는 게임은 아니었다.

한타를 잘해서 아군팀이 킬 수가 많아도 적팀이 본진의 건물을 파괴하면 게임 오버. 즉, 이 게임은 각 진영의 세 개 있는 건물을 먼저 부수는 팀이 승리인 게임이다.

제한 시간은 30분. 제한 시간 초과 시에는 좀 더 많은 피해를 입힌 쪽이 승자가 된다.

[게임이 시작됩니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ㄴ 제가 가서 깔짝거리고 올게요. 대기해 주세요.

[파티] 오메가원: ㅇㅋ

[파티] 손머리발발: 엥??

각 건물의 위치는 기본 본 진영의 양 사이드에 건물이 하나씩, 그리고 진영 가운데에 위치한 본진의 건물. 참고로 본진의 건물은 양 사이드의 건물을 파괴하고 와야 부수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정이다.

게임이 시작되자 영원한이등병의 도적 캐릭터가 우측의 상대 건물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캐릭터 자체의 스피드도 빠르지만, 그 위에 검은 꽃에 띄워져 있는 것을 보니 오메가원의 버프도 받은 모양이었다.

[이동 속도가 증가합니다.]

그리고 차례로 다른 아군들의 머리 위에도 검은 꽃이 띄워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옆을 보니 오메가원의 캐릭터가 지팡이를 열심히 흔드는 것이 보였다.

[파티] 오메가원: 버프 정도는 줄 수 있음.

…힐러치고는 너무 당당한 발언인데?

[파티] 손머리발발: 감사함돠ㅎㅎ 근데 왜 이등병형님만 가요?

맵에서 적들의 위치는 아직 노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수의 캐릭터가 아군 진영 쪽으로 몰려들고 있겠지.

초반에 건물을 좀 밀어야 유리하다는 걸 알기에 손머리발발은 의아한 모양이었다. 일단 그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유저이기 때문에 일단 시키는 대로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적군의 건물을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영원한이등병이 적팀에 도착했는지 맵에 위치가 노출되었다.

적군 또는 건물 가까이에 있으면 위치가 노출되는 시스템이기에 저걸 보고 아군기지로 달려오던 적군 일부는 영원한이등병을 잡기 위해 되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남은 소수의 인원은 오던 길을 계속 오겠지.

[아군의 건물이 공격받기 시작합니다.]

[파티] 오메가원: 도적은 이동 속도도 빠르고 회피 기술도 있으니 2~3명 있어도 빠져나올 수 있을거임. 한 명이라면 죽이고 건물을 더 부수는 게 이득이고.

아군의 진영에 침입한 적팀의 인물은 세 명. 개나소나는 영원한이등병에게 따라붙었는지 마법사 캐릭터는 보이지 않았다.

낮은 레벨을 보니 개나소나랑 니면상도지랄만 파티고 나머지는 우연히 매칭된 모양인데…….

도리두리가 선두로 나서서 근거리 캐릭터를 잡고 공격하자 당황한 나머지 적팀 두 명이 도리두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둘러 도리두리에게 회복 스킬을 사용했다.

[도리두리 님이 물의 정령 가호를 받습니다.]

그러자 팅커벨같이 생긴 작은 크기의 물빛의 요정들 2마리가 도리두리의 주변에 따라붙으며 HP를 올려주었다.

하지만 물의 정령도 공격받으면 죽는 모양이었다. 그걸 알아챈 적팀의 궁수가 물의 정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스러움에 좌우로 왔다 갔다 움직이며 피했다. 그때 옆에서 검은 쇠고리가 나타나 적팀 궁수의 목을 감았다.

심판받을 자는 너인가.

암흑 힐러의 성우 목소리가 울렸고, 쇠사슬을 통해 체력을 흡수하는 모양인지 궁수의 체력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오메가원의 HP가 200에서 250으로 늘어났다.

궁수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가득한 이모티콘이 떠다녔다. 낮은 레벨에게 암흑 속성의 힐러는 무척이나 생소한 존재였다. 그것은 복귀 유저인 나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렇게 궁수가 허무하게 죽고, 체력을 계속 회복하는 도리두리로 인해 잡혀있던 적군의 근접 캐릭터 역시 사망했다는 알림이 떴다.

그러다가 남아있던 한 명이 상황을 판단하고 도망쳤다. 손머리발발이 서둘러 쫓아가려고 하는데 도망치던 적군의 앞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영원한이등병의 캐릭터가 작은 단도로 그 캐릭터를 처리해 버렸다.

영원한이등병의 머리 위로 뜨는 붉은 글자의 3Kill. HP가 반으로 줄어버린 영원한이등병이 힐을 달라고 말하길래 서둘러 회복 스킬을 시전하니 또다시 빠르게 앞으로 향했다.

[파티] 오메가원: 적팀 다 죽었을 때 건물 하나 부수죠.

[이동 속도가 증가합니다.]

막힘없이 흘러가는 진행.

본캐였을 때는 길드 소속으로 비슷한 레벨끼리만 싸워서 몰랐는데, 실력 차이가 나면 이런 식으로 되는구나.

옆에서 손머리발발이 오메가원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것이 보였다.

고양이 머리띠를 하고 검은 망토를 쓴 사내를 따라가는 대검을 든 청년 캐릭터. 머리 위에 뜬 검은 꽃을 보며 그들을 따라 이동했다.

레어 코스튬의 효과와 버프의 효과로 이동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작은 소녀 캐릭터가 뽈뽈거리며 앞장서는 모습을 보고 뒤에서 도리두리가 쫓아왔다.

그보다 본인만 치유하는 힐러라니. 거너에서 암흑 속성의 힐러로 갈아탈까 진지하게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적군 캐릭터들이 살아나기까지는 10초의 시간이 걸렸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적군이 모두 죽고 아군이 모두 살아 있는 상황에서의 10초는 생각보다 길었다.

[적군의 건물이 파괴되었습니다.]

세 개의 건물 중 하나를 파괴하니 타이밍 맞게 적군이 부활했다.

[파티] 손머리발발: 이제 다시 돌아가여!

손머리발발이 서둘러 돌아가자고 하길래 쫄래쫄래 따라가는데 오메가원이 영원한이등병의 가만히 서있는 게 보였다.

캐릭터의 손이 움직이는 걸 보니 무언가 버프라도 걸고 있는 모양이었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버프머임?

[파티] 오메가원: 이속, 공속 증가

[파티] 영원한이등병: ㅇㅋ ㄳㄳ

검은 꽃을 한 캐릭터에 이중으로 부여하면 이동 속도 증가에 더불어 공격 속도도 증가하는 모양이었다.

거기까지 버프를 진행한 오메가원이 적들이 달려올 방향 쪽으로 한 발짝 옮겼다.

[파티] 오메가원: 도리두리님, 탱 좀 부탁드릴게요.

[파티] 도리두리: ㅇㅇ

오메가원의 부탁에 도리두리가 앞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영원한이등병은 벽 모퉁이 뒤로 이동했다. 캐릭터의 몸이 점점 희미해지는 게, 은신 스킬인 모양이다.

아무래도 상황을 보아하니 후퇴는 하지 않으려는 건가 보지. 하긴 레벨 차이도 많이 나고 실력은 이쪽이 위인 모양이니까.

역시나 부활하자마자 아까 본진으로 쳐들어왔었던 세 명이 나왔다. 그들은 우리가 도망치지 않고 기다리고 있자 오히려 약이 올랐는지 급하게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적군의 궁수가 오메가원을 향해 공격을 하자 도리두리가 앞에 서서 그 공격을 대신 맞는다. 하지만 방어 위주의 캐릭터이다 보니 큰 피해는 없었다. 덕분에 스킬만 낭비하게 된 궁수 캐릭터를 향해 오메가원이 스킬을 사용했다.

아군에게 버프를 줄 때 사용했던 검은 꽃의 스킬이었는데, 그게 적군에게 사용될 때는 디버프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동 속도 감소 디버프가 적용되어 당황한 궁수를 향해 상황을 파악한 손머리발발이 공격을 시도했다.

이동 속도가 감소되어 도망치지도 못하고 근거리 공격 캐릭터와 붙게 되자 궁수 캐릭터는 손도 쓰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런 궁수 캐릭터를 돕기 위해 나머지 두 명의 캐릭터가 다가오는데 어느샌가 그 두 명의 캐릭터 뒤로 은신 스킬을 썼던 영원한이등병이 나타났다.

[파티] 염소구더기: 와… 대박

초반부터 적군을 쓰러트리며 활약한 탓인지 영원한이등병은 벌써 궁극기의 쿨타임이 다 찬 상태였다.

자신들의 뒤로 누군가가 왔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적군은 영원한이등병이 궁극기를 사용하자 그제야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뒤는 항상 조심해야지.

영원한이등병의 캐릭터 성우가 비웃는 듯한 목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발밑에서 일렁거리던 검은 그림자가 그들을 덮쳤다.

이 광경을 옆에서 같이 지켜보고 있던 임해서가 눈을 반짝였다.

“헐, 한 번에 두 명이나 걸리네. 저거 궁극기 쓰면 상대편은 시야도 안 보이고 일시적으로 컨트롤 조작도 안 된다던데. 저 상태에서 레벨까지 차이 나면 궁극기 걸린 이상 죽음이지, 뭐.”

“컨트롤 조작도 안 돼?”

“엉. 그래서 저거 걸리면 겁나 짜증 난다더라.”

임해서의 설명대로 적군은 컨트롤 조작이 어려운 모양인지 궁극기가 걸린 그 상태로 가만히 서있었고, 영원한이등병은 그대로 두 명의 킬을 따냈다. 무척이나 손쉽게. 심지어 받은 피해도 없었기에 내가 버프를 줄 것도 없었다.

오히려 나는 도리두리에게 힐 버프를 주며 연신 감탄했다. 아무래도 이 게임은 우리가 쉽게 이길 모양이다.

크게 도움이 안 되는 물 정령은 이렇게 뒤에서 힐 버프만 주면 되겠지. 괜히 나서다가 죽는 게 더 방해일 테니까.

[염소구더기 님이 사망하였습니다.]

[전체] 개나소나: 자칭 랭커허접이ㅅㄱ

아차. 적군은 다섯인데 왜 나머지 두 명이 안 보인다고 의심을 안 했을까. 이럴 때는 뒤를 조심했어야 했는데.

우비를 입은 소녀 캐릭터가 바닥에 쓰러지며 희미해져 갔다.

손쉽게 내 뒤를 차지해 나를 죽인 마법사 캐릭터는 곧바로 영원한이등병에게 스턴 마법을 걸었다. 아무래도 원거리 타입의 오메가원보다는 이동 속도도 빠르고 대미지가 큰 영원한이등병을 경계했던 모양이었다.

내가 당하는 모습에 당황했던 모양인지 영원한이등병은 그 공격에 쉽게 당해 버렸고 일시적으로 캐릭터를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채팅창에 급하게 글이 올라왔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아 ㅈ됨, 다른 한 놈 어딨어?!

[파티] 손머리발발: 헐헐, 형님들! 저 죽었어요ㅠㅠㅠ

영원한이등병의 발을 묶고 오메가원이 서둘러 개나소나를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지만, 그 틈에 전사 캐릭터인 다른 적군이 등장해 손머리발발을 공격했다.

오메가원은 이미 개나소나를 상대하느라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여서 도리두리가 서둘러 영원한이등병을 지키러 움직였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악악, 이놈 보소! 치사하게 움직이지도 못하는 데 공격해?!

[파티] 손머리발발: 도리두리님 힘내요!!ㅠㅠ파이팅!!

하지만 도리두리가 막든 말든 교묘하게 뒤로 빠졌다가 다시 옆으로 돌아서 영원한이등병을 향해 스킬을 쓰는 적군.

결국 공격력은 강하지만 방어력이 약한 영원한이등병의 캐릭터는 스턴 스킬이 풀리기도 전에 죽고 말았다.

순식간에 5:2가 2:2가 된 상황. 심지어 도리두리는 영원한이등병을 지킨다고 스킬을 몇 번 대신 맞았더니 HP가 반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전체] 니면상도지랄: ㅋㅋㅋㅋㅋㅋㅋ

[전체] 니면상도지랄: 본캐도 별거없네

영원한이등병을 해치우고 전사 캐릭터의 칼을 휘두르는 모션을 내며 니면상도지랄은 타깃을 변경해 개나소나와 싸우고 있던 오메가원에게 향했다.

본인을 공격할 줄 알고 방어 자세를 취하던 도리두리는 당황해서는 한발 늦게 따라나섰다. 그대로 두 명에게 공격을 받게 된 오메가원은 검은 꽃 디버프를 상대편에게 걸어 이동 속도가 늦어진 틈에 스킬들을 피하고 있었다.

[파티] 오메가원: 존나힘드

[파티] 영원한이등병: ㅠㅠㅠㅠ우리 오메가형님 말도 못 끝내구 피해다니는 거 봐.

[파티] 영원한이등병: 조금만 참아요!! 저 6초 남음!

[파티] 손머리발발: 도리두리님도 피통 얼마없는데ㅜㅜ 아, 염소님 살아나셨다!

아니, 이 상황에서 내가 살아서 가봤자 무슨 도움이 되나요. 차라리 탱커면 저 사이에 끼어들어서 대신 맞기라도 하지. 이 캐릭터로 무슨 도움이 되라고……. 차라리 엄청 늦게 부활하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애초에 이런 상황이 오게 된 것도 내가 너무 쉽게 뒤를 잡혀 죽게 된 것이었기 때문에 안 갈 수도 없고, 상황이 곤란해져서 채팅을 쳤다.

[파티] 염소구더기:ㅈ됨

이렇게 곤란함을 표현했는데, 이걸 어떻게 해석했는지 채팅창이 시끄러워졌다.

[파티] 손머리발발: 왘ㅋㅋㅋㅋㅋ형님들 조금만 참아요!! 염소님이 상대편 ㅈ되게해준데여!

[파티]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존멋 방금 지릴뻔

[파티] 영원한이등병: 저 캐릭터로 개시크해ㅋㅋㅋㅋ

아니, 잠만. 나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닌데요?

내가 말한 의미를 잘못 해석한 모양인지 이상한 기대를 하는 팀원들 때문에 울상을 짓자 옆에 있던 임해서가 웃음을 터뜨렸다.

“야, 쟤들은 어시캐한테 뭘 바라냐. 겁나 웃기네.”

“그러니깐. 나보고 가서 어쩌라고. 힐밖에 할 게 더 있나.”

일단은 열심히 버티고 있는 도리두리와 오메가원에게 뛰어가는데 임해서가 자기 컴퓨터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야, 뭐 해! 나 오랜만인데 보고 조언 좀 해, 미친놈아!”

“기다려, 새끼야. 물 정령사 궁극기 찾아보는 중.”

“뭔데?”

“…이거 궁극기도 어시용인데? 광범위이긴 한데, 적들 디버프 걸어서 체력 초당 대미지 주는 건데……. 이거 써봤자 지금 적들 죽이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딜러도 없어서 쓰나 마나 인 것 같은데. 이 한타는 그냥 포기해야 할 듯.”

적군에게 디버프를 걸고 체력 초당 대미지를 준다고? 그래봤자 대미지가 크지는 않을 테고, 만약 영원한이등병이나 손머리발발처럼 딜러가 살아있을 경우에 이 궁극기를 사용하면 아군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살아남은 멤버는 세 명. 체력이 절반 이상 소모된 탱커인 도리두리와 일단은 힐러인―본인만 치료 가능하지만―오메가원.

한 방 딜러가 없는 이상, 물 정령의 궁극기는 별 필요가 없을 테지. 그렇다면 그냥 저 둘을 포기하고 그냥 영원한이등병과 손머리발발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더 좋은 판단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렇겠지. 하지만 저렇게 아군을 비웃은 상대편에게 죽어가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게다가 게임에 냉정함이 무슨 필요가 있어.

“야야, 포기하라니깐?”

“사촌 형이 그랬지. 남자는 후진 따위 없다고!”

“뭔 개소리야.”

“몰라, 될 대로 되겠지.”

이제 거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사이에 오메가원이 또 스킬을 써서 본인의 체력을 조금 회복한 모양이었지만, 옆에 있는 도리두리는 스턴 마법까지 다시 걸려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도리두리는 내가 오는 것을 맵에서 본 모양인지 채팅으로 말렸다.

[파티] 도리두리: 그냥 버려요. 어차피 무리

[파티] 염소구더기: 궁

이게 통할지 아니면 무모한 짓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궁극기를 쓰겠다는 뜻으로 짧은 대답 후 사각지대로 이동해 적군이 눈치채기 전에 궁극기를 시전했다.

다행히 오메가원이 생각보다 잘 버텨서 그에게 신경이 쏠린 탓에 궁극기를 시전하는 데 방해를 받지 않았다.

소녀의 어항 속으로 초대할게요.

광범위 스킬답게 거리는 좀 멀었지만 적군의 위치까지 궁극기가 시전되어 그들 밑으로 커다란 어항이 생겨나 적군을 모두 가두었다.

바로 옆에 있던 아군은 뒤로 튕겨내고 적군은 가두어 공격력, 방어력을 낮추는 디버프가 걸렸다.

적군의 캐릭터가 숨을 못 쉬는 모션을 취하면서 대미지를 조금씩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궁극기의 실행시간은 단 15초. 도망쳐 봤자 개나소나가 또다시 스턴 마법으로 한 명을 붙잡는다면 다시 비슷한 상황이 된다.

나는 서둘러 도리두리에게 회복 스킬을 시전했다.

[도리두리 님이 물의 정령 가호를 받습니다.]

[체력이 소량 회복됩니다.]

일단 내 계획은 탱커인 도리두리가 나머지 두 명이 살아날 때까지 버텨주었으면 하는 거였다. 그래봤자 정식 힐러 캐릭터가 아니라서 매우 소량만 회복되었지만.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버티지는 않을까, 하고 기대하던 그 순간이었다.

동료를 위한 제물은 너희들인가.

암속성의 힐러인 오메가원이 궁극기를 사용하였다. 본 속성이 힐러이기에 아무리 공격형 힐러라고 해도 딜러로서는 전혀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데 그런 내 생각을 비웃듯이 오메가원은 사신의 낫처럼 생긴 커다란 무기를 소환했다.

낫을 빠르게 휘두르며 개나소나의 몸을 베기 시작했고, 출혈 효과가 이어졌다.

성인 버전답게 화려하다. 개나소나의 캐릭터가 사망했다는 알림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아군에게도 알림이 울렸다.

[제물의 효과로 아군의 체력이 랜덤으로 50% 회복됩니다.]

[도리두리 님의 체력이 50% 회복됩니다.]

“미친…….”

물 정령의 궁극기가 동시에 끝나며 어항이 깨지는 모션과 함께 남은 적군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니면상도지랄이라는 적군은 서둘러 도망치려고 했으나 이미 상황은 3:1이었다.

체력을 거의 다 회복한 도리두리가 적군의 앞길을 서둘러 막아섰고, 막아서는 동안 내가 평타를 날렸는데 그게 다섯 번이 됐는지 적군이 시야를 잃어 방향을 잡지 못했다.

그런 적군을 향해 오메가원은 우리 팀에게도 엄연히 존재하는 딜러들이 오기도 전에 스킬을 시전했다.

적군의 목을 검은 쇠사슬이 감싸고 적군의 체력을 모두 흡수해 순식간에 2Kill을 가져간 오메가원.

졸지에 우리 팀은 딜러가 세 명이 있는 듯한 효과를 보여주며 그 이후로 무서울 만큼 쉽게 게임에서 승리해 버렸다.

어찌 보면 학살 같다고 할까. 적군이 살아나는 대로 기다렸다고 죽여 버렸으니…….

그 와중에 스킬을 쓰면서 계속 자기만 회복하는 암힐러라니.

힐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군에게 몇 번 죽었다. 그나마 다른 아군들은 물 정령의 스킬로 회복해 줘서 덜 죽었지만.

게임이 끝나고 파티원들이 서로 친추를 하자고 제안해 오는 것에 동의하며 친구 추가를 수락했다.

그리고 한 번 더 진지하게 드는 고민.

‘이 게임의 최강 캐릭터는 암힐일 지도. 진짜 거너는 때려치우고 암힐로 갈아탈까?’

* * *

친구 목록에 순식간에 네 명이 늘어났다. 좋은 유저들을 만난 것 같아서 내심 뿌듯했다. 게임을 더 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는 도리두리에게 정중히 거절의 메시지를 보냈다.

아직은 복귀 유저라서 적응 기간이 필요한 듯해 혼자 연습해 보겠다는 거절 멘트를 도리두리는 쿨하게 받아들였고 다음에 같이 만나자는 말을 끝으로 파티는 끝이 났다.

“더 안 하고? 같이 해서 레벨 좀 올리지.”

“일단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까 좀 알아보려고. 난 속성도 새로 생긴 줄 몰랐네.”

힐러면 그냥 힐러여야지, 암속성 힐러라니. 그 말은 즉 거너를 포함한 다른 캐릭터도 그렇다는 뜻이겠지?

내 레벨은 이제야 레벨 4. 좀 전에 게임승리로 레벨이 오른 모양이다. 초반에는 원래 잘 올라가니까 별로 놀란 일도 아니긴 하지만.

레벨 30도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올리겠지.

“속성별로 상성이나 특이사항 같은 거 있어?”

“뭐, 상성이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다른 건 없긴 하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물 속성이 불 속성한테 상대적으로 좀 강한 편이야.”

하지만 결국 컨트롤이 뛰어나면 그것도 큰 의미는 없다고 덧붙이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게임은 아무리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어도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뛰어나야 빛을 보는 법이니깐. 그래서 항상 내 캐릭터들은 똥이었지.

아련한 눈빛으로 과거를 떠올리던 나는 컴퓨터 화면을 빤히 쳐다보았다.

물 속성의 마법사. 치유 스킬을 포함한 어시스트 캐릭터.

귀엽기는 하지만 큰 한 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치유 스킬을 보유한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어시스트.

하지만 레벨 30이 되기 전까지는 이걸로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기껏 레어 코스튬이 나오기도 했으니깐.

우선은 스킬부터 확실히 알고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에 캐릭터 설명을 보기로 했다. 키나 국적 따위의 상세 정보는 필요 없고 스킬 정보만.

‘여기 있네. 기본 평타 5회 이상 타격 시 적군 시력 3초 상실. 기본 스킬은 물의 정령 가호로 아군 HP 소량 회복.’

여기까지는 아까 임해서가 말해 준 내용이고 뭔가 다른 게 있나 싶어서 보는데 회피기가 있었다.

슬라이딩을 하듯 미끄러져서 피하는 기술. 하지만 연습장에서 시험해 본 결과 큰 이동은 없었고 공격을 받기 직전에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할 듯싶었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꽈당, 넘어지며 울상을 짓는 캐릭터가 빙글빙글 자리에서 돌며 슬라이딩을 한다. 덩달아 들고 있던 나뭇잎 우산도 빙글빙글.

귀여워……!

차마 대놓고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입술을 실룩거렸다.

궁극기는 어항 속에 적군을 가둬 디버프 및 초당 대미지 감소. 하지만 공격 기술은 아니고 내가 이 기술을 썼을 때 다른 아군의 협력이 있어야 괜찮은 기술일 듯싶었다.

‘역시 혼자 딜을 하고 다니기에는 무리겠네.’

게임은 킬을 해야 재미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캐릭터를 하자니 레어 코스튬이 아깝고.

한숨을 내쉰 나는 거너 캐릭터를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만 즐기자고 생각하며 게임에 접속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난입이 아닌 모양인지 처음부터 캐릭터를 고를 수 있었다.

물 속성 마법사를 선택하고 잠시 멍하니 기다리는데 파티 채팅창으로 올라오는 글 하나가 보였다.

[팀] 개나소나: ? 뭐야. 왜 쪼렙이 매칭됨? ㅁ1쳤네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나?

눈을 다시 비비고 봐도 재수 없는 닉네임이 그대로 보인다.

저놈 레벨이 나랑 얼마나 차이 나는데 같이 매칭이 돼? 물론 저세상 레벨은 아니긴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엄청 쪼렙이라고!!

[팀] 개나소나: 적팀에도 쪼렙있나

[팀] 개나소나: 아 망했네 자칭 랭커허접이랑 같은 편이라니

저놈도 비슷한 마음인지 채팅창으로 불만을 계속 쏟아낸다. 타자가 얼마나 빠른지 아무도 반응도 없는데 혼자서 중얼중얼 계속도 올린다.

[팀] 발굴쓰레기: ?

[팀] 개나소나: 저 염소구더기 본캐 랭커ㅋ 얼마나 잘하는지 보삼

저 새끼가! 또다시 가라앉았던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뻔히 제대로 못 하는 거 알면서 일부러 저러는 게 분명하다.

뭣도 모르는 같은 편들은 오, 하는 짧은 감탄사를 채팅에 올린다.

[팀] 염소구더기: ㄴㄴ 거너 한정

[팀] 염소구더기: 오랜만에 해서 잘 못 해요. 양해 좀

[팀] 개나소나: 아까랑 말이 다르네? 실력 들킬까 봐 쫄림?

“아, 미친놈이.”

왜 게임에는 꼭 이렇게 혈압을 올리는 놈들이 있는 거지? 남들한테 시비를 안 걸면 큰일 나는 병이라도 걸렸나?

[팀] 발굴쓰레기: 상관없음. 편하게 ㄱㄱ

그 와중에 아군으로 매칭된 팀원은 다행히 개나소나의 행동에 크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조금 안심하며 개나소나 채팅은 무시하고 게임을 할 준비를 하는데 전체 채팅으로 무언가 올라온다.

[전체] 개나소나: 염소구더기 랭커니까 다들 알아서 피해다니시길ㅋㅋㅋㅋ

[전체] 개나소나: ㅜㅜ무섭~ 방금 나도 두들겨 맞고 이번에는 같은 편 됨ㅋㅋㅋㅋ야호!

…저 새끼 은근 지능적으로 엿 먹이는데?

목 뒤로 뜨끈뜨끈한 기운이 올라온다.

아, 혈압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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