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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불안한 낌새 (17/21)

16. 불안한 낌새

빠른 속도로 화장실로 뛰어가 입을 헹궈냈다. 돌아오는 길에 삐끗할 뻔하기는 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서둘러 휴대폰을 집어 들어 전화를 거니 신호음이 얼마 가지 않아 상대방이 받았다.

―왜?

“야, 너 지금 문정하 선배랑 같이 있어?”

―응.

“‘응’이 아니지! 너 그럼 지금 같이 게임도 하고 있다는 거야? 내가 모타리인 걸로 알고 있을 텐데!”

―너한테 잠깐 아이디를 빌린 걸로 알고 계셔.

당황한 기색 없이 평온하게 말하는 황보욱의 태도에 놀랐던 나도 덩달아 차분해졌다.

뭐야,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나?

놀랐던 게 민망해져서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지금 옆에 없어?”

―전화하러 가셨는데.

“둘이 만나서 가지는 않았을 테고, 피시방에서 우연히 만난 거? 네가 피시방에는 왜 갔는데?”

―과제 때문에 자료도 찾아보고 프린트할 것도 있어서 왔는데 앉아계시더라고.

“아오, 그 사람은 왜 집에서 안 하고 피시방에 혼자 가서 해?”

―사운드가 여기가 좋으시대.

“…너 제법 친해진 모양이다?”

문정하가 타인에게 제법 상냥하게 말대꾸하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아서 의외라는 듯 물었다.

얼마 전에 카페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그렇게 친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심지어 둘이 임해서처럼 딱히 사교성 있는 스타일도 아니잖아?

―어쨌든 채팅으로 얘기해. 할 말 끝났으면.

“잠깐만, 우기우기!”

―왜 또.

“너 지금 어느 피시방인데?”

―그게 왜 궁금한데?

글쎄. 딱히 이유는 없어서 대답은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황보욱은 할 얘기 없으면 끊겠다며 제 할 말만 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매정한 놈.

끊어진 통화를 멍하니 내려다보며 나는 미묘한 기분에 인상을 찌푸렸다.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찜찜한 기분이다.

이거 설마 그건가? 내가 가지기는 싫고 그렇다고 남이 가지는 것은 더 싫은 쓰레기 마인드?

‘둘이 친해졌다고 질투하는 것도 아니고 유치하게.’

설마 정말 질투는 아니겠지. 단순히 친해진 게 놀라서 그런 거겠지? 왜 내 감정인데도 이렇게 잘 모르는 걸까.

한숨을 푹 내쉬면서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소수의 길드원들이 시끌벅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길드] 초팡: 저는 부모님 허락받아야 해유ㅜ

[길드] 영원한이등병: 나도 멀면 허락받아야 함ㅠ 나 서울인데 서울에서 하면 안 되나?

[길드] 오메가원: 난 딱히 상관없음

[길드] 영원한이등병: 오메가형님 대프리카에 거주 중이라면서요ㅜㅜ 대구에서 서울 멀다 아니에요?

[길드] 오메가원: ㄱㅊ 기차 타면 됨ㅎ

[길드] 도리두리: 저는 일정 보고 되면 참여할게요

[길드] 초팡: 잔팡이는 아마 빠질 것 같아요! 이런 자리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성

[길드] 영원한이등병: 강제는 아니니까 괜춘!

[길드] 영원한이등병: 이제 막내 길마님만 오케이 하면 되겠다!

[길드] 염소구더기: ??

[길드] 영원한이등병: 와뜨아아!

무슨 얘기 중인 거지. 너무 많이 진행된 대화에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니 끝도 없어 포기해 버렸다.

소수 멤버로 아니 주로 말하는 건 영원한이등병이랑 초팡뿐인 것 같은데 엄청 많이도 말하는구나. 조용한 것보다 낫기는 하지만.

[길드] 영원한이등병: 우리 정모해요!

[길드] 염소구더기: 갑자기?

[길드] 영원한이등병: 저번에도 제가 한번 얘기했는뎅ㅎ 그냥 가볍게 저녁 먹으면 안돼용? 저 형님들 만나보고 싶은데!

[길드] 염소구더기: 갑자기?

[길드] 영원한이등병: 아, 이 길마님. 사람 진심 의심하시네; 베리베리 실망!!

[길드] 염소구더기: 생각 좀ㅋㅋㅋ해볼게요

아니, 봤다면 얼마나 봤다고 벌써 정모 얘기지? 물론 게임에서만 봐도 영원한이등병과 초팡이 사교성이 좋은 건 알겠다. 하지만 이렇게 다가오는 건 부담스러운데.

[길드] 초팡: 길마님, MBTI 뭐예용?

[길드] 염소구더기: 일단 시작은 I

[길드] 염소구더기: 그리고 말해주지 않아도 님 둘은 확신의 E 라는 건 알겠음

[길드] 영원한이등병: ㅎ 그 둘이가

[길드] 초팡: ㅎ 누구지~?

만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텐션이 떨어진다. 이래서 하이 텐션의 사람들이란.

임해서 같은 둘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아직까지 인사가 없는 개나소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쪽지함이 눈에 띄었다.

‘이 새끼가 쪽지를 왜 보냈지?’

불경한눈깔한테 온 쪽지다.

저도 모르게 험악해지는 인상을 펴지도 못하고 그대로 삭제할까 싶었지만, 일단 이런 걸 보낼 놈이 아니라서 열어보았다. 내용은 짧고 빡쳤다.

[수신인: 염소구더기

발신인: 불경한눈깔

내용: 쫄아서 차단함? ㅋㅋㅋㅋㅋㅋㅋ

실력도 없는 것들이 이제 겨우 만렙 찍을까 말까 하던데~ 길드전이라도 해줄게. 얼마나 잘하나 보자ㅋㅋㅋㅋㅋ]

길드전? 물론 생각은 있었지만, 아직 만렙이 아니기도 하고, 길드원들에게 언질만 했었는데, 설마 저쪽에서 먼저 권할 줄이야.

하고 싶다.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걸 무시하면 분명히 쫄아서 무시하는 거라고 실컷 떠들겠지. 그 꼴은 절대 보기 싫다.

[길드] 염소구더기: 워너비 긴급 공지가 있겠습니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

[길드] 초팡: ?

[길드] 도리두리: ?

[길드] 오메가원: 오, 예쓰예쓰. 츄라이츄라이!

[길드] 모타리: 갑자기 뭔데

[길드] 염소구더기: 길드전 신청 들어옴

[길드] 염소구더기: 상대는 위너

[길드] 염소구더기: ^^ 같이 ㅈ되게 해주실 분?

무시해도 조롱거리고 져도 조롱거리다. 어차피 져도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겠지. 하지만 만약에 이긴다면?

‘대형 길드가 신생 길드한테 발리면 최고의 웃음거리가 되겠지. 지금 말도 많은 곳이니까.’

대형 길드에는 랭커가 많이 포진되어 있다. 대부분이 만렙이었고.

하지만 내가 있을 당시에 있던 랭커들은 거의 없다. 더쎄를 관두거나 믄님처럼 길드를 탈주한 유저도 있었으니까.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객관적으로 개나소나랑 영원한이등병의 실력은 나쁘지 않다. 오메가원의 암흑 힐러는 서포트 캐릭터라서 모 아니면 도겠지만, 게임 센스가 나쁘지 않았고.

문제는 길드전이 3전 2선승제라는 점이었다. 총 세 번의 경합을 벌여서 먼저 두 번의 승리를 해야 길드가 이기는 전쟁.

전부 같은 길드원으로 싸워도 상관은 없지만, 저쪽은 다양하게 나올 것이다. 우리처럼 같은 길드원만 출전하는 작은 길드는 적팀이 주로 플레이 하는 캐릭터 정보나 게임 스타일을 공유해서 불리한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재밌을 것 같은데, 길드원이 너무 적은 듯합니당

[길드] 초팡: 와, 대형 길드에게 길드전 신청을 받다니! 갓 워너비 길드! 길드 잘 들어왔다!

[길드] 오메가원: 싫어해야 하는 거 아님?

[길드] 초팡: 겁먹지 마, 오메가 애기. >< 내가 지켜줄게!

[길드] 오메가원: ㄷㄷ 지금 겁먹음…….

[길드] 도리두리: 솔직히 말해서 해도 질 것 같은데요.

[길드] 도리두리: 길드원 숫자를 떠나서 만렙인 사람도 오메가원님뿐이고. 레벨 차이 무시 못 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최근에 만렙을 찍으려고 아등바등 열심히 했던 거였으니까.

도리두리는 반대 입장인 걸까, 싶어서 조심스러워지는데 그가 덧붙였다.

[길드] 도리두리: 날짜 아직 미정이면 저희가 정한다고 하고 좀 시간 텀 가지죠. 개나소나님이랑 염소구더기님도 곧 만렙 찍을 것 같은데

[길드] 도리두리: 최소 만렙 3명은 만들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길드전 반대는 아니었어요^^

[길드] 영원한이등병: ㅠㅠㅠ 내가 학교만 아니었으면 ㅠㅠㅠ 주말부터 열심히 레벨링 돌아볼게요!

[길드] 초팡: 초팡맨도 열심히 해볼게용!

[길드] 오메가원: 길마님

[길드] 염소구더기: 네?

[길드] 오메가원: 믄님 영입은 어떰? 저번에 길드 무소속이던데, 둘이 친분 있잖슴.

[길드] 염소구더기: 아, 믄님… 오면 정말 감사하긴 한데 워낙 솔플을 좋아하시는 분이라서ㅠㅠ

[길드] 초팡: 믄님? 제가 아는 그 믄님이요?? ㅁ1쳤네. ㄷㄷㄷ 워너비 길드 클래스 알수록 무섭다

이전에도 생각해 본 적은 있던 방안이었기 때문에 일단 물어보겠지만 기대는 하지 말라고 길드원들에게 얘기했다.

조금 힘들더라도 기존 길드원들끼리 길드전을 진행해야 할 것 같은데 너무 민폐인가.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너무 강요하는가 싶기도 싶었지만, 재밌어하는 길드원들을 보니 괜한 걱정인가 싶기도 하고.

[길드] 개나소나: 길드전 찬성

잠수를 타고 있던 개나소나가 돌아왔다.

인사도 없이 길드전 얘기에만 반응하다니, 왠지 서운한 기분이었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형님, 정모도 찬성이죠?!

[길드] 개나소나: ㄴㄴ 관심없음

[길드] 오메가원: 역시 그의 인성은 변하지 않았… 읍읍!

[길드] 영원한이등병: 욕설 없는 칼 같은 거절이 다정하게 느껴지는 그대는 이 시대의 인성… 읍읍!

[길드] 개나소나: ^^?

[길드] 영원한이등병: 차라리 욕을 해요, 형님… 더 무서워…….

아, 그래도 정모는 참여하지 않는가 보다. 개나소나가 오면 당연히 참여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단호하게 거절하는 걸 보고 있으니 솔깃했다.

그래도 첫 정모인데 길마가 빠지면 섭섭하겠지?

[길드] 개나소나: 잡담 그만하고 일반 ㄱㄱ

[길드] 염소구더기: ㅇㅇ 같이 할 사람 손 번쩍!

[길드] 영원한이등병: 픽미픽미픽미업! 헤이!

[길드] 초팡: 저는 잠깐 할 게 있어서 쉬고 올게용

[길드] 오메가원: 똥 좀 싸고 옴

[길드] 영원한이등병: 오메가형님이랑 초팡이 둘이서 하는 거 아니죠? 나 따돌리는 거 아니지? ㅜ

[길드] 초팡: 눈치껏 조용조용

[길드] 오메가원: 그거 절대 아님;; 경찰서 철컹철컹

[길드] 초팡: 왜에?! 내가 싫어, 애기야!? 사랑에는 나이따위 관계없어!

[길드] 오메가원: ;;;;

[길드]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 나이도 문제인데 일단 그 전에 임자 있는 사람이라고ㅋㅋㅋㅋㅋ

[길드] 초팡: ???

[길드] 오메가원: 아무도 안 말해줌?

[길드] 영원한이등병: 넹, 재밌으니까요

[길드] 초팡: 애인 있어요? 나 가지고 놀았어요?

[길드] 오메가원: 아내 있어요. 이등병이 가지고 놀았어요.

[길드] 초팡: (((((((ㅇ_ㅇ;;) 결혼……? 애기가 결혼……? 소꿉놀이 말하는 거지……?

[길드] 오메가원: ;;

거친 생각(초팡)과 불안한 눈빛(오메가원)과 그걸 지켜보는 영원한이등병은 가볍게 무시하고 개나소나와 영원한이등병에게 파티를 신청했다. 남은 인원은 둘.

[길드] 염소구더기: 도리두리님 같이 하실래요?

[길드] 도리두리: 네 파초 주세요

[길드] 염소구더기: 보냈습니당

[길드] 모타리: 난 왜 안 물음?

[길드] 염소구더기: ? 넌 공부 좀 해

[길드] 모타리: ㅡㅡ 네가 나한테 할 소리는 아니지

[길드] 염소구더기: ㅋ? 일단 보냄

금방 나갈 줄 알았더니.

5인 파티가 완성되자 바로 게임 시작 버튼을 눌렀다. 매칭 중이라는 알림과 함께 게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데, 개나소나가 물었다.

[길드] 개나소나: 염소야

[길드] 염소구더기: ?

[길드] 개나소나: 저녁은 챙겨 먹었어? ㅎ

[길드] 염소구더기: ? 약 ㅊㅓ먹음?

[길드]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오메가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ㅁ1친

[길드] 도리두리: 개나소나님 해킹 당하심??

[길드]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ㅋ 둘 다 너무 진지햌ㅋㅋㅋㅋㅋㅋ

저 새끼가 갑자기 왜 저래.

팔에 돋아난 소름을 문지르며 울렁거리는 속을 필사적으로 진정시켰다. 진짜 해킹당했나 싶어서 진지하게 걱정하는데 게임이 매칭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게임을 시작합니다.]

[캐릭터를 선택하세요.]

각자 기다렸다는 듯 익숙한 캐릭터를 선택했다.

이제 제법 만렙에 가까워져 상대편에 매칭된 적군도 만렙 아니면 그에 근접한 레벨 대의 소유자들이었다. 다양한 속성의 캐릭터들도 보이고.

개나소나: 전사(근딜)

염소구더기: 거너(원딜)

도리두리: 무투가(탱커/바위)

모타리: 무투가(탱커)

영원한이등병: 도적(근딜/암흑)

[파티] 도리두리: 염소님이랑 개나소나님은 기본 속성이시네요?

[파티] 염소구더기: 저는 기본 속성이 익숙해서 이대로 하려고요.

[파티] 개나소나: 22

[파티] 염소구더기: 좀 더 성의 있게 대답해

[파티] 개나소나: 네ㅎㅎ

[파티] 도리두리: 해킹당하신 거 맞는 것 같은데…….

[파티] 도리두리: 고객 센터 번호 알려드릴게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ㅋㅋ저 웃겨 죽어욬ㅋㅋㅋㅋㅋ 그만해요, 두리두리님ㅋㅋㅋㅋ

[파티] 도리두리: ?

[파티] 염소구더기: 진짜 개소 왜 저럼?

[파티] 모타리: 너보다 나음

지금 바로 옆에 선배가 있다고 감싸주기인가. 사회생활 잘하는 황보욱을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게임이 시작되고 아군 모두 좌측의 적군 건물로 달려갔다. 가장 빠른 이동 속도를 자랑하는 도적 캐릭터인 영원한이등병이 폴짝폴짝 뛰어가며 말했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약간 지금 ㅋㅋㅋㅋ 신입님이랑 개소 형님이 서로 해킹한 것 같음. 태도가 둘 다 정반대가 됐어!

듣고 보니 그랬다.

잘 따르고 순한 말을 자주 쓰던 모타리는 시비조가 됐고, 시비조가 아닌 그냥 시비를 걸던 재수탱이 개나소나는 지금 오히려 조신해졌고.

합리적인 의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면 내가 오기 전에 본인들끼리 벌칙 게임이라도 했나? 벌칙 게임에 걸려도 순순하게 따를 개나소나는 아닌 것 같은데?

[파티] 도리두리: 아군 건물 근처 도적 안 보임.

건물 근처에 없다는 건 암살을 하러 올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겠지.

도리두리의 채팅에 서둘러 몸을 숨겼다. 아군에서 가장 종잇장 몸은 거너였으니 1순위로 노릴 확률이 높았으니까.

초반에 자주 죽으면 레벨 업을 하기 힘들어진다. 모타리가 내 앞을 지키러 오고 도리두리는 적군이 올 방향의 사각지대에 숨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현재 적군의 레벨대는 만렙에 가까운 유저들이다. 즉, 게임 경험이 우리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다는 뜻.

대기하고 있을 가능성도 생각한 모양인지 도리두리가 숨어있는 방향으로 오는 도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모습을 나타낸 곳은 적군 건물 위쪽이었다.

낙궁이었다. 건물 위로 도약해 떨어져 내리는 것과 동시에 사용한 궁극기.

건물 근처는 보통 아군이든 적군이든 노출될 확률이 높아서 잘 오지 않는 곳인데 그 방심을 비웃듯 벌어진 일이었다. 근처에 있던 개나소나를 향해 집중적으로 달려드는 바람 속성 도적의 궁극기는 엄청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이쪽 도적도 만만치는 않지.

낙궁을 시전하는 적군을 향해 영원한이등병이 망설임 없이 궁극기를 사용했다.

바람 속성의 도적 궁극기는 굉장히 빠른 속도를 자랑하기 때문에 피하기도 힘들고 하물며 공격하기도 힘들다.

그런 적군을 처리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속도를 가진 캐릭터가 상대해야 하는 법. 타이밍이 어긋나면 궁극기에 서로 부딪혀 상쇄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있었지만, 언젠가 임해서가 했던 말이 있다.

영원한이등병을 보면서 ‘한국 게임의 미래가 밝다’라는 말.

개나소나를 공격하는 그 타이밍. 도망치지도 못하고 공격에 집중한 그 타이밍을 노려 궁극기를 사용해 검은 그림자로 적군을 포박했다. HP가 절반 정도 줄어든 개나소나가 뒤로 밀려나며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파티] 개나소나: 굿 타이밍

저렇게 순순히 칭찬할 놈이 아닌데 확실히 이상해.

그래도 영원한이등병 덕분에 살아난 건 맞긴 하다. 모타리 뒤쪽으로 이동하는데 누군가가 다급하게 핑을 찍었다.

[파티] 도리두리: 적군 옴

아군 건물은 아직 부서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적군 도적이 당하는 걸 보고 저쪽에서 지원하기 위해 전부 오는 모양이었다.

보통은 한 놈쯤은 버리던데 귀찮게 됐다.

[파티] 염소구더기: 혼자 가능?

[영원한이등병 님이 박장대소합니다.]

채팅할 시간은 없으니 행동 효과음으로 전달하려는 의도인 듯했다.

그런데 다른 것도 많은데 박장대소가 뭐야. 어쨌든 혼자서 가능하다는 뜻이겠지.

[파티] 도리두리: 모타리님은 뒤에 돌아오는 적군 보면서 원딜 지켜주세요

[파티] 모타리: 네!

[파티] 도리두리: 앞에 시야는 제가 책임짐

팀에 투탱이 있으니 세상 든든하구나.

특히 모타리는 아직 탱커 숙련도가 낮아서 혼자서는 시야를 보거나 적군의 움직임을 막는 게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리두리가 상세하게 오더를 내려주니 편하다.

킬에만 집중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모타리의 뒤에서 안전하게 궁극기를 켰을 때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힐끔 시선을 돌려 발신인이 황보욱인 것을 확인하고 스피커폰을 켰다.

“여보세요?”

―도리두리 님은 탱커 좀 많이 해봤어?

“뜬금없이 무슨 이상한 용건이야. 나도 잘 모르는데 일단 주캐가 탱커라고 했어.”

―그렇구나.

“징그럽게 왜 전화를 해? 끊어, 집중해야 하니까.”

―잠깐만! 우리 전화하면서 하자.

“……?”

잠깐 컴퓨터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분명히 발신인은 황보욱이 맞다. 근데 왜 저딴 말을 지껄이는 거지. 이제는 하다못해 휴대폰 해킹에 목소리는 도용당한 건가.

“돌았어?”

아주 작게 웃음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 같았지만, 그게 황보욱의 웃음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친하지도 않으면서 얘는 갑자기 왜 친한 척이야?

―아니, 필요한 걸 네가 전화로 직접 말해주면 나도 편하고 너도 편하잖아.

“그렇긴 한데, 그렇게까지 너랑 전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아니, 미친놈아. 나도 그렇……! 흠흠. 어쨌든 끊지 말고 이대로 진행해.

“뭔 개소리야. 옆에 지금 문정하도 있다면서. 들키면 어쩌려고 개지랄이야?”

―…선배님은 지금 헤드셋 끼고 있어서 들을 일 없어.

“피시방에서 웬 헤드셋? 답지 않게 매너 지키네.”

황보욱은 대답하지 않았다. 또다시 웃음소리가 작게 들리는 걸 보면 문정하 눈치를 보면서 웃는 건가 싶기도 했다.

게임 소리 때문에 희미하게 들리니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뭐, 설마 황보욱이 거짓말이라도 하겠어? 딱히 그럴 이유도 없는데.

[영원한이등병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미러전에서 승리한 것은 아군의 도적이었다.

영원한이등병은 HP가 많이 닳지도 않았고, 유유히 궁극기를 해제한 뒤 그대로 근처 난간 위로 뛰어올랐다.

―우리는 어떡해? 가? 말아?

“왜 나한테 묻고 지랄이야. 나는 원딜이라서 뒤에 빠져 있을 테니까 옆에 있는 문정하한테 물어.”

―선배님이라고 붙여.

“뭔 상관이야, 어차피 지금 헤드셋 끼고 있어서 듣지도 못할 텐데. 내 마음이지. 그리고 지금은 문정하가 아닌 개나소나라서 상관없어. 개소는 원래 막 대해야 함.”

―…….

“내 말 듣고 있어?”

―어, 그래. 듣고는 있지. 네 인성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하면서.

“내 인성은 네 옆자리 사람보다는 훨씬 좋음.”

침묵이 또다시 이어졌다. 이번에는 웃음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여간 웃음 포인트를 모르겠는 놈이다. 나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꺼낸 얘기인데 옆에 선배가 있다고 웃어주지도 않는다. 나는 혀를 차며 게임에 집중했다.

[파티] 도리두리: 한 명 뒤로 돌아감

때마침 도리두리도 주의 멘트를 줬다.

도리두리가 막아선 적군은 셋. 한 명은 조금 전에 영원한이등병이 처리했으니 보이지 않는 적군이 한 명이 있다는 뜻이었다. 적군의 조합을 보며 없는 캐릭터가 거너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본 속성이 아닌 불 속성의 거너. 속성이 다른 거너는 처음이었기에 사정거리가 더 길어서 먼 곳에서 대기를 하고 있나 의아해하고 있을 때였다.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HP가 크게 닳고 있습니다!]

[화상 대미지에 HP가 지속적으로 닳고 있습니다.]

젠장.

기본 속성이 제대로 된 급소를 맞히면 출혈 효과가 일어나는데 불 속성 거너의 탄환에 맞으면 화상 대미지가 있는 모양이었다.

스쳤을 뿐이지만 가뜩이나 연약한 거너 몸에 화상 대미지라니!

“아, 미쳤네. 우기우기 나 좀 똑바로 안 지켜? 탱커 몸뚱어리 놔뒀다가 뭐 할래?”

―네가 재주껏 잘 처맞아 놓고 왜 나한테 그래?

“너 지금 개소만 지키고 있지? 선배라고 잘 보이고 싶어서! 그렇다고 누가 너한테 잘해주기라도 한데? 호불호 확실한 사람이거든?”

―나도 알고 있어. 헛소리하지 말고 게임에나 집중해.

“내 앞에 있는 고기 방패가 날 제대로 안 지켜주니까 뭐라고 하는 거잖아. 언제는 공주님이라며?”

―공주? 아, X발.

“네가 했던 말이거든. 공주님을 지키는 기사라며.”

―그딴 개소리는 제발 잊어.

“개소리라는 건 인정하네. 너 때문에 내가 더 쪽팔렸어. 근데 개소는 지금 뭐 해? 죽었어? 왜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지?”

도리두리와 영원한이등병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개나소나는 아직도 나와 함께 모타리의 뒤에 서있는 중이었다.

가끔씩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 움직이는 것 같기는 한데, 왜 한타를 하러 안 가는 거지 싶어서 눈을 가늘게 뜨고 괜히 화면을 노려보는데 황보욱이 대답했다.

―아.

“아? 뭐, 어쩌라고. 개소 죽었나 살았나 묻고 있잖아.”

―살아는 계셔.

“그게 뭔 소리야. 다른 일 하고 있어?”

―맞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나랑 뭘 하고 싶은 거야, 우기우기? 영양가 없는 소리 할 거면 그냥 끊어. 나 집중해야 해.”

도대체 전화를 건 이유를 모르겠다. 게임 얘기는 별로 하지도 않으면서 영문 모를 소리만 늘어놓고.

한숨을 내쉬며 궁극기를 사용했다. 적군 거너를 노렸지만 이미 도망치고 난 뒤였다. 내 쪽에 우리 셋이 있는 것을 보고 암살하러 오는 것을 포기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거너 혼자서 탱커랑 근딜을 상대하기는 힘들긴 하겠지.

그럼 저놈은 도망쳤으니 아군을 도우러 가야지.

[파티] 영원한이등병: 아, 형님들! 저희 좀 도우러 와주세요!! 도적은 조금만 스쳐도 치명상 입는다구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오라고!!

반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영원한이등병이 저렇게 다급하게 찾는 모습에 대화를 중지하고 서둘러 달려갔다.

적군 탱커에게 붙잡혀 있는 도리두리와 남은 적군에게 둘러싸여 피하고 있는 영원한이등병. 사각지대와 난간 위를 왔다 갔다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의 HP는 어느새 간당간당했다.

“야, 너 가서 얼른 이등병 도와!”

―너는?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가.”

모타리가 서둘러 달려갔다. 영원한이등병에게 쏟아지는 공격을 대신 맞으며 움직임을 한 번씩 막자 그 틈에 영원한이등병이 멀리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도리두리가 서둘러 후퇴 핑을 찍었다.

―도리두리는?

“너 내 앞에 서서 견제 오는 적군 잘 막아.”

서둘러 거너 궁극기를 켜서 도리두리를 공격하는 적군을 바라보았다. 후퇴하라고 핑을 찍어줬지만, 아직 할 만하다고 판단했으니까.

영원한이등병이 안전한 곳에 대피해서 체력 회복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이 보였다.

그럼 아직 상황은 5:4다.

빠르게 움직이는 적군 원딜의 머리를 조준했다.

거너 랭커는 단순히 가만히 서있는 적의 급소를 잘 노린다고 된 것이 아니었다. 믄님의 실력까지는 아니었지만, 예측 샷 정도는 가능하다.

거너 캐릭터의 제복이 흩날리며 탄환이 붉은 선을 그리며 빠르게 날아갔다.

[염소구더기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여기 탱커도 좀 죽여줘.

“탱커는 거너 궁극기로 죽이기 힘들어. 탄환 아까우니까 원딜부터 잘라야지. 개소가 도와주러 갈 거야.”

말 끝나기 무섭게 개나소나가 영원한이등병이 사라진 방향 쪽에서 적군에게 기습을 했다.

그동안 괜히 합을 맞춘 게 아니었다. 지금은 몰라도 초반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개나소나랑 그래도 계속 파티를 했던 이유는, 그가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어주는 플레이를 했었으니까.

딱 뒤에서 기습을 해 주면 좋겠다, 저 한 놈만 어떻게 해 주면 좋겠다, 생각하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등장했었다.

[개나소나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적군이 모타리 님을 처리하였습니다.]

마치 지금처럼.

적군을 처리한 개나소나의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데, 거너 앞에 서있던 모타리가 적군의 궁에 맞고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히 탱커가 맞는데… 왜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거지?

“…….”

―아무 말도 하지 마.

“입 다물고 있잖아.”

―나도 X신같은 거 아니까 뭐라고 할 생각도 하지 마.

“그래. 근데 너보고 문정하가 뭐라고 안 해?”

그 성격에 가만히 있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스피커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이상하다. 진짜 이 새끼 약 먹었나?

[파티] 염소구더기: 개소

[파티] 개나소나: 왜?

적군의 공격을 피하는 중이라서 조금 있다가 답장이 올 걸 기다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답이 빨랐다. 물론 대신에 적군에게 맞기 시작했지만.

하지만 개나소나는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다시 채팅을 쳤다.

[파티] 개나소나: 왜 불렀어 염소야? ㅎㅎ

[파티] 염소구더기: …무슨 컨셉인지는 모르겠는데 소름 끼치니까 평소대로 해. 넌 친절한 것보다 싸가지 없는 게 어울려.

[파티] 개나소나: 저번에 다정한 남자가 좋다면서. 돈도 많고. 나 돈은 적지 않은데 ㅎㅎ

[파티] 염소구더기: 코스튬 산 거 보면 알거든; 낭비하는 사람도 극혐이야. 돈 아까운 줄 알고 살아야지.

[파티] 개나소나: 아.

[파티] 염소구더기: 그리고 넌 다정한 거 매력 없음. 재수 없게 틱틱대는 게 개소 시그니처지. 어색하니까 하던 대로 해.

[파티] 염소구더기: 그리고 언제까지 맞고 있을 거야?

개나소나가 그제야 맥없이 맞던 자세에서 벗어났다. 옆으로 회피한 그는 타이밍을 기다렸다는 듯 적군의 뒤를 차지했고 순식간에 베어내는 스킬을 사용하였다. 큰 출혈과 함께 백색의 제복이 흩날렸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와 세트로 맞춰진 백색 제복도 장난 아니게 멋있었다.

[파티] 개나소나: 그래

[개나소나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파티] 개나소나: 염소가 원하면 그렇게 해야지 ^^

[파티] 염소구더기: ㅇㅇ 잘하네

[파티] 개나소나: ㅋㅋㅋ

[파티] 영원한이등병: 와, 진짜 저 아까 죽을 뻔!

[파티] 영원한이등병: 왜 이렇게 늦게 와요 ㅠㅠㅠㅠ저 완전 순간 빡쳤자나요. 그것도 몰랐죠!?

[파티] 개나소나: 대놓고 말 놓더만

[파티] 영원한이등병: ㅎ~ 그건 실수~

이제야 원래 개나소나로 돌아왔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도리두리 곁에 있던 적군이 도망치는 것을 확인하고 궁극기를 거두어들였다.

치유 스킬이 없어서 도리두리의 체력을 회복시켜 주지는 못했지만, 아슬아슬한 HP로 되돌아오는 도리두리는 별다른 아쉬움은 없는 모습이었다.

회복 아이템을 먹으며 셀프 연명하는 도리두리가 물었다.

[파티] 도리두리: 후퇴하라고 했는데 왜 오셨어요? 그러다가 다 같이 전멸당하면 그 뒤부터 한타하기 어렵다는 거 알잖아요.

[파티] 염소구더기: 일반에서 이렇게 대치하는 연습도 해야죠. 나중에 길드전 하려면 상대는 만렙 소유자들이라서 지금처럼 도망치기도 힘들 테니까.

[파티] 도리두리: 그건 그렇지만…….

[파티] 염소구더기: 워너비는 스파르타입니다. ^^

[파티] 도리두리: 못 본 사이에 정말 강해지셨군요, 염소님. 조금 더 여리신 분이었던 것 같은데.

[파티] 영원한이등병: 여리다구요? 누가용?

[파티] 모타리: ??

[파티] 개나소나: 그럴

끊겼다. 당연히 긍정하리라 생각했던 개나소나가 하던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그리고 아주 잠시 뒤에 다시 올라온 채팅은 개나소나의 첫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말투였다.

[파티] 개나소나: ㅋ멘탈이 아니라 실력이 여린 듯

나는 활짝 웃었다. 익숙한 시비를 들으니 이제야 긴장했던 몸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 잠깐 사이에 개나소나가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아 불편했는데 저 재수 없음을 보니 긴장이 풀린다.

정작 황보욱이 그 시간에 중간이 없다며 속으로 혀를 차고 있는 건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파티] 염소구더기: 개소야

[파티] 개나소나: ?

[파티] 염소구더기: 난 너의 그런 점이 좋더라

쿵!

무언가가 크게 넘어지는 소리가 스피커로 들려왔다. 놀라서 휴대폰을 쳐다보니 황보욱이 다급한 목소리로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문정하가 넘어지기라도 한 건가? 피시방 의자가 얼마나 크고 튼튼한데, 재주도 좋은 놈이었다.

“뭐야? 문정하 넘어짐?”

―아니, 그게……. 응. 잠깐 뒤로 기대고 계시다가 삐끗하셨어.

“염소구더기가 나라는 걸 아는 것도 아닌데 왜 혼자 오버야. 어디 다치지는 않았고?”

조만간 길드전을 함께 할 인물인데 혹여나 넘어지면서 손가락이라도 다쳤을까 봐 걱정스럽게 덧붙였다.

가뜩이나 길드전에 참여할 길드원도 적은데 다치면 안 돼! 아직 만렙도 못 찍었단 말이야!

―선배님은 이 와중에……. 아니, 괜찮은 것 같아. 게임 진행하면 될 듯.

“이미 하고 있어. 너 내 목소리 안 들리게 소리 줄여서 잘 받아라. 들키면 너 죽고 나 죽음.”

―너나 알아서 잘해.

재수 없는 놈. 아군은 서둘러 적군 건물을 부쉈다. 어느새 부활한 도적이 기습해 올 가능성도 있어서 도리두리가 시야를 보고 있었고 뒤에는 모타리가 지키고 있었다.

확실히 탱커가 두 명 있으니까 편하네.

‘만약 길드전을 하면 조합은 어떻게 짜지?’

확실히 참가할 사람은 개나소나(근딜), 영원한이등병(근딜), 오메가원(힐러), 염소구더기(원딜)이었다. 도리두리도 참여한다면 좋겠지만 길드전을 하기 전까지 만렙을 찍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게임에 진지한 걸 보면 열심히 연습할 것 같기는 한데.

‘제대로 된 힐러랑 원딜이 있으면 좋겠는데.’

초팡도 할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주캐가 뭔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나중에 진지하게 물어보리라 생각하는데 귓속말이 도착했다.

[귓말] 자세히봐도잘생김: 염소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귓속말을 하는 거지?

예상하지 못한 이의 대화 신청에 게임을 하면서 채팅을 쳐다보았다. 크게 좋은 감정은 없던 터라 무슨 말을 할까 싶어서 쳐다보는데 귓속말이 이어졌다.

[귓말] 자세히봐도잘생김: 짐작하시겠지만, WINNER 길드 신청은 아쉽게도 탈락하셨습니다. 길마님이 저번 이벤트전으로 평가 내렸다고 하시네요. ^^

[귓말] 염소구더기: 네.

[귓말] 자세히봐도잘생김: 어차피 믄님 없으셔서 크게 미련은 없으셨죠?

[귓말] 염소구더기: 네.

[귓말] 자세히봐도잘생김: 소문으로는 길마님이 워너비 길드에 대전을 신청했다고 하는데 맞나요?

아직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WINNER 길드에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채팅을 노려보았다. 비꼬는 걸까. 하지만 저쪽도 딱히 불경한눈깔이랑 친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귓말] 염소구더기: 사실임ㅇㅇ

[귓말] 자세히봐도잘생김: 재밌네요^^ 누가 봐도 진 싸움인데 하시려고요?

[귓말] 염소구더기: 그쪽이 무슨 상관임?

[귓말] 자세히봐도잘생김: 그야 저도 그 길드전에 참가할 것 같으니까요? ^^

[귓말] 염소구더기: 그럼 더 알려드리기 싫은데요. 나중에 그쪽 길마한테 전달받으세요.

[귓말] 자세히봐도잘생김: 아, 제가 미리 말을 하는 걸 깜빡했네요. 저 위너 길드 탈퇴했는데 워너비 길드에 받아주시죠? ^^

“이건 또 무슨 신종 개소리지.”

저번에 랭커들과 하는 걸 보면 만렙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힐러를 잘하니까 끼워준 것 같았는데. 길드를 탈퇴했다고?

게다가 당연하다는 듯 워너비 길드의 초대를 요구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맡겨두기라도 한 줄 알 것 같은 뻔뻔함이었다.

[귓말] 염소구더기: 제가 왜요? ;; 사람 부족해도 그쪽은 별로… 무슨 의도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귓말] 자세히봐도잘생김: 재밌을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누가 생각해도 질 것 같은 길드가 이기면 더 쾌감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

[귓말] 염소구더기: 차단할게요 ㅡㅡ

[귓말] 자세히봐도잘생김: 힐러 필요하지 않으세요? 저번 조합 보니까 힐러는 없는 것 같던데 ^^

다들 내 머릿속에 들어와서 생각이라도 읽어보는 걸까? 가뜩이나 조금 전만 해도 쓸 만한 힐러와 원딜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터라 바로 부정할 수가 없었다.

저번에 자세히봐도잘생김이 하던 힐러는 빛 속성의 힐러. 힐러 중 가장 많은 치유량을 안겨줄 수 있는 귀한 존재였다.

다만 스킬이 전부 보조적이어서 킬을 거의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어서 호불호가 확실했다.

더 세이렌은 타격감이 좋아 유저들 대부분이 딜러를 선호해 힐러가 귀한 편이었다. 암흑 속성의 힐러만큼은 아니지만.

‘그래서 불경한눈깔도 파티에 넣어놓은 거겠지?’

랭커가 아니면 상종도 안 하는 놈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실력은 보장된 놈이었다.

어쩔까. 바로 받아주기에는 너무 쉬운 길드라는 인식이 될까 봐 일부러 튕겨주었다.

[귓말] 염소구더기: 네, 일단 길드원들끼리 의논하고 말씀드릴게요~

[귓말] 자세히봐도잘생김: 방금 면접이었나요?ㅋㅋㅋ

[귓말] 염소구더기: ㅇㅇㅇ 들어오고 싶어도 함부로 못 들어옴

[귓말] 자세히봐도잘생김: 매력 있네요.

매력 같은 소리 하네.

대답하지 않고 어느새 또 적군과 한타를 시작한 아군에게 시선을 돌렸다.

도리두리와 개나소나가 앞에서 시선을 뺏고, 영원한이등병이 뒤로 돌아가 기습을 시도했는데 적군이 눈치챈 모양이었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ㅇㄴ

[파티] 영원한이등병: 들;킴

[적군이 영원한이등병 님을 처리하였습니다.]

기습이 성공하면 무서운 캐릭터지만, 발견 당하면 거너만큼 종이 몸이라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게 단점이었다.

아군이 합류하기도 전에 사망한 영원한이등병이 뻘쭘했는지 파티 채팅으로 그저 웃었다.

[파타]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제는 캐릭터 보이스도 함께 들려서 도적의 비웃는 웃음소리가 계속 들린다는 거였지만.

자취방을 가득 채우는 웃음소리에 서둘러 볼륨을 낮추며 말했다.

[파티] 염소구더기: 보이스 때문에 놀람;

[파티] 영원한이등병: 매력 있쥬!?

[파티] 개나소나: ㄴㄴ

[파티] 도리두리: 아니요. 도적은 너무 비웃는 톤이라…….

[파티] 영원한이등병: 다들 매정해ㅠ

[도리두리 님이 도움을 요청합니다!]

영원한이등병이 죽자 적군이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숫자가 우세하니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도겠지.

도리두리는 즉시 궁극기를 시전했다.

몸이 크게 팽창하고 빠른 속도로 적군 쪽으로 달려들었다. 피하는 적군 사이에서 원딜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공격하는 도리두리에게 남은 적군이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저격을 켜자 확대된 시야로 원딜의 HP가 보인다.

도리두리의 공격으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하고 아주 조금씩 닳고 있는 HP.

힐러와 원딜은 먼저 죽여야지. 적군이 거너를 가장 1순위로 죽이고 싶어 하듯 말이다.

[염소구더기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2Kill.

이제 4대 4였다.

도리두리의 곁으로 개나소나가 달려갔고 나 역시 저격으로 서포트를 하려는데 화면이 크게 흔들렸다.

“아이씨!”

누군가의 기습이었다.

저격을 들고 있으면 주변 시야가 보이지 않아서 기습당하기 딱 좋다. 순식간에 HP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어 황급히 궁극기를 해제하고 옆으로 피했다. 하지만 빠르게 달라붙는 날붙이. 바람 속성의 도적이다.

원딜보다 도적을 먼저 견제했어야 했나. 원딜을 죽이자마자 바로 뒤로 돌아서 기습을 하러 오다니.

다급하게 내 전용 고기방패를 불렀다.

“우기우기 어딨어! 뒤에 도적!”

―뭐? 도적?

“아니, 네가 왜 거기 있어! 원딜 지켜줘야지!”

―지금까지 뒤로 오는 사람 없길래 괜찮은 줄 알았지.

그게 말이야, 방구야?!

모타리 캐릭터는 이미 전장의 한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이곳까지 달려오려면 늦었다. 연약한 거너는 순식간에 HP가 닳았고 이윽고 별다른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아늑한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막내 길마 동무.

[파티] 염소구더기: 망할 모타리…….

[파티]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 어쩔 수 없죠!

[파티] 염소구더기: 뒤에 오면 이등병님이라도 뒤에 핑 찍어주셨어야죠!

[파티] 영원한이등병: what!? 이게 이렇게 점핑해서 업보가 돌아온다구? 아니, 형님ㅋㅋㅋㅋ억울한데요!

[파티] 염소구더기: 농담이라고 하죠……ㅎ

[파티] 영원한이등병: 이 악물고 계신 것 같은뎈ㅋㅋㅋ 죄송해요, 저 잠깐 폰 보고 있느라궁.

[파티] 염소구더기: ㄴㄴ 괜춘. 방심한 제 잘못이죠, 뭐. 아, 맞다. 어차피 죽은 김에 까먹고 있었는데 할 말 있어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

[파티] 염소구더기: 길드 가입 신청 들어왔는데 찬성, 반대 받습니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오오, 뭘 보고 신청했지? ㅋㅋㅋㅋㅋ 랭커도 없고 홍보도 안 했는데.

[파티] 염소구더기: 주캐(빛힐러), 렙 263

[파티] 도리두리: 찬성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도리두리였다. 그러면서 빛힐러는 귀하다고 덧붙였다. 확실히 귀하긴 하지……. 다른 유저였다면 망설임 없이 받았을 텐데…….

[파티] 영원한이등병: 저도 찬성이요!

[파티] 개나소나: 누구임?

[파티] 염소구더기: 자세히봐도잘생김

개나소나는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는 게 수상했는지 그리 물었고, 나는 바로 대답해 주었다.

도리두리를 제외하고 여기 있는 나머지 인원은 모두 아는 인물. 영원한이등병은 여전히 긍정적이었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와, 저번에 같이 했던 위너 소속 아니에요? 대애애박 사건!

[파티] 영원한이등병: 위너에서 빼오셨구나! 막내 길마님 능력자다!! 바로 받아요!

[파티] 염소구더기: ㄴㄴ 빼온 적 없고… 본인 혼자 알아서 나온 거예요.

[파티] 모타리: 난 상관없음

[파티] 염소구더기: 네 의견도 난 상관없음

[파티] 모타리: ㅡㅡ

[파티] 개나소나: 성격이 좀 걸리는데

[파티] 염소구더기: ?

[파티] 영원한이등병: ?

[파티] 도리두리: ?

[파티] 모타리: ㅎㅎ…….

[파티] 개나소나: 다들 반응이 왜 그따위지? ^^

[파티] 염소구더기: 아니, 새삼 개소도 받아준 길드인데 다른 유저를 성격으로 거르려고 하니 양심에 찔려서?

[파티] 개나소나: ㅠㅠ

[개나소나 님이 눈물을 글썽거립니다.]

헐. 키를 잘못 눌렀나? 잘못 눌렀겠지?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잠시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칫거렸다. 말 많던 영원한이등병조차 굳은 상황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잠깐의 침묵 동안 다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행동을 멈추자 적군이 신나서 공격을 해댄다.

[아군이 전멸하였습니다.]

[적군의 사기가 올라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지금 중요한 건 전멸 따위가 아니지. 제일 마지막에 죽은 도리두리가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파티] 도리두리: 1500-12**

[파티] 도리두리: 고객 센터 번호입니다.

[파티] 도리두리: 지금 당장 전화해

[파티] 도리두리: 어떤 ♡♡놈이 자꾸 해킹을 하고 ♡♡임???

적군에게 다굴을 당해도 이런 격한 반응을 보인 적이 없던 도리두리였는데… 여러 의미로 대단한 개나소나였다.

[파티] 개나소나: 내 취급 참…….

[파티] 영원한이등병: 포기해요, 개소형님ㅎ 원래 업보빔은 되돌아와야 제맛! 냠냠 꿀맛~ ㅇ~ㅇ!

[파티] 개나소나: 귀척 ㄴㄴ

[파티] 영원한이등병: 초팡이가 했을 때는 아무 말도 안 했으면서! 취급 너무해!

[파티] 염소구더기: 됐고. 다들 찬성이라고 알고 아쉽지만 받을게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아쉽지만ㅋㅋㅋㅋㅋㅋ 취급 무엇?

[귓말] 염소구더기: 끝나고 187채널ㄱㄱ

[귓말] 염소구더기: 1차 서류 통과, 2차 임원 면접 있음.

[귓말] 자세히봐도잘생김: ㅋㅋㅋㅋㅋㅋ 위너보다 더 가지가지 하시네요.

[귓말] 염소구더기: 불만? ^^

[귓말] 자세히봐도잘생김: 꼭 들어가고 싶다고요. ^^

하여간 태세 전환은 빠른 놈.

그래도 자세히봐도잘생김이 들어오면 빛 힐러 자리는 충족된다. 남은 건 딜러들. 가능하면 딜을 잘 뽑을 수 있는 딜러들이 오면 좋을 텐데…….

당일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오는 유저가 생길 수도 있으니 대기 인원은 넉넉할수록 좋았다.

손머리발발에게는 영원한이등병이 연락해 본다고 했었고, 잔팡에게 딜러가 가능한지 물어봐야겠다.

길드전은 여유롭게 두세 달 뒤에 하면 좋겠지만…….

‘그 새끼 성격으로 그만큼 기다려 주지는 않겠지.’

아마 조만간 다시 쪽지를 보내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자세히봐도잘생김이 워너비 길드에 들어오자마자 빅뉴스를 알려주었다.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안녕하세요. ^^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일단 모르시는 것 같아서 전달합니다. 자게에 길드전 저격글 올라왔어요. 위너가 워너비에.

[길드] 영원한이등병: 네?! 저격글?!

[길드] 초팡: 저 이미 봤어요. 안 그래도 나오면 바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선수 뺏김ㅠ 잔팡이가 알려줘서 후딱 보고 왔지요!

[길드] 영원한이등병: 헐, 길마님! 얼른 저희도 보러 가요!!

[길드] 모타리: 이미 보러 갔어요.

나와 통화를 하고 있던 모타리가 내 마우스 클릭 소리가 요란한 걸 듣고는 길드원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런 그의 말처럼 나는 이미 게임 화면을 내려놓고 자유 게시판에 들어와 있었다.

조만간 다시 길드전을 신청하겠거니 짐작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 대놓고 저격을 한다고?

이를 갈며 어떻게 써놨나 싶어서 들어간 자유게시판.

올린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글이 벌써 높은 조회 수에 베스트에 올라 있었다.

[작성자: 불경한눈깔 [300]

제목: 바쁜 놈들은 밑에 결론만 읽어라. 빡쳐서 서론 길다.

내용: 바쁜 놈들은 밑에 결론만 읽어라. 빡쳐서 서론 길다.

상위 랭커 다수 거느린 대형 길드 WINNER를 무시하는 ㅈ빱 길드 ‘워너비’의 길마가 배신자인 건 알 사람은 알지ㅋㅋㅋㅋ 위너에 있다가 갑자기 잠수 탄 염소똥임. 꼴에 거너 랭커라고 주변 유저들이 우쭈쭈 안 해주고 당시 길마인 믄님만 챙겨주니까 킹 받아서 잠수함. 지 성격 못 이기고 계정도 폭☆파! 난 살면서 그런 성질머리 처음 본 듯 ㅋㅋㅋㅋ

어쨌든 그런 배신자가 염소구더기로 길드 창설했는데 만렙도 하나 없는 ㅈ빱 길드임. 그런 길드로 얼마 전에 한 이벤트전에서 마주쳤는데 레벨 차이 나서 그렇지 실력은 안 진다고 겁나 무시하더라? ㅋㅋㅋ 솔직히 우리 길드가 무시 받는데 안 빡칠 길마가 어딨음????

꼴에 돈 좀 있는 길드원 있다고 기세등등해서 코스튬 선물 받고 전챗으로는 보따리 보상이라고 뻥카 치는 것 같은뎈ㅋㅋㅋㅋㅋ 겁나 한심. 그러고 싶을까? 넷카마도 아니고 길드원들 지갑에 빨대 꽂네. 쯧쯧. 좋다고 해주는 길드원이나 주제 파악 못 하는 길마나.

너무 물 흐리는 것 같아서 딴 놈들 피해 보기 전에 우리가 나서려고 한다. 다들 많관부. ㅅㄱ

결론: 대형 길드랑 ㅈ빱 길드전 할 건데 구경 오실?

→ 날짜는 일주일 뒤, 저녁 9시. 배신자는 응답도 안 하던데 알아서 신청할 테니 받아라. 그렇게 우리 무시하던 실력 보자 ㅋㅋㅋㅋ]

└용맹한응가: 길드전??? 위너가?

└능소활: 워너비 길드 렙 보고 왔는데 방금 태어났던데;; 위너도 참 못났다. 저런 신생아랑 붙고 싶을까?

└이마빡에궁박아죠: 언제부터 유저들 신경 썼다곸ㅋㅋㅋㅋ길랭 1위지만 본인들이 더 일1진 짓 하면서 양심도 없나?

└꽃길이고생길: 님 이제 찍힘ㅅㄱ

└더쎄광공: 더쎄에 PVP 없는 거 다행으로 여겨랔ㅋㅋㅋㅋ 있었으면 접속할 때마다 썰렸을 듯

└투나잇: 근데 염소똥이면 초창기 거너 랭커 아님? 나 알긴 하는데. 솔직히 믄님이 넘사벽이긴 한데, 염소똥도 잘하긴 했잖아.

└좃2지오: ㅇㅇㅇ 믄님이 약간 따라 할 수 없는 신들린 저격 솜씨를 보여줬다면, 똥은 그래도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느낌으로 보게 됨. 근데 막상 해보면 어렵긴 하드라.

└유르미츄: 괜히 랭커가 아님. 근데 솔까 똥은 성격 괜찮지 않나? 말수가 적을 뿐. 믄님 부캐인 줄. 그래도 인사는 잘 받아주던데.

└└에어딕벌떡: 랭커 이미지 관리? ㅋ

└└유르미츄: 괜한 시비털지말고 갈 길 가, 닉넴도 좃나 지 같은 것만 ㅊㅓ 쓰네

└초팡: 와, 이런 ㅈ빱 길드에 발릴 대형 길드 보고 싶네요!! (야광봉 붕붕

└잔팡: 여기서 ㅈ1랄 하지말고 나와

└능소활: ?? 님들 워너비 길드 소속인데?? 잔팡??

└└혼돈파괴: ??? 위너랑 쌍벽 이루는 번트 길드 길마 부캐 이름 잔팡 아니었냐?? 내가 헛걸 보나? 부캐 소속 길드가 워너비요? ㅈ빱 길드 아닌데요?ㅋㅋㅋㅋㅋㅋㅋ

└0070071: 근데 거너 코스튬은 아직 자게에 파는 거 올라온 적이 없어서 구매 아니고 랜보에서 뽑은 거 실화일걸? 이벤트전 완전 초창기 때 입고 전챗에 올린 거 본 적 있음

└호랑이는음메: 22

└박순규1988: 333

└└카오스히메: 4444

└워너비응원합니다: 근데 워너비 길드원 구경하고 왔는데 생각보다는 괜춘한 듯? 만렙 한 명이지만, 전사 마스터도 있고 전 거너 랭커도 있고. 번트 길드 길마 부캐도 있고.

└아빠의죽빵: ㄴㄴㄴ 믄님 탈퇴하고 말이 많아도 위너가 여전히 대형 길드 1위라는 건 변함없음. 상위 랭커도 많고 대부분 만렙인데 길드전 순식간에 끝날 듯. 학살이지.

└정보상술: 이게 맞지ㅇㅇ 그래서 지들도 욕먹기 싫어서 저렇게 장황하게 늘어 쓰는 거임. 팩트.

└믄님은신컨: 다 모르겠고 믄님 워너비 길드 가면 워너비 이김ㅅㄱ

└클로즈제이: 아, 그럼 좀 재밌겠다ㅋ 둘이 친하지 않음? 염소가 믄님 제자 아님? 믄님 솔플 주로 하는데 염소똥은 자주 데리고 다녔잖아.

└└카오스히메: ㅋ 그래도 전 길드 길마였는데 설마

└└믄님은신컨: 믄님 강림하소서 ㅠㅠ 어린 양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신컨 좀 보여주세요! 요즘 활동 너무 뜸하세요!

└└└믄님: ?

└└└└믄님은신컨: 헐

└└└└카오스히메: 헐

└└└└0070071: 미친;;;; 본인 등판

└└└└염소구더기: 헐

└└└└워너비응원합니다: 윗분은 머임ㅋㅋㅋㅋㅋ자연스럽게 합류해서 놀라시넼ㅋㅋㅋㅋ

믄님은 자유게시판을 잘 보지도 않는데 어떻게 알고 보신 거지?

게다가 자유게시판 내용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완전 나쁜 놈으로 만들어 놨네, 본인들 멋대로!

“아니, 근데 나도 모르고 있던 썰이 있네?”

―뭔데?

“일단 내가 다시 들어감.”

내려두었던 게임 화면을 다시 올렸다.

영원한이등병을 포함한 다른 길드원들도 자유 게시판을 확인하고 온 모양인지 화면을 띄우자마자 요란한 채팅들이 올라왔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아니, ㄱ1ㅔ 어이없어!!

[길드] 개나소나: 코스튬 현질한 게 부러웠나ㅉㅉ

[길드] 영원한이등병: 우리가 일단 금전적으로 우세해요! 솔직히 만렙이 오메가원님 밖에 없는 건 사실이지만, 실력이 뒤떨어지는 건 아니라구요!

[길드] 초팡: ㅇㅂㅇ? 다들 진정해. 팩트만 따지만 제3자한테는 ㅈ빱 길드 맞자낭.

[길드] 오메가원: 진짜 팩트 때리네;;

[길드] 염소구더기: 일단 다들 진정하고, 강제로 일주일 뒤로 신청받았는데 어떻게 할까?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어차피 저희 의견은 상관없을 겁니다. 그냥 하죠. ^^

[길드] 개나소나: ㅇㅇ 그냥 해. 도망치나 붙어서 지나 똑같고 이기면 저쪽 엿 먹일 수 있는 거고.

[길드] 염소구더기: ㅇㅋㅇㅋ 근데 번트 길드가 어디임?

[길드] 영원한이등병: 댓글 보셨나 보네요ㅋㅋㅋㅋ 지금 길드 3순위의 상위권 대형 길드인데

[길드] 영원한이등병: 생긴 지 얼마 안 됐는데 엄청 무서운 속도로 올라온 거래요. 약간 위너가 초창기 랭커면 번트는 최근 풋풋한 랭커 모음?

[길드] 초팡: ㅇㅂㅇ

[길드] 염소구더기: 아하. 근데 그런 길드의 길마 부캐가 저희한테 있었다고요?

[길드] 초팡: (ゝω´・)b⌒☆

[길드] 염소구더기: 초팡이 알고 있었지?

[길드] 초팡: ♪~ ᕕ( ᐛ )ᕗ

[길드] 초팡: 초팡이는 초팡초팡해! 초팡이는 사랑스러워! 초팡이는 워너비 길드의 승리의 여신!

[길드] 염소구더기: 아오… 부정은 못 하겠다.

[길드] 염소구더기: 뽀뽀라도 해줄까?

[길드] 개나소나: 아니!

[길드] 오메가원: 철컹철컹?

아니, 이 사람들이.

[길드] 초팡: (づ ̄ ³ ̄)づ

이 와중에 거절하지 않는 초팡을 보고 있으니 작게 웃음이 나왔다. 이쯤 되면 워너비는 실력이나 인성이 문제가 아니라 웃긴 사람들만 모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길드전까지 앞으로 7일이 남은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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