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5/11)

4.

“수업 끝나고 바로 집으로 와. 같이 저녁 먹을 거야.”

“…….”

백팩을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현관문을 나서던 재운의 어깨가 단단한 팔에 감싸였다. 재운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족쇄처럼 어깨에 둘러져 있던 팔이 떨어져 나갔다.

현관문을 닫고 학교를 향하는 재운의 발걸음은 무거운 추라도 발목에 달린 것처럼 발바닥이 땅에 질질 끌렸다.

윤일우네 집에서 눈을 뜨고, 진대원이 방으로 찾아왔던 날 이후로 재운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일상을 이어 나갔다.

윤일우는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드물었다. 아직 스무 살밖에 되지 않는데도 그가 참여해야 하는 모임이나 행사가 분기 단위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재운은 넓은 집 안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그동안 겪었던 일들이 단편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럴 때면 재운은 밥도 먹지 않고 이불 속에 숨어들어 가 몸을 웅크렸다. 겁먹은 어린아이처럼 악몽 같은 기억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집안일을 봐주시는 가정부 아주머니가 몇 번 재운의 식사를 챙기려 들었다. 입맛이 없던 재운이 거부하자 아주머니의 얼굴은 울상이 됐다.

재운의 끼니를 챙기지 않으면 일에서 잘린다고, 애원하는 아주머니의 말 때문에 재운은 억지로 식사를 챙겨 먹게 됐다. 그러지 않았다면 재운은 지금보다도 더 말랐을 터였다.

[일우: H호텔 레스토랑 예약해 놨어. 집에 오면 옷장 안에 있는 옷들 중에 단정한 걸로 골라 입고 있어.]

재운은 겉모습만큼은 윤일우네 집에 들어가기 전보다 괜찮아졌다. 알겠다는 답장을 적는 손끝 또한 단정하게 정돈된 채였다. 윤일우의 집으로 방문해 재운의 몸을 관리해 주는 관리사 덕분이었다.

오늘은 수업 첫날이라 대부분 오리엔테이션만 간단히 하고 수업이 일찍 끝날 예정이었다.

학교에 도착해 수업이 있는 건물로 향하는 걸음이 느릿했다. 물살이 거센 계곡물을 역류해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하하호호 웃으며 지나가는 학생들 사이에서 재운은 괴리되어 있었다. 재운의 위에만 먹구름이 드리운 것처럼 표정이 유독 어두운 탓이다. 그런 재운의 뒤로 다급한 발걸음이 따라붙었다.

“이재운!”

재운의 몸이 어깨를 잡은 손에 이끌려 돌려세워졌다.

“내가 계속 연락했는데 왜 연락 안 받았어?”

함유재였다. 처음 그를 봤던 날처럼 단아한 얼굴이 재운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재운에게 왜 연락을 받지 않았냐며 서운해하는 표정에 재운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학교에 입학할 때 핸드폰 번호도 적어 냈다. 재운은 학과 단체 메신저 창에 초대된 상태였다. 윤일우도 함께였다.

전화라도 오는 것처럼 울리는 진동음에 알람을 꺼 뒀다. 학과 사람들 중에서 윤일우를 제외하고 재운에게 개인 메신저 창으로 연락을 보낸 사람은 함유재가 유일했다.

송진오에게 끌려가면서 안 좋은 모습을 그에게 보여 줬다. 함유재가 보낸 메시지에는 재운을 향한 걱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재운은 몇 번 깜박이는 커서 위에 손가락을 올렸지만, 결국 한 마디도 적어 내지 못했다.

“그날…… 괜찮았던 거지?”

재운의 안색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묻는 말에 재운은 간신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실대로 송진오에게 화장실로 끌려가 기절하도록 목구멍에 좆이 처박혔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다행이다. 강의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얼른 가자.”

“어, 어…….”

손목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확인한 함유재가 재운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재운이 듣는 수업이 뭔지 모를 텐데도 함유재는 그가 자신과 같은 수업을 듣는다는 것처럼 행동에 확신이 차 있었다.

함유재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경영관 2층에 있는 강의실 앞이었다.

강의실 2B103호.

“나 이거 듣는 거…… 어떻게 알았어?”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수업이었다. 윤일우와 같이 듣지 않는 몇 개의 수업 중 하나기도 했다.

“이거 교수님이 수업 빡세게 하잖아. 팀플 과제 많기로도 유명하고. 같은 과 애랑 같이 들으면 좋을 것 같아서 교수님한테 미리 여쭤봤거든. 경영학과 신입생 중에 수업 듣는 사람 혹시 누구 있냐고. 우리 과에서 이 수업 듣는 거 너랑 나밖에 없던데.”

재운과 달리 함유재는 학교 활동에도, 수업에도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이미 강의실 안은 학생들로 가득했다. 학생 수에 딱 맞는 강의실이 배정된 건지 비어 있는 자리도 한 군데밖에 없었다.

“저기 가서 앉자.”

재운은 별수 없이 함유재를 따라 중간 자리에 앉았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들어온 탓에 교수님이 금세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이번 학기 ‘윤리와 생활’ 수업을 맡은 김성준입니다.”

회색빛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이마 뒤로 넘긴 나이가 지긋한 교수님이셨다.

오티인데도 교수님은 바로 수업을 시작하셨다. 재운은 ‘윤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로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얘기하는 교수님의 수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다.

함유재는 열성적으로 교재에 필기까지 하면서 수업을 들었다. 재운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과 친구들의 관계가 어그러지지 않았다면 자신도 함유재처럼 지루한 수업도 집중해서 들었을까, 실없는 생각을 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잠시 딴생각을 했을 뿐인데 어느새 수업이 끝나 있었다. 교수님이 강의실을 빠져나가자마자 여기저기에서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났다.

첫날부터 이게 웬 고생이냐며 앓는 소리를 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수업도 거의 안 듣는 거 같던데. 무슨 걱정 있어?”

함유재도 필기도구를 정리하며 재운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니, 그냥…… 이런 게 대학 생활인가 싶어서.”

“수업 듣는 부분만 생각하면 고등학교 시절의 연장선이긴 하지. 이거 다음에도 수업 있어?”

“……아니.”

“그럼 같이 카페 갈래? 난 다음 수업 듣기 전까지 시간 좀 있는데. 내가 음료 살게.”

“아니야, 괜찮아.”

함유재가 좋은 아이라는 건 알지만, 재운은 누군가와 가깝게 지내는 게 꺼려졌다.

‘얘도 겉모습과 속마음이 다를지도 몰라.’

부지불식간에 든 생각이었다. 재운은 그날 이후로 모든 인간에 대한 불신이 생겨 버렸다.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미안. 나 먼저 가 볼게.”

“왜 이렇게 급해? 경영관 1층까지는 같이 내려가자 그럼.”

거기까지는 거절할 수 없었던 재운이 함유재와 걸음을 맞춰 1층으로 내려갔다. 함유재와 1층에서 헤어지고 윤일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재운이 방향을 틀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멍한 표정으로 걷다가 몇 번 사람과 어깨를 부딪혀 날 선 소리도 들었다.

집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오니 얼굴 위로 내려앉는 햇살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다 다리가 아파 시야에 들어오는 벤치에 가 털썩 주저앉았다. 책이 든 가방을 옆에 내려놓고 재운이 다리를 끌어모아 그 위에 턱을 기댔다.

“다들…… 행복해 보인다.”

청색의 교복을 입고 웃으며 걸어가는 여고생 무리부터 한 손에는 엄마의 손을, 다른 손에는 몽실몽실하게 부푼 하늘색 솜사탕을 쥐고 가는 꼬마 아이까지.

분명 같은 세상에 살고 있고, 같은 공기로 숨을 쉬며 살아가는데. 그들과 재운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놓인 것만 같았다.

눈꺼풀을 느릿느릿하게 깜박일 때마다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들이 빠르게 바뀌어 갔다.

재운은 가방 속에 넣어 둔 핸드폰에서 진동음이 울리는 것도 듣지 못했다.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격리시킨 채 시간을 죽였다.

햇살이 사그라들고, 붉은 놀이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해가 살그머니 서쪽으로 자취를 감출 때까지.

재운은 숨을 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벤치 위에 앉아 있었다.

창백한 빛을 흩뿌리는 달이 밤하늘에 걸렸을 즈음, 땅을 박차는 소리가 빠르게 재운에게 가까워졌다.

“……이재운.”

지척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재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머리에 얼음물이라도 부어진 것처럼 시간의 잠식 속에서 화들짝 깨어났다.

와이셔츠에 감싸인 널따란 흉곽이 위협적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윤일우였다.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재운과 상반되는 슈트 차림이었다.

“아, 맞아……. 시간이…….”

그제야 재운이 어둑해진 하늘을 인식했다. 분명 윤일우가 학교 끝나고 집에서 옷을 갈아입은 채 기다리라고 했는데,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지도 몰랐다.

“진짜 너는 여러모로 사람을…….”

낮게 한숨을 내쉰 윤일우가 이마 위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재운의 팔을 잡아 일으키는 손길이 거칠었다. 항상 그린 듯이 짓고 있던 미소도 사라졌다.

“미안……. 잠깐 시간을 보낸다는 게…….”

윤일우가 내건 일방적인 약속이었어도 재운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재운이 윤일우에게 끌려가면서 그의 눈치를 봤다. 이 일이 어떤 벌로 이어질지 몰라 두려웠다. 오랜 시간 찬바람에 식어 버린 몸에 오한이 들었다.

“됐어. 가서 밥이나 먹자.”

재운이 힐끗 하늘을 올려다봤다. 레스토랑은 문을 닫았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재운은 윤일우의 말에 토를 다는 대신 그를 얌전히 따라갔다. 어느새 윤일우의 손은 재운의 팔에서 미끄러져 내려가 자그마한 손을 잡은 채였다.

손가락 한 마디는 차이가 나는 것 같은 길쭉한 손가락이 재운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파고들었다.

한 몸처럼 얽힌 두 개의 손을 보는 재운의 눈동자가 달이 모습을 감춘 하늘보다도 어둑하게 가라앉았다.

* * *

“입맛에 맞아?”

“응. 맛있어.”

사실 무슨 맛인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재운은 공원에 있던 자신을 발견했을 때와 다른 분위기의 윤일우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나이프를 움직이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어린 송아지 고기로 만든 두툼한 스테이크가 선홍빛 단면을 드러냈다. 윤일우의 곁에서 지내면서 식사 예절을 눈대중으로 배운 재운이었다.

윤일우만큼은 아니어도 곧잘 흠 없는 동작으로 식사를 이어 갔다.

최상급의 고기였다. 그런데도 재운은 고기가 고무라도 되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턱을 움직였다.

“왜 자꾸 내 눈치를 봐.”

“어……?”

입맛이 없는 건 윤일우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의 접시 위에 놓인 스테이크도 처음 모습과 그다지 달라진 게 없었다.

“오늘 약속 잊은 게 미안해서 그래?”

“……응.”

예전이었다면 윤일우와 한 약속을 잊는다는 건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재운이 순순히 긍정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윤일우는 식사 예절조차 완벽했다. 그런 그가 일부러 식기를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재운이 흠칫 놀라 그를 바라봤다.

“보니까 음식도 별로 입에 맞지 않는 것 같고. 재운아, 네가 좋아하는 다른 거 먹을래?”

“다른 거라면…….”

“아래로 기어들어 와.”

“그게 무슨…….”

원형 테이블 위에는 티 하나 없이 새하얀 식탁보가 늘어져 있었다. 사람이 아래에 들어간다고 해도 엎드려서 들여다보지 않는 한 눈치채기 힘들 만큼 길었다.

“얼른.”

재운이 망설이자 윤일우가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재운을 응시하는 눈매의 끝이 굳어 들어갔다. 마치 윤일우의 말에 보이지 않는 실이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재운이 주춤거리며 테이블 아래를 기어들어 갔다. 개처럼 네 발로 기어 그에게 가는데 눈동자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잘 기어 오네. 어울린다.”

마침내 윤일우의 앞에 도달했을 때 윤일우가 재운을 내려다보며 사라졌던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눈물이 어린 눈가를 훔치는 손길이 다정했다. 재운은 눈물을 멈출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 맛있게 먹자.”

부드럽던 손길은 둥그런 뒤통수에 닿은 순간 달라졌다. 윤일우가 우악스럽게 작은 머리통을 제 고간으로 짓눌렀다.

“윽…….”

“손 쓰지 말고 입으로만 해 볼래?”

재운이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윤일우의 무릎을 짚었다. 윤일우가 재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손을 쓰지 말 것을 권유했다.

말투는 권유였지만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재운이 제 눈물로 젖어 드는 앞섶을 멍하니 바라봤다.

반항해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그게 다였다. 반복된 강간에 재운의 정신은 외줄 타기를 하는 사람처럼 아슬아슬하게 늘어진 상태였다.

다른 이면 몰라도, 윤일우에게는…… 반항할 마음을 품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벤치에 앉아 있을 때 봤던 평화로운 광경이 떠오른 건 무엇 때문일까.

근심 걱정 따위는 없다는 듯이 해맑게 웃던 얼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성별도, 나이도 다른 이들이었지만, 그들의 얼굴 위에는 재운에게 드리운 그늘이 보이지 않았다.

“버클까지만 풀어 줄게. 이건 입으로 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선심 쓴다는 듯이 버클을 푼 윤일우가 재촉하듯 재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게 신호였다. 재운은 반항하려는 의지를 모두 내려놨다. 떨리는 입술을 움직여 이 사이로 지퍼를 물고 아래로 끌어 내렸다.

입술에 닿는 감촉이 뜨거웠다. 윤일우의 성기는 왼쪽 허벅지 위로 수납되어 있었다. 고간에 숨결이 닿았을 때부터 이미 옷 위로 성기의 윤곽이 드러난 상태였다.

속옷을 끌어 내리고 기둥 아랫부분을 입술로 머금어 간신히 좆을 천 안에서 끄집어냈다.

투웅, 꺼떡이는 거대한 살덩이가 재운의 얼굴 위를 두들겼다. 선액이 흘러나와 미끌거리는 좆은 표피에 드러난 핏줄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귀두부터 잘 삼켜.”

여전히 윤일우의 손은 재운의 머리카락을 강아지 다루듯이 쓰다듬는 중이었다. 재운이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귀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우읍…….”

고작 귀두만 입안에 담았을 뿐인데도 턱이 뻐근하게 당겨 왔다. 씁쓰레한 맛이 타액과 섞여 목 뒤로 넘어갔다.

“재운이는 다 작네. 얼굴도 작고, 손발도 작고, 구멍들도 작고.”

재운이 코로 숨을 들이마시며 조금씩 살 기둥을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처음이 아니라고 곧잘 좆을 삼키는 모습에 윤일우의 입가에 어린 미소의 농도가 짙어졌다.

가느다란 눈매가 유려하게 휘어졌다. 재운이 좋아하는 윤일우의 미소였다. 윤일우는 재운에게 항상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재운이 힘들어할 때마다 곁을 지켜 줬다.

그런데 이제는 저 미소를 마주해도 예전처럼 심장이 설렘으로 두근거리지 않았다. 공백을 채운 건 체념과 두려움이었다.

먹먹한 현실에 재운이 잔상처럼 파고드는 윤일우의 미소를 지워 버리듯 눈을 감았다. 감긴 눈가를 따라 눈동자에 맺혔던 눈물이 구슬방울처럼 도르륵 흘러내렸다.

하얗던 눈가 위로 붉은 꽃잎이 떨어진 듯했다. 숨이 막혀 창백하게 질렸다, 불그스레 달아오르는 얼굴이 윤일우는 기꺼웠다.

작은 얼굴이 움직일 때마다 기다란 기둥이 야금야금 재운의 몸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읍, 읍…….”

재운이 코끝에 스치는 까슬한 음모에 헐떡거렸다. 가느다란 목이 빠듯하게 들어찬 성기 때문에 불뚝하게 튀어나왔다.

좆에 꿰뚫려 고정된 머리통 대신 마른 등이 연신 들썩거렸다.

“재운아, 입 구멍으로도 느끼는 거야? 여기 섰어.”

윤일우가 구두를 신은 발을 뻗어 재운의 고간을 꾸욱 눌렀다.

“흡, 읍, 그읍…….”

재운의 앞섶이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달고 있는 것도 좆이라고 발기하는 모양새가 귀여웠다. 성기를 뭉개듯 누르는 힘에 재운이 늘어져 있던 손을 들어 윤일우의 허벅지를 애타게 쥐었다.

“사정할 때까지 좆 빼지 마.”

흉흉할 정도로 거대한 성기는 재운이 흘린 타액으로 흥건했다. 윤일우가 손바닥으로 재운의 머리통을 지그시 눌렀다.

여전히 그의 발 한쪽은 재운의 고간을 압박하고 있었다. 재운은 좆을 목구멍에서 뱉어 내지도 못한 채 조금씩 고개를 앞뒤로 흔들었다.

윤일우는 제가 뱉은 말은 지켰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얼른 정액을 뽑아내야만 했다.

“잘하고 있어. 더 조일 수 있지?”

윤일우가 훈련받은 개를 칭찬하듯이 재운의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었다. 억눌린 신음이 토해지며 좆을 압박하는 따뜻한 점막에 느른한 한숨이 윤일우의 입술 새로 흘러나왔다.

색소가 옅은 눈동자가 정욕으로 번들거리며 어둡게 가라앉았다. 당장이라도 찢어질 듯 팽팽하게 벌어진 입가를 매만지는 손길이 폭풍의 전조 증상처럼 느릿했다. 윤일우가 감질나는 펠라에 재운의 머리통을 고정하고 그대로 허리를 처박았다.

“……그읍……! 읍, 흐읍……, 흡……!”

재운이 팔을 버둥거려도 윤일우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목구멍 안쪽을 콱콱 들이박는 귀두에 돌덩이가 목구멍을 찢는 것만 같았다.

눈물뿐만 아니라 콧물까지 흘러내리는 작은 얼굴이 엉망이 되어 갔다. 콧잔등은 음모에 쓸려 붉게 변해 있었고, 따끔거리는 통증이 번져 가는 입가는 기어코 찢어져 핏기를 비쳤다.

재운은 살기 위해 혀를 움직였다. 입안을 가득 채운 기둥에 혀를 비비며 목구멍을 강하게 조였다.

“크윽…….”

손바닥으로 단단한 허벅지 근육이 경직되는 게 선명히 느껴졌다. 목구멍을 넘어 식도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정액에 재운이 눈을 감은 채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일 초가 일 분 같았다.

“하으, 하…….”

윤일우가 천천히 재운의 입속에서 성기를 꺼냈다. 막혔던 숨이 터지자 재운이 바르작거리며 헐떡거렸다.

힘없이 늘어지는 작은 얼굴을 손안에 담은 윤일우가 감상하듯이 샅샅이 훑었다.

“역시 너는 우는 게 제일 어울려. 진짜 예쁘다.”

재운이 채 삼키지 못한 정액이 입가를 타고 침과 섞여 주르륵 흘러내렸다. 입술 양쪽에 닿은 엄지손가락에 재운의 몸이 움찔 떨렸다.

“아파?”

“아, 아니…….”

따끔거렸지만 재운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 꿰뚫렸던 그날에 비하면 지금 겪은 고통은 견딜 만한 수준이었다. 그 간극이 못내 서글펐다.

“그럼 됐어. 여기도 깨끗이 핥아 먹자. 정액 많이 먹어야지. 저녁 식사 제대로 못 했잖아.”

윤일우가 재운의 볼을 가볍게 검지로 두들겼다. 재운이 눈물 젖은 속눈썹을 들어 올려 희뿌연 흔적이 남은 성기를 바라봤다.

분명 제 입속에 사정했는데도 여전히 윤일우의 좆은 발기한 채 꺼떡거리고 있었다.

재운이 발발 떨리는 손을 들어 기둥 아래쪽을 쥐었다. 제 손목보다 두꺼운 기둥을 방금 전까지 제가 삼켰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혀를 내밀어 기둥 위에 남은 정액을 핥아 먹었다. 역겨운 맛이 입안에 맴돌아도 견딜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허망한 웃음이 흘러나올 것 같아 재운이 신발 안의 발가락이 움츠러들 정도로 힘을 줬다.

“처음보다 많이 늘었네. 그래도 여전히 서툴러.”

서투르다고 말하면서도 윤일우는 즐거웠다. 초점이 흐릿한 새까만 눈동자가 박제하고 싶을 만큼 예뻐 보여 큰일이었다.

기둥을 깨끗하게 핥은 재운이 입술을 벌려 귀두 끝에 남은 정액까지 남김없이 빨아 먹었다. 미소가 짙어지는 윤일우와 달리 재운의 표정은 공허했다. 커다란 눈동자가 블랙홀처럼 텅 비어 버렸다.

“서투르다고 해서 화났어?”

윤일우가 열이 올라 더욱 말랑말랑해진 귓불을 매만졌다. 재운은 윤일우가 짓궂게 말을 걸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좆을 깨끗하게 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정말 잘 훈련된 동물 같았다.

“잘하고 있어서 칭찬해 주는 건데.”

들려오는 대답이 없어도 윤일우는 붉어진 부위들을 한 번씩 칭찬하는 것처럼 손으로 매만졌다.

“아무리 그래도 정액이 밥이 될 수는 없지. 마저 식사하자.”

“……응.”

오랜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재운은 자리에 되돌아가 음식을 잘게 썰어 입안에 넣은 순간 쓰라린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입안도, 목구멍도 온통 헐어 있었다. 입가는 생각보다 살짝 찢어졌는지 별다른 통증이 없었지만, 음식을 삼키는 건 고역이었다.

“다른 음식으로 시켜 줄까?”

“……아니.”

자리에 앉자마자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고, 입으로 음식을 집어넣은 덕분에 접시 위는 꽤 비어 있었다.

음식을 주문하면 다시 새롭게 접시를 비워야만 했다. 그럴 바에야 지금 먹고 있는 스테이크를 다 먹는 게 더 나았다.

“이거…… 맛있어.”

“그래.”

누가 봐도 먹고 있는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윤일우는 이후로 재운이 접시를 다 비울 때까지 재운에게 말을 걸거나 새로 음식을 주문하지 않았다.

다만 재운이 음식을 삼키는 걸 무거운 눈길로 살필 뿐이었다.

* * *

“우우욱…….”

윤일우와 레스토랑에서 함께 사는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재운은 결국 먹었던 음식을 죄다 변기 물 위로 쏟아 냈다.

혹시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 나갈까 봐 세면대에 물까지 틀어 놓았다. 배 속이 쥐어짜질 때마다 재운의 눈가에 눈물이 비쳤다.

“흐윽, 욱…….”

멀건 위액이 나오는 순간까지 재운이 변기를 붙들고 버텼다. 레버를 내리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세면대에 섰다.

“진짜 엉망이다, 나…….”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창백한 낯빛이 자국 하나 없는 매끈한 거울 표면에 비쳤다. 재운이 거울을 보던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입안을 헹구고 식은땀에 푹 젖어 있는 몸을 씻는 데만도 한참 시간이 걸렸다.

내일은 윤일우와 하루 종일 함께 수업을 듣는 날이었다. 재운이 고등학교 내내 꿈꿨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재운은 지금 내일이 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윤일우가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몰라 불안했다. 차 안에서도, 레스토랑 안에서도 윤일우는 남들이 언제든지 들이닥칠 수 있는 장소에서 재운을 무너뜨렸다.

재운은 이러다가 어느 순간 윤일우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에게 좆을 쑤셔 박을까 봐 두려움에 젖었다.

“제발…… 그러지 마, 일우야…….”

윤일우가 자신을 안는 건 버틸 수 있었다. 어차피 재운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윤일우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일 따위는 없을 테니까.

진대원을 비롯한 다른 이들까지도 괜찮았다. 이미 별장에서 그들에게 못 볼 꼴을 다 보이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제 모습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들키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재운이 오들오들 떨리는 몸을 이끌고 침대 속으로 굴을 파는 두더지처럼 파고들어 갔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눈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시트 한편을 짙은 빛깔로 물들였다.

* * *

“재운아, 안녕.”

“아, 안녕…….”

재운은 강의실 안으로 들어서다가 자신을 보고 환하게 인사하는 함유재를 마주쳤다. 재운이 반사적으로 등 뒤를 돌아봤다.

“벌써 친해진 친구가 있었구나.”

재운의 뒤를 따라 들어오던 윤일우의 입가에 다정한 미소가 어렸다. 그러나 색소가 옅은 눈동자는 새벽녘의 공기보다도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냥…… 몇 번 인사한 거야.”

재운이 저도 모르게 변명하듯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재운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함유재는 재운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혹시 어디 안 좋은 거야? 안색이…….”

“재운이는 누가 자기 몸에 손대는 걸 별로 안 좋아해.”

“……처음 보는 얼굴인데. 너도 경영학과야?”

자연스럽게 재운의 이마를 향해 뻗어 가는 손을 막은 건 윤일우였다. 함유재가 손목에서 느껴지는 압력에 이를 악물고 윤일우를 마주 바라봤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시선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눈앞의 남자애가 알파이고, 알파들 중에서도 능력이 출중하다는 걸.

맞닿은 살갗을 타고 윤일우의 페로몬이 함유재의 몸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같은 알파의 페로몬은 느끼는 것만으로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짙은 알파의 페로몬이 몸속으로 스며들자 함유재는 술을 진탕 마시고 지독한 숙취에 시달릴 때처럼 속이 메스꺼워졌다.

“응. 윤일우야. 네 이름은?”

“……함유재.”

“그래, 함유재. 앞으로 재운이한테 말 거는 건 좀 삼가 줬으면 좋겠다. 우리 재운이가 낯가림이 좀 심해서.”

우리 재운이.

다정한 호칭인데 함유재는 울렁거리는 속만큼이나 등골을 타고 흐르는 소름에 어깨를 떨었다. 윤일우의 말투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러나 함유재는 잘 꾸며진 무언가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가자, 재운아.”

“으, 응…….”

윤일우가 자연스럽게 재운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강의실 뒤편으로 이끌었다.

그가 강의실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강의실 안에 자리잡고 있던 애들의 이목이 윤일우를 향해 쏠렸다. 더불어 재운과 함유재한테까지.

“야, 너 괜찮냐?”

함유재와 몇 번 술자리를 가지고 부쩍 친해진 이동민이었다. 팔목을 매만지는 함유재의 어깨를 툭 치는 행동에 떨떠름한 감정이 묻어났다.

“어.”

“팔목 멍 들 것 같은데. 쟤 진짜 뭐냐?”

이동민이 인상을 찌푸리고 윤일우를 힐끗거렸다. 그의 말대로 함유재의 팔목에는 짙은 손자국이 나 있는 상태였다.

지금은 붉은빛으로 약간 부어오른 정도지만 시간이 흐르면 멍으로 변질될 기세였다.

함유재의 가라앉은 시선은 어느새 재운의 귓가에 대고 제게는 들리지 않는 말을 속삭이는 윤일우에게 닿아 있었다.

“교수님 들어오신다. 자리에 앉자.”

이동민이 앞문을 열고 들어오는 교수님을 보고는 함유재의 팔을 잡아끌었다. 함유재는 그가 맡아 놓은 자리로 향하면서도 다정해 보이는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재운아.”

“응…….”

“내가 없는 동안 학교생활이 엄청 즐거웠나 봐.”

“…….”

귓가에 진득하게 달라붙는 목소리는 다정한 음률을 띠고 있었다. 그런데도 재운은 귓가를 타고 번지는 소름에 추운 사람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함유재라…….”

“진짜로 쟤랑 아무 사이 아니야. 정말이야…….”

함유재의 이름을 곱씹는 윤일우의 목소리가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좋지 않은 예감에 재운이 윤일우의 손을 잡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글쎄.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윤일우가 재운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싸 안고 볼을 쓰다듬었다. 희미한 상처가 남은 입가를 스윽 훑는 눈길이 시렸다. 색소 옅은 눈동자에 비치는 제 모습에 재운이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함유재가 놀라서 다가왔던 게 이해가 갔다. 그만큼 정신이 어디 하나 나간 듯한 얼굴이 보였다.

재운은 수업 시간 내내 긴장감에 숨조차 편히 쉬지 못했다. 교수님이 쉬는 시간을 줬을 때에도 움직이지 못했다. 윤일우가 돌발 행동을 하지 않기만을 바라며 그의 팔을 꼭 붙들었다.

다행히 윤일우는 함유재에게 이후 어떤 관심도 내비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도 교수님을 보는 시간보다 재운을 살피는 시간이 길었다.

마침내 수업이 끝나고 함유재가 동기들과 함께 강의실을 나섰다. 그제야 재운이 뭉쳐 있는 어깨를 식은땀으로 축축한 손을 들어 주물렀다.

“어깨 아파?”

“……그냥 조금.”

커다란 손이 재운의 어깨에 닿았다. 적당한 압력으로 재운의 근육을 풀어 주는 손길에 새까만 눈동자가 슬픈 빛으로 가라앉았다.

윤일우가 이런 행동을 할 때마다 별장에서 있었던 일들도, 이후에 벌어진 일도 제 착각이 아닐까 하는 헛된 상상에 사로잡히고 만다.

“송진오네.”

한 손으로는 재운의 어깨를 주무르고,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낸 윤일우가 문자를 확인했다.

무감정하게 굳어 있던 입매가 문자 내용을 읽어 내려가며 둥글게 휘어졌다.

“재운아, 가자.”

“어, 디를……?”

윤일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재운의 팔을 잡아끌었다. 재운이 좋지 않은 예감에 허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그러나 윤일우가 손에 힘을 줘 재운의 몸을 들다시피 해서 일으켜 세우는 바람에 그대로 끌려 나갔다.

“송진오 있는 강의실. 의대 쪽에 폐강의실이 있나 봐.”

폐강의실이라는 단어가 귓가를 아프게 파고들었다. 고등학교 때처럼 빈 교실에서 담화를 나누자는 의미가 아닐 터.

“일우야, 제발…….”

“왜?”

“나 하기 싫어…….”

재운이 울먹이며 고개를 저었다. 폐강의실에 가서 뭐를 하자고 할지 듣지 않아도 예상이 갔다. 어떻게 해서든 다가올 상황을 피해야만 했다.

“하다 보면 너도 좋아질 거야.”

“으윽…….”

두 사람의 걸음은 강의실 중앙에서 멈춰 있었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없는 빈 강의실에 알파의 페로몬이 가득 퍼져 나갔다. 성적인 의미를 다분히 담고 있는 페로몬은 눈앞에 있는 오메가의 몸을 금세 달아오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뜨겁고 건조한 사막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재운이 뻐끔거리며 액을 토해 내기 시작하는 구멍에 달뜬 얼굴로 희미한 신음만 흘렸다.

“여기서 할래, 아니면 송진오 있는 데로 갈까?”

강의실은 현재 문이 닫힌 상태였다. 하지만 문 옆에 난 창문으로 복도를 지나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재운이 체념하듯이 고개를 숙였다. 반항이란 부질없다는 걸 매 순간 깨달아 갈 때마다 마음이 부서져 내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짓씹어 붉어진 입술 사이로 자그마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송진오 있는 데.”

“그래. 잘 생각했어.”

윤일우가 부풀어 오른 재운의 고간을 내려다보며 생긋 웃었다. 재운은 윤일우의 손에 이끌려 주춤거리는 발걸음을 이어 갔다.

가방을 내려 부자연스럽게 부푼 고간을 가리느라 걸음이 늦춰졌다. 윤일우는 재촉하는 대신 재운의 팔목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손목에 이는 뻐근한 통증도 욱신거리는 가슴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한참 동안 걸은 후에야 낡은 경첩이 어긋나는 소리가 귓가에 맺혔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기다리다가 목 빠지는 줄 알았잖아.”

송진오가 있는 장소는 의과 대학 건물에서도 지하에 위치한 강의실이었다. 학생들이 사용하지 않는 공간인지 책상과 의자가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책상 위에 부옇게 쌓인 먼지는 손가락으로 훔치면 손끝이 회색빛으로 물들 정도였다.

“수업은 안 듣고 이런 곳만 찾아 돌아다녔나 봐.”

“선배 새끼 한 명이 기강 잡겠다고 좆같은 심부름을 시키잖아. 그러다 발견했지.”

송진오가 책상 위에 걸터앉아 발을 까딱거렸다. 덜덜 떨고 있는 재운을 위아래로 훑는 시선에 서서히 열기가 맺혔다.

송진오는 가끔 재운을 볼 때마다 속이 체기라도 든 것처럼 답답했다. 진대원과 김본기하고는 곧잘 얘기하면서 자신의 앞에서는 주눅 든 모습을 보여 줄 때마다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재운이 떠는 모습을 보자 다른 반응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하복부에 피가 몰렸다.

먼지가 가득한 강의실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면서 그동안 재운과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곱씹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데도 묘하게 가슴이 설렜다.

재운의 입을 억지로 벌려 제 좆을 처박을 때의 감각을 떠올렸을 때는 좆이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윤일우, 오늘은 멈추라고 하지 말아라. 그러면 진짜 돌아 버릴 것 같으니까.”

송진오가 책상에서 내려와 재운을 향해 큰 보폭으로 걸어갔다. 윤일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둘을 살피더니 의자 하나를 꺼내 기대앉았다.

품에서 담뱃갑을 꺼낸 윤일우가 입으로 담배 하나를 물고 라이터를 켜 불을 붙였다.

“담배…… 폈어?”

재운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윤일우가 담배를 물고 있는 장면은.

“넌 처음 보나? 핀 지 얼마 안 되기는 했지.”

윤일우는 말없이 볼이 홀쭉 패도록 담배 연기를 머금었다 입술 새로 흘려보냈다. 부옇게 번지는 연기 너머 흔들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재운을 감상하면서.

송진오가 재운의 말에 대신 대답하고 재운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냥 담배 아니고 페로몬 억제 담배야.”

“아…….”

재운을 비어 있는 책상에 엎드리게 한 송진오가 친절히 부연 설명까지 해 줬다.

형질인들 중에서 페로몬 조절이 미숙한 이들이 주로 피는 담배였다. 윤일우는 페로몬 조절이 능숙하면서도 어느 날부터 담배를 입에 대기 시작했다.

“흐……. 자, 잠깐만…….”

“내가 지금 좀 급하니까 우리 좋게 좋게 가자.”

딱딱한 책상에 배가 눌리기도 잠시. 아래가 휑한 감각에 재운이 놀라 바르작거렸다.

재운이 입고 있던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밑으로 끌어 내린 송진오가 알파 페로몬을 풀며 볼깃살을 벌렸다.

“뭐야? 벌써 젖어 있잖아. 이재운 너 진짜 시도 때도 없이 발정 나냐?”

구멍을 적실 생각으로 페로몬을 푼 거였다. 그런데 이미 재운의 입구는 촉촉하게 젖은 상태였다.

“윽…….”

송진오가 푸욱 소리가 날 정도로 손가락 두 개를 곧장 구멍 속에 찔러 넣었다. 손가락 두 개도 꽉 조이며 들러붙어 오는 내벽의 감촉에 목덜미에 소름이 일었다.

“너 진짜 명기는 명기인가 봐.”

송진오는 칭찬한 거였지만 재운에게는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재운이 팔을 뒤로 뻗어 송진오의 손을 밀어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면서도 끌려왔다. 하지만 윤일우가 아닌 다른 이에게는 여전히 몸을 벌리는 일이 끔찍하고도 버거웠다.

“반항하지 말라니까. 귀찮게.”

한쪽 눈썹이 스윽 올라간 송진오가 구멍 속에서 손을 빼내고 입고 있던 셔츠를 벗었다. 매끄럽게 잘 짜인 근육이 그가 움직일 때마다 어둑한 실내에서도 선명하게 맥동했다.

재운의 팔을 뒤로 모아 셔츠로 묶는 손길이 거침없었다. 한데로 모인 팔목이 희게 질리도록 셔츠에 속박됐다.

“흐, 아……. 제발……. 하지 마…….”

재운이 움직일 수 없는 팔 대신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나 허벅지 안쪽을 가르고 들어온 단단한 몸체에 그마저도 막히고 말았다.

“웬만하면 피 안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와서야.”

혀를 쯧 찬 송진오가 완전히 발기해 쿠퍼액을 뚝뚝 떨어뜨리는 성기를 꺼내 들었다. 손가락 두 개도 간신히 머금었던 구멍이었다.

애액이 흘러나오고 있어도 이대로 좆을 처박으면 찢어질 게 분명했다.

그러나 송진오는 망설이는 대신 쿠퍼액으로 번들거리는 귀두를 구멍 입구에 대고 맞췄다.

다가올 고통을 아는 재운이 눈을 홉뜬 순간이었다. 커다란 귀두가 닫혀 있는 입구를 인정사정없이 벌리며 파고들었다.

“아, 아아……!”

재운이 먼지가 가득한 책상 위에 이마를 비볐다. 식은땀이 배어나는 이마가 책상에 쓸려 벌겋게 부어올랐다. 밑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이마는 별다른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움직이지 말라니까.”

재운이 필사적으로 송진오에게 멀어지기 위해 몸부림쳤다.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손끝이 애처롭게 떨렸다. 송진오가 재운의 골반을 쥐고 그대로 허리에 힘을 줘 뚫었다.

“…….”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재운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고환만 남기고 좆을 끝까지 처박은 송진오가 성기를 조여 오는 힘에 잠시 숨을 골랐다.

“좆 끊어지겠다, 재운아.”

커다란 손이 재운의 뒤통수를 강하게 두들겼다. 그때마다 충격에 들렸던 작은 머리통이 책상을 향해 푹 꺾였다.

송진오의 손길에는 제 아래에 깔린 이에 대한 존중은 한 톨도 묻어나지 않았다.

“피 나잖아. 그러니까 말 좀 잘 듣지 그랬어.”

핏기가 비치는 입구에 송진오가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하얀 볼깃살이 흔들리도록 두어 번 때린 후 성기를 귀두선까지 끄집어냈다.

주욱 딸려 오는 붉은 속살이 나가지 말라는 듯 보채는 것만 같아 입가에 어린 미소가 짙어졌다.

“흐, 윽…….”

재운은 상체만 간신히 책상에 걸친 상태였다. 송진오가 무자비한 힘으로 허리를 처박는 바람에 그의 몸과 책상 사이에 눌린 배에 끔찍한 통증이 일었다.

눈조차 제대로 감지 못해 홉뜬 흰자위의 실핏줄이 터져 나갔다. 붉어진 눈동자 가득 담긴 눈물이 책상 위로 방울져 떨어져 내렸다.

송진오가 알파 페로몬을 풀어 줘도 재운의 성기는 쪼그라든 상태 그대로였다.

애액도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재운이 고통을 크게 느끼는 탓에 양이 많지 않았다. 거대한 좆이 뻑뻑한 안쪽을 비집고 들어갔다.

“진대원이 왜 그러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재운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속궁합이 최고였다. 송진오가 쫀득쫀득하게 성기의 표피를 감싸 오는 속살에 느른한 한숨을 뱉어 냈다.

“윽, 으, 흑, 아, 흐…….”

쾌감이라고는 없는 억눌린 신음이 송진오의 허리 짓을 따라 흘러나왔다. 고통에 깨문 입술 위로 붉은 핏방울이 꽃술처럼 맺혀 들었다.

재운이 뿌연 연기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윤일우를 시야에 담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금 제게 벌어지는 일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눈물이 흘러내려 잠시 시야가 맑게 개도 연기에 휩싸인 윤일우의 얼굴은 희미하기만 했다. 그 사실이 못내 안타까워 신음 사이로 구슬픈 울음 소리가 섞여 들어갔다.

‘……무슨 생각해?’

‘글쎄.’

재운의 의식이 현재 있는 공간 위로 무의식 중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지금처럼 그날도 교실 안에는 어둑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껴 있고 하늘이 찢어진 것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체육 시간인데도 윤일우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창밖만 바라보는 얼굴이 음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재운은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애들이 실내 강당으로 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윤일우의 곁에 남는 걸 선택했다. 선생님한테 혼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윤일우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너도 들을래?’

‘……응.’

재운은 윤일우가 건네는 이어폰 한쪽을 조심스럽게 귀에 꽂았다.

‘어……?’

하지만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윤일우가 창문에서 시선을 떼고 재운을 바라본 건 그때였다.

어둑한 하늘보다도 더 그늘이 졌던 얼굴에 흐린 날씨가 개듯 환한 미소가 어렸다.

‘놀라서 눈 동그래진 것 봐.’

재운이 귀엽다는 듯 머리를 흐트러트린 윤일우가 재운을 바라보며 책상 위로 엎드렸다. 길쭉한 손가락이 제 옆 책상 위를 톡톡 건드렸다.

재운도 윤일우를 따라 그를 마주 보는 채로 책상 위에 고개를 기댔다. 재운을 눈동자에 담은 채 눈만 깜박이던 윤일우가 입을 연 건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뒤였다.

‘……나는 비 오는 날이 정말 싫어.’

‘……왜?’

윤일우는 대체적으로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었다. 그런 윤일우가 무언가를 대놓고 싫어한다고 말하는 건 낯선 일이었다.

재운의 조심스러운 물음에도 윤일우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재운은 창밖에 내리는 비가 윤일우의 눈동자 속에서도 내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비 오는 날이 좋아?’

한참 후에 윤일우가 한 말은 온점이 아닌 물음표가 담긴 말이었다. 재운은 그 말에 곰곰이 지난 삶을 돌이켜 봤다.

비 오는 날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보육원에서 비 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실내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러면 유독 얌전히 있는 재운은 괴롭힘의 대상이 됐다.

천둥 번개가 강하게 치는 날은 우는 아이들이 많아 귓가가 따가운 적도 많았다. 재운은 큰 소리가 날 때 두려움보다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의 이목이 다른 곳으로 쏠려서였다.

‘나도…… 비 오는 날 싫어해.’

‘나랑 같네.’

재운의 대답에 윤일우의 눈매가 서서히 곡선을 이루며 휘어졌다.

싫어한다고 한 대답과 달리 재운은 그날, 윤일우의 미소가 마음에 남았다. 비 오는 날마다 유달리 약해 보이던 그날의 윤일우가 떠올랐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재운의 마음속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칠 날이 올까 싶을 만큼 쏟아져 내리는 비에 재운이 힘없이 눈을 감았다.

자신을 속을 알 수 없는 눈길로 바라보기만 하는 윤일우도, 쾌락에 취해 범하는 송진오도 모두 재운이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하아……. 이재운, 기절했냐?”

차오르는 사정감에 허리를 빠르게 털어 대며 송진오가 재운의 안에 정액을 한가득 싸질렀다.

처음에는 반항하듯이 바르작거리던 움직임이 어느 순간부터 고요해졌다.

좆이 틀어박힐 때마다 억눌린 신음은 흘렸지만 그마저도 옅어지고 있었다.

송진오가 재운의 몸 위에서 일어났다. 한껏 벌어졌던 구멍 속에서 빠져나온 좆을 따라 뿌연 실이 이어졌다 끊어졌다.

한 번씩 박을 때마다 단단한 뼈에 부딪힌 하얀 엉덩이는 붉어진 지 오래였다. 엉덩이보다 더욱 부어오른 구멍을 바라보는 송진오의 눈동자가 탁하게 흐려졌다.

“윤일우, 너 안 할 거면 나 한 번 더 한다.”

송진오가 손쉽게 재운의 몸을 뒤집었다. 엉덩이와 달리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기절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재운은 의식이 있었다. 다만 모든 걸 체념한 듯이 생기가 없을 뿐.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도 송진오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는 재운의 몸을 책상 위에 툭 얹었다.

송진오가 재운의 오금 아래 팔을 집어넣어 재운의 몸을 반으로 접다시피 했다.

끼익, 끼이익, 송진오가 재운에게 달라붙을 때마다 책상이 삐걱거리며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초점이 나간 시선이 강의실 천장 어딘가를 부유했다.

어둑한 실내에 적응된 탓에 격자무늬가 몸이 흔들릴 때마다 어지럽게 시야에 박혀 들었다.

내벽 안쪽이 쾅쾅 짓눌리면서 몸에 오한이 들었다. 접합부에서는 물기에 젖은 소리가 나며 송진오의 좆을 안쪽으로 계속해서 끌어당겼다.

어느새 고통은 쾌락으로 변모해 갔다. 재운의 입술에서는 달뜬 신음이 반사적으로 흘러나왔다. 의지와 상관없는 본능이었다.

“으응, 흥, 흐응…….”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온몸을 내리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내벽 가득 들어차는 성기가 무거웠다. 그런데도 좆이 몸속 어딘가를 건들 때마다 야릇하게 번져 나가는 쾌감이 이질적이었다.

다만 구멍이 찢어진 탓에 따끔따끔한 통증이 간헐적으로 느껴졌다.

그럴 때면 재운은 이성이 돌아오려고 해 재차 정신을 놓았다. 허공에서 흔들리는 제 다리를 멀거니 바라봤다.

엉덩이 사이의 골이 송진오가 입고 있는 옷에 아프게 쓸려도 그 아픔조차 희미하게 다가오도록.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던 무의미한 시간이 멈춘 건 송진오가 재운의 목을 향해 손을 뻗으면서였다.

“시체 안는 것도 아니고. 정신 제대로 안 차려?”

재운이 정신을 놓고 있어도 쫀득하게 달라붙어 오는 점막의 감촉은 여전했다. 다만 퀭한 눈동자에 송진오는 불쾌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재운의 합의 없이 하는 행동인 건 알지만 좆이 쑤셔지는데도 자신을 담지 않는 눈동자가 괘씸했다.

“커윽…….”

목이 졸리고 나서야 새까만 눈동자가 송진오에게 향했다. 절박하게 떨리는 눈동자에 송진오가 그제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그렇게 쳐다봐야지.”

“컥, 그윽, 윽…….”

숨이 막히자 재운이 온몸을 바르작거렸다. 송진오가 보기에는 마치 신발 밑창에 짓눌린 벌레가 몸부림을 치는 듯한 하찮은 움직임이었다.

이미 짓무른 눈가를 따라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렸다. 숨이 막히는 통에 반사적으로 구멍에 힘이 들어갔다. 송진오는 괴로워하는 재운과 달리 어느 때보다 만족하면서 구멍을 들쑤셨다.

“그만.”

“윤일우.”

고삐가 풀린 망아지처럼 거침없던 송진오의 행동은 팔목을 부러뜨릴 기세로 조여 오는 힘에 멈추고 말았다.

“콜록, 콜록, 콜록…….”

막혔던 숨이 트이자 재운이 몸을 둥글게 막았다. 기침을 할 때마다 비릿한 맛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송진오의 좆이 빠져나간 구멍이 뻐끔거리며 정액을 질금질금 토해 냈다.

메마른 핏자국이 정액과 뒤섞여 분홍빛으로 물들어 갔다.

“계속 관음하고 있지 왜 방해하고 난리야.”

송진오의 인상이 매섭게 찌푸려졌다. 사정하기 직전에 빠져나온 좆은 정액으로 뒤덮인 채 꺼떡이고 있었다.

여전히 윤일우의 손은 송진오의 팔목을 거세게 쥐고 있는 상태였다. 정말로 부러뜨릴 작정인지 점점 강해지는 힘에 송진오가 이를 악물었다.

“내가 정도 이상으로 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일그러진 송진오의 얼굴과 달리 윤일우의 표정은 평온했다. 다만 재운의 목을 가리키는 그의 눈짓에는 서늘함이 스며들어 있었다.

“너 진짜 머리 어떻게 된 거 아니냐? 애초에 구멍 찢으면서 박을 때부터 평범한 섹스가 아닌 거 몰라? 아까는 가만히 있더니 왜 지금 와서……!”

“재운이 목 조르지 마. 마지막 경고야.”

송진오의 항변에도 윤일우는 이전에도 했던 경고를 다시 꺼내 들었다.

“대답.”

“씨발…….”

심상치 않은 통증이 느껴지는 팔목에 송진오가 결국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제야 윤일우가 송진오의 손을 놓고 재운을 향해 다가갔다.

“재운아.”

“…….”

기침이 멎은 후로도 재운은 둥글게 만 몸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숨소리까지 끊어질 듯하게 줄여 나갔다.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하는 공간 속으로 숨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제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져나간 좆 대신 몸을 잠식한 오한에 머릿속마저 뒤엉켰다.

“멍 들겠네. 집에 가서 치료해야겠다.”

붉게 부어오른 목 위로 윤일우의 손끝이 닿았다. 상처를 따라 쓸어내리는 손이 떨어진 건 그다음이었다.

재운이 제 몸에 닿은 윤일우의 손을 피하기 위해 몸을 틀어서였다. 붉어진 눈동자로 윤일우를 바라보는 재운의 얼굴에는 쓰라린 고통이 알알이 맺혀 있었다.

“너는 정말…… 미쳤어.”

잔뜩 쉰 목소리로 재운이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자신을 송진오에게 끌고 와 개처럼 던질 때는 언제고, 눈앞에서 죽는 건 보기 싫은 사람처럼 구해 주는 행동에 진절머리가 났다.

“나도 알아. 계속 미쳐 있었거든.”

재운의 날 선 말에도 윤일우는 눈매를 곱게 접어 웃어 보이기만 했다. 다른 이에게는 좀처럼 비치지 않는 미소도 재운의 앞에서만큼은 남발하듯이 보였다.

재운은 한때는 그게 자신이 소중해서 그런 거라고 착각했다. 과거의 자신이 우스워 견딜 수가 없었다.

“아파서 기분이 많이 안 좋구나.”

“만지지 마……!”

윤일우가 재운의 옷매무새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팔을 묶고 있던 셔츠도 풀어냈다. 잔뜩 구겨진 옷 위에는 핏방울과 정액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휑하던 하체는 옷에 감싸였다.

재운이 남은 힘을 끌어모아 윤일우의 손을 밀어내도 소용이 없었다. 윤일우는 묵묵히 재운에게 옷을 입힌 후 그를 안아 들었다.

“송진오, 다음에 보자.”

“……너랑 대화가 통하는 게 이상하지.”

송진오의 눈빛에도 어처구니없다는 감정이 가득했다. 비릿한 정액 냄새와 페로몬이 얽힌 공간 속에서 윤일우만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 같았다.

“놔……. 놔줘…….”

윤일우에게서 벗어날 수 없자 재운이 울부짖었다. 탁하게 쉰 목소리가 구슬픈 울음을 토해 냈다.

“계속 울면 열나. 그만 울어.”

윤일우가 부드럽게 재운의 몸을 어르며 차가 주차된 공간으로 향했다. 교정을 오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닿았다.

재운이 흠칫 놀라 윤일우의 품속에 얼굴을 기댔다. 여전히 제 몸에는 색사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었다.

얌전해진 재운이 기꺼웠던 윤일우가 재운의 머리카락에 입술을 붙였다. 다정한 입맞춤에도 재운은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처럼 몸을 떨었다.

윤일우가 조수석 문을 열고 재운을 눕혔다. 하체에서부터 번지는 찌르르한 통증에 재운이 이를 악물었다.

“많이 힘들면 눈 좀 붙여.”

“…….”

윤일우의 말에도 재운은 침묵을 고수했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손이 얼굴로 내려와 충혈된 눈을 가렸다.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속눈썹의 움직임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윤일우는 재운의 얼굴을 덮은 채로 오래도록 기다렸다.

반항해 봤자 부질없다는 걸 재운이 깨닫고 나서야 재운의 눈이 완전히 감겼다.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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