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롤로그(1권) (1/19)

File#0. 오수민, 23세, 오메가

유독 일진이 안 좋은 날이 있다. 평소보다 좀 더 특별하게 재수 없는 날.

수민은 제 모든 것이 든 낡은 백팩을 한쪽 어깨에 멘 채, 버스 정류장에 앉아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하늘이 온통 붉었다. 활활 불타는 것 같기도 했다.

하늘 아버지께서 물로 세상을 쓸어 버린 뒤 약속하기로 다시는 이 세상을 물로 단죄하지 않겠노라 하였으니. 다음번의 심판은 반드시 불로 이루어지리라.

그날이 오늘일까?

수민은 잠깐 기대했으나 이내 단념했다. 하늘이 저리 붉은 데도 지상의 피조물들은 실수로라도 불타지 않았으니까.

노을 아래 세상은 여전히 바쁘고, 회색빛이었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수민은 인정해야 했다. 납득해야 했다. 받아들여야 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삶을 살아 나가야 한다는 것을.

반복되는 삶은 고단하지 않았다. 다만 막막했다.

막막함.

감당할 수 없는 막막함이 수민을 잠식했다.

막막함은 무력함을 닮아 있었다. 수민은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수십 대의 버스를 떠나보냈다.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둑해졌다. 이름 모를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누구도 낡은 옷차림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캡 모자를 꾹 눌러쓴, 어딘지 모르게 수상해 보이는 청년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턱선이 갸름하고, 목이 희고 길었지만, 그렇게까지 그를 자세히 보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저도 모르게 힐끔, 수민을 보았다가도 혹시나 엮일라 서둘러 고개를 돌릴 따름이었다.

만약 오메가 페로몬을 풍기고 있었다면 질 나쁜 알파가 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쪽으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수민은 꽤 오랫동안이나 멍하니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오늘은 그냥 여기서 밤을 새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길 건너편을 바라보는데.

발소리가 들렸다.

수많은 사람이 지나쳤다. 수많은 발소리를 듣고 흘려보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이 발소리만은 신경이 쓰였다.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어떤 ‘냄새’가 났다.

수민은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한 남자가 수민의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얇은 코트를 입고 있었고, 담배를 물고 있었으나 불을 붙이진 않았다.

남자가 수민을 내려다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담배 연기 말고,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밥은 먹었니.”

그가 물었다.

“…….”

수민은 지독하게 피곤하고 지친 눈을 하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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