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6. 오수민, 24세, 오메가 (7)
한 달간 뜸했던 현장 업무가 일주일에 세 건, 연달아 몰아쳤다. 장마가 와도, 날이 찜통같이 더워도, 사람은 사람을 납치했고 학대했고 감금했다. 범죄자들은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시원한 곳에서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여유롭게 늘어져 있었고, 피해자들은 더럽고 찜통 같은 곳에 갇혀 죽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인혁은 겨울만큼이나 여름을 싫어했다. 겨울엔 범죄자들이 따뜻한 곳에서 노릇노릇하게 녹아 있고, 피해자들은 손발이 언 채 달달 떨고 있었으니까.
지구 온난화로 봄, 가을이 사라지고 여름, 겨울이 길어지고 있다던데. 그에 발맞추어 사람이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일도 늘어 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지 않는 날이 단 하루도 없으니 세상이 점점 더 더워지고 추워지는 것 아닐까.
어쩌면 아직 이 세상은 종말의 초입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이 나라에 봄과 가을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 비로소 종말의 문이 열릴지도.
“수민아?”
“네.”
멍하니 서 있던 수민은 이제야 작동 버튼이 눌렸다는 듯 움직였다.
“괜찮아? 좀 힘들면 차에 들어가서 찬 바람 좀 쐬고 있어.”
“아니에요. 괜찮아요.”
수민은 아이스박스에서 차가운 생수병을 꺼내 품에 가득 안고, 피해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더워 땀이 송송 나는데 생수병을 안은 팔과 가슴은 시렸다.
“수민 학생, 요즘 너무 열심이야. 무리하다 쓰러질까 봐 겁난다니까. 더위 먹는 건 나이를 안 가리는데.”
서 여사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수민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박 씨가 부르는 소릴 듣고는 그곳으로 바삐 뛰어갔다. 딱 사돈 남 말하는 모습이었다.
더운 현장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수민을 눈여겨보는 건 서 여사만이 아니었다. 서 여사 이상으로 인혁 역시 신경 쓰고 있었다. 이번 현장에 협력한 타 단체와 이후 업무를 논의하면서도, 자꾸 수민을 돌아보고, 찾았다. 근처에 없으면, 눈에 안 띄면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화가 치밀었다.
‘저러다 더위 먹으면 어떡하려고.’
남들한테 찬물을 주고 다니면서 저는 제때 수분을 섭취하는지, 급할 거 없으니 뛰어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뭐 급하다고 저렇게 뛰어다니는 건지 온통 걱정됐다.
하는 일의 특성상 다칠 위험이 있어 한여름에도 긴 팔과 긴 바지를 입었다. 모자도 썼다. 그러다 보니 땀이 안 날래야 안 날 수 없었다. 수민의 셔츠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인혁은 수민의 몸을 그대로 드러내는 젖은 셔츠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아드님이세요?”
인혁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타 업체 자원봉사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인혁의 시선을 뒤쫓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까부터 자꾸 돌아보시길래요. 애를 물가에 내놓은 아버지처럼요.”
“아, 죄송합니다.”
“아니요, 화내는 게 아니라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소장님 사연이야 이쪽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아드님 찾으셨으면 소문이 퍼졌을 텐데. 아직 그런 말은 못 들었고…….”
“그런 거 아닙니다.”
인혁이 정색했다.
“아, 죄송합니다. 딱 아드님뻘인 거 같아서. 좀 닮은 것도 같고…… 제가 착각했네요.”
자원봉사자가 얼른 사과했다.
“닮았, 다고요? 쟤랑 제가요?”
인혁이 되묻자 자원봉사자가 얼른 손사래 쳤다.
“네? 아, 네.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제가 눈썰미가 없어서…… 잘못 본 것 같아요.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희 사무실 신입입니다. 앞으로 종종 볼 텐데,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군요. 그러니까 더 죄송하네요.”
자원봉사자가 민망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닙니다.”
인혁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불쾌하진 않았다. 이전에도 종종 그런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내심 그런 시선을 즐겼으니까.
이젠 그런 시선이 달갑지 않았다. 그 아들뻘인 아이와 붙어먹은 것도 모자라 매일 같이 한 침대에서 자고 있으니까.
양심이 돌아왔는지 속이 불편해졌다.
어디 갔다 이제 돌아온 건지 모를 빌어먹을 양심은 진득하니 몸 어딘가에 붙어 있을 생각은 않고 또 훌쩍 사라졌다. 양심이 비운 자리에 슬그머니 들어차는 것은 염치없는 욕망이었다.
가끔 달달한 향이 너무 짙게 나 설핏 잠에서 깨면, 손이 수민의 다리 사이에 들어가 있었다. 당황해 돌아누우면, 수민이 쫓아와 등에 매달렸다. 그리고 뜨거워진 제 하체를 비벼 댔다. 끙끙대며 비비적대는 움직임이 얼마나 안쓰럽고, 귀엽고, 달콤한지…….
‘빌어먹을.’
인혁은 혀를 깨물며 염치없는 기억을 겨우 끊어 냈다.
현장에서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죄책감이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마음을 쿡쿡 찔러 댔다. 인혁은 그 바늘을 뽑아내는 대신, 힘을 보태 아예 제 마음에 쑤셔 박아 버렸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인혁은 애써 당장 눈앞에 놓인 일에 집중했다. 그 모습을, 수민은 멀찍이서 지켜보았다.
자원봉사자는 인혁의 대화가 길어지고 있었다. 무슨 대화를 나누기에 자원봉사자가 몸을 가만 놔두지 못하고 흔들어 대는 걸까. 왜 고개를 연달아 숙이고 인혁에게 실없이 웃어 보이는 걸까.
인혁은 또 왜, 그걸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는 걸까.
수민은 인혁과 대화를 나누는 자원봉사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선하게 생긴 20대의 청년이었다. 스무 살로 보이진 않았지만, 일단 얼굴은 기억해 두었다.
“저, 저기…… 물, 좀…….”
“네.”
수민은 들고 있던 물병을 다시 피해자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수민에게 말을 건넸다. 그늘에 가서 좀 쉬어라. 무리하지 마라. 젊은데 열심이네, 기특해요, 등등.
수민은 사교성 좋게 웃으며 고맙다고 대꾸하지 않았다. 고개만 꾸벅이고 말았다.
꾸며 내는 건 티가 나니까. 나가면 다시는 그딴 식으로 웃지 말라는 소릴 들었던 터라. 수민은 이제 꾸며 내 웃지 않았다.
웃지 않는 수민은 종종, 시비에 휘말렸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그랬고, 현장에서 타 업체 사람들과 협업할 때도 그랬다. 매일 얼굴을 보고 사는 사무실 사람들은 별말 없었건만.
현장에서 마주치는 타 업체 사람 중에는 무표정한 수민을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꼭 한두 명씩은 있었다. 어떨 땐 그보다 더 많았다.
어린 녀석이 밥맛 없게 왜 인상을 쓰고 다니냐고 한 소리 듣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혁이나 서 여사, 박 씨가 안 보는 틈을 노려 수민의 멱살을 잡고 재수 없게 굴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수민의 멱살을 잡은 사람은 수민이 어찌 처리하기 전, 인혁의 손에 아작 났다.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수민은 아직도 신기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대놓고 수민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뒤에서라도 쑥덕대는 사람들은 꼭 있었다.
수민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번에 협력한 인권 단체 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 다들 착했다. 칭찬도 후했다.
수민은 그들의 칭찬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자신이 칭찬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수민은 인혁이 피해자들에게 다가가기 전에 먼저 피해자들을 살폈다. 혹시 인혁의 아들이거나 아내, 처남일지 모를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인혁의 아들일 가능성이 있는 피해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익숙한 일이기에 인혁은 멋대로 기대하지도 낙담하지도 않았다. 서 여사와 박 씨 역시 새삼 인혁을 위로하거나 하진 않았다.
수민만 혼자 ‘혹시나’하고 두려워했다가 안심했다.
“여기요, 받으세요. 곧 경찰이 오면 원래 사시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으실 거예요.”
수민은 피해자들에게 상냥하게 물을 나눠 주었다.
***
7월도 더웠지만 8월도 만만치 않았다. 아니, 더 심했다. 이게 진짜 여름이라는 듯 지옥같은 더위가 몰려들었다. 사무실에서는 종일 에어컨이 돌아갔다. 잠깐이라도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그게 누구든 죽다 살아났다는 얼굴로 에어컨 앞으로 달려갔다.
서 여사의 떡볶이 탐험은 잠정 휴식기를 맞았다. 너무 더워서 차마 떡볶이를 먹으러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우체국 가는 일을 수민에게 맡기지도 않았다. 우체국 갈 일이 있으면 최대한 마지막까지 버티면서 여러 건 모았다가 아침 일찍 후딱 다녀왔다. 서 여사가 담배 피우러 간다면서 다녀오곤 했다.
수민은 은혜 갚는 병아리가 되기 위해 핸드폰에 배달 어플을 깔았다. 사무실이 한가한 틈을 봐 떡볶이를 시켰다. 바야흐로 떡볶이 배달의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안 되겠다. 내 아들 하자. 내 호적에 들어와. 오늘부터 서수민 하자.”
서 여사는 배달 온 떡볶이 세트를 보자마자 더없이 진지하게 프러포즈했다. 내 아들이 되어 줘.
수민은 대답하는 대신 배달 온 떡볶이를 탕비실 테이블에 펼쳤다. 두 사람이 먹기엔 많은 양이었다.
“흐흐, 역시 날 챙겨 주는 건 수민이밖에 없다니까. 역시, 뽜이터의 의리!”
박 씨가 눈치를 보다 슬쩍 끼어들었다. 그는 이참에 떡볶이 원정대에 합류해 정기 멤버가 되고야 말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수민이 괜찮다고 해도 한사코 떡볶이값을 현찰로 따박따박 주었다.
그 전에 서 여사가 매번 떡볶이값을 결제한 금액 이상으로 넉넉히 주었기 때문에, 수민은 양쪽에서 떡볶이값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수민이 난감해하자 서 여사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챙길 수 있을 때 챙겨 두라고 조언했다.
인혁은 탕비실에 앉아 떡볶이를 먹는 세 사람을 보며 질색했다. 떡볶이를 먹는 건지 쿨피스를 마시는 건지 모를 수민을 보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젊은 게 좋긴 좋구나.”
“…….”
수민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새 쿨피스를 땄다.
인혁은 떡볶이의 매운 냄새를 격리시키기 위해 공기 청정기를 세 사람 옆에 가져다 두고 멀찍이 물러났다.
그리고 다음 날, 쿨피스가 종류별로 한 박스 배달 왔다. 주문자는 사무실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누가 시킨 건지는 당사자가 티 내지 않아도 나머지 사람들이 알아서 눈치챘다.
“아이고, 수민 학생 입만 입이지?”
인혁이 투덜대도 인혁은 끝까지 모른 척했다.
수민은 묵묵히 냉장고 빈틈에 쿨피스를 채워 넣었다. 박 씨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인혁을 바라보았다.
인혁과 수민은 계속 함께 출근하고 퇴근했다. 수민은 매일 아침 인혁의 페로몬에 덮인 채로 사무실 문을 열었다.
인혁이 퇴근하지 않으면 수민도 퇴근하지 않고 있으니, 인혁의 야근이 자연히 줄어들었다.
“퇴근하고 마트에 가야 돼요. 라면이 다 떨어졌어요.”
“이참에 라면 좀 덜 먹지?”
“쌀도 사야 돼요.”
“한 번 가긴 가야겠구나. 이따 퇴근하고 들르자.”
“네.”
수민과 인혁 사이에 생활감 묻어나는 대화가 오갔다. 그 역시 사무실 일상 중 한 부분이 되었다.
서 여사와 박 씨는 ‘이대로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관음 상태에 젖어 들었다. 두 사람의 편안한 모습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수민의 마른 얼굴에 혈색이 돌고, 표정이 풍부해졌다. 인혁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태도에서도 안정감이 느껴졌다.
인혁이 더 이상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물지 않았다. 본인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흡연가인 서 여사와 정보에 민감한 박 씨는 금방 알아차렸다. 그래서 더더욱, 수민을 챙겨 퇴근하는 인혁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농담조차도 조심스러웠다. 혹여나 이 아슬아슬한 평화가 제 말 한 마디에 깨질라, 어그러질라. 서 여사와 박 씨는 겁이 났다. 그리고 겁내는 자신을 돌아보며 쓰게 웃었다.
***
“좋아졌네. 수치가 안정적이야.”
“저번에도 그 말 했는데.”
“꾸준히 유지하는 게 중요해. 다음 달에도 같은 말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 어?”
의사가 함박 웃으며 말했다. 제 몸이 나은 것도 아닌데, 의사는 자신의 일처럼 좋아했다. 인혁은 입가에 맴도는 고맙다는 말을 꺼낼까 말까 망설였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언제 데리고 올 건데?”
고맙게도 의사는 고맙다는 말이 쑥 들어가게 만들었다.
“데리고 오긴 뭘 데리고 와.”
인혁이 한 번도 고마운 적 없었다는 듯 싸늘하게 대꾸했다. 의사는 인혁의 까칠한 태도를 가볍게 넘겼다.
알파는 제 오메가와 관련된 일에 예민해진다.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보통 알파도 그런데, 우성 알파는 더 말해 무엇할까.
“딴 속셈 있는 거 아니고, 네 주치의로서 하는 말이니까, 생각해 봐. 같이 검진받으면 얼마나 좋아. 그쪽도 무슨 사고로 몸이 좀 안 좋다며. 부부가 나 같은 훌륭한 의사를 주치의 삼아서 함께 관리받으면 좀 좋아?”
“부부?”
인혁의 얼굴이 구겨졌다.
“말 같잖은 소리 그만하고. 더 할 말 없으면 나 간다.”
인혁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어, 잠깐만, 잠깐만.”
의사가 다급히 인혁을 붙잡았다.
“상태가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페로몬 거부 증세는 여전하거든? 조심해야 돼. 다 나은 것처럼 착각해서 나대다간 훅 간다.”
“의학적 소견입니까, ‘훅 간다.’가? 참 고맙습니다, 의사 선생님.”
인혁이 어처구니없어하며 비꼬듯 대꾸했다.
“말했잖아. 난 환자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다고. 네 수준이 그 정도인 걸 어떡해?”
“말이나 못 하면.”
“아무튼 혹시 모르니까 약은 계속 처방해 줄게. 대신 약을 좀 바꿀 거야. 이전까지 먹던 것보다 순한 걸로, 복용량도 줄일 거고. 다음 러트 사이클 때 상대랑 의논해서, 약 먹지 않고 보내도 좋을 거 같아. 혹시 그분 페로몬까지 거북스러워진다 그러면 지체 말고 바로 병원 오고. 알았지?”
의사는 인혁이 다 듣지 않고 나가 버릴까 봐 랩 하듯 말을 쏟아 냈다. 인혁은 유독 귀에 거슬리는 말에 과민 반응했다.
‘그 애의 페로몬이 거북스러워질 수도 있다고?’
배 속 저 깊은 곳에서 거역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럴 일 없…….”
잖아.
강하게 반박하려던 인혁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뭐? 뭐가?”
의사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긴. 뭐 말하려고 했잖아. 뭔데?”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말을 하다 말다니.”
“별말 아니었어.”
“별말 아닌 게 뭔데!”
“나 간다.”
“김인혁!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이렇게 가기 있냐. 안 돌아와?”
인혁은 진료실을 나와 데스크에서 처방전을 받았다. 오늘은 평일 낮에 와서 병원에 의사 말고도 사람이 많았다.
인혁의 페로몬 거부증은 오랜 고질병이었다. 오메가의 페로몬이면 무조건 몸이 거부 반응을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세는 점점 더 심해졌다. 어떤 오메가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데 예외가 생겼다. 그러니 의사의 걱정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었다. 언제든 거부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은 그럴 리 없다고 단정했다.
확신했다.
그 마음은 진료실을 나온 뒤에도 변치 않았다.
인혁은 그렇게 생각하는 자기 자신을 경멸하는 한편, 정말로 자신이 수민의 페로몬을 거부하는 날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개쓰레기.”
“예?”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혁은 진료비를 내고 나와 병원 건물 1층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았다.
건물을 나오자마자 숨쉬기 힘들 정도로 덥고 습한 열기가 몰려들었다. 인혁은 별생각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이렇게 하늘을 올려다본 게 얼마 만인가 싶었다.
코와 입으로 스며드는 더운 공기에 겨우 익숙해지려는데, 담배 냄새가 났다. 근처에 흡연 구역이 있는 듯했다. 인혁은 문득 생각나 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담배는커녕 라이터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
인혁은 언제부터 자신이 담배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던 건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꽤 오래된 것 같았다. 그런데 그동안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인혁은 혀를 차며 재킷을 벗어 팔에 걸쳤다. 셔츠 소매도 걷은 뒤 도로를 따라 걸었다.
약국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었다. 옆 건물에는 다른 브랜드의 편의점이 있었다. 두 건물을 지나쳐도 편의점은 계속 눈에 띄었다.
어딜 들어가도 담배와 라이터를 살 수 있었다. 입맛이 특이해서 일반 편의점에서 잘 안 들여놓는 독특한 담배만 고집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인혁은 그냥 편의점에 들어가 담배를 사지 않았다.
입이 근질근질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담배를 물고 싶은 간지러움이 아니었다. 인혁은 단 게 당겼다.
살짝 깨물면 당연하게 입을 벌렸다. 안으로 혀를 넣어 입천장을 핥아 주면 달달한 신음을 냈다. 작은 혀를 사탕 굴리듯 빨면 단 자두 향이 입 안에 퍼졌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놓쳐 버릴 듯 연하고 약한 향이라서, 타액도 아까워 핥아 먹었다.
숨이 딸려 버거워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미는 그 순한 모습이 얼마나 사람을 자극하는지, 본인만 모르는 듯했다.
인혁은 수민이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싫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그 아이의 입 속을 마음껏 헤집었다.
달아서.
너무 달아서.
그래도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개쓰레기.”
인혁은 횡단보도 앞에 서서 기둥에 머리를 박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날이 더운데, 날씨보다 몸이 더 더웠다. 인혁은 죄의 대가라고 생각하며 한 정거장을 뚜벅뚜벅 걸었다. 목이 갑갑해 셔츠 단추를 두어 개 푸르다 멈췄다. 익숙하게 손에 걸려야 하는 넥타이가 없었다.
‘병원에 놓고 왔나?’
급히 돌아서려다가, 제가 애초에 넥타이를 안 매고 나왔으며 그 넥타이는 늘어질 대로 늘어져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음을 기억해 냈다. 인혁은 안도하며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한참 기다리다 버스에 올라타니 살 것 같았다.
인혁은 담배 생각은 까맣게 잊은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집 근처 정류장에서 내리자 구수한 냄새가 인혁을 반겼다. 노릇하게 갓 구운 빵 냄새였다.
정류장 앞 상가에 핸드폰 가게가 나가고 꽤 오랫동안 비어 있었는데, 베이커리 카페가 들어선 듯했다. 프랜차이즈는 아니고 개인 가게인 것 같은데, 베이커리 종류가 다양했다.
‘빵, 빵이라…….’
인혁은 아무 생각 없이 카페에 들어갔다.
날이 많이 더웠다. 인혁은 혼자 열 내며 뙤약볕 아래에서 한 정거장을 꼬박 걸었다. 더위에 지쳐 있는데 마침 빵 냄새가 나니, 입 안에 군침이 돌았다.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손님도 제법 있었다. 이제 막 개업해서 할인을 많이 해준다고 써놓은 게 보였다. 빵은 제법 맛있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수민에게 너무 밥만 먹인 게 아닌가 싶었다.
‘아직 어린데 밥 말고 이런 거 좋아할 나이 아닌가.’
아저씨랑 같이 사느라 맨날 밥만 먹고, 아줌마랑 놀아 주느라 맨날 떡볶이만 먹고. 사무실에서 먹는 점심은 거진 백반이고. 그러고 보면 모두 다 요즘 애들 입맛에 안 맞는 음식뿐이었다.
왜 하필, 지금 이런 생각이 순차적으로 떠오르는 건지는 모를 일이나. 인혁은 제가 지금 빵을 사가야 하는 이유를 계속해서 만들어 낼 자신이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아르바이트생들이 손님을 반갑게 반겨 주었다. 어서 오세요! 가게 안쪽에서 계속 빵을 굽고 있는 건지, 커다란 쟁반에 뜨끈뜨끈한 빵이 연달아 담겨 나왔다.
인혁은 맛있어 보이는 것, 요즘 애들이 좋아할 것 같은 걸 넉넉히 집어 들었다. 유산지를 깐 쟁반이 금방 수북해졌다.
계산하고 빵이 담긴 쇼핑백을 받으니 제법 묵직했다. 둘이 먹기엔 많은 양이었다.
‘먹다 남으면 내일 사무실에 가져다줘야지. 떡볶이 좀 그만 먹으라고 하고.’
인혁은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갔다. 그때까지도 인혁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발걸음이 가벼웠다. 살짝 들뜬 기분이 들기도 했다. 수민이, 얘가 좋아하려나.
이상해진 건 집 문 앞에 섰을 때였다.
터치하여 도어 록을 실행시키고 번호를 누르면 문이 열린다. 비밀번호는 핸드폰 뒤 번호 네 자리와 차 번호판 번호 네 자리. 매일 열고 닫는 현관문이었다.
하지만 인혁은 문을 열 수 없었다.
‘내가 왜 빵을 사 왔지?’
빵을 들고 있는 팔을 도끼로 찍어 내고 싶어졌다.
‘갑자기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거지?’
인혁은 방금 전까지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나왔다. 수민이 따라가겠다고 일어섰다. 검정고시가 코앞인데 어딜 따라오느냐고, 수민을 도로 앉혔다. 돌아올 때까지 여기까진 풀어 놔야 한다고 문제집에 표시도 해줬다.
수민은 불만스러워했지만 순순히 보내 줬다. 넥타이로 손목을 묶고 따라오지 않다니, 그만큼 믿음이 쌓인 건가. 뿌듯해졌다가 자괴감을 느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수민이 현관까지 따라 나와 인사했다.
“공부 잘하고 있어. 올 때 맛있는 거 사 올 테니까.”
수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집을 나서는데,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했다.
‘그래서 빵을 사 온 거구나. 내가. 수민이 주려고.’
인혁은 제가 빵을 들고 있는 이유를 깨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문에 손댈 순 없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인혁은 뼈에 에이는 한기를 느꼈다.
‘또 안에 아무도 없으면?’
애써 외면했던 질문이 기어이 튀어나왔다.
20년 내내 그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게 당연했다. 아무도 없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누가 있다. 누가 있는 게 당연해져 버렸다.
언제부터?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지?
‘이렇게 되기 전에 내보내야 했어.’
인혁은 뒤늦게 후회했다.
빵 같은 걸 사 오는 게 아니었다. 수민을, 오래 곁에 두는 게 아니었다.
집에 누군가 있는 게, 그 누군가가 그 아이인 게.
이렇게 당연해질 줄이야.
‘또 없어지면 어떡하지?’
잊고 있던 두려움이 밀려와 인혁을 집어삼켰다.
빵을 들고 이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또 아무도 없으면? 누가 있어야 하는데, 없으면?
이번엔, 버틸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있을 리가.
안 돼. 이젠 싫어.
한 번으로 족했다. 20년이면 지긋지긋했다. 또 잃을 순 없었다.
역시 빵을 사 온 게 잘못이었다. 왜 수민을 집에 들였을까. 빵을 사 와선 안 됐다. 수민을 곁에 둬선 안 됐다. 빵만 안 사 왔으면. 수민을 곁에 두지만 않았으면.
이런 두려움, 다시 느낄 일 따윈 없었을 텐데.
인혁은 뒤로 물러섰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경고가 계속 머릿속에서 울려 댔다.
그러지 않으면.
그러지 않으면…….
띠디딕.
문이 열렸다.
“소장님?”
헐렁한 흰색 셔츠에 베이지색 반바지. 양말을 신지 않은 맨발. 머리카락이 조금 붕 뜬 오수민.
수민이 안에 있었다.
“있, 었어?”
인혁이 멍하니 수민을 바라보았다.
“네. 어디 안 나가고 공부했어요.”
“…….”
“다는 못 했어요.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수민이 슬쩍 인혁의 눈치를 보다 고개를 숙였다.
인혁은 목이 타는 걸 느꼈다. 아니,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그런데 왜 문 앞에 서서 안 들어오고 있으세- 윽!”
고개를 갸웃하는 수민의 어깨를 붙잡고 거칠게 밀어붙였다.
문이 도로 닫혔다. 띠디딕. 도어 록이 잠겼다. 쇼핑백이 바닥에 떨어졌다. 튀어나온 빵이, 두 사람의 발에 차이고 밟혔다.
“소장니- 읍.”
수민은 벽에 밀쳐져 인혁에게 키스당했다.
수민이 당황하여 인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밀어 내려는 건 아니었는데, 인혁이 제멋대로 오해하여 수민의 양손을 잡아챘다. 손목을 거머쥐고 위로 들어 올렸다.
입술이 맞붙자마자 혀가 밀려 들어왔다. 수민은 예전에 배웠던 것처럼 입을 벌렸다. 인혁을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두툼한 혀가 입천장을 쓸고, 혀뿌리를 뽑을 듯 빨아 댔다.
“소, 자, 흐으…… 아. 응.”
수민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프다고, 손가락을 꼼지락댔는데, 팔목을 움켜쥔 손힘만 더 세졌다.
인혁은 막무가내로 수민을 밀어붙였다. 수민이 지쳐 늘어질 때까지 입 안을 잔뜩 헤집고는 몸을 돌려세워 바지 버클을 풀었다.
“소, 장님?”
“가만있어, 수민아.”
인혁이 수민의 귓가에 입술을 바싹 붙이며, 속옷에 손을 넣어 수민의 성기를 잡았다.
말랑하고 따뜻했다. 하지만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좀 더, 살아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기분 좋게 해줄게.”
인혁이 어깨를 잘근잘근 깨물며 속삭였다.
“소, 소장님. 갑, 자기…… 아!”
수민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인혁은 움츠린 어깨에 얼굴을 묻고 숨을 들이켰다.
달달한 향이 났다. 안도감과 정욕에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좀 더, 좀 더. 살아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인혁은 수민의 성기를 손에 쥐고 흔들었다. 거칠고 급했다. 쥐어짜 내듯 털어 대며 발기를 종용하고, 사정을 강요했다.
“아, 자, 잠, 깐, 사, 살살…… 소장님, 아파요. 흑…… 아, 으, 이상, 이상해. 아.”
“이상해?”
인혁이 수민의 목덜미를 깨물며 물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라고 했어?”
“아, 아닛. 아. 으.”
“수민아, 내가 뭐라고 말하라고 그랬지?”
“흑…… 읏, 아. 흐, 아, 앗!”
“수민아, 어서.”
“아. 자, 잠깐만. 아니, 아.”
“아가.”
인혁은 수민이 어떻게 하면 약해지는지 철저히 기억하고 있었다.
현관문 등의 센서 불이 꺼졌다. 어스름한 현관에서 인혁의 눈만 섬뜩할 정도로 번뜩였다.
“말해 봐, 수민아.”
“기, 기분, 좋아…….”
“다시.”
“기, 분 좋아요. 아, 아, 세, 세요. 아, 픈, 데…….”
수민이 몸서리쳤다. 다시 센서 등이 켜졌다.
“흑, 좋…… 좋아요.”
수민이 흐느끼듯 말했다.
“잘했어. 착하다.”
인혁은 수민의 목덜미를 핥으며 귀두를 꾹 눌렀다.
“앗!”
수민이 견디지 못하고 허리를 움직였다.
“그래, 잘하고 있어.”
“흐윽…….”
“계속, 그렇게. 그래. 내 손 안에 박아 넣듯이.”
“읏, 으…… 아, 소, 소장니임…….”
수민은 인혁이 시키는 대로 허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엉덩이에 인혁의 고간이 닿았다. 딱딱하고 뜨거웠다. 수민은 제가 그곳에 엉덩이를 비비는지도 모른 채 문질렀다.
인혁이 허리를 쳐올리면 수민도 그 힘에 밀려 허리 짓 했다. 그러면 인혁의 손안에서 수민의 성기가 흔들렸다.
인혁의 손에 성기를 박고 뺄 때마다 엉덩이에 비벼지는 인혁의 성기가 점점 더 뜨거워졌다. 앞뒤로 뜨거운 자극뿐이었다.
수민은 고통과 쾌감에 짓눌려 금방 사정했다.
“흣, 읏. 아!”
언제 웅크렸냐는 듯 수민이 몸을 한껏 뒤로 젖혔다. 인혁에게 몸을 기대고 덜덜 떨었다.
“아…….”
쾌감에 물든 눈에서 잠깐 초점이 흐려졌다. 입술 밖으로 나온 혀가 어쩔 줄 몰라 하다 다시 안으로 말려들어 갔다.
“잘했어. 착하다.”
인혁은 수민의 목덜미에 입 맞췄다. 축축해진 손으로 수민의 성기를 몇 번 더 훑었다.
“읏…… 으, 자, 잠깐만…….”
그때마다 수민은 움찔움찔 떨며 발로 인혁의 다리를 긁었다.
발목에 걸린 바지 때문에 결박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민은 손도 발도 묶인 채 인혁이 주는 쾌감에 흐느꼈다.
인혁은 수민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젖은 손으로 수민의 엉덩이 사이를 성급하게 가르고 구멍 입구를 만졌다.
“여, 기서, 해요?”
수민이 열에 젖은 목소리로 조그맣게 물었다. 센서 등이 다시 꺼졌다.
“응, 힘 빼.”
“네, 읏.”
수민은 순하게 따랐다. 인혁은 젖은 손가락을 밀어 넣어 구멍을 넓혔다. 어두운 현관에서 찌걱찌걱, 안쪽 살이 벌어지는 젖은 소리가 들렸다.
“흐, 아, 소장님. 소장니임.”
수민은 인혁의 가슴에 어깨에 마음껏 기대, 앓는 소리를 냈다.
이렇게 귀엽게 굴면서. 이렇게 달달한 향을 내뿜으면서. 수민의 구멍은 젖지 않았다. 인혁은 쉽게 열리지 않는 구멍을 참을성 있게 늘렸다.
“아, 이제 해요, 으…… 해도 돼요. 해요.”
손가락이 세 개 들어가 구멍 안을 긁자 수민이 애원했다.
“안 돼. 조금만 더.”
“소장니임…… 아!”
“착하지, 잠깐만. 아가.”
인혁은 보채며 돌아보는 수민에게 입 맞췄다. 수민이 기다렸다는 듯 혀를 내밀었다.
인혁은 수민의 혀를 빨며 손가락을 하나 더 넣었다.
“으, 읏!”
수민의 허리가 위로 튀었다.
이 정도도 버거워하면서 그냥 하라고 하다니. 맹랑하고 사랑스러웠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인혁이 입 맞추고 혀를 얽으며 수민의 안쪽을 손으로 쑤셨다.
“아흐, 으, 으…….”
수민이 고개를 앞으로 숙이며 앓는 소리를 냈다.
“힘, 빼고.”
“네, 네…… 얼른, 요.”
“쉬이. 착하지.”
인혁은 수민의 아래에서 손을 빼고, 인혁은 얼룩덜룩해진 목덜미를 빨며 바지 버클을 풀었다. 팬츠를 내려 발기한 성기를 꺼내 잡곤 바로 수민의 구멍 입구에 맞추고 밀어 넣었다.
“아!”
“하아.”
귀두만 들어갔는데, 수민이 벌써부터 구멍을 조였다.
인혁은 수민의 골반을 쥐었다. 당장 끝까지 박아 넣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있건만.
“소, 소장님, 아. 으…… 조, 좋아. 좋아요.”
수민이 벽에 뺨을 비비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야금야금, 성기를 삼켰다. 인혁은 토할 것 같은 성욕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이제, 앞에만 들어갔는데, 좋아?”
아무리 페로몬을 쏟아 내고 핥아 내도 뻑뻑하고 좁은 주제에.
“네. 흐으, 네. 빨리, 아, 빨리…….”
수민이 보채며 엉덩이를 뒤로 내밀었다. 핏줄까지 불거진 성기가 그 안으로 빨려드는 게 보였다. 씨발. 인혁이 욕설을 내뱉으며 수민의 허리를 팔로 감았다. 그리고 성기를 한 번에 박았다.
“악!”
수민의 몸이 앞으로 접혔다. 센서 등이 다시 켜졌다. 수민의 다리가 허공에 떴다.
발가락이 꼼지락거렸다.
인혁은 그 발가락을 입에 넣고 핥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 없으니 귓불을 대신 깨물었다.
“아, 아…….”
“헉, 하, 윽.”
성기를 끝까지 빼냈다 박았다. 박고 또 박고. 수민의 몸을 두 쪽으로 가를 듯 찍어 올렸다.
그렇게 풀었는데도 안이 조여서 미칠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미쳐 버린 지 오래였다. 인혁은 사정없이 수민을 몰아붙였다.
“읏, 아. 아! 너, 너무, 깊…… 아, 소장, 님!”
수민의 몸이 인혁의 몸과 벽에 끼였다. 뺨이 벽에 부딪혔다. 그 상태로 몸이 위로 들썩였다.
“기분, 좋은, 거라고 했지.”
인혁이 목덜미를 깨물며 허리를 쳐올렸다.
“흑, 윽. 아, 앞으로, 앞으, 해주, 세요. 아, 얼굴, 흐으…… 얼굴, 아.”
“안 돼.”
“왜, 왜요. 읏, 흣.”
수민이 우는 소리를 냈다.
“이 자세가 더 깊게 들어가잖니.”
인혁은 수민을 몸으로 짓누르며, 틈 없이 몸을 밀착시켰다.
성기가 뿌리 끝까지 수민의 안으로 들어갔다.
“히익, 힉, 아…… 안, 깊, 깊…….”
수민은 너무 깊다며 발버둥 쳤다.
“아……!”
그러다 감전된 것처럼 몸을 떨며 입을 벌렸다. 수민의 성기가 어이없이 사정했다. 벽에 수민의 정액이 뿌려졌다. 그 위에 수민의 몸이 비벼졌다.
“아, 으, 어, 마, 말도, 안, 돼…….”
수민의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인혁은 허리를 잘게 쳐올리며 눈물을 혀로 핥았다.
“우, 움직, 아, 안…… 소장, 님!”
수민의 얼굴이 고통과 쾌감으로 범벅되어 일그러졌다.
“괜찮아. 기분 좋은 거잖아. 수민아.”
인혁이 세뇌시키듯 끊임없이 속삭였다.
“흐윽…….”
수민이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인혁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줄곧 이렇게, 울리고 싶었다. 엉망으로 만들어서, 소리 내 울며 저만 찾도록. 얼마든지 안아 줄 수 있으니까.
인혁은 만족스럽게 신음하며 있는 대로 제 페로몬을 쏟아 냈다.
배 속에서 인혁의 성기가 부풀어 올랐다. 노팅이었다. 마른 아랫배에 불뚝, 성기 모양이 튀어나왔다. 인혁은 일부러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하, 하지, 마, 요. 아, 흐으……. 아, 앗, 앗. 거기, 싫…… 싫어.”
“수민아, 싫어?”
“아, 아니요…… 그게, 아니, 라……. 흐윽, 기, 깊어. 안 돼, 안 되는데…….”
수민이 덜덜 떨었다. 그러더니 약간 겁에 질린 눈으로 인혁을 돌아보았다.
“소, 소장님, 러, 러트…….”
“아니야, 수민아. 그런 거.”
센서 등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헐떡이는 신음과 그 신음을 달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인혁은 만족스럽게 신음하며, 작은 몸을 제 쪽으로 더 밀착시켰다. 허리를 둥글게 돌리며 안쪽 살을 짓이겼다.
“하지…… 마요. 아, 안 돼…….”
수민이 훌쩍 울었다.
“괴, 괴롭히지 마세요.”
“괴롭히는 거 아닌데.”
“아무튼, 움직이지…… 마세요, 읏…….”
“많이 힘들어?”
“네, 네. 네.”
수민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움직임만으로도 배 속에 자극이 가자 바로 멈췄다.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실감 났다. 수민이 살아서 제 품 안에 있다는 것이.
인혁은 개새끼처럼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미안, 힘들게 해서.”
조금도 미안하지 않으면서, 인혁이 다정하게 속삭였다. 그것만으로도 수민은, 순하기 그지없는 오메가는 마음을 풀고 인혁 쪽으로 몸을 기댔다. 그래서 인혁은 끝없이 미안하다고 속삭이며 어깨와 목에 입 맞췄다.
인혁은 노팅하는 내내 수민의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노팅이 풀린 다음에야 수민의 몸을 돌려 제대로 안아 주었다. 수민은 기다렸다는 듯 인혁의 품에 안겨 가슴에 뺨을 비볐다.
“이번엔…… 이 자세로, 해주세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인혁은 그 맹랑한 말에 웃으며 수민의 젖은 머리카락을 넘겨 주고 고개를 들었다.
벌써 부어오르기 시작한 눈가에 입 맞추며, 이제 그만 인정하자고 마음먹었다.
이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수민의 말대로, 인혁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으니까. 당장 오늘도, 앞으로도.
“수민아, 어떡하지?”
“뭐, 뭐가요?”
“내가 널, 많이 좋아하나 봐.”
또 잃어버릴까 봐 무서울 만큼.
“…….”
수민의 눈이 커졌다.
“어떡하면 될까? 대답해 봐.”
인혁이 수민의 뺨에 입 맞추며 물었다.
수민이 자주 보는 드라마엔 이런 상황에 대한 해답이 있을까? 궁금했다.
“……정말요?”
수민이 힘겹게 물었다.
“정말로.”
인혁이 수민의 허리를 손으로 쓸며 대답했다.
“잘, 못 들었어요. 다시 말해 주세요.”
수민이 인혁의 셔츠를 세게 움켜쥐었다.
“저 잘 못 들었어요. 하나도 못 들었어요. 그러니까 다시 말해 주세요.”
“수민아.”
“어서요.”
“잠깐만.”
“소장님, 빨리, 다시.”
“다시 말할 테니까. 그러니까 숨 쉬어, 수민아.”
“아…….”
수민은 그제야 제가 숨 쉬는 걸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숨 쉬자, 숨 쉬어. 수민아.”
인혁이 수민을 끌어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수민은 그 손길을 따라 천천히 숨을 쉬었다. 수민이 진정되자, 인혁은 수민의 손목을 잡아 들었다.
손목과 손등에 빨갛게 손자국이 나 있었다. 인혁은 제가 낸 손자국에 입 맞췄다.
쪽, 쪽.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는 감촉이 간지러울 법도 하련만. 수민은 손가락을 작게 움츠리지도 않았다. 오직 인혁의 얼굴을, 인혁의 입술만 보며 인혁이 다시 해줄 말을 기다렸다.
“네가 너무 소중해.”
인혁이 말했다.
“안 버릴 만큼요?”
수민이 물었다.
“네가 날 버리고 없어질까 봐 무서울 만큼.”
“…….”
“어떡하지?”
“……절 버리지 마세요.”
“못 그래, 원래도 그럴 생각 없었는데.”
인혁이 울고 싶은 사람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했다.
“이젠 정말 못 그럴 거 같아.”
아직 문밖에서 느꼈던 공포가 몸 안에 남아 있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굳었다. 인혁은 서둘러 수민을 만졌다. 수민의 온기가 닿고야 얼어붙은 손이 녹아내렸다.
“저 버리지 마세요.”
“그럴게.”
“버리면 안 돼요.”
“안 그럴게.”
“그럼 돼요. 그럼 상관없어요. 아무것도, 문제 될 거 없어요.”
수민이 인혁의 옷깃을 움켜쥐고 먼저 입 맞췄다. 인혁은 제게 닿는 입술을 천천히 문지르고, 아까와 다르게 살살 혀를 집어넣었다. 제게 혹사당한 수민의 혀를 상냥하게 핥아 주었다.
“소장님…… 으응.”
수민이 두 팔로 인혁의 목을 껴안고 매달렸다. 인혁은 수민을 안아 들고 계속 입 맞췄다.
수민의 숨이 거칠어졌다. 인혁은 수민이 숨 가빠하는 걸 알면서도 수민을 놓아주지 않았다. 수민 역시 인혁을 잡은 손을 절대 놓지 않았다.
센서 등이 꺼졌다. 혀가 질척하게 얽히는 소리는 오래도록 꺼지지 않았다.
***
인혁은 수민을 안아 들고 욕실로 갔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들어가 수민이 원하는 대로 얼굴을 보며 한 번 더 몸을 섞었다. 인혁은 배 속에 뜨거운 물이 들어오는 것 같다며 우는 수민에게 계속 입 맞춰 주었고, 수민은 울면서 인혁에게 매달렸다.
인혁은 욕조에 받은 물이 절반 이상 넘치게 만들고서야 사정했다. 그 전에 수민은 인혁의 손에서 두 번 연달아 사정했고, 인혁이 사정할 땐 인혁의 몸에 기대 늘어져 있었다.
수민은 찰랑찰랑 흔들리는 욕조 물을 바라보다 제 손을 보았다. 현관에서 인혁에게 붙잡힌 손자국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그대로 놔두면 멍이 될 것 같았다. 욱신욱신 아프기도 했다. 수민의 시선을 쫓은 인혁이 수민의 팔을 보곤, 조심스럽게 붙잡아 그 진한 자국에 살짝 입 맞췄다.
“미안. 많이 아팠지?”
“아니요.”
수민은 고개를 저었다.
“좋아요.”
수민은 말을 덧붙이고는, 얼룩덜룩하고 욱신거리는 그 팔로 인혁을 끌어안았다.
인혁은 수민을 씻겨 커다란 타월에 감싸고 본인은 목욕 가운을 걸쳤다.
인혁이 수민을 침대에 눕히려 하자, 수민은 목을 끌어안고 바짝 기대 왔다. 인혁은 수민을 안은 채로 침대 헤드 보드에 기댔다.
끼익, 인혁의 러트 사이클을 견뎌 냈던 헤드 보드가 죽어 가는 소리를 냈다.
인혁은 조만간 침대를 교체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품 안의 수민을 다독였다.
“배 안 고파?”
“소장님은요?”
“내가 먼저 물었잖아.”
“저는 괜찮아요.”
“내가, 음…… 빵을 사 왔는데. 혹시, 먹고 싶으면…….”
“먹을래요.”
“그래. 그럼.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인혁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 수민은 바로 인혁의 팔을 붙잡았다.
눈이 마주쳤다. 인혁은 수민의 눈동자가 떨리는 걸 보았다.
“괜찮아.”
인혁은 고개를 숙여 수민에게 입 맞췄다.
“……!”
수민이 눈을 크게 떴다.
“도망 안 가니까 기다리고 있어.”
인혁은 수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히 말했다.
“…….”
수민은 방금 인혁과 닿았던 입술을 손으로 문질렀다. 그리고는 혀로 손가락을 날름 핥아 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른함에 젖어 있던 몸에 다시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수민은 인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이런.”
인혁은 현관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곤 눈 앞에 펼쳐진 난장판을 바라보았다.
빵들이 황야에 굴러다니는 말라죽은 선인장, 덤불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원래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이런 걸 먹여도 되는 걸까. 잠깐 의심이 들었지만. 그래도 수민이 먹어 줬으면 싶었다. 수민과 함께 먹고 싶었다.
이번에는, 썩혀 버리고 싶지 않았다.
인혁은 무릎을 굽히고 앉아 빵을 하나하나 집어 들었다. 바스락, 바스락. 손안에서 비닐 소리가 났다.
빵을 사 오면 집에 누군가 있고 그 사람과 함께 빵을 나눠 먹는 삶. 그걸 감히 누리려 들다니. 심장에 박힌 바늘이 크기를 키웠다. 어떻게든 빵을 줍지 못하게 하려고 꿈틀댔지만, 인혁은 멈추지 않았다.
빵을 챙겨 찢어진 쇼핑백에 담고 주방으로 갔다. 찬장을 뒤져 쟁반을 꺼냈다.
예전엔 집에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젠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인혁은 쟁반을 행주로 닦으며 쓰게 웃었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잔에 따르고 그나마 성한 빵을 쟁반에 올렸다. 쟁반을 들고 침실로 돌아가는데 문 앞에 서자마자 절 빤히 쳐다보는 수민의 시선을 느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젠 멈출 수 없었다.
“빵 먹자.”
오직 저만 바라보는 한 쌍의 시선과 달달한 향을 느끼며 인혁이 말했다.
인혁이 쟁반을 침대 위에 내려놓자 몸에 두른 타월을 한 손으로 쥐고 꾸물꾸물 다가온 수민이 빵 무더기를 보곤 입을 벌렸다.
“빵이, 많네요.”
“아까 떨어뜨려서 엉망이긴 한데, 먹을 만한 것만 골라 먹어.”
인혁은 그나마 성해 보이는 초코 크림 빵을 수민에게 건네주었다. 수민은 빵을 반으로 갈라 인혁에게 내밀었다. 인혁은 거절하지 않고 받아 들었다.
두 사람은 사 온 걸 다 먹지는 못했지만 제법 먹어 치웠다.
빵을 먹는 동안 별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수민은 먹는 데 열중했다. 인혁은 그런 수민을 감상했다.
오물오물 빵을 씹어 삼키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게 올라왔다. 인혁은 여러 번, 우유를 마시는 척하며 그 불덩이를 삼켰다.
배를 채운 뒤 인혁이 쟁반을 협탁 위에 올려 치웠다. 수민이 꾸물꾸물, 옆으로 물러나 인혁이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맛있었어요.”
“그래?”
인혁은 수민의 입술에 난 우유 수염을 손으로 문질러 닦아 주었다.
“빵 좋아하니?”
“…….”
수민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곤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요.”
인혁은 되묻지 않고 기다렸다. 수민은 인혁이 좀 더 자세한 답을 원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다시 입을 열었다.
“케이크는 있으면 먹는 정도인데, 빵은…… 편의점에서 파는 빵은 자주 먹었는데 별로였어요. 그런데 이건 맛있었어요.”
수민이 천천히 말했다.
“그래? 그럼 빵을 좋아하는 건지 이 집 빵을 좋아하는 건지는 차차 알아보자.”
맛집을 돌아다니며 먹여 보면 알게 되겠지. 인혁은 수민의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다정히 말했다. 수민은 잠깐 눈을 굴리다가 물었다.
“또 먹을 수 있나요?”
“네가 원하면.”
“같이요?”
“…….”
고작 이 질문을 하는데, 왜 이만큼이나 눈치를 보는 걸까.
인혁은 자꾸, 가슴에서 뜨거운 뭔가가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걸 그대로 쏟아 내지 않기 위해 숨을 고르는 게,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래, 같이.”
인혁은 수민의 동그란 이마에 입 맞추며 답했다. 그제야 수민이 웃었다.
“보기 좋네.”
“뭐가요?”
“지금 네 얼굴.”
인혁이 수민의 뺨을 엄지로 쓸며 웃음 지었다.
“소장님도요.”
수민이 인혁의 웃는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리곤 머뭇거리다 두 팔을 뻗었다.
고작 그 손짓 하나에 얼마나 많은 용기가 담겨 있는지,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수민을 끌어안았다.
수민을 안아 몸 위에 올리자, 수민은 몇 번 뒤척이더니 편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곤 인혁의 가슴 위에 뺨과 귀를 가져다 댔다.
“피곤하면 자.”
인혁이 수민의 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니요.”
“방금 하품했잖아.”
“아니에요.”
“왜, 내가 도망갈까 봐?”
인혁이 팔을 수민에게 내밀었다. 넥타이로 묶지 않은 싱싱한 팔이었다. 수민은 인혁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손으로 그 팔을 붙잡았다.
인혁은 수민이 어떻게 하려나 지켜보았다. 주변에 넥타이가 없으니 그냥 잡고만 있으려나 싶었건만. 수민은 대뜸 손목을 깨물었다.
이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제법 아팠다. 하지만 인혁은 손목을 빼내지 않았다. 손목쯤이야. 얼마든지 내줄 수 있었다.
곧 수민이 고개를 들었다. 제가 만든 잇자국을 확인하고는 뿌듯해했다. 그리곤 그 위를 혀로 날름 핥고, 또 깨물었다. 그렇게 여러 번, 잇자국을 내고는 인혁의 팔을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양 끌어안았다.
잠시 뒤.
“저, 버리지 말아요.”
수민이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인혁은 속으로만 생각하며 수민을 토닥였다.
“전 체력이 약하지 않은데, 소장님이랑 하고 나면 왜 지치는지 모르겠어요…….”
수민이 잠결에 중얼거렸다.
“그 체력이랑 그 체력이 다른가 보지.”
“아닌데, 아니던데…….”
수민이 인혁의 품 안에서 꾸벅꾸벅 졸며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인혁에게 기대 눈을 감더니 고른 숨을 내쉬었다.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응? 수민아.”
인혁은 얼룩덜룩해진 수민의 목덜미를 손끝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
고롱고롱 잠든 수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잘 자렴.”
인혁은 수민의 등을 토닥여 주고는, 인혁은 수민을 안은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인혁은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다. 따끈한 수민을 안고 있어도 머릿속이 복잡해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과 달랐던 그 날이 자꾸 생각났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빵을 샀다. 하지만 텅 빈 집. 아무도 먹지 않아 식탁 위에 올려진 채 썩어 버린 빵.
그날, 같이 병원에 갔어야 했다. 면접 같은 걸 보는 게 아니었다. 계속 함께 있어야 했다. 처음엔 자책했다.
그다음엔 아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믿었다는 신을 원망했고, 아내를 안전하게 지켜 주지 못한 사회를 원망했다. 아내를 찾아 주지 않는 공권력을 원망했고, 아내를 납치해 간 범죄 조직을 원망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인혁은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증오했다. 태어나 처음 가져 본 가족을 지키지 못한 자신. 자신 밖에는 원망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죽고 싶었다.
하지만 죽을 수 없었다.
아내가, 아이가, 어딘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차마 죽을 수도 없었다. 그들을 구해야 한다면, 그걸 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으니까.
어딘가에 살아 있을지 모를 아이를,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한 번 안아 보지도 못한 내 새끼. 내 아기. 내 아들.
사는 평생 속죄하며 살자. 평생 죄인으로 살아야 한다. 죽으려면 아내와 아이를 찾고 나서 죽어야 한다. 그들이 살아 있든 죽어 있든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
그러니까 찾기 전까진 행복해선 안 돼. 웃으면 안 돼. 그들이 어떤 상태로,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혼자 누릴 걸 다 누리며 살면 안 돼.
삶에서 욕망을 도려냈다.
거의 매일 밤 꿈을 꾸었다. 어느 날은 어느 야산에 묻혀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이 삐죽 솟아 있는 걸 보았다. 밤새 그 시체를 파내다 잠에서 깼다. 어느 날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아내와 아들이 배에 실려 멀리 끌려가는 걸 지켜만 봤다. 이제 꿈속에서조차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왜 우릴 구해 주지 않아? 왜 당신만 편하게 살아? 우릴 이렇게 만들고, 혼자 편히 사니까 좋아?
눈두덩이 퀭하게 패인 아내와 아이가 피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찾고 있어. 계속 찾고 있었어.
미안해, 아직도 못 찾아서.
하지만 포기하지 않아.
버린 게 아니야. 잊지 않았어.
사랑해, 사랑해.
제발.
아무리 소리치며 손을 뻗어도 그들에겐 닿지 않았다.
수민과 함께 있어도 꿈을 꾸었다. 인혁은 그 꿈을 감히 악몽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꿈에서 깨 눈을 뜨면, 옆에 수민이 있었다. 곤히 자고 있는 수민의 얼굴이 보였다.
말간 얼굴이 달빛이 비쳤다. 그럴 때면 인혁은 잠에서 깰라, 커튼을 쳐 달빛을 가려 줄 생각도 못 한 채 하염없이 바라만 보았다. 손을 내밀어 끌어안지 못했다. 곁에 오지 못하도록 밀어 내지 않았다.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해?
고민하는 척하면서 수민을 놓지 않았다.
오늘에야 애써 모르는 척했던 이기심을 맞닥뜨렸다.
‘나는, 살고 싶어.’
인혁은, 살고 싶었다.
이제는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부드러운 사람의 살결. 다가가면 반드시 두 팔 벌려 매달리는 온기. 수줍어하면서도 내미는 작은 혀. 달달한 향. 절 버리지 말라는 목소리. 절 따라다니는 검은 눈.
그 몸을 끌어안고 입 맞추고 살을 맞대고. 웃고, 울고. 가끔 싸우고 화내고, 짜증도 내고, 그러다 어이없이 화해하고. 같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가끔은 외식도 하고. 저녁엔 같이 드라마를 보고, 뉴스를 보다 꾸벅꾸벅 졸다가 함께 잠드는.
그런 삶이 가지고 싶었다.
수민과 함께라면 가능했다. 그걸 알기에, 수민을 밀어 내면서도 정말 밀어 내지 못했다. 끝내 곁에 두었다. 곁을 내주고 마음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수민의 곁에서 밤마다 꿈을 꿨다. 수민을 데리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아내와 아들을 찾으려고.
이 쓰레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슴을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수민의 온기가 좋았다. 귓가에 닿는 수민의 숨소리가 좋았다. 이걸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더더욱.
스물셋에 아내와 아이를 만나며 한 번. 마흔셋에 수민을 만나 다시 한번. 그러니 이번에 수민을 놓치면, 예순셋에나 만날 수 있을까?
그때까지, 살아 있을 수는 있을까? 빵을 사 와도 집에 아무도 없는, 같이 먹어 주지 않는 20년을 또 버틸 수 있을까?
인혁은 자신이 없었다.
정말, 이제는 자신이 없었다.
인혁은 한 팔로 눈을 가렸다. 이를 악물고 숨을 참았다.
바라건대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살아 있다면. 그냥 죽어 버리기를. 감히 이 땅에 발도 디디지 말기를. 절대, 이 땅에 내려오지 말기를.
존재한다면, 차라리 무능력하기를.
저 위에서 이 땅의 삶을 굽어만 볼 뿐. 아무것도 관여할 수 없는 존재이기를.
‘그래야만 내게서 아내와 아이를 빼앗아간 것이 그의 전능하심과 권능하심으로 인한 것이 아닐 것일 테니. 이 아이가 내게 오고, 내가 차마 이 아이를 놓아주지 못하는 광경을 그저 바라만 볼 테니까.’
그래, 그저 그렇게 바라만 보길.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인혁은 숨죽여 기도했다.
문득, 뺨에 온기가 닿았다. 인혁은 신 따위가 절 만지는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신이 이런 온기를 가졌을 리 없으니까.
팔을 내리고 눈을 뜨자 수민과 눈이 마주쳤다.
“깼어?”
“소장님.”
“응. 그래.”
“울지 마세요.”
“뭐?”
인혁은 제 뺨을 만지는 수민의 손을 떼 확인했다. 물기가 묻어 있지 않았다.
다시 자신의 손으로 눈가를 문질러 보았다. 역시나 눈물은 묻어나지 않았다.
“내가, 울고 있는 걸로 보이니?”
“네.”
수민이 다시 손을 뻗어 인혁의 눈가를 문질렀다.
“…….”
“…….”
다시 눈이 마주쳤다.
인혁은 제 얼굴을 만지는 수민의 손을 잡아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그러면서도 수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수민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수민아.”
“네…… 읍, 흡.”
인혁은 수민을 잡아당겨 입을 맞췄다.
수민은 순순히 입을 열고 인혁을 받아들였다. 두 팔로 인혁의 목을 껴안고 매달렸다. 그 맹목적인 태도가 인혁을 미치게 만들었다.
인혁은 이제 참지 않았다. 몸을 뒤집어 수민을 침대에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타월을 잡아 뜯듯 벗기고, 아직 따끈따끈한 마른 몸을 움켜잡았다.
“아, 흣…….”
여린 신음이 인혁에게 먹혔다.
인혁이 수민의 몸 위에서 거칠게 날뛰었다. 수민은 인혁의 성난 어깨와 등을 쓸어내리며, 인혁을 전부 다 받아 주었다.
“소장, 님!”
“수민아.”
인혁은 제 품 안에서 헐떡이며 몸을 비트는 수민을 보며, 붓고 찢긴 입술에 다시 입술을 맞댔다. 혀를 얽고 허리 짓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 세상에 다시 없는 개쓰레기라고. 그리고 그 개쓰레기는 이 아이를 절대 놔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신 따윈, 존재한다면 이 땅에 내려오지 못할 정도로 무능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 이 아이를 불쌍히 여기지 못할 테니까. 거둬 가지도 못하겠지.
인혁은 수민을 끌어안고 배 속 깊이 사정했다. 두 팔로 수민을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
그날이 기점이었다.
인혁도 수민도, 굳이 말로 하진 않았지만, 그날 이후로 관계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이후 인혁은 수민을 만지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수민은 더는 인혁을 넥타이로 묶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계속 함께였다. 퇴근하면 집에 가서 함께 밥을 먹고 TV를 보다 잠들었다. 인혁은 졸리면 먼저 일어나 수민에게 자러 가자고 손짓했다. 일하다 옆에서 수민이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안아 들고 침실로 갔다.
침대에선 거리를 두고 나란히 눕지 않았다. 인혁은 수민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수민을 안고 잤다. 수민의 정수리에 얼굴을 묻고 다리를 엇갈렸다. 수민이 돌아누우면 뒤에서 끌어안았다.
침대에 누우면 인혁의 팔이 수민의 허리에 감기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인혁의 팔이 좀 느슨하다 싶으면 수민이 알아서 꼭꼭 붙들어 여몄다. 그러면 귓가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인혁이 웃는 소리는 이불 속 수민의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게 만들었다.
인혁은 수민에게 종종 팔베개를 해주었다. 등과 허리를 손으로 문지르기도 했다. 그 손길은 딱히 어떤 성적 의도를 띠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수민은 늘 그 손길에 반응해 발기했다.
인혁이 절 밀어 낼 때는 아무렇지 않게 매달렸으면서. 막상 인혁이 성큼 다가오니, 수민은 오히려 수줍어졌다. 아니, 조심스러워졌다.
혹시나 이 좋은 분위기가 제 섣부른 행동으로 깨질까 두려워서. 열이 나는 아랫도리가 인혁에게 닿을까 봐 몸을 웅크리고 인혁에게서 떨어졌다.
그러면 인혁은 웃으면서 모른 척해 주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잘 자라고 말해 주고, 수민을 안은 채 잠들었다. 수민은 인혁의 품속에서 눈을 깜박이며 안도감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다.
인혁은 달라진 태도로 수민에게 제 마음을 드러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상대가 두려워하며 물러날까 봐 두려운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인혁은 가진 페널티가 많았다. 실종된 가족에 스무 살의 나이 차까지. 수민을 제 곁에 두고 싶다는 욕심을 품게 된 것과는 별개로, 수민이 이 관계에 확신을 얻기 전에 섹스를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여름이 다 지나갈 때까지 둘 사이에 성교가 없었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 기묘한 금욕을 깨트린 건, 언제나 그랬듯 수민이었다.
***
한밤.
수민은 잠에서 깼다.
등 뒤에서 인혁의 숨소리가 들렸다. 허리를 감싼 인혁의 팔이 느슨했다. 그리고 수민의 다리 사이가 축축했다.
꿈에서 인혁이 나왔다. 지금처럼 뒤에서 수민을 안고 있었는데, 둘 다 맨몸이었다. 그는 무서울 정도로 발기한 성기를 수민의 엉덩이에 바로 끼우고 문질렀다. 손으론 수민의 성기를 잡고 흔들어 주었다.
수민이 발기하자 인혁이 잘했다며 목을 돌려 키스했다. 그리곤 뒤를 풀어 주지도 않고 성기를 한 번에 박아 넣었다. 박자마자 수민은 바로 쌌다.
그리고 눈을 떴다.
몽정의 잔열이 몸에 남아 있었다. 다리 사이가 축축한 것보다 그게 더 신경 쓰였다. 인혁이 박자마자 깰 게 뭐란 말인가. 이왕이면 실컷 한 다음에 깼으면 좋았을걸.
아랫배가 간질간질했다.
꿈이라지만 너무 생생했다. 인혁의 성기가 한 번에 배 속에 들어오던 감각. 배 속에 강제로 길이 열리고, 더부룩할 정도로 가득 채워지는 그 느낌.
“…….”
수민은 고개를 돌려 인혁을 보았다.
인혁은 잠들어 있었다. 자는 척하는 게 아니라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잠자는 얼굴이 편해 보였다. 그 얼굴을 보며 수민은 오래 망설이지 않고 마음을 정했다.
수민은 제 허리를 감고 있는 인혁의 손을 다리 사이로 끌어 내렸다.
옷 위로 닿기만 해도 좋았다. 수민은 인혁의 손바닥에 성기를 대고 문질렀다. 처음엔 인혁이 깰까 봐 조심했지만, 곧 몰두하여 허리를 들썩였다.
“으…….”
짜릿했다.
이 손이 꿈에서처럼 맨살을 만져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인혁의 손에 성기를 비비는데, 인혁의 손이 불쑥 수민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읏.”
수민의 허리가 움찔했다.
“소, 장님?”
인혁이 깼나 돌아보려는데, 목덜미에 입술이 닿았다. 쪽.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더니, 인혁의 손이 잠옷 바지 속으로 들어갔다. 속옷 안에 들어가 수민의 성기를 잡았다.
“아……!”
수민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수민아, 기분 좋아?”
인혁이 자다 일어나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아, 으…… 소, 장님. 언제, 깨, 깼어요.”
“네가 감질나게 비벼 댈 때.”
“그게, 언제…… 아!”
“그런데 왜 속옷이 젖어 있어. 이미 한 번 간 거야?”
응? 수민아. 인혁이 속삭였다. 저음이 귓가에 울렸다.
“아, 으…….”
수민은 인혁의 팔을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 자고 있을 때 갔어?”
“아니, 아니, 저, 자고 있을, 때, 아으, 흐.”
“그래?”
“아…… 아, 소, 소장님. 아. 저, 나올 거, 같은데…….”
“참아 봐. 한 번 갔는데 벌써 싸면 어떡해.”
인혁이 귀두를 엄지로 꾹 눌렀다. 수민이 허리를 비틀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아, 왜, 왜…… 소, 소장님. 놔, 놔주세요…….”
수민이 잠옷 위로 인혁의 손을 잡아 뜯었다.
“가고 싶어?”
“네, 네…… 이상해…… 읏, 힘들어…….”
“이상한 거 아니라고 그랬는데. 제대로 말해야지.”
“조, 좋아요. 아, 좋아. 으, 흐…….”
“착하네.”
인혁이 수민의 성기를 길게 훑었다. 수민은 바로 사정했다.
사정이 지연되어 자극이 심했다. 수민은 헐떡이며 눈을 감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빙글빙글 돌아 어지러웠다.
인혁이 사정한 수민의 성기를 계속 손으로 훑었다. 앗, 아, 앗. 수민은 잘게 허리를 떨며 신음했다. 인혁은 그 떨림을 음미했다.
품 안에 막 태어난 강아지나 고양이를 끌어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뜨거웠다. 바들바들 떨리는 게 안쓰러웠다. 이대로 꽉 잡으면 터질 것 같은데, 느슨하게 잡으면 떨어뜨릴 것 같았다.
말랑해졌어도 아직 따뜻한 수민의 성기마저도 만지는 즐거움이 있었다. 인혁은 수민이 하지 말라고 애원할 때까지 수민의 성기를 느릿하게 주물러 댔다. 그리고는 젖은 손을 들어 혀끝으로 살짝 핥았다.
“진하네, 많이 참았나 봐.”
“…….”
수민의 목덜미가 확 붉어졌다. 인혁은 웃으며 그 빨개진 목을 빨았다.
인혁은 이쯤에서 끝낼 생각이었다. 두 번이나 사정했으니 수민도 지쳐 잠들지 않을까 싶었다.
잠든 걸 욕실로 데려가 씻길까, 아니면 젖은 수건을 가져와 닦아 줄까. 다 내일로 미루고 이 따끈따끈한 몸을 안고 좀 더 잘까. 그런 행복한 고민을 하며 수민의 머리에 코를 박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랫도리를 이미 예전에 불룩해져 있었지만 인혁은 딱히 그걸 어쩔 생각이 없었다. 뻐근했지만 참을 만했다. 그냥 이대로 이 따끈따끈한 몸을 안고 더 잘 수 있으면 알아서 가라앉을 터였다.
“소장님, 해주세요.”
그런데 수민이 인혁의 젖은 손을 엉덩이 쪽으로 잡아 내렸다. 그리곤 하체를 인혁의 아랫도리에 비볐다.
인혁은 말 그대로 잠이 확 깼다.
“괜찮, 겠어?”
인혁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수민은 이제 와 그런 걸 왜 묻느냐는 얼굴로 인혁을 돌아보았다.
인혁은 쓰게 웃으며 그 얼굴에 키스했다. 그리고 수민의 바지와 속옷을 끌어 내리고 젖은 손으로 엉덩이를 주물렀다.
“아, 좋아, 요…….”
수민이 신음했다. 인혁도 낮게 신음했다. 수민의 말 한마디에 아래가 완전히 서버렸다. 이대로 자도 좋긴 무슨. 수민이 이제 와 싫다고 해도 얌전히 잘 수 없게 되었다. 화장실에 가서 혼자 풀면 풀었지.
“힘 빼, 긴장하면 아플 수 있으니까.”
인혁은 수민의 아래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좁은 구멍을 비집고 들어가 길을 내고 적셨다. 손가락 한 개를 겨우 받아먹던 구멍이 천천히 넓어져 두 개를 받아들이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인혁은 그 과정을 섹스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얼마든 시간을 들일 수 있었다. 수민이 다치지 않게 최대한 풀어 주고 싶을 따름이었다. 어차피 인혁은 수민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쑤시면서도 흥분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으면 수민의 허벅지 사이에 성기를 끼워 일단 한 발 뺄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수민은 느긋한 인혁과 달리 급했다.
“소장님, 빨리요…….”
손가락 두 개도 버거워하면서, 안달 내며 손을 뒤로 뻗어 인혁의 잠옷 바지를 잡아당겼다. 흉흉하게 발기한 성기가 퉁 튀어나왔다.
수민은 인혁이 말릴 새도 없이 인혁의 성기를 손으로 잡았다. 성급한 만큼 막무가내였다.
“수민아, 하.”
수민은 악력이 셌다. 인혁은 함부로 급소를 잡는 손길에 놀라 숨을 멈췄다.
수민이 인혁의 성기를 제 아래에 가져다 댔다.
“잠깐, 잠깐만. 너무 빨라.”
인혁이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수민의 손을, 그러니까 제 성기를 잡고 있는 수민의 손을 제 손으로 덮었다. 달래듯 손등을 두드리며 속으론 신음을 삼켰다.
느긋한 척하고 있지만 정말 급한 건 인혁이었다. 당장 박고 싶은 마음을 애써 꾹꾹 누르고 있건만. 돕지는 못할망정 보채다니.
“전 괜찮아요. 그러니까, 해요. 빨리요.”
수민이 엉덩이를 뒤로 뺐다. 귀두가 엉덩이 사이에 푹 파고들었다. 구멍 입구를 찌르는 정도에서 멈췄지만, 인혁은 이를 악물었다.
“오수민.”
인혁이 애써 참는 목소리로 수민을 불렀다.
“저 진짜 괜찮아요…….”
“안 괜찮아.”
“정말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다고.”
인혁은 수민의 어깨를 잡아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수민의 위에 올라탔다. 다리를 벌리고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며 수민을 내려다보았다. 흉흉하게 발기한 성기가 배에 달라붙을 듯 기립하여 꺼떡댔다.
수민은 인혁을 올려다보며 인혁의 성기를 손으로 문질렀다.
“소장님, 이거요. 얼른, 얼른 넣어 주세요.”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벌어진 입술은 촉촉했다. 까만 눈은 갈급했다. 무엇 하나 자극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인혁은 살면서 이렇게까지 인내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인내했다.
“수민아, 할게. 할 테니까. 윽. 잠깐만 그렇게 만지고 있어 봐. 착하지.”
인혁은 키스하며, 수민의 두 다리를 제 허벅지 위에 걸쳤다. 수민의 하체가 살짝 위로 들렸다. 인혁은 한 손으로 수민의 엉덩이를 다시 주무르며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으응, 흐읏, 응.”
맞닿은 입술에서 신음이 흘렀다. 인혁은 수민의 입 안을 핥으며 수민의 신경을 분산시켰다.
키스하는 게 좋은지, 수민은 눈을 감고 열심히 혀를 놀렸다. 손으로는 인혁의 성기를 흔들었다. 기어이 조급하게 만들어, 제 안에 빨리 박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알면서도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인혁은 아직 이르다는 걸 알면서도, 더는 참지 못했다. 성기를 구멍에 가져다 댔다.
“읏…… 으, 소장님, 응…….”
수민이 보채듯 다리로 인혁의 허리를 감았다. 인혁은 쪽, 쪽, 계속 입 맞추며 수민의 구멍에 성기를 맞추고, 천천히 삽입했다.
수민의 안은 아직 뻑뻑했다. 받아들이는 수민도 버거웠고, 박아 넣는 인혁도 압박감에 숨이 막혔다. 그래도 몸을 물리지 않았다. 겨우 성기가 끝까지 구멍 안으로 들어가자 두 사람은 동시에 숨을 내쉬었다.
“아, 으…….”
인혁이 아직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수민은 벌써부터 버거워했다.
“하, 미치겠네.”
인혁은 강하게 조이는 압박감에 낮게 신음하며, 수민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었다.
두 사람의 몸이 살짝 떨어졌다. 숨을 쉴 때만 살짝 닿을 듯 말 듯 했다.
“아프니?”
“아니요, 괜찮아요.”
수민이 인혁을 끌어안았다.
“괜찮기는.”
인혁이 한숨을 내쉬며 수민의 등을 쓸어내렸다.
“빨리, 해주세요. 기분 좋은 거…… 으응.”
수민이 인혁의 목에 입 맞추며 졸랐다.
“무리하지 말고.”
“네.”
“아프면 말하고, 응?”
“네.”
인혁은 수민의 어깨를 끌어안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주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팽팽하게 벌어진 구멍 입구로 성기가 드나들었다.
“으…… 읏…….”
수민은 뻑뻑한 안쪽을 긁어 대는 성기를 감당해 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인혁이 삽입해 속을 쑤실 때마다 고통과 쾌감이 뒤섞인 감각이 온몸에 퍼졌다. 쾌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라 찌르르하게 울려 댔다.
수민은 점점 거칠어지고, 급해지는 인혁의 숨소리가 좋았다. 절 안고 긴장했다 이완하기를 반복하는 인혁의 몸, 그 근육의 움직임이 좋았다.
“아, 읏!”
기어이 수민의 안쪽 깊숙한 곳을 긁어 대며, 자극점을 찾아내 주는 움직임이.
“괜찮아?”
물어보며 입 맞춰 주는 상냥함이.
“네……. 좋아요. 소장님, 더요……. 더 해줘요.”
“조이지, 말고. 보채지, 말라니까.”
곤란한 듯 나직이 말하며 못 참겠다는 듯 달려드는 몸짓이.
모든 것이 다 좋았다.
수민은 퍽퍽 치고 들어오는 성기를 조이며 인혁의 어깨를 깨물었다. 인혁은 얼마든지 더 깨물라고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윽, 흣, 읏.”
수민은 인혁의 어깨를 문 채로 몰아치는 쾌감을 견뎠다.
인혁의 살을 찢고, 인혁의 피를 마시고 싶었다. 피만이 아니라 살갗, 근육, 뼈, 모든 걸 씹어 삼키고 싶었다. 그럼 절대 아무한테도 빼앗기지 않을 텐데. 다신 날 못 버릴 텐데.
수민은 제가 낸 잇자국을 혀로 핥으며 허리를 들썩여 인혁의 움직임에 맞췄다.
“하, 읏. 수민아.”
인혁의 허벅지가 굳었다. 수민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인혁이 절정에 가까웠음을 알아챘다. 밖에 사정하려는 듯 성기를 절반 이상 빼내고 입구 근처에서 잘게 치대는 움직임 또한 놓치지 않았다.
수민은 허벅지로 인혁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성기가 안에, 끝까지 박혔다.
“흣.”
눈에서 별이 튀었다.
“윽, 너…….”
인혁이 낮게 신음했다.
“나가지, 말아요……. 안에 싸주세요.”
수민이 인혁에게 매달렸다. 땀에 젖은 몸이 찰싹 달라붙었다.
“소장님, 제발요.”
수민은 인혁의 목젖을 빨며 애원했다. 인혁이 버티지 못하고 주먹으로 침대를 내리쳤다.
“……!”
수민은 배 속에 퍼지는 뜨거운 감각에 몸서리쳤다. 인혁의 허리에 감은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하, 진짜. 오수민, 너.”
인혁이 수민의 허리를 잡아 들더니 이를 악물고 빠르게 허리 짓 했다. 턱, 턱 소리가 나며 수민의 하체가 종잇장처럼 흔들렸다.
“아…… 아, 앗, 힉!”
수민은 입을 벌린 채 눈을 깜박였다. 혀를 내밀고 겨우겨우 인혁의 팔을 더듬었다.
인혁이 수민을 몸으로 덮으며 그 혀를 빨고 깊게 키스했다.
“으, 흐, 읍, 읏…….”
맞닿은 배가 미끌미끌했다. 수민은 제가 또 언제 사정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겨우 움직임이 멎었다. 그래도 한동안 수민은, 인혁도, 거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인혁은 수민을 제 몸으로 덮은 채 허리를 쓸어내렸다. 수민의 안에서 성기를 빼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수민 역시 절 짓누르는 묵직한 온기, 쏟아지는 인혁의 냄새에 취해 쉽게 정신 차리지 못했다.
“아, 흐, 으…….”
허벅지로 인혁의 허리를 비비며 간간이 몸을 떨었다.
숨이 가라앉고 어느 정도 열기가 식자, 인혁이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성기를 빼내고는.
“흐읏.”
신음하는 수민을 달래듯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괜찮아? 아팠니?”
“아니요……. 기분, 좋았어요.”
수민이 멍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그럼 다행인데…….”
그러면 그렇게 말하면서도, 인혁은 어쩐지 생각이 복잡해 보였다.
그는 일단 씻자며 수민을 안고 침실로 갔다. 욕조에 물을 받고 수민을 넣었다.
수민은 마주 보고 한 번 더 성교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인혁은 욕조에 걸터앉아 수민을 씻겨 주기만 했다. 욕조 안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수민이 슬쩍 팔을 잡아당겨도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에 싸지른 정액을 빼낼 때는 성교할 때와 비슷한 분위기가 되었다. 수민은 인혁의 목에 매달려 신음했다. 인혁은 수민의 목에 연신 입을 맞춰 주며 손가락으로 아래를 쑤셨다.
수민은 인혁의 성기가 커진 걸 보았으나 인혁은 끝끝내 수민의 안에 다시 넣어 주지 않았다. 대신 수민을 씻겨 소파에 앉히고는 자신은 마저 씻고 들어온다며 욕실로 다시 들어갔다 한참 뒤에 나왔다. 찬물로 씻었는지 몸이 차가웠다.
두 사람은 수민의 방이 된 손님방 침대에 누웠다. 침대가 작아 수민이라면 모를까 두 사람이 같이 눕기엔 작았다. 수민은 그래서 더 좋았다. 좁은 침대를 탓하며 인혁의 품에 바짝 붙을 수 있었으니까. 인혁은 팔베개를 해주고 등을 다독여 주었다.
인혁은 여전히 표정이 복잡했다. 수민은 가만히 인혁을 올려다보다가 말했다.
“전 임신 못 해요. 그러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뭐?”
“그런 쪽으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구요. 그러니까 얼마든지 마음대로 하셔도 돼요.”
“…….”
인혁은 얼빠진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넌…….”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던 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수민아.”
인혁이 수민의 말을 끊었다.
왜 이제 말하냐고 화를 내거나 안심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표정이 더 복잡해졌다. 수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소장님?”
“갈 길이 멀구나, 우리는.”
“네?”
“자자, 일단 내일 이야기하고.”
인혁은 한숨을 내쉬며 수민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강제로 재울 셈이었다. 속셈을 알아챘으니 인혁의 품에서 벗어나 좀 더 대화를 나누자고 말해야 했지만, 수민은 그러지 않았다. 인혁이 안아 주는데 거부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민은 얌전히 안긴 채로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인혁은 러브젤과 콘돔을 주문했다. 상품은 이튿날 빠르게 배송되었고, 인혁은 여러 종류의 젤과 콘돔의 성분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가장 안전해 보이는 걸 골라 들고 침실에 들어왔다. 그리고 수민을 앞에 앉혀 놓고 사용 방법을 설명했다.
수민은 열심히 들었다. 러브젤과 콘돔을 몰라서 듣는 건 아니었다. 그냥, 인혁이 일부러 설명해 주는 걸 듣는 게 좋아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매일 진열하고 판매했던 게 러브젤과 콘돔이었다. 일하며 주워들은 게 있어 유명한 브랜드가 무엇인지, 각각의 품질과 가격대의 분포가 어떤지, 스테디셀러가 어느 회사의 것인지도 알았다. 그래서 인혁이 사 온 콘돔이 초박형, 특대형인 것도 바로 알아보았다.
비싼 데다 사이즈가 너무 커서 매대에 진열해 놓아도 사 가는 사람이 없었다. 아예 이 사이즈를 들여놓지 않는 편의점도 많았다.
인혁의 설명을 들은 후 수민은 러브젤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이게 있으면 좀 더 빨리 기분 좋아질 수 있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필요성을 인정한 건 딱 러브젤만이었다.
“이건 필요 없어요.”
수민은 콘돔 박스를 들어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 인혁이 뭐 하는 짓이냐며 콘돔 박스를 다시 들고 왔다.
“우리가 그동안 안전한 섹스를 하지 못했던 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야. 미안하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챙기자. 수민아.”
“전 임신을 못 한다니까요.”
“그거랑 상관없이 써야 해. 그리고 설사 네가 임신할 수 있는 몸이었어도 임신이 안 됐을 거야.”
“왜요? 임신하려면 더 해야 되는 건가요?”
수민이 놀라 물었다.
“…….”
인혁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애를 데리고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인혁은 진한 탈력감을 느끼면서도 성실히 대답했다.
“러트 사이클이었을 때 억제제 수액을 맞았는데, 거기에 피임약 성분이 들어 있었어. 그 뒤로도 피임약 성분이 든 억제제를 먹고 있고.”
인혁이 러트 사이클 동안 오메가와 섹스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으면서도 의사는 성실하게도 매뉴얼대로 수액을 처방해 주었다. 이후 억제제를 바꾸며 피임약 성분이 들어간 것을 처방해 주었다.
딱히 그걸 믿고 콘돔 없이 섹스한 것은 아니었다. 그간 섹스로 이어졌던 상황들이, 용품을 미리 준비하고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수민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였으니, 의사가 말한 정기적인 성관계가 둘 사이에서 계속 일어날 터였다. 수민과의 섹스를 더는 돌발 상황에서 일어난 어쩔 수 없는 사고 따위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인혁은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챙기고 싶었다.
“난 너와의 관계에서 계속 피임약을 복용할 거야. 알파 쪽이 복용하는 게 부작용이 덜하다니까. 그러니까 이건 네가 임신할 수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사용할 거야. 물론 그것과도 연관된 용품이긴 하지만.”
인혁은 담담히 말했지만 귀가 빨개져 있었다.
“…….”
수민은 그 귀에 입 맞추고 싶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기시감을 느꼈다.
인혁이 지금 하는 말과 비슷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공익 시절에 10시간짜리 성교육을 이수했을 때.
강사의 인사말이 방금 인혁이 한 말과 똑같았다. 콘돔은 안전한 성관계를 위한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용품입니다. 이건 임신의 여부와 상관없이 필수로 챙겨야 합니다. 물론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지요. 내 몸을 지키기 위해서, 콘돔 사용을 생활화합시다.
10시간 동안 배웠던 내용이 주르륵 기억났다. 그렇다고 새삼, 콘돔의 필요성이 실감 나진 않았다. 수민은 자신과 인혁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용납할 수 없었다. 얇은 고무라 할지라도. 거치적거릴 뿐이었다.
“싫어요.”
수민은 다시 쓰레기통에 콘돔 박스를 집어 던졌다. 한 번에 쏙 들어갔다.
“어떻게 한 번 빗나가지도 않니.”
인혁이 기가 막히다는 듯 웃었다.
“전 소장님 거 생으로 하는 게 좋아요.”
“…….”
인혁의 웃음은 수민의 폭탄선언에 부딪혀 사라졌다. 인혁은 겨우 정신을 차리곤 다시 콘돔 박스를 들고 왔다. 수민은 가위를 가져와 콘돔을 다 잘라 냈다. 인혁은 가만 지켜보았다. 그리고 수민이 마지막 콘돔을 싹둑 자르자 다정히 말했다.
“수민아, 내가 설마 그거 한 박스만 샀겠니.”
“소장님. 제가 설마 한 박스만 자르고 만족하겠어요.”
수민은 택배 상자를 찾으러 벌떡 몸을 일으켰다.
“수민아, 수민아. 잠깐만. 타임. 타임.”
인혁이 수민을 애써 달래 다시 앉혔다.
“안에 싸주세요.”
수민이 인혁의 팔을 잡고 말했다. 무표정하고 목소리마저 담담하여, 조른다기보단 명령이나 강요로 들렸다.
“수민아.”
“전 소장님이 제 안에 싸주는 게 기분 좋아요.”
“오수민.”
“기분 좋게 해준다고 했잖아요. 저런 거 쓰고 싶지 않아요.”
“수민아. 잠깐만.”
인혁이 수민을 끌어안았다. 그제야 수민이 조용해졌다.
“진정해.”
“전 흥분하지 않았어요.”
“그래, 그러니까 숨 쉬어. 숨 쉬고. 응?”
인혁은 수민의 등을 쓸어내리며 성난 동물을 어르듯 달랬다. 수민은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인혁의 팔을 잡았던 손에 힘이 빠졌다.
인혁의 팔에 손자국이 남았다. 수민은 손끝으로 벌건 자국을 덧그리듯 문질렀다.
“일단 써보고 결정하자. 한 번은 써보고.”
“왜요?”
“조금 전에 내가 한 말 뭐로 들었어.”
“어차피 우리 둘만 하는 거잖아요. 전 소장님하고만 할 건데. 소장님은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이랑도 난잡하게 성교를 즐길 계획이신 건가요?”
“난잡…….”
인혁이 헛웃음 짓고는 수민의 등을 두드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런 생각도 없지만, 그럴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인혁은 여전히 오메가 페로몬 거부증을 앓고 있었다.
“그럼 병 걱정 안 해도 되잖아요. 쓸 이유가 없어요.”
“수민아.”
“소장님.”
“안 돼.”
“왜요?”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은 뭐로 들었니.”
“그래도 싫어요, 저는.”
도돌이표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수민은 이 부분에 있어선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수민도 인혁을 그렇게 생각했다.
말로 설득할 수 없자, 인혁은 합의 없이 제멋대로 콘돔을 사용하려 했다.
수민은 인혁이 침대 위에서 콘돔을 물고 포장지를 까면, 딱 거기까지만 구경했다가 얼른 잡아채 침대 밖으로 집어 던졌다. 인혁이 놀랄 만큼 재빠른 손짓이었다.
수민은 놀란 인혁을 끌어안고 잔뜩 발기한 인혁의 성기 위에 엉덩이를 비볐다. 그러면 인혁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이후 수민은 소소한 취미가 생겼다. 틈만 나면 집 여기저기를 뒤지며 인혁이 숨겨놓은 콘돔 박스를 찾아내 죄다 가위로 잘라 버리기.
아무리 콘돔을 사다 날라도 남아나질 않으니. 인혁은 환경오염을 걱정해서라도 콘돔 구매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수민의 승리였다.
콘돔 사용 여부와는 별개로, 인혁은 수민과 몸을 섞을 때마다 최대한 수민을 배려했다. 전희에 공을 들이고 젤을 써서 뒤를 풀어 주었다.
수민은 러브젤을 쓰면 좀 더 빨리 삽입할 수 있을 거라고 반겼지만, 러브젤을 쓴다고 딱히 삽입까지의 시간이 짧아지진 않았다. 인혁은 더 집요하게 수민의 몸을 물고 빨았다.
인혁은 제 몸을 아낄 줄 모르는 수민이 다정한 섹스에 익숙해지도록 만들고 싶었다. 침대 위에서의 인혁은 수민을 아주 소중하고 깨지기 쉬운 것을 대하듯 만졌다. 끝에 가서는 쾌감에 정신을 놓고, 수민을 막무가내로 몰아붙였지만.
“난 널 다치게 안 해. 그러니까 너도 아프고 힘들면 나한테 말해 줘야 돼. 수민아.”
땀에 젖은 수민의 이마와 뺨에 입 맞추며, 좁은 속살을 가르고 천천히 성기를 삽입했다. 수민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려 주고, 수민이 좋아하는 곳을 찌르고 박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좋아요, 기분 좋아…… 아, 흐으……. 소장님하고 하는 건, 다 좋아요. 아파도 좋아. 그러니까, 읏, 아…… 소장님…….”
“아프게 안 할 거라니까.”
“왜요, 왜에…….”
수민이 흐느끼며 인혁에게 매달렸다.
“네가 소중하니까.”
인혁은 수민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 맞췄다. 수민은 물기 젖은 눈으로 인혁을 보다 몸을 뒤집었다.
“흐읏, 읏…….”
인혁의 배에 손을 올리고, 스스로 허리를 움직여 인혁의 것을 삼켰다 빼내기를 반복하며 인혁의 가슴에 입을 맞췄다.
“저랑만, 해야 해요…….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해주지 말아요.”
쪽, 쪽. 입 맞추며 올라가 인혁의 턱에 입을 맞췄다. 인혁이 화답하듯 수민을 끌어안고 키스했다.
수민이 허리를 확 내리며 배 속에 든 걸 조였다.
인혁이 낮게 신음했다.
수민은 그 신음마저 제가 받아먹고는 입술을 맞댄 채, 계속 허리를 움직이며 속삭였다.
“다른 사람이랑은, 읏…… 하지 말아요, 다른, 사람한테도, 이렇게 해주면…… 흣…… 그 새끼 죽여 버릴 거예요.”
수민이 목에 매달려 대답을 구했다.
“응. 그래, 그럴게. 그럴 거야.”
인혁은 여유를 잃고 수민의 허리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거칠게, 좀 더 빠르게 허리를 치대기 시작했다.
“앗, 아, 앗.”
수민의 몸이 마구 흔들렸다.
“읏, 윽……. 소장님. 기분 좋아요.”
수민은 인혁의 입술을 핥으며 신음했다. 인혁은 수민에게 다급히 키스하며 있는 대로 혀를 빨아 감았다.
“아, 읏!”
수민이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인혁은 수민의 몸을 두 팔로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수민의 안에 파정했다. 정액이 수민의 배 속을 가득 채웠다. 수민은 그 느낌에 몸서리쳤다.
허억, 헉. 거친 숨이 오갔다.
인혁은 수민의 어깨에 입 맞추며 쉽사리 사정의 여운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흐…… 으…….”
수민은 젖어 미끈거리는 맨살의 감촉을 즐기며, 인혁의 어깨에 뺨을 댔다. 배 속에 가득 찬 정액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느낌에, 간간이 몸을 떨었다.
수민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불편해하자 인혁이 성기를 빼냈다. 정액이 주륵, 딸려 나왔다. 수민이 허리를 비틀며 달뜬 숨을 내쉬었다.
숨에서 단 향이 났다.
인혁은 수민과 입 맞추며 몸을 맞대고 허리와 엉덩이를 주물렀다. 손에 착 감기는 살의 감촉에 침이 고였다.
두 사람의 성기가 사이에 꼈다.
“으음…….”
수민은 성기를 마찰시키듯 몸을 비비며 인혁의 가슴을 빨았다. 인혁이 제게 하듯 흔적을 잔뜩 남겼다.
“좋아요, 소장님. 아, 좋아…….”
“수민아……. 하.”
인혁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자세를 바꿨다. 수민을 침대에 눕히고 한쪽 다리를 들어 어깨에 걸쳤다. 그리곤 정액이 줄줄 새는 구멍이 다시 성기를 삽입했다.
“흐, 응…….”
수민이 손으로 인혁의 팔을 긁으며 허리를 들었다.
반쯤 쓴 러브젤 통이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
장마도 아닌데, 8월에 자꾸 비가 내렸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 원래도 아웃도어파가 아닌 두 사람은 발이 묶였다. 두 사람은 주말 내내 비를 핑계 삼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같이 식사를 하고, 책을 보고, TV를 보다 깜빡 잠들었다. 그렇게 제법 느긋한 주말을 보냈다.
일요일 오후.
둘은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깜박 잠들었다.
수민은 비 내리는 소리가 눈을 떴다. 인혁은 여전히 단잠에 빠져 있었다. 오전에 좀 그치나 싶었는데, 다시 비가 내리는 듯했다. 수민은 인혁을 올려다보았다. 수민은 다시 눈을 감고 인혁의 품에 안긴 채로 가만히 있었다.
“…….”
아무래도 비 오는 소리가 거슬렸다. 수민은 꾸물꾸물 몸을 일으켰다.
열어 놓은 창문을 닫으려고 베란다로 갔다. 무심코 밖을 내다보다가 밖의 풍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빗방울이 굵었다.
하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가 보였다. 평소엔 밤이나 낮이나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는데,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불어난 하천 물이 야금야금 산책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수민은 창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막 잠에서 깬, 가라앉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인혁이 옆에 앉아 들고 온 홑겹 이불을 수민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수민은 이불에 덮인 채 인혁의 어깨에 툭 머리를 기댔다.
“비가 많이 와서요.”
“그러게.”
“계속 올까요?”
“이번 주말 내내 온다고 했으니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인혁이 수민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수민을 좀 더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수민은 꾸물꾸물 다가가 인혁에게 안기다시피 몸을 기댔다.
그렇게 나란히 앉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쏴아아-.
빗소리만 들렸다.
이 세상이 망해서 오직 둘만 남은 것 같았다. 어쩌면 종말의 순간은 이토록 고요하고, 편안할 수도 있겠구나. 수민은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웃음이 났다.
“왜 웃어.”
수민이 소리 내 웃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신기해서요.”
살아온 삶의 대부분은 종말을 끝내기 위한 고행이었다. 그런데 이제 수민은, 이 종말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뭐가?”
“그냥, 기분이 좋아서요.”
“…….”
“아무것도 안 하는데, 기분이 좋아요.”
지금 이 순간이 종말의 순간이라 할지라도 영원하기를 바랄 만큼.
그저 같이 있을 뿐이었다. 나란히 앉아서 몸을 기대고 창밖을 구경하고 있는 것뿐인데. 성교를 할 때처럼 기분이 좋았다.
졸리진 않은데 나른했다.
숨을 쉬면 인혁의 냄새가 느껴졌다. 일부러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인혁의 숨소리가 들렸다. 넥타이로 묶지 않아도 인혁이 곁에 있어 주었다.
그런 지금, 이 순간이, 수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좋다는 말로도 이 이상한 충만함과 만족감을 설명할 수 없었다.
“행복이 별거냐. 그냥 이렇게 사는 거겠지.”
인혁이 수민의 앞머리를 쓸어 넘겨 주며 말했다.
그리곤 제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스스로 놀라 얼굴을 굳혔다. 수민 역시 눈을 크게 떴다.
“……행복. 그래, 행복.”
인혁이 느리게 단어를 곱씹었다.
“행복.”
수민이 따라 말했다.
이후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 이름이에요.”
수민이 툭, 머리로 인혁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행복이 별거>?”
“네.”
“그건 들어도 들어도 익숙해지질 않네.”
인혁이 쓰게 웃었다.
행복이 별거.
……그래, 행복은 별 게 아니었다. 이런 게 행복, 이었던 것도 같았다. 아무것도 안 해도, 그저 함께 있기만 해도 좋은. 편안한.
인혁은 울컥 치솟는 어떤 감정을 느꼈다. 그건, 울음을 닮아 있었다. 그 감정을 토해 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수민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드라마 제목이랑 똑같은 말을 소장님이 방금 하셨어요.”
“그거랑 그거랑 같아?”
인혁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다른 건가요?”
“글쎄. 난 그 드라마 내용을 잘 모르겠어서.”
“그럼 같이 보실래요?”
수민이 눈을 반짝였다. 인혁은 그런 수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빙긋 웃었다.
“그래, 같이 보자.”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큰일 났네 왕형제들>보다 더 막장이면 막장이지, 덜하진 않을 듯했다. 내용 따위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수민의 모습을 계속 보고 싶었다.
“총 576화예요. 매일 두 편씩 보면, 가끔 바빠서 하루 이틀 건너뛰어도 1년 안에 다 볼 수 있어요.”
“……576화. 기네.”
“왕형제들도 그 정도 할 텐데요, 뭐.”
“그것도 길 예정이구나. 그럼 완결 나려면 아직 멀었겠어.”
“이제 시작한걸요.”
“이제 시작…….”
어이가 없어서, 가라앉았던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이제 시작이라니. 그래서 둘째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사귀기로 한 재벌 4세가 갑자기 불치병에 걸린 거구나 싶었다. 인기가 없어서 조기 종결해야 해서 등장인물을 막 죽이는 건 줄 알았는데.
수민은 인혁과 함께 <행복이 별거>를 시청할 생각에 즐거워하며 다시 인혁에게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 조용히, 인혁이 말한 단어를 혀 위에 올려놓고 굴려 보았다. 행복, 행복.
이 기분 좋은 기분을 행복이라고 하는 걸까. 그럼 지금 나는 행복한 걸까?
수민은 설렜다.
“소장님.”
수민이 인혁에게서 몸을 떼고 인혁을 올려다보았다. 인혁이 말하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안아 주실래요?”
수민은 조금 망설이다가 두 팔을 인혁에게 뻗었다.
“그래.”
인혁이 두 팔로 수민을 끌어안았다.
수민은 인혁의 품속에서 그의 냄새를 가득 들이마시며, 속으로 되뇌었다. 행복. 이게 행복. 행복.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안아 주세요.”
“안아 주고 있잖아.”
“더 많이, 더 많이 안아 주세요.”
더 많이, 더 많이 행복해지고 싶었다.
“욕심쟁이네.”
인혁이 수민의 머리에 입 맞추며 속삭였다. 수민은 대답하는 대신 인혁의 가슴에 입 맞췄다. 셔츠 위였지만, 인혁의 뜨거운 살갗이 느껴졌다.
“소장님.”
수민은 인혁에게 하체를 가까이 붙였다. 인혁에게 만져졌을 때부터 수민은 이미 잠이 달아나 있었다.
“그래.”
인혁이 수민의 턱을 잡고 들어 올렸다.
닿지도 않았는데 입술이 벌어지고 혀가 나왔다. 인혁은 그 작은 혀를 빨고 입술을 맞댔다. 그리곤 급하지 않게 수민을 바닥에 눕혔다.
쪽, 쪽.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 떨어졌다. 떨어져 있는 그 잠깐 동안에도 수민의 혀가 인혁의 입술을 핥았다. 인혁이 그 혀를 물어 제 입 속으로 끌어당겼다. 다시 입술을 붙이고, 조그만 살덩이를 사탕처럼 빨았다.
“으응, 읏.”
수민이 눈을 꼭 감고 혀를 움직였다.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인혁의 혀를 건드렸다.
인혁은 목구멍 안쪽까지 혀를 넣고 여린 점막을 혀끝으로 비볐다.
“으응, 읏, 흣.”
수민이 목울대를 울렸다.
인혁은 실컷 혀를 빨고는, 턱에 입 맞추며 헐렁한 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셔츠를 위로 올려 벗기고, 하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톡 솟은 유두를 입 안에 넣고 굴리자.
“소장님, 아!”
수민이 인혁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미안, 미안.”
인혁은 유두에 입 맞추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바닥에 누운 마른 몸 위에 커다란 체격의 인혁이 올라타 온몸을 빨았다. 수민은 허리를 들썩이며 인혁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인혁이 수민의 바지를 살살 벗겼다. 수민은 허리를 들어 올려 도왔다. 바지와 팬츠를 내리자 왼쪽 골반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보였다. 인혁의 숨이 그 바로 앞에서 멈췄다.
“소장님.”
하아, 수민이 달뜬 숨을 내뱉으며 다리를 인혁의 몸에 비볐다. 인혁은 상처에 피해 입 맞추며 수민의 배와 가슴을 손으로 훑었다.
“으응…….”
“착하다. 착해.”
처음엔 러트 사이클이어서, 다음엔 수민에게 당하는 상황이어서, 그다음엔 현관에서 수민을 몸으로 짓뭉개며 강제로 하는 바람에.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그렇게 수민의 몸을 물고 빨아 댔으면서, 정작 수민의 흉터를 유심히 본 적은 없었다. 수민의 구멍에 박는 것에만 안달 나서. 여유가 없어서.
관계가 안정되고 나서야 수민의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큰 상처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흉터가 남을 만한 수술이 뭐가 있을까. 얼마나 다쳐야 이 정도 흔적이 남는 걸까. 이제야 알게 된 게 이상하리만치 섬뜩한 흔적이었다. 그래서 감히 손대지 못했다. 혹시나 아플까 봐. 안 좋은 기억을 들쑤실까 봐.
그 마음을 수민이 모를 리 없었다.
“소장님, 거기도 핥아 주세요.”
수민이 인혁의 머리를 꾹꾹 밀었다.
인혁은 머뭇거리다가 살짝, 상처 위에 손을 댔다. 그리고 수민의 얼굴을 확인했다. 수민이 아파하지 않자 상처에 조심히 입을 맞췄다.
입술이 닿은 순간. 수민은 인혁의 머리카락을 꽉 쥐었다.
“아프니?”
인혁이 고개를 들었다. 수민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기분, 좋아서요.”
수민은 인혁이 그곳을 더 만져 주길 바랐다.
“거기…… 소장님, 기분 좋아.”
수민의 신음을 듣고야 인혁이 상처에 얼굴을 묻었다. 인혁은 개나 고양이처럼 상처를 핥았다.
“흐, 읏.”
수민의 다리가 배배 꼬였다.
인혁의 혀는 까슬하고 뜨거웠다. 축축하고 미지근하지 않았다. 징그럽지도 않았다.
“다칠 때, 많이 아팠어?”
“네. 읏, 아니. 아……”
“그래, 그랬구나.”
인혁이 다시 입 맞췄다. 젖은 소리가 났다.
“아…….”
허리를 들썩이던 수민이 고개를 젖혔다.
눈이 눈물로 덮였다. 수민은 눈을 깜빡이지도 못하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수민은 짜릿하고 안락한 쾌감 위에서, 끔찍한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건, 불현듯 든 충동이었다. 당신이 날 버렸기에 내가 겪어야만 했던 일을,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고. 당신은 알아야 한다고. 그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이 들었다.
수민은 인혁이 여전히 원망스럽고, 인혁이 못내 좋았다. 두 감정을 분리해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팠어요.”
수민이 말했다. 인혁은 혀로 길게 상처를 핥았다.
“으읏.”
수민이 허리를 뒤틀었다.
“그리고?”
“아, 으…….”
수민이 눈을 깜박였다. 눈물이 툭, 떨어져 내렸다.
“무, 서웠어요.”
그 시간을 더듬어 기억을 건져 올리는 수민의 눈동자가 한없이 검었다.
“싫었어.”
수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팠어…… 읏.”
울음이 터졌다.
“더, 만져, 줘요. 읏, 아…… 더, 더…….”
수민은 인혁의 머리를 끌어안듯 몸을 웅크렸다.
인혁이 상처를 이로 살짝 깨물었다. 수민이 발가락을 오므리며 허리를 뒤로 물렸다. 인혁은 수민의 성기를 쥐고 흔들며, 계속 상처를 핥고 빨았다.
하아, 하앗. 수민이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신음했다. 하지만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다. 인혁도 그만둘 생각도 없었다. 두 사람은 시간을 들여 상처를 붉은 자국으로 덮었다.
쪽. 인혁은 소리 나게 상처에 입 맞춘 후 수민의 배를 손바닥으로 밀었다. 수민을 도로 바닥에 눕히고는 다리를 벌리게 해 성기를 빨아 주었다. 수민은 인혁의 머리를 움켜잡고 신음하다 바로 정액을 쏟아 냈다.
소파에 러브젤을 놔두었지만 지금 그걸 가지러 갈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인혁은 급한 대로 혀와 젖은 손가락으로 수민의 구멍을 적셨다. 평소보다 성급하고 거칠었다.
수민은 입술을 깨물고 뒤를 쑤셔 대는 자극을, 그 속에 섞인 고통을 받아 냈다.
인혁이 몸을 들어 다시 수민을 짓누르듯 덮었다. 그리곤 성기를 구멍 입구에 맞추고 성기를 밀어 넣었다.
“아……!”
수민은 입을 벌리고, 인혁을 받아들였다.
다물려 있던 속살이 갈라지고 불로 달군 것처럼 뜨거운 살덩이가 밀고 들어와 안을 채웠다. 거기가 원래 제 자리라는 듯 자리를 잡고는 두근, 두근 뛰었다. 몸속에 심장이 두 개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구멍에 박힌 심장은 너무 뜨겁고 단단했다.
그것이 천천히 움직였다.
배 속에 불덩이가 박힐 때마다 몸이 흔들렸다.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올라탄 몸에서 뚝, 뚝, 땀이 떨어졌다.
배 속에 든 게 빠져나갔다 다시 들어오고 다시 빠져나갔다. 박고 빼고 박고. 단순한 움직임이 반복될수록 배 속이, 온몸이 뜨겁게 달궈졌다.
뜨거운 성기가 내벽을 긁고, 깊은 곳을 쿡 찌르면 몸이 흔들리며 더운 숨이 터져 나왔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빛이 번졌다.
“아…… 읏, 하, 흑…….”
끙끙대고 앓는 것 같고, 더 해달라고 조르는 것 같은 비음이 들렸다. 수민은 그게 제가 내는 신음이라는 걸 깨닫고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흔들리는 넓은 어깨 너머로 밖의 풍경이 보였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비가 인혁과 수민에게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수민은 무섭지 않았다. 인혁이 저를 덮어 주고 안아 주고 있으니까.
“아…….”
수민은 손을 뻗어 비를 잡아 보려 했다. 하지만 오히려 붙잡히고 말았다.
“딴생각할, 여유가 있나 보네.”
인혁이 목울대를 울리며 낮게 으르렁댔다.
손을 낚아채고, 손목을 잘근잘근 깨무는 얼굴이, 눈이, 정욕으로 번들거렸다. 성기를 귀두까지 빼냈다 한 번에 박았다.
“아!”
수민이 허리를 크게 휘며 손으로 바닥을 긁었다.
“너, 무, 깊…….”
발로 바닥을 밀었다. 하지만 인혁이 허리를 잡고 있어, 몸이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수민아, 집중해야지.”
인혁이 상냥하게 속삭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하체는 전혀 상냥하지 않았다. 잘게 허리를 치대며 뺨과 턱, 목, 어깨, 온갖 곳에 입을 맞췄다.
“으응, 응…… 읏!”
섬뜩할 정도로, 안쪽까지 깊게 성기가 박혔다. 속살을 짓이겼다. 수민은 몰려드는 감각을 감당하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허락받지 못했다.
“수민아.”
인혁이 톡톡, 뺨을 두드렸다. 수민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들어 인혁을 바라보았다.
인혁이 키스했다. 수민은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푹, 푹. 성기가 박혔다. 자꾸 배 속을 긁어 댔다. 수민은 인혁의 혀를 핥으며 박히는 감각에 몸서리쳤다.
쏴아아-.
쏟아지는 빗소리. 헉, 헉. 거친 숨소리. 몸에 닿는 뜨거운 살갗. 묵직한 온기.
이게 행복.
이런 게 행복.
수민은 몇 번이나 곱씹으며 두툼한 혀를 빨고 아래를 한껏 조였다. 하. 인혁이 신음하며 더 세게 몰아붙였다. 인혁에게 매달린 수민의 몸이 종잇장처럼 흔들렸다.
곧 인혁의 허리가 경직되었다. 배 속에 뜨거운 게 확 퍼졌다.
“하읏…….”
수민의 허벅지가 바들바들 떨렸다.
인혁은 그러고도 만족하지 못했다는 듯 계속 허리 짓 했다.
인혁의 냄새가 비처럼 쏟아졌다.
쏴아아.
빗소리를 들으며 수민은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