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4. 꼬리가 길면 밟힌다 (2)
15. 개나소나의 애정 공세
16. 불안한 낌새
17. 개판 5분 전: 길드전
18. 길드전 (1)
19. 길드전 (2)
20. 누군가의 워너비
14. 꼬리가 길면 밟힌다 (2)
[길드] 영원한이등병: 헐, 제가 꼴찌인가유?!
게임이 끝나고 개나소나에게 파티 초대 신청을 보내려고 하는데 때마침 영원한이등병이 접속했다. 집에 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바로 들어온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칼 같은 출근이었다.
[길드] 염소구더기; 이등병님ㅎㅇㅎㅇ
[길드] 오메가원: 라하~
[길드] 영원한이등병: 막내님, 오메가형님 두 분 모두 라하~!!
[길드] 영원한이등병: 신입님이랑 개나소나 형님은 저 안 반겨주세요!?
등장부터 참 떠들썩한 영원한이등병이었다. 황보욱이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채팅을 치는 것을 보며 영원한이등병에게도 파티 신청을 보냈다.
[염소구더기 님이 파티에 초대하였습니다.]
[영원한이등병 님이 파티 신청을 수락하였습니다.]
[길드] 모타리: 안녕하세요.
[길드] 영원한이등병: 오잉, 오늘따라 신입님이 좀 딱딱한 것 같은데
[길드] 영원한이등병: 저 뭐 잘못했나요? ㅜ
[길드] 오메가원: ㄴㄴ 오늘 어디 편찮으신 듯…… 아까부터 저랬음
[길드] 염소구더기: ㅎ 신경쓰지마세요! 딱히 신경 쓸 놈 아닙니다~
[길드] 모타리: ㅡㅡ
[길드] 영원한이등병: ?
[길드] 오메가원: ??
모타리의 신선한 반응에 상황을 모르는 일행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긴 어제는 갑자기 잠수를 타더니 오늘은 태도가 확 바뀌었으니, 나 같아도 당황할 만하긴 하지.
[길드] 영원한이등병: 신입님
[길드] 모타리: 네?
[길드] 영원한이등병: 혹시 해킹당하셨어요?
질문하는 영원한이등병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평소와 같은 발랄한 말투도 쓰지 않고 진지하게 묻는 그는 곧이어 빠르게 덧붙이며 물었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예를 들어서 개나소나라던가, 개나소나라던가, 개나소나라던가!
[길드] 개나소나: ㅡㅡ?
[길드] 영원한이등병: 그게 아니면 갑자기 막내님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 확 바뀔 리가 없는데ㄷㄷ
[길드] 개나소나: ㅡㅡ?
[길드] 영원한이등병: 아이참~ 넝담~ ㅎ
[길드] 영원한이등병: 형님, 조크요 조크! 아이엠 유머러스남~!
다급하게 발랄하게 말하는 영원한이등병이 조금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황보욱은 채팅을 멀뚱히 보다가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이상해?”
“그럼 넌 안 이상해?”
“…….”
본인도 양심은 있겠지.
황보욱은 차마 이상하지 않다고 단호하게 대답하지는 못하고 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설마 개나소나한테 해킹당했냐고 물을 줄은 몰랐다.
개나소나의 반응도 웃겨서 입술이 실룩거렸다. 평소였다면 시비조로 반응했을 것 같은데 왜 저런 이모티콘만 쓰지? 곧 이유를 깨닫고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문정하라도 중학생인 걸 알았는데 굳이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았겠지.’
그 정도로 막 나가는 성격은 아니니까.
개념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를 놈이었다. 나에게 하는 행동이 내숭이라는 건 알았지만, 평소 성격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니까. 아마 개나소나 성격이 본 성격에 가까울 것 같기는 한데.
[길드] 모타리: 알고 보니
[길드] 모타리: 아는 사람이어서 그랬어요
[길드] 모타리: 해킹 아닙니다.
[길드] 염소구더기: 대답 보고 로봇인 줄
[길드] 염소구더기: 와, 실시간으로 지금 모타리가 저 노려보는데요? ;_;
[길드] 오메가원: 둘이 실친이었음?
[길드] 염소구더기: 넹, 저희도 몰랐어요
[길드] 영원한이등병: 대박! 이거 완전 운명? 결혼해 짝! 결혼해 짝!
[길드] 오메가원: 노노. 키스해 짝! 키스해 짝!
[길드] 영원한이등병: >//< 저 아직 와기라서 이런 거 보면 안되는뎅! 옴머나!
[길드] 염소구더기: 둘 다 남자임
[길드] 초팡: ㅇ~ㅇ 움냐움냐. 게이 맛집!
[길드] 개나소나: ??
[길드] 오메가원: !?
[길드] 영원한이등병: ????????? 누구세요??!
아직 안 나갔었구나.
갑작스러운 길드 채팅에 난입한 초팡이의 모습에 당황해서 길드 접속을 확인했다. 잔팡이는 접속 종료를 한 상태인데, 초팡이만 남아 있었구나.
개나소나와 영원한이등병은 초면이어서 더 놀란 눈치였다.
[길드] 염소구더기: 초팡님 아직 계셨네요ㅜㅜ
[길드] 염소구더기: 죄송해요, 저희끼리만 떠들어서ㅜㅜ 나가신 줄 알고
[길드] 초팡: 공부하기 시러서 더쎄 켜놓구 뒹굴거리고 있어용! 뒹구르르~
[길드] 초팡: 안녕하세용! 신입 길드원 초팡입니당!
[길드] 영원한이등병: 새로운 신입님 오셨구나ㄷㄷ
[길드] 영원한이등병: 식겁했음, 귀신인 줄
[길드] 영원한이등병: 반갑슴돠!
[길드] 개나소나: ㅎㅇ
[길드] 초팡: 귀신보다 초팡이가 더 무섭죠! ㅇㅅㅇ 저 이제 진짜 공부하러 가볼게여ㅜ 오메가 애기님 저 보고 싶어도 좀만 참으세요!
[길드] 오메가원: ;;; 열공 파이팅
[길드] 초팡: 넹!! 안녕히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세뇌 교육을 받고 제 행복을 버리러 떠나갑니다! 여러분은 부디 행복한 겜생 즐기세요! 굿 보이! 굿 걸!
[초팡 님이 접속을 종료하였습니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나 저 마음 알 것 같아. 가기 싫어서 뭐라도 길게 말하는 거ㅋㅋㅋㅋㅋ시간 끌려고ㅋㅋㅋㅋㅋㅋ
[길드] 오메가원: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이었다…….
한 사람의 존재로 남아 있는 길드원들이 초토화가 된 기분이었다. 얼떨떨한 얼굴로 헛웃음을 짓는데 개나소나가 먼저 말을 했다.
[길드] 개나소나: 나 랜보 개봉했는데 다 쓰레기임
[길드] 영원한이등병: 헐, 저는 아직 안 까봤는데 저도 한번 개봉해볼게요!
[길드] 오메가원: 막내님이 개수 제일 많으니까 괜찮은 거 나올 확률이 높지 않으려나
[길드] 염소구더기: 저도 한 번 까볼게요
그러고 보니 랜덤 보따리는 쌓아만 두고 개봉을 안 했었네. 어차피 이런 뽑기 운은 없어서 기대는 하지 않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본능적이었지만.
제복이 나오려나? 어느새 제법 모인 랜덤 보따리를 모두 펼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하나씩 클릭하며 기도를 하는 내 모습에 황보욱이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뭘 게임 아이템 가지고 그렇게까지 해?”
“네가 아직 진정한 게임 폐인이 안 되어 봐서 그래. 더쎄가 무과금으로 코스튬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아?”
“땡땡이 잠옷은 나왔는데?”
“그건 쓰레기고.”
벌써 한 번에 랜덤 보따리를 개봉한 황보욱은 땡땡이 잠옷을 얻은 모양이다. 힐긋 바라본 화면에는 크게 좋은 건 없었다. 초심자의 운으로 황보욱한테 좋은 게 갔으면 배가 아팠을 텐데, 다행이군.
[길드] 영원한이등병: 꽝ㅜㅜ…….
[길드] 오메가원: 222 남은 분들은요?
[길드] 모타리: 땡땡이 잠옷 나왔어요.
[길드] 영원한이등병: 조와요! 훌륭한 쓰레기를 득템 했군요!
[길드] 모타리: ?? 코스튬 얻기 어렵다고 했는데, 이것도 안 좋은 건가요?
[길드] 영원한이등병: 그건 코스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본으로 많이 뿌린 거라ㅎ
[길드] 오메가원: 이벤트만 하면 만만한 게 땡땡이 잠옷인 듯. 벌써 10벌 정도 얻은 것 같음
[길드] 영원한이등병: 저도요ㅠㅠ
[길드] 개나소나: 염소는?
[길드] 모타리: 지금 기도하면서 하나씩 까는 중입니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기ㅋㅋㅋ돜ㅋㅋㅋㅋ 내가 저 마음 알지!
[길드] 오메가원: 포기하면 편해… 막내님……. 우리는 글렀어…….
이래 봬도 한 번에 물 정령 레어 코스튬 얻은 유저라는 걸 왜 몰라주는 거지?
길드원들이 시끄럽게 떠들든 말든 나는 내 갈 길을 가련다, 싶어서 남은 세 개를 노려보았다. 어느새 세 개만 남았다.
‘제발, 제복! 제복 나와라!’
레어 코스튬 효과는 필요 없으니까 그냥 멋있는 코스튬 좀 달라고!
하나를 깠다. 꽝이다.
두 번째를 깠다. 꽝이다.
모타리는 말없이 상자를 까는 나를 뚫어져라 보다가 실시간으로 길드원들에게 대신 보고했다.
[길드] 모타리: 두 번째도 꽝인 듯합니다.
[길드] 모타리: 이제 하나 남음
[길드] 영원한이등병: 막내 길마님, 멘달 지켯!
[길드] 오메가원: 멘탈 부서지면 오늘 이벤트전 못함?
[길드] 개나소나: 제복 코스튬이 그렇게 쉽게 나올 리는 없지
시끄럽다, 이놈들아! 사람 앞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뽑기 운이 없으니 기대하지 않겠다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어느새 욕망이 가득한 눈으로 남은 랜덤 보따리 하나를 보았다.
마지막 기회였다.
마우스를 천천히 [개봉하기]라는 버튼 위에 올려놓고 차마 누르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는데, 황보욱이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다가와 마우스에 손을 뻗었…….
“야!!”
“지루해서 못 기다리겠네. 어차피 넌 꽝이야.”
더 세이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악담부터 늘어놓는 황보욱은 어느새 마우스를 클릭하고 있었다. 양 볼을 잡고 절규하는 내 모습은 신경도 쓰이지 않는 눈치였다.
“미친놈아! 아직 기도도 못 했다고!!”
“그렇게 해서 원하는 거 다 얻으면 너도나도 기도만 하겠지.”
너무나 현실적인 말이었지만, 재수 없어!
울상을 지으며 화면을 보았다. 보따리가 요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보다 더 요란하게 흔들리는 것 같은데? 게다가 보따리 주변으로 환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
설마, 설마, 설마!
[스페셜 코스튬, ‘전쟁의 영웅’을 얻었습니다!]
잭 팟이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화면에 떠 있는 글귀가 잘못 본 건 아니었다.
코스튬이다. 심지어 스페셜 버전!
검은 바탕에 금색으로 포인트를 준 영롱한 제복에서는 후광이 눈부시게 나타나는 효과까지 보였다.
‘심지어 캐릭터 선택권도 있어!’
만약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캐릭터의 코스튬이 나왔다면, 제복이어도 피눈물을 흘렸을 텐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얼른 거너에게 입혀주기 위해 마우스를 움직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황보욱이 조금 멍한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키보드에 올리는 손가락.
[길드] 영원한이등병: 신입님 ㅜㅜ 우리 막내 길마님, 멘탈 가출하셨어요?? 울고 있는 거 아니죠?
[길드] 모타리: 큰일 났어요…….
[길드] 개나소나: ??
[길드] 개나소나: 진짜 울어?
[길드] 영원한이등병: ㅠㅠㅠ헐. 막내님, 실망하지 마요!! 아직 이벤트전 기간 남았으니까 기회는 남았잖아요!
[길드] 모타리: 나왔어요
[길드] 모타리: 코스튬
[길드] 모타리: 스페셜? 이라는데 검정 제복으로. 좋은 거죠, 이거는?
[길드] 영원한이등병: ㅁ1친, 스페셜이라고요???
[길드] 오메가원: 스페셜???? 심지어 제복????
[길드] 오메가원: 검정이면 히든 색상 아님???
[길드] 개나소나: ㅇㅇ 히든 맞음
[길드] 개나소나: 검정 제복 스페셜 코스튬은 올해 나온 거밖에 없을 텐데?
[길드] 영원한이등병: 와;;;;
[길드] 오메가원: 와;;; 이분 진짜 대박;;; 물 정령 레어 코스튬도 처음 얻더니;;;; 무슨 신기 있음???
[길드] 영원한이등병: 대박!! 얼른 입고 와봐요!
[길드] 염소구더기: 소, 소, 손이 떨려
[길드] 영원한이등병: 지, 지, 진정하고 침착해요! 쉼호흡! 후하후하후하!
[길드] 개나소나: 네가 더 진정해
[길드] 개나소나: 염소ㅊㅋ
개나소나가 시비 없이 축하를 해주니까 진짜라는 게 더 실감 났다.
마침내 제복으로 갈아입은 거너의 모습은 눈부시기까지 했다. 길게 늘어뜨린 제복 상의와 어깨와 카라 부분에 포인트로 새겨진 금색 무늬. 드러난 얼굴도 너무 잘생기고 멋있어서 주먹 울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X발, 우기우기. 존나 사랑해. 뽀뽀해 줄까?!”
“미쳤어?”
“왜? 왜? 무슨 일인데?”
소란에 임해서도 게임을 하다 말고 호기심이 가득한 눈동자로 내 화면을 보았다가 이내 경악 어린 표정이 되었다.
“스페셜 코스튬?! 미친, 손지언 제정신이냐고!!”
“뭐야, 좋은 거야?”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황보욱이 길드원들과 임해서의 반응에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히 제복이 조금 멋있기는 한데 저렇게까지 놀랄 정도인가.
코스튬을 보기 위해 염소구더기가 있는 채널로 몰려온 길드원들이 다시 감탄하기 시작했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대박 사건
[길드] 영원한이등병: 진짜 멋있다;;;;
[길드] 오메가원: 와, 제복. 진짜 멋있네
[길드] 영원한이등병: 이거 팔아도 현금으로 비싸게 받을 텐데ㄷㄷ
[길드] 개나소나: 파는 곳도 있음?
[길드] 영원한이등병: 자게에 있을걸요? 캐릭터 선택이라서 너도나도 다 희망하던데. 비싸서 전 포기했지만.
[길드] 영원한이등병: 히든 색상이 검정이라 백색이라서 그게 제일 비싸고 빨강, 노랑, 초록 있을 거예요!
[길드] 개나소나: ㄱㅅ
[길드] 영원한이등병: 설마 사려고요? ㅋㅋㅋㅋㅋ그거 비싸요 개나소나 형님 ㅠㅠ
[길드] 오메가원: 어차피 가격 보면 다시 돌아올 듯
[길드] 영원한이등병: 그렇겠죠? 어쨌든 축하해요, 막내 길마님ㅠㅠ 기운 좀 나눠주세요!
[길드] 염소구더기: ㅜㅜㅜㅜㅜㅜ감사해요! 저도 지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ㄴㅔ요ㅠㅠㅠㅠ
제복을 위해 이벤트전을 시작한 건데, 이렇게 빨리 목표를 이룰 줄이야.
옆에서 임해서는 호기롭게 랜덤 보따리를 개봉하다가 이내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걸 보아하니 꽝인 모양이었다.
나 이제 보니 뽑기 운이 게임에만 특화되어 있었던 거 아니야? 물 정령 레어코스튬에 이어서 거너 스페셜 코스튬이라니!
[길드] 영원한이등병: 아직 게임 시작하기 전이니까 이런 좋은 소식을 알려야죠!
개나소나도 말이 없고, 나도 아직 기쁨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영원한이등병이 신나게 얘기했다. 아니, 게임 시작 따위는 상관없이 그냥 즐기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전체] 영원한이등병: 134채널에 물 정령 레어 코스튬+방금 스페셜 코스튬 얻은 구더기 기운 얻으실 분 여기여기 모여랏!
[전체] 빽사장: 실화???
[전체] 0070071: ㅁl쳤넼ㅋㅋㅋㅋㅋㅋ 몰아주기냐곸ㅋㅋㅋㅋㅋㅋ 방금 나는 다 쓰레기만 나왔는데!!
[전체] 컴히얼: 기운 받으러 왔습니다, 할렐루야.
그 채팅 하나에 무섭도록 많은 유저가 134채널로 이동했다.
레어 코스튬이 다양한 효과가 부가적으로 있어서 좋다면 스페셜 코스튬은 수량이 한정되어서 얻기가 힘들다.
그런데 그 둘 다를 얻은 유저가 있다?
거너 주변으로 원을 그리듯 모인 유저들이 전체 채팅으로 수군거렸다.
[전체] 0070071: 아직 만렙도 아닌데;; 실화냐고
[전체] 카오스히메: 랜보에서 개봉하심??
[전체] 죽빵야: ㅊㅋㅊㅋ
[전체] 영원한이등병: 네네! 우리 길마님, 랜보에서 개봉했어요! 운빨이 장난 아니신 분ㅋㅋㅋㅋㅋㅋ
나는 가만히 있는데 정작 영원한이등병이 더 신나서 자랑을 했다. 그 호들갑이 기분이 나쁘진 않아서 가만히 있었다.
축하한다는 말 이외에도 기분 좋냐, 라는 시비조의 귓말도 왔지만 살포시 무시했다. 그리고 귓말에서 익숙한 유저도 보였다.
[귓말] 도리두리: 축하해요
[귓말] 염소구더기: 도리두리님ㅠㅠ 감사합니다! 게임 중이셨군요
[귓말] 도리두리: ㅇㅇ 자주 접속함. 길드 만들었네요?
[귓말] 염소구더기; 네! 혹시 도리두리님도 길드 없으시면 들어오실래요? 오메가님이랑 이등병님도 있어요! 친목 길드도 아니지만 빡센 길드도 아니고요. 일단 조금씩 길드 레벨 올려보려고 계획 중입니다.
[귓말] 도리두리: 초대ㄱ
[귓말] 염소구더기: ㅎ지금 보낼게요~
쿨한 분이었다. 도리두리도 만렙 유저는 아니었지만, 탱커를 주로 하고 인성도 좋았으니 잘 맞겠지.
[도리두리 님이 길드에 가입하였습니다.]
[길드] 도리두리: 안녕하세요
[길드] 영원한이등병: 도리두리님!! 와, 이게 얼마 만이야!!
[길드] 오메가원: ㅋㅋㅋㅋㅋ인상 깊었던 게임 멤버들 다 모이네
[길드] 영원한이등병: 이렇게 된 거 손머리발발님도 부를까요? ㅋㅋㅋㅋㅋㅋㅋ 아, 물론 막내 길마님 뜻이 제일 중요하지만!
[길드] 염소구더기: 길드 가입조건 1) 착한 인성 2) 플레이 스타일 서로 존중
[길드] 영원한이등병: 개나소나 형님ㅠ 길마님이 형님 나가라고 꼽 주시는데요?
[길드] 염소구더기: ㅋㅋㅋ
[길드] 도리두리: 개나소나?
개나소나가 워낙 인상에 남았던 모양이다. 어쩜 이렇게 다들 한결같은 반응일 수가 있을까.
예상하지 못한 길드 멤버에 놀란 듯한 도리두리의 모습에 영원한이등병이 서둘러 변호했다.
제일 많이 돌려 까면서도 변호도 잘해주는 걸 보니 그래도 개나소나랑 정이 많이 들었구나, 하고 안심됐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저희도 처음에 좀 놀랬는데!
[길드] 영원한이등병: 알고 지내니 그렇게까지 나쁜 놈은 아니에요ㅠ 오해받을 짓을 했지만 바로 나가지 말고 한 번만 같이 해보고 결정해 줘요!
[길드] 오메가원: 생각보다 괜춘
[길드] 도리두리: ? 뭐, 님들이 그렇게 말하시면ㅇㅇ
도리두리는 현재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눈치였지만,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일단 알겠다고 얘기했다. 조금 불안했는데 다행이다.
스페셜 코스튬을 얻은 건 나 혼자가 아니었지만, 희소하기는 한 모양인지 여전히 전체 채팅은 시끌벅적했고 그때 재수 없는 닉네임이 눈에 들어왔다.
[전체] 불경한눈깔: ♡같은 길드 창설했나 보네?ㅋㅋㅋㅋㅋ 고만고만한 놈들끼리 모여서 하는 짓이 귀엽네~
[전체] 불경한눈깔: 워너비? WINNER 따라 함? ㅋㅋㅋㅋㅋㅋ??
[길드] 영원한이등병: 아니, 저 ♡♡는 왜 나와서 시비래요?? 저번에도 그러더니! 위너 길마 아닌가? 길드 욕 혼자 다 먹이네!
[길드] 도리두리: 무시해요ㅇㅇ. 저놈 길마 되고 나서 전체 채팅에 가끔씩 본인 마음에 안 드는 놈 돌려까는 걸로 유명함
[길드] 도리두리: 대들어 봤자 위너 길드원들 중에 질나쁜 것들끼리 몰려와서 시비 텀
[길드] 도리두리: 길드 소속이면 길드전도 강제로 요구해서 공개적으로 망신 주기도 함
[길드] 모타리: 악질이네요.
저놈은 원래 예전부터 그랬었다. 본인보다 약하거나 할 말 제대로 못 하는 유저들을 보면 바로 깎아내리기에 십상이었으니까. 그래놓고 믄님 앞에서는 아닌 척하며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고.
[전체] 염소구더기: 따라 한 거 아님. 자의식과잉ㄴㄴ
도리두리가 무시하라고 조언해 주었지만, 불경한눈깔이 길드원들 전부를 무시하니 속이 끓었다. 본인이 뭐라고 이제 우리 길드원들을 무시하지?
예전부터 있었던 악감정과 같은 거너로서 있던 신경전. 그는 무시한다고 해도 마주칠 때마다 시비 걸 놈이다.
내 반응에 불경한눈깔이 웃었다.
[전체] 불경한눈깔: 위너 길드 버리고 부캐 파서 길드 창설한 놈이 따라 한 게 아니라고?
[전체] 불경한눈깔: 염소똥도 센스 더럽더니 이번에는 염소구더기? 수준 알 만하네ㅋ
부캐라는 걸 알아차렸구나. 자세히봐도잘생김이 알려준 걸까. 그럴 수도 있었지만 애초에 비슷한 이름이었으니 알아차리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전체] 올때메뤄나: 염소똥??
[전체] 호랑이는음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전체] 박순규1988: 거너 랭커
[전체] 호랑이는음메: 헐, 맞다. 믄님 제자라고 알려졌던 그 거너 아님????? 부캐 길드였음??
[전체] 공공년생: 분란 일으켜서 퇴출당했다던데?
[전체] 카오스히메: 나는 믄님한테 버림받았다고 들었는데
아니, 도대체 소문이 어떻게 난 거야.
퇴출도 아니었고 버림받은 것도 아니었다. 손지우의 갑작스러운 계정 대리 폭파로 강제로 못 했을 뿐. 하지만 여기서 얘기를 해봤자 제대로 들어줄 사람도 없겠지.
그래도 염소똥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다는 게 의외였다. 랭커는 많으니까, 기껏 해봐야 (믄님만 날 기억할 줄 알았는데.
[길드] 오메가원: 일이 커지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
[길드] 영원한이등병: ㅇㅂㅇ… 저 때문인가요?
[길드] 염소구더기: ㄴㄴ 신경 쓰지 마세요. 원래 전부터 사이가 좋지 못했던 놈이라서 상관없음
[길드] 영원한이등병: 와, 대형 길드 길마랑 아는 사이라니! 대박
[길드] 도리두리: 염소똥이면 저도 아는데. 어쩐지 거너 잡자마자 잘하셔서 놀랐어요.
[길드] 영원한이등병: 같이 한 적 있었어요!?
[길드] 도리두리: ㅇ거너 처음 하실 때 같은 팀이었음
[길드] 개나소나: ? 무슨 상황?
[길드] 도리두리: 안녕하세요, 개나소나님.
[길드] 개나소나: ㅎㅇ 이등병 설명 좀
화장실이라도 다녀온 걸까. 잠깐 말이 없는가 했더니 어딘가에 다녀왔는지 개나소나가 설명을 요구했다. 그 요구에 영원한이등병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나는야 스피드왜건! 설명을 시작하지! 스페셜 코스튬을 얻은 막내 길마 소식을 영원한이등병이 전챗에 알렸다! 불경한눈깔이 출몰했다! 과거 개나소나처럼 시비를 걸었다! 막내 길마가 남자답게 응대했다! 이상이다!
[길드] 오메가원: 고마워요, 스피드왜건!
[길드] 개나소나: 과거 개나소나처럼이라는 말만 없으면 참 고마울 텐데
[길드] 영원한이등병: 아잉 >_<
[길드] 개나소나: 일단 그쪽 채널로 감
채널이 달라도 파티만 맺고 있으면 게임은 시작할 수 있다. 개나소나가 굳이 채널을 이동하는 건 처음인데 무슨 일이지. 궁금해서 물어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전체] 대댄찌: 강림하심;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눈앞의 존재였으니까.
134채널로 이동한 불경한눈깔이 유저들이 모여있는 방향으로 여유롭게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 있는 유저들은 같은 위너 길드 소속인 모양이다.
머리 위에 있는 WINNER 표시는 1위 길드라서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워너비 표시가 초라하게 보일 정도로.
[전체] 불경한눈깔: ㅋㅋㅋㅋㅋㅋ 부캐로 돌아왔으면 형님한테 와서 길드 다시 받아주세요~ 하고 부탁하면 될걸
[전체] 불경한눈깔: 이런 놈들 데리고 길드 만들어봤자 어디다 쓰려고? ㅉㅉ 길드전도 못 하겠네
[전체] 공공칠파라팡: 그때 봤던 ♡밥들이네? ㅋ?
[전체] 염소구더기: ? 어쩌라고
[전체] 불경한눈깔: ㅋㅋㅋㅋㅋ 시크한 척~ 신경 안쓰는 척~ 괜찮은 척~
[전체] 공공칠파라팡: 아유, 안쓰러워라ㅠㅠ
[길드] 영원한이등병: 더쎄는 다 좋은데 PVP가 없어서 아쉽네요.
영원한이등병의 도적 캐릭터가 단검을 돌리는 행동을 취했다. 금방이라도 나를 공격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길드] 염소구더기: 차단하고 게임 바로 시작할까요?
[길드] 도리두리: 그게 좋을 것 같음
[길드] 염소구더기: 죄송해요, 도리두리님. 오시자마자 이런 말씀 듣게 해서…….
[길드] 도리두리: ㄴㄴ 어차피 요즘 위너 길드 말 많음. 전챗으로 저러면 위너 명예만 더럽히는 거.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무심하게 던지는 도리두리의 배려가 고마웠다.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르고 차단을 하려는데,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전체] 호랑이는음메: 아니; 워너비 길드 뭐임???
개나소나였다. 그것도 스페셜 코스튬 백색 버전을 입고 있는 화려한 전사 캐릭터. 헤어도 의상에 맞춘 모양인지 백색의 헤어와 코스튬이 눈에 띄었다.
블랙 골드 조합인 거너와 달리 히든 색상인 화이트 블루 조합의 코스튬을 입고 있는 개나소나. 거너보다는 짧은 상의의 백색 제복에 푸른색의 보석과 무늬가 포인트인 의상이었다.
성스럽게 느껴질 정도라니.
보란 듯 거너 캐릭터 옆에 서 있으니 그 후광이 엄청났고 흩어지려던 구경꾼들이 다시 오밀조밀 모여서 우리를 관찰했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아니, 형님ㄷㄷ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죠!?
[길드] 오메가원: 진짜 현질……?
[길드] 모타리: 현금으로 하면 얼마 정도인데요?
[길드] 영원한이등병: 백 넘을걸요…….
[길드] 오메가원: 지금 많이 안 풀린 거라서… 게다가 히든 색상이면 150~200 넘을 수도…….
황보욱이 황급히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저 정도로 금액대가 높을 줄 몰라서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어깨에 올려지는 손.
“나도 지분 있지?”
“미친놈아, 안 팔 거야!”
“백이 넘는다는데 당연히 팔아야지! 등록금에 보탤 수도 있는데!”
“손 떼, 미친놈아!”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도 모자라서 눈을 빛내며 헤드록을 걸어오는 모습에 질색하며 놈의 허벅지를 팍팍 때렸다.
임해서가 옆에서 게임을 하면서 무슨 짓이냐고 힐끔힐끔 쳐다보았지만, 이놈이 먼저 시비를 걸었는걸!
[길드] 개나소나: 커플룩
[길드] 영원한이등병: 대단하다… 막내 길마님, 혈압을 올리기 위해 현질을 하는 그는 도대체 정체가 뭐죠……? 재벌 3세?
[길드] 개나소나: ㅋㅋ 너랑 달리 성인인데
[길드] 개나소나: 이 정도 돈은 있음
[길드] 오메가원: 네, 지나가는 성인은 방금 퇴화했습니다. 응애응애.
[길드] 도리두리: 뼈 맞음.
[길드] 모타리: 죽고 싶습니다.
[길드] 염소구더기: ♡♡놈아…….
[길드] 영원한이등병: 형님, 동생 필요 없으세요? 말 잘 들을 자신 있는데ㅎ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전체 채팅은 신경도 쓰지 않는지 길드원들은 제 할 말만 하기 바빴다.
희소한 스페셜 코스튬을 가진 길드원이 두 명. 사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파는 사람이 얼마 없어 얻기 힘든 코스튬이니 더 놀랍겠지. 그건 불경한눈깔도 다를 바 없는 모양이었다.
[전체] 불경한눈깔: 실력이 안 되니까 돈질을 하네;
[전체] 개나소나: ?
[전체] 불경한눈깔: 실력으로 커버할 생각을 해야지?
[전체] 개나소나: 어디서 거지가 짖나
[전체] 불경한눈깔: 뭐, 비싸 봐야 150 정도 하겠짘ㅋㅋㅋㅋㅋㅋ 고작 그거 샀다고 부자인 척?
[전체] 개나소나: 나온 지 얼마 안 된 걸 누가 그렇게 적게 받고 팔아? 생각하는 게 귀엽네
[전체] 불경한눈깔: ?
[전체] 0070071: 도대체 얼마에 산 거? ㄷㄷ 워너비 길드 수준 ㅁ1쳤네
아니, 다 그런 건 아닌데. 하지만 그걸 부정하는 길드원들은 없었다. 굳이 불경한눈깔 앞에서 부정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테고.
“문정하 선배님, 동생 있으실까?”
황보욱이 진지하게 말했다. 군대도 안 가본 중학생이랑 생각하는 게 똑같은 놈이었다. 물론 저 생각엔 나도 공감하지만.
최근에 주식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는 걸 지나가듯 손지우한테 듣긴 했지만, 도대체 뭘 하길래 대학생이 돈이 저렇게 많지? 집안에 돈이 많나? 평소 씀씀이를 보면 통이 좀 크긴 하던데.
‘과시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게 더 이질감이 들기는 했어.’
밥을 한 번 쏴도 생색을 내며 사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문정하는 후자였고 돈을 아끼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낭비하는 건 아니고 호감이 있는 상대나 제 선 안의 사람에게만 관대한 느낌?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으니 알아서 하겠지.
나는 그보다 불경한눈깔의 멍청한 반응에 흡족했다. 기본 코스튬만 입는다고 뭐라고 하던 놈이 정작 본인은 나온 지 1년은 지난 것을 입고 있었다.
[전체] 개나소나: 그리고 실력도 딱히 밀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
[전체] 불경한눈깔: ?? 제정신? 뭘 믿고 나댐?
[전체] 공공칠파라팡: ㅋㅋㅋㅋㅋㅋㅋ 우리한테 발린 놈들이 말은 잘하네
[전체] 개나소나: 전사는 잘하기는 하더라, 탱커랑.
[전체] 개나소나: 나머지는 딱히?
이벤트전이어서 한타도 짧게 하고 끝났었다. 굳이 따지면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했었는데, 그런 걸 알면서도 저렇게 도발하다니.
하지만 개나소나의 시비와 도발에 이미 익숙해서 길드원들은 불경한눈깔의 시비에도 그러려니 하는 기색이었다. 심지어 옆자리에 앉아있는 황보욱도 평온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길드] 개나소나: 차단하고 우리 할 거 하자
[길드] 개나소나: 말 섞기 귀찮
[길드] 영원한이등병: 전 형님 이런 인성이 좋더라!
[길드] 개나소나: 칭찬 맞지?
[길드] 영원한이등병: 제 꼬리 안 보이세요? 완전 좋아서 좌우로 흔들고 있는데!
[길드] 개나소나: ㅋㅋㅋ
[길드] 개나소나: 제복 얻었는데 어떡할래? 일반전? 아니면 이벤트전ㄱ?
[길드] 영원한이등병: 그러고 보니 목적은 이뤘네요! 사실 저는 게임만 할 수 있으면 상관없어요~
[길드] 오메가원: 미 투
[길드] 도리두리: 저도 일단 만렙 찍는 게 목표라서 일반전이 더 좋음
[길드] 염소구더기: 다들 랜보는 더 안 얻어도 괜찮아요? ㅠㅠ
[길드] 오메가원: 될놈될 안될놈안될ㅎ 어차피 얻어도 안 될 거 알고 있음
[길드] 영원한이등병: 저도요ㅜㅜ 저번에도 이런 이벤트 참여했었는데 다 꽝이었어요. 이벤트전은 보상 말고는 경험치가 적어서 크게 좋은 것도 없구
[길드] 개나소나: ㅇㅇ 필요하면 사면 됨
[길드] 영원한이등병: 저는 살 생각 없으세요, 형님? ㅎ 저 형님이라면 오늘부터 남자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연애하실래요? (수줍
[길드] 개나소나: ㄴ
[길드] 영원한이등병: 좀 더 성의있게 거절해주세요, 힝.
[길드] 개나소나: ㄴㄴ~
[길드] 영원한이등병: 아니, 그렇게 말구요 ㅜㅠㅠ
[길드] 개나소나: ㅋㅋㅋㅋ
재미 들였네. 하지만 게임을 하려면 다섯 명이 되어야 한다. 지금 길드에 접속해 있는 인원수는 도리두리를 포함하여 여섯 명.
우리는 이미 파티를 맺고 있었지만, 차마 먼저 도리두리한테 우리끼리 게임을 하겠다고 말하기는 애매해서 고민하는데 도리두리가 먼저 말했다.
[길드] 도리두리: 저는 솔플이 편해서 혼자 할게요~
[길드] 도리두리: 나중에 필요하면 불러요
[길드] 영원한이등병: 넹!! 다음에 같이 해요, 도리두리님!!
[길드] 도리두리: ㅂㅂ
정말 쿨하구나.
불경한눈깔과 공공칠파라팡은 차단 상태라서 방해하는 인물도 없으니 평화로웠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영원한이등병이 주저하는 기색으로 조심스레 말했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근데 저러다가 길드전 하자고 하면 어떡하죠? 약한 길드 괴롭히려고 일부러 길드전 신청한다고 하던데.
[길드] 오메가원: 불이익은 없긴 하는데 거절한 놈들 길드명이랑 길드 마스터 이름 자게에 붙박 하긴 하더라. 관리자가 제재하는 것 같긴 하던데 관리가 영 안 되는 듯.
[길드] 염소구더기: ㅇㅎ 근데 저도 아까 개나소나 말에 공감해서 걱정은 안 되는데
[길드] 개나소나: ??
[길드] 염소구더기: 우리 스피드 하게 만렙 찍고 먼저 길드전 신청해 볼까요? 져도 불이익 없고 이기면 ㄱㅐ망신 줄 수 있으니깐
[길드] 염소구더기: 어차피 우리가 져도 욕할 놈들은 위너 놈들 말고 없는 것 같은데.
[길드] 개나소나: 찬성
[길드] 영원한이등병: 진심이에요? ㄷㄷ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만든 길드이기도 했다. 무시 받는 일행들이 못하는 건 절대 아니니까. 제대로 합을 맞추고 만렙을 찍은 상태에서 붙으면 어떻게 될까.
스페셜 코스튬의 정보를 열자 부속적으로 붙은 공격력과 치명타 증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길드] 염소구더기: 진심입니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ㄷㄷ
나중에 들은 말이었지만, 영원한이등병은 그날의 내가 개나소나보다 더 무서웠다고 얘기했다.
* * *
레벨은 순조롭게 올라갔다. 초반 레벨 대는 원래 빠르게 올릴 수 있기도 했지만, 개나소나가 오다 주웠다 버전을 시전하며 던져준 성장 패키지 덕분이었다. 가격대가 조금 있는―개나소나가 돈지랄한 스페셜 코스튬보다는 훨씬 저렴하다―성장 패키지는 레벨 250까지는 적용 가능했다.
경험치 두 배를 얻으며 게임에 노력을 들인 결과, 학교에 가야 하는 영원한이등병을 제외하고 길드원 전원이 or 이벤트전 게임팟 인원들이 빠른 속도로 레벨을 상향시켰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레벨 200이었던 오메가원은 집안일만 잘해 놓으면 자유라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나보다 더 부지런하게 게임을 했고 기어코 만렙을 가장 먼저 찍었다.
[길드] 오메가원: V
만렙을 찍으면 레벨이 진하게 표시되는데, 그걸 자랑하듯 우리 캐릭터 앞에서 빙글빙글 돌던 모습이 별거 아닌데도 부러웠다.
황보욱은 솔직하게 그렇게까지 게임에 공들일 시간은 없다고 해서 이벤트전을 하지 않기로 한 지금부터는 자유 모드였다. 가끔씩 학업에 스트레스받을 때쯤에는 피시방에 출근 도장을 찍는 임해서와 내 뒤를 조용히 쫓아올 뿐이었다.
공들이는 시간 대비 게임 센스가 좋아 플레이가 빛을 발휘하는 편이라서 안타깝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지.
어느새 염소구더기의 레벨도 250이었다. 염소똥의 레벨이 260이었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속도였다. 확실히 성장 패키지가 좋긴 좋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본 개나소나의 레벨은 293. 조만간 워너비 길드의 두 번째 만렙 탄생자가 멀지 않았다.
―나중에 길드전 하면 멤버는 어떻게 하려고?
오랜만에 디스X드를 켜놓고 개나소나의 목소리를 들었다. 피시방에 혼자 왔음에도 헤드셋 너머로 들려오는 개나소나 덕분에 쓸쓸하지는 않았다.
[파티] 염소구더기: 글쎄, 모타리는 참여 안 할 듯
―탱커가 있으면 좋긴 한데. 도리두리는?
헤드셋 너머로 들리는 문정하의 목소리는 여전히 낯설었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하거나 실제로 만났을 때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시비를 거는 투는 아니었지만, 손지우를 대하는 것처럼 편하게 내뱉는 말투는 개나소나 그 자체였다.
아직도 둘이 동일 인물인 걸 생각하면 신기한데, 문정하에게 내가 염소구더기라는 걸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황보욱처럼 배신감을 느낄지 그냥 놀랄지 궁금했다.
내가 대답이 없자 개나소나가 재촉했다.
―염소야, 내 말 듣고 있어?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시비조가 많이 줄었다는 것. 부르는 호칭도 제법 다정하다는 점이었다.
개나소나일 때도 문정하일 때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선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유해지는 걸까? 성장 패키지를 나뿐만 아니라 영원한이등병과 오메가원에게도 던져줬던 걸 보면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영원한이등병에게도 아닌 척하면서 말투가 많이 누그러지기도 했고.
[파티] 염소구더기: 듣고 있음. 잠깐 딴생각함
―답답한데 너도 디X 하자니까?
[파티] 염소구더기: ㄴㄴ 내 목소리 너무 좋아서 반하면 곤란함
―그런 걸 보고 자뻑이라고 하겠지?
지랄도 그 정도면 병이라고, 조곤조곤 덧붙이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문정하는 저런 말을 안 하는데 저렇게 조곤조곤한 말투는 그의 것이 맞았다.
재밌네. 그에게는 들리지 않을 웃음소리를 내며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정작 현실의 문정하는 그 이후로 연락이 드문드문한데, 매일 개나소나랑 이렇게 잡담을 하는 시간은 길어지고 있었다.
저 사람은 내가 동일 인물인 걸 모르는데.
연속된 게임에 지쳐서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오메가원은 밥 먹고 온다며 게임만 켜둔 채 자리를 비워 접속 중인 파티원은 나와 개나소나뿐이었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물었다. 현재의 문정하에게 대놓고 묻지 못했던 질문.
[파티] 염소구더기: 그러고 보니
[파티] 염소구더기: 저번에 말했던 사람이랑은 어떻게 되고 있음? 같이 게임 할 거라고 하던 사람
―아.
물론 그건 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
개나소나는 누구를 말하는 건지 바로 알아들은 건지 잠깐 대답이 없다가 이내 내가 가만히 기다리자 짧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게임은 같이 못 할 것 같고, 당분간 거리 좀 두려고.
거리를 둔다고? 왜?
생각하지도 못한 대답에 조금 굳었다. 그렇게 좋아하면서 다가오려고 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거리를 둬? 내가 뭘 잘못했나?
[파티] 염소구더기: 왜?? 뭔 일 있었음?
―그건 아니고 나 혼자 좀 심란해서.
[파티] 염소구더기: 왜 심란한데? 털어놔 봐. 얘기는 들어줌 ㅇㅇ 내가 좀 듬직하잖아.
―듬직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바선생을 기절할 정도로 싫어하거든? 어릴 때 학교에서 미친놈들이 장난친다고 빗자루로 친 게 내 얼굴에 붙은 적이 있었어.
[파티] 염소구더기: 헐
―미간 사이에 붙은 게 입 쪽으로 빠르게 내려가서 바닥으로 떨어지는데 그 기분이 어떤지 모를걸. 그래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바퀘벌레를 진짜 싫어하는데 그걸로 놀리는 놈들도 많아서 평소에는 숨기는 편이거든.
처음 만났을 때,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책상 위에까지 올라가서 기겁하는 문정하를 보며 한심해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동시에 그가 말했던 어린 시절을 상상하자니 몸이 부르르 떨린다.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 그런 걸 겪으면 트라우마가 생기기에 충분한 듯했다.
―그런데 내가 친해지고 싶다던 후배는 비웃지도 않고 아무렇지 않게 잡아주더라고. 대신 잡아주는 사람들은 꼭 한마디씩 했는데, 그게 뭐라고 엄청 인상 깊었지.
그때는 그저 귀찮고 엮이기 싫을 뿐이었다. 낯가림도 있었고 피시방에 가서 얼른 게임을 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언젠가 문정하가 말했던 흔들 다리 효과라는 말이 떠올랐다. 심리적으로 불안했을 때, 문정하는 내게 더 특별히 고마움을 느껴 호감이 생긴 게 아닐까.
―게다가 얘기하다 보니 반응도 재미있고 꾸밈없는 성격도 좋았어. 그래서 친해지고 싶었는데.
[파티] 염소구더기: 그런데? 왜 지금은 멀어지려고 하는 건데?
―진지해질 것 같아서.
키보드에 올려두었던 손가락이 멈추었다. 농담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헤드셋에는 여전히 웃음기 없이 진지하게 말하는 개나소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가지는 호감이 아니라 연애 상대로 보게 될 것 같아서 거리를 두는 중이야. 내가 착각을 하는 건지 확인해 보려고. 진심이더라도 이런 걸 귀찮아할 후배라서.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아니라 귀찮아할 거라고 얘기하는 목소리는 웃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잘 알고 있네, 라고 중얼거리며 콧방귀를 뀌어야 하는데. 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는 걸까.
[파티] 염소구더기: 거리 두기를 해본 결론은?
―착각은 아닌 것 같네.
미친놈.
직접적으로 받는 고백도 아니었는데, 엿보게 된 진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착각이 아니라면 정말 연애 상대로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거잖아.
게다가 이유도 남녀를 떠나서 내 있는 성격 그대로가 마음에 들고, 호감이라는 상대의 말에 기분이 묘했다.
임해서와 달리 사교성도 없고 말을 툭툭 내뱉는 이런 성격을 나조차 싫어하고 있었는데, 그걸 좋게 봐주는 대상이 생기다니.
개나소나는, 아니, 문정하는 취향이 독특한 놈이었다.
이상한 놈. 돈만 많고 성격도 나쁜 놈. 하지만 상대에게 감정을 강요하는 나쁜 놈은 아니어서 아이러니했다.
그가 고백을 하면 나는 받아줬을까? 아니, 좋아하고 말고를 떠나서 주변의 눈치가 보여서 거절할지도 몰랐다. 누군가와 깊은 관계로 이어진다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문정하는 그런 내 성격을 꿰뚫어 보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고백은 해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조용하네?
[파티] 염소구더기: 나보다 네가 그 사람에 대해 더 잘 파악했을 텐데. 너도 고민해 보고 접은 거겠지.
―접은 건 아닌데?
What?
당연히 이대로 포기하고 마음을 접으려는 뜻이구나 싶어서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었지만 위로해 주려고 했는데.
당황해서 물음표만 연발하자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거리 두는 중이라고 했지, 접는다고는 안 했는데.
[파티] 염소구더기: 그게 그 소리 아니었어?!
―반응 지켜보고 싫어하면 접어야지. 아직 상황도 모르는데 지레짐작하고 포기하는 건 내 성격이랑 안 맞아.
현실이나 게임이나 당당한 성격을 떠올렸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내 생각은? 내 입장은? 내 성격 꿰뚫어 보고 배려해 주는 거 아니었냐고?
[파티] 염소구더기: 그럼 고백이라도 하려고? ㅡㅡ
―나도 몰라. 고백은 받아만 봤지, 해본 적은 없어서.
[파티] 염소구더기: 누가 궁금하데? 재수 없는 놈
개나소나가 웃었다. 뭘 하든 내가 넘어갈 줄 알고?
여우처럼 나를 살살 꼬신다고 해도 안 넘어갈 자신이 있었다.
―연락이 없어서 신경 쓰고 있다면 1단계는 통과.
자신이 있었는데 방금 없어져 버렸다.
개새끼. 아니라고 하고 싶은데 차마 부정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
[파티] 염소구더기: 이거 완전 선수네 ㅡㅡ 너님 내가 신고. 그분한테 다 이를 거임.
―연락처는 알고 있어, 염소야? 나도 얻기 힘들었던 연락처인데 네가 과연?
어쩌라고, 내 연락처인데 당연히 내가 알고 있지.
차마 꺼내지 못하는 말을 삼키며 주먹을 꽉 쥐었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정하에게 내가 염소구더기인 걸 밝히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더 확실히 숨겨야 하잖아!
[파티] 염소구더기: 2단계는 뭔데
[파티] 염소구더기: 형이 도와줌
―우리 염소, 연애는 해본 적은 있으세요?
[파티] 염소구더기: 연애를 글로 배우지, 누가 몸으로 때우래 ㅡㅡ 어린놈이 건방지게!
[파티] 개나소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제로도 웃고 있으면서 굳이 채팅으로도 비웃는 놈이 건방졌다. 하지만 더 이상 시비를 걸 수는 없지. 2단계를 알아야 내가 안 넘어갈 수 있으니까!
자, 속아라. 멍청한 개소야! 넌 이미 내 손 아래 있어!
―말해 주면 도와줄래?
[파티] 염소구더기: 웅
그러니까 얼른 말하라고! 사람 애간장 태우게 왜 이렇게 밀당을 잘하는 건지. 답답해서 얼른 재촉하고 싶은데 그러면 더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하지도 못하고.
키보드 위에서 안달 난 손가락만 꼬물거렸다. 나는 언제든지 그 방법은 글러먹었다고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후배도 모쏠이거든.
이놈이 내가 모쏠인 걸 어떻게 알지? 하고 눈썹을 치켜세우다가 넷이서 같이 밥을 먹었을 때를 떠올렸다.
아, 그때 얘기했지.
[파티] 염소구더기: ㅇㅇ 그래서?
―오늘따라 내 말 잘 들어주네.
[파티] 염소구더기: 연애 이야기 흥미진진해서. 차이고 돌아올 개소도 얼른 보고 싶고.
―도와준다더니. 어쨌든 대놓고 다가가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형, 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했는데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거든.
[파티] 염소구더기: 수줍음이 많은 성격인가 보네.
―그래서 더 귀엽기는 해.
지랄한다. 오늘따라 지랄이 풍년인 개나소나 때문에 팔에 소름이 돋았다.
손지우도 여자 친구한테 저렇게 지랄을 하던데. 사랑을 하면 사람이 망가진다더니 정말이었구나.
―내일부터는 평소처럼 다가가려고.
[파티] 염소구더기: 그게 끝이야?
―응. 더 다정하게 대해줘서 호감도 좀 쌓으려고. 내 애정을 당연하게 여겨줬으면 좋겠어.
[파티] 염소구더기: 너무 손해 아니야? 보답 못 받을 수도 있는데 그런 건 감정 소비잖아. 나중에 상처받을 수도 있고.
―보답받지 못해도 어쩔 수 없지. 같은 감정이면 기쁘겠지만, 애초에 보답받고 싶어서 좋아하게 된 건 아니니까.
[파티] 염소구더기: 낯간지러운 말을 잘도 하네.
―그런가. 그런데 후배한테는 부끄러워서 못 하는데.
그게 못하는 거면 나중에 잘하게 된다면 어떻게 진화한다는 거지. 지금도 충분히 부담스러운데. 그리고 이미 다정한데 어떻게 더 다정하게 대한다는 거지?
[파티] 염소구더기: 내숭 말고 있는 그대로의 너를 보여주고 사랑받는 게 어떨까? ^^
―나도 내 성격 쓰레기인 거 아는데? 차라리 대놓고 차이라고 말해.
[파티] 염소구더기: 들켰네. 그래도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니까ㅎㅎ 포장만 잘하면 괜찮을 것 같기도……?
―도와줄 생각은 있지?
[파티] 염소구더기: ㅇㅇ 그럼
―넌 어떤 사람이면 호감이 갈 것 같은데?
[파티] 염소구더기: ??
―의견 좀 참고하려고.
찝찝하기는 했지만, 전혀 참고가 안 될 만한 걸 얘기해 주면 되지 않을까.
문정하는 제법 다정하게 대해 주는 편이었고, 돈도 있다. 심지어 얼굴도 잘생겼다.
나는 잠깐 양반다리를 하고 고민했다. 문정하가 절대 못 할 만한 호감도 요인이 뭐가 있지?
[파티] 염소구더기: 일단 나는 동갑 아니면 연하. 연상은 구닥다리 같아서 별로임.
[파티] 염소구더기: 내 취향이 좀 독특해서 머리숱 많은 것보다 좀 비어있는 사람이 좋고ㅎㅎ 임자 있는 사람이 건드리는 거면 더 좋아. 욕해주면 더 좋고. 스릴 만점이거든.
쓰고나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절대 못 할 것 같은 것들을 나열했더니 희대의 쓰레기가 탄생해 버렸다. 나보다 연하인데 탈모가 있고 이미 애인을 둔 사람이 집적거리는 게 좋다니.
―염소야.
장난치지 말라고 혼나려나.
내가 봐도 너무 아니다 싶어서 긴장하고 있는데, 그가 타이르듯 조곤조곤 얘기했다.
―나중에 애인 사귀기 전에 나한테 허락받고 사귀어.
[파티] 염소구더기: 아니
[파티] 염소구더기: 농담인데
[파티] 염소구더기: 우리 아빠세요?
―대답해, 염소야.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챙겼다고.
하지만 말도 끊고 정색을 하며 말하는 어조에 대꾸는 하지 못하고 쫄보인 나는 조신하게 대답했다.
[파티] 염소구더기: ㅇㅇ…….
―착하네.
다정한 목소리로 엿 먹이지 마. 딱히 도움은 될 게 없을 것 같다며 게임이나 하자는 소리에도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