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녀, 윤혜우 (27/27)

그녀, 윤혜우

“라원 미술관을 시작으로 호텔, 면세점 사업까지 손대는 것마다 성공 가도를 달리는 윤혜우 대표. 그녀가 이끌어 가는 사업과 재단, 그리고 비밀에 쌓여 있던 라원家(가)까지… 국내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 리더의 개인적인 인터뷰를 어렵게 성사시켜 연말 특집 코너로 본지에 담아 보았다”

그녀의 첫 인상은 ‘아름답다’였다. ‘윤혜우 스타일’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감각 있는 옷차림,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당당한 걸음걸이. 귀에 들리는 하이힐 소리가 운율처럼 느껴질 만큼 우아한 사람이었다. 인터뷰를 약속한 당일 오전에야 국내에 입국했다는 그녀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인터뷰 내내 화사한 웃음과 온화한 카리스마로 인터뷰를 이끌었다.

인터뷰 장소는 5년 전 개관 시 혁신적인 건물 디자인으로 떠들썩하게 주목받았던 炫(현) 미술관의 카페테리아였다. 미술관의 시그니쳐 인테리어인 투명한 유리창이 돋보이는 공간이기도 했다. 때마침 그녀를 만나기 전 눈이 내리기 시작해 운치가 더해지고…… 그 공간에서 그녀가 즐겨 마신다는 뜨거운 케냐AA를 한 모금 마시며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윤혜우 대표님. 언론사 첫 개인 인터뷰인데 그 영광의 기회를 저희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말씀 듣고 보니 정말 이런 인터뷰가 처음이네요. 오늘 날씨가 많이 궂은데 오는 길은 괜찮았나요?

-눈이 오기 전이라 괜찮았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어떠셨어요? 오늘 오전에야 입국하셨다는 얘길 들었습니다.-이때의 시간은 미술관 개관 전인 오전 9시 30분이었다- 연말이라 일궈 가고 계시는 사업 부문이 한창 바쁘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실제로 그러하신 것 같아요.

네, 실제로 정말 바쁩니다. 그래서 인터뷰도 이렇게 아침부터 하게 됐네요. 제가 지금 벌려 놓은 건들이 많아요.(웃음) 연말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서 지금 당장 우리가 인터뷰하고 있는 미술관의 특별 전시회부터 호텔 프로모션, 또 해외 면세점 확장까지 정신이 없어요. 거기다가 최근에 기부 펀딩을 시작했죠.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실 것 같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기부 펀딩을 설립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특별한 계기라기보단… 얼마 전 미술에 재능이 있는 저소득층 아이들을 초청해 미술관 투어를 했어요. 그 아이들을 보며 문득 생각을 하게 됐죠. 올 한 해가 지나가기 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거나 어려운 사람들도 조금이나마 따듯하게 보낼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고요.

-평소에도 기부를 꾸준히 하고 계신 것으로 알아요. 특히 소아 환우들에게요.

저는 아이들을 참 좋아해요. 아이들이 가진 순수함과 선함을 동경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그것을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많은 사람들이 제가 하는 기부에 대해서 좋게 봐 주시고 대단하다고 하시죠. 그런데 제가 하는 기부는 정말 보잘것없는 것이에요. 이 세상에 저 말고도 더 대단한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대표님 개인적으로 기부한 누적 금액만 300억이 넘으시던데요. 재단 사업이나 사업체에서 기부한 것들을 제외하고도요.

저도 정확히 모르는 기부 금액을 알고 계시네요.(웃음) 액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뿐이에요. 기부를 하는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시작할 겁니다. 또 물질적, 금전적이 아닌 마음으로, 재능으로 하는 좋은 분들도 있고요.

-현명한 말씀이세요. 이런 대표님 밑에서 자랐기 때문일까요? 아드님인 라원 전자 지학영 사장님이 이번에 폐질환을 앓고 있는 환우들을 위해 라원 재단 병원에 큰 기부를 하셨어요.

아, 저도 기사를 통해 봤어요. 지 사장이 폐질환 환자들에게 관심이 있는 편이죠.

-지학영 사장님 팬입니다. 아드님에 대해 조금 더 얘기를 해 주세요.(웃음)

오늘 제 인터뷴데 이러시면 곤란해요. 농담입니다.(웃음) 지 사장은 이제 품 안의 자식이 아닌지라 4년 전부터 독립해서 나가 살고 있어요. 서로 바쁘다 보니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서 식사를 해요. 저도 이제 나이가 있고 지 사장도 서른을 훌쩍 넘긴 지 오래라 따로 챙겨 준다거나 하진 않아요. 어릴 때부터도 손이 많이 가거나 말썽을 부리는 타입은 아니었어요. 알아서 잘하는 자식이었죠. 아, 말하고 보니 한 번 말썽을 부렸었네요.

-4년 전 갑작스럽게 일선에서 물러났던 일 말씀하시는 거죠?

네. 맞아요. 지 사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린 말썽이었죠. 다 큰 자식에게 말썽이라는 말은 안 어울리지만 따로 표현할 말이 없네요.

-그 당시에 경제지를 포함한 많은 언론에서 말들이 많았어요. 대표님과 라원 그룹 지기환 회장님의 불화설도 같이 떠올랐었고요.

그때 당시 많이 지쳐 있었어요. 지 회장님도, 지 사장도, 그리고 저도요……. 이미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니 돌려 말하진 않을게요. 회장님의 혼외자 일도 있었고요.

“지난 과거를 담담히 떠올리는 윤혜우 대표의 얼굴에서 작게 미소가 떠올랐다. 들추고 싶지 않은 사실일 텐데도 그녀는 거리낌 없이 편집자에게 솔직한 대답을 해 주었다”

-조심스러운 질문입니다. 회장님의 혼외자가 4년 전 일에 영향을 준 건가요?

아뇨,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 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잘못이 있다면 오래전부터 곪아 있었던 우리 부부가 문제였죠. 지 사장이 일선에서 물러났던 건, 앞으로 살아갈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을 찾기 위해서였어요. 말 그대로 도전이었죠. 회장님과 트러블도 있었고, 저에게 실망을 안겨 주는 행동도 했었죠…. 우리도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고, 가끔은 감정적으로 될 때도 있어요. 모든 것을 완벽히 맞춰 살 수는 없었죠. 하지만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죠? 저야 그렇다 쳐도, 회장님이 결국 지 사장에게 한발 물러섰어요. 건강이 부쩍 나빠지기도 했고…….

-라원의 승계가 비교적 빨리 진행됐다는 평이 지배적이에요.

떠날 사람은 빨리 떠나는 것이 좋죠. 지 사장은 충분히 라원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거예요. 제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웃음) 대단하죠. 얼마 전 대통령 초청 기업인의 날에 찍힌 기사 사진으로 여성들에게 아주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어요.

아, 그날 저도 같이 갔었는데요. 제 사진은 못 보셨나요?

-봤습니다. 두 분이 나란히 서 계셨는데 후광이 엄청났어요. 실례지만 대표님 키가 어떻게 되세요?

173cm예요. 키가 큰 편이죠. 지 사장 키도 물어보실 것 같으니 미리 말씀드릴게요. 188cm 정도일 거예요. 군대 가기 전 키니까 그보다 조금 더 클지도 모르겠어요. 지 회장님도 지금은 노환으로 줄었지만 180cm는 훌쩍 넘는 키예요.

-역시 타고나야 하나 봅니다. 대표님과 지 회장님의 옛날 사진을 보면 선남선녀세요. 아, 물론 지금도 변함없지만요. 지 사장님이 그런 두 분의 좋은 점만 빼다 닮아서인지 여성분들에게 인기가 대단해요. 아직 미혼이라 더 그렇고요.

그런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결혼 생각이 없다고 해요.

-아, 비혼 주의인가요?

제가 본인이 아니니 그것까진 모르겠어요. 저는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본인이 행복하기만 하면 상관없어요.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이건 인터뷰에 포함되지 않은 질문입니다만,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대표님은 결혼을 하실 건가요?

글쎄요? 우선 졸혼을 생각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대답은 정해져 있겠네요.

-졸혼이요?

네. 졸혼이요.

“예상치 못한 발언에 편집자는 당황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한 사람처럼 달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황했습니다. 라원가는 항상 베일에 싸인 존재인 줄 알았어요. 대표님, 지금 인터뷰 내용 괜찮으신가요?

괜찮아요. 회장님도 저도 휴식이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뭐, 물론 제 의견이 주를 이뤘지만요. 제 나이가 벌써 환갑이 넘었어요. 회장님은 곧 일흔을 바라보고 있죠. 지난 40년의 결혼 기간이 우리 두 사람 일생에 있어서 결코 적은 세월이 아니었어요. 이제는 온전히 저를 위해 남은 생을 살고 싶어요. 현재 하고 있는 사업들과 재단 일이 제 삶의 원동력이 되어 주고 있는 지금, 더욱 그러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럼 한남동에 있는 라원가 저택에서 나오시는 건가요?

네, 그럴 예정이에요. 하지만 회장님은 그곳에서 머무를 겁니다. 저는 요새 새로운 집에 꾸밀 인테리어부터 시작해서 가구나 소품 같은 것들을 직접 알아보고 있어요. 소소한 재미가 있더군요.

-아무래도 미술을 전공하셨는지라 인테리어가 훌륭하게 완성될 것 같아요. 혹시 본인을 위해서 따로 즐기는 것이 있으세요?

편집자님 말처럼 미술을 전공했던 사람이라 미술품이나, 고 건축물에 관심이 많아요. 해외 출장이 잦은 이유이기도 해요. 이렇게 얘기하니 일만 하는 것같이 들리지만 그건 아니에요. 업무와 관계된 감상 말고도 따로 시간을 내어 작품을 보러 다니기도 하고, 또 수집에도 취미가 있어요.

-준비한 질문을 다 하기도 전에 벌써 미술관 개관 시간이 다 되었네요.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 마지막으로 질문드릴게요. 누구보다 종횡무진 바쁘게 활약을 하셨던 올해의 연말, 무엇을 하실 예정인가요?

그렇네요. 벌써 개관 시간이네요. 인터뷰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알았다면 스케줄을 더 뺄 걸 그랬나 봐요.(웃음) 연말에 할 일은……. 제가 벌려 놓은 일들 잘 마무리하고 싶어요. 제 산하에 들어와 있는 임직원들에게 두둑한 성과금도 줘야 하고요. 그리고……. 연말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아들들을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어요. 지 사장이 동생과 같이 지내는데 그 집에 절 초대했거든요. 그 아이들과 함께할 거예요. 오랜만에 엄마 노릇을 하러 가야죠.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그대에게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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