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4/19)

File#3. 라-반십교-I-CASE008

“씨발, 태백산맥을 타고 사이비 수맥이 흐르나.”

정훈은 기분이 더러웠다. 언제는 안 더러웠던 적이 있겠냐마는. 요즘, 그리고 오늘. 특히나 더러웠기에 괜히 민족의 정기가 흐르는 산맥을 걸고넘어졌다.

일제강점기 때 민족의 정기를 끊는다고 일제 놈들이 산마다 쇠말뚝을 박았다던데. 어디선 진짜라고 하고 어디선 괜한 말이라고 하던데. 요즘 들어 진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조그만 땅덩이에서, 그것도 반으로 나뉜 상태라 더 조그마한 곳에서, 사이비 종교가 이리도 많이, 지랄 맞게 날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안에서만 복작대면 다행이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교세를 불린 사이비 종교는, 그러니까 국내 경쟁에서 살아남은 것들은 반드시 해외로 사방팔방 뻗어 나갔다.

덕분에 정훈이 속한 조직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사이비 집단 해체 맛집으로 유명해졌다. 유명해진다고 해봤자 조직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아는 사람들끼리나 농담 반 한숨 반 섞어 하는 말이지만. 딱히 사이비 집단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곳은 아닌데, 맡은 사건 열 건 중 대여섯 건이 사이비 집단과 연결되어 있으니 그런 말을 들을 법도 했다.

이 나라의 사이비란 것들은 체감상 하나를 잡으면 두 개가, 두 개를 잡으면 네 개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잡으면 잡을수록 난이도는 더 극악해졌다. 순한 맛을 잡으면 매운맛이 되고, 매운맛을 잡으면 핵불맛이 된달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잡은 사이비 종교는 초강력 핵불맛이었다.

“개씹교 같으니라고.”

정훈은 이를 벅벅 갈며 일부러 센 어조로 말했다. 그래도 개같은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원인은 분명했다. 본인도 알았고, 함께 한 달째 야근하는 부하들도 알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정훈을 쪼고 터는 윗대가리들도 알았다. 그럼에도 윗대가리들은 정훈을 쪼아 대고 털어 댔다. 부하들은 염치없게도 자기 좀 살려 달라며 우는 소리를 냈다. 그래서 정훈은 더더욱 윗대가리들에게 대들고, 부하들을 개같이 굴렸다. 개같은 기분은 함께 누려야 배가 되니까. 나누지 않으면 열 배가 되고. 씨발.

‘그땐 젊었지.’

정훈은 불과 3년 전, 혼자 수상한 냄새를 맡고 막무가내로 이 일에 뛰어들었던 과거의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며 사납게 웃었다.

1년 삽질 끝에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자살인 듯한 타살, 공통분모가 없어 연쇄 살인으로 생각할 수 없는 살인 사건들을 묶어 <묻지마 사회 명사 연쇄 살인(의심안) 건>으로 명명했다. 그게 2년 전 일이었다.

언론에서 뒤늦게 냄새를 맡고 음모론을 떠들기 시작한 건 작년 이맘때였다.

그즈음부터 이 기묘한 연쇄 살인은 방식이 과격해졌다. 언론이 수상한 냄새를 맡을 만큼.

살인은 방화, 자살, 사고로 위장되는 선을 넘어섰다. 살인 집단―정훈은 개인의 범죄 행위일 수 없다고 확인했다.―은 대담하게도 광화문 한복판에서 약물을 써 사람을 죽였다. 외진 곳의 폐건물에 고인의 시체를 기묘한 모양으로 능욕해 가져다 놓았고, 살해당한 거라고밖에 볼 수 없는 모습으로 시체를 훼손시켜 놓기도 하였다.

이에 조직에서는 살인 집단이 점점 제어를 잃고 날뛰는 거라 판단했고, 그들의 자만심을 부추겨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할 생각으로 언론 보도를 통제했다. 그러기 위해 살해당한 피해자의 사인을 적절히 숨기기까지 했다. 피해자와 유가족에겐 송구한 일이지만 범죄 집단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선 필요한 조치였다.

오랫동안 공들인 일이었다. 그 노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정훈은, 조직은, 마침내 핵심 세력 중 생존자를 모조리 잡아들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간 공들인 것에 비하면 너무 볼품없었다.

‘핵심 세력 중 생존자’란 대목이 정훈의 기분을 개 같게 만든 원인 중 하나였다.

살인 집단이 사이비 집단이란 걸 알아내고, “빌어먹을, 또 사이비냐.”라고 분노했던 건 잠깐이었다. 사이비 집단은 이전에 잡아 족쳤던 사이비 집단들과 차원이 달랐다.

몇 번, 이쪽 사람을 위장해 투입시켜 봤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점조직 말단 이상은 올라가지 못했다. 중요 인사를 매수하고 싶어도, 누가 중요 인사인지 알 수조차 없었다.

정말 개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개같은 사이비 집단이 있는데. 그 집단에서 계속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 같은데. 국내에서 개지랄하는 것도 모자라 대외적으로, 교포 사회를 중심으로 세를 넓혀 더 큰 개지랄을 벌이고 있는데.

심증은 분명한데. 물증도 있는데. 그 물증을 이 사이비 집단과 연결시킬 수 있는 결정적 단서는 고사하고, 사이비 집단 수뇌부의 조직도조차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니.

자존심이 꽤 상했다. 겨우 파악해 둔 점조직 하단부라도 급습해 정보를 빼내 볼까 무리수를 두고 싶을 만큼.

물론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그랬다간 바로 꼬리 자르고 숨어들 텐데?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막막하여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였다. 개같은 사이비 집단 내부에서 이쪽으로 연락을 보내왔다.

우리가 수사하고 있는 걸 알아차린 건가? 그래도 그렇지, 한낱 범죄 집단이 감히 공노비, 아니, 공무원한테 먼저 연락해? 간땡이가 부었구나, 니들이. 그런데 이 연락 받으면 위치 추적해서 바로 잡아들일 수 있을까?

정훈은 고민 끝에 모험을 감행했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저쪽에서 온 연락을 직접 받아 교섭에 나섰다.

도박은 성공했다.

그 빌어먹을 사이비 집단의 내부자가 협조하겠다고 했으니까. 몇 번의 검증 끝에 내부 고발자들의 진정성을 확인한 정훈은 무음으로 아리랑 트위스트를 췄다.

나중에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본 부하들이 탕비실에서 뒷담화하는 걸 들었다. 팀장 놈이 드디어 미쳤구나 싶었다고.

정훈은 그 뒷담화를 듣고도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원했던 내부 고발자를 얻었는데, 고작 그 정도 뒷담화에 화낼 일이 무어랴. 하하하.

탕비실에서 나도, 나도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놈들이 한 달 동안 집에 못 들어가고 죽도록 일한 건 절대 보복성 업무 분담이 아니었다. 바빠서 그런 것이었다. 바빠서.

함 씨와 안 씨.

내부 고발자들은 본인들을 그렇게 밝혔다. 정훈은 그들이 정말로 함 씨와 안 씨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훈이 쫓고 있는 사이비 집단 내에서 꽤 높은 자리에 올라 있으며, 그 사이비 집단을 무너뜨리기 위해 정훈에게 적극 협조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함 씨와 안 씨가 말했다. 죽은 자식의 복수를 위해서라고.

함 씨와 안 씨는 정훈에게 정기적으로 사이비 교단의 정보를 제공했다. 적절한 시기에 교단 수뇌부들이 모여 있는 아지트를 알려 주겠다고 약속도 해주었다.

그들이 보내 준 첫 정보는 정훈이 지난 3년간 별별 짓을 해도 완성하지 못했던 사이비 집단 수뇌부 조직도와 점조직들의 위치였다.

정훈은 자료를 받아 사이비 집단의 조직도를 완성했다. 덕분에 전국에 뻗어 있는 점조직의 위치와 중간 관리자급들까지 전부 파악할 수 있었다. 그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알 만한 기업의 회장님들과 3선 이상 국회의원들 몇몇까지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알파와 오메가를 차별하는 태도를 보여 문제가 됐던 사람들이었다.

연락은 함 씨와 안 씨 쪽에서 일방적으로 보내 왔다. 정훈은 그들의 안전을 위해 섣부르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딱 한 번, 적당한 기회를 틈타 적당한 위험을 감수하여 먼저 연락해 물어보았다.

왜 우리를 끼워 줬냐고.

함 씨와 안 씨가 보내오는 정보는 하나같이 고급졌다. 그들이 이미 사이비 집단 내부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올라가 있을 거라는 건 안 봐도 비디오였다.

‘조직도 최상위에 올라와 있는 여덟 장로 중에 적어도 한 명은 함 씨나 안 씨일지도 몰라. 어쩌면 둘 다 장로급일지도.’

정훈은 내심 짐작했다.

그 정도 위치에 올랐다면, 그들의 자식을 죽인 살인범 정도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든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쪽에 연락하여 사이비 집단 내부 정보를 유출하는 걸까.

정훈은 일방적인 도움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함 씨, 혹은 안 씨는 왜 위험하게 먼저 연락해서는 그딴 질문이나 하냐고 화내지 않았다.

잠깐의 머뭇거림 뒤, 수화기 너머로 음성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 아이들이 있다고. 전부 교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인데 아무것도 모른 채 이용당하고 있다고.

-당신들이라면 이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켜 줄 수 있겠지요? 그러리라 믿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자식을 잃은 사람들이라 그런가? 그쪽으로 예민하군.’

정훈은 그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이비 종교 집단이 어린아이들을 세뇌해 이용해 먹는 게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정훈은 그런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사이비 교단 설립 기본 강의>란 책이 있다면 ‘1장 교리 만들기’ 다음으로 ‘2장 미성년자 착취 방법’이 쓰여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감정적으로 무뎌져 버렸다. 으레 당연한 일로 여기고 넘겨 버렸다. 뒤늦게 반성하건대 너무 안일했다.

정훈은 안일함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 달 전, 함 씨와 안 씨가 마지막이라며 정보를 보냈다. 평범한 택배로 위장되어 온 두툼한 서류철에는 사이비 집단의 회계 장부와 20여 년 전에 일어났던 범죄에 대한 자료가 들어 있었다.

<여성-베타 임산부 대규모 실종 사건>. 전국적으로 수백 명이 실종되었는데, 실종자 중 단 한 사람도 찾지 못한 미제 사건.

20여 년 전. 전국에서 임신 5개월에서 만삭 사이의 임산부들이 사라졌다. 피해자들 사이에 공통점은 베타, 그리고 여성 임산부였다는 것뿐이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당시 중앙 부처에선 대대적으로 특별 수사본부를 꾸렸다. 컨트롤 타워에 대통령이 직접 참여했다. 치안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한 전국의 경찰이 대대적으로 수색에 나섰다. 군인도, 민간 자원봉사자까지도 있는 대로 동원되었다.

해경과 해군이 서해와 남해의 수많은 섬, 작은 무인도 하나까지 뒤졌으며 지방 공무원들은 휴가를 반납하면서까지 해당 행정 구역 안을 살폈다. 나중에 가서는 항구에서 해외로 수출되는 컨테이너까지 전수 조사했다.

하지만 실종자 중 단 한 명도 찾지 못했다. 이 작은 땅덩이에서, 치안 유지가 잘 되기로 유명한 나라에서, 수백 명의 임산부가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알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실종자의 가족들이 제발 사람 좀 찾아 달라며 경찰청장의 차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납북설, 중국 인신매매설, 사이비 종교에 단체 투신설 등등 별별 말이 나돌아 사회 분위기도 을씨년스러웠다.

그 사건이 이 빌어먹을 사이비 집단의 짓이었다니.

사이비 집단을 최근 몇 년간 일어난 <묻지마 사회 명사 연쇄 살인 사건>의 주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정훈은, 정훈이 속한 조직은, 단체로 뇌가 표백되는 기분을 맛봤다.

사이비 단체는 수십 년 전 결성되어 음지에서 꾸준히 세를 불렸고, 자신들의 교리대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2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행동에 돌입했다.

그 일환으로 수백 명의 여성, 베타 임산부를 납치하여 가뒀다. 실수로 섞여 들어온 오메가 임산부는 바로 죽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임산부를 죽였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대부분의 임산부가 아이를 낳다 죽었다.

어미를 죽이고 태어난 아이들은 밖과 격리된 채로 철저히 사이비 종교 집단의 교리에 세뇌된 채 자라났고, 수뇌들은 기준에 미달되는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솎아 내’ 죽였다. 수백의 사람들이 수십, 그리고 스무 명가량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아이들은 장로라 불리는 사이비 집단 수뇌들에게 몇 명씩 할당되어 교단 운영의 도구로 이용당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 계속.

서류 마지막 장엔 당일 오후 4시에 하단의 주소지를 급습하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그 주소지가 사이비 집단의 본거지였다. 정훈이 그렇게 요청해도 아직 때가 아니라며 알려 주지 않았던.

오후 4시.

당장 출동해도 그 시간에 맞출 수 있을 둥 말 둥 했다. 일부러 시간을 딱 맞춰 보낸 거겠지.

정훈의 팀은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낡은 기도원을 급습했다. 그리고 좀 더 일찍 도착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기도원은 피바다였다. 장로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대부분 죽어 있었다. 대부분이라 한 것은 적어도 한 명은 건졌기 때문이었다. 예배당엔 여섯 구의 시체와 한 명의 예비 시체가 있었다.

다섯 명은 칼에 찔려 죽어 있었다. 한 명은 칼을 손에 든 채로 엎어져 있었다. 뒤통수가 함몰되어 있었다. 정훈은 본능적으로 그가 안 씨임을 알아챘다.

안 씨가 죽이지 못한 한 명, 박 장로는 피 흐르는 배를 움켜쥔 채 벽에 기대 씩씩대고 있었다. 그의 발아래, 반으로 부러진 반쪽짜리 십자가가 나뒹굴고 있었다. 십자가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장로들이 데리고 있다는 아이들은 각자의 숙소에서 잠들어 있었다. 아이들의 식사에서 수면제 성분이 확인되었다.

정훈은 바닥에 난 긴 핏자국을 쫓아 걸었다. 죽어서도 칼을 놓지 못한 안 씨를 지나쳐 긴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피 칠갑 된 현장을 보았다.

교주가 옷을 다 벗은 채로 난자당해 죽어 있었다. 그 옆에 칼을 쥐고 쓰러져 죽은 사람이 보였다. 아마도 이 사람이 함 씨이리라. 그녀는 눈을 뜬 채로 죽어 있었다.

이곳에서도 생존자는 단 한 명이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멍하니 서 있는 생존자는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싶어 보이는 남자애였다. 그의 몸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다만 멍 자국 같은 정사의 흔적과 벌건 손자국이 몸 곳곳에 찍혀 있었다. 어떤 짓을 당했는지, 혹은 당할 예정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정훈은 마스크를 벗어 집어 던지고는, 제가 입고 있는 점퍼를 벗어 남자애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남자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항도, 울음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제 앞에 선 정훈을 가만히 올려다볼 뿐이었다.

눈이 유독 까맸다. 그 까만 눈을 보며, 정훈은 함 씨 혹은 안 씨가 전화로 했던 말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았다.

-당신들이라면 이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켜 줄 수 있겠지요? 그러리라 믿습니다.

둘은 이미, 죽기로 작정했고 죽이기로 작정했으리라. 그러기 위해 살았고 그 삶을 끝낼 마지막 날마저 정했지만, 교단의 아이들이 눈에 밟혔겠지. 그래서 조직에 접선했으리라.

그들은 복수를 끝냈고, 정훈은 그 뒤처리 담당이 되었다.

“젠장!”

정훈은 남자애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아플 텐데. 남자애는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때 처음, 상황이 개같이 굴러간다고 생각했다.

살아남은 유일한 수뇌부. 소위 박 장로라는 인물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수술 후 의사소통이 가능할 거란 병원 연락을 받고 찾아갔으나 박 장로는 돌아누운 채 묵비권을 행사했다. 정훈은 그가 조사를 견딜 수 있을 만큼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심심하진 않았다. 중간 관리자급들을 잡아들이고, 하부 점조직들을 일제히 수색하여 빌어먹을 사이비 집단을 사회에서 뿌리 뽑아야 했으니까. 그 과정에서 정훈이 꾸준히 주장해 온 사이비 집단의 명칭이 조직 내부에서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반십교.

발음을 세게 하면 어감이 좀 개같긴 한데. 그래서 더 좋았다.

‘그게 싫었으면 지들이 멋들어진 이름을 만들어 놨어야지. 뭐, 만들어 놨어도 그대로 불러 주진 않았겠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개씹교라고 부르고 있었다.

20년 전에 이미 전국적인 규모로 수백 명의 임산부 납치 사건을 저지를 정도의 조직을 갖췄던 이 사이비 집단은 스스로 내세운 명칭이 없었다.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기독교이며, 하늘 아버지와 그의 두 번째 아들을 따르고 믿을 뿐이기에 새 이름을 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옛날, 예수가 제자들과 사역할 때 자신을 예수 장로교니 감리교니 말했었겠냐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실제로도 그들은 평범한 개척 교회로 위장해 전국에 퍼져 있었다. 조사를 받게 된 교인들은 영문을 몰라 했다. 우리 교회는 대한 예수 장로교의 어느 연합회 어느 지역 노회에 소속된 교회라며, 뭘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냐며 매주 교회에서 나누어 주는 주보를 꺼내 보이기도 했다. 교회는 거기 쓰여 있는 대로, 해당 지역 노회에 등록되어 있긴 했다.

반십교의 교인은 교회의 목사와 열성 신도, 권사인지 집사인지 하는 한두 사람에 불과했다. 어쩔 땐 목사 말고, 목사 사모나 교회에 세를 준 건물주가 반십교 신도이기도 했다. 그런 경우에 교회의 목사는 월급 목사에 불과했고,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박 장로가 이런 경우였다.

그는 몇 개의 녹즙 대리점과 편의점을 가지고 있는 동네 유지였다. 젊은 시절에 형사로 일했다고 하던데, 출소한 범죄자에게 보복을 당해 어깨를 다치고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늦은 나이에 선을 봐 결혼했는데, 아내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아내를 따라 덩달아 기독교인이 된 그는 자신의 건물 중 한 곳에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교회를 열었다.

아내가 추천한 목사를 모셔와 월급도 드리고, 교회 운영비도 전부 대고, 때때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수술비와 병원비도 지원해 주어서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돈밖에 모르던 노총각이 여자를 잘 만나 사람이 됐다고.

그는 결혼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더욱 놀라운 결심을 했는데. 몸이 약한 부인을 설득해 출산 계획을 접고, 아이를 입양해 진짜 부모가 되어 주기로 한 것이 그것이었다.

그는 결혼한 후로 꾸준히 후원하고 봉사하러 다녔던 보육원에서 아이를 입양했다. 그 아이가 기도원 숙소에서 잠들어 있었다.

정훈은 당연히 박 장로가 후원했다는 개척 교회의 목사와 박 장로의 아내도 한편일 거라고 생각하고 조사했다. 하지만 둘은 반십교와 무관했다.

박 장로만이 사이비 집단의 간부였다. 그는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아내와 교회 목사까지도 속인 것이었다. 아내와 교회 목사는 박 장로가 자신들을 이용해 먹었다는 사실을 끝까지 믿지 않았다.

특히나 박 장로와 오랜 시간 살을 맞대고 살아왔으며 양아들을 제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아내의 믿음이 굳건했다. 박 장로의 아내는 당장 그 박 장로란 사람을 내 눈앞에 가져다 놓아 보라고, 죄 없는 내 남편과 아들을 내놓으라며 울부짖었다.

그 사이 박 장로의 상태가 호전되었다. 박 장로의 신변이 다시 이쪽으로 이관된 게 열흘 전이었고, 그로부터 사흘 후 ‘그 사건’이 일어났다.

“아, 씨발.”

정훈은 배 속 깊숙이에서 우러나는 한숨을 뱉으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좆같은 새끼들.”

정말 좆같은 사이비 집단이었다.

이쪽으로 끌려온 박 장로는 사흘 내내 침묵했다. 심문이라 해봤자 창 없는 조사실에 혼자 놔뒀다가 간간이 담당 요원이 들어가 조사하는 게 고작이었다. 쌍팔년도 영화에 나오듯 고문하는 일은 없었다.

구슬려 조서를 꾸며야 하는 필요성조차 느껴지지 않는, 그냥 줘패서 죽여 버리고 싶은 범죄자라도 일단 인도적으로 대해야 했다. 인도적으로 심문하는 데 도가 튼 담당자들이 기술적으로 범죄자를 바짝바짝 말려 죽이는 것쯤이야, 정훈이 알 바 아니었다.

일단 이쪽으로 사건이 넘어왔다는 건, 해당 범죄자가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개새끼라는 이유였다. 잡혀 들어온 놈들은 최소 연쇄 살인마급이었다. 지들이 피해자들에게 했던 걸 똑같이 되풀이해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렇게 따져서 범죄자를 처벌하는 법치 국가가 얼마나 있는가. 해봤자 감옥에서 평생 썩게 만들든가, 거의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형 선고를 내리고 언제 사형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게 하는 정도지. 처벌이 너무 약한 게 아닐런지?

그렇기 때문에 사적 복수에 제 인생을 내던진 함 씨와 안 씨에게 자꾸 마음이 갔다.

그건 비단 정훈만의 일탈은 아니었다. 음지에서 활동한다고 하나 그래도 나랏밥 먹는 조직인데도, 정훈의 팀 내부에선 사적 보복을 행한 두 사람을 동정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일가친척이 두 사람의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는 소식을 어디선가 듣고 와선 무연고 시신으로 넘기지 말고, 우리가 돈을 모아 간단하게라도 장례를 치러 주자는 말까지 나왔다.

임 권사와 허 집사.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자식을 잃곤 사이비 집단에 투신했다. 어찌나 철저했던지 일 년에 수수료만 수십억씩 벌어들인다는 세무 법인의 대표가, 건들거리며 돌아다니면서도 영 밉상은 아니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개새끼 소리까진 안 들었던 반건달이. 자식 잃고 미쳐 전 재산 사이비 종교에 다 가져다 바치고 패가망신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둘 다 복수를 마친 뒤 일상으로 돌아올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았다.

자식의 죽음이 반십교와 연관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으며, 평생 일군 모든 걸 다 버리고 오직 자식의 복수를 위해 교주의 개 노릇을 할 생각은 또 어떻게 했던 걸까. 국가의 처벌을 믿지 못해 스스로 칼을 들고 원수들을 죽이고 죽기까지, 매일 어떤 지옥을 견뎌야 했을까.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혔다.

정훈은 작년에 애 아빠가 됐고 얼마 전 돌잔치를 했다. 간소하게 양가 가족들만 모아 놓고 치렀는데, 아이가 돌상을 받자마자 우앙- 우는 바람에 아내랑 둘이서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모른다.

겨우겨우 실을 잡게 하고, 실타래를 목에 걸어 줬다. 오래 건강하게만 살라고. 공부는 못해도 되고, 크면서 속 썩여도 되니까. 아프지만 말라고, 바라고 또 바랐다.

그 아이가 납치된다?

생각만으로도 피가 식었다.

정훈은 감히 자신하건대, 함 씨와 안 씨, 아니 임 권사와 허 집사 이상으로 잔인해질 자신이 있었다. 방심하여 박 장로를 살려 두는 실수 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끔찍하게, 잔혹하게 죽일 것이다. 죽기 직전까지 차라리 죽여 달라 애원하며 빌게 만들 것이다.

“씨발, 진정하자, 진정해.”

정훈은 격해진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

금방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던 건, 유일한 생존자인 박 장로마저 일주일 전 죽었기 때문이었다. 불의의 사고였으나 시말서 감이었다. 그 일 때문에 정훈은 이후 계속, 오늘 아침까지도 국장실에 끌려가 한 소리를 듣고 있었다.

‘시발. 박 장로인지 청년인지 혼자 살아남은 게 아니꼽다고 생각했지만, 죽으라고 제사 지낸 것도 아니고 방조한 것도 아니었다고. 그냥 일반적인 대면 조사였을 뿐인데.’

조사실에 갇힌 사흘 동안, 박 장로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 외엔 한마디도 안 했다. 밥은커녕 물도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옆방에서 저 새끼를 어떻게 조져야 할까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갑자기 박 장로가 입을 열었다.

“한 번만, 잠깐이라도 좋으니 그 아이를 보게 해주시오. 그러면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겠소.”

기도원에 동행했던 양아들을 만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아이 역시 다른 조사실에 들어가 있었고, 다른 아이들이 그러하듯 넋 빠진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였다.

조사관이 무슨 말을 하든 대답하지 않았다. 다행히 밥은 먹고 물도 잘 마시고는 있지만,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 장로보다 그쪽의 상태가 더 심각하다 할 수 있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피해자와 가해자를 대면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사이비 집단 수뇌부가 모조리 죽고 단 한 명만 남아 묵비권을 행사하는 상황은 특별한 상황이라 할 수 있는가?

정훈은 그렇다고 보았다. 하지만 무턱대고 대면시키진 않았다. 일단 박 장로의 양아들에게 가서 의사를 물었다.

“원치 않는다면 만나지 않아도…….”

“…….”

“괜, 찮았어?”

“…….”

사흘 내내 망가진 인형처럼 앉아 있던 아이가 반응을 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것에 불과하지만.

대면 조사는 만반의 준비 끝에 이루어졌다.

박 장로도 아이도, 여러 번 몸수색한 뒤 직사각형의 플라스틱 테이블에 마주 앉혔다. 의자도 플라스틱이었다. 양손은 수갑을 채워 책상에 고정시켰다. 사슬이 짧아 서로에게 닿을 수 없었다. 발에도 수갑을 채웠다.

옆방엔 정훈과 다른 팀 팀장이 참관했다. 조사실 안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담당자를 문 앞에 세워 두었다.

사방이 막힌 공간. 숨 막히는 감시 속에서 박 장로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괜찮니? 식사는 꼬박꼬박하고, 잠도 잘 자고 있고?”

오가는 대화는 평범했다. 아버지가 군대 간 아들을 면회 온 듯 자상하고 일상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말하는 건 박 장로뿐이었다. 양아들은 묵묵히 박 장로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내젓기만 하였다.

“뭔가 그림이 이상한데?”

정훈의 말에, 옆에 서 있던 타 팀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잠깐 멈춰 보라고 해.”

정훈이 앞에 앉은 부하의 어깨를 잡으며 창 너머로 통신을 보내려 할 때였다.

“날 죽여라, 아들아.”

박 장로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정훈은 앞에 앉은 부하의 어깨를 밀쳐 내며 마이크에 대고 버럭 소리 질렀다.

“야이씨, 막아! 어서!”

정훈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조사실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하지만 문가에 서 있던 담당자가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일이 벌어졌다.

박 장로의 양아들이 수갑 찬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책상을 내리쳤다. 쾅!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들어 올렸다. 발에도 수갑을 채웠으나 바닥에 따로 고정하지는 않았다. 두 다리가 뱀처럼 박 장로의 목을 휘감았다.

그 순간, 정훈은 박 장로가 웃는 걸 보았다.

그리고.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박 장로의 목이 꺾였다. 마지막 숨소리는 기괴했다.

양아들의 행동은 어느 것 하나 군더더기 없이 완벽했다. 깔끔하고 빨랐다.

정훈과 타 팀 팀장은 바로 알아챘다. 저놈이구나. 묻지마 사회 명사 연쇄 살인마. 이 사이비 집단이 공들여 키운 살인 도구가.

“막아, 씨발. 혀 깨무는 거 막으라고!”

정훈이 다시 소리쳤다. 하지면 역시나, 한발 늦었다.

이미 양아들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양아들은 조사실에선 그저 회색 시멘트벽으로만 보일 건너편 방을, 정훈을 보며 히죽 웃었다.

정훈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입 벌려, 어서!”

담당자가 뒤늦게 양아들의 턱을 붙잡고 입 속으로 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시뻘건 피가 꾸역꾸역 흘러내렸다.

“아악!”

담당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담당자의 손가락이 너덜너덜해졌다. 나중에 의사에게 보이니, 손가락이 잘리지 않은 게 용하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양아들은 바로 응급조치를 받았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당분간 말하긴 힘든 상태였다. 혀가 성했더라도 말을 할까 싶지마는.

아주 못하게 된 건 아니라지만 치료하고 훈련하여 어눌하게나마 말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리란 진단을 받았다. 양아들은 수술이 끝나자마자 정신과 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병동에 보내져 격리되었다.

그렇게 이 빌어먹을, 개같은, 좆같은, 미치광이 사이비 집단의 수뇌부가 다 뒈져 버렸다.

뒤처리할 걸 생각하면 아득했지만 한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짓거리를 저지른 새끼들을 20년이든 무기징역이든, 감옥에서 고이 늙혀 죽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개같은 일이었으니까.

정훈은 플라스틱 테이블에 말라붙은 핏자국을 보며 참 오랜만에 제 직업에 환멸을 느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악을 처단한다는 건 겉보기에나 멋있어 보일 뿐. 실상 알갱이 없는 허울뿐인 일이었다. 정훈은 신입 시절에나 할 법한 좌절을 다시 한번 맛보았다.

기분이 개같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박 장로가 죽은 후 기도원에서 발견된 아이들의 심문은 일단 중단되었다.

아이들은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사이비 집단에 세뇌당한 사람들이 국가 기관에 붙잡힐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수칙을 정해 행동하는 걸 여러 번 봤던 터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박 장로의 죽음 이후로 생각을 달리했다.

정훈은 즉시 전문 상담팀을 꾸려 아이들을 하나하나 파악했다. 또다시 박 장로와 양아들 같은 사태가 일어날까 염려되어, 반십교 교인들 간의 접촉을 철저히 막았다.

그 수고로움이 무색하게도 아이들은 박 장로마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금제가 풀리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간 어떻게 참았는지 궁금할 만큼 수다스러운 아이도 여럿이었다. 물론 그러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아이들 개개인의 성격을 파악하고, 꾸준히 관계를 쌓아 온 상담사들의 노력이 컸다.

상담사들은 아이들에게 가해진 제약, 예를 들면 ‘장로라 불리는 사람의 허락이 없으면 말해선 안 된다.’ 같은 내용을 알아냈다. 대부분의 아이가 굉장히 자의식이 강하다는 점도 캐치해 냈다.

장로들이 모두 죽었다는 걸 조심스럽게 확인시켜 준 뒤. 꾸준한 상담을 통해 쌓은 친밀감을 바탕으로 대화를 이어가자 아이들은 너무 쉽게 자신들의 속을 내보였다.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받은 아이’라고 말했다.

“선택받았다는 게 무슨 뜻이니?”

상담사가 조심스럽게 물으면 아이들은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으스대며 말했다.

많고 많은 아이 중에 선택받은 단 한 명. 선생님으로부터 직속 명령을 받아 아무도 모르게 임무를 수행하는, 교단에 없어서는 안 될 특별한 아이.

아이들은 자신이 바로 그 한 명이었다며 자랑하듯 증거를 늘어놓았다.

온갖 범죄 행위가 방언 터지듯 쏟아졌다. 하지만 누구도 사람을 죽였다고 자랑하지는 않았다. 일부러 숨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박 장로의 양아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정말 살인을 저지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정훈과 상담사들은 의기양양한 아이들에게 대놓고 말하지 못했지만, 누가 정말로 특별한 아이인지 바로 알아챘다. 그 아이에 비하면 다른 아이들은 잡범에 불과했으니까.

아이들이 했던 일은 고작 그 정도의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런 일들을 하며 저지른 부정을 씻기 위해 정기적으로 기도원으로 불려가 선생님을 만났다고 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방에서, 때론 장로의 부름을 받아,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 일이 자신이 특별히 선택받은 아이이기 때문에 받은 은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밖의 세상에서는 그들이 겪은 일을 성범죄, 착취, 유린, 폭력, 강간 등의 단어로 표현하며 흉악한 범죄로 본다는 걸 아이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아이들은 그게 진짜일 리는 없겠지만, 어쨌든 20대 초중반 나이를 증명하는 신분증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20년 전 일어난 그 대규모 임산부 납치 사건의 피해자들이라면 얼추 20대 초반의 나이이긴 할 터였다.

장로의 삼엄한 감시 아래 생활했다 해도 사회생활을 했을 텐데, 정말로 자신이 겪은 일을 ‘특별하고 성스러운’ 일이라 생각한 걸까?

상담 과정을 지켜본 정훈과 팀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강한 방어 기제, 아주 강한 방어 기제가 작용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저 아이들은 피해자이고 환자입니다. 치료와 보호가 필요해요.”

상담사들이 설명했다.

이후 팀원들은 상담사들에게 따로 교육을 받고 조사에 임했다.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생각하는 걸 의탁하며 살아왔다. 장로를 잃은 아이들은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하고 또 다른 어른에게 쉽게 의지했다. 또 다른 어른은 당연히 상담사였다. 상담사들은 본의 아니게 아이들의 비뚤어지고 비틀린 자아에 끼어들어, 또 다른 장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이들도 제가 마음을 열고 의지하는 상담사가 오지 않으면 말하지 않았다. 식사도 걸렀다. 조사를 진행하려면 상담사가 동석해야만 했다.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도, 팀원들에게도.

심각한 반응이라며 상담사들이 난색을 표하는 상황 속에서 한 아이가 정훈의 눈길을 끌었다.

김 장로가 데리고 다녔다는 아이. 한진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는 스물두 살이었고 베타였다. 주민등록증엔 그렇게 표시되어 있었으나 믿을 만하지 않았다.

살던 동네, 아르바이트하던 카페, 교회 사람들의 말과 달리 진영은 어느 보육원 출신이었다. 그 보육원은 반십교가 운영하던 것이었다.

그곳에 남아 있는 자료에서 찾은 진짜 한진영은 뚱뚱하고, 눈이 매우 나빠 안경이 없으면 걷지도 못하는 아이였다.

진짜 한진영은 보육원을 퇴소하기 몇 달 전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치료받은 병원이 반십교 교인이 운영하는 개인 병원이었다.

‘아마 거기서 바꿔치기 된 거겠지.’

기록상 한진영은 베타인데, 조사실에 앉아 있는 한진영은 오메가였다. 그 몸 상태를 오메가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튼 태어나기를 오메가로 태어난 것만은 분명했다. 발현하자마자 내부 장기를 적출당했는지 배 속이 엉망이었다. 배꼽부터 왼쪽 골반을 가로지르는 흉터는 말 그대로 흉했다.

있는 턱도 흉터 없이 깎고, 없는 코도 감쪽같이 만들어 내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정도 흉터라니. 작정하고 남겨 둔 것이리라.

‘오메가니까 그런 취급을 당해도 된다고 생각했겠지.’

진영은, 그거 말고 다르게 부를 이름이 없어 일단 진영이라 부르기로 한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좀 달랐다. 그곳에서 구조한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유의 오만과 자신감이 이 아이에게선 보이지 않았다.

“너는 네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상담사가 조심스럽게 묻자, 진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누가 특별한 것 같냐는 말에 박 장로의 양아들을 가리켰다.

“그 아인 저랑 달리 완벽하니까요.”

작은 목소리로, 더 완벽한 아이가 있었지만 이젠 없다고도 말했다.

완벽하다. 자신은 완벽하지 않다. 그 말은 아무래도 자신이 오메가였음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거라고, 상담사가 정훈에게 말했다. 상담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정훈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반십교는 알파와 오메가를 증오하는 종교 집단이었으니까. 그런 교리를 가진 집단의 교주가 열성 알파였다는 건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지만, 아무튼.

진영은 아이들 중 가장 유순하고 협조적이었다. 처음부터 질문에 곧잘 대답했고, 교단의 내부 사정을 물으면 잘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식사도 주는 대로 먹었다. 항상 다 먹진 못하고 반쯤 남겼다.

진영을 발견했던 상황이 다른 아이들보다 특수했기에, 담당자는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조심히 접근했다. 담당자가 저도 모르게 침통한 기색을 드러내고, 그 일에 대해 묻자 진영은 담당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그런 표정을 지으세요?”

“나는 네가 겪은 일을 완벽하게 공감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조금은 알 것도 같아서.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거기 있기 싫었을지 말이야.”

“……네. 싫었어요.”

“어?”

“들어가기 싫었어요. 선생님이 절 위해 그러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싫을 때가 종종 있었어요. 그런 마음을 가진 것만으로도 죄니까, 또 선생님께 가야 했지만요. 그런데.”

진영이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은 담당자를 바라보았다. 까만 눈에 담당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쳤다.

“선생님도 제 마음을 읽으시네요. 선생님도 관심법을 익히신 건가요?”

진영이 쑥스러운 듯 웃으며 물었다.

담당자는 울컥하여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영은 손을 뻗어 담당자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절 위해 울어 주시는 건가요?”

말간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묻는 진영의 모습을 보며, 건너편 방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팀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씹새끼. 그렇게 편하게 죽으면 안 됐었는데.”

참관하던 팀원 중 한 명이 이를 갈며 말했다. 다들 동의했다. 난도질당해 죽은 교주의 시체에서 그나마 성했던 성기에 총알을 한 무더기 박아 주지 못한 걸 한으로 여기는 듯했다.

정훈은 혀를 차며 마이크 앞에 앉은 부하에게 손짓했다.

“쟤 나오라고 하고, 니들도 나가서 머리 식히고 와.”

제일 협조적이어서 연차 낮은 팀원들을 붙인 게 문제였다. 눈물까지 글썽이는 담당자와 수습 팀원들을 보며, 정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만만치 않네, 저거.”

정훈은 유리에 비친 진영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곳에 온 이후로 한 달 내내, 웃는 얼굴이 백이면 백 다 똑같았다. 난처한 상황에서도, 기쁘다 말하면서도, 어색해하면서도, 배려에 고마워하면서도. 늘 저렇게 웃었다.

판에 박힌 듯 웃는 저 아이도 문제지만 자신도 문제라고, 정훈은 속으로 한탄했다. 눈물을 글썽이는 팀원을 욕할 게 아니었다.

‘나도 쟤가 똑같은 얼굴로 웃는다는 걸 최근에야 겨우 눈치챘으니까.’

그날 기도원에서 봤던 광경 때문일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진영이라는 아이를 내심 동정하고 안쓰러워하고 있다. 저 가식적인 웃음을 보면서도 애써 나쁜 쪽으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런 자신을 내심 경계하고 있지마는, 그럼에도 선입견을 물리치기는 참 쉽지 않았다.

‘넌 정말 뭐냐.’

정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

드러난 살인 사건들과 박 장로 양아들의 동선을 맞춰 보니 얼추 겹쳤다.

박 장로가 괜히 녹즙 대리점과 편의점을 운영한 게 아니었다. 양아들은 아버지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녹즙 배달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피해자의 동선을 익히고, 죽였다. 녹즙 배달원과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늘 용의선상에서 벗어났다.

박 장로는 다른 지역 녹즙 대리점과 편의점 점주들과 두루 친분을 쌓았다. 어느 지점에서 인력이 펑크나면 양아들을 파견 보내 일을 돕게 했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그 지역에서 살인이 일어났다.

동선이 100% 겹치지 않았기에 박 장로의 양아들처럼 살인 도구로 이용된 또 다른 아이가 있지 않았을까 의심하였지만, 확인이 힘들었다.

뭔가 알고 있는 자들은 다 죽었다. 당사자인 아이들은 눈에 가림막을 두른 경주마였다. 앞만 봤을 뿐 주변을 둘러보지 못해 아는 게 없었다.

기드온의 포도알이라 불렸던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고 관리당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무했다. 때문에 아이들에 대한 정보는 오직 아이들의 자백과 중간급 관리자들의 심문에 의지해야 했다.

아이들은 연속적인 유명 인사의 죽음이 선생님의 예언대로 일어난 기적이며, 최후 심판의 날이 다가오는 징조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거짓말 탐지기와 최면 수사까지 동원했지만, 의미 있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중간 관리자급의 무지는 아이들의 고백만큼 무지하고 순수했다. 그들은 아이들을 차기 장로라 생각하고 제 윗사람 대하듯 모셨다. 그들은 아이들이 교단을 위해 중요한 사명을 맡았으며, 자신들은 아이들이 원할 때 무엇이든 내주고 보필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사이비 집단의 신도 중 아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들은 모두 그런 태도를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일부 아이들, 그러니까 진영 같은 아이가 ‘예전에 자신보다 더 특별한 아이가 있었는데 없어졌다.’라고 말한 내용에 집중하게 됐다.

“분명 한 명 정도는 더 있었을 거야. 그보다 더 많았을 수도 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거되고 이 아이만 계속 활동했던 거 아닐까? 자기 과시적 태도가 강하다던데. 그러고 보면 최근 살인 사건 현장이 다 그런 식이었잖아?”

“그렇다고 하기엔 최근까지도 한 달에 서너 건으로 횟수가 꾸준했어. 혼자서 가능한 수준인가?”

“혼자서 감당 못 할 정도는 아니야. 봤잖아? 그 아이가 조사실에서 제 양아버지를 죽이는 데 몇 초나 걸렸는지.”

“채 20초도 안 걸렸지. 젠장.”

납득이 가면서도 뭔가 찜찜했다. 놓치는 게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뭔지 고민할 틈은 없었다. 상부에선 조속히 상황을 마무리 짓고, 적당한 수준으로 순화시켜 보도 지침을 준비하라고 닦달했다. 빨리 다음 사건을 맡으라는 것이었다.

정훈은 찜찜한 기분을 일단 미뤄 두었다. 잊지는 말고, 짬이 나면 반드시 더 알아보자 다짐했으나 그러기 쉽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렇게 미뤄 둔 찜찜함만 이미 100건은 될 터였다.

사건은 너무 많고 인력은 늘 모자랐다. 투철한 사명감도, 예리한 직감도 쏟아지는 일거리 앞에선 맥을 못 췄다.

때맞춰 진영과 두어 명의 아이들, 그러니까 다른 아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내성적이고 협조적이며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이는 아이들의 조사가 끝났다. 모든 상황이 정훈에게 얼른 이 개같은 반십교에서 정을 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처리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왜 자꾸 그거만 물고 늘어져. 까라면 까!”

“말로 하시지 발은 왜 움직이십니까?”

“피했냐? 야, 너 많이 컸다?”

“다 선배님 덕 아니겠습니까.”

“한 마디도 안 지는구나.”

정훈은 국장에게 대들었다가 어찌어찌 무사히 넘어갔다.

상관 무서운 줄 모르고 하염없이 나대긴 했지만, 정훈이라고 외부 상황에 눈멀고 귀먹은 건 아니었다.

반십교의 행적이 워낙 위대하니, 이를 그냥 전부 다 공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반년 전에 소탕한 오메가제일교 정도만 되었어도……. 아니, 그 일도 꽤나 순화해 언론에 공개했긴 했다. 그래도 몇 달, 들썩들썩했다.

오메가제일교는 성병 없고 동정인 20대 초반의 남자 알파들을 잡아다 정관 수술을 시키고 돼지 발정제를 먹여 난교를 일삼던 섹스제일주의 사이비 집단이었다. 밀교의 무슨 신을 믿는답시며 개떡 같은 교리로 성적 문란함을 정당화시켰다.

이미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취재하던 사안인지라, 최대한 범죄 내용을 순화하여 경찰청을 통해 공개했다. 그것만으로도 일부 국민들이 광분하여 후속 오메가제일교, 알파제일교 따위를 만들어 냈다. 다행히 정훈이 속한 조직이 움직여야 할 만큼 큰 건수는 없었다.

겨우 오메가제일교 정도만으로도 사회가 그만큼 들썩거렸는데, 반십교의 범죄가 공개되면 사회적 파장이 얼마나 클까,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까?

상부에서는 회의적인 듯했다. 물론 정훈도 회의적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마무리하자는 것이었다.

사건을 완전히 묻지는 않을 것이다. 반십교와 연결된 정·재계 인사들을 어떻게든 뿌리 뽑아야 하니까. 설령 뽑아내지 못하더라도, 재기 불능에 가까울 정도로 흔들어 놓기는 해야 하니까. 그러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든 반십교의 후속이 다시 발생할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반십교 신도인 정·재계 인사들을 끄집어낼 수 있을 만한, 적당한 이슈들만 묶어서 언론에 공개하고 나머지는 묻어 두어야 할 것이다. 묻어 버려야 하는 사건 중 대표적인 것이 20년 전에 일어난 여성-베타 임산부 대규모 실종 사건일 테고.

피해자 가족에겐 미안한 일이나 그 일은 영원히 미제 사건으로 남아야 했다.

어떻게 공개한단 말인가. 어디까지 순화시켜야 한단 말인가.

임산부의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내고, 임산부를 죽여 그 시체를 흔적도 남지 않게 끔찍한 방식으로 처리하고. 태어난 아이들을 외부와 격리시켜 철저히 세뇌해 키우고, 그마저도 때때로 솎아 내 죽이고 또 죽였다는 걸. 솎아지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교단 수뇌부에게 착취당하며 살아왔다는 걸. 교단이 저지른 범죄 중 대부분이 그 아이들의 손을 거쳤다는 걸.

함 씨와 안 씨는 아이들을 보호해 달라고 말했다. 굳이 그 부탁이 아니었더라도, 조직은 기드온의 포도알이라 불린 아이들을 철저히 보호할 예정이었다.

그들은 수십 년간 지속된 비극에서 살아남은 얼마 안 되는 생존자들이었다. 그들이 저지른 죄보다는 일단, 그들의 남은 생을 지키고 보호하는 게 우선이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국장은 자신이 이 말을 쓸 수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다 대고 ‘하지만…….’이라고 반론을 펼칠 여지 따윈 없었다. 정훈은 그렇게 알고 얼른 가서 일이나 하라는 말이나 듣고, 떠밀리듯 국장실을 나섰다.

그런데 어찌 기분이 개같지 않을 수 있으랴.

정훈은 까닭 없이 ‘한 놈만 걸려 봐라.’라는 더러운 심보를 품고 구불구불한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정말 딱 한 놈이 걸려들었다.

“선배!”

“선배라고 부르지도 마, 니놈은!”

정훈은 뒤에서 성큼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고는, 팔을 뻗어 목을 감았다. 꽉 조이니 꽥 소리가 찰지게 났다.

“하, 항복. 항복! 선배, 이거, 이거 주려고 온 거예요. 켁.”

덩치 큰 후배 놈이 손에 든 결재판으로 정훈의 팔을 퍽퍽 쳤다.

정훈의 조직은 아직도 아날로그적인 결재 방식을 썼다. 건물 내에서 외부 인터넷, 와이파이가 전부 차단됐다. 내부 인트라넷을 운영하는 것과는 별개로, 중요 결재는 서면으로 이루어지고 그마저도 정기적으로 소각되었다.

“어쭈? 더 세게 쳐봐라. 그렇게 쳐서 니 선배 죽일 수 있겠냐?”

정훈은 한 번 더 목을 꽉 조인 뒤 팔을 풀어 주었다. 후배가 들고 있던 결재판도 빼앗았다.

후배가 켁켁, 목을 움켜잡고 우는 소리를 냈다.

“하, 맨날 야근에, 상사는 폭력적이고, 월급은 쥐꼬리만 하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네요. 이젠 그만 저의 행복을 찾아 떠나고 싶어요. 이제 그만 절 놔주세요.”

“어쭈?”

정훈은 복도 끝 문을 열며, 후배의 등짝을 결재판으로 퍽 쳤다.

“어디서 배부른 소릴 하고 앉았어. 니 행복은 여기 있으니까 애먼 데서 파랑새 찾아 댈 생각 말고 일이나 해.”

정훈은 그리 말하며 결재판을 옆구리에 끼고 안으로 들어갔다.

달라진 건 없었다. 집보다 더 내 집 같이 느껴지는 조사실. 플라스틱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 그리고 수갑을 찬 진영. 국장실에 끌려가기 전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는데.

아니, 뭔가 달라진 게 있었다.

사람이 들어오든 말든 책상만 바라보던 진영이 고개를 들고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놀란 듯이.

무표정한 얼굴, 쑥스러운 듯 웃는 얼굴 말고, 한 달 만에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

진영은 더 이상 조사실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상담사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재활 훈련을 받았다.

재활 훈련의 첫 단계는 머릿속에 주입된 반십교의 사이비 교리를 깨부수는 것이었다. 진영은 그쪽으로 유명한 목사와 대면하게 되었다. 자신을 정 목사라고 소개한 남자는 매일 네 시간씩 열정적으로 강의를 쏟아 냈다.

모니터링 중인 팀원들은 진영이 정 목사의 말을 부정하고, 화를 내고, 울부짖고, 반십교의 교주를 옹호할 거라고 생각했다. 잡범 취급을 받아 진영처럼 재활 훈련을 받은 아이들이 실제로 그런 반응을 보였다. 충격을 받아 기절한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십수 년간 이쪽 일을 해온 정 목사마저 놀랄 만큼 굳건한 믿음을 보였다. 아니, 철저하게 세뇌되어 있었다.

하지만 진영은 달랐다. 진영은 목사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간간이 제가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른 말을 들으면 질문할 뿐이었다. 목사가 성경을 펴고 하나하나 해석해 주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관하던 팀원들은 너무 평화로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놀랐던 것도 잠시, 곧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하늘 아버지의 두 번째 아드님이 아니라는 건가요?”

“성경을 보렴. 어디든 하나님께 두 번째 아들이 있다는 구절이 있는지 찾아봐라. 찾아서 내게 보여 주면 내가 믿으마. 하지만 성서에는 오직 독생자 예수의 탄생을 예시하는 내용과 예수님과 제자들의 공생의 삶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란다.”

“그렇군요.”

진영은 제일 큰 고비라 할 수 있는, 교주의 존재와 신성성을 부정하는 내용조차 순순히 받아들였다.

“다 됐네.”

“쟨 좀 빠른데?”

“흐아아암. 다행이지 뭐.”

졸린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린 팀원들은 금방 재교육이 끝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입고 있는 양복이 흠뻑 젖도록 열성적인 강의를 펼치고 나온 정 목사의 의견은 달랐다.

“어려운 케이스입니다. 저런 경우가 제일 힘들어요. 쉬운 듯 보이지만 제일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케이스지요. 차라리 화내고 울고, 그랬으면 좋으련만.”

닫힌 문을 돌아보는 정 목사의 눈가엔 착잡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정 목사의 안타까운 마음과는 별개로, 진영의 재활 훈련은 차근차근 잘 진행되었다.

진영은 두 달 만에 사회 적응 훈련을 수료했다. 마지막 시험은 손목에 위치 추적기를 달고, 감시를 붙여 2박 3일 외출을 나가는 것이었다.

진영은 2박 3일 동안 별다른 일 없이, 평범하게, 평범한 사람처럼 살았다. 기대 이상의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으나 사건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이틀째에 딱 봐도 질 나빠 보이는 양아치가 진영의 얼굴을 보고 접근했다. 양아치는 추잡스러운 추파를 던지며 진영의 팔을 낚아챘다. 위치 추적기를 달지 않은 팔이었다. 진영은 멍하니 서 있다 으슥한 골목으로 끌려 들어갔다.

감시자가 보다 못해 나서서 양아치를 쫓아냈다. 그리곤 왜 가만히 있느냐고 물었다. 진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다리 사이가 뻐근하고 너무 아프다고, 제가 꼭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해서요. 하늘 아버지의 둘째 아들이 아닌 선생님도 곧잘 제게 그렇게 말하면서 제가 가만히 있기를 바라셨거든요. 그게 착한 일이라고 했어요.”

“…….”

감시자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진영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

「특이점 없음. 사회 적응 훈련 우수. 사회성 양호. 다만 성적 경계심이 부족. 추가 교육 필요.」

최종 평가는 A-였다. 합격선인 B를 훌쩍 뛰어넘었기에, 진영은 사회에 방생될 기회를 얻었다. 다만 10시간짜리 성교육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새 주민등록증이 나왔다.

「오수민, 23세, 오메가」

진영은 앞에 놓인 신분증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름은 적당히 정한 거고 나이는 일단, 네 이전 신분증에 적혀 있는 대로 했어. 형질은 뭐, 어쨌든 오메가인 건 맞으니까. 원래대로 고쳤고. 근데 나이는 그게 맞긴 한 거지?”

정훈이 물었다. 진영이 답하지 못하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튼 스무 살 정도는 됐을 테니까.”

임산부 대규모 실종 사건이 일어났던 게 대략 20년 전. 그러니까 최소 열아홉이거나 스무 살이긴 할 터였다.

“스무 살쯤에 바로 입대했다 제대했다 치고. 아, 공익 다녀온 걸로 처리했다. 다친 거 수술한 게 잘못돼서 현역 못 간 걸로.”

정훈이 서류를 내밀었다. 스물세 살 오메가 오수민의 삶이 그 한 장에 담겨 있었다.

일종의 신분 세탁이었다. 증인과 피해자 신변 보호 프로그램.

새 신분을 주고, 필요하다면 성형도 시켜 준다. 그리고 보호, 혹은 감시 목적으로 일정 기간 동안 감시자를 붙인다.

진영의 경우엔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안경을 벗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확 달라져 성형까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쓰고 다니던 안경을 확인하니 도수가 없어 라식 수술을 할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한진영은 베타였지만 오수민은 오메가라는 게 좋은 위장이 되었다.

알파, 오메가, 베타. 이 형질은 한 번 발현하면 바뀌지 않으니까. 누구도 오메가인 오수민이 베타인 한진영이었다고 생각지 못할 터였다.

“일단 우리가 지정한 장소에서 3개월간 거주하면서, 2주에 한 번씩 정 목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도록 해. 그걸 어기면 네 감시자가 내게 바로 보고할 거고, 넌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될 거야. 도망가거나 숨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마. 서로 피곤할 뿐이니까.”

정훈이 말했다.

“한동안은 위치추적 팔찌를 차야 할 거야. 보통 시계랑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일상생활 땐 지장이 없을 거고. 네가 자의로 풀 수 없고 훼손도 불가능해. 강릉에서 독도까지 헤엄쳐 가도 끄떡없을 정도로 방수도 잘 되니까. 그냥 차고 다녀. 3개월 후에 상황 봐서, 네 상태가 우수하면 핸드폰 위치 추적기로 바꿔 줄게.”

계속 보고서 내용이 좋으면, 나중에는 그마저도 풀릴 거라고 했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주어지며, 이사할 때마다 어디로 간다고 알리기만 하면 된다고.

정훈은 이후로도 주의해야 할 것, 지켜야 할 것 등을 설명했다.

“이상이다. 질문 있으면 해.”

한참 뒤, 정훈이 생수병을 집어 들며 말했다. 진영은 그가 500mL짜리 생수병을 비울 동안 제 앞에 놓인 서류를 들여다봤다. 검은 머리를 한 진영의 명함 사진이 붙어 있는 이력서 형식이었다.

오수민은 서울 강서구 소재 보육원 출신이었다. 만 18세 때 보육원에서 나와 고등학교를 중퇴하였고 원동기 면허를 따 배달 일을 하며 먹고 살았다. 그러던 중 비 오는 밤에 치킨을 배달하다 역주행하던 음주운전 차량에 부딪혀 교통사고를 당했고, 왼쪽 골반이 으스러져 큰 수술을 했다. 그 부상 때문에 공익을 다녀왔다.

“아, 원동기 면허는 내부에서 교육받고 시험 보면 자격증 만들어 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사회에 나가면 뭘 먹고 살아야 할지도 다 정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사회 적응 지원금도, 직업 소개도 다 프로그램대로 진행될 거라고. 온통 진영이 궁금하지 않은 내용뿐이었다.

“제가 여기서 나가게 되나요?”

진영이 물었다.

“그래, 아까 말했다시피 이르면 다음 달쯤.”

“왜요?”

“왜긴. 그럼 언제까지 널 여기에 놔둘 줄 알았어?”

“…….”

“뭐야, 여기 평생 갇혀 살 줄 알았냐?”

“……네.”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거 같은데. 우리가 교도소 같은 곳도 아니고. 아니, 설사 그렇다 해도 널 가둬 둘 이유는…….”

정훈은 말을 하다 말았다. 성격이 개같아서, 빈말로라도 입에 발린 말을 하지 못했다.

진영은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정석대로 하자면 진영은 감옥에 가야 한다. 사정을 적당히 참작해서 감형해 준다고 해도 처벌을 피할 순 없으리라.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렇게 정석대로만 흘러간다던가.

그러지 못하니까 정훈이 몸담은 조직이 생겨났고, 음지에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사건을 해결하고도 흉악한 범죄를 세상에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피해자와 유가족의 한을 풀어 주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래서 아직까지도 간간이 이 일에 회의를 느끼고 있지마는.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고 남아 있는 건.

진영 같은 경우 때문이었다.

양지에 올려 해결하면 처벌받을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을 법과 언론 앞에 세우지 않고 조용히 사회로 되돌려 보낼 수 있으니까.

살인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박 장로의 아들 같은 경우는 일단 정신과 치료 뒤 상태를 봐서 처우를 결정해야 하겠지만, 진영 같은 잡범 정도는 최대한 사회에 적응시켜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왔다. 그것이 정훈의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아무튼 넌 나가게 될 거야. 그러니까 나가서 사고 치지 말고 평범하게 잘 살아라.”

퉁명한 목소리에 사심이 담겼다.

정훈은 제가 진영을 담당하다 눈시울을 붉히던 팀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이 무덤덤한 피해자에게 정을 줘 버린 걸까. 진영을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는 것부터 이미 글러 먹은 건지도 모른다. 정훈은 일부러 경계심을 곤두세워 보았다.

혹시.

혹시 이 아이가, 자신을 전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 아이가, 그렇기에 특별한 아이일 수 있지 않을까?

……는 무슨.

진영의 동그란 정수리가 생각을 방해했다.

진영은 새로운 신분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새로운 이름이 마음에 드는 건지 안 드는 건지, 손가락으로 문질러 보고 있었다. 얼굴은 무표정했으나 그래서 더 앳되어 보였다.

‘이런 게 그런 거랑 같다고?’

정훈은 혀를 씹고 피를 토하며 웃던 박 장로의 양아들을 떠올리곤 고개를 내저었다.

‘저거 정말, 스물셋쯤 됐긴 했으려나.’

몇 살이든 상관없다. 사회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 할 때 최대한 어색하지 않을 만한 나이로 설정한 거니까. 신분증에 새긴 나이 따위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마음에 걸렸다.

갓 스물이나 되었을까 싶은 얼굴이 계속 눈에 밟힌달까. 스물이나 스물셋이나 거기서 거기이긴 하지만.

“저 그냥, 이곳에 있으면 안 되나요? 절 이곳에서 일하게 해주세요.”

“그래…… 뭐?”

딴생각을 하느라 반응이 늦었다.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던 정훈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진영이 정훈을 보고 있었다.

“방금, 너 뭐라고 했냐?”

“절 이곳에서 일하게 해주세요.”

진영이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았다.

까만 눈은 유리알 같았다. 상대방의 모습만 선명히 비출 뿐. 도통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 진심? 진심으로 하는 말?”

“네. 절 이곳에서 일하게 해주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훈은 돌돌 말린 종이로 진영의 머리를 툭 쳤다.

아프진 않았지만, 깜짝 놀랐다. 아니, 사실 깜짝 놀라지도 않았다. 진영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제게 날아오는 종이 뭉치를 보았다. 그리고 피하지 않고 맞았다.

“아.”

정훈은 진영을 때리고야 부하에게 하던 버릇이 튀어나온 걸 깨닫고 아차 했다.

“뭔 개소리를 하고 앉아 있어.”

정훈은 사과하는 대신 오히려 눈을 부라렸다.

“저 시키는 일은 뭐든 잘해요.”

“그게 자랑이냐?”

“이곳에서 제 재주가 쓸모 있을지도 몰라요.”

진영이 자신을 어필하려 애썼다. 하지만 자신의 재주가 뭔지 모르기에, 또 침묵하란 명령에 묶여 있기에 잘 말하진 못하고 버벅댔다.

“여긴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훈은 진영의 재능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널, 너희를 용서한 거로 보이냐?”

정훈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진영 같은 케이스를 동정하고 피해자로 여기는 것과는 별개로, 알고 저질렀든 모르고 저질렀든 이미 저지른 죄를 용서하고 없었던 일로 만들 순 없었다.

“너희 의지로 했건 안 했건 너희는 범죄를 저질렀어. 범죄에 이용되었다는 특수성 때문에 정상 참작해 줬을 뿐이야.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 이전에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서 말 그대로 기회를 주는 거라고. 그런데 어딜 감히!”

말을 쏟아 내고 나니, 진영이 눈에 들어왔다. 웃음기도, 놀란 기색도 없는 잔잔한 눈. 그 눈을 보니 또 아차 싶었다.

애당초 진영은 시시껄렁한 자만심 따위를 내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 눈깔을 하고 과시하듯 껄떡대는 놈들을 겹쳐 보고 말았다.

그런 놈들이 종종 있었다. 풀어 준다니까. 제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제가 잘나 특별 대우를 받는 줄 알고, 이 일을 얕보고 우스워하며, 내가 특별히 너희들과 일해 주겠다는 투로 떠들어 대는 놈들. 나 같은 인재를 놓치지 말라는 둥 헛소리를 해대는 머저리들.

진영의 말만 듣고는 그런 놈들 생각에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만 것이었다.

정훈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잘 버티고 있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피로가 극에 달한 듯했다. 국장 말대로 적당히 마무리 짓고 대체 휴가를 받아 밀린 잠 좀 자고 링거라도 맞고 와야 할 것 같았다.

“미안하다. 내가 말이 좀 격했어.”

정훈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진영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진영의 차분한 태도가 정훈을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여기 계속 있고 싶다고? 일하고 싶어?”

“네.”

“왜? 뭐 좋다고? 얼마 전에 밖에 나갔다 와서 알겠지만, 밖이 훨씬 좋잖아. 너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문득 정 목사의 상담 보고서가 떠올랐다. 무언가 하고 싶다는 의욕이 없음.

“음, 뭐, 지금 당장은 하고 싶은 게 없을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차차 생길 테니까. 그때 가서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니까. 조급해 말고, 아무튼 이런 곳에 관심 가지지 마. 넌 아직 어리잖아.”

“행복해지고 싶어서요.”

“행복? 행복해지고 싶은데 여기 왜 있어? 넌 내가 행복해 보이니?”

정훈이 얼굴에서 손을 떼고 진영을 보았다.

“…….”

진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솔직하긴.’

정훈은 앳된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있는 게 행복한 거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누가? 내가?”

“네.”

“언제? 정말로?”

“네.”

“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을 리가.”

정훈이 발뺌했다.

그의 행복은 두 달 동안 발도 못 붙인 그의 집에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내 새끼. 절 보고 방긋 웃는 아이의 얼굴만 봐도 그간의 피로가 싹 씻겼다.

아이가 태어나고, 일에 대한 사명감도 커졌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좀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사명감. 그 사명감 때문에 버티고 일하는 중이었다.

“뭐, 그렇다 치고.”

정훈은 더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여기서 일하고 싶다면, 뭐, 인생 선배로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

인생의 선배로선 더없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조직엔 진영 같은 케이스가 몇 명 있었다.

이곳에서 도움을 받곤 저 같은 아이들을 구하겠다고 입사한 얼간이들. 진영이 그 얼간이 대열에 합류하게 될지 말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였다.

“국가를 위해 일하고 싶다면 일단 죗값을 치러라.”

정훈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진지하게 이 길을 고민하는 예비 후배는 달가운 존재였다. 이곳은 언제나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었으니까.

“죗값을 치르면요?”

“용서받을 수 있겠지. 네가 저지른 일들을.”

“…….”

순간, 진영의 눈빛이 변했다.

“용서, 받을 수 있는 건가요?”

“그래.”

“어떻게 하면요?”

“그건 나도 모르지. 용서는 우리 몫이 아니니까.”

어찌 감히 용서할 수 있다 말하겠는가. 사회 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용서받아야 할 일도 덮고 치우기에 급급한 주제에.

“일단 나가서 착하게 살아 봐.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남도 돕고, 남을 다치게 하진 말고. 길 가다 무거운 짐 든 어르신 있으면 도와드리고. 버스나 지하철 탔을 때 임산부 보면 자리 꼭 양보하고. 그러면 언젠가, 행복이 네 앞에 불쑥 다가와 있을 거야. 그때 그 행복을 놓치지 말고 두 손으로 꽉 붙잡으면 돼. 그럼 행복해질 수 있을 거다.”

정훈은 느릿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정훈의 말은 진영의 머릿속에 분명하게 입력되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용서받아야 한다. 용서받으려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 죗값을 치르려면 착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행복이 다가온다. 그때 행복을 놓쳐서는 안 된다. 두 손으로 꽉 붙잡아야 한다.

이 두 손으로.

진영은 두 손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익숙한 자세였다.

“자, 네 행복을 위한 첫걸음.”

정훈이 그 손 위에 새 신분증을 놓아주었다. 손을 오므려 꼭 움켜쥐게 했다. 나중에 행복을 만나면, 이렇게 붙잡으라는 듯이

진영은 얇고 딱딱한 플라스틱 카드를 꽉 움켜쥐었다.

“아, 그리고 너. 나가면 그렇게 웃지 마라.”

정훈이 일어나다 말고 말했다. 진영은 고개를 들어 정훈을 올려다보았다.

“억지로 웃는 거 티 나. 웃기 싫으면 그냥 웃지 마.”

“……네.”

수민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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