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현상 수배 이벤트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아 진짜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오랜만에 실컷 웃었네ㅋㅋㅋ
[팀] 모타리: 왜 웃어요. 염소형 무시하세요?
그만…….
[팀] 모타리: 진짜 잘하거든요?! 직접 본 적도 없으시면서!
제발… 그만……. 이러다 다 죽어……!
차마 내뱉지는 못한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실제 얼굴이랑 목도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여기에 믄님이 없었으면 미쳤냐고 입 다물라고 할 텐데 실제 인물이 저기 있으니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좌불안석이다.
[팀] 오메가원: 신입님 그만 좀; 그럴수록 염소구더기님 두 번 죽이는 행동임
[팀] 모타리: 왜요? ㅜ
[팀] 오메가원: 왜냐고 묻는다면 대답해줄 말이 없다는 게 인지상정…….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염소구더기의 멘붕을 막기 위해!
[팀] 오메가원: 염소구더기의 멘탈을 지키기 위해!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사랑과 진실, 어둠을 뿌리고 다니는
[팀] 오메가원: 염소구더기의 감초, 귀염둥이 수호천사!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잘생긴 자세히봐야몬생김!
[팀] 오메가원: 더 잘생기고 매력적인 오메가원!
[팀] 염소구더기: 아니 님들아 제발 그만 쫌!
[팀] 믄님: 난 믄님이다, 믄님.
…아니, 믿었던 믄님까지 저 콩트에 참여할 줄이야. 심지어 저거 마지막 말은 고양이 대사 아니야?
[팀] 오메가원: ㅋㅋㅋㅋㅋㅋㅋ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ㅋㅋㅋㅋㅋㅋ역시 믄님! 마지막 한 방이 있는 남자였어!
[팀] 오메가원: 우리 아군에는 말하는 거너몬도 있다!
[팀] 믄님: ㅋㅋ
은근 죽이 잘 맞네. 화내려다가도 믄님까지 끼어버리니 할 말이 없어서 푹 식는 느낌이었다.
다들 저렇게 좋아하는데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고. 어차피 믄님은 모타리 말에 별로 신경도 안 쓰겠지.
[귓말] 염소구더기: 저기 믄님 엄청 잘하는 거너
[귓말] 모타리: 하지만 형도 잘하는데ㅜ
[귓말] 염소구더기: 그건 그렇긴 한데 저기에 비빌 실력은 절대 아니라서
[귓말] 염소구더기: 낯부끄러우니까 아까 같은 말은 하지 마
[귓말] 염소구더기: 내 생각해서 얘기해준 건 고맙고
[귓말] 모타리: …….
서운한가? 어떻게 보면 내 칭찬을 해 준 건데 정작 본인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게다가 누가 봐도 나를 좋아하고 따르는 게 보이는 모타리한테 모질게 대하려니 마음이 괜히 안 좋았다.
저 실체가 황보욱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찔리네.
[귓말] 모타리: 네
[귓말] 모타리: 곤란하게 했으면 죄송해요ㅎㅎ
아, 삐졌다. 본능적인 직감으로 느꼈다. 나쁜 뜻은 아니었다고 상황을 설명해야 하나 싶지만, 그것도 좀 이상한 것 같고.
[적군의 건물이 파괴되었습니다.]
도적을 죽여서 그런지 적군들보다 먼저 건물을 파괴할 수 있었다.
탱커로 돌린 자세히봐야몬생김의 얼음 전사 캐릭터가 재빨리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오메가원과 모타리. 물 정령 캐릭터로 그 뒤를 따라갔다. 믄님은 조금 옆으로 빙 돌아가고 있었다.
너무 한 쪽 방향에서 가면 적군에게 쉽게 노출되니까 사각지대에서 저격을 하려는 걸까.
적군을 발견하고 공격하는 아군에게 물 정령 버프를 걸어주며 미니맵을 수시로 쳐다보았다.
믄님의 거너 캐릭터가 어디 있는지, 어느 위치에서 준비를 하는지 알기 위해서. 거너 공략 영상 같은 것도 있었지만 이런 건 실제로 보는 게 더 도움이다.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그러고 보니 아직 믄님도 속성 선택은 하지 않은 상태네. 속성을 선택할 수 있는 레벨은 지났는데.
기존 성향을 그대로 유지해 나가는 것도 할 수 있는 건가? 하긴 속성이 바뀌면서 공격 패턴이 바뀔 수도 있으니 익숙해진 거너 포지션을 쉽게 포기할 수도 없겠지.
적군을 발견한 자세히봐야몬생김이 즉시 적군의 원딜들을 향해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달려오려는 근딜의 위에 피어오르는 검은 꽃. 디버프 스킬이다.
이동 속도가 느려진 적 근딜의 앞을 굳건히 막은 모타리.
[모타리 님이 물의 정령 가호를 받습니다.]
그런 모타리에게 서둘러 회복 버프 스킬을 시전하자 물빛 요정들이 그를 따라다니며 체력을 미세하게 회복해 주었다.
[믄님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믄님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Double Kill.
자세히봐야몬생김이 원딜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묶는 동안 사각지대에서 탄환이 날아왔다. 정확한 헤드 샷과 도망치려는 원딜의 움직일 방향을 보고 노리는 예측 샷.
순식간에 원딜이 잘려 남은 적군은 어느새 두 명뿐이다.
적 근딜 포지션의 전사가 모타리에게 벗어나기 위해 회피기를 사용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취하는 행동.
내 칼이 오늘도 붉…….
궁극기를 시전하려는 게 뻔히 보여서 서둘러 평타를 날렸다. 궁극기 사용 도중에 기습을 당하면 사용 중이던 기술은 무효화 된다.
[팀] 오메가원: 나이스 궁캔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탱커 잃을 뻔했는데 잘했음
[팀] 모타리: 염소형ㅜㅜ
궁극기를 캔슬 시키자마자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바로 다굴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오메가원의 손에 목숨을 잃은 적군.
순식간에 한타가 끝났다.
현재까지의 점수를 살펴봤을 때 물 정령은 당연히 한 게 없고 기여도 점수는 아군, 적군 통틀어 믄님이 우월했다. 그야 초반 3킬을 원샷으로 가져갔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이 근처에서 매복하고 기다리죠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어차피 우리 건물 치러 올 것 같은데
[팀] 믄님: ㅇ
[팀] 오메가원: 너무 대놓고 있으면 안 올 것 같으니까 우린 조금 더 뒤에 있다가 합류함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네
적군은 아마 전원 리스폰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번에 움직일 확률이 높다. 그동안 대기하기로 한 우리는 잠깐 조용히 있는다 싶더니 금방 또 시끌벅적하게 채팅이 올라왔다.
[팀] 오메가원: 근데 두 분은 여기가 아니라 랭킹전 해야하는 거 아님?
[팀] 오메가원: 레벨도 높으면서
자세히봐야몬생김은 부캐라서 레벨이 낮은 편이라고는 해도 믄님은 아니었다. 애초에 길마로 있을 때도 만렙이었으니 지금도 오메가원보다 높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실력 차이도 너무 나고.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그냥 숨도 돌릴 겸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길드 놈들이랑 마주치기 싫어서 일반 하는 중입니다ㅋㅋㅋ
[팀] 오메가원: ? 길드원들이랑 싸움?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좀 zㅣ랄 맞은 놈이 있어서요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믄님도 길탈해서 할 사람 없으니까 같이 하는 중이고
[팀] 염소구더기: ???? 믄님 길드 나오셨어요? 길드 마스터잖아요.
믄님이 있다고 생각해서 WINNER 길드에 지원한 건데, 믄님이 없다고? 황당함에 묻자 말수가 적은 믄님 대신에 자세히봐야몬생김이 대신 대답했다.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부길마랑 좀 일이 있었어요. 부길마 기억나시죠, 염소님은? ^^
[팀] 염소구더기: 불경한눈깔 그놈?? 그놈이 믄님한테 뭐라고 했어요?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뭐라고 한 건 믄님임ㅋㅋㅋㅋ 저 믄님 말빨이 그렇게 좋은지 첨 알았잖아요
[팀] 염소구더기: ?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저 그때 막 들어와서 상황은 대충 알았는데ㅎ 길드 채팅으로 다 보이게 믄님이 부길마한테 뭐라고 하심
[팀] 염소구더기: 이해되게 자세히 설명 좀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부길마 때문에 염소님 나간 거라고 길드에서 말이 많았거든요. 계정도 사라지고.
헐. 잠깐만. 이거 약간 느낌이 이상한데, 설마 막장 드라마처럼 날 두고 두 남자가 싸웠다는 그런 스토리인가.
하지만 과묵한 성격의 믄님이 화를 냈다니.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염소님을 많이 아끼시나봐요ㅋㅋㅋ 믄님이랑 친해지고 나서도 종종 얘기는 들었지만
[팀] 염소구더기: 믄님…….
[팀] 믄님: ㅇ?
[팀] 염소구더기: 진짜 사랑해요… ㅠㅠㅠㅠㅠ 제가 믄님 때문에 길드 안 나가려고 했는데 그때는 어쩌다 보니 사촌 형이 계정을 삭제해서 ㅠㅠㅠㅠ 말도 못하고 나왔어요!
[팀] 믄님: ;
[팀] 오메가원: 헐, 랭커였던 계정 삭제? 도대체 사촌 형한테 뭔 짓을 했길래 그런 심한 짓을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1. 거울을 보여준다
[팀] 오메가원: ㅋㅋㅋㅋㅋㅋ정말 심한 짓이네
[팀] 염소구더기: 아니 ㅡㅡ 둘은 좀 조용히 있어요. 저 지금 감동하고 있잖아요
[팀] 오메가원: 막내님이 믄님을 등에 업고 성격이 변했어……. 신입님도 뭐라고 해보세요. 우리 막내가 달라졌어!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그러고 보니 한 분은 조용하시네. 믄님 같은 성격?
너희 둘이 말이 너무 많은 게 아닐까. 오메가원은 첫 만남에서도 범상치 않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확실히 쿵짝이 잘 맞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정말 말이 많아지는구나.
오히려 모타리는 텐션이 높은 이들 사이에서 기가 죽었는지 조용했다. 아니면 아까 내가 말린 것 때문에 신경 쓰여서 그런 걸까?
이제야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해서 슬쩍 모타리 캐릭터를 보았다. 방치해 놓은 것처럼 미동도 없이 서있었다. 그리고 그건 거너 캐릭터도 마찬가지.
[팀] 믄님: 게임을 못 하겠는데
[팀] 염소구더기: 저 둘이 말이 너무 많아서요?
[팀] 오메가원: 막내님 우리를 버렸어…….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이렇게 우리를 팔아버리네
[팀] 믄님: ㄴ
[팀] 믄님: 귓말 너무 옴
귓말?
믄님한테 귓말을 보낼만한 사람이 누가 있지. 아니, 따지고 보면 많기는 하지만 차단하면 그만일 텐데.
귓말은 서로 친구가 아니더라도 보낼 수 있어서 믄님은 낯선 이에게 귓말이 오면 바로바로 차단해 버리고는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귓말이 많이 오는데도 차단을 하지 않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연락은 해야 하는 상대라는 건데. 보통 그런 경우는 같이 게임을 해야 하는 경우의 유저겠지.
자세히봐야몬생김도 믄님의 성격을 아는지 잠깐 생각하는 듯하다가 채팅을 올렸다.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아
[팀] 자세히봐야몬생김: 다들 꼼짝 마! 범인은 이 자리에 있어!
내 시선이 순간적으로 무투가 캐릭터에게 향했다.
여전히 미동도 없는 모타리의 캐릭터.
너 설마…….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지만, 이미 범인은 어렵지 않게 한 사람으로 좁혀졌다.
내가 팀 채팅으로 곤란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고 바로 믄님한테 귓말을 하는 거는 아니겠지?
[팀] 모타리: ㅎㅎ?
[팀] 모타리: 저 아닌데요ㅠ
시선들을 느낀 모양인지 모타리가 이제껏 가만히 있다가 입을 뗐다. 계속 진짜냐고 묻는 오메가원의 물음에도 정말 억울한 듯 눈물 이모티콘을 쏟아내는 모타리.
정말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정작 믄님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아군이 습격해 옵니다.]
아군 건물 근처에서 매복하고 있으니 적군들이 다가온다는 경고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리고 사각지대에서 보이는 탱커. 당당하게 접근하는 모습에 오메가원이 디버프 스킬과 동시에 공격 스킬을 시전했다.
심판받을 자는 너인가.
쇠사슬에 감긴 탱커의 체력이 무섭게 닳기 시작했다.
상대의 체력이 높을수록 효과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암힐의 능력. 오죽하면 힐러의 탈을 쓴 저승사자라고 불릴까.
자세히봐야몬생김과 모타리는 탱커를 내버려 두고 숨어있는 적을 직접 찾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탱커 둘이서 양쪽으로 시야를 밝히니 금세 적군들의 위치가 드러났다.
정면에 탱커 하나, 우측에 마법사 하나, 좌측에 궁수, 힐러 둘. 총 네 명.
도적이 없다. 빠른 이속기와 은신 기술을 가지고 있는 도적이 없고 적이 있는 걸 알면서도 당당하게 정면으로 달려온 탱커.
‘함정이구나.’
이미 원딜을 보호해 줄 탱커 둘은 앞으로 간 상황이다. 뒤에 있는 건 근접전에서 불리한 거너와 공격도 방어도 뛰어난 게 없는 물 정령뿐.
뒤는 항상 조심해야지.
승리를 확신한 적 도적 캐릭터가 비웃음을 지으며 궁극기를 시전했다. 조금 더 빨리 알아차려서 궁극기라도 캔슬 시켰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실패했다.
검은 그림자가 물 정령을 감싸고 도적이 빠른 속도로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 보였다.
현란한 속도로 날아다니듯 돌아다니는 모습에 이대로 죽겠구나 싶었다. 도적의 궁극기에 한 번 걸린 이상 빠져나가기는 힘들다. 도적의 위치도 그림자에 가려져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 아군도 도와주기는 힘들다.
오히려 한 번에 끝내지 못하면 상대의 공격에 궁극기를 시전한 도적의 공격력이 더욱 높아질 뿐.
[팀] 믄님: 위치
믄님이다. 짧은 질문, 그리고 순간적인 의심 속에 피어나는 기대.
[팀] 염소구더기: 지금 도적 점프하면서 난도질
[팀] 염소구더기: 반복
[팀] 염소구더기: 방금 점프
다급하게 현재 상황을 보고 하자 거너의 궁극기 시전 소리가 희미하지만 들려왔다.
바깥에서는 안의 상황이 보이지 않는다. 괜히 섣불리 공격했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타격만 주면 도적의 공격력만 올라간다.
하지만 왜 믄님이라면 가능할 거라고 기대가 되는 걸까.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탄환이 빠른 속도로 도적의 검은 그림자 막을 뚫고 들어왔다. 이제 막 높게 점프하고 난도질하기 위해 내려오는 도적의 몸을 꿰뚫는 것도 그 순간이었다.
[믄님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검은 그림자 막이 거둬졌다. 그리고 깜빡이며 바닥에 쓰러져 점점 사라져가는 도적과 맞은 편에서 간당간당하게 남은 HP로 살아남은 물 정령 캐릭터.
물 정령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고 총을 어깨에 걸친 거너 캐릭터가 여유롭게 걸어온다.
저 사람이 내가 존경하고 많은 거너 플레이어들이 존경하는 유저. 따라 하고 싶지만,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실력.
그는 손지언의 워너비였다.
* * *
이벤트가 시작됐다.
그동안 모여서 많은 연습을 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합은 맞춘 상태. 특히나 탱커가 처음이었던 모타리는 올라운더로 모든 캐릭터를 해본 팀원들에게 조언을 듣고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와,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릴까요?
[파티] 오메가원: 이벤트 맵은 아직 사전 공개가 안되었으니까 그것 때문에 한번 해보려고 참가하는 사람도 많은 모양이네.
이벤트 채널에 모인 유저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다양한 코스튬과 이펙트를 주는 화려한 캐릭터들 가운데 우리 다섯 명은 서있었고 곧 시작될 이벤트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히 오후 다섯 시에 생성되는 이벤트전을 시작하면 여기 있는 팀들과 만나게 되겠지.
[파티] 모타리: 다들 옷이 화려하네요.
[파티] 염소구더기: 우리도 얻을 거야 랜덤 보따리 사냥꾼이 우리 목표다!
[파티] 개나소나: 코스튬에 눈이 멀었군.
[파티]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하긴 더쎄는 돈이 있어도 히든 코스튬은 사기 힘들잖아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거래로 사려고 해도 필요 이상으로 엄청 비싸고
[파티] 영원한이등병: 하지만 랜보에서 히든 코스튬이 바로 나올 것 같지는 않은데;
[파티] 오메가원: 물정령 레어 코스튬도 얻었는데 혹시 모르지ㅎ
[파티] 영원한이등병: 오, 그러고 보니 그렇네?
신규 캐릭터의 레어 코스튬도 얻기 힘들지.
자유 게시판에도 레어 코스튬을 얻었다는 후기는 정말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였다.
영원한이등병이 이렇게 보면 염소구더기는 사실 엄청난 운의 소유자가 아닌가, 하는 채팅을 치는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이제 곧 5시가 되는 모양이었다.
[파티] 오메가원: 난 즐겜이긴 해도 적팀에 믄님만 안 만나면 좋겠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아 저번에 같이 했다던 위너 전 길마요? ㅋㅋㅋㅋㅋ 그 사람 엄청 유명한 거너잖아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저도 거너 연습하려고 믄님 영상 엄청 돌려봤는데
[파티] 개나소나: 만나면 전멸이지
개나소나도 더쎄를 좀 오래 한 유저이다 보니 믄님에 대해서는 아는 모양이었다. 결국 저번에 우연히 만난 믄님과 자세히봐야몬생김과 함께했던 판은 압도적으로 이겼다.
믄님의 데스는 고작 1, 그리고 킬 수는 27킬.
아직 탱커가 서툰 모타리가 똥을 싸든 말든, 계속 도적의 목표가 되어 썰리는 물 정령이 방해가 되든 말든 암살을 하고 다닌 믄님.
거의 믄님이 운전하는 버스에 몸만 탔다고 해도 무방한 결과였다.
[현상 수배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5.
4.
그리고 그들도 팀을 꾸려서 이벤트에 참가한다고 했을 때 경악했지. 물론 이런 이벤트에 고인물들이 참여를 안 할 이유가 없긴 하지만.
3.
2.
영원한이등병이 말했던 것처럼 심장이 쿵쿵 뛰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거의 마지막에 함께 했던 믄님의 플레이가 너무 뛰어났던 탓일까.
어쩐지 거너를 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졌으니까. 비록 팀원들에게는 얘기하지 않아서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파티] 염소구더기: 파이팅합시다!
[파티] 모타리: 파이팅ㅎㅎ
[파티] 영원한이등병: 라하~ 다 싹 쓸어버리죠!!
[파티] 오메가원: 라하~ 파이팅팅팅
[파티] 염소구더기: 개나소나는?!
1.
[게임을 시작합니다.]
[파티] 개나소나: ?
[파티] 염소구더기: 이 샤가지읍는…….
[파티] 개나소나: ㅋㅋㅋㅋ잘하는 애들은 알아서 잘해
[파티] 개나소나: 거너 빼고
채팅을 치려는데 게임 로딩 화면이 떠올라 치지도 못했다.
저 얄미운 놈! 저 얄미운 문정하 인간!
그동안 팀원들끼리 게임 연습을 하는 동안에도 부지런히 문정하는 저녁 먹을래, 드라이브 갈래, 같이 공부 할래, 등등의 이유로 불러내려고 했다.
물론 그 카톡들은 전부 같이 게임을 하는 동안에! 개나소나도 같이 게임을 하고 있으면서!
이놈은 분명히 게임에 별로 진지함이 없는 게 분명해. 아마 현실에서 내가 만나자고 하면 이벤트고 뭐고 던져두고 나오겠지? 그걸 좋아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모르겠네.
[캐릭터를 선택하세요.]
문구와 함께 팀원들이 익숙하게 캐릭터를 선택했다. 주로 합을 많이 맞춰본 캐릭터로 선택하는 게 제일 좋으니까.
염소구더기: 거너(원딜)
개나소나: 전사(근딜)
오메가원: 힐러(힐러/암흑)
영원한이등병: 도적(근딜/암흑)
모타리: 무투가(탱커)
탱커1, 근딜2, 힐러1, 원딜1.
조합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물론 스파이 힐러가 있지만. 그리고 초공격형 스타일이기도 하고.
적팀도 미리 조합을 맞추고 온 모양인지 빠르게 선택됐다.
사골현생: 전사(근딜/얼음)
wksth: 힐러(힐러/빛)
110퐁: 무투가(탱커/불)
해피메이커: 무투가(탱커/바위)
가재깡: 비행사(어시)
확실히 레벨이 높은 유저들이랑 하니까 다양한 속성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구나.
탱커2, 힐러1, 근딜1, 원딜1.
[파티] 영원한이등병: 누구 하죠? 비행사 픽하면 궁극기로 날아서 죽이기 힘들 것 같은데
[파티] 오메가원: 빛힐도 자가 치유 스킬이 많아서 어려울 듯
적팀에서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하는데, 다시 알림이 울렸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알림이.
[아군에서 현상 수배에 올릴 캐릭터를 선택해 주세요.]
화면에 올라오는 것은 아군의 캐릭터들. 당연히 적군 중에서 고르는 줄 알았던 일행들이 당황했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what……?
[파티] 오메가원: why……?
[파티] 개나소나: wow
[파티] 모타리: Unbelievable
[파티] 염소구더기: shit
영원한이등병을 시작으로 영어로 당황스러움을 표현하는 팀원들. 아니, 선택이라는 게 저쪽이 아니라 이쪽이었어?
[파티] 영원한이등병: ;;시간 가요 어쩌죠 탱커???
[파티] 개나소나: 걍 ㄱㄱ
누군가가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줄어드는 카운트다운에 아무나 고른 모양이었다. 선택이 완료되었다는 멘트와 함께 암전되었다.
얼핏 보이는 게임 화면에는 무수히 많은 건물이 미로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파티] 염소구더기: ???완전 새로운 맵인데
[파티] 염소구더기: 그보다 누가 선택된 건데?
[파티] 모타리: 여기 벽에 현상 수배 전단지 있어요.
전단지?
모타리의 말에 팀원들이 몰려들었다. 벽면에 붙여져 있는 수배 전단지에는 거너 캐릭터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었다.
적군에는 거너는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아군들 중에서 선택된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건데…….
자연스럽게 다른 캐릭터들을 둘러보자 찔린 이들이 서둘러 변명했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저 아님ㄴㄴ;;; 오해하시면 클나요, 막내님!
[파티] 오메가원: 22
[파티] 모타리: ㅠㅠㅠ염소형, 저도 아니에요!
[파티] 염소구더기: ㅡㅡ또 개소 너냐
[파티] 개나소나: ㅎ 사진빨 잘 받네
거너는 종이 몸이라서 이렇게 선택되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거 뻔히 알면서!
이를 갈았지만 정작 개나소나의 전사 캐릭터는 걸려있는 수배 전단지를 보며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얘기한다.
[팀] 염소구더기: 아니 왜 날 픽하냐고ㅡㅡ 탱커 하면 되잖아! 탱커! 잘 죽지도 않고! 거너는 종이 몸이라고!
흥분해서 파티 채팅으로 설정도 안 하고 팀 채팅으로 얘기했지만, 어차피 5인 파티니 상관없겠지.
개나소나는 그런 나를 무시하며 얘기했다.
[팀] 개나소나: 적 전단지는 없는 걸 보니 적군 본거지에 가까이 가야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는 듯
[팀] 개나소나: 여기 미로처럼 되어 있으니 거너 실력 발휘 좀 할 수 있겠네? ㅎ
[팀] 염소구더기: ㅡㅡ아니 네가 골라서 지금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잖아
[팀] 개나소나: 한 번 공주님은 영원한 공주님이지ㅎ
저 말도 안 되는 말을 핑계라고 지껄이다니! 결국 내가 걱정하면서 골탕 먹는 걸 보고 싶을 뿐이잖아, 아오!
[파티] 모타리: 형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지켜드릴게요!
[팀] 개나소나: ㅋ? 탱커는 앞장서서 시야 봐야지. 수배지도 보고 누구 죽여야 하는지 빨리 파악할수록 좋고.
[파티] 모타리: 그럼 염소형이 위험하잖아요.
[팀] 개나소나: 알아서 하겠지.
[파티] 모타리: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딨어요? ㅡㅡ
정말 누가 봐도 둘이 안 맞네. 팀 채팅과 파티 채팅 색깔도 서로 빨강과 파랑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더 대비되어 보인다.
물론 지금은 모타리 편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이렇게 질질 끌어서는 안 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이미 게임은 시작되었다.
이를 갈면서 아이템을 보았다.
이렇게 되면 원래대로 공격형으로 갈지 방어형으로 갈지 골라야 하는데, 사냥감이 된 이상 방어형으로 가는 게 맞지만… 기본적으로 거너 캐릭터는 체력과 방어력이 낮다. 방어형이 되어봤자 공격도 방어도 아닌 어정쩡한 캐릭터가 되게 마련이다.
원래대로 공격형으로 가자. 만약 적군이 비행사를 선택했다면 공격할 수 있는 캐릭터가 거너가 유일할 테니까.
[팀] 영원한이등병: ㅇㅇ 일단 진정하고 적군 수배자는 누구인지 보러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팀] 개나소나: 전부 움직이지 말고 탱커랑 거너만 남고 움직이죠.
[팀] 영원한이등병: 탱커도요?
[팀] 개나소나: 적군들은 당연히 죽이기 힘든 탱커를 선택했을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팀] 영원한이등병: ㅇㅎ 연막으로 미리 깔아두는 거군요!
탱커를 미끼로 던져두고 탱커만 집중적으로 노리게끔 유도하자는 뜻이었다.
애초에 거너는 사각지대에서 암살을 주로 하는 캐릭터니까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크게 의심은 하지 않을 터. 오히려 탱커를 노리고 달려든 적군들을 역으로 공격하기 좋을지도 몰랐다.
그 짧은 사이에 생각보다 상황 판단이 좋네.
[팀] 개나소나: 겸사겸사 거너 노리러 오는 적을 탱커가 막을 수도 있고
[팀] 염소구더기: ㅇㅋ 일단 말할 시간에 출발ㄱㄱ
[팀] 개나소나: 아까는 뭐라고 하더니
전사 캐릭터가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미로처럼 엮인 맵은 처음이었고 미니맵에도 아군이 있는 주변만 둥글게 보이는 형식이었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맵에서는 특히나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영원한이등병과 오메가원은 같이 움직이며 개나소나와는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미니맵에 아군들이 두 갈래로 나뉘어 이동하는 게 보였고, 영원한이등병 쪽에 먼저 적군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팀] 오메가원: 빛힐, 돌무!
빛 힐러와 바위 속성 무투가인가. 하필이면 마주쳐도 저렇게 마주치다니. 완전 극공과 극방의 만남이네. 저기는 쉽게 결판이 나지는 않겠는걸.
도적의 공격 스킬로 HP를 깎아내리려고 해도 바위 속성 자체가 방어력이 워낙 높기도 하고 바로 옆에서 힐러 중 치유 스킬이 가장 많은 빛 힐러가 치유를 해버릴 테니까.
[팀] 염소구더기: 모타리
[팀] 모타리: 넹
[팀] 염소구더기: 나 궁극기 켜둔 동안 누구 접근하는지 잘 봐. 저격 들고 있는 동안 주변 시야 제대로 못 보니까.
[팀] 모타리: 넹ㅎㅎ
미니맵에 당장 보이는 적군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적군들은 이미 움직였다면 벌써 가까이 도착했을 가능성이 높지.
비행사가 궁극기를 썼을 가능성을 대비해서 하늘을 둘러보았지만 아직은 보이는 건 없다.
내 칼이 오늘도 붉게 물들겠군.
오, 바로 전사의 궁극기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아하니 개나소나도 적군과 마주친 모양이었다. 하지만 바로 킬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걸 보니 탱커를 벤 듯했다.
[팀] 모타리: 같은 무투가라도 속성별로 다른 거죠?
[팀] 염소구더기: ㅇㅇ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바위 속성이 완전 방어 중심인 걸로 알고 있어
[팀] 염소구더기: 불 속성은 확실히 모르겠는데
[팀] 개나소나: 이쪽은 불사신 콘셉트인 듯. 닿으면 화염 대미지 피해 작살 나네
[팀] 염소구더기: 그래도 채팅할 여유는 있나 보고?
[팀] 개나소나: 내 걱정도 좀 해달라고 너무 여유로워 보이길래
[팀] 염소구더기: 어쩔ㅎ 그럼 담에 수배자 명단에 오르시던가
[팀] 모타리: …두 분 원래 아는 사이인가요? 친해 보이는데.
…황보욱 시력 제정신인가. 안경은 안 끼고 있었는데.
[팀] 개나소나: ㅋㅋㅋㅋ ㄴ 원래 모타리 아이디 주인이랑 친한데
[팀] 개나소나: 저 염소는 노관심
[팀] 염소구더기: ㅡㅡ나도 관심 없거든
그리고 누가 누구랑 친하다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은근슬쩍 현실의 나랑 친하다고 태연히 거짓말을 하는 모습에 혀를 찼다.
[팀] 모타리: 그러고 보니 친구 아이디인 거 바로 아셨죠.
[팀] 모타리: 저 대학 친구인데 그럼 저랑 동갑이신가요?
[팀] 개나소나: ㄴㄴ 내가 형
[팀] 모타리: 아ㅎㅎ 연상이셨구나
[팀] 개나소나: 같은 대학
[팀] 모타리: 같은 대학이요? 혹시 OO대학이세요?
와씨. 순간적으로 땀이 흐르는 느낌이다.
개나소나 저놈은 왜 게임에 집중을 안 하고 채팅을 갑자기 저렇게 열심히 쳐? 그리고 쓸데없이 개인 정보는 왜 발설하고!
[팀] 개나소나: ㅇㅇ간호과?
[팀] 모타리: 넵 같은 학교 선배님이실 줄은 몰랐는데
[팀] 모타리: 세상 진짜 좁네요!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설마 시비 붙었던 재수 없는 개나소나가 같은 대학 선배에 사촌 형 친구일 줄도 몰랐고. 같은 학과에 재수 없는 동기가 한 번 도와줬다고 들러붙는 뉴비일 줄은 몰랐지.
[팀] 영원한이등병: 와 ㅋㅋㅋㅋ 두 분 같은 대학이세요? 대박 사건!
[팀] 오메가원: 지구는 둥글다.
[팀] 영원한이등병: 진짜 그렇네요ㅋㅋㅋㅋ 아니, 그보다 여기 빛힐 왜 이리 회복량 뛰어나요? ㅠㅠㅠ스킬쿨도 겁나 짧아서 계속 탱커 회복되는 중이요.
[팀] 영원한이등병: 개나소나 형님 얼른 해치우고 여기 합류 좀 부탁해요ㅜㅜ
[팀] 개나소나: 어차피 너는 죽어도 상관 없잖아ㅅㄱ
[팀] 오메가원: 그러고 보니 염소 막내도 대학교 다니지 않나? 같은 대학이면 소름 끼칠 것 같은데.
[팀] 영원한이등병: 설맠ㅋㅋㅋㅋ 그런 우연이 있을 리가요.
있는데, 그런 막장 우연.
입이 근질거렸지만 애써 참았다. 그 와중에 개나소나가 적군을 죽였다는 알림이 뜬다.
1Kill.
바로 킬이 뜨는 것을 보아하니 불 속성 무투가는 지목된 캐릭터가 아닌 모양이었다. 탱커 중에 하나를 선택할 줄 알았는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얼음 전사와 비행사.
근딜인 얼음 전사를 현상 수배로 걸 것 같지는 않고 비행사가 정답이겠지. 회피기도 있고 궁극기로 날아서 피할 수도 있으니까.
[팀] 개나소나: 비행사겠네
[팀] 오메가원: ㅇㅇ 가재깡만 처리하면 될 듯
가재깡? 묘하게 익숙한 닉네임이라고 생각했더니.
거너가 현상 수배범이라는 걸 알았으니 궁극기를 써서 날아오지는 않겠다 싶어 궁극기를 거두어들였다.
[팀] 염소구더기: 적군 비행사 초보. 비행사 못함
[팀] 영원한이등병: 엥? 어떻게 알아요?
[팀] 염소구더기: 저번에 해본 적 있음. 적군으로 만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그때 비행사 첨이라고 했음.
[팀] 오메가원: 그럼 진짜 초보겠네.
[팀] 개나소나: ㅇㅋ 그럼 거기 두 명 묶어두고 있어.
[팀] 개나소나: 한 번 휘젓고 옴.
빛 힐러와 바위 속성 무투가는 붙잡아 두었고 불 속성 무투가는 이미 죽은 상태다.
남은 건 얼음 전사와 비행사. 안쪽까지 쳐들어간 개나소나의 주변에 적군들이 감지되었다.
미니맵에 발견된 적은 두 명. 작은 점으로 표기되었지만, 그게 누구인지 뻔해서 서둘러 다시 궁극기를 준비했다.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이 정도 거리이면 궁극기를 시전한 소리도 듣지 못했겠지. 개나소나와 마주친 점 두 개가 왔다 갔다 움직인다. 아마 개나소나를 피해 움직이는 거겠지.
그리고 상대적으로 뒤에 있던 붉은 점이 갑자기 장애물을 가르고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장애물을 가르고 움직이는 것은 하나뿐이다. 비행.
날아올랐구나.
건물이 많이 있는 아래와는 달리 허공은 아무런 장애물도 없었다. 그 가운데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캐릭터가 멀리서 보였다.
멀지만, 닿는다. 그 생각이 들자 바로 연속으로 탄환을 쏘았다.
[아군이 적군을 공격합니다.]
한 발이 스치듯 맞히고 두 발째는 놓쳤다. 재빨리 공격 속도 레벨을 올리고 더불어 공격력을 올린 채 도망치려는 비행사에게 남은 세 발을 연속으로 쏘았다.
Critical hit!
[염소구더기 님이 사냥에 성공하였습니다!]
[게임이 종료됩니다.]
[승자에게는 랜덤 보따리 다섯 개, 승리한 팀원들에게는 랜덤 보따리가 한 개씩 지급됩니다.]
[보상이 인벤토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전체] 가재깡: 아니… 처음부터 염소님이 적팀에 있다니 반칙 아닌가요ㅠㅠㅠㅠㅠ
역시 쟤도 나를 기억하는구나. 어쩐지 만날 때마다 안 좋은 기억을 안겨주는 것 같긴 하지만, 나는 반대 상황이니까.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쌓이는 랜덤 보따리에 흐뭇하게 웃었다. 현상 수배 이벤트.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벤트전의 출발이 좋았다.
초공격형으로 이루어진 멤버 구성은 우려와는 달리 초반부터 좋은 결과를 이끌었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이 몸의 위대함! 인정하십니까? 찬양하시겠습니까?!
첫판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진행한 상황은 영원한이등병의 압승이었다. 부지런하게 밤 아홉 시까지 달린 일행 중에서 가장 많은 랜덤 보따리를 소유하고 있었으니까.
[파티] 염소구더기: 인정은 하는데… 솔직히 나만 계속 현상 수배로 올려져서 앞으로 나서지를 못하니까 불만인데요!
그래, 영원한이등병이 잘하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도 억울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현상 수배범 몰아주기!
멀쩡한 탱커가 있는데 왜 자꾸 거너에게 몰아주는 건지 모르겠다. 투덜거리며 불만을 토로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 파티원들 덕분에 폭발 직전이었다.
[파티] 염소구더기: 나도
[파티] 염소구더기: 나도!!
[파티] 염소구더기: 랜보!! 코스튬 얻을 거라고!!
[파티]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ㅋ
[파티] 영원한이등병: 막내님, 진정해요! 너무 장난이 심했네ㅋㅋㅋㅋ 확실히 한 명한테만 몰아서 하면 억울하니까 돌아가면서 할까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어차피 우리 즐겜러니까 서로 즐기면서 공평하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파티] 오메가원: ㅇ 막내님 고혈압으로 넘어갈 기세니까 그게 좋을 듯.
[파티] 모타리: 저는 상관 없습니당 ㅎㅅㅎ
[파티] 영원한이등병: 개나소나 형님은요?
[파티] 개나소나: 내가 지킬 공주님은 한 놈뿐인데
[파티] 염소구더기: 공주님한테 총 맞고 싶음?
[파티] 개나소나: 나쁘지 않지ㅋ
지켜야 할 공주님 좋아하신다. 말은 그럴듯하게 해 놓고 죽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 주제에.
제일 신나서 앞으로 달려가는 전사 캐릭터의 뒤통수에 저격이라도 해 주고 싶었던 마음은 알까 모르겠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그럼 일단 내일은 탱커 위주로 가볼까요. 애초에 탱커가 제일 안전할 것 같으니까.
[파티] 개나소나: 그건 그런데 집중 공격 들어올걸
[파티] 개나소나: 거너를 선택할 거라고 예상을 못 했으니까 거너는 그냥 지나쳤겠지
[파티] 영원한이등병: 그건 그렇죠. 어느 미친놈들이 종이 몸의 대표 주자인 거너를 선택했다고 생각하겠어욬ㅋㅋㅋㅋㅋㅋ
이전 판에서만 해도 아군 구역까지 기습으로 들어왔던 적군의 궁수가 구석에 있는 염소구더기와 모타리를 발견하고는 바로 궁극기를 모타리에게 명중시켰었다.
옆에서 거너가 있든 말든 죽어라 모타리를 노리는 모습 덕분에 여유롭게 궁수를 죽일 수 있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개나소나 저 인간 말에 부정은 하고 싶은데 부정을 할 수가 없어!
[파티] 개나소나: ㅋ그러니까 한 번 공주님은 영원한 공주님인 걸로? ㄱㄱ?
[파티] 모타리: 선배님
인벤토리에 쌓인 랜덤 보따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모타리가 옆에서 계속 지켜주니까 만족하면서 최대한 킬을 노릴 수밖에 없나, 고민하는데 개나소나를 부르는 딱딱한 호칭.
게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호칭과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채팅창이 조용해졌다.
[파티] 개나소나: ?
[파티] 모타리: 형이 저렇게 원하는데 그냥 제가 타깃 하면 안될까요. 구석에 잘 숨어있을게요.
[파티] 개나소나: 구석에 숨어있어도 탱커라고 바로 눈치 까고 적군이 직진해 올 확률이 높은데
[파티] 개나소나: 페이크를 주는 게 나아
[파티] 모타리: 저도
아, 왜 또 불안해지지. 설마 믄님 때와 비슷한 상황이 이루어지나 싶어서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는데 모타리가 말을 마저 이었다.
[파티] 모타리: 선배님의 소중한 공주님이 되고 싶습니다!
[파티] 개나소나: ?
[파티]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오메가원: 사내 연애의 시작?
[파티] 개나소나: 곤란한데
[파티] 개나소나: 염소가 질투함
[파티] 영원한이등병: 형님, 벌써 결실을 맺으신 거였습니까? 왜 말씀을 안 해주셨나요! 누구보다 제대로 축하해 줬을 텐데! 지금이라도 외침으로 모든 유저들이 알게끔 알릴 자신 있습니다!!
[파티] 염소구더기: 님들 개소리ㄴ
[파티] 염소구더기: 모타리도 개소리 그만
[파티] 모타리: 저 진짜 진심인데요, 형.
[파티] 모타리: 선배님이 형만 공주님으로 만들려고 하잖아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이상한 상황인 거지.
아직 상대편을 찾지 못해 매칭 중인 게 다행이다. 정신이 너무 어질어질했다.
모타리의 확고한 태도는 분명히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기 위한 좋은 의도임은 알겠다.
알긴 아는데!
‘왜 저런 식으로 하냐고! 우기우기 저건 제정신인가? 저게 원래 성격이야? 현실이랑 왜 이렇게 다르냐고.’
언제부터 사람을 그렇게 배려했다고 저렇게까지 행동하는 건지 모르겠다. 현실이랑 게임이랑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야 많기는 해도 너무 낯설지 않은가.
[현상 수배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게임이 시작됩니다.]
카운트다운이 지나고 게임이 시작된다는 문구가 떠오른다. 적에게 노려질 타깃은 다수결로 진행되지만, 시간이 촉박한 경우에는 처음으로 선택한 아군의 결정으로 진행하게 된다.
[캐릭터를 선택하십시오.]
익숙하게 각자가 진행할 캐릭터를 선택하자 또다시 익숙한 문구가 떠오른다.
[아군에서 현상 수배에 올릴 캐릭터를 선택해 주세요.]
그리고 이어지는 모타리의 구애 활동.
[파티] 모타리: 선배님
[파티] 모타리: 저 진짜 실망시키지 않고 최고의 공주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파티] 모타리: 교양있고 다소곳하게 구석에 있을 것을 맹세하며
[파티] 모타리: 외간 적군들과 마주치지 않게 철저히 눈을 깔고 다닐 것을 맹세합니다.
[파티] 모타리: 또한
[파티] 개나소나: 그만
모타리 캐릭터 밑으로 개나소나의 이름이 뜬다. 그가 투표했다는 뜻이었다.
[파티] 개나소나: 현실에서 절대 마주치지 말자, 후배님.
[파티] 모타리: 조금 아쉽지만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파티]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ㅋ결국 신입님 패기에 형님이 졌나요?
영원한이등병의 이름이 뜨고 그 밑으로 오메가원의 이름도 자리 잡았다. 이미 다수결 투표상 모타리의 확정이었다.
기어코 저 개나소나의 의견을 꺾고 제 목표를 이루어냈다.
[파티] 염소구더기: 모타리
[파티] 모타리: 넹, 형! ㅎㅎ
[파티] 염소구더기: 그
[파티] 염소구더기: ㅎ고맙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고 얘기하려다가 믄님 때도 내 편을 들어주었는데 하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믄님 때랑 달리 지금은 상대가 개나소나니까 곤란해하든 말든 상관없긴 하지.
고맙다는 말에 모타리는 행복하게 웃는 행동 모션을 취하며 구석에 자리 잡았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몸을 사리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게임을 시작하고 적군과 아군이 선택한 캐릭터가 공개되었다. 적군 중 누가 타겟으로 지정되었는지 유추하기 위해 화면을 본 일행들은 의외의 상황에 당황하며 팀 채팅으로 말했다.
[팀] 오메가원: 적군 조합 왜 저럼?
[팀] 영원한이등병: 저 정도면 왕따 아니에요?
Waker: 도적(근딜/바람)
김여신: 정령사(방어/빛)
칠칠: 정령사(공격/불)
창조주: 정령사(공격/바람)
좀투: 정령사(어시/물)
물 정령사 이외의 정령사들은 보지 못해 저렇게 속성이 다양하다는 걸 처음 알게 되어 당혹스러웠다.
아니, 당혹스러운 걸 넘어서 보통 저렇게 같은 캐릭터를 속성만 바꿔서 하는 일은 흔하지 않을 텐데? 콘셉트인가?
승패는 관련 없이 재미 위주로 이벤트를 하는 건가 싶어서 신기하게 바라보는데 콘셉트를 전달받지 못한 듯한 도적 캐릭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체] Waker: 또 속은 내가 멍청하지
[전체] 김여신: 그걸 이제 알았다면 유감
[전체] Waker: 입 다물어ㅡㅡ 네가 제일 짜증 나니까
[전체] 김여신: 유감
[전체] 칠칠: Me, too.
[전체] 창조주: 여기서는 한국말 써도 되는데ㅎ
[팀] 오메가원: 저 콘셉트 탐난다…….
[팀]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오메가 형님, 저런 거 바래봤자 개나소나 형님은 절대 안 해줍니다ㅜ 우리 희망을 버려요.
[팀] 오메가원: 유감
[팀] 개나소나: 빛 정령ㄱ?
역시나 개나소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대략적으로 타깃을 유추하며 앞으로 돌진했다. 그나마 방어 계열인 빛 정령을 의심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정령사 캐릭터는 무투가보다 체력이 훨씬 낮을 텐데.
그에 질세라 거너도 빠르게 앞으로 뛰어갔고 도적도 우측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오메가원은 탱커를 지키려는 모양인지 모타리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다 점프해서 건물 위로 뛰어 올라가는 전사 캐릭터를 보았다. 거너보다 기동력이 높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건물 위로 재주 좋게 점프해서 움직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랜덤 보따리, 코스튬!
이번에는 절대 뺏기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스킬을 사용했다. 한층 더 멀리까지 보이는 곳에 어렴풋이 무언가가 잡혔다.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빛 정령이다.
건물 위에 있는 전사 캐릭터가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지만, 선수를 뺏길 생각은 없었다. 사정거리가 긴 탄환이 빠르게 빛 정령에게 연달아 쏘아졌다.
[전체] 김여신: 어이쿠
하지만 예상했다는 것처럼 바로 제 몸에 결계를 둘러 탄환을 막아내는 빛 정령. 건물에서 떨어져 내리며 스킬을 사용하는 개나소나의 공격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바로 반사 기술로 막아냈다.
[전체] 김여신: 연약한 여신을 이렇게 괴롭히다니
[전체] 김여신: 유감
연약한 여신치고는 HP가 하나도 닳지 않는 모습이 더 유감이었다.
[팀] 영원한이등병: 좌측에 누구 있어요? 우측에 아무도 없는데요?
[팀] 염소구더기: 뭐? 여기는 빛 정령밖에 없는
아, 미친.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상황 파악이 된 나는 서둘러 뒤로 돌아 모타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동 속도 아이템까지 사용하며 빠르게 달려가니 우측으로 빠졌던 영원한이등병도 건물 위에서 폴짝 뛰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팀] 영원한이등병: 함정이네요
[팀] 오메가원: 이쪽으로 오는데
[팀] 오메가원: 정령사 전부
[팀] 염소구더기: 모타리 최대한 오메가원님 뒤에 숨어서 버텨
[팀] 모타리: 넵ㅜㅜ
[팀] 개나소나: 그럼 이 빛 정령도 타깃이 아닐 확률이 높겠네.
결계로 무장된 빛 정령을 상대하며 개나소나가 말했다. 그래도 일단 누가 정확히 타깃인지 알 수 없으니 놔두고 갈 수는 없어서 맡아서 처리하기로 한 개나소나가 마저 이어서 얘기했다.
[팀] 개나소나: 처리하고 수배지 보러 감
[팀] 개나소나: 그때까지 버텨라 공주
[팀] 모타리: 노력해보겠습니다, 선배님.
[팀] 개나소나: 아까 맹세했던 거 잘 지키라고 공주님. 콘셉트에 충실하셔야지?
[팀] 모타리: …공주는 무서워요.
네가 더 무서워.
차마 내뱉지는 못하고 달려가는데 오메가원의 스킬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사슬 소리와 함께 들리는 성우 목소리. 적이 쳐들어왔구나.
영원한이등병의 도적 캐릭터가 재빨리 건물 위로 올라갔다. 기습을 하려는 것 같아서 나는 제자리에 선 채 궁극기를 켰다.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도적의 기습이 성공하려면 적군의 정신을 쏙 빼놓아야 한다. 지금 남은 탄환은 세 개.
오메가원이 불 정령을 상대하는 것이 보였고 물 정령과 바람 정령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물 정령과 달리 성인 버전의 여성과 노인의 모습을 한 정령들.
‘빛 정령을 제외하면 방어력이 높은 정령사는 없겠지.’
특히 다른 놈들은 몰라도 물 정령은 최근에 자주 써본 캐릭터라서 잘 알았다.
탄환이 빠른 속도로 물 정령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전체] 좀투: ?
[전체] 창조주: 멋있는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전체] 창조주: 그것도 못 피함? ㅋㅋㅋㅋ
[전체] 칠칠: Help me.
[전체] 창조주: 제가 구해드릴게요!
외국인 유저인가 싶었지만, 하는 문장들이 너무 간단한 걸 봐서는 짧은 영어 지식을 뽐내고 싶은 초딩인 모양이었다.
물 정령의 HP가 간당간당했다. 마저 죽일까 싶었지만, 바람 정령이 거슬린다.
빠른 속도의 회오리바람이 오메가원과 모타리를 구석으로 밀어내며 대미지를 확실히 주고 있었다. 사슬에서 풀려난 칠칠의 HP도 간당간당하다.
나머지 좀비 커플은 게임이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속성까지 가지고 있으면 게임 경험이 적지는 않을 텐데 왜 창조주가 공격하는 모습을 멀뚱히 보고만 있는 걸까.
[팀] 영원한이등병: 막내님ㄱㄱ
신기한 팀워크에 잠시 구경을 하고 있는데 영원한이등병이 재촉했다.
이어서 좀비 커플 사이로 뛰어내리는 도적 캐릭터. 아마 딸피인 저 두 명을 먼저 해치울 계획인 듯싶었다.
궁극기가 필요 없을 만큼 방심하고 있는 둘을 향해 도적의 무기가 반짝이던 순간이었다.
윈드 레이지!!
적군의 습격이었다. 그것도 기습 궁극기!
타이밍을 기다린 듯한 Waker의 바람 속성 도적이 무서운 속도로 영원한이등병을 내리찍었다. 바닥을 세게 찧고 위로 튕기자 그것을 또 하늘 위로 쳐올리는 살벌한 연계 공격기에 아찔해진다.
[팀] 영원한이등병: 나도 헬프 미!
[팀] 오메가원: 너무 빨라서 디버프 스킬도 걸기 힘들다
[팀] 염소구더기: 저격 맞추기도 어려움
[팀] 영원한이등병: 적은 헬프 미 치면 바로 도와주는데 우리 팀은 바로 각재고 포기하는 거 보소! 개나소나 형님 저 좀 도와주세요!
[팀] 개나소나: 멀어
[팀] 영원한이등병: 매정해!
매정해도 어쩌겠는가. 설마하니 아군의 영역에서 저렇게 작정하고 기습을 준비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오메가원이 정령들이 전부 쳐들어왔다고 얘기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정령들이 전부 왔다는 건 도적은 없다는 소리가 아니었던가.
[팀] 오메가원: 내 실수
[팀] 염소구더기: 아니에요. 저희도 미리 눈치채고 들어왔어야 했는데.
[염소구더기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오메가원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물 정령과 불 정령이 나와 오메가원의 공격에 허무하게 죽었다. 애초에 HP가 얼마 남지 않았던 캐릭터들이라서 처리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적군이 영원한이등병 님을 처리하였습니다.]
[개나소나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두 번의 알림이 이어졌다. 영원한이등병 캐릭터가 축 늘어져 사망했고, 개나소나가 빛 정령을 처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벤트전은 종료되지 않았다. 즉 남은 두 캐릭터 중에서 타깃이 있다는 것.
공교롭게도 두 캐릭터는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개나소나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 상황은 3:2. 심지어 양쪽 타깃도 이 자리에 존재한다.
[팀] 염소구더기: 타깃 ㄴㄱ?
[팀] 개나소나: 인내심을 가져야지 공주님
[팀] 염소구더기: 네 공주님은 저기 덩치 큰 놈이잖아
적군의 도적 캐릭터가 빠르게 모타리에게 달려갔다. 바람 정령의 스킬도 모타리에게 집중되었다.
탱커라고 의심하고 있어서?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망설임 없이 오메가원을 스쳐 지나가며 공격하는 모습이 이상했다.
[팀] 개나소나: 바람 정령
아군의 캐릭터들이 동시에 바람 정령사인 창조주를 향했다. 시선이 집중되자 바로 뒤로 물러선 창조주가 바람 장벽으로 주변을 감쌌다.
[전체] 창조주: 벌써 들켰나
[전체] 창조주: 빨리 처리해
[전체] Waker: 아오, 내가 저걸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Waker가 빠르게 벽을 타고 올랐다. 살짝 튀어나온 창문 난간을 점프해서 밟았다. 앞을 막아서고 있던 오메가원을 피해 모타리에게 돌진했다.
확실하다. 저들도 지금 타깃이 모타리라는 것을 알고 공격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마도 기습을 노리는 동안 근처에서 매복하고 있던 Waker가 현상 수배지를 발견하고 일행들끼리 공유한 것이겠지.
거너의 궁극기는 고작 하나밖에 생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창조주는 여전히 바람의 장벽 너머에 안전하게 서있었다.
저 장벽은 지속되는 공격으로 부서서 깨거나, 지속 시간이 끝나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동료를 위한 제물은 너희들인가.
빠른 속도로 HP가 닳는 모타리를 향해 Waker가 또다시 달려들었다. 무시당한 오메가원이 궁극기를 시전했다.
거대한 낫이 소환되고 일직선으로 크게 베는 시늉을 했지만 그곳에는 허상만 존재했다.
[전체] Waker: The End.
회피기 사용 타이밍이 미친 수준이었다. 공중에서 사신의 낫을 피한 Waker는 그대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타리를 향해 단도를 내리찍었다.
[Waker 님이 사냥에 성공하였습니다!]
[게임이 종료됩니다.]
순식간에 끝난 게임에 멍했다. 10분은 걸렸나? 시계를 보았지만 그것보다도 짧게 걸린 듯했다.
수고했다는 상대편의 채팅에 마찬가지로 수고했다고 채팅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정령사들은 크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도적 캐릭터의 게임 센스가 미친 수준이었다.
랭커는 아닌데 어떻게 저런 회피 기술을 쓸 수가 있는 거지?
[파티] 영원한이등병: 저 진지하게 바람 속성으로 갈아탈까요?
게임이 끝나고 대기 채널로 돌아오자 영원한이등병이 파티 채팅으로 얘기했다. 치명타는 암흑 도적이 높기는 했지만, 회피기가 바람 도적이 미친 수준이었다.
저런 걸 어떻게 잡아.
[파티] 영원한이등병: 저 이제 자야함요ㅜ 저 때문에 새벽까지 못해서 ㅈㅅ
아직 학생인 영원한이등병은 당연히 새벽까지 게임을 하는 것이 허락될 리가 없었다. 미안하다며 우는 모션을 하는 그에게 괜찮다고 얘기했다.
어차피 모타리도 새벽에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으니 더 이상의 이벤트전은 무리였다.
무조건 정해진 다섯 명만 참가가 가능했으니까. 오늘은 이쯤하고 내일 더 할까.
짧은 인사만 하고 나가는 영원한이등병과 모타리를 따라서 오메가원도 이만 가보겠다고 하며 접속 종료를 했다. 어느새 남은 것은 나와 개나소나뿐이었다.
[귓말] 개나소나: 야
난 얘가 귓말만 걸어오면 불안하더라.
또 무슨 시비를 걸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까 두려워서 대답도 하지 않고 화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채팅이 기다렸다는 듯 또 올라온다.
[귓말] 개나소나: 길드 만들 생각은 없음?
‘길드?’
아직 WINNER 길드에 신청했던 답변도 제대로 듣지 못한 상태인데 길드를 만들라니?
게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존재에게서 듣는 말이라서 얼떨떨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문정하가 길드 얘기를 얼핏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귓말] 염소구더기: 나 위너 신청했는데
[귓말] 개나소나: 아는데 어차피 떨어질 거임
[귓말] 염소구더기: 네가 뭔데 저주를 해 ㅡㅡ
[귓말] 개나소나: 저주가 아니라 사실인데
[귓말] 염소구더기: 나랑 뭐 하자는 거임? 일단 게임을 같이 하기는 하는데 이런 식으로 님이랑은 굳이 더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문정하라는 사실을 모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첫인상 때에 비해서는 그래도 많이 좋아진 편이기는 했지만, 그의 말투는 썩 기분 좋은 편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언제는 솔로로 플레이하는 게 좋다면서?
개나소나는 잠시 동안 대답이 없었다. 말이 심했나, 싶어서 조금 찔렸지만 굳이 주워 담을 생각은 없었기에 모른 척했다.
물론 믄님이 WINNER에 없으면 굳이 그쪽 길드에 갈 생각은 없기는 했지만, 내가 길드를 만든다고?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친목 위주의 길드도 분명히 있겠지만 WINNER에 속했던 적이 있어서 그럴까.
‘길드 마스터는 누가 봐도 우러러볼 만한 사람이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믄님처럼.’
믄님에 비하면 염소똥도 그렇고 염소구더기도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오히려 지금은 거너 랭커 시절보다 감을 잃어서 예전만큼의 실력도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니 개나소나의 제안이 그저 우스울 수밖에.
[귓말] 개나소나: 난 친해지고 싶은데
순간 글을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비볐다. 하지만 다시 봐도 분명히 개나소나다.
[귓말] 염소구더기: 님 뭐 잘못 드심? 무섭게 왜 이럼;
[귓말] 개나소나: ㅋㅋㅋㅋㅋㅋ
[귓말] 개나소나: 왜 안 믿지?
[귓말] 개나소나: 내 말투가 까칠한 건 인정하고 기분 나빴다면 미안
[귓말] 염소구더기: 왜, 왜 이러세요? 제 장기 신선하지 않아요;
설마 문정하가 염소구더기가 나라는 걸 눈치챈 건 아니겠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가정이었다.
닭살이 올라온 팔뚝을 세차게 문질렀다. 혹시나 싶어 휴대폰을 보았지만 따로 연락 온 건 없었다.
임해서가 사실을 말한 거라면 찔려서라도 내게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가 왔을 것이다. 임해서가 아니라면 누구지? 아님 내 행동에서 뭐가 티가 났나?
식은땀이 흘러 등 뒤가 축축해졌다. 공포 영화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다.
[귓말] 개나소나: 아
[귓말] 개나소나: 나 지금 컴 꺼야 함
[귓말] 개나소나: 약속 시간에 들어오겠음
[귓말] 염소구더기: 잠깐만
[귓말] 개나소나: ㅂ
[개나소나 님이 접속을 종료하였습니다.]
저 썩을 놈. 웬일인가 싶었더니 또 제 할 말만 하고 나가 버린다.
진짜 문정하가 현실에서 엄청 내숭을 부리는 게 맞긴 맞구나. 실제로는 저렇게 심한 마이웨이에 자기중심적이라니.
[귓말] 염소구더기: ㅅ1밤밤야…….
[귓말] 염소구더기: 문정하 또라이 선배야
듣는 이는 없어도 불안한 욕설은 상대를 계속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