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길드전 (1)
길드전의 아침은 별달리 특별한 건 없었다.
그동안 문정하가 저녁 시간은 양보할 테니 점심은 꼭 같이 먹자고 해서 먹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길드원들과 함께했으니 익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길드] 초팡: 어떡해어떡해 나 떨려 ><
[길드] 영원한이등병: 초폭 누님, 떨리는 척 노노!
[길드] 오메가원: 이등병 지금 손 덜덜 떨리는 거 아니지?
[길드] 영원한이등병: 들킴ㅋㅋㅋㅋㅋ 아니, 왜 그거 있잖아요. 공부 안 한 놈들이 오히려 시험 때 긴장 안 하고 공부한 사람들이 엄청 긴장하고!
[길드] 초팡: ㅋㅋㅋㅋㅋㅋ우리가 좀 열심히 하긴 했지!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열심히가 아니라 미친 수준이 아니었을까요…….
이제는 제법 길드원들이랑 친해진 자세히봐도잘생김도 웃는 이모티콘 없이 편하게 어울리게 되었다. 영원한이등병이 웃는 이모티콘 무섭다고, 그만 쓰라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길드원, 개나소나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길드] 개나소나: ^^
[길드] 초팡: 약 먹은 개소님도 모닝~
[길드] 개나소나: 모닝~^^
[길드] 영원한이등병: 으으, 나 닭살 돋음
[길드] 손머리발발: ㅋㅋㅋㅋㅋ 한창 좋을 때잖아요! 신혼부부보다 더 깨소금 돋는 신생 커플!
[길드] 염소구더기: ㅎㅇㅎㅇ
[길드] 개나소나: ㅎㅇ~
흠, 좋은 반응이다.
이제는 나랑 사귀기로 했으니, 염소구더기가 나라는 걸 맞출 생각은 없어진 모양이다.
영원한이등병의 반응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원래 실없이 잘 웃는 놈이었으니까.
[길드] 염소구더기: 예고했던 대로 길드전은 9시에 매칭 예약되어 있습니다. 사실 지금이라도 거부는 할 수 있지만~ 다들 아시죠?
[길드] 영원한이등병: 남자는 직진이다!
[길드] 초팡: 예이!!
[길드] 오메가원: 넌 남자 아니잖아!
[길드] 초팡: 오늘부터 달아!!
[길드] 오메가원: 뭘!!?
[길드] 믄님: ㅋㅋㅋ
[길드] 염소구더기: ㅋㅋㅋㅋㅋㅋ다들 진정하고 손 풀기로 몇 판 하시고 오세요~ 말했던 대로 9시 시작은 개나소나, 영원한이등병, 잔팡, 도리두리, 염소구더기 출전합니다!
[길드] 오메가원: 갑자기 길마님 존대 사용하는 이유 아시는 분?
[길드] 영원한이등병: 공지봇인가
[길드] 도리두리: ㅇㅇ
[길드] 영원한이등병: 도리두리님, 제 의견에 동조해주신 거에요?!
[길드] 도리두리: ㄴ 길마님 말에 알겠다고 대답한 거
[길드] 영원한이등병: 힝 (쭈글
[길드] 염소구더기: 10시는 믄님, 자세히봐도잘생김, 초팡, 오메가원, 손머리발발. 믄님 제외 전원 방어캐.
[길드] 염소구더기: 11시 타임은 믄님, 잔팡, 염소구더기, 자세히봐도잘생김, 개나소나. 이상 보고 끝입니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다시 봐도 마지막 조합 ㅁ2쳤다;; 길마님 과거 전적 생각해서 랭커 3명에 대형 길드 소속이었던 힐드 1명이라니. 개소 형님 눈치껏 빠져요!
[길드] 개나소나: ^^?
[길드] 영원한이등병: ㅈㅅ;;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그래도 개소님이 전사를 잘하시더라고요. 합도 잘 맞고. 해그늘님 플레이랑 비슷한 듯
[길드] 믄님: ㅇㅇ
해그늘은 지금 탈퇴한 WINNER 길드의 전사 랭커였다. 매너도 좋고 실력도 좋아서 좋아하는 유저들이 많았는데, 믄님이 인정할 정도라면 개나소나가 확실히 잘한다는 거겠지. 마스터는 폼으로 달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건가.
[길드] 초팡: 님들, 디X 들어오세요~ 저 있음
[길드] 염소구더기: ㅇㅇ!
조언을 받았던 것처럼 길드전을 하는 동안은 채팅을 하기가 불편하니 디X를 하기로 했다.
몇 번 시도해 본바 9시 타임의 오더는 도리두리. 10시 타임의 오더는 자세히봐도잘생김. 11시 타임의 오더도 자세히봐도잘생김이 맡기로 했다.
나는 개나소나가 있어서 마이크는 끄고 듣기만 하기로 했다.
접속을 하자 스피커에서 발랄한 여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야호, 길마님이다!
[길드] 염소구더기: ㅎㅇ~
차례대로 길드전에 참여하는 길드원들이 들어왔다.
믄님과 나를 제외한 일행들은 마이크를 켜둔 채 편하게 얘기했다. 다들 느꼈던 이미지 그대로의 목소리와 텐션이라고 해야 할까.
―초폭 누님, 하이!
―이등병도 하이~
영원한이등병과 초팡이는 원래 밝은 성격의 소유자들인 듯했고, 가볍게 인사를 건네는 도리두리는 덤덤한 말투의 여성 유저였다. 여성 유저가 탱커를 하는 일은 좀처럼 드물어서 처음에 여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놀라기는 했지만.
―이제 시간 얼마 안 남았네요.
조금 가벼운 말투를 생각했던 자세히봐도잘생김은 은근히 침착한 어조로 덤덤한 편이었다. 그와 믄님은 길드전 경험이 여기에 있는 이들보다는 많을 테니 긴장하지는 않겠지.
사실 처음에는 9시 오더도 길드전 경험이 있는 잔팡에게 부탁했으나 귀찮다는 말로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개나소나가 있는 곳에서 목소리를 낼 수는 없으니, 도리두리에게 오더를 부탁했다. 도리두리는 시야가 넓어 오더를 잘하는 편이었다.
―지금부터는 게임 들어가지 마세요. 시간 되면 자동으로 초청되는데 게임 중인 길드원 있으면 제외되거든요.
자세히봐도잘생김이 혹시나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봐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현재 시각 8시 45분. 장비템을 한 번 더 점검하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스피커에 들려왔다.
―빨리 길드전 끝났으면 좋겠다.
문정하의 목소리였다.
한숨 섞인 말에 영원한이등병이 왜 그러냐고 묻자 문정하는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
―데이트 좀 오래 하고 싶어서.
―아니, 이 형님 푹 빠지셨네! 그동안 길드전 연습한다고 바쁘기는 했죠.
―맞아. 밤까지 보고 싶은데.
―밤에 무슨 짓을 하려고! 응큼행!
영원한이등병에 이어 초팡이 주접스럽게 말했지만, 정작 문정하는 별다른 반응도 없었다. 오히려 수치스러워지는 건 나뿐이었다.
어떻게 저런 말을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말할 수 있는 거지?
문정하도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나도 길드전에 정신이 팔려서 연애를 시작하고 제대로 된 데이트는 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아쉽기도 하겠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밤까지 보고 싶다니… 그런 민망한 말을!
―글쎄? 무슨 짓을 할까.
초팡이의 말에 문정하가 오히려 맞장구를 치자 나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짓? 입맞춤 말고 더 할 게 있어? 설마 키스라도 하려나? 키스 정도라면 분위기에 취해서 넘어가도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
‘나 은근 분위기에 잘 휩쓸리네.’
키스 정도라면 괜찮겠지. 나는 길드전을 이기면 상이라도 주는 속셈으로 모른 척 받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8시 55분.
불경한눈깔은 미리 방을 만들어 두었고, 길드전에 참여할 멤버들이 그 방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관람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길드전은 관람이 가능해서 주최자의 동의가 있으면 자유롭게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주목받기를 원해서 자유게시판에 올렸던 인물이니,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시나리오였다.
―생각보다 관람 유저가 많네요?
―더쎄 이제 망겜 고인 물이라고 했는데, 고인 물 총집합인가?
초팡이와 오메가원이 말했다.
―그런가 봐요. 이제 시간 다 됐네. 저희 마이크 끌 테니까 힘내세요!! 우리 2승 빠르게 따서 이겨 버립시다!
―화이팅!
혹여나 오더를 하는 도리두리와 사운드가 섞이면 안 되기 때문에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은 빠르게 마이크를 꺼 버렸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땀으로 젖은 손을 바지에 문지르고 있는데 불경한눈깔이 전체 채팅을 쳤다. 참고로 채팅도 관람 유저들에게 모두 공개되고 있었다.
[전체] 불경한눈깔: 용케 도망 안 가고 왔네? 이건 좀 칭찬해 줘야 할 듯~?
[전체] 공공칠파라팡: 인정ㅋㅋㅋㅋ 자잘도 배신하고 거기 붙고 믄님도 잘 꼬셨나 보네? 워너비 길마 여자임? 뭘로 꼬신 거? ㅋㅋㅋㅋㅋ
수준 한 번 알 만하네.
자세히봐도잘생김이 탈퇴 후 워너비 길드에 합류하고 그토록 들어오기를 희망했던 믄님도 여기에 붙으니 배알이 꼴린 모양이었다.
가볍게 무시하고 그제야 공개된 적군을 확인했다.
불경한눈깔: 거너(원딜/바람)
공공칠파라팡: 마법사(원딜/물)
탈모저주: 전사(근딜/불)
체크무늬혈압: 무투가(탱커/불)
톨쿨: 힐러(힐러/빛)
염소구더기: 거너(원딜)
개나소나: 전사(근딜)
도리두리: 무투가(탱커/바위)
영원한이등병: 도적(근딜/암흑)
잔팡: 궁수(원딜/불)
[전체] 영원한이등병: 입에 걸레 쌓아놨음? 더럽
[전체] 공공칠파라팡: 그게 아니면 그런 ㅈ만한 길드에 들어갈 이유가 없지~ 만나서 좀 잘해줬나 봐?
[전체] 불경한눈깔: 뭘 잘해줬을까?
[전체] 공공칠파라팡: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 도리두리: ㅉㅉ 초딩임?
[전체] 개나소나: 수준 떨어져서 일단 차단 박고 시작함
[전체] 불경한눈깔: 뭘 박아? 너도 길마한테 박아? 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 공공칠파라팡: 앜ㅋㅋㅋㅋㅋ 겁나 웃기네
[전체] 염소구더기: 길드전 하고 신고하겠습니다. 엮이고 싶지도 않네요. 보고 계신 분도 많습니다.
[전체] 불경한눈깔: 고상한 척 하네~ ㅋㅋㅋㅋㅋㅋ
여러 의미로 대단한 놈이었다.
이쯤 되면 관종이라서 어떻게든 관심을 끌려고 저렇게 막 나가는 건가 싶을 정도다. 이 길드전만 끝나면 정말 다 무시하고 차단하자.
[파티] 개나소나: ♡♡
같이 비아냥대며 시비를 걸 줄 알았던 개나소나가 의외로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게임이 시작되고 캐릭터를 선택하라는 시스템 창에 여유롭게 거너를 선택하는데 개나소나의 반응을 보면 욕먹은 게 내가 아닌 그였나 하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화나는 건 이해하는데 그렇다고 적군에 달려들면 안 됩니다. 그럼 말려드는 거예요.
도리두리가 차분하게 개나소나를 포함한 일행들을 진정시켰다. 여기서 흥분하고 달려들면 적들이 원하는 꼴이 된다. 나도 그 말에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영원한이등병이 화나서 급발진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개나소나가 저렇게 열 받아 할 줄이야. 그래도 조금 친해졌다고 날 생각해 주는 것 같아 조금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모험은 피하고 초반부 건물 먼저 먹고 들어가겠습니다. 시야는 제가 책임지고 보겠습니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길드전도 일반전과 방식은 동일했다. 다만 다른 유저의 관람이 가능하고 길드를 대표해서 지정된 유저들이 참여한다는 점만 다를 뿐.
빠른 속도로 적의 건물로 달려가는데 도리두리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적 거너 저격 항상 조심하시고 볼륨 키워 놓으세요.
저격 궁극기가 켜질 때 특유의 소리를 듣고 대비하라는 소리였다. 이미 주의하고 있던 것이라 건물을 부수면서 청각에 집중했다.
도리두리는 사각지대에 숨어 아군 건물을 부수는 적군의 동태를 살피며 실시간으로 얘기해 주었다.
―건물 근처에 거너랑 전사 안 보이네요. 기습 오려는 것 같으니까 대비해 주세요. 저쪽도 주의 깊은 성격은 아닌 것 같으니 방심하고 있을 것 같네요.
―오면 말해 주세요.
개나소나는 일부러 적군에게 노출된 채로 있다가 기습이 오면 허를 찌르려는 모양이었다.
디X에서는 나에게와는 달리 존대를 사용하는 개나소나를 처음에 다들 불편해했지만, 이제는 제법 적응한 듯했다. 도리두리는 알겠다고 긍정하며 사각지대를 벗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직 적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적군이 이렇게 대놓고 올 리는 없지.
―다른 쪽으로 가는 것 같아요.
그 말에 나와 잔팡이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아군 중 유일한 원딜이라서 한타가 벌어졌을 때 거리를 유지해야 하기도 했고 종잇장 몸이라서 쉽게 죽을 테니까.
초반에 많이 죽으면 이길 확률이 줄어든다.
‘내가 너한테는 절대 안 진다.’
WINNER 길드에 있을 때도 불경한눈깔과 여러 번 비교당했지만, 주변 평가는 항상 내가 높은 편이었다. 실제로 승률이나 킬 평균도 더 높은 편이었고.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성급한 면이 있는 놈이니까.
이제는 나도 개나소나도 만렙이었다. 일주일 동안 만렙을 찍기 위해 질릴 정도로 거너를 플레이했다.
몇 년 전에 거너 캐릭터에 푹 빠져서 미친 듯이 했던 그맘때의 추억이 오버랩 되었다.
거너라면 우리 가까이에 오지 않을 것이다. 멀리서 저격을 하고 있겠지.
아군 건물 옆에 붙어서 시야를 확보하고 있으니 타격음이 들렸다.
―법사 발견! 지원!
마법사를 발견했다는 말과 동시에 도리두리가 이를 악물고 그 뒤를 따라붙었다. 적군은 아직 아군 건물 쪽에 있어서 전부 합류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터다.
여기서 먼저 두 명을 처리할 수 있다면! 아니, 하나라도!
―제가 갈게요!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영원한이등병이 건물 옆 난간을 밟고 빠르게 달려가는 게 보였다. 여기서는 이동 속도도 빠르고 공격력이 높은 도적이 제격이었다.
순식간에 합류한 영원한이등병이 마법사를 공격하려는 것을 본 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을 본 것 같은데?
[파티] 염소구더기: 저격 조심!
다급하게 채팅을 쳐서 경고를 했지만, 메시지가 울리는 것이 먼저였다.
[영원한이등병 님이 사망하였습니다.]
“X발.”
내가 왜 바로 생각하지를 못했지? 불경한눈깔이랑 자주 게임을 해보지 않았던 터라 잊고 있었다. 저런 식으로 아군에게 붙어 따라오는 적을 사냥하는 걸 좋아하는 새끼라는 걸!
[전체] 불경한눈깔: ♡♡들ㅋㅋㅋㅋㅋ
웃는 꼴을 보니 일부러 덫을 놓은 게 분명했다.
마법사 대신에 탱커였다면 쉽게 죽이지 못하고 일찍이 포기할 테니 일부러 마법사와 동행한 것이다.
허무하게 죽은 영원한이등병을 보며 도리두리가 혀를 찼다.
―덫이네요.
―적 온다. 일단 빼.
짧게 용건만 말하는 목소리는 잔팡의 목소리였다. 귀찮음이 묻어나는 목소리였지만, 도리두리를 대신해 시야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적군이 합류한다면 5대 4가 된다. 같은 인원수라도 한타를 이길 수 있을까 걱정되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불리하다.
서둘러 후퇴 핑을 찍자 잔팡과 개나소나가 뒤로 물러났다. 나도 돌아가려고 궁극기를 거두어들이려던 순간이었다.
―저격!
잔팡의 다급한 소리와 함께 개나소나의 HP가 훅 떨어졌다. 나는 탄환이 날아온 방향으로 총구를 빠르게 옮겼다.
―위험해요, 일단 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도리두리는 만류했지만 이대로 도망가다가 저격을 한 번 더 맞으면 개나소나는 죽는다. 그럴 바에는 견제라도 해서 궁극기를 풀게 만드는 게 좋았다.
오더 하는 도리두리의 말을 듣지 않아서 나중에 미안하다고 사과할 생각을 하며 숨어있는 불경한눈깔을 찾았다.
동시에 그의 총구도 나를 향해있었다.
과연 누가 더 정확하고 빠르게 맞힐 것인가. 나는 망설임 없이 조준경에 고정이 되어있는 불경한눈깔을 향해 탄환을 쏘았고, 그의 탄환 역시 이쪽으로 날아왔다.
‘젠장. 내가 늦었어.’
정확히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적의 탄환과 달리 내 탄환은 놈의 몸통을 노릴 뿐이다. 이대로라면 추가 치명타로 나만 죽게 된다.
인상을 찡그리고 회피를 하려고 하는데 앞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백색의 제복. 거너와 세트로 맞춘 화려한 의상을 입은 사내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앞을 가로막은 개나소나의 HP가 아슬아슬하게 4를 가리키고 있었다. 걷다가 출혈로 죽을 것 같은 피 통에도 그는 다정하게 말했다.
―뒤로 먼저 빼.
평소와 똑같은 말투였지만 나에게는 누구보다 다정하게 들렸다.
내가 맞으면 한 번에 즉사할 것을 알고 대신 맞아주다니! 심지어 본인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개나소나가 맞는 것과 동시에 잔팡이 바로 활시위를 당겨 불경한눈깔을 맞혔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조준이었다.
[잔팡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이로써 양쪽의 딜러가 한 명씩 죽었다. 그래도 여긴 적군 건물 앞이라서 싸우기가 애매하다. 개나소나의 HP도 많이 닳은 상태였고.
궁극기를 물리고 서둘러 아군 핵심 건물로 이동했다.
―왜들 이렇게 말을 안 들으세요? 후. 아주 나이스, 좋았습니다.
혼낼 줄 알았던 도리두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칭찬했다.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지, 조금 무모하기는 했지. 실제로 개나소나와 잔팡이 없었으면 득보다는 실이 많을 순간이었고.
[파티] 염소구더기: ㅈㅅ 개소랑 잔팡님이 잘하심
[파티] 잔팡: RGRG~
―어쩐 일로 염소가 내 칭찬을 하지?
[파티] 염소구더기: 사실이었음ㅇㅇ 땡큐
적군도 무리하게 쫓아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뒤에서 받쳐줄 원딜이 죽었으니 저쪽도 텀을 두려는 거겠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가 견제를 하는 동안, 남은 적군 세 명은 아군 건물을 거의 다 부쉈다는 것이다.
아군 건물이 부서지면 이제 저들은 우리가 적군 건물을 부수지 못하게 건물을 끼고 견제를 하겠지. 그렇게 되면 곤란한데.
―아군 건물 부서지면 백퍼 올 것 같은데, 이번에는 우리가 기습 가볼까요?
[파티] 잔팡: ㄹㅇ?
―네, 영원한이등병이 부활하기 전까지 대기만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으니까요. 저희도 허를 찌르는 작전으로 가보죠.
[파티] 염소구더기: 도리두리님, 덫에 걸려서 화나셨어요?
―기분이 나쁘기는 하죠.
시야를 본다고 열심히 마법사를 견제하고 다급히 지원 요청을 했는데 그게 함정이었다.
도리두리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성급한 판단으로 위험에 빠뜨렸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결과가 좋아서 가장 안심하고 있을 인물은 도리두리일지도.
―찬성하시나요? 제 개인적인 의견이니까 반대하셔도 됩니다.
[파티] 염소구더기: 괜찮은 것 같아요~ ㄱㄱ
[파티] 잔팡: ㄱ
―먼저 가서 기습인 척 갈 테니 반대쪽에서 돌아오세요.
체력을 빠르게 회복한 개나소나가 앞으로 달려갔다. 이런 꼼수가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도리두리가 말했던 것처럼 영원한이등병이 죽은 상태라서 몸을 사리리라 추측하고 있겠지.
암흑 지대를 거쳐 빠르게 이동한 개나소나는 건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원거리 딜러인 마법사에게 바로 직행했다.
[전체] 불경한눈깔: 원딜!
전체 채팅에서 파티 채팅으로 바꾸는 걸 깜빡한 건지 불경한눈깔의 다급한 채팅이 보였다.
원딜이 공격당하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적군이 개나소나를 발견하고 타깃팅을 했다.
아군 건물은 아직 부서지지 않았다. 무섭도록 줄어드는 HP를 보며 적군이 미소를 띠려던 찰나였다.
붉은 섬광이 허공을 가르며 개나소나가 미처 죽이지 못한 마법사, 공공칠파라팡에게 쏘아졌다.
[염소구더기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놀랄 틈도 없이 이어지는 탄환과 화살들. 서로 다른 방향이어서 섣불리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기습. 그 단어를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본능처럼 도망치기 시작하는 적군의 뒷모습이 보였다.
궁수의 궁극기는 총 열 개의 화살을 동시에 쏘아내는 것. 가로로 눕히면 부채꼴처럼 사방으로 퍼져 대인 공격을 하기 용이했고, 세로로 진행하면 직선 방향에 있는 적군에게 집중적으로 맞혀 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잔팡이 쏜 방향은 적군이 있는 방향이 아니었다. 적군이 걸어가는 방향의 벽으로 정확히 쏘아진 화살은 벽에 부딪혀 튕겨 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적군의 움직임이 멈칫한다. 궁극기의 화살은 대미지가 높으니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쉽겠지.
잔팡이 의도한 건 바로 그 점이었다. 적군을 바로 즉사시키기보다 움직임을 확실하게 묶어두는 것!
―지금.
도리두리가 적군이 도망치는 방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원거리 딜러 두 명은 처리했으니 뒤를 조심할 필요는 없었다.
연속해서 이어지는 화살과 거너의 탄환이 적군을 향해 무섭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힐러가 치유를 할 시간도 없자 죽기 전에 탈모저주가 궁극기를 시전했다.
불 속성의 전사는 방어형이었다. 전사의 검이 열기로 붉어졌고, 그와 가까이에 있는 도리두리를 향해 무자비하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치명적인 유효타는 아니었지만, 베인 상처에 화염 대미지를 입으며 도리두리의 체력이 지속적으로 조금씩 닳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저 버리고 가세요. 거너 곧 리스폰 됩니다.
―힐러도 탱이라서 죽이기 힘들어. 빼는 게 좋을 듯.
잔팡도 도리두리의 의견에 동의하며 뒤로 빠질 것을 권유했다. 아직 초반 상황이니 무리해서 잡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도 원딜을 죽였으니 저들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개나소나가 검을 휘두르는 탈모저주를 평타로 견제했고, 그사이 아군이 도망쳤다.
―아, 저 이제 리스폰 되어서 합류하려고 했는데!
영원한이등병이 아쉬운 소리를 했지만, 고집은 부리지 않았다. 일반전과 달리 길드전은 랭크전과 같이 신중한 분위기였으니까.
무리하게 쫓지 않고 아군 건물 옆에 대기하고 있으니 불경한눈깔이 얘기했다.
[전체] 불경한눈깔: ㅋ? 그래도 좀 하네? 봐주니까 좋다고 달려들고
하여간 입만 산 놈. 개나소나는 이미 차단을 한 상태인 것 같고 남은 일행들도 굳이 대꾸를 하지 않았다. 피곤해지기만 할 뿐이니까.
―힐러는 랭커도 아니고 만렙도 아니네요. 급하게 구한 용병인 것 같은데. 염소님도 처음 보는 분이신가요?
[파티] 염소구더기: 네, 저기가 힐러가 좀 귀할 거예요. 그 전에도 힐러 랭커가 없어서 자잘님이랑 파티를 꾸린 것 같았으니까.
―하긴 자잘 님도 잘하기는 하지만 만렙은 아니긴 하죠. 만렙 힐러가 있었으면 당연히 끼고 돌았을 텐데. 흠, 그럼 다음 한타가 일어나면 힐러만 집중적으로 공격해 볼까요? 탱이라서 단단하긴 하겠지만, 제가 다른 애들이 방해하지 못하게 휘젓고 있을게요. 대신 거너 견제는 염소님이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파티] 염소구더기: 넵, 한 번 해볼게요.
적군에서 가장 견제를 해야 할 존재는 역시 거너였다. 사거리가 가장 길고 공격력도 가장 높으니까.
불경한눈깔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일단은 거너 랭커다. 한타 중에서 불경한눈깔이 활개 치게 내버려 둔다면 우리에게 승산은 없다.
―거너는 염소가 더 잘하는 것 같은데.
개나소나가 말했다. 사실을 말한다는 듯, 덤덤한 어조에 아주 조금 감동했다. 매번 거너 실력을 무시하고 흠만 잡던 놈이 이렇게 일행들 앞에서 인정을 해주니까 묘한 기분이었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맞아요, 우리 길마님이 더 최고!
[파티] 잔팡: 염소똥도 유명했지~ 예전처럼만 해봐
[파티] 염소구더기: ㅋ 나중에 똥 쌌다고 뭐라고 하지만 마삼
장난으로 대답했지만 긴장했던 감정이 조금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죽기 직전에 또 개나소나가 지켜주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감도 있었고.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화면을 노려보았다.
적군에서 가장 견제해야 할 위험한 캐릭터는 거너다. 하지만 그건 아군도 마찬가지였다. 그 위험한 존재는 여기도 있었으니까.
―적 거너 리스폰 완료됐습니다. 준비해 주세요.
영원한이등병이 합류하며 아군은 다섯 명이고 적군은 아직 마법사가 리스폰 되지 않아서 네 명이었다.
과연 전원 부활 후 건물로 접근할지, 아니면 지금 바로 올지가 궁금했다. 그나마 도움이 되는 건 자세히봐도잘생김이 알려준 그들의 습관 같은 것들이었다.
―자잘 님이 알려주신 바에 의하면 불경한눈깔은 주로 한타가 이뤄지고 나서 한참 뒤에 합류한다고 하더라고요. 정신없는 틈을 공략해서 들어온다고 하니까 저격 항상 긴장하고 계시고, 불 전사 화상 대미지도 조심요.
―불 전사는 내가 견제할게. 탱이나 근딜은 거리 두고.
궁수를 하고 있는 잔팡이 말했다. 궁극기는 빠졌지만 평타나 스킬도 화상 대미지가 들어온다. 괜히 약한
―부탁드릴게요. 개소 님이랑 이등병 님은 힐러부터 먼저 잘라주세요.
[파티] 영원한이등병: 넹~
[파티] 개나소나: ㅇㅇ
아직까지 한 명씩밖에 따지 못했다. 이번에 한타를 이기는 팀이 승기를 가져가겠지.
적군이 등장했다. 체크무늬혈압만 궁극기를 켜며 앞으로 나서는 것이 탱커를 선봉에 두려는 의도인 듯했다.
개나소나와 잔팡이 건물로 돌격해 체크무늬혈압을 견제하는 동안 나는 궁극기를 켜 적군의 위치를 살폈다.
디X를 사용하지 못하는 게 불편하긴 하네.
[파티] 염소구더기: 좌측 벽 뒤에 전사 매복
[파티] 염소구더기: 그 뒤에 힐러 발견
―이등병님 먼저 돌아서 힐러 공격해 주세요. 불 전사 조심하시고요.
―옛썰!
영원한이등병이 이동 속도 아이템을 장착하며 빠르게 달려갔다. 기본 이동 속도도 빠른 도적 캐릭터가 하늘을 날 듯 난간 사이를 밟고 달려가는 모습은 가히 경이로울 정도였다.
난간도 넓지는 않아서 자칫 잘못 착지하면 떨어질 수도 있는데 영원한이등병은 아직까지 그런 실수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적군이 영원한이등병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궁극기 시야 끝에 불 전사가 공격 스킬을 사용하려는 것이 보여서 서둘러 탄환을 날렸다.
―예쓰, 길마님 감사!
어차피 큰 대미지를 주지 못하니 탄환을 버리는 꼴이 될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한 발 정도는 금방 찬다. 그 짧은 순간이라도 영원한이등병이 공격받지 않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적 탱커를 지나쳐 개나소나도 합류했다.
―힐러 궁 쓸 시간 주지 말고 계속 평타 때려주세요!
―알고 있음.
개나소나가 바로 대답하며 힐러를 향해 검을 내려찍었다. 바닥에 금이 가는 효과와 함께 힐러가 넘어졌다. 그 위를 영원한이등병이 덮쳤다.
잔팡의 말이 이어졌다.
―도리두리도 가서 불 전사 마킹하고 내가 탱커 견제함.
궁수 스킬에 맞은 탱커가 경직이 되었다. 스킬이 풀린 뒤 공격을 하려고 했지만 건물 위에서 화살을 날리는 잔팡을 쉽게 공격하지는 못했다.
도리두리가 탱커를 지나쳐 아군에게 합류하려던 참이었다.
철컥.
아주 미세하지만 들려오는 탄환 장착 소리에 서둘러 궁극기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지? 힐러 뒤에서 매복하고 있는 건가?’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소리가 꽤 가까웠다. 저기에 있었다면 영원한이등병을 노렸겠지.
지금 불경한눈깔이 노릴 법한 것은 조금 전에 엿을 먹였던 나와 직접적인 킬을 가져간 잔팡. 당한 것은 그대로 돌려주려는 성질머리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암흑 지대에 숨어있는 불경한눈깔을 발견했다. 같이 게임을 할 당시에는 나보고 거기 숨어서 저격을 하는 게 바보 같다며, 자살골이라며 놀렸는데 지금은 본인이 저러고 있다.
헛웃음을 지으며 저격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불경한눈깔과 눈이 마주쳤다. 좀 전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내가 저격을 미리 들고 있어서 안정적인 상태라는 점.
총구를 이쪽으로 돌리려는 순간 불경한눈깔의 머리를 노리며 탄환을 연속으로 쌌다. 공격할 시간 따위는 주지 않겠다는 듯.
저격을 연속 두 번 맞고 죽지 않은 불경한눈깔의 HP가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죽기 직전에 회복 아이템을 사 먹은 모양이다.
궁극기를 풀고 뒤로 후진하려고 했지만, 도망칠 방향이 너무 뻔했다. 앞으로 나오면 잔팡의 공격까지 견제해야 하고, 그렇다고 암흑 지대가 있는 라인으로 더 이상 움직일 수는 없을 테니 남은 선택지는 후진.
언젠가 믄님의 영상을 보고 온 불경한눈깔이 자신 있게 거너는 예측 샷이라고, 본인은 타고 난 센스가 있어서 그런 건 믄님에게 지지 않는다고 길드원들에게 자랑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럼 그 예측샷을 잘 피할 수도 있을까.
뒤로 회피기를 쓴 불경한눈깔이 일순 벽에 가려졌다가 일어나는 행동에서 벽 옆으로 아주 미세하게 머리가 튀어나왔다. 나는 그걸 놓치지 않고 총구를 당겼다.
[염소구더기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전체] 불경한눈깔: 아 ♡♡♡야. 내가 이제 너만 ♡친다. 개♡치네진짜
한타 끝나고 나도 차단이나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궁극기를 수거하고 건물 옆에 있는 탱커에게 연막탄을 날렸다. 건물 위로 올라오려던 타이밍이라서 발라당 뒤집히는 꼴이 제법 우스웠다.
잔팡은 누운 대상의 머리를 정확히 노리며 평타와 스킬을 연달아 쓰기 시작했다. 다운된 대상은 제대로 회피하지도 못하니 지금이 죽이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으니까.
궁극기 탄환은 이제 한 발 남았고 아직 힐러를 죽였다는 알림은 뜨지 않았다. 서둘러 궁극기를 켜서 건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급하게 데려온 힐러라도 못하는 건 아닌 모양이지.
―와, 힐러 대박인데요? 회피하면서 자가 치유 감질 나게 졸라 잘함.
적군이지만 영원한이등병이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즉 본인이 회복하는 것에 집중해서 같은 아군은 회복해 주지 않고 있다는 뜻.
개나소나가 방향을 틀어서 불 전사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잘하는 힐러 대신에 불 전사를 먼저 처리하려는 것이다.
―마법사 오기 전에 한 놈은 더 잘라야 해요.
광역기 스킬이 있는 마법사가 와서 적군이 도망칠 시간을 주고 그 타이밍에 힐러가 궁극기까지 쓴다면 우리가 이길 확률은 줄어든다.
도리두리의 말에 힐러와 불 전사의 HP를 비교해 보았다. 2/3가 차있는 힐러와 1/3의 체력을 가지고 있는 불 전사.
‘하지만 방어력이나 체력은 불 전사가 더 높아.’
힐러는 방어 위주로 가고 있는 것 같지만, 기본적인 방어력은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낮았다. 그 대신 치유량이 미친 수준이기는 했지만.
영원한이등병이 스킬을 연계하려 힐러 평타를 피해 뒤로 물러나는 순간, 힐러가 익숙하게 자가 치유를 하려고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깔끔한 동작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붉은 섬광이 힐러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출혈이 터지며 힐러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조준경을 통해 힐러의 HP가 순식간에 닳는 것이 보였다.
방어력과 체력이 낮은 힐러와 공격력과 치명타가 높은 거너. 자가 치유 전에 끊으면 그만이다.
[염소구더기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전체] 톨쿨: 0_0……?
탄환을 모두 소모하자 자동으로 궁극기 사용이 종료되었다. 거너 캐릭터가 총을 등 뒤에 다시 메는 모습을 보며 잔팡이 상대하는 탱커로 시선을 옮겼다. 때마침 저쪽의 전투도 끝나고 있었다.
[잔팡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마법사 부활함.
탱커를 처리한 잔팡이 시니컬하게 말했다.
적군에서 궁극기가 빠진 것은 불 전사와 거너뿐이었다. 마법사의 광역기 궁극기는 빠지지 않았으니 견제하는 것이 옳았다. 특히 저번에 상대한 물 속성의 마법사 궁극기는 디버프의 향연이었으니까.
―한곳에 모여있으면 안 됩니다. 제가 시야 볼게요.
개나소나는 불 전사를 공격하고 있었고 영원한이등병은 기습을 대비해 난간 위로 올라가 단검을 던지며 지원하고 있었다. 나와 잔팡도 지원을 위해 돌아가려고 했는데 잔팡이 다급하게 후퇴 핑을 찍었다.
―반대 방향 매복!
젠장! 설마 아군 핵심 건물 방향으로 크게 돌아왔을 줄이야.
뒤로 돌아가서 지원하려고 했는데 마법사의 망토 겉자락이 펄럭이는 게 보였다. 동시에 나와 잔팡의 머리 위로 거대한 폭포가 생기기 시작됐다.
거대한 폭포가 우리를 덮쳤다. 당연히 불 전사를 도우러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마법사는 원딜인 우리를 먼저 처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 한타를 이기기 위해서는 보통 힐러와 원딜을 먼저 따는 게 우선이니까.
―아, X발.
잔팡의 욕설과 함께 저번에 겪은 적이 있던 디버프의 향연이 꽃피웠다. 이동 속도 감소, 공격 속도 감소, 공격력 감소, 방어력 감소. 캐릭터 머리 위로 올라오는 메시지에 이를 갈며 피해 보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염소구더기 님이 사망하였습니다.]
[잔팡 님이 사망하였습니다.]
더블 킬인가. 짜증 난다고 중얼거리는 잔팡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초반부에 웬일로 오래 살아남는다고 했지.
저쪽도 괜히 랭커에, 대형 길드원이 아니다. 입이 험해서 인정하기 싫지만 잘하는 놈들이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아군이 죽자 도리두리가 마법사가 후퇴하는 방향으로 핑을 찍었다.
―따요. 지금 우리 건물 쪽으로 돌아가서 도망치니까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적군 건물이 있는 방향에는 아군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공공칠파라팡은 어쩔 수 없이 아군 핵심 건물을 크게 돌아 도망쳐야 했다.
영원한이등병이 서둘러 마법사를 향해 달려갔다. 현재로서 따라잡을 수 있는 건 이동 속도가 빠른 도적 캐릭터뿐이었으니 당연한 전개였다.
[개나소나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아군의 원딜이 두 명 죽기는 했지만, 적군은 이제 한 명만 남았다. 전원 처리하면 공격력 상승 효과도 볼 수 있으니 제발 영원한이등병이 나머지 한 명, 마법사를 잡기를 바랐다. 긴장한 채 바라보는데 짜증 섞인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이번에도 놓치면 도적에서 손 떼고 만다!
[파티] 개나소나: ㅇㅋ~ 녹음 중
[파티] 도리두리: 기억 중~
[파티] 잔팡: 각인 중~
[파티] 염소구더기: 아니, 이 사람들이 우리 찐 막내 응원은 못 해줄 망정;
공공칠파라팡에 도달한 영원한이등병이 단검을 치켜올렸다. 연계 스킬. 궁극기를 쓰지 않아도 원체 빠른 공격 속도를 자랑하는 도적의 공격에 마법사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영원한이등병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파티] 염소구더기: 아…쉽기도 하고?
―길마 형이 제일 나빠요.
영원한이등병이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고 다들 놀리기만 하자 시무룩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길마님이라고 안 하고 길마 형이라고 하니까 더 귀엽네.
[파티] 염소구더기: 미안미안. 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염소구더기: 오구오구, 잘했어요. 만나면 궁디 팡팡 해줘야겠네?
[파티] 개나소나: ??????????????
[파티] 염소구더기: 왜 네 반응이 그따위야?
[파티] 개나소나: 내 엉덩이도 실한데…….
[파티] 염소구더기: 그딴 거 궁금하지도 않음 ㅡㅡ
[파티] 개나소나: …….
[파티]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롱~ 길마님은 개소 형님보다 날 더 좋아하지롱!
[파티] 개나소나: D질?
[파티] 염소구더기: 애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ㅡㅡ 개소 강퇴당하고 싶음? 워너비 인성 봄
[파티] 개나소나: ㅠㅠ
―다들 집중집중. 아직까지 한타 저희가 잘 이기고 있는데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목표는 2데스 이하입니다.
[파티] 염소구더기: 2데스 이하……? 몸이 종이인데?
[파티] 영원한이등병: 22…….
―포기부터 하지 마시고 노력부터 하세요.
도리두리가 은근히 강경파구나. 카리스마 있는 단호한 목소리에 감탄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원딜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적군 건물로 빠르게 달려갔다. 곧이어 적군 건물이 부서졌다는 알림이 떴고, 승기는 우리에게 좀 더 기울어졌다.
이기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 수월하게 진행될 줄은 생각 못 했다.
도리두리가 적군 핵심 건물을 바라보다 말했다.
―어차피 아군 건물은 저희가 막아도 부서질 것 같은데, 부수러 오는 타이밍에 핵심 건물 먹으러 가볼까요?
[파티] 개나소나: 좀 모험이긴 한데
[파티] 개나소나: 성공하면 빅 엿은 줄 수 있겠네
[파티] 잔팡: ㅇㅇ 겁나 허무하게 게임 끝나고 더 열 받아할 듯ㅋ
―게임을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엿 먹이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물론 무리할 생각은 없고 적군이 생각보다 빨리 건물을 부수고 온다면 뺄 생각입니다.
[파티] 영원한이등병: 찬성~ 렛츠 기륏!
―길마님은 어떠세요?
[파티] 염소구더기: 괜찮은 것 같아요. 다른 분들 동의했으니 한 번 가보죠. ㄱㄱ
애초에 공격 위주로 가기로 했던 조합이었다. 그것이 적군을 노리든 건물을 노리든 상관없다.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혼미하게 공격만 강행하는 게 목표였으니까.
[파티] 잔팡: 열심히 준비한 것치고는 즉흥적이네
[파티] 영원한이등병: 그것이 워너비의 매력 ㅇ_<
―아군 건물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마법사 제외 전부 보이네요. 들어갑니다!
도리두리가 가장 먼저 적군 핵심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 그 뒤를 이어 달려가는 아군들.
핵심 건물 주변이라서 우리 모습은 노출되었을 것이다. 아군 건물 주변에 있던 적군이 다급하게 되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군의 건물이 파괴되었습니다.]
[아군의 방어력이 감소합니다.]
방어력은 감소했어도 공격력이 감소한 건 아니었다.
개나소나는 망설임 없이 핵심 건물을 향해 궁극기를 사용했다. 캐릭터에게 사용해야 더 큰 치명타가 들어가지만 건물에도 타격이 꽤 크게 들어간 모양인지 빠르게 부서지고 있었다.
마이크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경쾌한 웃음소리였다.
뒤는 항상 조심해야지.
“이런 미친 자들…….”
전부 건물에 유의미한 타격감을 줄 수 없는 궁극기를 가진 캐릭터들뿐이면서 기다렸다는 듯 궁극기 파티를 하는 모습이 참으로 대단했다.
길드전에서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 줄을 살짝 놓은 것 같기도 한 대범한 시도였다.
‘설마 이걸 이렇게 이긴다고?’
게임이란 참 심오하다. 평균 30분을 하는 게임이라도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으면 50분 이상 끌 수도 있는 거였고, 정말 별거 없는데 10분 만에 허무하게 끝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1 Round 길드전 <워너비> 승리!]
워너비 길드의 첫 길드전은 후자에 해당했다.
[길드] 초팡: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박, 금의환향하고 왔어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이겨부렀어!!
관람으로 지켜보고 있던 길드원들이 게임이 끝나자마자 길드 채팅을 올렸다. 게임 중에는 방해가 될까 봐 올리지 않았던 채팅이 미친 듯 올라가기 시작했다.
[길드] 오메가원: 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 궁 파티 뭐냐곸ㅋㅋㅋㅋㅋ 단체로 정줄 놓은 줄ㅋㅋㅋㅋㅋㅋ 근데 그걸 또 이겨버리넼ㅋㅋㅋㅋㅋㅋㅋ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길드전 뭐 별거 있습니까? 제정신 아닌 자들이 원래 이기는 법이죠
[길드] 초팡: 아오, 질 수 없다ㅋㅋㅋㅋㅋ 2라운드도 예능 팟으로 가죠! 고고고고!! 어차피 킬은 믄님이 다 캐리해 줄 것이여!
[길드] 믄님: ??
[길드] 초팡: 믄님 둥절
[길드] 손머리발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분만에 끝났어, 어떻겤ㅋㅋㅋㅋㅋ 저희 2라운드 시작하려면 50분 대기해야 한다고욬ㅋㅋㅋㅋㅋ
[길드] 초팡: ㅋㅋㅋㅋㅋㅋ 다들 저녁 먹고 오세요~ 양치하고 낮잠도 주무시고 오셔도 될 듯~
[길드] 염소구더기: 너무 허무하게 이긴 듯; 저쪽 많이 방심했으니 2라운드는 빡세게 올 것 같네요
[길드] 영원한이등병: 난 이겼지롱! 오메가 형님이랑 초팡 누님도 이길 수 있을까~?
[길드] 초팡: 귀엽누
[길드] 오메가원: 재미지누
[길드] 초팡: 이기고 더 귀여워해 줌 ^^
[길드] 오메가원: 져도 더 귀여워해 줌 ^^
[길드] 영원한이등병: ㄷㄷ 웃음 표시 다들 그만……!
[길드] 도리두리: 자게에 지금 핫하네요. 생각보다 관람 중인 유저가 많았나 봐요.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길드원들끼리 긴장을 풀고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도리두리가 얘기했다.
그새 누군가가 자유 게시판에 글을 올린 모양인지 서둘러 게임 화면을 내려놓고 자유 게시판을 클릭했다.
[길드전] 방금 길드전 1라운드 본 쎄쎄 유저?
[길드전] 진짜 이겼네?
[잡담] 나 귀신 꿍꿔또ㅜ
[길드전] 위너 이제 뭐 팔려서 어케 다님?? ㅋㅋㅋㅋ
[길드전] 내 궁은 이제 건물 전용이다
이제 1라운드가 막 끝났는데 벌써부터 게시글이 올라오고 조회 수도 순식간에 올라간다.
도대체 얼마나 관심이 많았던 거지? 길드원들 대부분도 자유게시판을 보고 있는 중이었나 보다.
―다들 진짜 이길 줄 몰랐다는 반응인데.
―위너가 방심한 것도 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그리고 그런 참신한 방법으로 이길 줄 몰랐겠죠.
―참신함이 아니라 솔직히 막장이긴 했음! 내가 적이었어도 예상 못 했을 듯.
―진지하게 하자던 길드원들 다 어디 갔나 싶었어요.
역시 채팅도 시끄럽지만 말을 하니 더 시끌벅적 하구나. 아직은 목소리로 길드원이 분간이 가지 않아서 대략적으로 누구겠구나 짐작하고 있는데 본인들도 딱히 상관없이 제 할 말만 하는 눈치인 듯했다.
―저 댓글 남겼어용. 위너 이제 뭐 팔려서 어케 다님, 이라는 글에!
―목소리 들으니 초팡 누님이죠??
―넹, 초팡 누님입니다. 이등병 동생님.
애교가 가득한 목소리에 영원한이등병이 묻자 초팡이도 호칭을 듣고 바로 눈치채며 대답했다. 그래도 저 둘은 목소리 분간이 쉬워서 그나마 낫다.
초팡이 댓글을 남겼다는 게시글이 궁금해서 클릭하니 길드전 관련 게시글 중 가장 댓글이 많이 남겨져 있었다.
[작성자: 녹스눅스
제목: 위너 이제 뭐 팔려서 어케 다님?? ㅋㅋㅋㅋ
내용: 위너 이제 뭐 팔려서 어케 다님?? ㅋㅋㅋㅋ
일주일 전부터 자게에 대놓고 강제로 길드전 신청할 거라고 광고 때리더니 당당하게 1라운드부터 발리네? 어떻게 10분도 못 버티고 광속 탈락하냨ㅋㅋㅋㅋㅋㅋ 아니, 건물에 궁극기 꼬라박은 워너비 애들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긴 한뎈ㅋㅋㅋㅋㅋㅋ 웃기니까 봐줌.
심심해서 라면 먹으면서 걍 한번 봤는데 생각보다 꿀잼이라서 2라운드도 한 번 볼라고 ㅋㅋㅋㅋㅋㅋ 위너 바짝 약 올라서 랭커 위주로 파티 새로 짜서 오는 거 아님? 솔직히 지금 승자 위너였으면 자게에 또 올렸겠지. 아, 역시 ㅈ빱 길드죠~? 1라운드 개껌~ 이 ㅈㄹ 했을 듯 ㅋㅋㅋㅋㅋㅋ 2라운드도 이겨라, 워너비!
요즘 대세는 승리자보다 누군가의 워너비지.]
└집착광공은집착을시러해: 오늘부터 내 워너비다. 반박글 안 받음
└보랏빛행주: 원래 도전하는 애들 응원하는 게 재미가 있지ㅋㅋㅋㅋㅋㅋ
└몬스터폭주족: 느긋하게 보려고 치킨까지 시켰는데, 치킨 오기도 전에 끝났누;
└바캉스뷰: 라면 물 올렸는데;; 벌써 끝남, 실화?
└초팡: 2라운드도 기대해 주세요 ㅇ_< 기대에 보답하는 예능 팟 등장 타임~!! 어차피 믄님 있으니까 우리가 이김
└한쿡공듀: 헐 2라운드는 1분 만에 끝내려고?
└돌고래밥: 2라운드 꿀잼 각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친이랑 저녁 약속 있는데 ㅠㅠ 아놔, 이거 재방송 안 해주나요?
└└와사비맛아몬드: 넷풀릭스ㄱㄱ
└└돌고래밥: 아 정말요? 감사합니당!
└└└터보N진 : 이게 넷풀에 왜 나와 ㅋㅋㅋㅋㅋㅋㅋ 순진한 애 속이지 말라고!
└슈퍼볼1등서씨: 근데 소문으로 나가기로 했던 랭커중 몇은 길드전 마지막 참여하는 조건으로 빼주기로 했다던데. 해그늘 님도 거기 포함된 듯?
└혼욕빵긋: 헐??????? 방심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완전 이 갈고 준비한 구성원도 있음? 전개상 2라운드 나올 것 같은데
└밤비맛녹용: 2라운드 완전 박 터지겠넵!? 오오오, 비축했던 녹용이 샘솟는다!!
└└초팡: ㅇㅂㅇ!? 낸나, 녹용!!
└└밤비맛녹용: ㅇㅁㅇ?! 시져, 녹용!
└└└오메가원: 밤비 맛 녹용은 대체… 무슨 잔인한 맛임? 후달달
중간에 초팡이를 닮은 스파이를 본 것도 같기는 하지만 가볍게 무시하며 중간에 있는 내용을 다시 한번 읽었다.
해그늘을 포함한 랭커 출동이라니.
‘하긴 본인들도 대형 길드 자존심이 있으니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서 안전한 수 정도는 생각해 뒀겠지.’
해그늘은 초창기부터 많은 유저가 사용했던 전사 캐릭터 중에서도 탑을 찍은 랭커였다. 그러니 얼마나 잘하는 건지 대략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가끔 근딜이 필요하면 믄님의 제안에 흔쾌히 따라와서 가끔 같이 게임을 하기도 했는데 시야도 넓게 잘 보고 암살도 잘했었지.
―뭐, 해그늘 님이 잘하는 건 알 사람들은 다 아는 거고, 성격이 좋으신 분이니 불경한눈깔의 무례한 부탁에도 들어준 거겠죠.
2라운드를 오더 할 자세히봐도잘생김이 덤덤히 얘기했다. 나와 믄님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이 본 그는 어쩔 수 없다고 얘기하면서 덧붙였다.
―주로 랭킹전 하는 멤버들이 나오겠네요. 우리처럼 탱4, 원1 같은 이상한 조합이 아니라 정석대로 조합을 짜서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 이상한 건 우리도 잘 알고 있다. 딜러가 많고 탱커가 한 명인 건 가끔 봤지만, 설마 4탱커는 생각도 못 했겠지. 잘하면 그만큼 적군은 화나겠지만.
―차라리 잘됐어요. 같은 딜러로 승부 볼 거면 믄님을 제외한 나머지는 순식간에 잘릴 거니까.
[길드] 오메가원: ㅎ? 대놓고 무시당했네
[길드] 초팡: 초팡이는 무시당해도 괜차나. 멘탈 튼튼행!
[길드] 잔팡: 이상한 포인트로는 화 잘 내면서 이런 건 신경도 안 쓰더라
[길드] 초팡: 초팡이는 어른이니까~ 초팡초팡!
[길드] 잔팡: 난 가끔 네 의식의 흐름을 모르겠어…….
[길드] 오메가원: 22…….
[길드] 영원한이등병: 그게 우리 초팡 누님 매력이죠!
[길드] 초팡: 꺄륵
[길드] 염소구더기: 2라운드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하세요ㅠㅜ 다들 괜히 미안하네…….
[길드] 개나소나: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길드] 개나소나: 쟤들이 알아서 이겨오겠지
[길드] 손머리발발: 못 이기면요????
[길드] 개나소나: ^^? 위너로 길드 옮기기?
[길드] 초팡: 아 ♡♡
[길드] 초팡: 신발!! 신발이 격하게 찾고 싶다!!
[길드] 잔팡: 저것 봐 열폭 하는 기준이 이상해
[길드] 오메가원: 근데 위너 가라는 건 선 넘은 발언이었음
[길드] 손머리발발: 저 핵소름 돋았어여;;
[길드] 도리두리: ㅋㅋ 멀리 배웅 안 합니다
[길드] 영원한이등병: ㅋㅋㅋㅋㅋㅋ 우린 이겼지롱!
[길드] 믄님: ;;
믄님이 저런 땀을 흘리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WINNER 길드로 가기 싫은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어쩐지 여유로운 1라운드 길드원들과 질색하는 2라운드 길드원들 반응이 대조적이라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어느새 2라운드 길드전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보이스는 끈 상태고 게임을 하는 길드원들을 배려해서 채팅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팔짱을 끼고 화면을 노려보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개소]
누가 봐도 애인을 저장한 문구라고 믿기에는 무리가 있는 삭막한 문구다. 나중에는 그래도 문정하 형, 이라고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며 화면과 번갈아 보다가 게임 볼륨을 낮추고 전화를 받았다.
어차피 2라운드는 지켜만 볼 거라서 상관없었으니까.
“무슨 일이에요?”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우리 아까 점심 같이 먹었는데.”
―더 보고 싶었는데 지언이 네가 일이 있다고 해서 아쉽게 헤어졌지.
마치 내가 바쁘지 않았으면 더 놀 수 있었다고 눈치라도 주는 모양새였다. 본인도 1라운드 길드전에 참여해야 하는 유저였으면서 뻔뻔하기도 하지.
게임이 시작되었다는 문구와 함께 관람 기능이 활성화되었다.
길드전에 참여하는 유저를 제외한 나머지만 볼 수 있는 게임 화면. 각 캐릭터를 선택하여 활동을 세세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중앙 무대 및 암흑 지대 등 주로 한타가 이루어지는 곳을 선택해 CCTV처럼 지켜볼 수 있다.
건물 옆에도 당연히 있었고.
아군 핵심 건물에서 뛰쳐나오는 아군이 보였다.
[워너비]
자세히봐도잘생김: 힐러(힐러/빛)
믄님: 거너(원딜)
오메가원: 힐러(힐러/암흑)
초팡: 무투가(탱커/불)
손머리발발: 전사(근딜)
[WINNER]
더불러낼꼬야: 도적(근딜/물)
해그늘: 전사(근딜)
윈드퓨리: 마법사(원딜/암흑)
물밤: 거너(근딜/불)
저오늘복귀했어요: 무투가(탱커/불)
전원 만렙에 랭커 소속. 참여할 거라 예상했던 해그늘을 포함해서 전부 랭커들이었다.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대형 길드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우리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나올 줄이야.
―지언아?
“아, 죄송해요. 저 잠깐 다른 거 좀 본다고요.”
―그래? 그러고보니 너도 더쎄 한다고 했잖아. 지금 길드전 생방 하는데 같이 볼래? 너도 재미있어할 것 같아서 전화해 봤어.
내가 염소구더기라는 걸 의심하고 있으면서 무슨 속셈일까.
스스로 얘기하지 않는 나 대신에 공통적인 화제를 꺼내 이야기를 이끌어갈 셈인지, 무슨 힌트라도 잡으려고 이러는 건지, 그 의도를 알 수 없어 고민이 되었지만 일단 수긍하기로 했다. 어차피 볼 거 였으니, 몰래 보다가 들키는 것보다 낫겠지.
“안 그래도 일주일 전에 자게에 올라온 거 보고 찾아보는 중이었어요.”
―그래? 1라운드도 봤어?
“처음부터 보지는 못했고 마지막에 이긴 건 봤어요.”
―그럼 내 활약은 못 봤겠네?
“형이 무슨 활약을 했는데요?”
―우리 팀 거너 똥 싸는 거 몸빵 해서 지켜줬는데.
“…….”
사실이고 그 당시에 멋있기는 했는데 이렇게 말하니 바로 긍정하기가 기분 나빴다.
이 자식, 내가 정말 염소구더기라고 의심하는 거 맞아? 모든 게 내 착각이었나?
“아뇨. 못 봤는데요.”
그래서 심술을 부리는 못난이처럼 새침하게 대답했다.
문정하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또 불퉁한 내 목소리가 귀엽다 뭐다 하는 쓸데없는 소리를 하겠지.
“형도 게임 공부 좀 해요. 나중에 형네 팀 거너한테 발리지 마시고.”
꾹꾹 눌러 참는 웃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뭐지, 염소구더기는 절대로 실력으로 못 이긴다 이건가?! 왜 웃어?!
―아, 정말. 왜 이렇게 귀여워? 옆에 있으면 뽀뽀해 줄 텐데.
“형, 진짜 진지하게 뽀뽀 귀신이라도 들러붙으셨어요? 왜 이리 못 해서 안달이세요.”
―음, 사실은 다른 귀신이 붙었는데 그건 참는 중이야. 우리 지언이가 놀랄까 봐.
X발. 지금 놀랐다, 이 새끼야.
머리가 어지러워 정색하며 이마를 짚었다.
얘 머릿속은 무슨 생각으로 가득 찬 걸까. 궁금했지만 절대 알고 싶지도 않았다.
“형, 저 집중해야 하니까 조금만 조용히 해 주세요.”
―응응, 쉿.
“…….”
이런 문정하 놈이 아주 조금 귀엽다고 생각하는 나도 제정신이 아닌 거겠지. 길드전 때문에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정신이 이상해진 모양이다.
쓸데없는 생각을 한 머리를 쾅쾅 쥐어박으며 화면에 집중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다행히 한타는 하지 않고 서로 건물을 부수는 중이었는데, 탱커 중심인 아군이 건물을 부수는 게 더 늦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군의 건물이 파괴되었습니다.]
[아군의 방어력이 감소합니다.]
벌써 부쉈나. 아직 부수고 있는 적군 건물은 절반 정도밖에 부서지지 않았다.
초조하게 화면을 보는데 문정하가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얘기했다.
―들어오겠네.
“네. 아마 믄님을 제일 먼저 노리겠죠. 유일한 딜러고 거너니까.”
―거너가 초반에 죽으면 딜 뽑기 힘들 텐데.
그건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믄님을 믿고는 있지만 상대는 랭커로 조합된 멤버들이었고 반면에 워너비 길드원들은 연습한 지 한 달도 안 된 멤버들이었으니까. 게다가 믄님은 제일 나중에 합류하기도 했고.
이길 수 있을까? 이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긴장이 되어서 손에 땀이 축축해졌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스피커를 켜놓은 채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긴장했어?
방에 CCTV라도 달았나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까지 인성이 막장인 사람은 아니리라 믿었다.
솔직하게 긴장된다고 대답하니 문정하가 웃으며 대답했다. 참 웃음이 헤픈 놈이었다.
―괜찮아, 이길 거야. 지면 알아서 대가리 박겠지.
…대가리를? 어디에 박아? 그게 웃음기 섞인 소리로 할 말일까. 잘못 들었나 싶어서 귀를 후비적거렸지만 정정은 없었다.
나 한정으로는 다정한데 여전히 다른 놈들한테는 박하구나 싶었다. 어차피 이걸 길드원들이 알 리는 없으니 찔리지만 모른 척해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그 당시에는 몰랐다.
문정하가 끄지 않은 마이크 너머로 대화 소리가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아군 기준으로 보지 못하고 전체적인 화면으로 관람만 가능해서 세밀한 플레이를 보지 못하는 게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 아군과 적군의 위치는 파악하기 쉬웠다.
기본적인 매너는 당연하지만 아주 간혹 이 관람을 통해 같은 길드원이 적군이 위치를 알려주는 편법을 저지르는 유저도 있기는 하지만, 워너비는 매너 길드니까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게임을 하는 길드원만 마이크를 켜고 있는 거고.
―아, 나 마이크 끄는 거 깜빡했다.
“뭐, X발?”
―지언이 욕 너무 터프하게 하는 거 아니야? 섹시하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로 지금까지 마이크 켜져있었어요? 아니, 형 내 이름 계속 불렀는데! 아니, 그것보다 중요한 게 우리가 적군 위치나 뭐 다른 거 개입했던가? 안 했죠? 이거 신고당하면 길드전 이겨도 헛수고예요!”
―괜찮아, 우리 별말 안 했어. 사랑밖에 나눈 거 없어.
“우리가 그렇게 달달한 대화를 나눴던가요? 저도 몰랐는데 왜 형 기억에만 있죠?”
―지언이 일이라면 잘 기억하지.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혈압이 오를 것 같아 목덜미를 주물럭거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신고를 당할 법한 말은 주고받지 않아서 다행이기는 한데 실명도 까발려지고 문정하가 주로 했지만, 애정 행각도 들키다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정모는 죽어도 못하겠네.
“빨리 마이크 꺼요. 실수하면 답 없어요.”
―껐어. 잘했지?
“뭘 잘해요. 애초에 형이 잘못한 거였는데.”
―지언이 요즘 더 매정한 것 같아.
“그래서 싫어요?”
―아니, 편하게 대해 주는 것 같아서 설렌다.
그래, 그런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픽 웃었다. 이제는 이런 뻔뻔한 멘트도 적응되는 걸 보면 문정하에게 많이 익숙해지긴 한 모양이다.
“형 때문에 집중 안 되고 있잖아요.”
―설레서 그래?
“네. 존나 설레네요.”
솔직히 개나소나처럼 뻔뻔하게 대답할 줄 알았다. 하지만 문정하는 한참을 기다려도 입을 열지 않았다.
통화가 끊겼나 싶어서 휴대폰 화면을 봤지만, 여전히 신호는 가고 있었다.
“왜요? 제 말에 설레서 형은 말도 못 하겠어요?”
―응…….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입을 막고 웃었다.
아, 이건 좀 귀엽다. 지금 그의 표정이 어떤지 당장 보고 싶을 정도로.
설마하니 이렇게 순진한 반응을 보일 줄은 몰라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문정하가 머뭇거리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타 붙었어, 지언아.
쑥스러워서 말 돌리기는.
더 놀려줄까 싶다가도 어쨌든 길드전에 집중을 해야 해서 오늘은 이 정도로 봐주기로 했다. 그럼에도 입꼬리는 내려갈 줄을 모르겠다.
눈으로만 쫓고 있던 길드전은 다행히 적군의 기습을 눈치챈 아군의 방어로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았다.
양옆과 앞으로 나뉘어서 밀고 들어오는 적군의 행동에 아군은 침착하게 골목길로 그들을 유인했다. 그리고 가장 뒤에 믄님을 배치하고 그 앞을 지키고 있는 네 명의 탱커들.
‘세상 든든하네.’
손머리발발과 오메가원은 방어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방어력부터 먼저 올리고 있었으니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만큼 딜이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믄님이 있으니 괜찮겠지.
[믄님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왕처럼 가장 안전한 곳에 배치되어 보호받는 믄님은 저격을 들고 있었다. 골목길이라서 우르르 몰려들지 못하는 적군을 노려보며 정확히 헤드 샷을 노렸다.
솔직히 아군도 앞에 밀집해 있어서 시야가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을 텐데 그 사이로 정확히 맞히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
관람 화면을 작게 줄여 띄우고 게임 화면을 올렸다. 길드 채팅으로 아군의 생생한 중계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길드] 초팡: 아 ♡빡쳐
근데 초팡이는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는 걸까. 상황은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는데 욕을 하고 있다니.
[길드] 초팡: 초팡이 똥독 오른다고!!
[길드] 초팡: 나 좀 죽게 해줘! 금방 다녀온다구!!
[길드] 오메가원: ㅋㅋㅋㅋㅋㅋ절대 안됨~ 힐러가 둘이나 있는데 어딜 감히!
[길드] 초팡: 암힐러는 사칭 힐러자나! 오메가 애기 바보! 이제 너 미워할 거야!
제일 앞에서 적군이 공격이 혹여나 믄님에게 맞을까 봐 대신 맞고 있는 초팡의 HP가 제일 빨리 닳았는데 그때마다 자세히봐도잘생김이 치유를 해주고 있었다.
적군 물 속성 도적이 던지는 표창은 이동 속도 감소 등 디버프를 주는데, 그것도 오메가원이 이동 속도 증가 버프를 줌으로써 상쇄시키고 있었다.
집중적인 케어를 받는 초팡은 그런 아군의 행동에 오히려 더 화가 난 모습이었다.
[길드] 초팡: 화장실!! 1분!!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죽으면 가셔도 됩니다 ^^
[길드] 초팡: 자잘님이 나 못 죽게 하자나!!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빛 힐러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을 뿐. 부족한 몸이지만 열심히 해야죠.
[길드] 손머리발발: 초팡님ㅠㅠㅠㅠㅠ 좀만 참아보세요. 초팡님이 메인 탱커라서 빠지면 순식간에 밀릴 수도 있어요.
[길드] 초팡: 아놔!! 갑자기 신호가 온 걸 어떡해ㅠㅠㅠㅠㅠ 저녁에 매운 떡볶이 먹지 말 걸 ㅠㅠㅠ
[길드] 오메가원: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메인 탱커의 숙명ㅋㅋㅋㅋㅋㅋ 힐러가 집중 케어 해주고 얼마나 좋아?
[길드] 초팡: 야 이 오메가놈아
[길드] 오메가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호칭 바뀐 거 봐 그렇게 급하냐곸ㅋㅋㅋㅋㅋㅋ
[길드] 초팡: ㅇㅇ ㅠㅠ
캐릭터가 죽으면 화장실을 가려는데 자세히봐도잘생김이 죽지 않도록 초팡에게 집중적으로 힐을 쏟아 부어주는 중이었다.
관람 영상만 보고 있었을 때는 안 죽게 잘해 준다고 감탄하고 있었는데 내부 사정은 이럴 줄은…….
[믄님 님이 적군을 처리하였습니다.]
이 와중에 적군을 처리한 믄님이 저격을 거두었다. 아직 탄환이 더 남아있을 텐데 왜 그런가 싶어서 의아해하는데 그가 뒤로 연막탄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샛길로 등장한 적군이 연막탄을 맞고 시야를 잃는 것이 보였다.
기다렸다는 듯 켠 궁극기로 적군을 노려 헤드 샷을 날렸다. 깔끔한 킬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를 보는 유저들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아니, 나랑은 다르겠지. 나는 아군이 시선을 끌고 있던 적군을 노린 거고, 믄님은 아군의 도움 없이 방금 처리한 거니까.
[길드] 초팡: 캬~
[길드] 오메가원: 캬~
[길드] 손머리발발: 완전 사이다! 대박! 저 뒤로 오는 줄도 몰랐는데 어케 아셨어요????
[길드] 믄님: 뒤로 빠지는 거 보임
[길드] 믄님: 거너 뒤치기각
[길드] 믄님: 자잘 역할
[길드] 초팡: ㅋㅋㅋㅋㅋㅋㅋㅋ바로 실시간으로 사과하시는 자잘님ㅋㅋㅋㅋ 꼬시다!!
자세히봐도잘생김이 마이크로 직접 사과를 했는지 초팡이 배가 아픈 것도 잊고 시원스레 비웃었다.
[길드] 초팡: 아 근데 아까부터 들리던 닭살 커플 소리 끊겼네요? 개소님 마이크 끄셨나 봄
[길드] 오메가원: 나 토 쏠려서 집중 안 됐음
[길드] 손머리발발: 저는 그저 부럽… 개소님이 저렇게 다정하신 분인 줄 몰랐어요
[길드] 믄님: ;;
[길드] 자세히봐도잘생김: 올해 가장 놀라운 일 TOP3에 들어감
생각 없이 채팅과 관람 영상을 번갈아 보고 있었는데 생각도 못했던 내용에 흠칫 놀랐다.
마이크가 켜져있다는 말에 어느 정도 각오는 하기는 했지만……! 문정하의 소름끼치는 애정 행각을 다 들은 길드원들은 금세 화제를 바꿨다.
길드전을 진지하게 하고 있는 건가 걱정이 되면서도 믄님을 가운데에 두고 원을 그리며 둘러싸고 있는 그들은 제법 여유로워 보였다. 가끔씩 HP가 절반 이상으로 떨어진다 싶으면 자세히봐도잘생김이 치유를 해주었다.
[길드] 오메가원: 개소님 세상 사랑꾼; 목소리에 녹는 줄 알았음
[길드] 초팡: 아니ㅋㅋㅋㅋㅋㅋ 우리 이렇게 힘들게 싸우는데 개소님은 연애한다고 바쁘죠? 아앙?!
[길드] 초팡: 길드전 끝나기만 해봐! 아오, 진짜! 우리 지언이~ 지언이~ 내가 지언이로 개명하고 맙니다!
[길드] 오메가원: ㅇ~ 그래도 어차피 개소님 노관심이요~
[길드] 초팡: 초무룩… 그래도 얼굴은 잘생긴 개소님… 인성은 나빠도 돈은 많은 개소님… 잘가요…….
아니, 다들 제발 길드전에 집중 좀 해. 메인 주제는 개나소나였는데 왜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모르겠다.
통화 너머의 문정하는 그저 가볍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귀엽다고 했던 거 취소. 역시 재수 없는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