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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개판 5분 전: 길드전 (18/21)

17. 개판 5분 전: 길드전

[길드원, 잔팡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다음 날도 어김없이 모인 길드원들은 어느 조합으로 할지, 어느 멤버로 출전할지 의견을 나누며 고민했다.

나도 길드 마스터 경험이 전무했고 심지어 길드전도 많이 참여하지 않아 오더해 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 당시에는 믄님을 따라서 거너 랭킹만 올리는 거에 집중하기도 했었고 말이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왔다, 기다리던 인물!

[길드] 손머리발발: 오오오! 저분이 그 유명한 번트의 길마님 부캐!!

황보욱은 길드전은 빠지겠다고 미리 얘기했고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상관없다. 대신 영원한이등병이 초대한 손머리발발이 길드원으로 합류했다.

[길드] 잔팡: ?

[길드] 영원한이등병: 잔팡님! 소문 들었어요!! 번트를 그렇게 잘하신다면서요!!

[길드] 초팡: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잔팡: ㅋㅋ? 초팡 네가 말함?

[길드] 초팡: ㄴㄴ자게에 님이 단 댓글에 대댓으로 딴 사람들이 밝힘. 애초에 비밀도 아니었자나.

[길드] 잔팡: 그렇긴 한데

[길드] 영원한이등병: 저희랑 같이 길드전 해주실 거죠? 저희 길드원인데 ㅠㅠ

[길드] 염소구더기: 너무 부담 주지 말기ㄴㄴ 길드 들어오는 조건이 애초에 강요 사항 없는 거였으니까.

[길드] 잔팡: ㅇㅇ

[길드] 초팡: 닭치고 걍 해 ㅇㅅㅇ

[길드] 영원한이등병: !? 누, 누님……!

둘이서 친해지고 난 뒤에 초팡이 영원한이등병보다 나이가 많은 걸 알게 된 뒤로는 누님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었다.

단호하게 권유하는 초팡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내가 강요하는 건 안 되지만 원래 지인인 초팡이 권유하는 건 룰 위반이 아니다. 약간의 꼼수이기는 하지만.

[길드] 잔팡: 귀찮. 우리 거도 귀찮아서 안하고 있는데

[길드] 초팡: 나 오메가 애기한테 잘 보여야 행

[길드] 초팡: 내 연애 도와주기로 했잖아

[길드] 오메가원: ???

[길드] 잔팡: 썸?

[길드] 초팡: ㅇㅇㅇ 확신의 썸

[길드] 오메가원: 아니, 잠깐만. 나도 모르게 언제부터?

[길드] 초팡: 애기야, 쉿~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오메가원이 결혼을 했다는 건 알고 있으니 저건 일부러 얘기하는 거겠지. 아씨, 라고 얘기하는 잔팡을 보아하니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기로 약속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잠깐 묵비권을 행사하던 잔팡은 이내 느리게 채팅을 올렸다. 실제로 옆에 있었으면 한숨을 내쉬지 않았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귀찮음이 잔뜩 묻은 채팅이었다.

[길드] 잔팡: 대신 본캐x, 부캐로 참여

[길드] 초팡: ㅇㅇㅇ 대신 필요한 전력으로 참여해

[길드] 초팡: 다 어지간히 하자나

[길드] 잔팡: ㅇ

[길드] 초팡: 길마님! 쟤는 참고로 딜러 잘해욧! 그리고 저 잘했죠!?

[길드] 염소구더기: (づ ̄ ³ ̄)づ

[길드] 초팡: 꺄륵

[길드] 초팡: 쮸왑-!

[길드] 잔팡: …썸을 길마랑 하고 있음……?

[길드]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 요즘 길마님 최애가 초팡 누님이라서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길드원, 자세히봐도잘생김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라하~!

[길드] 염소구더기: ㅎㅇ

[길드] 오메가원: 라하!

[길드] 초팡: 라하~!!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 라하입니다.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번트 길마님도 안녕하세요.

[길드] 잔팡: 여기서는 아님ㄴㄴ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넵 그럼 잔팡님이라고 부를게요. ^^

[길드] 잔팡: ㅇ

개나소나랑 비슷한 듯하면서 더 무심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초팡의 부탁에 별 불만 없이 들어주는 걸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일단 딜러가 늘어서 좋네.

흐뭇하게 웃으며 공책에 [잔팡]이라고 적고 그 옆에 [딜러]라고 메모했다.

[길드] 염소구더기: 아, 두 분은 대형 길드 소속인데 길드전 해보셨죠?? 저희는 대부분 길드전은 첨이라서 그러는데 조언해주실 거 있을까요?

[길드] 잔팡: ? 패면 됨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센 놈이 이기죠

[길드] 염소구더기: …….

[길드] 염소구더기: 아니, 그런 거 말고 조금 더 도움되는 조언들 없어요?

[길드] 잔팡: 일단 디X는 필수로 하고 오더하는 놈이 한 명 있어야 함. 의견이 조금이라도 어긋나서 따로 놀면 순식간에 썰림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일반전이랑 달리 만렙 유저들의 싸움이니까 아무래도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는 않겠죠.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길드전은 3판을 해야 하니까 같은 사람이 계속 오더를 할 수는 없어요. 미리 정해두면 좋을 것 같네요. ^^ ㅈ빱 길드 길마님.

[길드] 염소구더기: ♡♡♡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욕? ^^

[길드] 염소구더기: ㄴㄴ똥

[길드] 초팡: 구멍!

[길드] 염소구더기: ㅋㅋㅋ 초팡이한테 배움

[길드] 초팡: 엣헴! 길마님한테 좋은 거 가르쳐줬다!

정말 똥구멍이라고 쓰니까 욕을 한 것처럼 하트가 달리는 게 신기해서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개나소나는 왜 이렇게 안 들어오는 거지? 이벤트전 때 했던 약속 때문에 암묵적인 룰처럼 이 시간에는 들어왔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과제라도 있나. 아니면 저번처럼 조별 모임이 있는 걸까.

궁금해서 휴대폰을 쥔 손이 망설임으로 꼼지락거렸다. 연락하면 금방 답장이 올 것 같기는 한데… 오해하면 어쩌지.

이제는 확실하게 문정하가 나를 좋아하는 걸 인정했으니 제대로 된 용건도 없는데 연락하는 건 여지를 주는 행동이 아닌가 고민되었다.

하지만 의논할 사람은 없고, 손지우는 그냥 비웃을 것 같고…….

[길드] 초팡: 길마님?? 멍 때려요??

[길드] 염소구더기: ㄴㄴ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길드] 초팡: 무슨 일 있어요? ㅜ 말하기 힘들어요?

[길드] 염소구더기: 아,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나한테 관심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데 그 사람한테 연락할까 말까 고민 중.

[길드] 초팡: 아

[길드] 영원한이등병: 헐

[길드] 오메가원: 오?

[길드] 손머리발발: 염소님, 썸이에요?!

어차피 말해도 내 상황을 모르는 길드원들이라서 고민하다가 편하게 얘기했다.

반응이 어쩐지 조금 미묘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초팡이의 이어지는 질문에 대답했다.

[길드] 초팡: ㅎㅎ 무슨 일 때문에 연락하려고 했는데요? 길마님도 마음이 있어서?

[길드] 염소구더기: ㄴㄴ 마음은 없고

[길드] 영원한이등병: 큽!

[길드] 염소구더기: ?

[길드] 초팡: 무시하고 계속ㄱㄱ

여자애라서 연애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걸까.

이상한 영원한이등병의 반응에 왜 그러냐고 물을 틈도 없이 초팡의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어디까지 얘기할까 고민하다가 정체가 들키지 않는 선에서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길드] 염소구더기: 약속한 건 아닌데 자주 보던 곳에 안 나와서 왜 안 나왔는지 물어볼까 하는데, 받아줄 마음도 없으면서 연락하면 너무 어장이겠지?

[길드] 초팡: 마음 없는데 별것도 아닌 걸로 신경 쓴다는 뉘앙스를 풍기면 좀 그렇죠? 근데

[길드] 초팡: 아예 마음 없어요? 리얼?

[길드] 염소구더기: ??

[길드] 초팡: ㅎ 저라면 관심 없는 상대한테 연락 오든 말든 신경도 안 쓸 것 같아서요~

묘하게 손지우가 했던 조언이랑 비슷했다.

타인이 상처를 받든 받지 않든 무관심한 성격이라서 잘 타인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는데 유달리 문정하는 신경 쓰기는 했지.

단순히 게임을 같이 하는 메이트라서? 곧 길드전을 같이 하게 될 인물이라서?

[길드] 염소구더기: 아마도 없을걸

[길드] 초팡: 길마님 연애 한 번도 안 해봤죠?

[길드] 염소구더기: ㅇㅇ

[길드] 초팡: 너무 어렵게 생각할 거 없고 그냥 끌리는 대로 움직이세요! 연락하고 싶으면 하고 그거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상대가 결정할 일이죠. 상대를 너무 배려할 필요도 없어요!

[길드] 오메가원: 그건 인정. 제일 중요한 건 본인이니까 너무 남한테 맞춰서 움직이려고 하지마 ㄴㄴ

[길드] 영원한이등병: 다들 뭐에요……? 어른이에요……? 나만 어린이야……? 어른스러워, 심쿵.

[길드] 염소구더기: 나도 좀 심쿵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게임만 하는 줄 알았더니 연애 상담도 해주고 여기 길드 복지 좋군요. ^^

복지 같은 소리 한다.

다정한 길드원들의 말에 설렜던 감정이 조금 식었지만, 그래도 한시름 덜어놓은 기분이었다.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그래, 개나소나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착각하든 이 정도 묻는 게 실례는 아니겠지. 착각하고 물으면 너와 같은 감정이 아니라고 다시 한번 말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말이지…….

[나: 형 저번에 피방 갔다면서요. 오늘도 갔어요? 뭐해요?]

[개소: 나 지금 잠깐 저녁 먹으러 나왔어.]

[나: 저녁? 벌써요?]

[개소: 조별 과제 때문에 조사할 게 있어서ㅜ]

잠깐 시계를 보고 다섯 시쯤인 걸 확인하고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눈을 비볐다. 눈에 뭐가 들어갔나 싶었지만, 새로 온 문자는 없었다.

[나: 아하, 힘드시겠네요. 지우 형이랑 같이요?]

[개소: 아니, 손지우는 일이 있어서 저번에 봤던 동기랑 둘이 왔어.]

저번에 봤던 동기라면 그때 잠깐 마주쳤던 선배님 말하는 거 아닌가? 성별이 여자고 문정하한테 관심이 있다던 그 선배?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잠시 그대로 굳은 채 가만히 있었다.

나는 지금 여지를 주는 걸까 봐 연락하는 것도 고민하다가 했는데 문정하는 뭐 하는 거지?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 선배가 적극적으로 어필 중이라고 들었는데, 둘이서 움직인다고? 물론 과제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괜히 억울한 기분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러다가도 내가 이럴 입장은 아닌 것 같아서 또 죄책감이 들어서 한숨을 내쉬고.

받아줄 생각도 없으면서 남이랑 어울리는 건 싫어하다니, 완전 쓰레기잖아. 내가 이렇게 쓰레기였나?

“…뭐 원래 좋은 놈은 아니었지.”

문정하한테 인성 언급할 때가 아니었다. 황보욱에게도 살갑게 대한 적이 없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그런 성격을 보고도 나를 좋아해 준다고 하는 문정하가 신기하고 호기심이 갔었는데……. 역시 제대로 된 답변도 안 주는 사람을 기다려 줄 생각은 없겠지.

어쩌면 본인 딴에는 잊어보려고 여러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걸지도 몰랐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게 좋을지도.

[길드] 염소구더기: ♡♡ 빡치네

[길드] 영원한이등병: ?! 막내 길마님이 뿔나셨다!!

[길드] 오메가원: why??

[길드] 초팡: 연락 안 받아요? ㅇㅅㅇ

[길드] 염소구더기: 동기랑 조별 과제 중인데

[길드] 초팡: 넹 그게 끝이 아니죠?

[길드] 염소구더기: 그 동기가 얘 좋아하는 사람이거든ㅇㅇ 이거 뭐 하는 짓거리지? 그리고 난 지금 뭐 하는 짓거리지?

[길드] 초팡: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초팡: 신경 쓰여요? 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염소구더기: ㄴㄴ

[길드] 염소구더기: 그냥 짜증 나

[길드] 오메가원: 그게 신경 쓰인다는 거지… 뭘… 인정하면 편해, 길드장이여…….

[길드]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 서로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길드] 염소구더기: ㄴㄴ 그건 절대 아님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강한 부정이

[길드] 잔팡: 강한 긍정이지 ㅡㅡ

[길드] 염소구더기: ㅡㅡ? 다들 강퇴각 재고 있음?

[길드] 영원한이등병: 길마님이 권력 남용하신다!

이 사람들이 지금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얘기하나.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다시 노려보다가 이내 화면이 보이지 않도록 뒤집어 놓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놀림을 당했다고 생각해서 분노가 생긴 거라고, 이제는 정말 신경 쓰지 말자고 마음먹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다가 다시 휴대폰을 들어 배달앱을 뒤졌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매콤한 음식을 먹어야 해. 절대 메시지가 다시 왔나, 자연스럽게 확인하기 위해 들어 올린 것은 아니었다.

[길드] 초팡: 길마님이 불편해하니까 얘기는 이쯤에서 마무리 하구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용~ ㅇㅅㅇ

[길드] 영원한이등병: 우리가 길드원이 많지는 않아서 초반에 확실히 2승을 먼저 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첫 번째 판은 길마님, 개소형님 ㄱㄱ

[길드] 초팡: 원딜, 근딜인데 거너 집중 마킹 될 수 있으니까 딜러 더 넣죠. 잔팡이 들어가

[길드] 잔팡: ㅇㅇ

[길드] 초팡: 탱은 도리두리님이 해주시는데 다른 탱커가 없어서 아쉽네요ㅠㅠ 할 수 있는 분?

[길드] 오메가원: 다들 탱커가 주캐가 아니라서… 아니면 두 번째 판에서 탱커는 내가 할게. 암힐 궁으로 HP 올릴 수도 있고 기본 체력이 좋으니까.

[길드] 초팡: 넹~ 그래도 앞에 시야는 보기 힘드니까 좀 아쉽긴 한데, 두 번째 판에서 저도 탱 들어갈게요!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첫 번째는 공격형으로 두 번째는 방어형으로 구성 짜는 건 어떨까요? ^^

[길드] 영원한이등병: 그냥 자잘님이 해보고 싶으신 거죠? ㅋㅋㅋㅋㅋㅋ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들킴^^ 어차피 이길 것 같지는 않아서요ㅎ

[길드] 영원한이등병: 그건 그래

[길드] 오메가원: 만인의 앞에서 더쎄 즐기기~

[길드] 초팡: 어차피 아무도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 안해유~ ㅇㅂㅇ 마음 편하게 합시다! 잔팡이는 지면 자존심 상하겠지만

[길드] 잔팡: 길드전은 원래 별 관심 없어…….

[길드] 손머리발발: 저도 그럼 해도 될까요? 히히… 근데 아직 님들처럼 잘하지는 못해서ㅠㅠ

[길드] 염소구더기: ㅇㅇ 두 번째 판 참여ㄱㄱ 잔팡님이 첫 번째 판은 이겨줄 테니 두 번째 판은 부담ㄴㄴ

[길드] 잔팡: 저기요… 방금 길드전 관심 없다고 했는데요?

[길드] 염소구더기: 초팡아ㅠ

[길드] 초팡: 닭치구 그냥 해~ 잔팡쓰~ ᕕ(ꐦ°᷄д°᷅)ᕗ

[길드] 잔팡: 실례지만 조폭이세요?

[길드] 초팡: (メ゚皿゚) 알면 기어라

[길드] 잔팡: ;; 아, 예…….

[길드] 염소구더기: 초팡이 짱!

[길드] 초팡: 송구하옵니다, 길마님. ❁ᴗ͈ ˬ ᴗ͈)⁾⁾⁾

[길드] 잔팡: 화면 내려서 특수 이모티콘 북붙하기 귀찮지 않음?

[길드] 초팡: ◡( ๑❛ᴗ❛ )◡ 재밌는 걸 어쩔티비~

[길드] 영원한이등병: 둘이 사귀어용!?

친해 보이는 둘의 모습에 영원한이등병이 물었다.

원래부터 실친인 듯했고, 길드전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잔팡이 초팡의 부탁에 큰 불만 없이 바로 참여해 주었으니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물론 당사자들은 전혀 아닌 모양이었지만.

[길드] 잔팡: ??? 내가? 쟤랑요?

[길드] 초팡: ♡♡

[길드] 영원한이등병: ……? ㅋㅋㅋㅋㅋㅋ이번에도 똥구라고 쳐서 하트 뜬 거에요??

[길드] 초팡: 아닝, 시233발 이라고 했눈뎅 (>ᴗ0 )

[길드]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놬ㅋㅋㅋㅋ 실친 맞네

[길드] 염소구더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초팡이 조폭썰 실화인걸롴ㅋㅋㅋㅋㅋ

[길드] 오메가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염소구더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일단 이제 진정하고 정리 한 번만 더 해보자. 첫 번째는 공격형 위주로 탱커는 도리두리님만 하고 나머지는 딜러캐로.

[길드] 염소구더기: 나, 개나소나, 영원한이등병, 잔팡, 도리두리 끝. 찬성?

[길드] 영원한이등병: 찬성~!!

[길드] 염소구더기: 두 번째는 초팡, 오메가원, 손머리발발, 자세히봐도잘생김. 한 명만 더 추가하면 될 듯.

[길드] 손머리발발: 그럼 저도 전사로 방밸 탈게요!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전부 탱이니까 힐러 할 맛 나겠네요. ^^

[길드] 염소구더기: 세 번째판은 참여하고 싶은 사람 지원받음.

[길드] 잔팡: 탈주 가능?

[길드] 초팡: 싸다구 가능?

[길드] 염소구더기: 초팡만 가능ㄱㄱ

[길드] 초팡: 확 마, 뺨 대!

[길드]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누님ㅋㅋㅋㅋㅋ진정하세욬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오메가원: 길마님 편애 쩌넼ㅋㅋㅋㅋㅋ

[길드] 손머리발발: ㅋㅋㅋㅋㅋㅋㅋ여기 분위기 왜 이래욬ㅋㅋㅋㅋㅋ 좋넼ㅋㅋㅋㅋ

좋아, 됐다. 배달앱에서 자주 시켜 먹는 로제 떡볶이를 주문하고 흐뭇하게 웃었다. 방금까지 기분이 안 좋았는데 길드원들과의 유쾌한 대화와 먹을 생각에 조금 풀렸다.

‘그래, 문정하가 뭔 짓을 하고 돌아다니든 내 알 바 아니지. 그 선배랑 사귀든 말든. 내가 좋다고 했다가 금세 마음이 돌변하든 말든!’

맛있는 거 먹고 풀자. 그리고 이제 문정하는 신경 쓰지 말자. 의식도 하지 말자!

그렇게 몇 번 세뇌하듯 속으로 주문을 외우니 편해졌다.

노트에 써놓은 조합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 판은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 두 번째 판이 모험이었다. 다들 재미로 하자고 해 주어서 다행이긴 한데 방어형으로 조합을 짠 건 처음이었으니까. 게다가 탱커가 주캐인 유저는 도리두리뿐이었다.

‘진짜 모 아니면 도일 것 같은데.’

대박이거나 쪽박이거나.

네 명의 방어 위주 캐릭터가 있으니, 여기서 공격력에 올인한 캐릭터가 있으면 좋을 듯싶어 잠깐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사실 머릿속에서 그게 가능한 인물은 단 하나뿐이었다.

친구 창에 들어가서 게임 중이라고 떠있는 믄님을 노려보았다.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도 있었고, 친하다고 생각했던 믄님에게 거절당하면 민망할 것 같아서 물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 감정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도전을 해 보는 게 좋으니까.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고 이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좋아, 저질러 보자!

[귓말] 염소구더기: 똑똑, 믄님 계세요? ㅎㅎ

[귓말] 믄님: ?

다행히 게임 중이어도 바로 대답이 돌아오는 믄님의 채팅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하지만 섣불리 타자를 칠 수가 없었다.

누가 보면 오바 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믄님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우상이었고, 되고 싶은 워너비였으니까.

[귓말] 염소구더기: ㅎㅎ 부담스러우시면 바로 거부해도 되고 정말 강요는 아니에요.

[귓말] 믄님: ?

[귓말] 염소구더기: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자게 보셨죠?

[귓말] 믄님: ㅇㅇ

[귓말] 염소구더기: 어쩌다보니 위너랑 제가 만든 워너비 길드랑 서로 길드전을 하게 되었는데, 저희 딜러가 부족해서요. 믄님이 함께 해주실 수 있을까 해서…….

대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칼답이었는데 하필 이 타이밍에서 대답이 바로 오지 않는 건 망설이고 있다는 뜻이겠지?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긴급 속보

[길드] 영원한이등병: ????

[길드] 손머리발발: 뭐죠!? 궁금쓰!!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위너에 아직 남아있는 지인이 말하기를 불경한눈깔이 믄님에게 길드전 합류 제안했다고 하네요. 거너 코스튬 제작해준다는 파격적인 제안과 함께.

[길드] 영원한이등병: 믄님을? ㅋㅋㅋㅋㅋㅋ도랏ㅋㅋㅋㅋㅋㅋㅋ 우리 같은 길드에 왜 그런 고급 인력을…

[길드] 초팡: 쫄았쥬~?

[길드] 잔팡: 오, 믄님하고는 한번 붙어보고 싶네

[길드] 오메가원: 그거 아니야…….

[길드] 영원한이등병: 저도 시러…ㅎ 기본 10데스 일 듯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길마님 어쩔래요? 믄님한테 우리도 연락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

속으로 욕이 나왔다. 하필이면 불경한눈깔도 믄님에게 집적거리고 있었다니! 불경한눈깔과 똑같은 짓을 하며 믄님을 귀찮게 했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몰려왔다.

이렇게 되면 100% 거절당할 게 뻔해서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길드원들에게 알렸다.

[길드] 염소구더기: 이미 망한 듯

[귓말] 믄님: ㅇㅇ

순간 잘못 봤나 싶어서 서둘러 믄님에게 보냈던 귓속말을 올려다보았다. 분명히 제 마지막 채팅은 길드전에 함께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긍정의 대답을 했다.

긍정……?

“미친!”

나는 서둘러 입을 막았다. 막지 않았으면 옆집에서 뭐라고 할 정도로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믄님이 함께 해 주신대! 할렐루야!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역시 안되려나…….

[길드] 염소구더기: 이미 망한 듯

[길드] 염소구더기: 위너 놈들이!

[믄님 님이 길드에 가입하였습니다.]

[길드] 믄님: ㅎㅇ

사람은 너무 놀라면 반응이 없다고 했던가. 그렇게 말이 많던 길드원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침묵을 지켰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믄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자세히봐도잘생김이었다.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와, 믄님. 어떻게 저한테 말도 없이 이렇게 불쑥? 제가 같이 가자고 할 때는 묵비권이셨잖아요.

[길드] 믄님: ㅇㅇ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근데 염소님 말에는 바로 와주신 거에요?

[길드] 믄님: 주인이 초대를 해야 들어올 수 있지

[길드] 믄님: 친분 있다고 민폐 끼치기 싫었음

[길드] 염소구더기: 친분……! 믄님이 나한테 친분이 있대! 그런 민폐는 제발 끼쳐주세요ㅠㅠㅠㅠㅠ 진짜 너무 감사해요, 믄님 ㅠㅠㅜㅠ

[길드] 믄님: ㅋㅋㅋ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와, 차별 너무해. 같은 거너 라인이라고 잘해주시네.

[길드] 초팡: 믄님 안녕하세용! 영상으로 많이 봤지만! 히히. 이렇게 얘기 나누니 영광입니당

[길드] 믄님: ㅎㅇ

[길드] 잔팡: ㅋㅋㅋㅋ안녕하세요. 적으로 만나길 바랐는데 조금 아쉽기도 하네요.

[길드] 믄님: ㅋㅋㅎㅇ

[길드] 영원한이등병: 와 ㅠㅠㅠ대박. 워너비 길드 수준 미2쳐ㅆ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안녕하세요, 믄님ㅠㅠㅠㅠ

[길드] 오메가원: 안녕하세요 (후덜덜

[길드] 손머리발발: 잘 부탁드립니다!!

[길드] 도리두리: ㅎㅇ

여기서 유일하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인사를 하는 도리두리가 더 굉장해 보였다. 모두 더쎄 초창기부터 꾸준히 랭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믄님을 실제로 마주하고 당황하고 있는데 저렇게 태연한 반응이라니.

밖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 카드를 들고 나가 떡볶이를 받아 오고 그대로 바닥에 두고 방치시켰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떡볶이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지금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문정하가 지금 연락을 해도 신경 쓰지 않을 자신이 있을 정도로.

[길드] 염소구더기: 믄님, 길드전 두 번째 판이 방어 위주로 구상했는데 거기서 유일한 딜러로 들어가 주실 수 있나요……? 부담스러우시면 거절해도 괜찮아요!

[길드] 믄님: ㅇㅇ

[길드] 영원한이등병: 도랏멘. 세상 든든하다. 나 지금 너무 좋아서 기절할 것 같아, 오메가 형님.

[길드] 오메가원: 이미 기절함

[길드] 초팡: 와!! 믄님이랑 같은 팀이다! 부럽지, 잔팡놈아!

[길드] 잔팡: 나도 두 번째로 옮길래

[길드] 염소구더기: ㄴㄴ 길마 권한임ㅎ

[길드] 잔팡: ㅡ.,ㅡ

[길드] 염소구더기: 믄님 정말 감사해요ㅠㅠㅠ 사랑합니다 ㅠㅠㅠㅠㅠㅜ

[길드] 믄님: ㅋㅋㅋ

잔팡을 가볍게 무시하며 믄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날리니 특유의 시니컬한 웃음이 따라붙었다.

[길드] 염소구더기: 지금 떡볶이 배달왔는데 눈에 들어오지도 않음ㅠㅠ 내 눈에는 믄님뿐이야

[길드] 초팡: 떡볶이 불엇!! 먹엇!!욧!!

[길드] 염소구더기: 그치만ㅠㅠㅠ 지금 내 눈을 돌리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길드원, 개나소나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황급히 휴대폰을 보았다. 다른 연락은 없었다. 물론 내가 답장을 안 하고 씹은 거이기는 하지만.

너 지금 조별 과제 한다고 밖이라며? 응? 밖이라며?

차마 묻지 못하는 말이 목구멍을 맴돌았다.

[길드] 개나소나: ㅎㅇ 길드가 북적북적하네

[길드] 초팡: ㅋㅋㅋㅋ개소님, 하이!! 빨리 오셨네요?

[길드] 개나소나: 네가 빨리 오라며

[길드] 초팡: 희희

[길드] 염소구더기: ?

[길드] 잔팡: ?

[길드] 잔팡: 둘이 번호 교환함?

[길드] 초팡: ㅇㅇ 내가 개소님 번호 땀!

[길드] 잔팡: 야이씨; 함부로 번호 주고받지 말라니까. 배불뚝이 이상한 아재면 어쩌려고

[길드] 초팡: 프사 존잘이던데?

[길드] 개나소나: ㅋㅋ

[길드] 염소구더기: 왜 교환했는데?

헛. 아니, 이게 아니라!

저도 모르게 나온 말에 서둘러 채팅을 이어 붙였다.

[길드] 염소구더기: 둘이 많이 친해졌나 보네ㅎ

[길드] 초팡: ㅋㅋㅋㅋㅋ 제가 친해지고 싶어서 들이댔어요! 뭐 물어볼 것도 있었구

[길드] 염소구더기: 아하ㅎㅎ

[길드] 잔팡: 길마, 왜 갑자기 어색하게 웃음?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질투하나 보죠. ^^

[길드] 믄님: ?

[길드] 개나소나: 질투해?

어쩐지 마지막 저 질문에 묘한 기대감이 담겨있는 것 같은 건 내가 예민해서 그런 거겠지.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서둘러 시선을 돌리니 화면 위에 뜨는 이름, 개소.

[개소: 생각보다 일찍 헤어지고 피방 왔는데, 지언이도 게임 중이야? ㅎㅎ]

[나: 왜 이렇게 일찍 헤어졌어요? 과제는요?]

[개소: 남친한테 연락 와서 먼저 가겠다고 해서 보내줬어.]

[나: 남친?]

분명히 손지우가 문정하를 좋아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선배라고 했는데? 의아한 전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짧은 시간에 남자 친구를 새로 사귄 건지, 아니면 손지우가 나를 놀린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데이트나 썸은 아니라는 거구나.

미묘하게 풀어지려는 입꼬리를 다시 단단히 잠갔다. 그래봤자 여자 길드원이라고 헤벌쭉해서 초팡이한테 바로 번호를 뿌린 가벼운 놈일 뿐이었다.

정신 차려, 손지언!

[개소: 응ㅎㅎ 얼마 전에 생겼다더라. 남은 건 손지우 시키려고.]

[개소: 저녁은 먹었어?]

[나: 네, 지금 먹으려고 떡볶이 시킴요.]

[나: (첨부파일)]

탁자 위에 있는 떡볶이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질투하냐는 개나소나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자 길드원들이 진짜냐고 난리가 났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휴대폰만 노려보며 답장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문정하에게서 답장이 왔다. 시원시원한 칼답이었다.

[개소: 맛있겠다. 나도 지언이랑 같이 먹고 싶은데.]

[나: 형도 떡볶이 좋아해요?]

[개소: 좋아해.]

미친, 대답을 해도 왜 저따위로 해.

괜히 열이 올라 뜨끈해진 뺨을 만지며 인상을 확 찌푸렸다.

여우 같은 놈! 초팡이도 이런 식으로 꼬셨겠지!

씩씩대면서 답장을 했다.

[나: 먹고 싶으면 형도 오던가.]

[길드] 개나소나: 나중에 다시 들어옴

[길드원, 개나소나 님이 접속 종료하였습니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개나소나가 접속 종료를 했다는 알림이 떴다. 설마 진짜 오나?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딱 맞아서 눈을 깜빡였다. 메시지는 읽음 표시가 되어있었다.

나는 탁자 위에 있는 포장 용기를 열었다. 모락모락 나는 김이 얼굴을 가득 감싸며 후끈거렸다.

그래, 얼굴이 붉어진 것은 이 열기 탓일 것이다, 분명히.

“…….”

열었던 용기를 다시 닫았다. 지금은 너무 뜨거우니까 조금만 식혀서 먹자.

저도 모르게 현관문 쪽으로 시선이 갔지만 이내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절대 문정하가 올까 봐 기다리는 건 아니었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개소 형님, 오자마자 어디 가심? ㅠㅠㅜ

[길드] 초팡: 보고 싶은 님 보러 가셨나? ㅎ

[길드] 염소구더기: 알게 뭐야

[길드] 초팡: 에이, 개소님이랑 친하면서! 그럼 저희 2번 순서는 연습하러 갈게요!! 갑시다, 맴버들!!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제가 초대할게요

[길드] 초팡: 넹~ 가자, 오메가 애기야!

[길드] 오메가원: 네네 (자포자기

[길드] 영원한이등병: 다녀오세요ㅋㅋㅋㅋㅋㅋ 저희도 한 판 돌릴까요?

[길드] 염소구더기: 나는 저녁 좀 먹고 오겠음

[길드] 영원한이등병: 그럼 저는 렙업 좀 하고 있을게요! 좀 이따 봐요

[길드] 염소구더기: ㅂㅂ

순식간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길드원들이 흩어졌다.

도리두리처럼 솔플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길드전을 대비해 정식으로 파티를 맺어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행히 믄님도 자세히봐도잘생김이 있어서 그런지 별다른 거북함 없이 참여하는 기색이었다.

잔팡은 본캐로 길드 좀 다녀온다며 접속을 종료하니,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떡볶이를 노려보며 화면 속에서 멀뚱히 서 있는 거너를 노려보았다.

‘자취방에서 먼 곳에 있나?’

배고픈데 그냥 먹고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래도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고개를 젓다가도 또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온다고 대답을 한 것도 아닌데 왜 바보처럼 기다리고 있나 싶어서.

‘손지언, 너 왜 이렇게 병신같이 굴고 있어?’

누가 보면 마치 좋아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줄 알겠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다. 남자를 연애 상대로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렇게 질색하던 상대와 연애를 생각하려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문정하와 다정히 손을 잡는 모습? 그건 이미 해봤고. 그럼 입을 맞추는 건? 내 위에 올라타서 미소를 씩 지으며 가까이 다가오는 문정하의 잘난 얼굴을 생각하니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입맞춤은 한 적도 없는데 왜 이렇게 실감 나게 상상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초인종이 울렸다. 다급하게 일어난다고 다리를 살짝 삐끗해 발목을 한 바퀴 돌리며 밖을 내다보았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잘생긴 놈이 숨을 고르며 앞머리를 뒤로 넘기고 있었다.

앞머리를 깐 모습은 처음 보는데……. 웃고 있지 않은 얼굴은 차가워 보였지만 동시에 지독히도 잘생겼다.

내가 문밖의 놈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인정해야겠다. 나는 지금 저놈이 미친 듯이 신경 쓰였다.

“진짜 왔네요.”

문을 열어주며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물으니 문정하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제대로 고르지 못해 거친 숨이 그가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나도 문정하도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너랑 떡볶이 먹고 싶어서?”

“돈도 많으면서.”

“그래도 지언이랑 같이 먹을 시간을 돈으로 살 수는 없잖아.”

“엄청 오그라드는 멘트인 거 알죠?”

“사실인데.”

“뻔뻔한 게 매력 있으시네요.”

농담 반, 비꼬는 의도 반으로 장난스레 말하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는데 들어오지 않고 문 앞에 멀뚱히 서있었다.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드니 귀와 목이 벌겋게 달아오른 문정하가 그답지 않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목 뒤를 매만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쑥스러워하는 눈치.

순간 할 말이 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는데, 덩달아 내 얼굴도 열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런 말로 서로 부끄러워하는 사이였다고!

“아, 민폐니까 얼른 들어와요!”

손목을 잡아 이끌며 안으로 데리고 왔다.

문이 닫히고 신발을 벗고 들어온 그는 주섬주섬 탁자 앞에 앉았고 나는 더 세이렌 화면이 켜져있는 노트북을 문정하가 보기 전에 덮으며 옆으로 치워냈다.

“게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요. 다들 저녁 먹을 시간인데요, 뭘.”

“아직 한 입도 안 먹었네.”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뜯지도 않은 나무젓가락을 힐끔 보며 묻는 말에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떡볶이 안에 있는 치즈가 이미 굳고도 남았을 테지만, 불량이라고 해야지.

임해서가 알았다면 인성이 역시 끝내준다며 엄지를 치켜들 만한 생각이었다.

문정하는 하나밖에 없는 나무젓가락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얼굴을 붉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도 같아서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먹여줄 생각 없고 수저 많으니까 걱정 마세요.”

“아쉽네.”

“뭔가 오해하시는데, 저희 커플 아닙니다. 그냥저냥 좀 친한 형, 동생 사이거든요?”

“헐.”

“왜요?”

“아니, 지언이 네 입에서 친하다는 말이 나와서 조금 감동했어. 오늘 내 생일이야? 떡볶이도 먹으러 오라고 하고 친하다고 말도 해 주고.”

“…….”

누가 들으면 집에 진수성찬이라도 차려놓고 돈다발이라도 안겨준 줄 알겠다. 나는 잔뜩 들뜬 문정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원래 재수 없는 이미지가 강했지, 이렇게 바보 같은 이미지는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젓가락 하나를 더 꺼내와 그의 손에 손수 쥐여주었다. 문정하는 그 조금 닿은 것에도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움찔거렸다.

“제발 의식 좀 하지 말아 주실래요? 부른 거 후회되려고 하니까.”

“나도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은 처음이라서 적응이 어렵네.”

“그런 것도 제발 속으로 생각해요. 보통 그런 말 내뱉는 거 엄청 부끄럽지 않아요? 형 머릿속에는 부끄러움도 없어요?”

“지언이로 가득 차있지.”

“와, 거긴 지옥인가.”

문정하가 기분 나쁜 기색도 없이 웃었다.

뭐가 저렇게 웃긴 지 모르겠는데, 진심을 농담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연애하면 오그라드는 멘트도 잘하는 스타일일까.

떡볶이를 먹기 시작하는데, 문정하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눈웃음을 지었다.

무표정으로 있으면 차가워 보이는데 웃으니 인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게 손지언 한정이라는 게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먹을 만하네요.”

“그런 것 치고는 얼굴이 행복해 보이는데.”

“착각이에요, 착각.”

“왜 이렇게 귀여워?”

“왜 이렇게 시력이 안 좋으세요?”

“저번에도 그 말 들은 것 같은데.”

“형이 자꾸 이상한 소리 하니까 그렇죠. 형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걸 몸소 체험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습니다.”

“튼튼한 나무네. 다른 사람한테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테니 다행이다.”

“형한테도 안 흔들릴 텐데?”

“그런가. 이미 흔들리는 것 같은데.”

떡 한 개를 입에 넣으며 생각 없이 옆을 쳐다보는데, 먹지도 않고 빤히 쳐다보는 문정하와 눈이 마주쳤다.

아, 순간 당황해서 뱉을 뻔했네.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하세요?”

“별로 당당하지는 않은데. 내 바람일 뿐이야. 강요할 생각도 없고.”

“그런 말 하는 사람치고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엉덩이가 제 쪽으로 다가오는데요?”

“…….”

“말없이 웃지 마세요. 더 무서우니까. 그리고 또 불필요한 스킨십 하지 마세요. 저 진짜 떡볶이만 먹으라고 부른 거니까.”

어느샌가 바짝 붙은 몸과 가까워진 능글맞은 미소에 정색하며 손바닥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러자 일부러 그 손바닥에 입술을 가져다 대더니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췄다.

“아, 형! 미쳤어요!?”

“응, 미쳤나 봐. 너한테.”

“제가 그런 소리에 질색하니까 일부러 더 그런 말만 하는 거죠!! 아오, 저도 그렇지만 형 성격 진짜 나쁜 거 알아요? 저 좋다면서요? 그럼 좀 다정하게 대해줘야지!”

“다정한 거 좋아해?”

문정하가 그리 묻고는 이내 혼잣말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씩씩거리며 젓가락을 탁자 위에 놓고 그의 입술이 닿았던 손바닥을 바지에 슥슥 문질렀다.

오냐오냐해 주니까 자꾸 계속 들이대지!

사실 곱게 받아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나는 뻔뻔했다.

“다정하게 대해 주면 나랑 만나줄래?”

“형은 돈도 많고, 얼굴도 잘났으면서 왜 저한테 이래요? 그냥 형 좋다는 사람 만나요. 저 연애 관심 없고 형이랑 연애하면 혈압 오를 것 같으니까.”

“연애하면서 혈압도 좀 오를 수 있지.”

“…무슨 연애가 그래요?”

“너랑 내가 할 연애?”

“요즘 호감이시다가 다시 비호감 되신 문정하 선배님. 그냥 돌려보내기 전에 적당히 하세요.”

“비호감이면 더 이상 나빠질 이미지도 없는 김에 한 번만 더 말할게. 나 여기서 거절당하면 이제 너한테 그만 들이댈 거야.”

본인이 들이댄다는 자각은 있으니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번 고백이 마지막이라고?

솔깃한 말에 당연히 바로 거절하려고 눈을 반짝였다. 예의상 5초 정도 고민하는 눈치를 하다가 바로 거절을…….

“내가 싫은 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가 무서워서 그런 거라면 내가 천천히 다가갈게. 갑자기 날 좋아해야 한다고 부담 가질 필요도 없어. 그냥 지금처럼 옆에 있어도 좋아. 사람들이 불편하면 집에서만 데이트해도 좋고.”

“…지우 형한테 뭐 들었어요?”

“아니. 하지만 네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불편해하는 건 눈에 보여.”

그래, 단순히 사교성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사람들과 관계성이 깊어지는 게 꺼려질 뿐이지. 지독한 집돌이이기도 하고 괜히 타인에 의해 상처받는 게 두려울 뿐이고.

학창 시절 때 친하게 지내던 무리가 뒤에서 내 흉을 본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일까.

당연히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 신뢰를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문정하의 직설적인 말에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저는 제 일상에 터치하는 것도 싫고 타인의 일상에 터치하는 것도 싫어요. 무조건 뭔가를 같이 해야 한다고 억압받는 것도 싫고요.”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투덜거리듯 내뱉는 말을 문정하는 그저 잠자코 들어주었다.

어쩌면 개나소나로서 그의 트라우마를 듣게 돼서 그런 걸까. 그의 비밀을 들었으니 내 비밀도 조금쯤은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형을 무조건 믿고 신뢰할 생각도 없어요. 그렇다고 무조건 오해할 생각도 없지만. 그냥 지금이 좋아요. 적당히 농담하고 웃을 수 있는 관계.”

문정하의 말대로 그가 싫은 건 아니었다. 정말 싫었다면 불필요한 스킨십에 정색하고 집 안에 들여보내지도 않았겠지.

연애를 거부한 것도 상대가 정신적으로 필요 이상의 깊은 관계를 희망할까 봐 꺼렸던 거니까. 하지만 문정하는 그런 내 속을 엿본 것처럼 걱정하던 부분을 짚고 들어왔다. 부담스러워하지 말라며.

그럼 내가 문정하를 거부할 이유는 또 뭐가 있지?

거절하려고 했는데 거절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거절한 뒤, 더 이상 가깝게 다가오지 않을 문정하의 모습이 벌써부터 낯설었다.

부담스러워진다면 그때 다시 멀어져도 괜찮지 않을까.

내 손바닥이 다시 뻗어져 문정하의 입술에 가볍게 닿자 문정하는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은 생각 이상으로 더 달아올라 있었다.

“지금이랑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요. 그래도 좋아요?”

“응. 네가 이렇게 가끔이라도 먼저 다가오는 일만 있다면 뭐라도 좋을 것 같아.”

손바닥을 감싸는 커다란 손. 손바닥 안쪽, 손목을 따라 입을 맞추는 문정하는 퍽이나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영화처럼 강렬한 첫사랑도 아니고,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아련한 사랑도 아니었다. 이 감정이 사랑인지 단순한 호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정하가 상관없다고 했으니 그의 옆에서 조금 더 지켜봐도 괜찮지 않을까.

길드원들이 열심히 렙 업을 하며 실력을 키우고 있을 때, 길마는 인생 첫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편, 그 시각 길드원들은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둘의 잠수에 평소처럼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사라진 워너비 길마를 찾습니다. <<특징: 과거 랭커, 인맥쩌름, 위너 탈주자.>>

[길드] 오메가원: 우리 애가 저녁을 먹으러 간다고 했다가 돌아오지를 않아 흑흑

[길드] 초팡: ㅇㅅㅇ~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여기는 길마가 제일 여유롭네요? ^^

[길드] 영원한이등병: ㄷㄷ 자잘님, 화난 거 아니쥬?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저 웃고 있는데요? ^^

[길드] 영원한이등병: 웃는 게 더 소름… 아니, 무섭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말실수인 척, 할 말 다 하는 게 좋네요. :)

[길드] 영원한이등병: 잘못했습니다 ㅠㅠㅠㅠ 무서우니까 제발 그만!

[길드] 초팡: 길톡 하나 파면 좋을 것 같은데ㅇㅅㅇ 다들 부담스러우려나? 초팡이 혼잣말이니까 무시하셔도 됩니다~

[길드] 오메가원: 혼잣말을 이렇게 대놓고? ㅎ

[길드] 초팡: 웅>< 다들 별루야?

[길드] 영원한이등병: 나는 괜춘!!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오픈 챗 만들어서 하면 되니까 개인정보 유출도 걱정 안 해도 될 듯요.

[길드] 영원한이등병: 오, 웬일로 웃음 표시를 안하네요?!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

[길드] 영원한이등병: ㅎ… 초팡 누님 아까 뭐라고 했더라?

[길드] 초팡: 말 돌리는 척 초팡이 팔아먹기? ㅇㅅㅇ

[길드] 초팡: 그보다 개소님도 잠수 타고 길마님도 잠수인데ㅋㅋㅋㅋ 둘이 같이 밥 먹는가?

[길드] 영원한이등병: 설마ㅋㅋㅋㅋㅋㅋ 아, 근데 가능성 있긴 할지도? 길마님도 아까 보니 좀 신경 쓰는 것 같던데?

[길드] 오메가원: 그린 라이트?

[길드] 영원한이등병: 예스, 그린 라이트!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염소님이랑 개소님 사귀어요??

[길드] 초팡: ㄴㄴ 정확히는 개소님 혼자 짝사랑! 인데 약간 느낌상 가능성이 있을 듯? 실제 좋아하는 게 현실판 염소님인데

[길드] 초팡: 개소님은 염소=짝사랑분, 인 걸 알고 염소님은 개소=고백남, 인 걸 모르는 듯

[길드] 영원한이등병: 나 드라마 안 좋아하는데 이 집 드라마 팝콘각인 듯

[길드] 오메가원: 풋풋할 때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오메가 형님은 안 풋풋해요? ㅋㅋㅋㅋㅋㅋ

[길드] 오메가원: 결혼하면 이제 정으로 사는 거임ㅎ

[길드] 초팡: 일단 길마님이 연어하면 안되니까

[길드] 초팡: 올려

[길드] 초팡: 올렷!

[길드] 초팡: 가버렷!

[길드] 오메가원: 가긴 뭘 가!!

[길드]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놬ㅋㅋㅋㅋ진짴ㅋㅋㅋㅋㅋㅋ 이제 오메가 형님한테 잘 보이는 거 포기한 초팡 누님 폭주임ㅋㅋㅋㅋㅋㅋ

[길드] 오메가원: 조폭임. 이제 앞으로 초폭이라 부르삼

[길드] 초팡: 모야모야, 애칭 귀여오!

[길드] 오메가원: ……ㅠ 나 쟤 무서워

영양가 없는 얘기들을 나누며 즐거워하는 이들을 보던 자세히봐도잘생김은 찬물을 끼얹는 기분이었지만, 일단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그도 딱히 남 눈치는 보고 사는 인물은 아니었으니까.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궁금해서 그러는데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길드전은 그냥 엔조이인가요? ^^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믄님은 솔직히 승패에 별로 관심 없으실 것 같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인가 싶어서

[길드] 초팡: ?

[길드] 영원한이등병: ?

[길드] 오메가원: ?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

[길드] 영원한이등병: 이왕 할 거면 다 썰어버려야쥬

[길드] 초팡: ㅇㅇㅇ 마자요! 1승은 가져와야죠!

[길드] 오메가원: 믄님이 있는 판은 이기지 않을까 싶음.

[길드] 초팡: 아싸~ 난 믄님이랑 같은 팀~

[길드] 초팡: 근데 뒷북이지만 거기 놈들 우리한테 길드전 신청 왜 하는 거임?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제가 초창기부터 있던 길드원한테 들었는데, 위너 현재 길마가 꾸준히 염소님한테 시비를 걸어오셨더라고요.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뒤에서 뒷담도 많이 한 모양이고

[길드] 영원한이등병: 헐?

[길드] 초팡: 진상이네? 지가 먼데?

[길드] 초팡: 킹받네?

[길드] 오메가원: 나왔다, 초폭!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자세히봐도잘생김의 말에 순식간에 장난스럽던 분위기가 열기를 더했다.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쌍방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괴롭힘을 받았다, 이거지?

원래 싸움은 한쪽 말만 들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불경한눈깔의 의견 따위는 필요 없었다.

만약 이 길드전에서 진다면 염소구더기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분위기는 더 강해질 것이다.

[길드] 믄님: 이겨야지

믄님의 말에 대답은 없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길드원들 모두가 뜻이 같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 *

연애를 시작해도 염소구더기인 걸 알려줄 생각은 없어서 문정하가 있을 때는 게임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길드전을 위해 게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 혼자 있기를 희망하자, 문정하는 의외로 순순히 돌아갔다.

‘칭얼거리면서 옆에 있게 해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물론 달라붙었어도 매몰차게 거절할 생각이기는 했지만, 너무 쿨하게 떨어져 나가니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길드원, 염소구더기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연애를 시작한 당일 밤, 게임에 다시 접속했다.

그런데 도리두리를 제외한, 낮에 봤던 일행들이 아직도 접속해 있었다.

설마 중학생인 영원한이등병도 아직 하고 있을 줄은 몰라서 놀라고 있는데 길드 채팅에서 기다렸다는 듯 인사들이 쏟아졌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드디어 떴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길드] 염소구더기: ?

[길드] 영원한이등병: 점심을 하루 종일 먹어요?!

[길드] 염소구더기: 아니, 갑자기 왜 성질을…….

[길드] 영원한이등병: 쪽지함에 오픈 챗 주소 보냈으니까 바로 드루와요. 막내 길마님이랑 개소 형님 빼고 들어와 있음.

[길드] 염소구더기: 오픈톡? 설마 길드 톡?

[길드] 영원한이등병: ㅇㅇㅇㅇ 빨리 들어와요. 저 엄마한테 들키면 죽음이라서 길마님 들어오는 거 확인하고 바로 잘 거란 말이에요!

갑자기 왜 길드 톡을 만든 거지.

계속되는 재촉에 황당하면서도 일단 쪽지함을 열었다. 주소만 덩그러니 담겨 있는 쪽지의 발신인은 영원한이등병이다.

게임 화면을 내려놓고 주소를 복사해 입력하니 오픈 채팅방이 뜬다.

나는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염소’라는 이름으로 들어갔다.

[이등병: 왔다! 막내 길마님!]

[염소: ㅎㅇ 갑자기 길톡?]

[이등병: 저 일단 자러 갑니다. 남은 분들이 설명 좀! 뿅!]

요란스럽게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멤버를 확인했다. 도리두리, 초폭, 오메가, 자잘, 믄님, 개소. 초폭이랑 자잘은 또 누구인가 싶어 인상을 찌푸리다가 이미 들어와 있는 개소를 보고 미간을 구겼다.

개소라면 설마 내가 아는 그 개소? 몇 시간 전에 내 애인이 된 그 새끼?

문정하는 내가 고백을 받아주자마자 기습적으로 포옹을 했다. 숨도 못 쉬게 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꽉 끌어안던 걸 생각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게임도 안 했는데 어떻게 초대를 받은 거야.

[초폭: 하이! 초팡이입니다!]

[염소: ㅎㅇㅎㅇ 개소도 있네]

[초폭: 넵, 제가 톡디가 있어서 들어오라구 했어용]

그러고 보니 초팡이랑 연락처를 공유했다고 했던가?

은근한 불쾌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여간 조신하지 못한 개나소나 같은 놈.

[개소: ㅋㅋㅋㅋㅋㅋㅎㅇ]

양반은 못 되는 놈이었다. 방금까지 고백을 받아준 감사한 애인도 못 알아보고 웃는 꼴이라니. 콧방귀를 뀌며 인사를 가볍게 무시하는데 초팡이 말했다.

[초폭: 길드전 연습 시간 정해서 확실하고 빡세게 해야 할 것 같아서 길톡 팠어요. 잔팡이도 곧 초대할게요.]

[염소: 확실하고 빡세게……?]

[초폭: 넹! 길마님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어버렸으니 봐줄 수 없죠! 감히 우리 워너비의 얼굴을 무시하다니!!]

[염소: ㅎ;;]

[자잘: ^^]

말은 없었지만, 이모티콘만 봐도 자잘은 자세히봐도잘생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줄임말이었구나.

‘그보다 왜 갑자기 애들이 급발진으로 열을 올리는 거지?’

내가 없는 사이에 설마 또 위너 길드가 시비를 걸었나 싶어서 걱정이 됐지만, 오픈 채팅방이 만들어진 이유를 설명해 주는 이는 없었다.

이후에 초대된 잔팡이도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초팡이의 오더에 잘 따라주었고.

내가 없던 사이에도 길드전 준비는 무섭도록 착착 준비되어 가고 있었다.

* * *

“너희 길드전 한다며. 죽었던 자게가 너희들 얘기로 핫하던데?”

새벽까지 렙 업을 위해 게임을 하느라 머리를 감지 못해 모자를 눌러쓰고 등교한 나는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했다. 강의를 무슨 정신으로 들었는지 모르겠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시간에 멍청한 얼굴로 있는데 임해서가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황보욱이 머리도 안 감고 나왔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가볍게 가운뎃손가락을 날려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엉. 눈깔 놈이 먼저 시비 털었어.”

“요즘 위너에 양아치 많다더니 길마가 문제였네. 근데 내부에도 무슨 문제가 있던 모양인지, 초창기부터 있던 랭커들 대거 빠져나갔던데?”

“진짜??”

“엉. 탱커 잘하던 투제로 님이랑 해그늘 님 나가셨다고 들었고. 아마 끼리끼리 놀고 자리에 없는 사람 은근히 험담하는 게 많아서 인성 쓰레기들만 남는다는 소문이 사실인 듯.”

해그늘은 원래 위너 소속이었을 때부터 성격이 좋은 유저였다. 누가 시비를 걸어도 욕은 절대 하지 않고 정말 게임이 좋아서 묵묵히 하던 사람.

큰 친분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 쓰레기 소굴에서 나왔다고 하니 기분은 좋네. 투제로도 저번에 이벤트전에서 붙었을 때 시비 거는 불경한눈깔을 말리다가 부모 욕까지 들었던 사람이지.

“길드원 대하는 꼴이 그 모양이니 당연히 나갈 수밖에 없겠지.”

“그래, 나온 사람들의 제보를 들어보면 상습범이더만. 요즘 게임을 누가 그렇게 더럽게 해? 지금 랭커도 빠져나가고 소문도 안 좋은데 길드전에서 신생 길드한테 발린다?”

임해서가 허공에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며 씨익 웃었다.

“완전 제대로 아웃이네. 랭킹 1위에서 쭉 미끄러질 듯.”

그 말에 나도 씨익 웃었다. 이길 자신은 없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가장 완벽한 복수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위너만 믿고 설쳐대던 놈이었으니, 본인으로 인해 망치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미리 축하 기념으로 점심에 고기 콜?”

“헛소리하지 말고. 나 오늘 점심 선약 있어.”

“헐. 지언이 너 친구 없잖아!”

아니, 이 새끼가? 이렇게 대놓고 사실을 말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서 그대로 헤드록을 걸어 버리니 아프다며 징징거렸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황보욱이 물었다.

“점심 누구랑 먹는데? 문정하 선배님?”

“아, 지우 형이랑도 같이 먹어? 그럼 나도 같이 가자!”

“아냐. 형은 안 가고 문정하 형이랑만 가는 거야.”

“둘이?”

임해서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황보욱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말없이 시선을 회피하니 황보욱이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작은 소리로 물었다.

“너 설마 선배님이랑 잘되고 있어? 썸?”

“헐. 진짜로?!”

“아, 좀 조용히 해라. 둘 다!”

“아니, 손지언! 빨리 말해! 진짜야?! 리얼?! 너 원래 그 선배님 엄청 거북해하면서 싫어했잖아!”

“과거형이야. 지금도 조금 귀찮긴 하지만.”

굳이 따진다면 시비를 걸어서 귀찮은 게 아니라 은근 스킨십이 늘어서 그걸 막아내느라 귀찮아진 거지만.

그런 내 생각을 알 리가 없는 둘에게 귀찮게 하지 말라며 손을 내젓고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개소: 내가 데리러 갈게.]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짐을 싸고 멀뚱히 앉아있는데 먼저 일어나던 둘이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뭐해? 점심 먹으러 나간다며?”

“데리러 오기로 했어.”

“여친 데리러 오는 남친도 아니고 같은 학교인데 뭘 데리러 와. 너 진짜… 그린 라이트?”

“…….”

“우기우기, 쟤가 부정을 안 해!”

“너까지 우기우기라고 하지 마. 선배님 오셨네.”

황보욱의 향하는 시선으로 고개를 돌리니 문정하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옆에서 임해서의 작은 감탄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멍청한 표정을 짓는데 문정하가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동기들을 지나쳐 강의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먹고 싶은 거 생각해 놨어?”

문정하는 자연스럽게 내렸던 앞머리 절반을 뒤로 넘겨 세팅한 상태였다.

가일컷? 언젠가 배우가 한 걸 보고 멋있어서 나중에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문정하는 연예인도 아니고 일반인이면서 왜 저렇게 잘 어울리는 거지.

콩깍지인가 싶어서 눈을 깜빡이는데 임해서가 입을 가리며 내 등을 퍽퍽 내려쳤다.

“대박대박! 선배님, 오늘 더 눈이 부십니다!! 엄청 잘생겼어요! 오늘 소개팅이라도 나가세요??”

콩깍지는 아니고 오늘 문정하가 좀 잘나긴 했구나.

생각보다 센 힘에 인상을 찌푸리는데 순식간에 움직임이 뚝 멈췄다. 뭐지, 싶어서 고개를 돌리는데 임해서의 손목을 잡고 있는 문정하가 보였다.

“아니, 소개팅은 아니고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와. 그 사람 오늘 선배님한테 뿅 갈 것 같은데요?”

“뿅 갔어, 지언아?”

문정하가 임해서의 말을 따라 하며 나를 보며 웃었다. 깔끔한 셔츠에 검정 슬랙스까지 차려입으니 평소와 달리 연상이라는 느낌이 확 다가왔다.

어른스러워. 막상 입을 열면 장난기가 가득하긴 하지만.

“그걸 왜 지언이한… 가자, 우기우기.”

해맑게 웃으며 묻던 임해서가 다정한 문정하의 시선에 상황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문정하가 시선을 줄 때까지 인사를 하려고 기다리던 황보욱을 서둘러 끌고 사라져 버렸으니까.

문정하는 우리가 사귀는 걸 비밀로 할 생각도 없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저 둘은 알아도 상관은 없지만.

꾸미고 나온 문정하의 옆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후드티를 입은 내 모습이 유독 초라해 보였지만, 애써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오후에 약속 있어요?”

오후에는 길드원들이랑 모이기로 해서 점심만 같이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그러니 저렇게 꾸미고 온 이유가 나일 리는 없을 것 같다는 확신에 그렇게 되물으니 발걸음을 맞춰 옆에서 걷던 문정하가 대답했다.

“아니. 나도 집에 바로 갈 거야.”

“그런데 왜 그렇게…….”

“왜 그렇게 뭐?”

“꾸미고 나왔냐고요. 적응 안 되게.”

“지언이한테 잘 보이려고 오랜만에 힘 좀 줬지. 안 이상해?”

“이상해요.”

“얼굴은 보고 얘기해야지, 지언아.”

“아, 밖에서 들이대지 마세요.”

민망함에 시선을 피하고 대답했는데, 문정하가 실실 웃으며 고개를 비스듬하게 꺾어 눈을 마주쳐 온다.

나는 민망함에 그의 얼굴을 뒤로 쭉 밀었다. 밀리면서도 웃고 있는 얼굴이 이상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나를 위해서 저렇게 꾸미고 왔다고 하니 기분이 묘하긴 하다.

이 형은 밀당도 없이 무조건 직진만 하네. 조금 적응이 되려고 하면 또 훅 다가오고.

“손잡아도 돼?”

“아니요.”

“뽀뽀해도 돼?”

“절대 안 되죠.”

“그럼 집에서는?”

“손은 괜찮아요.”

“뽀뽀는 아직이야? 그럼 키스는?”

뒷말은 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귀를 부여잡으니 작게 웃는 모습이 보인다.

일부러 놀리려고 한 듯한 행동에 그를 노려보자 모자 위로 손이 올려진다. 동그란 정수리를 가볍게 쓰다듬는 커다란 손.

“농담이야. 반응이 재밌어서 그랬어.”

“다정하게 대해 준다면서요.”

“이 정도면 다정하지 않아? 내 성격대로 했으면 묻지도 않고 입 맞췄을 텐데. 주변 신경도 안 쓰고 밖에서 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렇구나, 다정함은 상대적인 거였구나.

문정하의 다정함은 상대의 기준에 맞춰 배려를 해 주는 건가 보다. 예시를 들으니 알 것 같기도 해서 해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사귄 지 이제 1일인데 진도가 너무 빠르지 않아요?”

“귀여워.”

“어느 포인트가요?”

“투덜거리면서도 착실하게 연인으로서 해야 할 걸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 무조건 싫다고 할 줄 알았거든.”

아, X발. 역시 저 성격은 적응이 안 돼!

나도 인식하지 못했던 걸 훅 치고 들어오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싫다고 생각할 줄 알았다면서도 반응을 보려고 던지는 문정하나, 그걸 좋다고 덥석 무는 바보 같은 나도 대단했다.

“형은 재수 없음 부분에서 매력도 1위예요.”

“칭찬이야?”

“네. 엄청 칭찬.”

거짓인 걸 알면서도 좋다고 웃는 문정하를 보며 주차장에 있는 그의 차 앞으로 다가갔다.

조수석 문을 열려고 손을 뻗는데 그 위로 문정하의 손이 겹쳐졌다. 손주인에게 왜 그러냐고 물으려 돌아보는 순간, 입술에 낯선 감촉이 닿았다.

“형!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귀여우면 뽀뽀 좀 해줄 수도 있지. 강아지한테도 귀여우면 해주잖아.”

강아지랑 성인 남성이랑 동일선상에 놔두지 말라고요!

입술에 닿았던 문정하의 입술 감촉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사귄다고 해도 예전과 별다른 변화가 없을 줄 알았는데!

“귀엽다.”

애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또다시 다가오자 손지언이 질색하며 그를 밀었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또 한 번 입술 위를 꾹 눌렀다.

왜 이런 건 배려를 안 해주냐고!

“형은 진짜 주변 시선도 신경 안 써요?”

“신경 쓸 성격으로 보여? 나만 좋으면 됐지.”

하긴 주변 시선을 신경 쓸 놈이었으면 개나소나로 그렇게 시비부터 털지는 않았겠지.

한쪽 입꼬리를 비죽 올리고 웃는 모습이 얄미워서 사심을 담아 뺨을 꼬집었다. 물론 타격감은 제로에 가까운 얼굴이었지만.

“저 차에 안 탈래요!”

“왜?”

“뭔 짓을 당할 줄 알고 타요? 진짜 내가 같은 남자한테 이런 걱정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정말 싫어하면 안 해. 밥은 먹으러 가야지.”

본인이 열지 못하게 막았던 문을 손수 열어주며 친절하게 안전벨트도 매주었다.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니 벨트를 매주던 그가 고개를 들어 올리고 눈웃음을 지었다. 기습적으로 다가오는 입술에 서둘러 손으로 입을 막으니 손등에 입술이 닿았다.

놀란 표정에 내가 이겼다는 생각으로 슬쩍 나도 눈웃음을 짓는데 문정하가 작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아, 진짜.”

“형?”

문정하는 입을 막고 있던 내 손을 잡고 아래로 내려 그대로 입을 맞췄다. 지금껏 가볍게 입을 맞추고 뗐던 입맞춤이 아니라 제법 선명하게 다가오는 감각.

나는 긴장해서 어깨를 굳히고 있는데 그는 여유롭게 손깍지를 끼며 고개를 돌려 아랫입술을 빨았다. 야하기 짝이 없는 감각이었다.

키스를 해본 적이 없으니 혀가 들어오지 않은 이걸 키스라고 해야 할지, 뽀뽀라고 해야 할지. 나에게는 너무 큰 자극이라서 울상을 지으니 그제서야 문정하가 입을 뗐다.

“놀랐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손은 잡고 있는 상태여서 그의 시선을 피하고 있으니 문정하가 다시 물었다.

“싫었어?”

글쎄……. 그 말에는 반응할 수 없었다. 놀라기는 했지만, 딱히 싫다는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내 반응에 손등을 은근히 문지르던 문정하가 중얼거렸다.

“큰일 났네. 이런 반응이면 더 하고 싶어지는데.”

“저 이제 순순히 안 당해 줄 거예요.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얼른 자리에 앉아요!”

“알겠어.”

싫다고 하면 목젖이라도 때릴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제법 순순히 운전석으로 향한다.

뭘 먹으러 갈까, 하고 이제야 정상적인 질문을 하는 그에게 생각나는 메뉴를 대충 말하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초반 모습들이 내숭이라고 대놓고 얘기하더니, 사실은 사실이었구나. 개나소나를 알고 있으니 원래 성격도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신선한 놈이었다.

바깥을 쳐다보는 척 턱을 괴면서 입술을 더듬었다.

젠장, 또다시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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