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寂寥(적요) (22/27)

나를 사랑하는 그대에게

-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그대에게 외전 -

寂寥(적요)

이른 새벽부터 건조한 공기를 가르고 진눈깨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아침 7시. 매일같이 부모님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이었다. 커다란 창밖으로 보이는 날씨처럼 질퍽하고 음울한 소식을 들은 지 일주일이 지난 날이었다.

7시가 되기 전 식당에 내려와 잠시 앉아 있으면 부모님이 오시고 식사가 시작된다. 같은 시간과 사람들 그리고 같은 자리였다. 맞은편엔 어머니, 오른쪽 상석엔 아버지가 자리했다.

아침 식사는 출장과 같은 공식적인 일정이 없는 이상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매일 참석해야 했다. 돌아가신 조부께서 고집하시던 관습이었다. 아버지 역시 이 관습을 기껍게 여기는지라 모두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회장님. 국을 좀 더 드릴까요?”

조용한 공간을 가르며 한 실장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입맛에 맞아 국을 평소보다 빠르게 드셨는지 국그릇이 비어 있었다. 새로운 그릇으로 교체되고 아버지의 식사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침묵. 며칠 전부터 식사 시간은 뜬구름을 잡는 것과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나를 제외한 두 분이 일주일 전 들려온 소식의 문제로 서로 의견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렸기 때문이다.

종종 이런 막연한 상황에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먼저 대화를 트곤 했다. 평소에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대화가 시작되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용한 침묵을 깨고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그 아이 어떡하실 거예요?”

또랑또랑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버지를 향했다. 튀지 않고 물 흐르는 듯한 상황이었다. 국을 뜨려던 아버지의 수저가 그릇에 부딪히는 소릴 냈다.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될 찰나였다. 나는 식사를 멈추고 수저를 내려놓은 뒤 두 분을 주시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럴 필요까진 없어. 식사 계속하렴.”

그러나 나는 식사를 재개할 수 없었다. 상석에 앉은 아버지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영우 말하는 거요?”

“네. 문희와 당신 아들이요.”

불편하리만큼 언짢은 분위기가 식탁 위를 휘몰아쳤다. 어머니가 언급한 아이는 아버지의 혼외자이자 내 이복동생이었다. 그리고 문희라는 여자는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돌봐 온 친동생 같은 여자였다. 그리고 아버지와 부정을 저지르기 전까지 내가 이모라고 부르던 여자이기도 했다.

일주일 전 접한 음울한 소식은 바로 서문희의 자결이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병든 아들을 남기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나는 이 대화의 열쇠를 쥐고 있을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내심 걱정했던 것보다 차분한 표정이었다. 남편의 내연녀와 혼외자를 거론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 아님에도 어머니는 큰 타격이나 감정적인 상처가 없는 것처럼 매끄러운 인상을 유지하셨다.

아버지는 작게 헛기침을 했지만 그렇다고 민망해하거나 면구스러워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행동이었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요.”

아버지의 얼굴에서 순간 커다란 골칫덩어리를 안은 것 같은 표정이 스쳤다. 그 순간을 나도 보았으니 어머니 또한 모르지 않을 것이다.

“문희를 닮아 많이 아프다면서요.”

“제 어미보다 조금 더 상태가 좋지 않아.”

선천적으로 폐가 좋지 않아 폐허증을 앓던 서문희였다. 그 병을 고스란히 그 아이가 물려받은 모양이었다. 그런 데다가 태어나길 온전하게 태어나질 못했으니 몸이 아픈 게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아이러니하게도 침묵이 익숙한 이 저택에서 드물게 불편함이 일었다.

“데려와요.”

식사를 멈춘 나와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는 편안한 손짓으로 식사를 이어 가며 지나가듯 얘기하셨다. 그 내용이 의외이면서도 참으로 어머니다운지라 나는 속으로 감탄을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는지 차마 되묻지 못하고 어머니만 보았다.

“뭘 그렇게 보세요? 그 아이 이 집에 데려와요.”

“영우를 말이오?”

“네, 아픈 아이를 혼자 두려고요?”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듯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반문하곤 말을 이었다.

“당신은 그 아이의 아버지잖아요. 그리고……”

여태껏 또랑또랑하게 말씀하던 어머니가 말끝을 흐리더니 나에게 가만히 시선을 주었다.

“학영이 동생이기도 하고요. 엄마가 없으면 아버지와 형이 있는 곳에 있어야죠.”

“당신 뜻이 그러하면 그렇게 하겠소.”

아버지는 마지못해 대답한다는 듯한 말투였지만 표정만큼은 개운해 보였다. 아내에게 아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되었고, 혼외자에 대한 미약한 죄책감을 갖지 않고도 일이 순탄히 풀렸기 때문이었다.

“학영이 너는 괜찮니?”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내 의견을 물었다. 서른이 넘은 장성한 아들이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리라. 나는 내려놓았던 수저를 들며 대답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서문희의 아들이 이 저택에 들어온다 한들 상관없었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그 아이는 아버지의 아들이고 내 이복동생이니까.

나의 대답으로 그 아이에 대한 결정이 마무리되었다. 이 결정이 만족스러웠는지 아버지는 식사를 재개하였고 나 또한 식사를 이어 갔다.

어딘가 모르게 입 안이 텁텁했다. 물을 마시고 잠시 딴생각에 빠졌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잘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아득한 기억 너머에서 그 아이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20년 전이 떠올랐다.

내가 열세 살이 되는 해였다. 추운 겨울이었고 하염없이 눈이 내렸던 날이었다. 저택 안은 훈훈한 난방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동장군이 찾아온 것처럼 싸한 날이기도 했다.

그날은 그럴 수밖에 없던 날이었다. 어머니는 큰 상심으로 방에서 나오질 않았고 아버지는 저택의 어두운 분위기에서도 홀로 아무렇지 않게 일정과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아들인 나는 아버지의 행보와 같았는데 어린 내가 생각하기로 저택에 내려앉은 어두운 그늘은 어른들의 몫이지 나와는 상관없는 것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두운 그늘의 몫은 아버지의 여자들인 어머니와 서문희만이 똑같이 나눠 가졌고 정작 가져야 할 사람인 아버지의 몫은 없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늘 그렇듯이 자신만 아는 꼿꼿한 사람이었다.

평소에 서문희를 곧잘 따랐던 나는 저택의 내 방 창틀에 기대어 정원에 자리한 어머니의 아틀리에를 지켜보았다. 6개월이 넘도록 아틀리에에 거주하고 있었던 서문희가 얼마 전에 태어난 이복동생과 이 집을 떠나는 날이었기에 평소보다 조금 더 관심 있게 지켜보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서문희를 보았던 것이 6개월 전이었다. 임신으로 그녀의 배가 불러 오기 전이었다. 외국으로 몇 년 동안 멀리 유학을 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인사차 저택에 들렀던 서문희는 자신의 임신 사실도 모르고 입덧을 속병으로 착각하며 힘들어하다 쓰러졌다. 그런 그녀를 발견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 길로 밝혀진 아버지와 그녀의 불륜 관계, 내가 원해 왔던 동생의 존재가 새롭게 수면 위로 떠오른 날이기도 했다.

그날 뒤로 나는 서문희를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끊어 내려 도피처로 삼았던 유학을 가지 못했고 결국 대학교마저 3학년에 자퇴를 하고 어머니의 아틀리에에 갇혔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그녀를 위한 어머니의 마지막 조치이자 배려였다.

어머니는 남편과 자신이 아끼는 어린 동생의 부정으로 큰 상심을 얻었다. 자신이 몰랐던 사실에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했고 괴로워했다. 사랑 없는 정략결혼이 비참한 결과를 불러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늘 빛나는 자신감과 온화함을 가지고 있던 그녀가 한동안 빛바랜 모습으로 지내던 것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였을까. 서문희는 어머니의 마음에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는지 자꾸 목숨을 끊으려 하다가 그마저도 포기하고 산송장처럼 살기 시작했다.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말이다.

평소 폐허증을 앓고 있던 서문희는 점점 더 몸이 약해져 아기를 열 달 동안 품지 못하고 이른 출산을 했다. 사용인들은 아홉 달을 채운 것도 용하다고 저들끼리 떠들어 댔다.

그렇게 몸이 망가진 상태로 출산을 한 그녀는 몸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조산으로 온전치 못하게 태어난 아기가 고비를 넘기자마자 도망가듯 떠나려 했다.

아틀리에 근처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고 눈발도 점점 거세어졌다. 사용인들은 커다란 우산을 펼쳐 아틀리에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창틀에 기댔던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앞으로 영영 보지 못할 것 같은 문희 이모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마음 반, 새로 태어난 이복동생이 궁금한 마음 반이었다.

저택의 넓고 기다란 복도를 거침없이 가로질러 달렸다. 평소에 달리는 일 없이 차분히 다니던 내가 의외인 모습을 보이자 사용인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 바깥 날씨가 추워요!”

겉옷도 없이 현관을 나가는 나를 다급히 부르는 한 실장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개의치 않고 저택 밖 어머니의 아틀리에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하늘에서 펑펑 내리는 눈이 스웨터 위로 스며들었다.

드넓은 정원을 빠르게 가로지르는 내 뒤로 한 실장이 달려오고 있었다. 자신의 겉옷을 챙기지 못할지언정 내 코트는 챙긴 채였다.

“도련님!”

나에게 가지 말라고 명령할 수 없는 한 실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옛날부터 자신보다 어린 나에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였던 그녀는 어머니 집에서부터 온 어머니의 사람이었다.

“아틀리에로 가시면 어머니가 슬퍼하실 거예요!”

모르는 소리였다. 내 어머니는 이런 일로 슬퍼하지 않을 분이었다. 그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수족이나 마찬가지인 한 실장은 서문희를 마땅치 않아 하는 사람이었기에 저런 소릴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은근한 경고를 무시하고 내리는 눈을 맞으며 달렸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까지 다다랐다. 내가 다가온 것을 눈치챘는지 사용인들이 작은 당황과 함께 웅성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어머니가 아꼈던 동생이자 아버지의 내연녀가 떠나는 날에 예상치 못한 사람인 내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사용인들의 당황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목적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발길을 옮겼다. 내 기세에 사용인들은 저도 모르게 우산을 뒤로 젖히며 길을 터 주었다.

길이 열리자, 내리는 눈 사이로 앳된 얼굴을 가진 가냘픈 체구의 서문희가 보였다. 무채색 옷을 아무렇게나 껴입어도 바래지 않는 어여쁨을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나보다 작은 키의 그녀가 유난히 더욱 왜소해 보였다.

“문희 이모.”

“…….”

6개월 만에 불러 보는 호칭이었다. 변성기가 막 시작된 내 목소리가 차가운 바람과 눈발 사이에 퍼졌다. 담담한 부름에도 서문희는 듣지 못했다는 듯 양손 안의 강보를 품에 끌어안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모.”

다시 한번 부르며 서문희에게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갔다. 때마침 한 실장이 하얀 입김을 쏟아 내며 달려왔다. 그녀는 눈송이가 내려앉은 내 어깨 위로 가져온 까만 코트를 올려 주며 앞에 있는 서문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러자 고개를 돌리고 서 있는 서문희의 어깨가 더욱 옹송그려졌다.

어머니가 아끼고 매우 예뻐하던 이였다. 내게도 어찌 보면 이모보단 큰누이와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 이모가 아버지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그리고 그 행위가 용서받지 못할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파리한 안색으로 붉은 입술을 꾹 깨물고 있는 서문희에게 손을 뻗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끌어안고 있는 강보의 아기에게로.

내 손길에 서문희는 본능적인 모성으로 강보를 더욱 끌어안으며 흠칫했지만 그 행동은 순간뿐이었다. 고집스럽게 깨물고 있던 입술을 풀고, 그보다 더 고집스럽게 안고 있던 품 안의 아기를 자신이 아끼던 조카인 나를 향해 보여 주었다.

둘둘 말은 강보 사이로 하늘에서 펑펑 내리는 눈보다 더 새하얗고 말간 아기의 얼굴이 빠끔히 나와 있었다. 순하게 감긴 얇은 눈꺼풀 아래 촘촘하고 새카만 속눈썹이 참으로 예쁜 아기였다. 추운 날씨 탓인지 아기의 볼은 그 잠깐 사이에 발갛게 물들었다.

매서운 추위와 눈이 아기에게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조금만 더 지켜보기를 원했다. 나와 반쪽 피를 이어 가진 어여쁜 동생을.

“동생인데 나랑 안 닮았어.”

가만히 서서 아기를 빤히 지켜보다 말을 툭 내뱉자 서문희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망울이 작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예쁘게 생겼어. 눈도, 코도, 입술도 다 이모 닮았네.”

남자 아기라는 것을 알지 못한 상태였다면 여자 아기라고 오해할 만큼 예뻤다. 아기의 발갛게 물든 뺨에 손가락 끝을 닿을 듯 말 듯 갖다 대었다. 내 손길에도 아기는 곤히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잠시 손끝에 닿았던 뺨에서 따듯함과 부드러움을 느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거두어 주먹을 오므렸다. 처음 느껴 보는 가냘픈 생명의 존재가 신기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아기를 보느라 숙였던 고개를 들어 서문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허공으로 향했다. 그리고 입술을 꾹 깨물고 내게 보여 주었던 아기를 품에 안았다. 눈물을 참느라 코끝이 새빨개진 것이 보였다.

내게는 그녀의 슬픔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내 이복동생이 궁금했다.

“이름은 뭐야?”

“…….”

“이름 지었을 거 아냐.”

질문에 서문희가 머뭇거렸다. 강보를 끌어안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도 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몸짓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안 알려 줄 거야?”

조카인 나의 질문. 아니, 이젠 아기의 이복형이 된 나의 질문에 결국 서문희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두서없이 흘러내렸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칼을 휘날리게 만들자 그녀는 아기가 추울까 봐 우산 아래로 몸을 숨기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영우…….”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실로 오랜만에 입을 여는 것이었기에 그녀의 목소리는 꺼져 가는 불씨처럼 연약했다. 나는 동생의 이름을 듣기 위해 고개를 내리며 서문희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영우야. 서영우.”

“영우?”

물기를 머금은 서문희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정확히 들렸다. 이름을 되새겨 보았다. 그런 나를 보며 서문희는 작은 용기를 냈는지 달싹거리던 입술을 다시 한번 열었다.

“학영이 네 이름하고…… 혜우… 언니의 이름을 하나씩 따서 지었어. 이 아이는 서문희인 내… 아들이니까 서영우야.”

‘서영우’ 나는 내 이복동생의 이름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영우’라는 이름은 마음에 들었으나 ‘지영우’가 아닌, ‘서영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내 표정을 오해한 서문희가 울먹이며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미안해….”

“…….”

“내 마음대로 지어서 미안해.”

이름이 싫은 건 아니었다. 오해를 풀어 주려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려 할 때 강보에서 미약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기가 얇은 눈꺼풀 아래 새카맣고 커다란 눈망울을 드러내며 입을 벌려 울기 시작했다.

아기가 내뿜는 존재감이 이상했다. 예쁘고 작은 아기가 자기를 알아 달라는 듯 나를 보며 울어 대는 것이 못내 신경 쓰이고 마음이 다급했다. 귓가에 울리는 미약한 저 울음소리가 심장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나는 오므리고 있던 주먹을 펴 다시 강보로 손을 향하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이제 그만 가 볼게.”

“이모.”

우는 아기를 달래며 서문희는 아틀리에 앞에 세워져 있던 차에 다가갔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기사가 뒷좌석 문을 열어 주었다. 추위를 피해 그녀가 아기와 함께 차 안에 올랐다. 그리고 자신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는 나를 다시 한번 올려 보았다. 그녀의 두 뺨에 눈물이 길을 트고 있었다. 울음을 참으려 했는데 조카이자 아기의 형인 나를 보자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저지른 죄가 자꾸만 떠올랐을까?

“학영아.”

“…….”

“미안해. 정말 미안해.”

강보를 안은 그녀의 손이 벌벌 떨리다 못해 뼈마디가 새하얗게 질렸다. 꾸역꾸역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쏟아 내며 어린 조카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죄를 빌었다. 자신이 존경하고 사랑했던 언니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한 말들이었다.

“혜우 언니에게 죽을죄를 지었고, 너에게도 못할 짓을 저질렀어!”

“이모.”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서럽게 눈물만 흘리며 내 얼굴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서문희는 아기를 끌어안고 구슬피 울었다. 그녀의 아기도 제 엄마를 따라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두 모자의 모습을 보며 나는 왠지 모를 무력함을 느꼈다.

“문 닫겠습니다.”

서문희를 위한 더 이상의 배려는 없었다. 사용인이 뒷좌석 문을 닫았다. 이윽고 엔진 소리와 함께 그녀와 아기를 태운 차가 아틀리에를 벗어났다. 나는 멀어지는 차의 뒷모습을 가만히 눈으로 쫓았다. 얼마나 바라보고 서 있었을까? 어깨에 덮인 까만 코트 위로 하나둘씩 내린 눈송이가 쌓이기 시작했다.

“도련님, 안으로 들어가세요.”

오로지 추위가 걱정스러운 한 실장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꺼냈다. 우뚝 서 있던 나는 미련 없이 시선을 거두었다. 지독히 추운 겨울 날씨 때문에 감기라도 걸릴까 속 태우는 한 실장의 걱정 따윈 치워 버리고 느릿느릿 저택으로 향했다.

나의 발걸음은 아까와 같이 다급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새겨진 이름 하나가 입 안에서 자꾸 맴돌았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소리 내어 불러 보았다.

“영우.”

입술이 동그랗게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서영우.”

불러 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천천히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정지된 움직임과 침묵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답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발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입술도 다시 동그랗게 벌어졌다.

“…영우….”

다시 또 한 번.

“지영우.”

서영우보다 더욱 매끄럽게 입 안에서 흘러나왔다. 나의 입술이 만족감으로 호선을 그렸다. 손끝에 닿았던 생명의 따듯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함께 마주한 아름다움이 떠올랐다. 나는 기이하게도 마음이 설레었다.

❊ ❊ ❊

아이는 내가 데려오게 되었다. 원래는 어머니가 직접 데리러 가려 했으나, 평소에 절실히 원하던 미술품이 급하게 경매에 나오는 바람에 해외 출장을 나가느라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원래라면 아버지가 가야 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내 아버지는 이런 일에서조차 뒷짐을 지고 지켜보는 분이었기에 내가 데리러 가기로 했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교외를 향해 달리길 한 시간 하고도 십여 분. 작은 동산 아래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옛집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서문희의 집은 그녀와 닮아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인 모습, 그리 크지 않은 크기의 집은 정성스러운 손길이 이곳저곳 닿았는지 꼼꼼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다. 커다란 창 앞에 있는 노란 산수유나무, 앞마당에 꽃을 피운 매화나무 등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집이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그 모습들을 눈에 담자, 그녀의 집이 점점 가까워지고 차량이 마당 입구의 자갈밭 위로 진입했다. 그러자 조용하고 편안했던 승차감이 조금은 어긋나는 것이 느껴졌다.

20년 전 눈이 내리던 추운 겨울날이 떠올랐다. 숨죽여 울던 서문희와 그녀의 품 안에서 기운 없이 울던 아기도 함께. 두 모자의 대한 기억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기억 속에 잊혀 간 사람들이었고 또한 굳이 꺼내어 들려 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얼마 전 들려온 서문희의 부고가 없었더라면, 어머니가 그 아이를 저택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20년 전 눈 오던 그날을 떠올리지 않았을 터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조그맣고 하얗던 아기의 얼굴,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던 까만 눈망울. 그리고 손끝에 닿았던 따듯한 생명력까지.

세상에 숨겨 온 이복동생인 그 아이는 어떠한 모습으로 자랐을까. 내 범위 안에 들어올 아이는 타인이었던 예전과 달리 내 사람이 될 것이었다.

궁금함은 이제 곧 풀릴 차례였다. 멈춘 차 안에서 내린 나는 자갈밭 위로 발을 디뎠다. 부스럭거리는 자갈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그 아이가 있을 집으로 향했다. 마당이 아담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문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똑똑.

육중해 보이는 나무문을 두 번 두드리자 안에서 기척이 들렸다. ‘누구세요?’ 나이 든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마 서문희와 아이를 돌보았을 사람일 것이다.

“지학영입니다.”

아마 내가 누군지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내 대답에 대한 그들의 침묵이 말해 주고 있었다. 두 사람이 되새기고 있을 침묵을 무시하고 나는 이곳에 온 목적을 말했다.

“지영우 군을 데리러 왔습니다.”

❊ ❊ ❊

서문희를 닮아 건강이 좋지 않아 집에서만 지냈다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스무 살의 아이는 꼭 덜 자란 모양새였다. 키가 유난히 작다거나, 병색이 완연하게 창백한 것은 아니었으나 흘끔거리며 나를 쫓는 눈빛이 순수한 서투름을 가득 띠고 있었다.

나와 눈을 처음 마주치자마자 벌어지던 작은 입술, 붉게 달아오르던 하얀 뺨. 20년 전 기억처럼 아이는 나와 전혀 닮지 않은 생김새였다. 얼굴 선은 매끄럽고 부드러웠으며 눈매가 유난히도 순해 보였다. 서문희와 똑 닮았으면서도 분위기만큼은 전혀 달라 닮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저택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두 손을 무릎 위로 꼭 말아 쥔 채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눈을 내리깐 그 모습이, 처음 보았던 갓난아기 시절에 잠이 든 모습과 무척 흡사했다. 기다랗고 숱 많은 속눈썹도 그때와 똑같았다.

내가 침묵을 지키며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줄은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아이는 차가 중간중간 신호에 걸려 정차할 때나 살며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조심스레 바라보았고 나는 그때마다 시선을 거두고 정면을 향했으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는 조용히 창밖을 보던 시선을 거둘 때 흘끔 나를 바라보았다. 정면을 향하고 있어도 알 수 있을 정도의 서투른 기척과 작은 호기심이 느껴졌다. 나는 그 호기심을 채워 주기 위해 내색하지 않고 지켜보도록 내버려 두었다. 대놓고 볼 성격이 되지 못하는지 차가 다시 움직이면 아이는 바로 고개를 숙이고 벌건 목덜미만 내놓았다. 하얀 피부가 꼭 꽃물이 든 것 같은 빛이어서 작은 웃음이 흘렀었다.

“왜 그렇게 웃어요?”

잠시 생각하고 있던 아이의 모습이 질문으로 어그러졌다. 오랜만에 만난 재형이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손에는 술잔을 들고 있었는데 내 몫인 모양인지 입술 근처에 잔을 가져다 댔다. 손으로 강하지 않게 잔을 밀어 내자 의문의 빛을 띠운 그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오기 전 샤워라도 했는지 물기 어린 향이 풍겨 왔다.

“안 마실 거예요?”

내가 치워 버린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재형이 내 넥타이에 손을 뻗었다. 손길이 무척이나 귀찮게 느껴져 상체를 뒤로 물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몸을 내 쪽으로 포개어 위로 올라탔다. 흘끔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바지를 입지 않은 그의 아래가 불룩한 것이 보였다.

“차 가지고 왔어.”

“자고 가는 거 아니에요?”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끔 재형의 집에서 밤을 보내고 이른 새벽 집으로 들어가는 일이 있었다. 그는 오늘이 그날이길 바라는 것 같았지만 난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할 말 있어서 들렀어.”

“할 일은 아니고요?”

자신의 행동에 호응이 없자 내게 올라탔던 몸을 내리며 옆자리에 앉은 재형은 가지고 온 술을 마시며 말했다. 나는 그가 올라타는 바람에 구겨진 옷을 정리하며 이곳에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할 말보다 부탁이 더 맞겠군.”

“부탁이요? 선배가 나한테?”

“그래.”

부탁이라는 말이 낯설었는지 재형이 잔을 다시 내려놓고 집중했다. 내가 부탁이라는 말을 내뱉게 만든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말에 눈을 휘며 눈부시게 웃던 얼굴을 본 뒤로 종종 일어나는 증세였다.

“일주일에 세 번. 집에 와서 학생 하나 가르쳐 줘.”

“네?”

“말 그대로야.”

아버지는 내게 아이의 선생을 구하라고 했다. 그 말인즉 본인의 치정으로 인한 삶의 결과를 수치스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구해 오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뜻에 반하지 않으며 아이에게도 괜찮은 수준의 선생을 생각해 보았을 때 떠오르는 사람은 재형이었다.

아버지의 치정도, 아이의 존재도 알고 있으며 그럭저럭 괜찮은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이였지만 거슬리는 것은 내가 그를 최근 들어서 성가셔한다는 정도였다.

“잘 모르겠어요. 자세히 얘기해 주세요.”

보채는 목소리와 함께 술에 젖은 재형의 혀가 내 입술을 스쳤다. 내가 그를 성가셔하는 이유가 또 하나 추가되고 더 이상 만남을 잇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한 손에 들어오는 그의 턱을 지그시 잡고 치우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보였다.

“어제부터 그 아이가 집에 왔어. 선생을 하나 구해야 하는데 나는 네가 아이의 선생을 해 줬으면 해.”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재형도 같이 몸을 일으키곤 현관 입구로 향하는 나를 쫓아오며 물었다. 조심스러우나 궁금함을 감추진 못한 목소리였다.

“선배 이복동생 말하는 거예요?”

“알다시피 그 아이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이니 남들 모르게 조용히 가르쳐야겠지.”

내가 오자마자 재형이 넣어 놨는지 어느새 구두가 신발장에 들어가 있었다. 구두를 찾아 꺼내고 발을 끼워 넣자 그가 맨발로 내려와 두 팔 벌려 현관문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비장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부탁하는 거라면 이렇게 가지 말아요.”

“…….”

“오늘 밤 나랑 같이 있어요.”

고운 얼굴을 가진 녀석이라 만나 보았지만 그뿐이었다. 내게 흥분을 주지 못했고 더욱이 안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지 않았다. 가끔씩 원색적인 욕구를 풀고 싶을 때 좋았던 정도인 상대였다.

“네가 생각이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볼게.”

“……선배!”

가련해 보이는 얼굴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자 그의 몸이 힘없이 옆으로 밀려났다. 장애물이 없어지고 나는 문을 열었다.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의 집을 나섰다. 아마, 며칠 뒤에 그에게 연락이 올 것이었다. 나의 부탁을 수락한다는 내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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