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 여기는…….”
“왜? 별로야?”
그걸 말이라고…….
재운이 불안하게 주변을 훑었다. 송진오가 재운을 끌다시피 해서 데려온 장소는 남성 알파 전용 화장실이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송진오가 여기에 재운과 대화를 나누려고 데려왔을 리는 없었으니까.
“들어가.”
송진오가 좌변기가 놓여 있는 칸의 문을 열고 안쪽을 향해 턱짓했다.
재운이 고개를 저었다. 송진오에게 반항해 봤자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이곳은 언제든지 다른 학생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었다.
윤일우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섹스를 할 때도 재운은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 곳은 옆 칸에 들어가 좌변기 위에 올라서면 누구든지 재운을 볼 수 있었다. 그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재운이 한 발자국씩 문 쪽으로 이동했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해야 했다. 이곳에서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재운은 생각을 이루지 못했다.
“아흑……!”
문 쪽으로 향하는 재운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잡아챈 송진오가 그대로 재운을 끌고 가 좌변기 위로 밀쳤다.
좌변기에 부딪힌 등이 시큰거렸다. 재운이 눈물이 고인 눈으로 송진오를 간절하게 올려다봤다.
“나도 몰랐던 사실인데. 네가 그렇게 울면서 볼 때마다 꼴리더라. 진작 울려 볼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 만큼.”
등 뒤로 문을 닫은 송진오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다. 버클을 푸는 손길이 빨랐다. 재운이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잡은 순간부터 이미 송진오의 좆은 선액을 흘리고 있었다.
“페로몬은 풀지 마. 네가 여기에 있다는 거 사방에 알리고 싶지 않으면.”
송진오가 핏줄이 불거져 꿈틀거리는 묵직한 좆을 한 손에 들고 매만졌다. 묵직한 귀두가 재운의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
“학교 오기 전에 윤일우랑 얼마나 떡을 친 거야? 냄새가 진동을 하네.”
이미 재운에게서는 완전히 억누르지 못한 오메가 페로몬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도 재운이 필사적으로 감추려고 하는 덕분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맡기 힘들 정도기는 했다.
오메가 페로몬보다 더 짙은 건 윤일우의 알파 페로몬이었다. 눈을 감고 맡으면 재운이 아니라 윤일우가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입 벌려.”
송진오가 꾹 다물린 입술 앞으로 성기 끝을 가져다 댔다.
“펠라하고 그만둘래, 아니면 뒷구멍 쑤셔 줄까? 뭐든 내가 한 발 빼내지 않고서는 네가 여기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만 알아 둬.”
눈물로 얼룩진 새까만 눈동자가 그를 노려봐도 송진오는 시니컬한 웃음만 지었다. 현재 그의 목적은 재운의 몸 어디에든 좆을 쑤시는 것이었다.
“우욱…….”
힘없이 벌어진 입술 새로 재운의 팔목보다도 훨씬 굵은 성기가 조금씩 빨려들어 갔다.
“턱 빠져도 고쳐 줄 테니까 더 벌려. 이에 스치지 않게.”
고작 반의반도 삼키지 못했다. 이미 재운의 입안은 뜨거운 살덩어리로 가득 차고 말았다. 턱에 뻐근한 통증이 일 정도로 벌렸지만, 송진오는 영 마뜩잖은 모양이었다.
“흣…….”
송진오가 식은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쥐어 들었다. 벌게졌다가 하얗게 질리는 얼굴이 잘 보이도록.
이미 눈물이 흘렀던 눈가에서는 생리적으로도 차오르는 눈물이 더해져 물길이 흥건하게 볼 아래까지 이어졌다.
거대한 좆이 야금야금 재운의 입속으로 사라져갔다. 재운이 참기 힘든 역함에 좆을 밀어낼 때마다 송진오가 머리카락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오늘은 안 찢어졌네. 찢어지는 것도 괜찮은데.”
팽팽하게 벌어진 입가를 뭉근하게 짓누르는 손길에 재운이 눈을 질끈 감았다. 목구멍까지 빠듯하게 들어찬 성기에 숨이 막혔다.
코로 숨을 쉬면 얼굴에 닿은 까슬까슬한 음모가 느껴졌다. 송진오가 페로몬을 본격적으로 푼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성기에는 페로몬 샘처럼 알파의 페로몬이 짙게 묻어났다.
재운이 힘든 와중에서도 허리를 들썩였다.
“너 지금 느끼는 거야?”
허리를 조금씩 앞뒤로 움직이며 뜨겁고 습한 점막의 감촉을 음미하던 송진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수치심에 재운의 목덜미가 붉게 달아올랐다. 입가는 찢어지기 직전까지 벌어져 있고, 목구멍으로는 음식이 아니라 알파의 좆을 삼키는 중이었다. 그런데 본능적으로 알파의 페로몬에 반응하고 말았다.
“오메가는 진짜 어쩔 수 없구나.”
송진오가 말랑말랑한 귓불을 매만지며 재운의 볼을 감싸 안았다. 작은 머리통을 단단히 고정한 그가 지금까지는 전초전에 불과했다는 듯이 재운의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성기를 강하게 치받았다.
“우웁, 웁, 크읍…….”
재운이 손을 들어 송진오를 밀어내기 위해 허우적거렸다. 생존 본능이었다. 송진오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마른 목 위로 성기의 윤곽이 기괴하게 튀어나왔다. 입가뿐만 아니라 목을 감싸고 있는 살갗도 늘어날 것 같았다.
“사, 읍, 려 줘…….”
재운이 다 뭉개지는 발음으로 송진오에게 애원했다. 자존심이고 뭐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정말 몸 어디 하나가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이성을 잡아먹었다.
“하아……. 그러면 더 조여 봐. 내가 빨리 싸게.”
송진오는 재운의 얼굴을 반찬 삼아 차오르는 사정감을 만끽했다.
오메가가 재운 한 명인 것도 아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부를 수 있는 오메가는 많았다. 그런데 다른 오메가한테 박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만족감 때문에 가슴이 뻐근해졌다.
재운이 본능적으로 목구멍을 조였을 때였다.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오줌 마려워서 죽는 줄 알았네.”
“내가 너 벤티 사이즈로 시킬 때부터 알아봤다.”
“목마르니까 그랬지.”
친구 사이인 듯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남자 두 명의 목소리였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더해지면서 재운은 눈을 뜬 채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은 했다.
그랬기 때문에 처음에는 송진오를 피해 도망가려고 한 거였다. 하지만 좆이 입에 들어오면서부터는 괴로운 감각에 휩싸여 장소를 잊어 갔다.
낯선 이들의 대화 소리는 재운을 패닉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했다. 재운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끅끅거렸다.
혀를 쯧 찬 송진오가 좆을 빼내고 재운의 하관을 손으로 막았다.
“새끼, 진짜 많이도 싸네.”
“방광 터지는 줄 알았다니까.”
“야, 근데 뭔가 이상한 냄새 나는 것 같아.”
“뭔 냄새. 내 오줌 냄새?”
“알파 페로몬 같은데…….”
“알파 전용 화장실이니까 페로몬이 있을 수도 있지.”
“아니, 알파 페로몬만 나는 게 아니라 오메가 페로몬도 나는 것 같지 않냐?”
“뭔 개소리야.”
“잠깐만 있어 봐.”
나지막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재운의 안색도 희게 질려 갔다.
“너네 똥 싸냐? 왜 이렇게 안 나와.”
“김동민 새끼가 여기에서 이상한 냄새 난다잖아.”
“개소리 말고 빨리 나와. 애들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가까워지던 발걸음은 재운과 송진오가 있는 칸 앞까지 다가왔다가 빠르게 사라져 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송진오가 재운의 얼굴을 막고 있던 손을 치웠다.
“허윽, 헉…….”
차단됐던 산소가 한 번에 밀려들어 왔다. 재운이 허리를 숙이고 거친 숨을 토해 냈다. 순간 눈앞이 하얗게 점멸됐다.
얼굴을 막고 있는 손을 치울 힘도 없어 무력하게 사지만 벌벌 떨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던 낯선 목소리의 이가 지금 제 모습을 봤더라면, 틀림없이 눈동자를 경멸로 물들였을 것이다.
“나는 들켜도 상관없기는 한데. 너는 아니잖아.”
송진오가 재운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개, 새끼…….”
“새삼스럽게.”
짓씹듯 욕을 하는 목소리가 물기에 젖었다. 송진오의 얼굴에 떠오른 죄책감은 없었다. 재운의 눈가가 아프게 일그러졌다.
벌써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윤일우를 비롯한 놈들한테 굴려졌는데도 이런 취급을 받을 때마다 통증이 느껴지는 마음이 야속했다.
차라리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면 좋을 텐데.
“아직 사정 못 한 거 보이지? 입 열어.”
옅게 흐느끼는 재운의 턱을 송진오가 우악스럽게 잡아 벌렸다.
“우읍, 읍, 그읍…….”
잠시 멈췄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 송진오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빠듯하게 벌어진 턱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고통에 적응한 게 아니라 고통을 느끼는 신경이 망가진 느낌이었다.
입천장을 긁었다가 목구멍 깊숙이까지 파고드는 성기의 감촉에 소름이 돋았다. 재운은 눈을 감고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으읍……!”
음모가 피부에 쓸리도록 좆을 집어넣은 송진오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목을 힘껏 졸랐다. 좆이 들어선 채로 손으로 압박당하자 재운의 목이 당장이라도 피를 쏟을 기세로 붉게 달아올랐다.
아프게 쓸린 점막에 뜨거운 정액이 쏟아졌다. 액체가 식도를 타고 배까지 흘러들어 가는 것을 느끼며 재운이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
“하아……. 기분 끝내주네…….”
축 늘어지는 몸에서 성기를 빼낸 송진오가 휴지를 뽑아내 정액과 타액으로 범벅인 좆을 닦았다. 엉망인 재운과 다르게 그는 볼이 살짝 상기된 것만 제외하면 멀끔한 행색이었다.
재운은 끈이 떨어진 인형처럼 눈을 감은 채 변기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반쯤 벌려진 입술 새로 입안 가득 들어찬 정액이 유독 붉은 혀와 대비되어 보였다.
“고작 펠라 한 번에 기절이라니.”
송진오가 묵직한 한숨을 내쉬며 휴지를 몇 장 더 뽑아 재운의 얼굴을 대충 닦아 냈다. 입은 다물게 하고 코를 쥐니 반사적으로 입안에 남은 정액을 삼키는 모습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윤일우한테 딜을 걸어 봐야겠는데.”
재운을 어깨에 들쳐 메고 화장실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은 평소와 다르게 경쾌하기만 했다.
* * *
재운은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는 손길에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재운의 얼굴을 다 덮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손, 이마에 살짝씩 닿는 손끝의 감촉, 인식하기도 전에 폐부로 스며드는 페로몬까지.
“일어났어? 그런데 왜 눈을 안 떠.”
다정한 울림이 귓가에 내려앉았다. 열 때문에 뜨끈뜨끈한 귓불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다정했다.
“좋아한다고 말한 게…… 그렇게 큰 죄였어?”
재운은 때때로 그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갑작스럽게 닥쳐 온 히트 사이클에 윤일우만이 구명줄인 줄 알았다.
그날, 몸이 잘못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찾아가지 않고 방 안에서 버텼다면……, 그에게 좋아한다는 말 같은 거 내뱉지 않고 기회를 줬을 때 도망쳤다면…… 두 사람은 여전히 친구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있었겠지.
구명줄인 줄 알았던 게 재운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말을 할 때마다 목에서 끔찍한 통증이 일었다.
그런데도 재운은 눈을 감은 채 윤일우에게 서러운 마음을 일부나마 내보였다.
“응. 내가 넘어오지 말라 했던 선을 네가 기어코 넘어왔잖아.”
까끌까끌한 재운의 목소리와는 달리 윤일우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낮고 그윽하기만 했다.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만 아니라면 순간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건 아닐까, 실없는 생각이 들 만큼. 그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동요도 비치지 않았다.
“나 좀 제발…… 살려 줘…….”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운은 송진오에게 목을 졸리면서 제가 죽을 때까지 이 악몽을 끝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았다. 재운도 모르는 생존 본능이 깨어나 흐느끼는 애원을 토해 냈다.
눈을 뜨니 윤일우가 침대가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편안한 차림새의 그는 재운이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도 재미없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지루해 보이기만 했다.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 없는데.”
진심으로 의문이 어린 눈동자에 재운은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윤일우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윤일우는 재운의 절망과 슬픔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잔인하게 재운의 처음을 앗아 가고, 노팅을 할 때부터 어딘가 뒤틀려 있다는 건 알았다. 정말 그는 재운이 느끼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여기지 않는 듯했다.
“재운아, 나는 너를 정말로 아껴. 곁에 계속 두고 있잖아.”
고개를 숙여 이마를 맞대고 휘는 눈매에 재운이 입술을 뻐끔거렸다. 말이 되지 못한 쇳소리만 간헐적으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다른 애들도 너를 아끼고 있고. 왜 이렇게 우는지 정말 이유를 모르겠어.”
눈물로 젖은 뺨을 감싸 안은 윤일우가 충격으로 홉뜬 눈가에 입술을 붙였다.
“오피스텔 방 뺐어. 오늘부터 같이 살 거야. 너도 좋지?”
“아, 안 돼…….”
“왜? 예전에 네가 그랬잖아. 나랑 같이 살고 싶다고. 마음이 변했어?”
온몸에 얼음장 같은 차가운 물이 부어진 것만 같았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윤일우의 눈동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재운은 그 속에 담긴 제 얼굴이 공포로 질려 가는 걸 목도했다. 재운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윤일우의 눈동자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겁에 질릴 수밖에 없으리라.
“이미 짐도 다 옮겨 놨어. 여기가 이제부터 재운이 네 방이야.”
윤일우가 침대 옆 벽에 있는 버튼들 중 하나를 눌러 방 안의 불을 켰다. 간접등만이 켜져 있던 침실이 환해졌다. 눈이 시릴 정도로 환한 빛에 재운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빛에 적응한 시야에 들어오는 방은 재운이 원래 살던 오피스텔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넓었다.
방보다는 호텔이 떠오르는 공간이었다. 재운이 누워 있는 킹사이즈 침대가 작아 보일 정도였다.
방 안에 난 문으로 보아 욕실도 있는 것 같았다. 작은 미니 냉장고부터 테이블과 2인용 소파, 책상, 그리고 오픈 문으로 이어지는 드레스 룸까지.
하얀색과 원목 위주로 인테리어한 공간은 언젠가 잡지에서 봤던 방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요즘 이런 인테리어가 유행이래. 내 취향은 아니지만.”
윤일우가 침대 협탁 옆에 놓인 거대한 식물을 의미 없이 만지작거렸다.
“신 비서가 추천하는 대로 꾸미긴 했는데. 마음에 안 들면 말해. 재운이 네 취향으로 다시 바꿔 놓을게.”
따뜻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였다. 대부분의 사람의 마음에 들 만큼 가구들의 배치 또한 허투루 놓인 게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재운의 가슴은 시리게 굳어 갔다.
“왜 말이 없어? 아직 열이 심한가.”
윤일우가 동그란 이마를 커다란 손으로 덮었다. 무언가를 가늠하듯 가느다래진 눈매가 살포시 찌푸려졌다.
“해열제 먹였는데도 열이 계속 나네. 약 하나 더 먹자.”
말없이 굳어 있는 재운을 윤일우가 일으켜 침대 헤드에 기대 앉혔다. 협탁 위에는 물병과 컵, 약봉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알약 하나를 집어 든 윤일우가 재운의 입술 새로 약을 넣었다. 하지만 재운이 입을 꾹 다물고 있어 알약은 입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병원으로 갈래? 아니면 이 박사님 불러서 진료 봐도 되고.”
알약을 손바닥 위에서 굴리며 윤일우가 여상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너 지금 그 모습 다른 사람한테 보여 주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 집으로 데려온 건데.”
“아…….”
왜 몰랐을까.
재운은 현재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이불을 덮고 있어서 몰랐던 걸까. 그도 아니면 눈을 뜬 순간부터 겪은 상황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랬을까.
윤일우가 재운의 몸을 가리고 있던 이불을 끌어 내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곳이 엉망이었다.
잇자국과 붉은 울혈이 가득한 몸은 망가진 인형 같았다. 무엇보다 살짝 고개를 숙였을 뿐인데 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심상치 않았다. 재운이 손을 들어 목을 부여잡았다.
“송진오가 섹스 취향이 험해. 경고는 해 뒀으니까 다음부터는 그럴 일 없을 거야.”
윤일우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재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허리춤까지 내려간 이불 위에 토옥, 톡, 비가 내렸다.
“계속 우네. 일단 쉬고 있어. 아니면 학교 공부 미리 해도 되고. 전공 책 지금 살 수 있는 건 미리 사 놨거든.”
정수리에 입술을 붙였다 방을 나서는 윤일우의 발걸음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질 때까지 커다란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만 떨어져 내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재운이 책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재운이 평소 들고 다니던 가방이 의자에 걸려 있고, 책상 위에는 두껍고 얇은 전공 책들이 가지런하게 쌓여 있었다.
“내가…… 인형이야?”
윤일우가 앞에 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말을 할 때마다 부어오른 식도가 아파 왔지만 재운은 아픈 몸 상태보다 부서지는 마음이 더 괴로웠다.
지금은 귀하다는 듯이 좋은 방을 내줘도 한순간의 변덕이었다. 재운이 망가지는 순간 가져다 버릴 만큼의 마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흘러나온 페로몬이 재운을 위로하듯이 감싸 안았다. 하지만 재운은 제 페로몬이 더할 나위 없이 끔찍했다. 온몸에 자그마한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듯한 소름이 끼쳤다.
히크 사이클만 터지지 않았어도, 별장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날의 일만 아니었다면 이토록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만……. 그만 내보내…….”
제 몸인데도 제어가 되지 않은 오메가 페로몬이 넓은 침실 안에 차올랐다. 재운이 몸을 웅크려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최대한 페로몬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몸을 경직시키고 힘을 줬다. 이불을 붙잡고 있는 손마디가 새하얗게 질려 갔다.
윤일우든, 다른 누구든 재운의 페로몬을 맡으면 다시금 재운을 덮칠지도 몰랐다. 아직도 부어 있는 밑구멍이 뻐끔거리며 애액을 한 줄기 흘려보냈다.
알파 페로몬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발정하는 제 몸에 재운이 숨죽은 울음을 토해 냈다.
재운은 발기한 성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이불로 만든 야트막한 굴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눈두덩이가 묵직해질 지경이 되어서야 재운이 이불로 만든 굴에서 나왔다.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넓은 방이 재운을 고요히 지켜봤다.
이불을 들추자 척척해진 시트가 드러났다. 재운이 제 성기와 밑구멍에서 나온 체액들을 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차마 만지기도 싫을 만큼 선명한 흔적에 붉어졌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갔다.
“누, 누구…….”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 가만히 앉아 있는데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흠칫 몸을 떤 재운이 이불을 끌어당겨 여전히 나신인 몸을 가렸다.
“아직 집에 우리밖에 없어.”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윤일우였다. 그의 손에는 야채 죽과 물컵이 올려진 쟁반도 들린 채였다.
“옷장에 옷 많은데. 안 열어 봤구나.”
어느새 침대 헤드까지 몸을 피한 재운의 앞에 윤일우가 느긋이 앉았다. 닫혀 있는 옷장 문을 눈짓하는 얼굴이 무서울 만큼 단정했다.
“죽 먹고 약 먹어. 계속 밥 못 먹어서 배고프지 않아?”
재운이 두 무릎을 끌어모아 안았다. 발치 앞에 놓인 쟁반을 내려다보면서도 입을 꾹 다물었다. 음식을 보자 배가 고프다는 감각이 들었지만, 입맛은 하나도 없었다. 억지로 먹는다고 해도 모래알을 삼키는 느낌만 날 터.
“이거 다 안 먹으면 오늘 바로 애들 부를까 하는데. 어때?”
“애들이라니…….”
“우리 친구들.”
새까만 눈동자에 원망이 어렸다. 친구라는 단어는 이미 세상에서 지워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재운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송진오는 애초에 재운을 친구라고 여기지 않았다고까지 얘기했다.
“친구, 사이에는…… 이런 거 안 해.”
“이런 게 뭔데?”
몇 번 입술을 어물거리던 재운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말끔하게 옷을 다 갖춰 입은 윤일우와 달리 이불로만 몸을 가리고 있는 자신의 현실이 대비되어 다가왔다.
“재운아, 말해 봐. 친구 사이에는 하면 안 되는 일이 뭐야?”
쟁반을 들어 테이블 위로 치운 윤일우가 겁에 질려 있는 재운에게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재운이 계속 물어뜯은 탓에 엉망인 아랫입술을 지그시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만지지 마…….”
재운이 바들바들 떠는 손을 들어 윤일우의 손을 치워 냈다. 약한 힘인데도 윤일우는 순순히 재운의 힘에 밀려 손을 떼어 냈다.
잠시간 말없이 제 손을 내려다보던 윤일우가 고개를 들고 재운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눈동자 위에는 시린 바람이 부는데 입꼬리만 올라가는 모습이 기이했다. 재운이 두려움에 목울대를 울렸다.
“원래는 페로몬 흘리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흣…….”
좋지 않은 예감에 재운이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는 헤드에 등을 밀어붙였다. 재운의 페로몬만이 맴돌던 공간에 지독할 정도로 강한 알파의 페로몬이 스며들었다.
침실이 아니라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에 뚝 떨어진 듯한 열기가 재운의 몸을 삽시간에 잠식해 나갔다.
윤일우에게서 벗어나고 싶어도 재운의 본능은 알파의 페로몬에 곧바로 반응했다. 억눌렀던 게 소용이 없을 만큼 달콤한 향이 터져 나왔다. 꿀벌을 유혹하는 꽃처럼 활짝 봉오리를 벌린 것 같았다.
“네 페로몬만 맡으면 계속 풀어놓고 싶어.”
열이 올라 헐떡이는 작은 얼굴을 윤일우가 손으로 감싸 안았다.
“입술, 상처 내지 마.”
상처 난 재운의 모습은 마음에 들었다. 다만 그가 스스로 상처 내는 모습이 불쾌했을 뿐.
“으읍…….”
재운의 얼굴을 단단히 고정하고 윤일우가 그대로 입술을 붙였다. 밀려들어 오는 살덩이에 재운이 고개를 뒤로 물려 봐도 볼에서 느껴지는 악력에 저절로 입술이 벌어졌다. 두꺼운 살덩이가 입속을 샅샅이 훑는 감촉이 적나라했다.
타액이 섞이며 윤일우의 페로몬이 점점 짙어졌다. 재운의 머릿속이 점점 멍해져 갔다.
물러나기만 하던 작은 혀가 입안을 유영하는 혀끝에 제 혀를 살살 비비기 시작했다. 윤일우의 입꼬리가 매끄럽게 올라갔다.
눈을 감은 재운과 다르게 그는 재운의 얼굴을 가느다래진 시야로 남김없이 살피고 있었다.
“밥 먹고 하려고 했는데. 벌써 젖어 있네.”
“흐, 아…….”
재운과 입을 맞추며 윤일우가 허리에 팔을 감아 늘어지는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웠다. 애액이 흘러나오는 입구 안으로 손가락 하나가 불시에 파고들어 갔다.
고작 손가락 하나만을 집어넣어 둥글게 휘저었을 뿐인데 젖은 소리가 났다. 이물감에 이성이 돌아온 재운이 손을 뒤로 내려 윤일우의 손을 떼어 내려 바르작거렸다.
“하기 싫어……. 하지 마…….”
“몸이랑 너무 다른 말 하는 거 아니야?”
“으읏…….”
윤일우가 꼿꼿하게 서 있는 젖꼭지 한쪽을 입술로 빨아 당기고는 물었다. 쭈웁, 쭙, 살덩이가 빨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재운의 허리가 들썩였다.
안에 들어온 손가락을 기구 삼아 허리를 상하로 움직이는 모습이 자위라도 하는 것만 같았다.
“페로몬에 이렇게 약해서 어떡해.”
윤일우가 집요하게 한쪽 유두만 공략했다. 단단한 어깨를 짚은 채로 버티고 있는 재운의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도망가야 한다고, 밀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 머리 한쪽 구석에서는 들었다. 하지만 페로몬에 흐물흐물해진 몸은 쾌락을 좇아 윤일우를 보채듯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아…….”
윤일우가 애액으로 흥건해진 속살에 손가락 두 개를 더 집어넣었다. 한 개와는 다른 이물감에 재운이 순간적으로 내벽을 꽉 조였다.
손마디를 끊을 듯 압박하는 힘에 윤일우가 통통하게 부어오른 유두를 잇새로 넣고 씹었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통증이 재운의 몸을 아래로 훅 꺼지게 만들었다. 자연스레 손가락 뿌리까지 구멍으로 빨아 당겨 옴쭉옴쭉 물어 댔다.
“언제 이렇게 조이는 걸 배웠어.”
“흐, 읏…….”
윤일우가 손가락을 한데로 모아 내벽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닿을 듯 닿지 않는 지점에 재운이 식은땀이 배어난 이마를 너른 어깨 위에 비볐다.
분명 일방적으로 시작된 섹스였다. 몸이 달아오르는 제 모습에 눈물이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흐윽…….”
방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옅게 들썩이는 몸에 윤일우가 고개를 돌려 재운의 안색을 살폈다. 얼굴을 어깨에 파묻고 있어 보이는 건 옆모습뿐이었지만 눈물을 참으려 일그러뜨리는 얼굴은 잘 보였다.
“손가락으로는 부족해서 그러는 거지?”
윤일우가 손가락을 빼내고 그대로 재운의 몸을 뒤로 돌렸다. 골반을 잡아당기자 재운이 엉덩이만 위로 치켜든 자세가 됐다.
“그만…….”
재운이 윤일우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손을 위로 뻗었다. 시트가 벗겨져 내리도록 손에 힘을 줬다. 그러나 재운의 몸은 윤일우에게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네 몸 진짜 신기한 거 알아? 싫다면서도 이렇게 액을 질질 싸잖아.”
바지를 끌러 내려 성기를 빼낸 윤일우가 핏줄이 울퉁불퉁하게 선 표피를 가볍게 위아래로 훑었다. 먹음직스러운 엉덩이 골 사이로 투명한 액이 흘러내렸다. 입안이 바싹 말랐다.
귀두 부분을 구멍 입구에 맞춰 살짝 눌렀다 떼어 내자 끈적한 액이 늘어날 대로 늘어나다 툭 끊어졌다.
반쯤 발기한 연분홍빛 성기를 내려다보는 윤일우의 얼굴 위로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통통한 회음부를 애액을 윤활제 삼아 수직으로 비빌 때마다 마른 허벅지가 발발 떨렸다.
윤일우가 몇 번 입구만 간 보는 행위를 이어 갔다. 주름들이 활짝 펴지면서 안에 숨겨진 붉은 속살을 은밀하게 내보였다.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듯한 구멍에 윤일우가 성기 끝을 입구에 맞춘 채로 허리에 힘을 줬다.
“아, 아아…….”
방금 전까지 윤일우의 손가락이 들어와 풀어 줬었다. 그런데도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주름이 팽팽하게 펴질 정도로 늘려지는 입구에 재운이 애타게 시트를 잡아 쥐었다.
“왜 계속 아다 같지, 우리 재운이는.”
윤일우의 미간에도 힘이 들어갔다. 떨림도 멎은 채 잔뜩 굳은 재운의 몸에 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여 어깨 살을 입술 새로 빨아 당겼다.
아직 재운의 몸에는 진대원과 윤일우가 물고 빨았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진대원의 흔적을 지우듯 그 위에 새롭게 울혈을 남기며 윤일우가 말랑말랑해진 성기를 한 손에 쥐었다.
찰흙 주무르듯 조몰락거리는 손안에서 조금씩 성기가 단단해져 갔다. 성기를 주무르는 손길에 맞춰 윤일우가 귀두만을 간신히 머금은 내벽을 힘으로 벌리기 시작했다.
가장 두꺼운 귀두 갓이 볼기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기다란 기둥을 내벽이 천천히 제 몸을 이완시키며 끌어당겼다.
오메가답게 앙증맞은 크기의 성기가 완전히 발기한 상태로 윤일우의 손에서 희롱을 당했다.
윤일우는 오늘따라 서두르지 않았다. 재운의 몸이 서서히 벌어지는 감각을 예민한 표피로 남김없이 느끼고 있었다.
“다 들어갔다.”
묵직한 음낭이 제 반의반도 되지 않을 크기의 공 모양의 주머니를 툭 건드렸다. 접합부에서 흘러나온 애액이 서로의 몸이 틈 없이 겹치도록 도왔다.
“아랫배가 볼록해졌어. 임신한 것처럼.”
사정 직전까지 몰린 자그마한 성기를 놓은 손이 윤일우의 좆 모양을 은근하게 드러내는 살갗에 닿았다.
“흐읏, 아…….”
장기를 지그시 압박하는 손바닥에 재운이 허리를 들썩이며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하지만 이미 재운의 몸은 윤일우의 단단한 몸체에 덮인 지 오래였다.
“윽…….”
부드럽게 진입한 것과는 다르게 윤일우가 그대로 귀두를 입구에 걸쳐질 정도로 빼낸 후 안쪽 깊숙한 곳까지 처박았다.
거친 몸짓에 재운의 몸이 앞으로 훅 밀려났다가 다시금 윤일우의 몸을 찾아 되돌아왔다.
좆에 문대진 자극점에 재운이 아랫입술이 희게 질리도록 깨물었다. 저도 모르게 성기로 향하려는 손을 주먹 쥐어 버텼다.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뒷구멍으로 좆을 받아 내면서 성기를 스스로 만지지 않는 게 무슨 자존심이냐고 비웃을지 몰라도 재운은 고집스레 손을 움켜쥐었다.
“윽, 흑…….”
거친 파열음이 울릴 때마다 재운의 몸이 조금씩 앞으로 밀려났다. 윤일우가 재운의 손목을 한데로 모아 손으로 붙잡았다.
재운의 몸을 고정한 상태로 윤일우가 사정없이 재운을 몰아붙였다. 살과 살이 닿는 소리라고 보기 힘들 만큼 거센 음이 침대에 머물다 방 안 곳곳에 퍼져 나갔다.
“흐, 아아……. 그만…….”
자궁구까지 뚫어 버릴 듯 밀고 들어오는 성기에 재운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땀에 젖은 이마를 시트 위로 비볐다.
히트 사이클이 아닌데도 자궁의 입구가 열릴 것만 같았다. 자궁이 스스로 몸을 열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뚫을 기세로 들이박는 좆 때문이었다. 재운이 정신을 못 차리고 울부짖었다.
억눌렸던 신음에 비음이 섞여 들어갔다. 재운의 페로몬 또한 소극적으로 윤일우의 페로몬에 어울리던 행동을 벗어던졌다. 윤일우의 몸에 달라붙어 알파 페로몬을 더 내 달라고 보채기 시작했다.
물에 젖은 천이 땅을 힘차게 내리치는 듯한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아, 흐…….”
윤일우가 손가락 두 개를 재운의 입속에 집어넣었다. 재운은 손가락을 깨물지도 못했다. 볼기를 후려치며 들어오는 좆에 신음만 토해 냈다.
혀를 문지르며 입천장을 간질이는 손길에 다물지 못한 입가를 타고 타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러고 있으니까 우리 진짜 짐승 같다. 그렇지?”
낮은 웃음소리가 재운의 머리 위로 흩뿌려졌다. 재운은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페로몬에 휘둘려 조금씩 스스로 엉덩이를 흔들어 대는 자신은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건 페로몬 때문이라고, 그래서 윤일우를 밀어내지도 못하고 좆을 더 박아 달라고 보채듯이 내벽을 조이는 거라고 자신을 위로해 봐도 소용없었다. 영영 풀어지지 않을 멍울이 작은 가슴속에 맺혀 들었다.
윤일우가 재운의 입속에 집어넣었던 손을 빼내 타액을 윤활제 삼아 유두를 비볐다.
“흐응, 으, 하아…….”
재운의 가슴은 윤일우가 손을 넓게 펼치면 한 손에 쥐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작았다. 작은 가슴에서 비벼지는 유두와 유륜이 마찰이 이어질수록 색이 짙어졌다.
재운이 엎드린 자세라 가슴이 눈으로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그런데도 윤일우는 붉게 물들어 가는 젖꼭지가 보이는 기분이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살덩이가 단단하고 뜨거웠다.
윤일우가 고개를 숙여 타액이 흥건한 재운의 턱에 입술을 붙였다.
재운의 허벅지에서 힘이 스르륵 빠졌다. 윤일우는 억지로 재운의 허리를 붙들어 몸을 세우는 대신 침대 위로 엎드린 재운의 몸을 빼곡하게 제 몸으로 덮었다.
손목을 쥐고 있던 손을 놓고 마른 어깨를 붙들었다. 윤일우가 튀어나온 못을 박는 망치처럼 거세게 허리를 내리찍었다.
채 감기지 않은 눈꺼풀 새로 드러난 재운의 동공이 가늘게 떨렸다.
매트리스와 윤일우의 몸 사이에 샌드위치의 속 재료처럼 끼인 재운의 몸이 무력하게 떨렸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아래가 빠듯하게 벌어지고 힘들었다. 윤일우의 성기가 재운이 느끼는 지점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탓에 각성제를 흡인한 것만 같았다.
배 위에 올라붙은 성기는 터질 듯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사출했다. 요도구에서 싸질러진 하얀 정액이 시트뿐만 아니라 아랫배와 갈비뼈가 있는 부위까지 척척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흐, 흐아, 으, 아흐…….”
사정하면서 한껏 예민해진 몸은 잠시라도 쉴 시간을 얻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윤일우는 아직 튀어나온 못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듯이 허리를 박아 대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재운은 자신이 현재 얼마나 야한 신음을 흘리는지도 몰랐다. 그저 척수를 타고 흐르는 쾌감이 뇌를 곤죽으로 만들어 간헐적으로 몸을 떨기만 했다.
와중에도 재운의 내벽은 주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착실하게 윤일우의 좆을 맛있게 조여 물었다.
의지가 있는 것처럼 아직 알파의 씨물을 내뱉지 않은 성기를 자극하는 내벽은 반쯤 기절한 재운과 다르게 기운이 넘쳤다.
“왜 진작 너를 맛보지 않았을까. 나는 요즘따라 후회가 돼.”
지금도 재운은 교복을 입으면 성인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앳되었다. 윤일우는 교복을 입은 재운을 보며 가끔 하복부에 열이 고이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체육 시간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다 같이 세수를 하던 순간이 그랬다. 재운의 얼굴은 창백할 정도로 희던 평소와 달리 복숭앗빛으로 물든 채 달콤한 과육의 향을 흘렸다.
열을 식히기 위해 펄럭이는 체육복 상의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드러나던 가슴팍에는 세상 어떤 과일보다 달콤한 과실이 붙어 있었다.
그럴 때면 윤일우는 타는 듯한 갈증에 손바닥에 상흔이 생기도록 주먹을 꽉 쥐고는 했다.
“너를 더럽히는 건 생각보다도 쉬운 일이었는데.”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설원은 윤일우의 발자국을 시작으로 다른 이들에게 침범당했다.
“흐으, 으, 아…….”
윤일우가 재운의 고개를 돌렸다. 옆머리를 침대 위에 기댄 채로 흘러내리는 눈물에 푹 젖은 뺨이 발그레했다.
콱콱, 좆이 깊숙한 곳까지 틀어박힐 때마다 교성을 흘리는 입술 속을 두꺼운 혀가 교활한 구렁이처럼 스며들었다.
“읍, 으, 흐읍…….”
재운은 자신의 숨결조차 맛있다는 듯 훑어 가는 살덩이에 혀를 물리지도 못하고 제 혀를 얌전히 내줬다. 두 개의 살덩이가 젖은 소리가 나는 접합부만큼이나 하나처럼 얽혀 들었다.
“언제 이렇게 싼 거야? 이 정도면 매트리스를 새로 가는 게 낫겠다.”
재운의 입속을 실컷 맛본 윤일우가 손을 아래로 집어넣어 재차 발기한 성기를 주물럭거렸다.
가느다란 허리를 살짝 들어 올려 좆을 박으면서 손을 움직였다. 성기의 끝으로 재운이 느끼는 지점을 조준해 박아 대자 맨질맨질한 살덩이가 윤일우의 손안에서 쭈욱, 쭉 늘어났다.
푹 숙여진 고개가 뒤에서 박아 오는 움직임에 바람을 맞이한 갈대처럼 흔들렸다.
“흐읏, 응…….”
맑게 빛나던 눈동자는 혼탁한 빛으로 물들어 감긴 눈꺼풀 새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정신을 잃으면서도 재운은 신음을 흘리며 윤일우의 손안에 사정했다.
윤일우도 재운이 사정하는 순간에 맞춰 굳게 닫힌 자궁구의 앞에 뜨거운 정액을 쏟아 내듯이 뿜어 냈다.
* * *
“왜 이재운 못 만나게 하는 건데? 이재운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 못 보게 할 거면 왜 불렀냐?”
“나도 저녁에 있던 일정 취소하고 온 거야. 김본기 너도 중요한 약속 있다고 하지 않았어?”
희미하게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곧게 펴져 있던 재운의 미간이 움찔 떨렸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올라가며 초점이 흐릿한 눈동자가 살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재운은 여전히 넓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팔을 들어 올리려 해 봐도 손끝이 움찔 떨리는 게 다였다. 몸에 힘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아직도 아랫구멍을 있는 대로 벌리며 거대한 좆이 들락날락하는 것만 같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대하는 듯이 내벽이 반응했다. 촉촉하게 젖어 들어가는 속살에 재운이 힘겹게 뜬 눈을 다시 감았다.
“흐윽…….”
몸이 이 상태이니 윤일우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을 덮쳤다고 따질 수도 없었다. 계속해서 교성을 질러 대던 목이 메마른 모래라도 부어진 것처럼 까끌했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재운이 이불을 끌어 올려 그 안에 들어가 몸을 둥글게 말았다. 허리에서 시작된 둔통이 관자놀이까지 타고 올라와 두통이 일었다.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장소로 몸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재운이 숨을 장소라고는 이불 속이 전부였다.
“아, 됐고. 나는 이재운 보러 왔으니까 볼 거야.”
한참 실랑이를 벌이던 목소리 중 하나가 재운의 방에 빠르게 가까워졌다.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발소리에 재운이 입술을 말아 물며 소리를 죽이려 노력했다.
그에게 없던 동정심이라도 생기기를 간절히 바랐다. 울고 있는 재운을 못 본 척 지나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마음속에 들불처럼 번져 갔다.
“이재운, 자냐?”
재운의 바람은 언제나처럼 허무하게 스러졌다. 재운이 지척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았다.
“너 어디 아파? 왜 이불 속에 있는…….”
그러나 눈물로 엉망인 얼굴은 이불을 들춰내는 손길에 금방 드러나고 말았다. 진대원이 재운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나신인 재운의 몸은 어디 하나 여백을 찾기 힘들 만큼 색사의 흔적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목에 남은 손자국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손의 크기로 보아 재운의 가느다란 목 정도는 한 손에 담고도 남을 만큼 손이 큰 놈이었다.
“누가 이랬어?”
진대원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도 재운을 안을 때 험하게 다루기는 했지만, 그래도 재운의 목을 졸라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다.
여러 색으로 물든 멍 자국은 목을 조른 사람이 얼마나 자비 없이 목을 졸랐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선명했다.
“이재운, 이거 누가 이랬냐고.”
진대원이 말없이 울기만 하는 재운의 어깨를 쥐었다. 재운은 현재 나신으로 찬바람을 맞이한 사람처럼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살갗의 온도는 뜨끈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체온이 높은데도.
“나 좀 제발…… 그냥 내버려 둬…….”
힘없이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성대가 갈린 것처럼 탁하게 쉬어 있었다. 별장에서보다 더 애처로운 목소리였다.
아니, 그때에도 재운은 이렇게 절박한 목소리를 내뱉었을지도 몰랐다. 바뀐 건 진대원의 마음이었다. 당시에는 끓어오른 성욕에 불을 지폈던 목소리가 지금은 진대원의 마음 한구석을 강하게 자극했다.
“너 밥은 먹었어? 약은?”
하지만 진대원은 재운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대로 두면 재운은 굶어 죽을 때까지 이불 속에서 기어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윤일우가 재운이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지만 자신이 보는 앞에서 재운이 밥도 먹고, 약도 먹는 모습을 봐야 직성이 풀릴 듯했다.
“……안 먹고 싶어.”
배고픔 따위 생각나지도 않았다. 재운은 그저 잠시라도 좋으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이러다 진대원뿐만 아니라 송진오를 비롯한 다른 이들도 방 안에 들어올까 봐 두려웠다. 별장에서 자신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좆을 박을 준비를 하던 진대원과 송진오의 모습이 떠올랐다.
“흐윽…….”
재운이 몸을 더욱 웅크리며 억눌린 울음을 토해 냈다. 들썩이는 몸에 진대원이 자리를 피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재운이 한결 편하게 숨을 내쉬며 이불 위로 고개를 묻었다. 숨 쉬는 것마저 힘들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지쳤다.
그러나 재운의 휴식 시간은 짧았다. 닫혔던 문을 열며 쟁반 위에 죽과 약을 들고 온 진대원 때문이었다.
“밥이랑 약 먹고 다시 자.”
진대원이 침대 협탁 위에 쟁반을 놓고 재운을 부축해 침대 헤드에 기대 앉혔다. 진대원을 뿌리칠 힘도 남지 않은 재운은 그의 손에 이끌려 인형처럼 앉을 수밖에 없었다.
무력하게 눈만 깜박이는 재운의 앞에 앉아 진대원이 죽 그릇을 들어 수저로 휘저으며 뜨거운 죽을 입바람으로 식혔다.
한입에 먹기 좋을 만큼만 죽을 수저에 덜어 재운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 부르튼 입술에 진대원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이거 안 먹으면 나랑 섹스하고 싶다는 걸로 안다.”
“뭐……?”
방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걸까. 재운이 힘없는 시선을 들어 진대원을 노려봤다. 입맛이 없는 게 왜 섹스로 이어지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먹어. 먹고 한숨 자. 송진오랑 김본기도 방에 들어온다는 거 개지랄해서 막았으니까.”
재운은 진대원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지만, 가장 불편한 사람을 뽑으라면 송진오였다. 결국 재운이 조그맣게 입술을 벌렸다.
그제야 진대원이 무섭게 굳히고 있던 표정을 풀었다. 입가에 고인 작은 미소가 그의 변화한 기분을 나타냈다. 재운은 진대원이 먹여 주는 죽을 한 그릇 비우고, 그가 건네는 약까지 삼킨 뒤에야 침대 위에 누울 수 있었다.
“윤일우랑 같이 살기로 했다며.”
“……원한 거 아니었어.”
오랜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삼켰다. 노곤노곤한 피로감이 몸을 감싸 왔다. 기절하듯이 잠에 빠지는 게 아니라 기분 좋은 잠이 파도처럼 재운에게 밀려들었다.
“편한 방법을 찾아. 지금처럼 무조건 밀어내지 말고.”
재운이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진대원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재운에게는 진대원도 자신을 억지로 강간한 이들 중 한 명이었다.
“너도 이제는 알겠지? 나 포함해서 다들 미친놈인 거.”
모를 리가. 제정신이었다면 수년 동안 친구로 지낸 재운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끌어 내리지는 않았을 거다.
“머릿속은 이상해도 하나같이 돈 많잖아. 너도 인생 편하게 살 길을 찾으라는 말이야.”
아픈 자신을 챙겨 주려는 진대원에게 조금이나마 고마운 마음이 들려던 자신이 멍청했다. 재운이 자조적인 생각을 하며 짓씹듯이 말을 했다.
“그렇게 행동하면…… 몸 파는 사람이랑 다를 게 없잖아.”
놈들에게 몸을 열고, 그 대가로 돈을 받고.
“다들 진짜……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어. 나 같은 가난한 고아 오메가 따위…… 언제든지 망가뜨릴 수 있는 좆집으로 생각한 거야.”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재운의 말에 반박하려던 진대원이 침음을 삼켰다. 커다란 눈망울 가득 차올랐다 빠르게 추락하는 눈물에 못다 한 말이 담겨 있었다.
세상의 종말을 목격한 사람처럼 짙은 절망감이 묻어난 눈동자에는 어떠한 희망도 없었다.
“……나가 줘. 그만 쉬고 싶어.”
재운이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감긴 눈가를 따라 흘러내리는 물길은 여전했다. 그러나 울음소리 하나 나지 않고 조용했다.
진대원은 재운에게 더는 말을 걸지 못했다. 대신 빈 그릇이 놓인 쟁반만 챙겨 방을 나섰다.
윤일우와 다른 이들은 2층 거실에 있다가 1층으로 내려갔다. 재운의 목에 난 손자국에 진대원이 발광한 결과였다.
윤일우는 진대원의 행동을 제재하지 않았다. 그가 부엌에서 죽을 만들어 재운의 방으로 올라가는 것도 가만히 놔두었다. 볼일을 끝내고 내려온 진대원에게 윤일우의 시선이 길게 달라붙었다.
“이재운은?”
“……죽이랑 약 먹고 잠들었어.”
“수고했어.”
소파에 앉아 위스키가 담긴 잔을 손안에서 굴리고 있던 윤일우가 진대원을 향해 잘했다는 듯이 눈을 접어 웃었다.
눈동자에는 한 점의 웃음기도 없는 만들어진 웃음이었다. 소름이 돋는 팔을 거칠게 문지르며 진대원이 쟁반을 부엌에 가져다 놨다.
“아, 빨리 학교 개강했으면 좋겠다.”
송진오가 거의 다 비운 와인 한 병을 발치로 밀어냈다. 푹신한 소파로 몸을 묻으며 말을 꺼내는 목소리가 신나 보였다.
“왜냐고 안 물어봐?”
“네 생각 따위 궁금하겠냐?”
아무도 자신의 말에 반응하는 사람이 없자 송진오가 부엌에서 돌아와 제 옆에 앉은 진대원의 팔을 툭 쳤다. 진대원은 유리컵 안에 얼음도 없이 위스키를 쏟듯이 부어 넣었다.
“그렇게 먹다가 훅 간다.”
“남이사.”
송진오가 하는 말은 걱정이 아니라 빈정에 가까웠다. 진대원의 몸이 망가지면 송진오는 축배를 들 놈이었으니까.
“너는 이재운이랑 다른 학교라서 내 생각을 모를 수도 있겠다.”
“뭐?”
“아니, 생각해 보니까 학교 안에서 떡칠 데가 엄청 많더라고. 화장실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다른 데도 사용해 보려고.”
“너 진짜 뒤지고 싶냐?”
재운의 목을 조른 일로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던 순간이 오래 지나지도 않았다.
송진오가 도발하듯 던지는 말에 위스키가 담긴 유리컵을 쥔 진대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새파란 핏줄이 커다란 손등 위에 위협적일 정도로 부풀었다.
“윤일우, 진대원 진짜 웃기지 않아?”
“뭐가. 나는 흥미롭기만 한데.”
진대원과 송진오 사이에 살벌한 분위기가 흘러도 윤일우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입술에 댄 잔을 기울이는 손길에는 여유로움마저 묻어났다.
김본기만 손에 쥐고 있던 잔을 테이블 위로 내려놨다. 두 사람이 아까처럼 부딪치면 언제든지 말릴 수 있도록 소파에서 반쯤 몸을 일으켰다.
“진대원이 하는 행동 보면 꼭 이재운이 지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잖아. 우리랑은 다르다는 듯이.”
“흐음……. 그런가? 진대원, 우리 재운이랑 사귀고 싶어?”
“……뭐?”
진대원이 송진오를 죽일 기세로 노려보다가 윤일우의 말에 순간적으로 눈동자가 커졌다. 이재운이랑 사귄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도 오메가다운 여리여리한 외모가 문득 인식되거나 달콤한 페로몬이 느껴질 때마다 한번 따먹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진지하게 관계를 이어 갈 생각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었다.
“사귀는 건 안 돼. 재운이를 좋아하는 것도 안 되고.”
윤일우가 손에 쥐고 있던 유리잔을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 위로 올려놨다. 기다란 다리를 꼬아 소파에 편하게 몸을 기댄 그가 배부른 맹수처럼 눈을 빛냈다. 흔들리는 진대원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자신 없으면 지금이라도 빠져. 예전처럼 이재운이랑 친구 사이로 돌아가라는 뜻이야.”
진대원은 재운이 제 소유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윤일우에게 반발심이 들었다. 그저 말뿐만이 아니라는 듯이 묵직하게 자신을 압박해 오는 페로몬에 턱 위로 힘줄이 설 만큼 이가 악물렸다.
“네가 무슨 권리로?”
“뭐야. 진대원, 진짜 이재운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야?”
흥미진진한 눈으로 진대원과 윤일우의 대치를 지켜보던 송진오가 놀란 목소리를 냈다. 윤일우의 페로몬에 맞서듯 진대원에게서도 날 선 페로몬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메가 페로몬이면 몰라도 같은 알파의 페로몬은 불쾌하기만 할 뿐이었다. 송진오가 손으로 코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몰랐어? 재운이 내 소유인 거. 내 눈에 띈 순간부터 재운이는 나한테서 못 벗어나는 운명이야.”
“하…….”
진대원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느꼈던 재운을 향한 윤일우의 집착을 코앞에서 목도한 기분이었다. 학창 시절 때도 그랬다.
진대원이 재운에게 필요 이상의 스킨십을 하거나, 조금이라도 의미 깊은 말을 건네면 언제나 윤일우가 진대원을 막아섰다.
“그런 놈이 왜 우리가 이재운을 따먹도록 놔두는 걸까.”
진대원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별장에서야 충격적인 장면에 휘둘려 윤일우에게 어린 시절 추억까지 꺼내 가며 얘기했지만, 윤일우의 말과 행동은 가시 덩굴처럼 꼬여 있었다.
“몸만 건드는 건 괜찮으니까. 재운이를 좋아하지 않고, 섹스에만 흥미를 가지는 건 허용 가능한 범위거든.”
윤일우가 테이블 위로 내려놨던 잔을 들어 잔 속에 남아 있던 위스키를 한 번에 목 뒤로 넘겼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뜨거움에 가느다란 눈매가 찌푸려졌다. 윤일우가 진대원을 바라보며 한 글자씩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러니까 선 넘지 마, 진대원. 어설픈 감정 따위 품어서 재운이 헷갈리게 만들지도 말고.”
“그렇게 말하니까 점점 더 오기가 생기는데.”
진대원도 윤일우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눈에 핏발이 서도록 윤일우를 노려봤다.
“진대원, 네가? 너 부모님이랑 형 새끼한테 대적할 수 있어? 별다른 배경도 없는 오메가 네 짝으로 데려갔다가는 너네 가족들이 이재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 텐데. 부모님 말에 거역도 못 하는 새끼가 입만 살았네.”
진대원의 말에 대답한 건 윤일우가 아니라 송진오였다. 송진오는 세상에서 가장 어이없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헛웃음을 지었다. 그가 돌리는 와인 잔 안에서 붉은 와인이 회오리쳤다.
굴곡진 유리잔 안에서 굴려지는 적포도주의 향이 날 선 분위기가 가득한 공간을 은은하게 물들였다.
“만약 네가 부모님 말에 반기를 들면, 나는 순애보 인정. 지금 너네 가족들한테 전화해 볼까? 오랜만에 안부 인사도 드릴 겸.”
송진오가 느릿한 동작으로 품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창백해지는 진대원의 안색을 흘낏 살핀 그가 연락처 중에서 진대원의 형 번호를 찾았다.
“우리가 살가운 친구 사이는 아니어도 서로 가족들 핸드폰 번호는 기본으로 저장하고 있잖아. 대현 형이랑 먼저 통화하고 이어서 어머님이랑 아버님한테도…….”
송진오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이 날아가 카펫 위로 떨어졌다. 허공에서 헛도는 손을 매만지며 송진오가 헛웃음을 흘렸다. 예상한 반응이었다.
“여전하네. 가족들한테 꼼짝도 못 하는 거. 이미 부모님이랑 형은 너 포기한 것 같은데 왜 너는 구질구질하게 아직도 잘 보이려고 애쓰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진정한 친구 사이라면 서로의 약점을 덮거나 감춰 주는 게 정상적이었다. 하지만 송진오는 진대원의 약점을 들쑤시는 걸 즐겼다.
“송진오,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
윤일우가 일이 더 커지는 걸 중간에서 막았다. 진대원은 송진오와 윤일우를 번갈아 노려보다가 결국 자리를 피했다.
진대원이 집을 나서는데도 아무도 그를 붙잡지 않았다. 속내를 알 수 없는 김본기의 시선만이 진대원의 등 뒤로 길게 붙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