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07. 특명: 공주님을 지켜라! (8/21)

목차

07. 특명: 공주님을 지켜라!

08. 동경의 대상

09. 현상 수배 이벤트

10. 길어지는 꼬리

11. 길드원 비상 소집

12. 뉴 페이스

13. 꼬리가 길면 밟힌다 (1)

07. 특명: 공주님을 지켜라!

나는 나대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정작 문정하는 귀가 빨개진 채 여전히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지언이 너는 뭘 믿고 그렇게 귀여워?”

“그러는 선배님은 뭘 믿고 낮술 하셨어요? 시력이 제정신이 아니신 것 같은데.”

“아닌데.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귀여운데.”

“…적군 동태나 이리 보고 저리 보시죠.”

차마 대놓고 눈깔 돌리라는 말은 할 수가 없어서 돌려서 말하니 문정하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형으로 안 불러줘?”라는 헛소리를 하는 것 같았는데 무시했다.

다행히 적군이 매우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다시 게임에 집중한 문정하 덕분에 이번 판은 수월하게 이길 수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한 게임을 이기니 손지우도 나름 기뻤던 모양인지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 나쁘지는 않네.”

“한 판 더 할래요?!”

“됐거든.”

“어차피 한 시간이면 한 번 더해야 하는데. 아, 그러고보니 손지언! 다음 주부터 더쎄 이벤트 한다던데 봤음?”

“이벤트?”

“엉. 공지 사항에 있는데 한번 읽어봐. 재밌을 것 같던데.”

임해서의 말에 더 세이렌의 공지 사항을 들어가 보았다. 문정하는 굳이 본인 컴퓨터를 놔두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현상 수배 이벤트?”

작성자: GM골롬포스

제목: 현상 수배 이벤트 안내

내용: 안녕하세요, 더 세이렌 유저 여러분.

이번에 더 세이렌에서는 유저님들이 더 색다른 기분으로 즐겼으면 하는 마음에서 새로운 이벤트를 도입해 보았습니다.

[현상 수배] 이벤트는 일정 기간에 등록된 다섯 명의 유저가 한 팀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한 명의 유저를 선택하여 그 유저를 집중적으로 노리는 방식입니다. 이전에 진행했던 이벤트에서 건물을 공격하던 방식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현상 수배에 지목된 유저에게는 현상금이 주어지며, 최초로 지목된 유저를 처치한 유저에게는 랜덤 보따리 다섯 개, 이긴 팀의 유저들에게는 랜덤 보따리 한 개를 증정합니다.

랜덤 보따리의 보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상 수배 이벤트는 한 달 동안 시행할 예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글귀들 밑에는 보상 목록이 있었는데 쭉 둘러보다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헐. 히든 코스튬 캐릭터 지정권? 이런 것도 준다고?

게다가 지금은 더 이상 판매하지 않는 금빛 테두리의 검은 망토를 포함한 히든 액세서리들이 잔뜩 있었다. 물론 별 볼 일 없는 것도 존재하기는 했지만.

이 망토 진짜 갖고 싶었는데!

“야, 임해서 같이하자!”

“쏘리. 나 이미 우리 길드원들이랑 하기로 함.”

매정한 놈.

이벤트 공지 사항을 보니까 다섯 명의 팀원을 모아서 그 팀원들끼리만 해당 기간 동안 게임을 해야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확실히 잘하는 사람들이랑 팀을 이루는 게 유리하다. 많이 이겨서 랜덤 보따리를 많이 얻을수록 원하는 게 나올 확률이 높으니까.

“지언아, 나랑 할래?”

“아니요.”

“왜?”

왜긴 왜야, 염소구더기로 같이 못 하니까 그렇지. 아니, 물론 염소구더기로 접속해서 개나소나한테 같이 할 생각 있냐고 물어볼 거긴 하다. 하지만 지금 같이한다고 대답할 수는 없지.

개나소나도 실력이 나쁘지 않으니 같이 하면 좋겠지. 그럼 남은 세 명은 어떻게 하지? 아는 유저들이 없는데.

이럴 때는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게 조금 아쉬웠다.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다면 서로 잘하는 캐릭터로 조합을 만들어서 팀을 짜면 되는데.

한 시간으로는 게임에 큰 재미를 붙이지 못한 손지우의 재촉으로 우리는 아쉽게 피시방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문정하가 더 같이 있고 싶다는 분위기를 비추길래 서둘러 임해서를 자취방으로 끌고 왔다.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 좀 쓴다는 임해서의 부탁을 허락해 주고 노트북으로 더 세이렌을 켰다. 현상 수배 이벤트에 대해 조금 더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는데 접속하자마자 귓말이 들어왔다.

[귓말] 영원한이등병: ㅎㅇㅎㅇ

“응?”

익숙한 닉네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의 귓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영원한 이등병이라면 지금 개나소나보다 레벨도 높고 개나소나를 가지고 놀았던 전적이 있던 유저다(물론 당시 개나소나는 마법사 캐릭터였지만).

암흑 속성의 도적 캐릭터. 숨어있는 지정된 적을 노리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혹여나 놓쳐도 거너를 들고 있는 내가 숨어서 노려도 좋기도 하고.

대어구나.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귓말] 염소구더기: 안녕하세요ㅋㅋㅋ

[귓말] 영원한이등병: 레벨 생각보다 많이 올렸네?

확실히 초반부에 레벨이 빨리 오른다고는 해도 그동안 열심히 게임에만 올인 했던 보람이 있었다.

영원한이등병의 감탄에 속으로 뿌듯해하고 있는데 그의 레벨은 178. 처음 만났을 때 레벨이 170이었던 걸 떠올리면 크게 오르지는 않은 상태였다.

[귓말] 염소구더기: 이등병님은 바쁘셨나 봐요.

[귓말] 영원한이등병: ㅠㅠㅠ 시험 기간이라서 엄마한테 감금됨…….

[귓말] 염소구더기: ㅋㅋㅋㅋㅋ

아직 학생이었구나. 닉네임 때문인가, 아니면 게임을 잘해서 그랬나. 당연히 저와 비슷한 또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사실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고등학생인가? 물어볼까 하다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가만히 있었다. 이내 영원한이등병이 말을 이었다.

[귓말] 영원한이등병: 아직 중3인데 ㅠㅠㅠ 근데 이번 성적 생각보다 잘 나와서 엄마가 키보드 새로 사주기로 했지롱 ⁽⁽◝( ˙ ꒳ ˙ )◜⁾⁾

[귓말] 염소구더기: 중3이셨구나ㅋㅋㅋ 더 나이가 많을 줄 알았는데

[귓말] 영원한이등병: 게임 실력이 어른스러워서?!

[귓말] 염소구더기: ㅎㅎ 인정합니다

나이를 알고 들어서 그런가. 귀엽네.

큰 볼일을 마치고 나온 임해서가 시원하다는 얼굴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굉장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고 얼른 문을 닫으라는 눈빛을 보내니 서둘러 문을 닫고 옆으로 다가왔다.

“더쎄 하려고?”

“아니. 현상 수배 이벤트 좀 알아보려고 했지. 너네 멤버도 다 정했어?”

“멤버는 이제부터 조합보고 정해야지. 그전에 팀도 한 번 짜서 게임도 몇 번 해봐야 하고. 지금 시험 기간 끝나서 학생인 길드원들도 참여 많이 해서 이번 이벤트 꽤 흥할 듯.”

“한 달만 하는 거였지?”

“엉. 임시로 해보고 아마 반응 괜찮으면 나중에 정식으로 도입하지 않을까. 솔직히 건물 두고 5대 5로 계속 싸우면 질리잖아.”

“그건 그렇지.”

물론 현상 수배 이벤트를 얼마나 잘 준비했을지 봐야 알겠지만.

“그거 아마 이벤트성이라서 레벨 차이 상관없이 매칭될 거야. 그러니까 레벨 높고 잘하는 유저들이랑 팀을 짤수록 유리해지겠지.”

“아니면 고렙끼리 뭉칠 수도 있고?”

“그렇지. 만렙들도 지금 많으니까.”

물론 이벤트에서 가장 많은 활약을 한 팀에게는 별도로 더 큰 혜택이 주어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거기까지는 관심 없었다. 목표는 오로지 레어 코스튬. 거너에게도 레어 코스튬을 입히고 만다!

[귓말] 영원한이등병: 오랜만에 같이 게임 하실? ㄱㄱ

[귓말] 염소구더기: 좋은데 지금은 친구 있어서 무리요 ㅠ 현상 수배 이벤트 정보 찾으러 온 거라서

[귓말] 영원한이등병: 아하 저도 방금 보고 왔는데 재밌어 보이던뎁. 5명 팀 올려서 하는 거라면서?

[귓말] 염소구더기: 네, 저도 하고 싶은데 아직 팀을 못 구했네요

[귓말] 영원한이등병: 그럼 저랑 하실?

“이 사람 저번에 그 사람 아니야? 레벨 높던 암흑 속성 도적.”

임해서가 게임 화면을 보고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쉽게 먼저 권해 준다고? 물론 나도 같이하자고 꼬시려고 하긴 했지만…….

[귓말] 염소구더기: 괜찮으세요? 저 잘 못하는데

[귓말]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뭐, 어때요! 재밌으라고 하는 건데. 5명이면 남은 3명도 모아야겠네

[귓말] 영원한이등병: 다음 주부터 시작이니까 빨리 모아서 연습해 봐야 할 듯. 한 명씩 모아 올래여?

[귓말] 염소구더기: 저 자주 하는 사람 있는데 전사 캐릭터 쓰거든요.

[귓말] 영원한이등병: 근딜 있으면 좋져. 님은 여전히 물 정령?

[귓말] 염소구더기: ㄴㄴ 저 지금은 거너 주로 해요

염소구더기, 거너. 개나소나, 전사. 영원한이등병, 도적. 원딜1, 근딜2. 그렇다면 탱커가 필수적이었다.

[귓말] 영원한이등병: 탱커 필요하네. 일단 한 명씩 데리고 오는 걸로 콜?

[귓말] 영원한이등병: 탱커 있으면 좋은데 정 없으면 제가 해도 됨

[귓말] 염소구더기: 그럼 저도 알아볼게요. 레벨 제한 있나요?

[귓말] 영원한이등병: 아뇨! 저 즐겜러라 매너만 좋다면 못해도 괜춘

아. 매너라고 하니 생각나는데 개나소나랑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그 당시에는 개나소나가 시비를 걸었으니 잘못한 거긴 하지만.

…개나소나랑 같이하는 거라고 하면 안 한다고 하려나? 미리 말할까 하다가 입을 닫기로 했다.

여기서 영원한이등병을 놓칠 수도 없고 개나소나가 뭐라고 또 시비 걸려고 하면 이제는 내가 막을 자신도 있었으니까.

[귓말] 염소구더기: ㅎㅎ그럼 제가 친추할게요. 구하면 쪽지 주세요

[귓말] 영원한이등병: ㅇㅋ~ 내일까지 알아볼게여

[귓말] 영원한이등병: 그럼 저 겜 하러 갑니다 ㅂㅂ

[귓말] 염소구더기: 넹

“너 주변에 아는 탱커 있어?”

“한 명 있긴 한데 하려나 모르겠네.”

임해서의 질문에 친구 목록을 보았다. 굉장히 적고 소중한 숫자의 유저들이 목록에 있었는데 그중에서 보이는 닉네임 하나, 모타리.

생각보다 탱커를 잘하기도 했고 나름 매너도 있고 하자고 하면 바로 할 것 같기는 한데. 영원한이등병도 레벨은 크게 상관없다고 했으니…….

잠깐 고민하다가 모타리에게 현상 수배 이벤트를 같이할 건지 묻는 내용의 쪽지를 보냈다.

보아하니 게임을 자주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 오늘 밤까지 쪽지 답장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알아봐야 할 텐데, 다른 사람은 누가 있더라.

“그보다 문정하 선배가 설마 개나소나일 줄은. 나 완전 손 덜덜 떨렸잖아.”

임해서가 침대에 편하게 드러누우며 얘기했다.

“아니, 그러니까. 대한민국 너무 좁은 거 아니야? 같은 대학 선배인 것도 모자라서 지우 형이랑 친구라니.”

“이 정도면 운명인 듯. 근데 전사 생각보다 잘하시던데? 이벤트 같이하자고 해봐. 보니까 너 되게 예뻐라 하는 것 같던데.”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라는 눈빛으로 쳐다보길래 시선을 피했다. 차마 바퀴벌레 한 마리를 잡아줘서 그랬다고는 내 입으로도 말하기가 민망했으니까.

그 선배는 꼭 좋아하는 사람한테 작업을 거는 것처럼 나에게 극호감을 보였다.

“직접 얘기할 생각은 없긴 하지만 같이 나가긴 할 듯.”

오프라인으로 되어있는 개나소나에게도 쪽지를 보냈다. 문장은 짧았고 권유도 아니었다.

[현상 수배 이벤트ㄱㄱ 남은 팀원도 모으는 중.]

통보이자 상황 보고였다. 게임을 자주 하기도 하고 어차피 나랑 계속 파티를 해서 레벨을 올릴 생각이던데 상관없겠지.

“내가 염소구더기라는 건 모르지만 게임은 같이하거든.”

“엥. 뭐야, 친해졌어?”

“친해진 건 아니고 아는 지인이 원딜 한다고 원딜 보조 연습한다고 그러더라고. 거너 하는 나보고 같이 팀 하자고 했어.”

“아는 지인?

“그거 아마 손지언일 듯.”

“……?”

“쉽게 말해서 현실 손지언에게 도움되는 근딜이 되기 위해 게임 속 손지언에게 같이 게임 하자고 하는 중.”

임해서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이게 거짓말인가 콩트인가 가늠하는 동태 눈알이었다. 그러다가 이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와, 미친. 이게 상황이 이렇게 이어진다고? 진짜 그 선배랑 무슨 운명의 상대야?”

“개소리 하지 마라.”

“아니, 진심! 어떻게 엮어도 이렇게 엮이냐? 게다가 현실이랑 게임이랑 너한테 대하는 태도가 정반대잖아.”

아니, 오늘 보니까 게임 성격이 원래 성격인 것 같기는 한데.

임해서가 인상을 찡그렸다.

문정하는 같은 남자가 봐도 분위기 있어 보이는 미남이었다. 차가워 보이는 분위기에 실제로 성격도 쌀쌀맞고.

임해서는 피시방에서 있었던 행동들을 떠올리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혹시 너 짝사랑하는 중이시래?”

“개소리하지 말라니까.”

“아니, 아무리 지우 형 동생이라고 해도 너무 예뻐하던데. 귀여워하는 동생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뭐랄까……. 아, 애매한데. 사랑에 빠졌다고 하기에도 오버고.”

임해서가 딱 알맞은 비유를 고심하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반려견 애교 부리는 거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엄청 예뻐라 하는 모습? 반려견이 더 어울리겠다!”

“…….”

“왜, 나도 우리 바둑이가 배 발라당 뒤집고 애교 부리면 무장 해제하고 웃음 짓는단 말이야. 약간 그런 느낌임!”

개소리하지 말랬더니 개새끼 취급을 해버리는 건가.

말대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어쨌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문정하가 나를 다르게 대하는 것 같긴 한가 보구나.

그런 사람이 내가 염소구더기라는 걸 알면 어떨까? 게임에서도 잘해주려고 계속 들이댈까? 아니면 내숭은 집어치우고 시비를 걸려나.

현실에서 시비를 거는 문정하의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마 전자가 더 현실성이 높겠지. 집적거리는 개나소나보다 시비를 거는 개나소나가 훨씬 더 편했다.

‘절대 안 들켜야지.’

하지만 멍청한 나는 그때 놓친 점이 있었다. 정말로 들킬 생각이 없었다면 개나소나랑 모타리를 마주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 * *

현상 수배 이벤트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문정하는 집에 가자마자 게임에 접속한 모양인지 쪽지를 확인하고 바로 귓말을 보내왔다.

[귓말] 개나소나: 현상 수배 이벤트 하려고?

[귓말] 염소구더기: ㅇㅇ 코스튬 받고 싶음

[귓말] 개나소나: 그러든가. 근데 남은 팀원은? 5명 팀 정해서 이벤트 기간 동안 같이해야 하잖아

[귓말] 염소구더기: 한 명은 구함. 도적이라서 탱커 구했으면 좋겠는데 아는 사람 있음?

[귓말] 개나소나: 친추 목록에 너 하나임

[귓말] 염소구더기: ㅇㅎ ㅇㅋ

나보다 더한 놈이네. 하긴 그렇게 시비를 걸고 다니는데 주변에 사람이 남아있을 리 없지. 현실에서는 그래도 멀쩡한 얼굴이 있으니 다가올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개나소나는 예상대로 참여하기로 했고 남은 두 명이 문제인데. 그래도 영원한이등병은 성격이 좋으니까 아는 유저도 많겠지? 정 안 되면 홈페이지에 팀 구한다는 게시글을 올린 유저들을 찾아 아무나 데리고 하면 되고.

[귓말] 개나소나: 게임 ㄱㄱ?

게임을 하자고 묻는 개나소나의 말에 잠깐 망설이다가 침대에 누워있는 임해서를 바라보았다. 누워서 휴대폰을 보고 있는 놈을 빤히 쳐다보자 시선을 느낀 임해서가 휴대폰을 본 채 물었다.

“왜?”

“나 게임 해도 됨?”

“언제부터 내 허락을 맡았다고. 마음대로 해. 나는 폰 좀 보다가 낮잠이나 잘래.”

“그래. 더우면 에어컨 틀어.”

“감사.”

기다렸다는 듯 바로 에어컨을 틀며 콧노래를 부르는 임해서의 모습을 보다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개나소나에게 채팅을 쳤다.

[귓말] 염소구더기: ㅇㅋ 내가 초대함

[개나소나 님에게 파티를 신청하였습니다.]

[개나소나 님이 파티 초대를 수락하였습니다.]

기왕 하는 거 영원한이등병도 불러서 팀워크가 맞는지 한번 볼까? 다행히 친구 목록을 보니 방금 한 판이 끝난 모양인지 게임 접속 중이라는 알람은 뜨지 않았다.

영원한이등병에게 같이 게임을 하겠냐고 귓말을 보내니 바로 수락을 하길래 파티 초대를 보냈다.

[영원한이등병 님이 파티 초대를 수락하였습니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하이하이

[파티] 개나소나: ?

[파티] 영원한이등병: ?!

[파티] 염소구더기: ㅎㅎ 인사하세요. 현상 수배 이벤트 같이할 팀원들입니다. 홍코너 개나소나, 청코너 영원한이등병.

예상대로 서로의 닉네임을 보자마자 의아함과 경악이 담긴 물음표가 떴다. 분위기를 풀 겸 재미도 없는 농담을 던져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뻘쭘하네. 역시 미리 고지는 했어야 했나.

설마 영원한이등병이 갑자기 안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때는 개나소나를 버려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파티 채팅이 올라왔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아니, 염소님;; 이게 무슨 일이고

[파티] 영원한이등병: 제가 아는 그놈 아님??

[파티] 영원한이등병: 염소님, 난입으로 들어왔던 판에서 ㅈ같이 시비 걸던 놈?

역시 중딩은 필터링 없이 내뱉는 걸 잘했다.

매너만 좋으면 레벨이 낮아도 상관없다던 영원한이등병은 역시나 레벨은 높아도 똥매너에 똥인성인 개나소나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파티] 개나소나: ㅋㅋㅋㅋ? 설명 좀, 염소야.

다정한 척 부르는 개나소나도 좀 소름 끼치기도 하고.

[파티] 염소구더기: ㅎㅎㅎ아니 둘 다 진정 좀. 일단 개나소나랑은 어쩌다 보니 같이 겜을 하게 됐는데 처음에 있었던 일은 반성하고 있다네요

[파티] 개나소나: ?

[파티] 영원한이등병: ? 저놈이? 혹시 협박당하고 있어요……?

[파티] 염소구더기: 협박은 아니고…….

[파티] 염소구더기: 나름 할 만해서 데리고는 다닙니다

[파티] 개나소나: 취급 보소

[파티] 염소구더기: 그러니 이등병님 노여워하지 마시고 옛일은 잊고 함께 해주시면 안될까요……. ㅎㅎ

[파티] 영원한이등병: 아니… 솔직히 좀 그렇긴 한데…….

안 돼, 제발. 나가면 안 돼.

영원한이등병의 딜이 나쁘지 않았기에 이대로 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이번 이벤트는 지목당한 적군 한 명을 암살하기만 하면 끝이다. 그러니 암살 캐릭터를 잘하는 유저가 있을수록 유리하다는 말씀.

[귓말] 염소구더기: 야 빨리 무릎 꿇고 빌어봐

[귓말] 개나소나: 게임이라서 무릎은 못 꿇을 듯ㅋ

[귓말] 염소구더기: 이등병님 착한 분이니까 사과 한 번만 하라고 ㅡㅡ

[귓말] 개나소나: 내가 죽일 놈이네

[귓말] 염소구더기: 그거까지는 아닌데, 근접하기는 함

[귓말] 개나소나: ?

[파티] 개나소나: 할 건지 말 건지 결정 빨리 좀. 게임 하게

아니, 저 미친놈이? 사과를 하라니까 저렇게 뻔뻔하게 나온다고?

앓는 소리를 내며 이마를 감쌌다.

망했다. 분명히 영원한이등병은 못하겠다고, 이대로 나가겠지. 그렇다면 누구를 데리고 와야 하지? 내가 아는 유저 중에 괜찮은 유저가 있었던가?

짧은 시간 내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끙끙 앓는데 영원한이등병의 채팅이 올라왔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일단 한 번 해봐여

[파티] 염소구더기: 헐, 진짜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염소님 인성은 믿으니까

[파티] 영원한이등병: 게다가 둘이 친해져서 잘 풀어낸 거면 다행이죠.

어른스러워!

말을 바꿀까 봐 서둘러 게임 시작 버튼을 눌러놓고는 감탄했다. 솔직히 어린 나이라서 감정에 충실해서 기분 나쁘다고 말도 없이 파티에 나가는 상상도 했는데. 개나소나보다 훨씬 낫다.

개나소나에 대한 내 취급은 한없이 열악하지만 그는 모르겠지. 알아도 상관없지만.

[파티] 영원한이등병: 저 그럼 도적 합니다? 전사랑 거너죠?

[파티] 염소구더기: 넹, 편하게 말하세요. 말 놓으셔도 됨

[파티] 영원한이등병: ㄱㅅㄱㅅ

[파티] 개나소나: 편애 쩌네

[파티] 염소구더기: 편애 받을 행동을 하고 하시죠? ^^

[파티] 개나소나: 킬 떠먹여 주잖아

[파티] 염소구더기: 지 다 처먹고 찌꺼기만 던지더만

[파티] 개나소나: 저격으로 알아서 막타 노리라니까?

[파티] 염소구더기: 일부러 사각 지대로 데리고 가서 때리는 거 모를 줄 아냐? ㅡㅡ?

[파티] 개나소나: ^^?

누구를 바보로 아나.

게임이 매칭되고 우리 세 명은 약속했던 캐릭터를 선택했다. 랜덤으로 매칭된 아군의 나머지 두 명은 궁수와 물 정령이었다. 딜러 네 명과 어시 한 명이라니. 조합 끝내주네.

[팀] 탱커바리: 님들 우리 수배 이벤트 연습 해보실? ㅋㅋㅋ우리끼리 적군 한 명 정해놓고 그놈 누가 제일 많이 죽이나

[팀] 영원한이등병: 이벤트는 먼저 죽이는 놈이 끝 아님?

[팀] 탱커바리: 어차피 이거는 한 번 죽인다고 끝나는 건 아니니까 우리 룰에 맞춰보죠

[팀] 탱커바리: 제일 많이 킬 하는 사람한테 게임 끝나고 참 잘했어요 도장 찍어주기 어떰?

게임이 한 판씩 끝날 때마다 아군들 중에서 가장 잘한 이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자니, 보통은 그 도장을 받는다고 별다른 혜택이 있는 건 아니었기에 무시하고 다음 게임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주 간혹 정말 억 소리 나게 잘하는 유저들에게 몰표가 쏠리거나 하면 보람 정도는 느낄 수 있겠지.

[파티] 영원한이등병: 재밌겠다! 우리 해보자! ㅋㅋㅋㅋㅋㅋ 어차피 팀워크 봐야 하니까!

[파티] 개나소나: 팀워크보다는 경쟁이겠네ㅋ

[팀] 탱커바리: 적군 누구 노릴래요?

그러고 보니 이벤트에서는 게임 시작 전에 적군 한 명을 임의로 선정해서 그 캐릭터만 노린다고 했다. 탱커바리의 제안에 적군을 바라보았다.

탱커1, 딜러2, 어시1, 힐러1. 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제일 죽이기 쉽거나 피 통이 짧은 힐러나 어시캐겠지.

[팀] 영원한이등병: 힐러 혈압 올리러 가실 분?

[팀] 염소구더기: 22

[팀] 탱커바리: ㅋㅋㅋㅋㅋㅋ333 어차피 힐러부터 먼저 노려야 하는 건 맞으니까

[팀] 백반집에밥이없어: 찬성ㅇㅇ

[팀] 개나소나: ㄱ

전원 찬성이었다. 적군들은 모르는 아군들만의 작은 이벤트.

게임이 시작되자 전원 모두 적군 건물 방향이 아닌 아군 건물 방향으로 달렸다.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팀]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님들은 건물 치러 가셔야지! 암살은 도적이 국룰이지!

[팀] 탱커바리: ㅋㅋㅋㅋㅋ그렇게 혼자 힐러 밥을 냠냠 드시겠다?

[팀] 백반집에밥이없어: 어림도없는소리

아군은 우리끼리 정한 이벤트가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나도 좀 흥미가 생기긴 했다. 매번 눈치 보다가 건물만 깨부수는 게 재미가 없어지려던 참이었는데.

아군 건물을 치는 탱커와 딜러들이 보였다. 어시캐와 힐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뒤에 숨어있겠네.

우리 모두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적군을 무시하고 양쪽으로 갈라져 뒤로 되돌아갔다. 마치 사전에 작전이라도 짜고 움직인 것처럼 망설임 없는 움직임이었다.

개나소나와 나만 지뢰밭으로 이동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몰래 숨어있던 어시캐가 놀라서 서둘러 뒤로 움직이려는 것이 보였다. 그런 어시캐를 개나소나의 전사 캐릭터가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그리고 궁극기를 켠 개나소나가 HP를 확 줄여놓은 어시캐의 머리를 정확하게 맞혔다.

붉은 섬광이 쏘아져 나가고 1Kill이 머리 위에 뜨는 것을 보자마자 뒤로 후퇴했다. 저격 소리를 들은 탱커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파티] 개나소나: ㅋ? 인성 보소. 킬도 뺏고 버리고 간다고?

[파티] 염소구더기: >_<

[파티] 개나소나: 우웩

탱커에게 시야가 노출된 개나소나가 열심히 맞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며 이모티콘을 날리니 개나소나가 토하는 시늉을 해 보인다.

좀 전에 피시방에서는 심장 떨려서 게임 못하겠다더니, 여기서는 속이 울렁거려서 게임을 못하겠는 모양이다.

[영원한이등병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팀] 영원한이등병: 냠냠!

[팀] 탱커바리: 아닠ㅋㅋㅋㅋ 거기서 이속을 빨고 간다고?

[팀] 백반집에밥이없어: 킹받네;; 이제 이 구역의 도핑남은 내가 되어보겠다

[팀] 탱커바리: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사람들 점점 진심인데? 내 궁극기 이제 힐러 전용이다 ^^

아무래도 힐러를 처음으로 죽인 유저는 영원한이등병인 모양이었다.

확실히 도적 캐릭터가 기본 이동 속도도 빠르고 한 방 스킬이 강하니까 암살에 좋긴 하지. 역시 영원한이등병이랑 같은 편이 된 건 좋은 선택이었어.

[파티] 개나소나: 진심 구해줄 생각 없음?

[파티] 염소구더기: ㅇ좀만 더 버텨. 적군 오는 중

[파티] 개나소나: 대놓고 미끼로 쓰겠다니

탱커가 때리는 게 얼마나 아프다고. 전사의 방어력은 거너보다는 좋다. 그런데도 저렇게 엄살이라니. HP도 별로 안 닳았네.

힐러를 죽인 아군들이 합류하겠지 싶어서 지켜보는데 그들은 유유히 개나소나를 지나쳐서 아군 핵심 건물로 돌아갔다.

합류하지 않고 이동하는 중간에 길을 방해하는 딜러들만 죽일 뿐이었다.

[팀] 탱커바리: 아, 내 소중한스킬; 힐러한테 쓰려고 아껴두고 있었는데

[팀]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개나소나님 파이팅

[팀] 백반집에밥이없어: ㅈㅅ 거기 도와주는 동안 힐러 뺏기면 안되니까 알아서 살아남기를

과연. 현상 수배 이벤트가 시작되면 이런 상황이 펼쳐지겠구나. 아군은 죽든 말든 큰 피해는 없으니 내버려 두고 지목된 적군만 확실히 죽으면 되니까. 그럼 탱커도 딱히 필요 없나? 그래도 거너 지키는 탱커가 한 명 있으면 좋긴 한데.

[팀] 개나소나: ㅋㅋ팀워크 ㅁ1쳤네. 마음에 든다

내 칼이 오늘도 붉게 물들겠군.

아무도 도와주겠다며 나서지 않자 결국 개나소나가 궁극기를 사용했다.

적 탱커의 HP가 눈에 띄게 줄기는 했지만 죽지는 않았다. 반면에 지속적으로 대미지를 입은 개나소나의 HP는 이미 많이 줄어든 상태라 간당간당했다.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그 모습을 보고 궁극기를 켰다. 덩치가 큰 탓에 헤드샷을 노리기는 편했다. 한 방, 두 방. 정확히 연달아 저격을 세 번 맞히자 적 탱커의 HP가 전부 소모되었다.

2Kill.

아, 오해는 하지 마라. 개나소나 체력이 간당간당해서 궁극기를 꺼낸 게 아니라 탱커 막타를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궁극기를 꺼낸 거니까.

[팀] 개나소나: …….

[팀] 염소구더기: 알아서 막타 노리라고 하길래. 잘함?

[팀] 영원한이등병: 굿!! ㅋㅋㅋㅋㅋ염소님 최고!

적 힐러가 아니라 개나소나 혈압이 오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팀] 개나소나: 그래, 다들 힐러만 잡겠다 이거지?

대놓고 버림받은 개나소나가 엄청난 딸피로 구사일생한 뒤 돌아오며 말했다. 이를 부득부득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는데 나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팀] 탱커바리: ㅋㅋㅋㅋㅋ아니, 형님 진정 좀 하세요!

[팀] 백반집에밥이없어: 이벤트 연습, 즐겜, 더쎄 = 환장 대파티!

[팀] 탱커바리: 조용히 햌ㅋㅋㅋㅋㅋㅋ넌 물 정령으로 무슨 킬을 하겠다고

[팀] 백반집에밥이없어: 물 정령 무시하네

‘솔직히 무시당해도 상관없지, 물 정령은.’

[팀] 개나소나: 물 정령은 무시당해도 할 말 없지

[팀] 영원한이등병: 오해 마세요! 이분은 어딜 가나 시비를 거는 컨셉남이니까! 나쁜 형은 아니랍니다. 저도 아직 경계 중이지만ㅠㅠ 그렇데요

[팀] 개나소나: 이 정도면 시비는 아닌데?

[팀] 염소구더기: ㅇㅇ그건 그렇지. 굉장히 착하고 온순하게 말한 거임

[팀] 영원한이등병: 그건 그렇지만ㅎ

가만히 생각하던 영원한이등병이 바로 긍정했다.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랄까. 그걸 모르는 이들은 그저 물음표를 올릴 뿐이었지만.

그보다 개나소나 쟤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나? 생각하던 걸 바로 꺼내서 깜짝 놀랐네.

[팀] 탱커바리: 님들. 힐러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모닝콜 갑시다

벌써 리스폰이 다 됐을 시간인가. 대략적으로 계산해 보던 탱커바리가 이동하려 하는데 물 정령이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갔다. 물 정령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팀] 영원한이등병: 무분별한 도핑은 쏘 시리어스!

더 세이렌은 게임을 한 판 할 때마다 적을 죽이거나 건물을 부숴서 얻는 비용으로 캐릭터 레벨을 올릴 수 있다. 공격 위주로 할지, 방어 위주로 할지 선택해서. 물론 만렙이 되면 상관없겠지만.

어쨌든 이동 속도 증가, 공격량 증가 등의 아이템도 구매할 수는 있지만, 초반부는 레벨을 올리는 게 이득이므로 아이템은 잘 구매하지 않는다.

그런데 레벨을 포기하고 이동 속도 아이템을 저렇게 바로 구매해 버린다고? 어차피 레벨을 올리면 이동 속도랑 공격량 이런 게 다 올라가는데?

[팀] 영원한이등병: 그리고 도적 앞에서 물 정령이 스피드를 자랑한다고?

도적 캐릭터에 자부심이 있는 영원한이등병이 순식간에 난간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난간과 난간 사이를 빠르게 옮겨 다니는 믿기 힘든 컨트롤을 보여주며 순식간에 백반집에밥이없어를 따라잡았다.

[팀] 탱커바리: 컨트롤 보소;; 이번에도 힐러 킬 뺏기겠네ㅠㅠ

둘의 말도 안 되는 속도전에 2차전은 포기한 탱커바리가 아군 핵심 건물에서 드러누웠다. 이번에는 포기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와 개나소나는 적군 건물 쪽으로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직까지는 적군들이 눈치를 못 챈 것 같지만 두 번째도 같은 수법을 쓰면 힐러만 노리는 걸 알게 되겠지. 그 뒤부터 집중적으로 힐러를 보호하려고 할 것이다.

[전체] 데한민국에내오빠있다: 님들 머 함?

눈치가 빠른 이는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하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상황에도 맞아 죽는 아군 전사는 본 척도 안 하고 그냥 돌아갔으니 이상하긴 했겠지.

부수지 못한 적군 건물 뒤로 매복하는 적이 보였다. 우리가 건물을 부수지 못하게 방해하려는 목적인 모양이었다.

그래, 일반적인 더 세이렌이라면 저게 정상이지.

하지만 우리 목적은 적군 건물 따위가 아니었다.

[팀] 영원한이등병: 힐러 발견!

빠르게 난간을 타고 다니던 영원한이등병이 알렸다. 하지만 적 힐러 옆에는 탱커가 붙어있었다. 우리가 힐러만 노린다는 건 모르지만 이번에도 힐러를 제일 먼저 자를 거라고 판단하고 지키고 있던 모양이다. 그래봤자 탱커 한 명뿐이었지만.

뒤는 항상 조심해야지.

도적 캐릭터가 빠르게 적군을 향해 쏘아졌다. 검은 그림자가 도적 캐릭터의 주변으로 넓게 퍼졌고 이내 적 탱커와 적 힐러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

[팀] 백반집에밥이없어: 아 선수 뺏겼어!!

영원한이등병의 위치가 노출된 탓에 근처에 있던 백반집에밥이없어도 물린 듯 딜러 두 명에게 붙잡혀 빠른 속도로 HP가 닳는 게 보였다.

개나소나가 그 가까이 다가갔지만 맞고 있는 백반집에밥이없어를 그냥 지나쳐 버렸다. 좀 전의 상황과 똑같은 상황이 오버랩 되었다.

[팀] 개나소나: ㅅㄱ

[팀] 백반집에밥이없어: 아놬ㅋㅋㅋㅋㅋㅋ

영원한이등병의 궁극기가 끝나가는 타이밍이 보였다.

도적 궁극기는 강력하다. 하지만 상대방이 탱커와 방어력 높은 힐러이기 때문에 궁극기에도 죽지 않는 듯했다. 그러니 만약 궁극기를 버티고 살아있다면… HP가 엄청 줄어든 상태겠지.

[팀] 영원한이등병: 다 내 거지롱!

높은 위치에서 궁극기가 풀리고 역시나 허공에서 딸피가 된 힐러와 반 피가 된 탱커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저대로 바닥에 떨어지면 힐러는 과다 출혈로 사망할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영원한이등병에게 킬이 돌아갈 테고.

하지만 이를 어쩌나.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도적은 허공에 뜬 상태로 적을 공격하지 못한다. 적군도 마찬가지로 허공에서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잠자코 바닥으로 내려올 때까지 무방비하게 있어야 할 뿐.

붉은 섬광이 허공을 갈랐다.

[염소구더기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거너가 이런 상황에서 막타를 먹기는 쉽지. 2차전의 승리는 거너에게 돌아갔다.

[팀] 영원한이등병: ?! 염소님 치사해! 입에 넣고 씹던 걸 강제로 빼가시네!

[팀] 염소구더기: ㅎㅎ? 무슨 소리신지?

[팀] 영원한이등병: 아 ㅠㅠㅠ일단 저 좀 구해주삼

내려오자마자 당황해서 피할 타이밍을 놓치고 탱커에게 물린 영원한이등병이 앓는 소리를 냈다.

[팀] 염소구더기: 제가 종이 몸이라서 탱커한테 가봤자 도움 안 되니까

일단 물린 물 정령부터 구해주면서 채팅을 쳤다.

[팀] 염소구더기: 지원 보냄. 도와줄지는 모르겠지만

[팀] 개나소나: 그 지원이 나임?

[팀] 염소구더기: ㅇㅇ 너 말고 누가 있어

[팀] 개나소나: 뻔뻔하기도 하셔라

탱커에게 가봤자 방어력이 약한 거너가 같이 죽을 확률이 높았다. 차라리 전사 캐릭터인 개나소나가 가는 게 낫지.

하지만 아까의 상황이 생각났던 모양인지 개나소나는 쉽게 움직이지 않고 영원한이등병과 본인 가운데에 핑을 찍었다.

[팀] 개나소나: 핑 찍은 곳으로 오면 살려줌

[팀] 영원한이등병: 지금 이속템 살 돈 없는데ㅠ

[팀] 개나소나: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오든가

[팀] 영원한이등병: 분유 먹고 큼ㅠ 그래서 몸이 무거운가

[팀] 개나소나: 분유 먹은 거 토해내면서 오든가

개나소나의 어이없는 말에도 영원한이등병은 생각보다 착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초반에는 경계하는 기색이더니 지금은 도와줄 이가 개나소나뿐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런 말장난을 좋아하는 걸까.

[파티] 영원한이등병: 우웨에에에에리ㅣ렝에레엑

영원한이등병은 생각보다 좌우로 요리조리 잘 피하며 탱커에게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도적 캐릭터가 기본적으로 이동 속도는 빠른 편이기는 하지만 스킬을 피해서 도망치는 영원한이등병의 센스도 놀라웠다.

그 와중에 정말 토하는 채팅을 치면서 달려오는 게 좀 무섭기는 했지만.

[귓말] 개나소나: 나 쟤 좀 마음에 들라 함

그래도 개나소나 취향에는 맞는 모양이다.

은근 둘이 죽이 잘 맞네……?

무시무시한 기세로 쫓아오던 적 탱커는 영원한이등병만 보고 달려온 모양이었다. 사각지대에서 잠복하고 있던 개나소나를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개나소나가 시간을 끄는 동안 영원한이등병이 서둘러 도망쳤다.

[팀] 탱커바리: 제물 바치고 살아 돌아오셨네ㅎ

[팀] 영원한이등병: ㅠㅠㅠㅠㅠ이제 개나소나 형님으로 모십니다. 과거의 무례했던 저를 부디 너그럽게 용서

해주셔요

[팀] 개나소나: ㅋ? 더 해봐

[팀] 영원한이등병: 또 토할까요? ㅠㅠㅠ

[팀] 개나소나: ㅋㅋㅋㅋㅋ

그래도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네.

개나소나는 무리하게 탱커를 잡으려 하지 않고 어느 정도 영원한이등병이 안전하게 피한 것을 본 뒤에 본인도 도망쳤다.

우리가 힐러만 잡고 되돌아가자 적군들도 슬슬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적 힐러가 전체 채팅으로 말했다.

[전체] 문댕댕보컬맛집: 님들 도대체 뭐임? 왜 나만 노림?

[전체] 문댕댕보컬맛집: 님들끼리 현상 수배 이벤이라도 하는 줄 앎?

[팀] 영원한이등병: 형님. 저놈이 벌써 눈치챈 것 같은데 어떡할깝쇼

[팀] 개나소나: 무슨 대답을 듣고 싶니

개나소나가 잠깐 뜸을 들이는 척, 시간을 잠깐 끌다가 대답했다.

[팀] 개나소나: 늘 그랬던 것처럼 묻어

[팀] 영원한이등병: 옙 형님!! ㅋㅋㅋㅋㅋㅋ

[팀] 탱커바리: ㅋㅋㅋㅋㅋ넵222

[팀] 백반집에밥이없어: 예쓰 보쓰!!333

[팀] 개나소나: 염소는 손이 없니? 조용하구나

순식간에 분위기가 이상해졌네. 탱커바리랑 백반집에밥이없어는 그냥 분위기에 따라 즐기려고 따라 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개나소나가 저렇게 콕 집어서 말하니 더 하기가 싫어져서 일부러 묵비권을 행사했다. 개나소나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팀] 개나소나: 쟤는 꼭 대답하기 싫으면 입을 다물더라. 막내 교육 좀 해라

[팀] 영원한이등병: 시정하겠습니다!

[팀] 염소구더기: 그래봤자 개나소나 힐러 0킬

[팀] 영원한이등병: 앗……. 아아……. 일부러 모른 척하고 있던 진실을……!

[팀] 염소구더기: ㅎ? 너무 팩트였나?

[팀] 개나소나: ㅎ? 고작 1킬로 막내가 귀엽게 구네

말이라도 못하면.

인상을 구기며 아군 핵심 건물 밖으로 천천히 나갔다. 지금까지 모은 돈으로 거너의 이동 속도, 공격 속도, 치명타 확률 증가, 공격력 증가를 미친 듯이 찍었다.

내가 딴 놈은 몰라도 저 새끼한테는 절대 안 진다.

[팀] 영원한이등병: 막내님 분노하셨다! 어떡하죠?

[팀] 개나소나: 귀엽네

[팀] 영원한이등병: 아니, 형님. 언제 막내님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겁니까?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사이였는데!

[팀] 개나소나: 미운 정?

[팀] 영원한이등병: 하긴 더럽게 미웠을 것 같긴 하네요

[팀] 개나소나: ㅋㅋ?

[팀] 영원한이등병: ;; ㅈㅅ 시정하겠습니다. 그러니 바로 앞에 캐릭터 놔두고 빤히 쳐다보지 마셔요. 쫄림

[전체] 문댕댕보컬맛집: 아니 내 말 다 무시함? ㅅ1ㅂ 내가 여기서 나가나 봐라.

적군 핵심 건물에서 안 나올 생각인가. 그럼 나머지 네 명만 밖에서 돌아다니겠지. 어쩔까.

잠깐 고민하며 암흑 지역에 몸을 숨기고 있는데 영원한이등병이 중앙 무대 쪽으로 휙 튀어나왔다.

[팀] 염소구더기: ? 뭐 하세요?

[팀] 영원한이등병: 저 사실 숨겨왔지만

[팀] 영원한이등병: 관종병이 있습니다

[팀] 염소구더기: ?

관종병? 너무나도 뜬금없는 말에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그의 행동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중앙 무대에 대놓고 모습을 드러낸 영원한이등병에게 적군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 그들을 피해서 이리저리 잘 피해 다니는 영원한이등병.

난간을 타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모습이 놀랍기도 하고 왜 저런 무의미한 짓을 하나 싶어서 쳐다봤다. 문득 적군들 사이에 힐러가 없는 것이 눈에 띄었다.

역시 힐러는 적군 핵심 건물에 몸을 숨기고 있구나.

영원한이등병이 시선을 끄는 동안 서둘러 자리를 옮겨 적군 핵심 건물 쪽으로 향했다. 시야를 넓히는 스킬을 사용하고 정면을 보니 무대를 보려고 기웃거리는 힐러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적군들도 갑작스러운 영원한이등병의 관종짓에 당황한 모양이었다.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뭐, 나는 이미 킬에 눈이 멀었으니까. 알 바는 아니다. 저렇게 이목 집중을 시켜주면 땡큐지.

방심한 힐러를 향해 장전된 탄환이 연속으로 날아갔다.

빠른 속도로 머리와 상체를 맞은 힐러의 HP가 순식간에 절반 이상으로 줄었지만 금세 차오르는 것을 보아하니 급하게 체력 회복 스킬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전체] 문댕댕보컬맛집: 아니 왜 이렇게까지 나한테 집착하는건데?!

서둘러 도망가려는 힐러를 쫓아 남은 세 발도 연속으로 날리니 버티지 못하고 사망해 버렸다.

전체 채팅으로 무섭게 욕을 하는 힐러를 가볍게 차단하니 조용해졌다.

뭐, 쟤 입장에서는 좀 화나긴 하겠지. 영문도 모르고 집중적으로 노려지고 있으니.

[팀] 염소구더기: 2킬ㅎ 개나소나는 뭐 하는 중인지?

[팀] 개나소나: ㅋㅋㅋㅋㅋ

[팀] 개나소나: 귀여워 죽겠네

[팀] 염소구더기: ? 약 먹음?

얘가 드디어 정신이 나갔나. 순간적으로 문정하가 떠올라서 소름이 돋아 질색하며 손등을 문질렀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정말 눈치챈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런 내 걱정을 알아차린 것처럼 영원한이등병이 말했다.

[팀] 영원한이등병: 막내님 사실 개나소나님이 저한테 귓말로 엄청 뭐라고 했어요 ㅠㅠ

[팀] 영원한이등병: 저렇게까지 나대는데 1킬 더 가져갈 수 있게 관종짓 좀 하라고

[팀] 영원한이등병: 아까 은혜 갚으라고 ㅠㅠㅠ

[팀] 개나소나: 나대는게

[팀] 개나소나: 귀엽게 꼴사나워서 더 보려고 했지

[팀] 염소구더기: ^^? 헤드샷 맞고 싶음?

[팀] 개나소나: 맞출 수는 있고? ^^

얄미운 자식. 내가 왜 저런 놈이랑 한 팀을 할 생각을 했을까!

하지만 이제 무를 수도 없어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임해서는 그런 내 기분도 모르고 어느새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분명히 에어컨 바람도 시원하게 나오는데 왜 이리 더운 거야. 젠장.

결국 그 뒤로 힐러를 집중적으로 보호한 적군들의 행동에 힐러를 처리하기란 쉽지 않았다.

최종 스코어는, 막타를 잘 먹은 백반집에밥이없어가 3Kill로 최종 우승했고 나머지는 아래와 같았다.

염소구더기, 영원한이등병, 개나소나: 2Kill. 탱커바리: 1Kill.

결국 개나소나랑 동점이라니 게임이 끝나고 대기 화면에 남은 것은 파티를 맺은 우리 셋뿐이었다.

어느새 쿵짝이 잘 맞는 둘은 망연자실해 말이 없는 나를 내버려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영원한이등병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나를 불렀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아 맞다 막내님!

[파티] 영원한이등병: 저 팀원 한 명 구했어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막내님도 아시는 분ㅋ

[파티] 염소구더기: ? 제가 아는 분이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개나소나 형님도 아시는 분

[파티] 개나소나: 너랑 염소랑 같은 편이었던 유저?

[파티] 영원한이등병: 빙고!

영원한이등병이랑 개나소나랑 같이 있을 때 같은 팀이었던 인물은, 탱커를 했던 도리두리. 전사 캐릭터의 손머리발발. 그리고…….

[파티] 영원한이등병: 오메가 형님도 같이 해준다네요~ 라호~

[파티] 개나소나: 그 힐러 같지도 않은 힐러?

지금까지 그럼 조합이 거너, 전사, 도적, 암힐이라는 건데. 진짜 완전 공격에 올인 한 조합이네?

[파티] 영원한이등병: 그 뒤로도 가끔씩 친추 맺고 같이 게임 했었는데 오메가형님도 즐겜러거든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막내님이랑 같이할 거라니까 같이 끼워달라고 하던데요?

[파티] 염소구더기: 저는 환영이죠. 지금 접속하고 계세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ㅇㅇ 파장 넘겨주시면 제가 초대함!

영원한이등병의 말에 흔쾌히 파티장을 넘겨주었다. 오메가원을 초대하는 모양인지 잠시 말이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우편함을 열어 보았다.

모타리는 내가 보낸 쪽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쪽지 발송 시각 이후 접속한 기록도 없었다.

내일까지 답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구해야겠지? 정 안 되면 영원한이등병이나 오메가원한테 부탁해서 구해달라고 해도 될 테고.

[오메가원 님이 파티 초대를 수락하였습니다.]

[파티] 오메가원: 라호~ 윙?

[파티] 염소구더기: 안녕하세요~ 근데 아까부터 신경쓰였는데 라호가 머임?

[파티]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제가 반갑거나 기쁠 때 쓰는 감탄사 비슷한 건데 오메가형님이 따라 하시는 거

[파티] 오메가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파티] 오메가원: 내 눈이 잘못됐나? 왜 여기 조합에 어울리지 않는 분이 있음?

[파티] 염소구더기: ?

[파티] 개나소나: ?

[파티] 영원한이등병: 개나소나 형님은 눈치 없는 척도 잘하셔

그러는 영원한이등병도 눈치 없는 척 돌려 까는 걸 잘하는 인재였다.

능청스러운 영원한이등병의 말에 오메가원은 또다시 의문을 표했다. 오메가원은 나와 영원한이등병이 개나소나와는 사이가 좋지 않은 걸로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도 설마 이렇게 같이 하게 될 줄은 몰랐지. 게다가 이 조합으로.’

이쯤 되면 개나소나 입장에서는 찔려서 주눅이 들거나 미안해하는 척하면서 분위기라도 살려보려고 할 법도 하건만, 뻔뻔하게도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정말 마이 페이스네.

[파티] 개나소나: 남은 한 명은?

[파티] 영원한이등병: 씹힜ㄷㅏ…….

[파티] 오메가원: 찍힌 듯

[파티] 영원한이등병: ㅜㅠㅠ

[파티] 염소구더기: 탱커 아는 사람 있어서 물어봤는데 아직 답장 안 옴

[파티] 염소구더기: 오늘 새벽까지 안오면 그냥 다른 사람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아는 사람 계신가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뭐 아무나 상관없는데

[파티] 영원한이등병: 천천히 정해요! ٩( ᐛ )و 정 안되면 공지 댓글에 데려가 달라고 적어놓은 유저 아무나 납치해 오면 될 듯

오메가원도 반대는 아닌 모양인지 크게 부정은 하지 않았다. 개나소나가 같이 있는 상황이 아직 조금 어색한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부정적인 태도는 아니라서 조금 안심이랄까.

그럼 이렇게 네 명은 확정됐고 모타리만 들어오면 될 것 같은데.

[파티] 오메가원: 이번 랜보에서 히든 코스튬 제복 있다던데

[파티] 염소구더기: 헐, 없어서 못 먹는다는 그 제복이요?

더 세이렌 운영진의 취향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땡땡이 잠옷, 드레스, 수영복 등의 여캐에게 잘 어울리는 귀엽고 예쁜 코스튬들 위주로 출시되었다.

하지만 유독 남캐에게만 짜던 운영진들의 취향 덕분에 남캐는 그럴듯한 코스튬들이 없었다. 그나마 괜찮은 게 정장이나 교복 정도였지. 그런데 제복이라니! 말만 들어도 설레는 제복이라니!

개나소나도 흔히 볼 수 없는 경찰 제복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의상은 정말 부러웠기 때문에 나는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해야겠구나 싶었다.

거너한테 제대로 된 멋있는 옷을 입혀주고 싶어!

[파티] 염소구더기: ㅎㅎㅎ님들 언제 게임 하실 수 있어요? 저 언제든지 가능한데

[파티] 개나소나: 현생 포기함?

[파티] 염소구더기: ㅎㅎ 재수강이라는 선택지가 있음

[파티]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 저도 이제 시험 끝나서 학교 끝나고는 언제든지 가능해요!

[파티] 오메가원: 전업주부라서 언제든 오케이

[파티] 영원한이등병: 전업주부? 오메가 형님은 사회에 찌든 나이든 아저씨 아니셨어요? ㅠㅠ

[파티] 오메가원: 아재는 맞는데

[파티] 오메가원: 집사람이 돈 잘 벌어서 호강하는 중

[파티] 영원한이등병: 와… 제 꿈인데 부럽다…….

진짜 부럽네. 어쨌든 오후부터는 다들 게임에 집중할 수 있구나. 그럼 다 같이 모이기 전까지는 따로 게임 해서 레벨이라도 올려놔야겠네.

속성이 생기면 거너 스킬도 다양해지니까 집중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의외로 개나소나가 답장이 없었다.

한가한 거 아는데 왜 가만히 있어?

휴대폰으로 손지우에게 연락을 했다. 시간표 좀 보내달라고. 손지우는 귀찮았던지 이유도 묻지 않고 시간표 사진만 덜렁 보냈다.

문정하랑 전공 시간은 같을 것 같은데 다른 과목도 따로 듣는 게 있나? 아씨, 지금 물어보면 티 날 것 같은데.

[파티] 개나소나: 나도 오후

[파티] 염소구더기: ? 공강 없음?

[파티] 개나소나: 무슨 공강?

[파티] 염소구더기: 공강에 피시방 가면 되잖아! 아님 강의 없는 날도 있을테고

[파티] 개나소나: 무슨 소리신지

[파티] 개나소나: 난 대학 다닌다고 얘기한 적도 없는데?

아뿔싸. 코스튬에 눈이 멀어서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나가 죽어라, 손지언!

스스로를 욕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설마 눈치채지는 않았겠지, 하고 조마조마하게 채팅을 바라봤지만 다행히 그 뒤로 별다른 말은 없었다.

[파티] 염소구더기: ㅎㅎ그냥 성격 보니 완전 애도 아니고 어르신도 아닌 것 같길래

[파티] 개나소나: ㅋㅋㅋ

[파티] 염소구더기: 어쨌든 나머지 한 명도 합류하면 시간 정해서 모이고 안되는 사람은 전날 미리 말해주시는 걸로 할까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찬성

[파티] 오메가원: ok

[파티] 개나소나: ㅇㅇ

급히 화제를 돌려서 서둘러 약속을 정했다. 실제 지인들이 아니다 보니 갑자기 잠수라도 타면 남은 팀원들이 곤란하니까.

게다가 이번 이벤트처럼 다섯 명이 고정적으로 게임을 해야 하는 거라면 더욱 그랬다. 한 명이 안 나오면 남은 네 명은 하고 싶어도 못 하게 되니까.

‘그래서 지금 욕하는 유저도 있긴 한데, 그래도 한 달 이벤트니까.’

한 달 동안은 확실히 접속률이 활발하긴 하겠네. 오히려 운영진이 머리를 좀 굴린 건가?

머리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다시 넷이서 게임을 해 보자는 영원한이등병의 제안을 수락하며 게임을 시작했다.

“응? 팀원 정해짐?”

“네 명만.”

잠에서 깬 모양인지 임해서가 비몽사몽한 얼굴로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시선도 주지 않고 게임에 집중한 채 대답하니 멍청하게 화면을 보던 임해서가 말했다.

“조합 끝내주네. 완전 공격형 초집합 아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남은 한 명은 그래서 탱커하는 애 꼬셔보려고. 초보지만.”

“누군데?”

“있어, 너 모르는… 아니, 아는 놈이네.”

“응?”

그러고보니 이놈이 모타리 아이디를 빌려준 놈이었지. 그때는 문정하 때문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해서 물어보지도 못했는데.

“모타리.”

“그거 내가 아까 너 빌려준 아이디 아니야?”

“맞음.”

“개나소나에 이어 모타리? 이 정도면 운명의 데스티니 아닌가요. 나 좀 소름 끼침.”

“나는 어땠겠냐. 그래서 걔는 누군데? 설마 우리 학교는 아니지?”

“잠시만, 물어볼게.”

임해서도 누군지 모르는 모양인지 아이디를 빌려준 이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듯했다.

설마하니 문정하에 이어 또 같은 학교겠어? 그럼 퇴학하고 만다. 아니, 퇴학하면 엄마한테 살해당할지도 모르니까 휴학만 할까.

“…지언아.”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마, 미친놈아. 토할 것 같다.”

“나 존나 소름 끼쳤음.”

뭐지. 에어컨을 켜둔 탓일까? 갑자기 온몸이 섬뜩해졌다.

불길한 기운에 게임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임해서를 뒤돌아보았다. 정말로 놀란 듯한 얼굴로 굳은 얼굴. 장난치는 얼굴은 아니었다.

뭐지, 이 새끼. 설마?

“우기우기.”

“…뭐?”

“내 친구가 지금 아이디 빌려줘서 사용하고 있는 놈이 황보욱이라고. 네가 우기우기라고 불렀던 사람.”

what……?

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핑크 머리 소유자가 임해서가 말하는 사람이 맞을까. 아니, 그 학점에 미친 놈이 게임을 한다고? 아니, 그보다 그렇게 시비 걸고 성격 더러운 놈이 게임에서는 형이라고 부르면서 온갖 애교는 다 떨잖아?

‘요즘 게임이랑 현실이랑 갭 차이가 큰 놈들이 왜 이리 많지…….’

문정하에 이어서 모타리가 황보욱이라니.

보낸 쪽지를 삭제할 수는 없어서 끙 앓았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막내님 뭐함?

[파티] 개나소나: 내 생각?

[파티] 영원한이등병: 아 형님… 저 소름 끼치니까 그만 좀 ㅠㅠ 하나로 통일해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시비를 걸든가 예뻐하든가

[파티] 오메가원: 오그라들어서 온몸이 쭈뼛

[파티] 개나소나: ㅋㅋㅋㅋ도적 기습이나 잘해. 계속 발각되고 썰리는데.

[파티] 영원한이등병: ㅎㅎ……. 시정하겠습니다.

[파티] 오메가원: 여기 군기 장난 아니네

[파티] 오메가원: 재입대한 줄

[파티] 영원한이등병: ㅠㅠ저 아직 군대 가려면 한참 멀었는데 너무 스파르타 아닙니까, 형님!

[파티] 개나소나: 조기교육

[파티] 영원한이등병: 아니 군대 조기교육 같은 걸 누가 해요 ㅠㅠㅠㅠ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파티원들은 어느새 즐겁게 대화를 잘 나누고 있었다. 걱정했던 개나소나도 어쩐 일인지 생각 외로 시비도 걸지 않고 잘 놀아주고 있었고.

묘하게 비웃거나 비꼬는 뉘앙스의 말들이 줄어든 것 같은데 착각인가?

“문정하 선배님은 모르겠지만, 황보욱한테는 절대 들키면 안 될 듯. 조별 수업 빠지고 게임 접속했으면 나중에 접속 시간 보고 완전 지랄할 것 같은데.”

“…와, 생각만으로도 진짜 최악이다.”

“그렇지? 근데 문정하 선배님한테는 말해줘도 되지 않아? 같이 피시방 가서 하면 편하잖아. 어차피 게임도 개나소나랑 계속 같이하려는 거 아님?”

“그건 그런데, 그래도 말 안 해. 게임에서까지 현실처럼 그러면 같이하기 싫어.”

“야, 솔직히 성격은 별로인 것 같은데 너한테는 잘해 주시잖아. 게다가 얼굴도 잘생겼고 같은 학교 선배야. 학교생활에는 도움 될 것 같지 않음?”

“필요 없어. 졸업만 하면 장땡이지.”

단호한 내 대답에 임해서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결국 둘 다 들키면 안 되는 거네. 가능하겠냐?”

“같이 피시방 가는 일만 없으면 될 것 같은데, 뭐. 너만 입조심하면 될 듯.”

“나한테는 어차피 둘 다 관심 없어.”

그건 그렇겠지만.

황보욱은 아직 전혀 모르는 낌새지만 문정하가 조금 신경 쓰였다. 그래도 괜찮겠지? 지금까지도 별다른 질문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게임을 하고 있으니까.

편하게 생각하자.

무서운 속도로 적군에게 당하는 영원한이등병을 보며 나는 게임에 집중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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