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2/19)

File#6. 오수민, 24세, 오메가 (2)

인혁은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알게 되면 무조건 아니라고 말할 것 같지만, 인혁과 수민은 점점 더 친해졌다. 적어도 서 여사와 박 씨가 보기엔 그랬다.

그리고 그 관계는 둘 모두에게, 적어도 인혁에겐 확실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았다.

인혁은 수민 때문에라도 점심과 저녁 식사를 챙겨 먹었다. 가끔은 아침도 먹었다. 자신이 야근하면 수민도 덩달아 야근하는 걸 보곤 큰일이 없는 한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지 않게 되었다.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일단 수민을 저녁밥까지 먹이고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준 후 사무실에 돌아와 일했다.

아무래도 사무실에 다시 오는 건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수민을 데려다준 김에 자신의 집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중에 집에 가서 일하겠다며 일거리를 챙겨 들고 나갔으나 일거리한테 집 구경만 시켜 주고 다음 날 도로 들고 왔다. 천하의 오범연 김 소장한테도 집에 일거리를 가져가 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 듯했다.

인혁은 의도치 않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그런 사람치고 얼굴이 딱히 좋아지지는 않았다. 인혁은 아직 봄인데도 여름 더위를 타는 사람처럼 자꾸 비쩍 말랐다.

“수민 학생 덕분에 잘 먹고 잘 자도 저 정도인데, 수민 학생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벌써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을걸.”

서 여사가 혀를 찼다.

“김 소장도 김 소장인데, 수민 학생은 왜 살이 안 붙을까.”

잘 먹고 잘 자고, 잘 출근하고. 인혁만큼이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건 수민도 마찬가지건만.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인혁에게 가려졌을 뿐,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 건 수민도 마찬가지였다.

박 씨는 맞장구치는 한편, 인혁의 곁에 가지 않으려 애썼다.

“박 씨 왜 그래, 새삼 김 소장이랑 내외해?”

“전 두 분이 부럽네요. 둔하고, 베타나 다름없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원.”

박 씨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서 여사와 수민을 보며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닦아 냈다.

그러고는 사무실의 창문이란 창문을 죄다 열었다. 평소 몸의 연골이 죄다 닳아 함부로 움직여선 안 된다고 널브러져만 있던 사람이, 나서서 창고에 처박혀 있던 선풍기를 죄다 꺼내 와 틀어 대기까지 했다.

“박 씨, 아직 봄이야. 뭐 하는 거야!”

서 여사가 아무리 화를 내도 못 들은 척하곤 미풍에서 약풍으로, 다시 강풍으로 돌렸다. 덕분에 사무실 안에 작은 태풍이 만들어져 서류들이 허공을 날아다녔다.

파라락, 파라락, 사방팔방 날리는 종이 폭풍 너머로 인혁이 보였다.

한 소리 할 법도 한데 인혁은 박 씨를 말리긴커녕 미안하게 됐다고 말하며, 박 씨가 제게 쏴대는 선풍기 바람을 담담히 감당해 냈다. 날아가려는 서류를 무거운 파일로 꾹 누를 뿐이었다.

이 사무실에 출근하면서부터 하루라도 평범한 모습을 본 적 있었느냐마는, 유독 이상한 광경이었다. 날아다니는 종이 더미, 선풍기를 끄러 다니는 서 여사, 서 여사를 따라다니며 다시 선풍기를 켜는 박 씨. 그 소동에도 묵묵히 일하는 인혁.

그 속에서 수민은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선풍기 바람 때문에 인혁에게서 나는 냄새가 창밖으로 날아가 버렸으니까.

선풍기 소동이 하루면 끝날 줄 알았건만. 박 씨는 무슨 생각인 건지 출근했다 하면 선풍기부터 틀어 댔다. 서 여사는 사무실의 평화를 위해 사무실의 선풍기를 모조리 고장 낼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매일 같이 태풍이 몰아쳐도, 사무실 사람들은 일하고 밥 먹고 떠들었다. 좀 졸다가 전화 소리에 화들짝 놀라곤 퇴근했다. 그렇게 나름 평범한 일상이 하루치씩 쌓였다.

수민은 여전히 선을 지켰다. 먼저 인혁을 만지지 않았고 함부로 애정을 구걸하지 않았다. 인혁은 영 공부하기 싫어하는 수민을 붙잡아다 책상에 앉히고 공부시키기 바빴다.

두 사람은 매일 같이 밥을 먹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공부시켰다. 공부하기 싫어 딴짓을 하면서도 꼬박꼬박 붙잡혀 혼났다.

게임 하다 걸려 혼나기도 했다. 게임기를 뺏기곤 껑충 뛰어 게임기를 도로 뺏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 모습에 어이없어하며 웃음 지었다.

함께 현장에 나가 혹시나 다칠까 계속 지켜보았다. 차를 타고 함께 퇴근했다. 조수석에 앉아 꾸벅 조는 모습을 보며 제 코트를 벗어 덮어 주었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느리게, 30분 동안이나 근처를 빙빙 돌며 조금 더 재우려고 애썼다.

어느새 함께 있는 게 당연해졌다.

향은, 냄새는 점점 짙어졌다.

일이 있다며 서 여사도 박 씨도 일찍 퇴근해 버린 날이었다. 인혁은 수민과 둘이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이것만 먹이고 집에 들여보내야지.’

인혁은 저 멀리 밀려나 있는 콩자반 그릇을 끌어와 수민이 앞에 놔주었다.

수민의 표정에 약간 변화가 생겼다. 예전 같으면 모르고 지나갔겠으나 이젠 눈에 보였다.

‘콩자반을 싫어하는구나.’

인혁은 수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멈칫했다. 오른손에 아직 붕대가 감겨 있었다. 수민은 스스럼없이 인혁의 손에 제 머리를 가져다 댔다.

“니가 개냐.”

인혁은 말로 타박하면서도 붕대 감은 손으로 수민의 머리를 쓸어 넘겨 주었다.

“불편하지 않아?”

수민은 아직도 앞머리를 자르지 않고 있었다. 앞머리를 쓸어 넘기면 잘생긴 이마와 큰 눈이 훤히 드러났다. 이걸 가리고 다니다니. 인혁은 대신 아쉬워해 주었다.

“안 불편해요.”

“앞은 보이고?”

“네.”

“그래서. 안 보일 때까지 기르시겠다?”

“…….”

“얼른 잘라. 일하다 잠깐 나갔다 와도 되니까.”

앞머리를 쓸어 넘겨 주는 인혁의 손길이 좋아서 그런 건데. 인혁은 그것도 모르고 자꾸 머리카락을 자르라고 했다.

“수민아, 대답.”

“……네.”

수민은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억지로 하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크고 거친 손이 조심조심 절 어루만지는 게 기분 좋았다. 좀 더, 많이, 만져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며 아랫배가 콕콕 저려 왔다.

하지만 기분 좋은 접촉은 잠시뿐이었다.

“편식하지 말고 먹어.”

인혁이 손을 떼고 콩자반을 가리켰다.

“…….”

수민은 콩자반에 손도 대지 않고 밥을 깨작거렸다. 보다 못한 인혁이 젓가락으로 콩을 한 알씩 집어 수민의 밥그릇 위에 올렸다. 그냥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인데 하다 보니 재미 들려 계속했고, 곧 수민의 잡곡밥은 금세 콩밥이 되어 버렸다.

“뭐 하시는 거예요?”

느릿하게 수저질하던 수민이 아예 멈춰 버렸다.

인혁은 뒤늦게 아차 싶었다.

“아, 미안.”

밥을 새로 시켜 줄까 싶었는데. 수민이 젓가락을 고쳐 쥐었다.

“소장님.”

“어, 응?”

“그러는 소장님은 왜 안 드세요? 콩자반, 몸에 좋은 거니까 소장님도 많이 드셔야죠.”

“뭐?”

되물었을 땐 이미 게임 오버였다.

수민은 순식간에 인혁의 밥을 콩밥으로 만들어 놓았다. 굳이 말을 걸었던 건 정신을 분산시키기 위한 수작이었다.

‘뉘 집 자식인지 참 똑똑하네. 젓가락질도 아주 잘하고.’

인혁은 제가 당하고도 남 일인 듯 감탄하고 말았다.

그때였다.

“콩자반 맛있죠? 내가 한 거지만 이번엔 진짜 잘 되긴 했는데, 이렇게 잘들 먹으니 나도 기분이 좋네. 기다려 봐요, 더 가져다줄게.”

식탁 위로 두툼한 손이 쑥 나타났다. 미현이 아빠가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빈 콩자반 그릇을 가져가더니, 콩자반을 듬뿍 담아 주었다. 인혁과 수민은 동시에 얼굴을 구겼다.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되는데.”

“소장님은 우리 집 단골이니까 반찬 무한 리필은 내가 보장합니다!”

“아니, 안 해줘도 된다니까.”

“어허,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

인혁은 그 누구와도 콩자반을 더 주는 사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도 콩자반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콩자반에 손도 안 대는 수민을 보며 신기해했다. 매운 거 못 먹는 것도 그렇고 나랑 식성이 많이 닮았네, 하고.

다시 두 사람 앞에 콩자반이 놓였다.

우연히, 아니, 필연적으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둘은 번개같이 자신의 밥그릇을 번쩍 들어 올렸다.

“…….”

“…….”

“뭣들 하슈?”

가게 주인이 눈을 끔뻑 뜨며 이쪽을 보았다.

“아니, 아무것도.”

인혁은 밥그릇을 내려놓고 손을 내저었다. 수민도 따라서 밥그릇을 내려놓았다.

흠흠. 인혁이 어색하게 헛기침했다. 수민은 제 밥그릇에 빼곡히 박힌 콩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먹자.”

“네.”

일단 휴전. 아니, 양쪽 모두에게 콩밥만 남기고 종전에 합의 완료.

두 사람은 묵묵히 콩자반 섞인 밥을 씹었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 지었다.

“너 진짜 유치하다.”

“먼저 시작한 건 소장님이에요.”

“그렇다고 똑같이 굴어?”

“사람은 똑같은 상황에 처해 봐야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된대요.”

“누가 그래?”

“소장님이 말해 주신 거예요.”

“……내가?”

인혁은 기억을 더듬어 보곤 수민에게 물었다.

“그때 내가 사자성어도 말했을 텐데.”

“…….”

“내가 뭐라 그랬는지 말해 봐.”

인혁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어렸다.

“…….”

수민은 묵묵히 밥에 박힌 콩자반을 한쪽으로 몰아냈다.

“역지사지야. 수민아.”

“알아요.”

“근데 왜 말 안 했어.”

“대답하면 또 공부 얼마나 했는지 물어보실 거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너 또 공부 안 했구나.”

“거봐요.”

수민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인혁은 웃음을 터뜨리며 콩자반 그릇을 수민 쪽으로 툭 밀었다.

“다 먹어. 빼놓지 말고. 머리에 좋댄다. 공부하기 싫으면 머리라도 좋아야지.”

“소장님도요.”

수민이 콩자반 그릇을 인혁 쪽으로 밀어 냈다.

“난 이걸로 충분해.”

인혁은 혀를 차며 골라 놓은 콩자반을 한 번에 입에 넣었다. 몇 번 씹는 용기를 내보였으나, 이내 포기하고 물과 함께 삼켜 버렸다.

수민은 빈 물잔에 물을 채워 주며 킥킥 웃었다.

“웃지 마.”

“안 웃었어요.”

인혁이 갈구자 바로 정색했지만 이내 또 웃는 얼굴이 되었다.

“넌 안 그럴 줄 알고?”

인혁은 미리 수민의 물잔에 물을 따라 주다가 문득, 지금 이 상황이 새삼스러워졌다.

앞에 앉은 아이가 이렇게 웃을 줄 아는 아이였던가? 콩자반을 놓고 이 아이와 이렇게 농담 따먹기를 할 정도로, 우리가 벌써 이만큼 가까워졌나?

새삼스러운 만큼, 앞으로도 함께일 날들이 눈앞에 선했다.

곧 여름이다. 낡은 점퍼를 입고 버스 정류장에 하염없이 앉아 있던 아이가 반팔 티셔츠를 입고, 덥다며 선풍기에 매달릴 것이다. 뺨을 타고 내리는 땀이 턱에 맺혀 뚝, 떨어지면. 얇은 셔츠가 땀에 젖어 몸에 달라붙어 그 마른 몸을 고스란히 드러내면…….

인혁은 콩자반 말고 혀를 깨물었다.

‘씨발.’

차마 수민 앞에서 욕할 순 없어 속으로만 중얼거렸는데.

“소장님?”

수민이 물잔을 내밀었다. 인혁은 무심코 건네받다 손끝이 포개지자 지레 놀라 물잔을 놓쳤다.

물잔이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챙그랑.

“이런.”

인혁은 급히 몸을 뒤로 물렸으나 물이 튀겼다.

“여기요.”

수민이 재빨리 움직였다. 휴지로 테이블 위에 넘쳐흐르는 물을 닦아 내고, 의자를 인혁 쪽으로 끌어당겨 앉아서는 인혁의 다리에 손을 뻗었다.

인혁이 피하려 하자.

“가만있어 보세요.”

아예 인혁의 무릎을 움켜잡았다.

수민은 보기보다 악력이 강했다. 다리를 빼내려던 인혁은 실패하고, 놀라 수민을 보았다. 그 사이 수민은 휴지를 몇 장 더 뽑아 인혁의 허벅지를 문질렀다.

“뭐 하는 거야.”

“물이 묻었어요, 여기에도요.”

“아, 이런.”

“가만있으시라니까요.”

수민이 휴지로 바지를 꾹꾹 눌렀다. 수납 방향이 반대편이라 천만다행이었다. 그래도 기분이 이상했다. 고개 숙인 수민의 동그란 머리와 흰 목덜미에 자꾸 눈이 갔다.

빌어먹을. 인혁은 당장 오늘, 집에 돌아가자마자 약을 두 배로 더 먹겠다고 다짐했다. 간이 잘못되는 한이 있어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내가 할게.”

일단 수민을 떼어 놓는 게 먼저였다. 인혁은 수민의 손에 든 휴지를 뺏으려고 했다.

하지만 버티는 힘이 만만치 않았다. 수민은 밀려나지도, 손에 든 걸 내어 놓지도 않았다. 호두 턱이 된 걸 보니 입을 꾹 다물고 힘주어 버티고 있는 듯한데.

“줘, 내가 한다니까.”

“…….”

“수민아.”

“…….”

“넌 밥 먹어.”

“…….”

“대답 안 해?”

“싫어요.”

수민이 인혁의 손을 쳐냈다. 찰싹. 아프진 않은데 소리가 제법 크게 났다.

인혁은 그러려니 했건만 정작 쳐낸 수민이 당황하여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눈을 내리깔았다.

인혁은 묘하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수민이 그의 눈치를 보는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아니, 지금. 그게 새삼 마음에 안 들었다.

스멀스멀, 조절 안 되는 페로몬이 흘러나왔다. 의식적으로 갈무리하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읍!”

멀리 떨어져 앉아 있던 미현이 아빠가 코를 틀어막고는 조리실 뒷문으로 도망갔다.

나중에 사과해야지. 인혁은 그 생각만 겨우 했다.

“…….”

수민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우성 알파의 페로몬이다. 수민 역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

만약 페로몬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형상화한다면, 지금 인혁의 페로몬은 거대한 갈고리 형상을 띠고 있을 터였다. 그 갈고리가 당장에라도 수민의 등을 찍어 누르려고 번들거렸다.

이런 식으로 찍어 누르고, 짓누르고, 집어삼키듯 굴고 싶지 않건만.

인혁은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페로몬을 갈무리했다.

“……소장님.”

수민이 고개를 들었다.

인혁은 제 페로몬에 감싸여, 제가 지금 무슨 짓을 당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수민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검은 눈에 옅게 맺힌 섭섭함을 읽어 냈다.

아마, 눈치챈 것 같았다. 절 피하려다 물잔을 놓쳤다는 것을.

하. 순간, 맥이 풀렸다. 난폭하게 일렁이던 페로몬이 수그러들었다.

수민이 제 눈치를 보는 게 새삼 짜증 났으면서. 제게 섭섭해하는 걸 알아차리곤 마음이 풀리다니.

어쩌면 좋지? 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이렇게 흔들리는 아이를? 이 아이를 휘두르며 만족감을 느끼는 자신을?

그가 이전에 임시로 보호했던 아이 중에도 수민만큼 숫기 없고, 수민만큼 눈치를 보는, 그러면서도 그를 엄마 오리처럼 따르는 아이들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에게도 이렇게 애틋한 마음이 들진 않았다.

애틋한.

인혁은 그 외에 다른 단어를 생각해 내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오래 데리고 있었던 적이 없으니까. 또 애초부터 내 아들일 거란 기대감 없이 받아들인 아이니까. 그러니까 좀 더 마음이 쓰이고, 애틋, 그 빌어먹을 애틋함을 느끼는 거겠지.

인혁은 그렇게 자신을 강제로 납득시켰다.

서 여사의 충고가 옳았다. 정들면 떼어 내기 어려워진다.

그런데 이미 정들어 버렸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어둑한 한겨울 밤. 버스 정류장에 혼자 앉아 있던 아이. 낡은 점퍼를 걸치고, 지퍼를 올리지도 않아 목이 다 늘어난 셔츠를 그대로 내보이고. 가만히 길 건너편만 바라보던 그 모습을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아무도 제게 이렇게 잘해 주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 무표정한 얼굴이 마음에 걸려서. 이대로 손 놓고 보내 버리면 또 어느 정류장에서고 또 그렇게 멍하니 앉아 아무도 손 내밀어 주지 않은 현실을 그 무표정한 얼굴로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잡은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이가 그 아이 하나뿐인 것도 아닌데. 더 심한 아이들도 숱하게 봐왔는데. 왜 이 아이의 무표정한 얼굴에 더 마음이 쓰일까.

참 모를 일이라고, 인혁은 생각했다.

“수민아.”

“…….”

“나 봐봐.”

“…….”

“어른 말 들어야지.”

“저도, 어른이에요.”

“그래, 그러니까 어른답게 어른 말 듣자. 나 봐, 수민아.”

인혁이 수민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수민은 대답하지 않았으나 인혁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내리깐 모습이 고집스럽게 보였다.

누굴 닮아서 속상해도 속으로만 삭일까. 아이답게 좀 더 드러내 화내고 투정 부려도 되는데. 그랬으면 좋겠는데.

마음이 자꾸 수민에게로 기울었다.

“미안. 아까 잠깐 딴생각 중이었어.”

너 피한 거 아니야. 인혁이 에둘러 말했다. 그제야 수민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생각요?”

수민이 집요하게 인혁을 바라보았다.

“글쎄.”

약을 더 많이 먹어야겠다는 생각?

“콩자반 더럽게 맛없다는 생각.”

가게 주인은 이미 도망가고 없는데, 인혁은 비밀을 말하듯 목소리를 한껏 낮춰 속삭였다.

인혁은 제 얼굴을, 눈을 샅샅이 살피는 시선을 느꼈다. 진짜인지 거짓인지 보면 알 수 있는 건지, 수민은 거짓말 탐지기처럼 굴었다. 인혁은 얼마든지 살펴보라며 기꺼이 제 밑천을 드러내 주었다.

수민의 숨소리가 커졌다 다시 사그라들었다. 인혁은 입꼬리가 움직이는 걸 참기 위해 애써야 했다.

“……저도요.”

“그래, 너 콩자반 싫어하잖아.”

“소장님도 콩자반 싫어하고요.”

“그래.”

인혁은 갑자기 목이 멨다. 왜, 어째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보호 시설 인가를 내고, 대외적으로는 장애가 있는 알파, 오메가 미성년자들을 교육하는 합숙 학교로 위장하였으나 실상은 미성년자 학생들을 보호자와 격리하고, 폭행과 착취를 일삼은 일당이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관련 사건은 민간단체인 오메가 대상 범죄 연구소와 장애 아동 인권 협약 단체 소피에서 현장을 급습하였고-.

TV에서 익숙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TV에 나오네요.”

“보도되기 적당한 건이니까.”

목소리가 살짝 잠겼으나 크게 티 나지 않았다.

TV에서 나오고 있는 건 지난주에 갔던 현장 관련 뉴스였다. 피해자는 10대 초중반의 아이들이었다. 보호자들은 하나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도 벅찬, 그래서 장애가 있고 돌보는 손길이 필요한 제 자식을 건사하기 힘든 사람들이었다.

그들 앞에 나타난 건 종교의 위세를 빌린 기숙 학교였다. 그곳의 교장이라는 자가 일부러 찾아와 보호자들의 손을 붙잡고 다정히 말했다. 공부시켜 대학도 보내 주고, 아니면 기술을 가르쳐 취직도 시켜 주겠다고. 학비나 기숙사비는 전액 종교 단체와 나라에서 후원해 주니까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인자하게 웃는 교장의 손을 뿌리칠 수 있는 보호자가 몇이나 있었을까. 아니, 있기는 했을까?

보호자들은 아이를 보내며 신신당부했을 것이다. 가면 교장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선생님들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라고. 다른 사람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곳을 운 좋게 가는 거니까, 말썽 부리지 말고 졸업할 때까지 잘 다녀야 한다고.

덕담 삼아 한 말이 아이에게 얼마나 지독한 멍에가 되었는지, 보호자들은 나중에 가서야 알았다.

아이들이 도착한 곳은 보호자들이 브로슈어와 동영상, 사진으로 보았던 것처럼 잘 갖추어진 기숙 학교가 아니었다. ‘돼지우리만도 못한 곳’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곳에 격리된 아이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뉴스에 자세히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비통하게 울부짖는 보호자들과 모자이크 처리되었어도 멍 자국이 가려지지 않는 피해자들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죽일 놈입니다. 우리 애를, 그런 말만 믿고 거길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우리 아이가!

죄책감에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부모의 모습이 잠깐 화면에 비쳤다 사라졌다.

알파든 오메가든 베타든 상관없이 아이는 그 존재 자체로 보호받아야 마땅하건만. 보호해 줄 사람이 없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는 너무 쉽게 보호받지 못하는 처지에 이른다.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이, 특히나 미성년인 알파와 오메가들이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숱하게 보아 왔으면서, 인혁은 이번에도 참지 못했다. 도망치는 교장을 붙잡아 죽기 직전까지 팼다. 아이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뒤룩뒤룩 살진 거구는 반격하기는커녕 제 몸 하나 보호하지도 못했다.

저러다 사람 죽는다. 인혁의 성질머리를 잘 알고 있는 사무실 사람들과 인권 단체 사람들이 기겁하며 뜯어말렸다. 그래도 말려지지 않았다. 말리려 덤벼든 사람들이 얼결에 얻어맞아 바닥에 나뒹굴고 쓰러졌다.

“수민 학생! 김 소장 좀 말려 봐봐!”

“수민아! 얼른!”

상황이 그 지경에 이르니, 서 여사와 박 씨가 수민을 부르짖었다. 인혁이 수민을 아끼니, 수민의 말이라면 듣지 않을까 기대해서였다.

그때 수민은 한쪽에서 피해자들에게 물과 모포를 나눠 주고 있었다. 수민은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으나 따르지 않았다.

왜 말려야 하지? 수민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피해자인 아이들은 인혁이 주먹을 내리칠 때마다 오들오들 떨었다. 저흴 괴롭히던 사람을 괴롭히는 인혁을 보며 겁에 질려 울었다.

“울지 마. 제대로 봐둬. 너흴 구해 준 사람이야.”

수민은 오히려, 우는 아이들을 나직한 목소리로 말렸다.

수민의 말을 들은 아이들이 하나둘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인혁은 교장을 피떡으로 만들어 놓은 뒤에야 멈췄다. 제풀에 지쳐 원장을 내던지고 주저앉았다. 피 범벅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너흰 운이 좋네. 이렇게 일찍 저 사람을 만나 구원받았으니까.”

수민은 아이들을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인혁에게 향해 있었다.

수민은 좀 더 지켜보다가 남은 생수와 수건을 챙겨 인혁에게로 갔다.

인혁 주변엔 사람들이 없었다. 다들 인혁이 다시 날뛸 때를 대비하여 교장을 멀리 옮겨 놓으러 갔다. 안 그래도 거구가 정신을 잃고 늘어졌으니 한두 사람의 힘 가지고는 움직일 수 없었다.

수민은 인혁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인혁의 팔을 잡았다. 인혁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으나 수민은 포기하지 않고 손을 제 쪽으로 잡아끌었다.

손이 엉망이었다.

사람을 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을 상처 입히면 나도 상처 입는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려면 자신 또한 다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남을 때리는 것에 숙련된 사람들은 자신이 덜 다치기 위해 수를 쓴다. 연습을 해서 몸을 단련하고, 도구를 이용하고, 머리 숫자를 늘리기도 한다. 정도에 따라 그것을 스포츠나 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패싸움이나 폭력, 살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혁이 어디에 속하는지 수민은 알지 못했다. 다만 어디에 속하든, 인혁이 사람을 때리고 다치게 하는데 충분히 숙련된 사람이라는 건 알았다. 그러니 손이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새로운 상처가 옛 상처를 덮었다. 인혁의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인혁은 제가 상처 입기 위해 남을 상처 내는 사람 같았다.

수민은 수건에 물을 묻혀 인혁의 손을 닦았다.

“놔둬.”

“더러운 걸 만졌으니까 닦아야 해요.”

“……치료받으라는 말을 참 묘하게도 한다, 너는.”

인혁이 고개를 들었다. 지치고 눅눅한 눈빛이었다. 수민이 알고 있는 그의 눈이 맞았다. 수민은 인혁이 그 눈으로 절 보는 게 좋았다.

하지만 인혁의 눈은 수민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이내 수민의 어깨 너머, 웅크려 있는 피해자들을 보았다.

거기에 인혁의 아들일지 모를 사람은 없었다. 모두 10대였고 신원이 분명했다. 그래도 인혁의 눈은 그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수민은 인혁의 손을 마저 닦고 손끝으로 새로 난 상처를 훑었다. 꾹 누르고, 이 상처를 헤집으면 아파서라도 다시 날 봐줄까?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지 못했다.

“그만하면 됐어. 고맙다.”

수건으로 감싼 손이 빠져나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서 할 수 없었다.

-해당 시설의 운영자로 외부에는 천 원장으로 알려진 천OO 씨는 현재 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심각한 부상과 폭행으로 인한 불안 증세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메가 대상 범죄 연구소의 김 소장의 고소를 준비하고 있으며-.

아나운서의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다음에 피해를 입은 보호자들의 성명 발표 장면이 나왔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우리 애는 그곳에서, 언제까지 그런 꼴로 그런 일을 당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천 교장 그 개XX, 죽여서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이 감히 누굴 고소한단 말입니까!

이어 피해자들의 인터뷰도 잠깐 나왔다. 다들 인혁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감사 인사를 받은 당사자는 딱히 감격하지도, 뿌듯해하지도 않았다. 관심조차 없었다.

“소장님은 누구든 다 구해 주는 건가요?”

수민이 TV를 보며 물었다.

“뭐?”

“제보받으면 어디든 가잖아요.”

“제보를 받으면 무조건 가긴 하지.”

“어디든?”

“어디든.”

“그렇군요.”

수민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수저를 들었다.

“그건 왜 물어.”

“그냥요.”

그렇다면 왜 나는 저렇게 구원받지 못한 걸까.

왜 그의 ‘어디든’에 내가 있던 곳은 포함되지 못했던 걸까.

왜 내게는 와주지 않은 거지?

허위 제보에도 무조건 달려가는 인혁을 보며, 수민은 ‘그냥’ 생각해 보았다. 적당한 답은 금방 생각났다.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수민이 있던 곳은 특히나 폐쇄적인 곳이었다. 그래서 특히 힘들었다고, 공익 생활 중에 만난 공무원들이 말해 주었다. 인혁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를 때려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혁에게 구원받은 아이들이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만약에’라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수민의 몸속 어딘가를 맴돌았다. 그곳이 머리일 때도 있었고 심장일 때도 있었다. 어느 땐 손끝이었다. 인혁과 닿은 손끝. 오늘처럼.

수민은 인혁과 닿았던 손을 문지르며 상상해 보았다. 만약 누군가가 그곳을 제보해서, 인혁과 좀 더 일찍 마주칠 수 있었다면. 그 아이들처럼 인혁에게 구원받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수민은 처음 사람을 죽였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자신이 죽인 모든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다.

실수로라도 최후의 날에 땅속에 묻힌 채 일어나지 못해 하늘 아버지께 심판받지 못할까 봐. 그들의 진정한 구원을 위해 매일같이 기도했다.

만약 그들을 죽이기 전에 인혁을 만났다면. 어쩌면 자신은 그들의 얼굴을 전부 기억하지 않았어도 됐을지 모른다.

-이번 여름은 국지성 호우와 이른 장마가 예상된다고 합니다. 아직 이른 인사일 수도 있지만, 이런 인사를 미리 드리고 싶습니다. 외출하실 때 가방에 넣어 다닐 작은 우산을 미리 하나 챙겨 두심이 어떨까요? 그런 작은 우산 하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해 보는 것도-.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봄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여름을 걱정해야 하는가 보다.

수민은 여름이 싫었다.

죽여야 하는 사람의 몸은 땀으로 축축하고, 시체는 너무 빨리 부패했으니까. 비가 오면 족적 같은 흔적이 너무 쉽게 남았으니까.

“집에 우산은 있어?”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집에 우산이 있는지까지 걱정해 주는 사람이 생겼으니까.

그러니까 수민은 이제야 온 이 여름이, 원망스러웠다.

왜 나는 당신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던 걸까. 누구든 한 번만이라도 당신에게 연락해 줬다면. 분명 달려와 줬을 텐데.

“아니요.”

“그래? 사무실에 선물 들어온 우산이 몇 개 굴러다니던데. 집에 가져다 놔.”

인혁이 고기반찬을 수민의 앞에 끌어다 놓으며 말했다.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 감정의 이름을, 수민은 여전히 알지 못했다.

***

인혁은 식사 후 수민을 집에 데려다준 뒤, 반찬 가게에 들러 배달 서비스를 6개월 더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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