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7/11)

6.

“……재운아.”

재운은 강의실 문을 열기도 전에 등 뒤로 다가온 인기척을 느꼈다.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어 귓가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왔다.

“……먼저 들어가 볼게.”

오랜만에 보는 함유재였다. 하지만 재운은 그가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리를 피했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 왁자지껄한 애들 사이를 걸어갔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학교를 나오지 못했다.

다들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를 나누면서도 한결 수척해진 상태로 나타난 재운을 힐끔거렸다.

몸에 닿아 오는 시선에 작은 벌레들이 몸 위를 기어가는 것만 같았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졌다. 이미 상처투성이인 입술을 재운이 잘근잘근 씹었다.

‘쟤 몸에서 정액 냄새 나지 않냐?’

‘더러운 오메가 새끼.’

‘한번 박아 보고 싶다.’

현실인지 환청인지도 구분되지 않는 소리들이 어지럽게 귓속에 박혀 들어왔다.

재운의 걸음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땅바닥을 향해 휘청거렸다. 구석에 남은 빈자리로 걸어가는 길이 유독 길게만 느껴졌다.

가능하다면 세상에서 제 존재를 지워 버리고 싶었다. 죽을 용기조차 없어 어떻게든 다시 일상을 이어 가려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동기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속닥거림에 재운의 등이 식은땀으로 푹 젖어 들어갔다.

“……부축해 줄게.”

“만지, 지 마…….”

의자를 두어 걸음 앞두고 재운의 무릎이 꺾였다. 바닥에 닿기도 전에 커다란 손이 재운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잘게 떨리는 재운을 다독이듯 함유재의 페로몬은 따뜻하기만 했다. 그런데도 재운은 굳게 닫혀 있던 구멍이 움찔 떨려 그의 손을 떼어 냈다.

몸이 완전히 망가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이래서야 평범한 일상생활은 할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시도 때도 없이 알파의 페로몬에 발정하는 오메가. 어쩌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사방이 막혀 있는 독방이 아닐까.

“……미안. 앉는 것까지만 도와줄게.”

이를 악문 재운이 재차 함유재의 손을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한번 힘이 빠진 몸은 의지에 반응하지도 않고 제멋대로였다.

결국 재운은 함유재가 자신을 어린아이 다루듯 의자에 앉혀 주는 걸 가만히 받아들였다.

“다들 자리에 앉으세요.”

강의 시간에 맞춰서 들어온 터라 교수님이 금방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함유재는 자연스럽게 재운의 옆자리에 앉았다. 다만 재운의 몸에 몸이 닿지 않을 만큼 책상을 살짝 띄웠다.

재운이 무릎 위에 놓인 주먹에 힘을 줬다. 오한이라도 든 것처럼 몸이 계속 떨려 의자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이재운 학생, 이제 몸은 좀 괜찮은가?”

“네, 네…….”

윤일우는 재운이 교통사고가 난 걸로 처리했다. 근 한 달이 지나 나타난 학생을 바라보는 교수의 눈동자는 적당한 연민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재운은 그런 교수의 시선에도 벌벌 떨며 간신히 대답을 했다. 고작 대답 하나 했을 뿐이다.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린 식은땀이 주먹 쥔 무릎 위로 떨어져 내렸다.

수업을 한 달이나 빠진 대가는 컸다. 재운은 교수님이 스크린에 띄워 강의를 하는 내용을 귀담아들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낯선 외국어를 듣는 것처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지럽게 머릿속을 유영하는 정보들에 재운이 눈을 내리깔고 호흡을 골랐다.

“이거. 그동안 강의 내용 정리한 노트야.”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건 함유재도 같았다. 함유재는 재운을 살피다가 스프링 노트 한 권을 건넸다.

“……괜찮아.”

“교수님이 강의 자료로도 올려 주지 않으셨어. 강의 시간에만 얘기해 주신 것들이야. 교재 보는 것만으로는 수업 진도 따라잡기 쉽지 않아.”

이어지는 함유재의 말에 재운이 아랫입술이 희게 질리도록 깨물었다.

옥상에서 진대원에게 강간을 당하는 걸 들킨 이후로 재운은 함유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함유재도 알파였으니 친구들과 같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을 발정 난 오메가 취급하면서 경멸 어린 시선으로 볼 거라고 예상하며 학교에 왔다.

재운이 용기를 내 고개를 들었다. 어렵게 시선을 맞춘 눈동자에는 자신을 경멸하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 재운은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울지 마, 재운아.”

소리 없이 굵은 눈물방울만 뚝뚝 떨어뜨리는 재운의 모습에 함유재가 안절부절못했다. 서둘러 가방을 뒤져 티슈를 재운에게 건네 봐도 재운은 미동도 없이 눈물만 흘렸다.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까지 과제 제출하는 거 잊지 마세요.”

두 사람은 강의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서로에게 시선을 둔 채 굳어 있었다. 시간이 가위로 잘린 것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함유재, 안 일어나냐?”

“……먼저 가.”

“그래.”

함유재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온 동기를 돌려보내고 재운을 살폈다. 재운은 교수님이 인사말을 한 이후로 정수리가 보이도록 고개를 숙였다.

뼈마디가 두드러지도록 힘준 주먹 위를 타고 투명한 물줄기가 연이어 흘러내렸다.

“다들 갔어. 고개 들어도 돼.”

함유재는 강의실이 조용해지고 나서야 무겁게 입을 뗐다. 하지만 재운은 함유재의 말에도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버텼다.

“재운아, 그때 옥상에서 본 거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다만…….”

함유재의 목소리 끝이 가늘게 떨렸다. 함유재는 아직도 그날과 관련된 꿈을 꾼다.

어떨 때는 재운에게 좆을 쑤셔 박고 있는 게 자신일 때도 있었다. 눈을 뜨고 축축해진 속옷을 발견하고 나면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너…… 원해서 그 애들하고 섹스하는 거 아니지?”

드디어 재운이 고개를 들었다. 황망해하며 자신을 보는 재운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함유재가 착잡한 심정을 감추기 위해 경직된 입매를 느슨하게 풀었다.

“혹시 협박당하는 거야?”

“아…….”

눈물로 얼룩진 채 흔들리는 눈동자는 자신의 질문에 긍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도와줄게.”

“그런, 거 아니야…….”

함유재가 용기를 내 재운의 손등을 감싸 안았지만, 재운이 손을 비틀어 피했다.

순간 함유재한테 제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었다.

재운의 세상은 윤일우가 전부였고, 윤일우를 통해 알게 된 친구들이 다였다.

그랬기에 그들에게 성적으로 착취당하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들이 처벌받는다고 해서 재운이 행복할 리가 없었으니까.

그저 언젠가는 자신에게 질려서 놓아주기만을 바라는 게 재운이 원하는 전부였다.

“이런 말 하는 거 부끄러운데……. 우리 집에 돈이 좀 많아. 재운이 너 한 명 숨겨 주는 거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야.”

도망.

재운은 함유재의 말을 들으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에 눈을 질끈 감았다.

병실에서 윤일우에게 좆이 박히다가 기절했다. 나아지고 있던 뇌진탕이 심해져 재운은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만 했다.

의사가 퇴원해도 된다고 말한 이후로 처음 오는 학교였다. 윤일우는 내심 재운이 학교에 가는 것도 바라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재운은 이미 난도질당했다고는 해도, 일상을 지키고 싶었다.

몸에 좆이 쑤셔 박히면 제 존재 가치가 좆집에 불과하다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자신은 사람이었다. 히트 사이클 하나 예상하지 못해 친구였던 알파들에게 성적 노리개로 전락했어도, 감정도 있고,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자신은 인격이 있는 인간이었다.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어렵게 온 학교였다. 마침 오늘은 윤일우와 함께 듣는 수업이 없었다.

“나, 나는…….”

재운이 도망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흔들릴 때였다.

“재운아, 안 나오고 뭐 해? 수업 끝났잖아.”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윤일우가 재운의 곁에 다가와 정수리 부근을 쓰다듬었다.

“일우야…….”

“응. 집에 가자. 안색이 창백해.”

윤일우가 자연스럽게 팔을 뻗어 재운의 몸을 안아 들었다. 재운은 어깨가 경직됐으면서도 함유재의 손길을 피했을 때처럼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보는 함유재의 턱이 근육으로 선명하게 굴곡졌다.

‘……다음에 봐.’

재운은 윤일우에게 안겨 강의실을 나섰다.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함유재에게 입 모양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함유재가 어두웠던 표정을 애써 숨기고, 오른손을 들어 재운에게 흔들어 보였다.

* * *

“쟤 이름이 함유재였던가?”

“……응.”

재운이 윤일우의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윤일우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의 눈동자가 유독 어둡게 느껴졌던 탓이었다.

“오늘 저녁에 뭐 먹을까? 먹고 싶은 거 있어?”

윤일우는 그 질문을 끝으로 더 이상 함유재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대신 다른 주제로 화두를 돌렸다.

“……아무거나 좋아.”

“그러다 내가 매운 음식 먹자고 하면 어떡하려고.”

“……매운 음식 먹고 싶어?”

“아니.”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고 있어도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윤일우는 재운의 뇌진탕이 심해지도록 섹스를 한 이후로 부쩍 재운에게 잘 대해 주고 있었다.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생활이었다. 그러나 재운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언제 깨질지 모르는 평온에 불안함만 느꼈다.

“오늘 애들 오기로 했어. 내가 계속 너랑 못 만나게 했잖아. 그대로 두면 사고라도 칠 기세길래.”

조심스럽게 윤일우와 시선을 맞추고 있던 재운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김본기면 몰라도 다른 이들은 윤일우 이상으로 불편했다. 그들이 했던 짓들이 순서가 뒤섞여 머릿속에 떠올랐다.

새까만 눈동자가 안개라도 낀 것처럼 흐리멍덩하게 풀렸다.

이후 재운은 윤일우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말없이 창문 밖만 바라봤다. 멍한 시선은 시야에 들어온 광경들을 담지 못하고 흘려보냈다.

고통스러웠던 기억에 이어 함유재가 했던 말들이 되살아나 머릿속에서 엉망으로 뒤엉켜 갔다.

“……재운아.”

“어?”

어느새 도착한 걸까.

재운은 윤일우가 어깨를 짚고 나서야 진창 같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이름을 불러도 못 들어.”

“아, 아무 생각도 안 했어…….”

지레 겁먹은 재운이 지나치게 윤일우의 눈치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윤일우의 눈매는 둥글게 휘어 있는데 그 안에 담긴 눈동자는 차갑게만 느껴졌다.

“미, 미안해…….”

재운은 입안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윤일우가 시트를 뒤로 젖히고 제 구멍에 좆을 처박을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내리자. 애들 도착했겠다.”

윤일우는 한동안 재운의 얼굴을 살피다 운전석에서 내렸다. 재운도 안전벨트를 풀고 그를 따라 조수석 문을 열었다.

“이재운!”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진대원이 재운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우윽…….”

진대원이 성난 황소처럼 돌진해 재운을 품에 꽉 끌어안았다. 윤일우는 옆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새빨간 불씨가 담배 끄트머리에서 피어올랐다. 뿌연 연기가 주변을 자욱하게 물들여 갔다. 윤일우는 별다른 말 없이 두 사람을 지켜보기만 했다.

“너 이제 안 아파? 머리 괜찮아? 살은 왜 이렇게 빠졌어. 윤일우 새끼가 굶겼냐?”

재운의 목덜미에 코를 파묻고 깊게 숨을 들이쉬던 진대원이 고개를 들고 재운의 볼을 감싸 안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세세하게 훑는 시선의 궤적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눈길이 강렬했다.

“괜찮으니까 좀 놔줘…….”

그러나 재운은 걱정 어린 눈길을 받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걱정이 걱정으로 다가오지 않는 탓이다.

애초에 뇌진탕에 걸린 이유가 진대원 때문이었다. 그가 재운의 뒤통수가 벽에 강하게 찍히도록 박아 댄 결과였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재운이 우울하게 가라앉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예전에야 마음 상하는 일이 있으면 곧잘 표현했다. 지금은 모든 게 조심스럽기만 했다. 재운은 이들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니까.

“누가 보면 한 일 년은 못 보다가 재회한 줄 알겠네. 유난은.”

진대원에 이어 송진오도 터벅터벅 발걸음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재운은 무거운 돌덩이가 어깨에 얹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잔뜩 움츠렸다.

한 사람만 있어도 불안한 상황이었다. 언제 옷이 벗겨지고 바닥으로 처박힐지 몰랐다. 재운이 소맷귀를 손끝이 하얗게 질리도록 붙잡았다.

“김본기는?”

“저기 오네.”

윤일우가 보이지 않는 김본기를 찾았다. 송진오가 그의 뒤쪽을 턱 끝으로 가리켰다.

“……많이 아팠다고 들었는데.”

“이제…… 괜찮아.”

다른 이들은 몰라도 재운은 김본기가 하는 걱정은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친구들 중에서 유일하게 재운에게 손을 대지 않은 사람이 그였으니까.

자신의 걱정에는 눈에 띄게 불안해하던 재운이었다. 김본기한테는 옅은 미소까지 지어 보이자 진대원의 미간이 사납게 찌푸려졌다.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건 바뀌지 않아.”

송진오가 재운을 보며 입매를 비뚜름하게 올렸다. 그렇게 당해 놓고도 김본기는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재운이 우스웠다.

“들어가자. 재운이 밥 먹어야 해.”

담배를 필터만 남기고 다 피운 윤일우가 꽁초를 신발 밑창으로 밟았다. 미묘하게 흘러가던 분위기가 그 말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재운의 팔을 잡고 먼저 집 안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에 송진오가 양어깨를 으쓱였다.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미친놈은 윤일우지.”

* * *

“맛이 없어?”

“아, 아니…….”

재운이 젓가락으로 밥알을 뒤적거렸다. 윤일우가 재운의 손에 잘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반찬 그릇을 가져와 재운의 근처에 놓았다.

“많이 먹어야 기운이 나지.”

재운만 깨작거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윤일우를 비롯한 이들 모두 눈앞에 놓인 음식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차라리 아픈 게 나았던 걸지도 몰랐다. 그때에는 윤일우만 상대하면 됐다. 게다가 아픈 동안에는 재운의 건강을 꽤 신경 써 줬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몸 곳곳에 닿아 오는 시선들은 하나같이 뒤틀려 있었다. 다가올 일이 예상이 갔다.

“너희는…… 사귀는 사람…… 안 만들어……?”

재운이 입안에 남은 죽에 가까워진 밥알을 목 뒤로 밀어 넘기며 어렵게 말문을 떼었다.

다들 외모도, 집안도, 가진 바 능력도 출중했다. 분명 주변에 자신보다 훨씬 괜찮은 오메가들이 가득할 텐데 자신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친구였던 이를 아래에 까는 데서 오는 배덕감이 큰 걸까.

“푸흐……. 왜? 애인 생기면 너한테 좆질 안 할까 봐?”

물을 마시고 있던 송진오가 세상에서 제일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헛웃음을 흘렸다.

입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을 닦아 올리는 손짓이 여유로웠다. 이후로도 송진오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끅끅거렸다.

“재운아, 나한테 애인 생겼으면 좋겠어?”

윤일우가 한쪽 손에 턱을 괴고 다른 손은 재운의 머리카락 사이로 집어넣어 쓸어내렸다.

윤일우의 손끝이 머리에 닿을 때마다 재운의 고개가 식탁을 향해 숙여졌다.

“그런, 게 아니라…….”

한때 재운은 언젠가 윤일우한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마음이 아플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꿈에서라도…… 자신이 그 상대가 되지 않을까 헛된 기대를 품어 본 적도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게 아니었다. 그러나 재운은 빠르게 메말라 갔다. 마음속에는 그치지 않고 차가운 비가 내리는데 이상했다.

지금도 뜬금없는 소리를 꺼낸 건 살기 위해서였다. 이들이 곧장 자신을 침대로 끌고 갈 것만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윤일우가 자신을 함부로 대할 때도 마음이 무너지지만, 다른 이들에게 당하는 건 그것대로 정체성이 부서져 내렸다.

“다들 밥 다 먹었으면 가식적인 가면은 벗는 게 낫지 않나? 윤일우, 오늘도 중간에 초칠 건 아니지?”

“응.”

송진오가 손뼉을 짝 소리가 나도록 부딪쳤다. 진대원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김본기, 너는 오늘도 안 할 거야? 설마 고자인 거는 아닐 테고…….”

김본기는 식사가 시작된 이후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송진오의 물음에도 김본기는 침묵했다. 그는 안색이 희게 질린 재운만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응시했다.

“나 먼저 한다.”

“자, 잠깐…….”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진대원이었다. 진대원이 재운의 손목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운이 버티기 위해 발에 힘을 줬다. 그러나 바닥 위로 끌리는 소리가 나며 진대원이 이끄는 방향으로 마른 몸이 끌려갔다.

방문이 열리고 이불이 가지런히 정리된 침대 위에 처박히듯이 떠밀렸다. 재운이 팔에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진대원이 재운의 몸 위에 올라타는 게 더 빨랐다.

재운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양팔을 무릎으로 지그시 누른 진대원이 명령조로 얘기했다.

“페로몬 풀어, 이재운.”

“……싫어.”

“어차피 풀 거면서 반항은.”

진대원이 짧은 머리카락을 이마 뒤로 쓸어 넘겼다. 손질하지 않아 푸석한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흐트러졌다.

“하지, 마…….”

재운이 순식간에 벗겨지는 상의를 애써 끌어모아 상체를 가렸다.

“다 벗기는 것보다 이 모습이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

진대원은 마른 가슴팍만 드러나도록 한 후에 이어 하의를 벗겨 냈다. 재운이 손을 뻗어 봤지만 바지와 속옷이 한 번에 무릎까지 끌어 내려졌다.

“진대원 왜 이렇게 급해. 그동안 섹스 한 번도 안 했냐?”

진대원의 뒤를 이어 방 안에 들어온 송진오가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그 또한 재운의 얼굴 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웬만하면 안에다 싸지 마. 다른 놈 정액에 좆 비비는 거 끔찍하니까.”

생각만으로도 싫다는 듯 송진오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콘돔 껴.”

송진오의 말에도 진대원은 밖에다 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재운의 말대로 애인을 만들든, 섹스 파트너를 만들든 주변에 유희거리로 삼을 놈들은 널리고 널렸다.

그런데도 진대원은 재운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수절하는 과부처럼 독수공방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왜 이렇게 뻑뻑해.”

진대원이 메마른 입구를 손가락으로 지분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페로몬을 풀어 재운을 자극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재운이 좀처럼 흥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오랜만에 해서 그런 거 아니야? 윤일우도 안 건드렸던 모양이네.”

송진오가 재운이 계속해서 바르작거리자 재운의 상의를 벗겨 내 두 손목을 한데로 모아 묶었다.

“나 아직, 아파…….”

재운이 마지막 희망을 걸어 눈물로 호소했다. 윤일우가 얼마나 돈을 쏟아부었는지, 재운은 별다른 후유증 없이 완쾌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벌어질 일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아픈 척이라도 해야만 했다.

“이재운, 나는 네가 아파도 관심이 없다니까. 아프면 오히려 더 좋지. 반응이 다르잖아.”

재운이 아픈 것 따위 이미 불이 붙은 정욕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눈물 젖은 뺨을 감싸 안은 송진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광대뼈를 지그시 누르는 손가락에 재운이 입을 반쯤 벌리고 헐떡였다.

“송진오, 적당히 해. 거칠게 할 거면 빠져.”

“이 새끼들이 점점 이상해진단 말이야. 강간에 거칠고 부드러운 게 어딨어. 합의가 없으면 그냥 강간이지.”

자신을 제어하려는 진대원의 말에 짜증이 치솟은 송진오가 좆을 꺼냈다. 표피 위로 울퉁불퉁하게 핏줄이 솟은 좆은 반쯤 발기한 상태였다.

“이재운, 너도 어이없지 않냐? 진대원이랑 윤일우가 이러는 거.”

“우읍…….”

대답을 듣고자 한 질문이 아니었다. 송진오가 재운의 입을 벌리고 거대한 좆을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재운의 입이 보는 사람도 아플 정도로 빠듯하게 벌어졌다.

누워 있는 자세 때문에 재운이 좀처럼 좆을 목구멍까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숨이 막힐 때마다 반사적으로 입을 다무는 탓에 표피가 치아에 긁혔다. 고통으로 홉뜬 눈동자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이 세우지 말고, 그대로 삼켜.”

재운이 버거워해도 송진오는 거리낌이 없었다. 인정사정없이 제 만족만을 위해 움직였다.

턱가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재운이 목에서 힘을 풀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눈가에 고이지 못한 눈물이 흘러내려 시트 한구석을 자욱하게 물들였다.

“윤일우, 젤 없어?”

진대원이 느릿한 발걸음으로 방 안에 들어온 윤일우에게 눈짓했다. 고작 한 개만 집어넣었을 뿐인데도 재운의 구멍이 손가락을 밀어내고 있었다.

천천히 구멍을 풀어 주면 액도 흘러나오겠지만, 문제는 그가 지금 당장이라도 좆을 재운의 구멍에 쑤셔 넣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거였다.

“있는데 미약 효과 있는 것만.”

“잘됐네. 그걸로 줘.”

재운은 오랜만에 하는 섹스 때문인지 지나치게 몸이 경직된 상태였다.

이대로면 재운이 다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었다. ‘미약’이라는 단어를 들은 재운이 눈동자를 굴려 윤일우를 바라봤다.

눈물로 얼룩진 시야에 송진오 반대편으로 다가와 앉는 윤일우가 보였다.

“그읍, 읍…….”

미약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게 어떤 효과를 낼지 예상이 갔다. 어차피 재운은 알파의 좆이 쑤셔지고, 페로몬이 퍼부어지면 정신을 못 차렸다.

오메가는 고통에 바르작거리면서도 본능적으로 알파의 페로몬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존재였다.

그러나 재운은 페로몬에 미약까지 더해져 발정 난 짐승으로 전락하고 싶지는 않았다.

파르르 떨리는 손을 뻗어 윤일우의 손가락을 잡았다. 송진오의 좆이 입안 가득 들어차 있는 터라 고개를 움직일 수는 없지만, 간절한 마음을 담아 눈을 깜박였다.

눈물에 젖은 속눈썹이 피부에 달라붙었다가 느릿하게 떼어졌다.

“여기.”

잠시간 재운의 손을 매만지던 윤일우가 협탁 서랍 안에서 자그마한 튜브를 꺼내 진대원에게 건넸다.

“위험한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식은땀에 젖은 재운의 머리카락을 이마 뒤로 넘기는 손길이 다정했다. 그러나 재운은 윤일우가 하는 말에 안심이 되는 게 아니라 다른 단어가 떠올랐다.

기만.

윤일우가 재운에게 하는 행동은 기만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차라리 자신을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욕망에만 충실한 송진오가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라리 잘해 주지 말지. 왜 아픈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돌본 거냐고 울부짖고 싶었다. 내뱉지 못한 말은 재운의 마음속에서 응어리졌다.

왜 아직도 자신은 윤일우에 대한 마음을 지워 내지 못하는 걸까. 지금이라도 윤일우가 자신을 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남아 있는 탓에 가슴이 짓이겨졌다.

“젤 있으니까 한결 낫네. 이재운, 힘 좀 풀어 봐. 너 계속 이렇게 굳어 있으면 찢어진다고.”

젤을 손가락에 듬뿍 짜낸 진대원이 곧장 손가락 두 개를 구멍 속에 집어넣었다. 윤활제 덕분에 붉은 속살이 부드럽게 손가락을 감쳐물었다.

“만져 줘도 서지를 않아.”

진대원이 다른 손으로는 말랑말랑한 살덩이를 손안에 넣고 주물럭거렸다. 아프지 않게 귀두를 문지르고, 기둥을 매만지는데도 재운의 성기는 발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이렇게 겁먹었어. 처음도 아닌데.”

윤일우가 고개를 숙여 옅은 분홍빛의 살점을 입술 사이로 쪼옥 소리가 나도록 빨아 당겼다.

“흐읍……!”

다른 손으로는 유륜 주변을 부드러이 뭉개다가 손끝을 세워 젖꼭지를 짓눌렀다.

재운의 목덜미에 푸른 핏줄이 섰다. 윤일우가 가슴을 애무하며 페로몬까지 풀어냈다.

진대원과 송진오의 페로몬에는 좀처럼 반응하지 않던 재운이 윤일우의 페로몬에는 반응했다. 조금씩 오메가 페로몬을 흘리기 시작하는 몸이 옅은 분홍빛으로 달아올랐다.

“……기분이 좆같네.”

손가락을 하나 더 집어넣어 구멍 속을 풀던 진대원이 욕을 짓씹었다.

윤일우에게만 달리 반응하는 재운을 볼 때마다 정의하기 힘든 불쾌한 감정이 가슴 속에 차올랐다.

“그렇게 당하고도 등신같이 아직도 윤일우를 좋아하는 거지.”

송진오가 재운을 비웃으며 작은 머리통을 손안에 담아 고정했다.

“우윽, 읍, 흐읍…….”

쉬지 않고 송진오의 좆이 재운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펠라가 서툴러 좆 표피가 이에 긁히는데도 송진오는 뜨끈뜨끈한 입안이 마음에 들어 행위를 이어 갔다.

목구멍에 좆 끄트머리를 쑤셔 박으면 재운이 반사적으로 목구멍을 조였다.

아랫구멍과는 다른 맛이 나는 조임이었다. 기술은 없지만 재운의 의도와 다르게 그의 혓바닥이 요도구나 핏줄 위를 스칠 때면 뒷골에 짜릿한 쾌감이 섰다.

목구멍을 푹 찔렀다가 빼내 볼이 볼록 튀어나오도록 귀두로 볼 안쪽 살을 문지르는 것도 별미였다.

삼키지 못한 타액이 입가로 질질 흘러내려 윤활제 역할을 했다.

다른 놈들의 타액은 역겹기만 하다. 그랬기에 송진오는 키스는 아예 하지도 않고, 펠라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재운의 이런 모습은 꽤 마음에 드는 걸 보면 자신도 친구들처럼 머리가 어떻게 된 걸지도 몰랐다.

“힘 풀어, 이재운.”

구멍이 덜 풀렸지만 진대원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자신이 잘해 줘도 재운의 시선은 윤일우에게만 향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치졸한 질투심이었다. 진대원이 좆을 꺼내 끄트머리를 구멍에 가져다 댔다.

젤로 번들거리는 구멍을 얕게 찔렀다가 빼자 입구의 살이 뻐끔거리면서 귀두갓 부근을 야금야금 씹어 왔다.

윤일우가 페로몬을 푼 이후로 조금씩 단단해지는 살덩이를 매만지면서 진대원이 허리에 힘을 줬다.

푸우욱. 주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난 구멍을 있는 대로 벌렸다. 거대한 좆이 한 번에 재운의 몸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으으읍…….”

재운의 허리가 들썩였다. 입에도 힘이 들어가 졸지에 치아에 좆이 깨물린 송진오가 인상을 쓰며 좆을 빼냈다.

순간 손을 들어 재운의 얼굴을 후려칠 뻔했다. 윤일우가 손을 뻗어 막지 않았다면 재운의 얼굴 한쪽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을 거였다.

“진대원, 혼자 하냐? 페어플레이 몰라?”

“후우…….”

송진오가 아찔한 감각이 남은 좆을 매만지며 진대원을 흘겨봤다. 그러나 진대원은 이미 좆을 쫀득하게 감싸 오는 내벽의 감촉에 반쯤 이성을 잃은 후였다.

재운의 몸 곳곳이 붉게 달아올랐다. 좆을 머금는 게 버거운 건지 갈비뼈가 두드러지도록 허리가 휘어졌다.

“윤일우, 이거 미약 효과 있는 거 맞아?”

좆을 빠듯하게 감싸 오는 감촉은 좋지만 입구 부근에서는 좆이 끊어질 듯한 통증이 일었다.

“응. 맞는데. 재운이 눈 풀렸잖아.”

윤일우의 말에 진대원과 송진오의 시선이 동시에 재운의 얼굴에 닿았다. 새까만 눈동자가 동공이 확장된 채 요동치고 있었다.

흐릿한 시선이 닻을 잃은 배처럼 허공 어딘가를 부유하며 떠다녔다.

“처음부터 너무 세게 박지 말고 천천히 길들여. 오늘 두 개 넣을 거니까.”

“뭐?”

“역시 윤일우.”

윤일우가 손가락으로 꼿꼿하게 선 살덩이를 매만지며 진대원에게 고갯짓을 했다.

놀란 진대원과 달리 송진오는 작게 손뼉까지 쳤다. 그러다 그가 문가에 서 있는 김본기를 발견하고 혀를 끌끌 찼다.

“김본기, 너는 진짜 안 할 거야? 오늘은 같이 동참해. 끝까지 의리 지키겠다, 뭐 그런 거는 아닐 테고.”

재운은 김본기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송진오가 보기에 김본기도 제정신이 아닌 건 마찬가지였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은 괜히 생겨난 게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속을 알 수 없어 음흉한 놈이기도 했다.

“……봐서.”

김본기는 두툼해진 고간을 숨기지도 않고 의자에 앉아 한쪽 다리를 꼬았다. 등받이에 편안하게 기댄 자세를 취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재운의 얼굴에 꽂혀 있었다.

은은하게 돌아 있는 시선이었다.

“너는 관음증에 취미 있는 거 아니냐?”

송진오도 김본기에게 재차 권유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재운의 밑구멍에 쑤시려면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할 참이었다.

김본기까지 끼면 제 차례까지 돌아오는 시간이 길어지는 건 당연했다. 그저 재운이 김본기에게 품고 있는 헛된 환상을 깨 주고 싶은 마음에 권유한 것뿐이었다.

“으윽, 윽, 흐윽…….”

재운이 억눌린 신음을 토해 냈다. 진대원이 움직일 때마다 힘없이 흔들리는 몸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갈 곳을 잃은 하얀 다리가 시트 위로 계속해서 무너져 내렸다.

진대원이 팔을 뻗어 재운의 다리를 제 허리에 감고 고환이 볼기에 부딪치도록 허리를 처박았다.

미약의 효과가 점점 도는 건지 성기를 끊어 버릴 기세로 조이던 구멍에서 서서히 힘이 빠지고 있었다.

“재운아, 입으로도 좆 먹어야지.”

윤일우가 신음만 뱉어 내는 재운의 입에 제 좆을 물렸다. 게게 풀린 눈을 들어 올린 재운이 순순히 입을 벌렸다.

선액과 타액으로 미끌거리는 입안을 거대한 좆이 구렁이처럼 타고 들어갔다.

“우그읍…….”

단번에 목구멍까지 파고든 좆을 빼내지 않은 채 윤일우가 좆 끄트머리로 목구멍을 쿡쿡 쑤셨다.

“손만 남았네. 지금 두 개 쑤시면 찢어질 테고.”

송진오가 재운의 손목을 묶고있던 걸 풀었다. 널브러지는 재운의 손을 가져와 제 좆을 감쌌다. 말랑말랑한 피부에 닿은 좆이 꺼떡거리며 선액을 질금질금 토해 냈다.

구멍이 아쉬운 건 아니었지만, 작은 입에 좆 두 개를 쑤셔 넣는 건 그로서도 양심에 찔리는 일이었다.

진대원이 미친놈처럼 허리를 움직이고 있으니 아랫구멍이 풀릴 때까지 인내해야만 했다.

“후으, 읍, 그읍…….”

재운의 온몸이 자신과 알파들의 체액으로 물들어 갔다. 진대원이 재운의 몸을 거의 반으로 접다시피 해 쑤셔 박았다.

퍼억, 퍽, 젖은 천이 땅을 후려치는 소리가 울릴 때면 작은 구멍이 주름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팽팽하게 벌어졌다. 좆을 삼키는 광경이 적나라하게 다른 이들의 시야에 잡혔다.

“이제, 섰네.”

진대원이 발기한 상태로 달랑거리는 재운의 좆을 내려다보며 입매를 둥글게 휘었다.

재운이 느끼는 지점을 집중적으로 귀두로 쑤셔 주자 재운의 눈동자에 돌아오려던 초점이 빠른 속도로 사그라들었다.

입과 손으로도 좆을 하나씩 꿰찬 채 흔들리는 모습에 시야가 까맣게 점멸되는 것만 같았다. 재운이 주는 쾌락에 취한 몸은 재운을 범하는 데만 집중했다.

무너져 내리는 재운의 표정은 더 이상 진대원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사정하고 싶어?”

불알이 통통하게 올라붙은 걸 봤으면서도 윤일우가 짓궂게 재운의 요도구를 손가락으로 짓눌렀다.

사정감이 차오르는데도 해방되지 못한 쾌감은 재운의 몸속을 돌아다니며 재운을 괴롭혔다.

안 그래도 젤이 발라진 내벽을 통해 온몸으로 간질거리는 감각이 퍼져 고통스러웠다.

고통스러운데 좆이 구멍들을 쑤실 때마다 감당하기 힘든 쾌락이 뇌 속을 짓뭉갰다.

재운의 몸은 살기 위해 고통이 느껴질 때마다 쾌락을 좇는 법을 체득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오늘은 미약까지 가장 예민한 부위에 잔뜩 발린 상태였다.

젤에 섞인 거라 미약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미약에 내성이 없는 재운에게는 지나치게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우극, 읍…….”

열에 흐무러져 재운은 평소보다도 강하게 본능에 휘둘렸다. 재운이 윤일우를 바라보며 간절한 눈짓을 했다.

여전히 입안에는 거대한 성기가 물려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오늘은 좆 두 개 넣어야 하니까 사정도 마음대로 하면 안 돼. 재운이는 체력이 약해서 금방 지치니까.”

그러나 윤일우는 재운의 애원에도 성기를 틀어막은 손을 치워 주지 않았다. 오히려 눈물 젖은 눈가를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목구멍 안쪽 깊숙이 좆을 짓이겼다.

숨이 막힌 재운의 가슴이 들썩였다. 본능적으로 성기를 밀어내려고 해도 혀는 좆에 짓눌려 꼼짝도 못 했다.

“처음보다는 익숙해진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서투르네.”

윤일우의 입매가 유려하게 휘어졌다. 송진오는 재운의 손을 좆집처럼 만들어 허리를 움직이다가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웃을 거면 눈도 같이 웃던가. 너 그렇게 웃을 때마다 이중인격자 보는 것 같거든. 소름 돋는 사람도 좀 생각해 주는 게 어때?”

“재운아, 목구멍에서 힘을 좀 더 빼 볼까? 자꾸만 좆이 이에 쓸리네.”

송진오의 말에도 윤일우의 온 감각은 재운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재운이 윤일우의 말대로 목구멍에서 힘을 풀려고 노력했다. 힘겨운 와중에서도 자신이 윤일우를 고통스럽게 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성기를 더 깊숙하게 밀어 넣은 윤일우의 눈동자에 웃음기가 어렸다.

송진오는 윤일우가 진심으로 웃는 건 그것대로 소름이 끼친다고 생각하며 진대원을 흘낏 바라봤다.

“너 언제 쌀 거야? 나 이제는 아래에다 좀 박고 싶은데.”

재운은 손바닥도 말랑말랑해서 좆을 비비는 감각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좆을 쫄깃하게 감싸 오는 내벽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기다려.”

진대원이 수축한 내벽을 짓누르며 파고들어 갔다. 신축성이 얼마나 좋은지 재운의 내벽은 좆이 빠져나갔다가 재차 파고들 때면 다시 좁아져 있었다.

젤과 알파들의 페로몬 때문에 재운의 내벽은 애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재운의 내벽은 여러 번 좆이 파고들었지만 거대한 좆을 받아들이면 여전히 버거워했다.

“좆 두 개 넣는 게, 가능하다고?”

진대원이 임신한 것처럼 볼록하게 튀어 오르는 재운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바닥을 들어 지그시 누르자 재운의 몸이 그물에 걸린 활어처럼 튀어 올랐다.

“흐읍, 읍, 으읍……!”

“한 개로도 죽으려고 하는구만.”

“싫으면 빠져.”

윤일우는 진대원의 걱정에도 말을 물리지 않았다. 재운이 본능적으로 도망가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아래위로 좆에 꿰뚫린 상태에서는 바르작거리는 게 다였다.

거기에다 사정까지 하지 못하고 있어 재운은 눈을 감아도, 떠도 온 세상이 새까맣게 물드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하아…….”

재운의 구멍이 빠져나가는 진대원의 좆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꽉 다문 순간이었다.

진대원의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느른한 한숨을 내쉬면서 진대원이 정액을 재운의 안쪽에 좆 기둥으로 느릿하게 문질렀다.

나가지 말라는 듯 좆을 감싸 오는 내벽에 아쉬운 마음이 컸다.

“너 쌌지? 그러면 나와.”

진대원이 사정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송진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대원, 네가 재운이 성기 잡아.”

윤일우가 재운의 자세를 바꿨다. 재운의 좆을 진대원에게 넘겨준 후로 재운이 엎드려 제 좆을 물도록 했다.

“이 자세면 나야 더 좋지.”

박기 쉽게 엉덩이만 뒤로 뺀 자세가 된 재운을 시선으로 훑으며 송진오가 웃었다.

“많이도 쌌네.”

뻐끔거리는 구멍을 타고 하얀 정액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다. 송진오가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가위질하듯 벌렸다.

붉은 속살과 대비되는 하얀 정액을 보자 입안에 침이 고였다. 결국 송진오가 정액을 빼내는 걸 그만두고 구멍이 열리는 순간에 맞춰 파고들어 갔다.

“으읍…….”

진대원이 재운의 안에 냈던 길은 이미 사라졌다. 송진오에게 뚫린 내벽이 새로운 길을 내줬다.

잔뜩 수축한 내벽이 귀두를 옴쭉 조여 물었다. 틈 없이 붙어 버린 내벽을 가르며 들어가는 쾌락에 송진오가 재운의 골반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퍼억, 퍽, 퍽. 송진오는 참았던 만큼 처음부터 강하게 재운을 몰아붙였다. 엎드린 상태로 윤일우의 좆을 물고 있던 재운의 머리통이 선명한 복근에 부딪힐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야, 적당히 해. 머리 부딪히면 안 좋다고.”

“그러면, 쿠션이라도 끼워. 나는 못 멈추겠으니까.”

재운의 요도구를 손가락으로 막은 채 만지작거리던 진대원이 송진오에게 경고했다. 진대원의 날 선 말에도 송진오는 오로지 제 쾌락을 위해 재운의 엉덩이 사이로 좆을 쑤셔 박았다.

강제로 수축했던 구멍을 가르는 감각은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했다.

재운은 억눌린 신음을 토해 냈지만 내벽은 난폭한 성기의 움직임에 맞춰 길을 내주고 있었다.

진대원의 정액이라고 생각하면 불쾌했다. 하지만 정액과 한데 어우러진 내벽이 좆을 감싸 오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송진오의 허리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다. 재운의 목구멍도 덩달아 조여들었다.

턱에 힘을 빼려고 해도 쑤셔지는 감각이 너무나 지독해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이를 뽑을 수도 없고.”

윤일우가 좆의 표피가 계속해서 단단한 치아에 스치자 재운의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좆에서 통증이 이어지는데도 윤일우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평소보다 붉은 기운이 스며든 눈가만 제외하면 휴양지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처럼 나른해 보이기까지 했다.

“더 조여 봐.”

송진오가 재운이 느끼는 지점을 거칠게 짓이겼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재운의 떨림이 강해졌다.

“으으읍……!”

좆이 다른 곳을 향하지 않고 극점을 계속해서 짓눌렀다. 좆에 달라붙어 딸려 나오는 내벽을 다시금 안쪽에 처박으며 다그치듯 부풀어 오른 지점을 자극했다. 하얀 등이 활등처럼 팽팽하게 휘어졌다.

“흐으, 읍…….”

“막아도 새네.”

재운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사정했다. 진대원이 요도구를 손가락으로 콱 틀어막고 있는데도 틈을 비집고 하얀 정액이 질금질금 새어 나왔다.

손바닥 안에서 파들파들 떨리는 성기의 움직임이 애처로울 정도로 절박했다.

“역시 사정할 때 조이는 게 최고라니까.”

송진오가 만족한 미소를 띠며 좆을 느릿하게 움직였다. 좆을 전체적으로 감싸 오는 내벽에 송진오도 재운이 사정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출했다.

단단함이 한결 줄어든 좆으로도 극점을 짓이기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재운의 내벽이 강하게 수축했다가도 흐물흐물하게 풀린 상태로 좆을 부드럽게 감싸 왔다.

“송진오, 나와.”

“뭐야. 너 아직도 못 쌌어?”

한 번씩 사정한 이들과 달리 윤일우의 좆은 건재한 채로 재운의 입속에서 빠져나왔다.

송진오가 순순히 재운의 몸에서 좆을 빼냈다. 길게 늘어진 정액의 실이 툭 끊어져 부어오른 구멍에 달라붙었다.

“으으, 흐…….”

“재운아, 이제 시작인데 벌써 힘들어?”

“흐으…….”

윤일우가 정신을 못 차리는 재운의 뺨을 쓰다듬었다. 늘어진 재운의 몸을 제 몸 위로 올리는 행동이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조금 쉬게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진대원이 윤일우의 몸 위에 눕혀진 재운의 등을 쓸어내리며 걱정을 비쳤다.

“누가 같이 박을래?”

하지만 윤일우는 재운의 구멍을 벌려 제 좆을 집어넣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체액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재운의 구멍이 윤일우의 좆을 수월하게 받아먹었다.

“안이 찰박대네. 재운아, 맛있어?”

윤일우가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물소리가 들린다는 착각이 일 정도로 재운의 안에 씹물이 흘러넘쳤다.

“진대원, 내가 먼저 한다.”

재운이 엎드려 있는 상태라 윤일우의 좆을 야금야금 삼키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송진오가 입맛을 다시며 한 사람처럼 얽힌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옅게 경련하는 몸이 안쓰러울 법도 한데 송진오의 눈동자에서는 이성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근데 이거 늘어나긴 늘어나는 거야?”

팽팽하게 벌려진 구멍 입구를 지분거리며 송진오가 혀를 찼다. 당장이라도 좆을 쑤시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재운의 구멍이 다시는 오므려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재운은 송진오가 살면서 맛봤던 좆집 중에서 가장 맛이 좋았다.

재운의 몸에 질리기 전까지는 재운을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만 사용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로.

“천천히 손가락 하나만 집어넣어.”

윤일우가 헐떡이는 재운의 등허리를 쓸어내렸다. 송진오가 윤일우의 말대로 구멍의 가장자리에 엄지손가락 하나를 밀어 넣었다.

“흐, 아아…….”

재운이 안 그래도 빠듯하게 벌려진 구멍에 무언가가 더해지자 눈물을 펑펑 쏟아 내며 허리를 뒤틀었다. 지금 일어나는 일이 믿기지가 않았다.

“괜찮아. 위험한 거 아니야.”

윤일우의 팔이 재운의 몸이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하게 옭아맸다. 재운이 간절하게 팔을 뻗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자신을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진대원의 허벅지에 식은땀에 젖은 손이 닿았다.

“하, 씨발…….”

진대원이 아랫입술이 희게 질리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재운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자 가슴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문제는 그 작은 손길에도 제 좆은 반응해 꺼떡거렸다는 거였다. 거기에다 작은 구멍이 한계를 모르고 서서히 벌어지는 광경은 시선을 떼기 힘들 만큼 자극적이었다.

이 방에 있는 이들은 모두 다 같았다. 직접적으로 재운에게 박지 않는 김본기마저도 시선으로는 재운을 강간하고 있었다.

열기가 고인 그의 눈동자만 봐도 그랬다. 진대원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윤일우와 송진오를 말리지 않았다.

“이게 늘어나기는 하네.”

송진오가 기어코 손가락 하나를 집어넣어 틈을 조금씩 벌리는데도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어쩌면 송진오에 이어 다가올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아, 아파…….”

재운이 눈조차 뜨지 못한 상태로 눈물을 한가득 쏟아 냈다. 윤일우가 재운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드러난 그의 얼굴 곳곳에 아이를 달래듯 입술을 붙였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진대원, 젤 좀 더 넣어.”

애액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이미 좆 하나로도 빠듯한 구멍이었다. 두꺼운 좆 하나를 더 넣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진대원이 침대 위에 굴러다니는 젤 튜브를 들어 송진오에게 건넸다.

“아예 미약을 먹이는 건 어때? 젤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송진오가 벌린 틈 사이로 젤을 듬뿍 짜 넣었다. 젤에 미약 효과가 있다고 해도 직접 미약을 먹는 거랑은 효과가 크게 차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안 돼.”

“진짜 나는 네 머릿속이 제일 궁금해.”

하지만 윤일우의 단호한 말에 송진오가 미간을 찌푸렸다. 구멍이 쉬지 않고 늘어나고 있지만 그만큼 인내심도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당장이라도 구멍이 찢어지든 말든 좁은 틈새를 벌리고 좆을 쑤셔 박고 싶은 충동이 가슴 속에 들끓었다.

“야, 이 정도면 된 거 아니냐?”

송진오가 윤일우의 좆에 이어 손가락 세 개까지 머금은 구멍을 향해 눈짓했다.

재운은 고통에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윤일우의 가슴팍에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작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갔다.

“흐윽, 으, 하으…….”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견뎌 내기 위해 재운이 손에 힘을 줬다. 진대원이 재운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깍지를 꼈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재운의 다른 손은 윤일우의 가슴 부근을 긁어내리고 있었다.

손톱은 짧았지만 손마디가 하얘지도록 힘을 주고 있는 터라 윤일우의 매끈한 살결 위로 발간 자국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 안에 있는 누구도 앞으로 벌어질 일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집어넣는다.”

아랫입술을 혀로 훑은 송진오가 좆 끄트머리를 틈새에 밀어 넣었다.

“아, 아악……!”

재운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윤일우가 재운의 얼굴을 들고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제 입술로 머금었다.

“으읍……!”

방 안을 울리던 비명 소리가 맞닿은 입술을 타고 억눌린 소리로 변해 갔다. 초점을 잃은 새까만 눈동자가 멈추지 못하고 방황했다.

두꺼운 귀두가 좁은 틈새를 서서히 벌리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재운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제 입속에 들어온 혀를 콱 깨물었다.

비릿한 맛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윤일우는 재운이 제 혀를 깨무는데도 고개를 뒤로 물리지 않았다. 오히려 혀를 움직여 재운의 혓바닥을 살살 비볐다.

“송진오, 안 찢어지게 잘 좀 해 봐.”

“지금, 후우……, 최대한 천천히 들어가고 있는 거, 안 보여?”

진대원이 관자놀이와 목에 핏줄이 설 정도로 괴로워하는 재운을 보며 송진오를 타박했다. 창백하던 얼굴이 지금은 피라도 흘릴 것처럼 붉어졌다.

송진오의 표정도 고통에 찌푸려진 건 매한가지였다. 간신히 귀두선까지 집어넣고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좆을 끊어먹을 기세로 조여 오는 구멍에 송진오가 손을 아래로 뻗어 작은 꼭지를 손끝으로 잡았다.

“흐으, 으읍……!”

엄지와 검지로 살덩이를 잡고 비벼 주자 재운의 몸이 들썩이며 구멍에서 조금씩 힘이 빠져나갔다. 송진오가 힘이 빠지는 순간마다 기둥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와, 이거 조임이 진짜 장난 아닌데.”

마침내 송진오가 고환이 입구에 닿을 정도로 좆을 다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하나를 넣었을 때도 여린 점막은 좆을 빠듯하게 물어 왔다.

지금은 좆 두 개를 머금어서인지 내벽이 좆을 감싸 안았다가 힘을 푸는 움직임이 필사적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러다가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정할 것만 같았다. 송진오가 서두르지 않고 귀두가 입구에 걸릴 때까지 허리를 뒤로 물렸다가 안쪽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핏줄까지도 기억할 것처럼 좆을 물어 오는 내벽에 뒷골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쾌감이 치솟았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으응, 흐으…….”

재운이 윤일우의 입안에 신음을 흘리며 핀에 박힌 채로 살아 있는 나비처럼 몸을 떨었다. 성기 두 개가 배 속에 쑤셔지는 감각은 끔찍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늘어날 대로 늘어난 구멍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작은 불씨처럼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고통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여느 때보다 좆으로 가득 찬 내벽이 질식할 듯한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 사실이 더욱 끔찍했다. 강간을 당하면서도 쾌락을 느끼는 제 몸뚱이를 쇠 수세미로 박박 긁어 내고 싶었다.

서로 다른 알파의 페로몬이 좆물에 가득 담겨 재운을 자극했다. 재운이 조금씩 끈적해진 신음을 내뱉으면서 오메가 페로몬을 흘렸다.

“페로몬이 점점 야해지는 것 같아.”

윤일우가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는 것처럼 재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눈가에 고인 눈물을 혀로 핥아 주자 재운이 끙끙 앓는 신음을 냈다.

송진오가 움직일 때마다 재운의 내벽이 움찔대며 좆에 달라붙어 왔다.

다른 오메가의 페로몬은 느껴질 때마다 불쾌하기만 했다. 그런데 재운의 페로몬은 처음 맡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불쾌하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별장에서 히트 사이클이 온 재운이 알파를 끌어당기는 페로몬을 질질 흘려 댈 때도 그랬다.

다른 오메가였으면 윤일우는 오메가가 히트 사이클이 왔든 말든, 제정신이든 아니든, 다른 알파들에게 죽을 때까지 좆이 박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을 거였다.

“……너라서 그래, 재운아.”

한없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재운의 귓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목소리만큼이나 눈동자도 어둑한 그늘을 머금어 갔다.

“내가 발정 난 개처럼 구는 건 너 때문이야.”

정상적이지 않은 사고방식이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범죄 원인을 돌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윤일우가 소극적으로 움직이던 걸 집어치웠다.

“으윽, 너 그렇게 갑자기 움직이면……!”

“아, 흐으, 하아, 아……!”

송진오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허리를 추어올리는 윤일우 때문에 움직임을 멈췄다. 이를 악물고 윤일우에게 휩쓸려 가지 않기 위해 재운의 등허리를 눌렀다.

윤일우는 재운의 구멍이 찢어져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미쳐 날뛰고 있었다. 재운이 허리를 뒤틀며 고통과 쾌락이 뒤섞인 교성을 내질렀다.

“야, 조금만 천천히 해……! 이러다 이재운 죽겠어.”

보다 못한 진대원이 윤일우의 팔을 붙들어 봐도 윤일우는 제 욕망대로 재운의 몸속에 거대한 좆을 처박았다.

재운을 위에 올린 상태인데도 윤일우의 좆은 재운의 자궁구까지 닿을 듯 거침없이 작은 배 속을 드나들었다.

송진오의 목에도 핏대가 섰다. 윤일우가 움직일 때마다 비벼지는 좆 때문에 돌아 버릴 것만 같았다.

“흐으, 아, 으으…….”

재운이 지독한 감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움직여 봤지만 소용없었다. 아래위로 자신을 감싼 단단한 몸체 때문에 신발에 밟힌 벌레처럼 바르작거리기만 했다.

좆이 배뿐만 아니라 온몸을 관통하는 것만 같았다. 내벽이 좆의 모양대로 늘어났다 수축할 때마다 재운의 눈앞에 별이 튀었다.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재운은 입에서도, 아래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송진오가 윤일우의 움직임에 맞춰서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을 때에는 배 사이에 끼인 성기에서도 묽은 정액을 싸질렀다.

정말 사람이 아니라 섹스하는 도구가 된 것만 같은 아득함이 전신을 감싸 왔다.

고통 속에서 쾌감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스스로가 우스워 견딜 수가 없었다.

“으응, 흐, 아아…….”

자신이 듣기에도 곳곳에 쾌감이 섞인 듯한 신음에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두 사람이 박기 쉽도록 활짝 벌리고 있는 다리만큼 정신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좆이 볼록한 부분을 짓누른 순간 재운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한번 구멍을 조였다.

“하아…….”

송진오가 느른한 숨을 내쉬며 재운의 안에 사정했다. 곧 윤일우도 재운의 귓불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많은 양의 정액을 싸질렀다.

두 개의 좆이 웅덩이처럼 고인 정액을 내벽 안에 빠짐없이 문질렀다.

“흐윽, 으, 으응…….”

“또 간 거야? 미친 듯이 조이네, 진짜.”

재운이 사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액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액을 질금질금 요도구로 토해 냈다.

송진오가 좆을 감싸 오는 빠듯한 압박감에 눈가를 찌푸리며 허리를 뒤로 빼냈다.

송진오의 좆이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성인 남성의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늘어났던 구멍이 오므라들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리 구멍이 줄어드는 속도가 느릿했다.

“아, 으…….”

재운이 제 침이 한가득 고인 윤일우의 가슴 위에서 죽어 가는 짐승처럼 눈만 끔벅거렸다. 늘어난 구멍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손끝 하나 움찔 떨기도 벅찼다. 시야가 눈물에 뿌옇게 흐려졌다.

떨어지는 속도보다 눈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훨씬 빨라 눈에 들어오는 모든 광경에 비가 휘몰아치는 착각이 들었다.

“송진오, 나와.”

송진오가 홀린 듯이 천천히 줄어드는 구멍에 시선을 두고 있을 때였다. 진대원이 송진오를 밀치고 재운의 구멍에 제 좆을 가져다 댔다.

완전히 발기한 좆이 손안에서 꿈틀거렸다. 미끌거리는 좆 대가리를 입구에 대자 줄어들던 구멍이 재차 몸을 늘렸다.

벌써부터 재운의 구멍은 주름이 보이지 않을 만큼 붉게 부어오른 상태였다.

부어오른 만큼 원래도 부드러웠던 살결이 연한 두부처럼 진대원의 좆을 오물오물 감싸 왔다.

“후우…….”

진대원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열기 어린 숨을 내뱉었다. 풀려 가는 초점처럼 황홀한 감각에 재운을 향한 죄책감과 안쓰러움이 썰물처럼 스러져 갔다.

자신은 어쩔 수 없는 개새끼였다.

스스로를 자조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진대원이 단번에 좆 기둥을 전부 안쪽으로 쑤셔 박았다.

“아, 하윽…….”

쉴 겨를이 없었다. 재운은 좆 하나가 빠져나가기 무섭게 빈자리를 채우는 좆에 다 쉰 목소리로 힘겹게 신음을 뱉었다.

꽉 쥔 두 주먹이 안쓰러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아랫입술이 희게 질리도록 말아 문 입술 위에는 새빨간 핏방울까지 송골송골 맺혀 들었다.

힘줄이 흉흉하게 선 살덩이 두 개가 하얀 볼기 사이로 쉬지 않고 드나들었다.

체액으로 범벅이 된 고환이 여린 허벅지 살에 질척한 소리를 내며 달라붙었다.

커다란 손으로 골반을 고정한 진대원이 참았던 욕망을 분출했다.

윤일우와 송진오가 길을 냈기에 재운의 구멍은 좆 두 개를 먹으면서도 찢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좆을 찰기 있게 조여 물어 두 알파는 빠르게 차오르는 사정감에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흐, 아아…….”

“싸지도 못하고 간 거야?”

재운이 마른 절정에 도달했다. 텅텅 비어 버린 고환은 홀쭉해진 지 오래였다.

쫄깃하게 좆을 감싸 오는 내벽으로 보아 절정에 도달한 게 분명한데도 재운의 성기는 정액을 내보내지 못했다.

윤일우가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척추뼈가 두드러진 등을 옭아매고 있던 팔을 풀어 눈물 가득한 재운의 얼굴을 보듬었다.

재운은 눈을 깜박일 힘조차 없는지 눈을 감은 채로 연약한 신음만 흘렸다.

“또 섰어.”

진대원에게 옆으로 밀려난 송진오가 좆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허연 정액이 윤활제가 되어 손을 움직일 때마다 찔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김본기, 넌 진짜 안 박을 거야? 그거 안 아프냐?”

김본기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친구들에게 사정없이 박히고 있는 재운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송진오의 물음에 김본기는 짧고 강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바지 가운데가 불룩하게 솟아 있는데도 그는 방 안에서 벌어지는 행위에 동참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정상적인 놈이 없어.”

정신을 못 차리고 재운에게 박고 있는 놈이나, 이 장면을 보고도 동참하지 않는 놈이나 미친놈인 건 매한가지였다.

송진오가 재운의 머리맡으로 향했다. 윤일우가 쓰다듬고 있는 재운의 얼굴을 빼앗아 좆 끄트머리로 달아오른 얼굴 구석구석을 문질렀다. 요도구에 고여 있던 정액이 작은 얼굴 위로 치덕치덕 발렸다.

“이재운, 목구멍 간지럽지 않아? 아래에는 두 개나 쑤셔지고 있는데 위에는 아무것도 없잖아.”

개소리를 지껄이며 송진오가 재운의 입을 벌리고 그대로 좆을 밀어 넣었다. 대답도 듣지 않았다.

“그읍, 읍…….”

재운이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해 코를 쥐었다. 숨구멍이 막힌 재운이 본능적으로 입을 열었다.

단번에 선단을 목구멍으로 처박은 송진오가 재운의 머리통을 두 손으로 쥐어 고정했다.

“턱 제대로 벌려. 입 찢어지고 싶지 않으면.”

“흐읍, 읍, 으읍…….”

송진오가 두껍고 기다란 좆을 머리통에 처박을 때마다 재운의 얼굴에 발간 물이 들었다.

재운의 몸속으로 알파 좆 세 개가 들어찼다. 재운은 아까부터 눈을 감고 있는데도 시야의 가장자리부터 암흑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알파의 페로몬에 질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사람의 페로몬을 구분하는 것도 힘들었다. 어떻게든 윤일우의 페로몬만을 강하게 느끼고 싶은데 온몸의 감각이 어그러지고 있었다.

살기 위해 끅끅거리며 좆을 물었다. 목구멍도, 아랫구멍도, 가슴도 모든 곳이 화끈거리고 동시에 간질거렸다.

히트 사이클이 아닌데도 알파의 좆이 깊숙한 곳을 쿵쿵 박아 대자 자궁구마저 뻐끔거리고 있었다.

남성 오메가가 임신하는 건 베타 여성이나 오메가 여성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재운은 오메가 페로몬 수치가 높은 편이 아니었다. 히트 사이클 상태에서 자궁구 안에 정액을 받아 내도 임신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이미 별장에서 경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피부에서 정액 냄새가 날 정도로 알파들의 정액에 절여지고 있다 보니 이대로면 임신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재운이 감고 있던 눈을 부릅떴다. 상상만으로도 온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으으읍……!”

“뭐야, 얘 왜 이래?”

얌전히 좆을 받고 있던 재운이 발에 밟힌 지렁이처럼 꿈틀댔다. 좆이 세 개나 처박힌 상황이었다.

가장 먼저 진대원이 허리를 뒤로 물렸다. 송진오도 이에 좆의 표피가 쓸리자 인상을 쓰며 좆을 빼냈다.

“흐으, 하, 하지 마……. 안 돼……. 싫어…….”

마지막으로 윤일우가 재운의 몸속에서 천천히 좆을 뽑았다. 발작하듯 몸을 뒤트는 재운의 몸을 끌어안고 그가 등허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다정한 손길이었다.

“왜 그래, 재운아? 뭐가 무서운 거야?”

윤일우는 갑자기 이러는 재운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말로 싫었다면 처음부터 있는 힘껏 반항했어야 맞았다.

물론 재운이 초반에 한 건 반항이 맞았다. 그러나 지금 하는 행동에 비하면 초반에 했던 행동은 반항보다는 투정에 가까웠다.

“싫, 흐윽, 어…….”

“우리가 다 싫어?”

“임신, 안 돼…….”

재운이 말문이 제대로 뜨이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어눌한 발음으로 속마음을 비쳤다. 부은 눈가에서 눈물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뭐야? 지금 임신할까 봐 밀어낸 거야?”

송진오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남성 오메가의 임신이 얼마나 힘든지에 관해 이틀에 한 번꼴로 뉴스에서 관련 기사가 나왔다.

수도권에 있는 남성 오메가 전문 임신 클리닉의 개수만 봐도 알 수 있는 단면이었다.

“그냥 눕혀. 나 아직 만족할 때까지 박으려면 멀었다고.”

송진오가 윤일우에게 눈짓했다. 체액으로 번들거리는 좆을 쓰다듬는 손길에는 해소되지 않은 열망이 가득했다.

“인정머리도 없는 새끼.”

“너나 나나 같은 부류야.”

진대원의 말에 송진오가 코웃음을 쳤다. 방금 전까지 무자비하게 좆으로 쑤셨으면서 재운의 우는 얼굴에 마음이 약해진 꼴이 가증스러웠다.

“재운아, 남성 오메가가 임신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지금까지 아무 일 없었잖아. 우리가 돌아가면서 박아 주는데도.”

“흐윽, 윽…….”

윤일우가 달래는 말에도 재운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구슬픈 울음을 흘렸다.

합의되지 않은 관계로 임신하는 것도 끔찍했지만, 더 두려운 건 임신을 해도 그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알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새삼 제 처지가 서러웠다. 친구였던 놈들에게 굶주린 사람처럼 좆물을 뽑아내는 제 몸뚱이를 저주하고 싶었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하자 재운의 몸이 이상 반응을 보였다.

“우읍…….”

“비켜.”

재운이 결국 치밀어 오르는 구토감을 견디지 못했다. 입을 막은 작은 손이 하얗게 질렸다. 한숨을 내쉰 윤일우가 침대에서 재운을 안아 들고 일어났다.

앞을 막아서는 송진오의 어깨를 밀치고 침실에 딸린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우으윽, 우윽…….”

재운이 변기를 붙잡고 힘겹게 속을 게워 냈다. 한번 구토감이 치밀자 배 속의 장기가 모두 쥐어짜지는 아픔이 돌았다.

좆이 쑤셔 박힐 때 눌렸던 장기들이 이제야 몸부림치는 것처럼 들썩이고 있었다.

윤일우가 붉어진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을 훔치며 마른 등을 도닥였다.

재운이 멀건 위액이 흘러나올 때까지 구역질을 하다 추욱 늘어졌다. 흰자위만 보이는 눈은 내려앉은 눈꺼풀에 완전히 가려지지도 않았다.

“보다시피 재운이가 오늘은 섹스를 더 하기가 힘들어 보이네. 다들 집에 알아서 가. 자고 갈 거면 게스트 룸 사용하고.”

윤일우가 익숙하게 늘어진 재운의 몸을 안아 들고 욕조로 향했다. 온수를 틀고 욕조 안에 재운을 앉히는 모습은 재운을 강간하는 데 앞장선 사람 같지 않게 평온했다.

“음식 먹다 뱉은 기분이야. 난 간다.”

송진오가 파투 날 분위기가 되자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윤일우의 집을 나섰다. 이어 조용히 있던 김본기도 송진오의 뒤를 따라 나갔다.

“난 게스트 룸 쓴다. 이재운 내일 아침에 일어나는 거 보고 갈 거야.”

“그러든지.”

진대원만 땀에 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비어 있는 방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 사이에 매달린 살덩이가 묵직하게 꺼떡거렸다. 재운에게 박는 게 아니면 어디엔가 좆을 쑤시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상황이 끝나자 재운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이던 자신에 대한 혐오감도 일었다.

“흐으, 으…….”

“임신하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인가.”

정신을 잃은 와중에서도 앓는 소리를 내는 재운을 윤일우가 품에 끌어안았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눈을 손바닥으로 쓸어 감겼다. 손바닥에 닿아 오는 속눈썹이 간지러웠다.

욕조의 크기가 커서 물이 차오르려면 시간이 걸렸다. 욕실 안은 수증기가 피어오를 정도로 훈훈한 공기가 머물렀다. 그러나 재운은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윤일우가 손으로 따뜻한 물을 들어 재운의 몸에 끼얹었다. 섹스하다가 발작하듯이 울음을 터트린 재운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윤일우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뛰어난 머리로 그럴듯하게 상식을 배우고,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많은 것 중에서도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게 재운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재운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아니라 재운을 대하는 제 태도가 이상했다.

탈선하는 기차처럼 윤일우는 재운하고 연관된 일에는 쉽게 이성을 잃고 본능대로 움직였다.

“아이 따위 원하지 않으면 쉬운 길이 있는데 왜 무서워할까.”

아이가 무서우면 생기더라도 지우면 될 일이었다. 윤일우는 결혼을 할 생각도, 아이를 가질 생각도 없었다.

상대가 재운이라도 마찬가지였다. 두 가지 일 모두 윤일우가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가장 무가치한 일이었다.

“제일 이해가 안 가는 건 나지.”

윤일우가 재운의 부어오른 입술 위로 쪼옥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며 한쪽 입매를 비뚜름하게 끌어 올렸다.

옅게 흘러나오는 재운의 페로몬이 달았다. 목덜미에 코를 파묻고 가슴이 부풀어 오르도록 숨을 들이마셨다.

“재운아, 너는 내 곁에서 안 떠날 거야. 약속했으니까.”

결혼이라는 틀로 재운을 옭아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재운이 제 곁을 떠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들은 넘치도록 많았다. 다만 윤일우가 간절하게 원하던 한 가지는 어떤 것으로도 가질 수가 없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맛본 절망이었다. 이후로 윤일우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제 삶을 순응하듯이 맡겼다.

무료하던 삶을 비집고 들어온 건 재운이었다. 커다란 눈망울이 습기로 촉촉하게 젖어 들어가던 순간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상하게도 재운에게 시선이 닿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기가 힘들었다.

잿빛이던 세상 속에서 재운만이 또렷하게 색을 입고 있었다.

제가 내민 손을 붙잡아 오던 연약한 손끝의 감촉. 그날 이후로 처음 제 심장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느꼈다.

잠든 재운을 내려다보는 윤일우의 시선에 그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한 질척한 집착이 어렸다. 꼬일 대로 꼬여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엉킨 실타래 같은 시선이었다.

* * *

“재운아, 수업 끝나고 잠깐 이야기할 수 있어?”

“……응.”

함유재가 교수님의 눈치를 보면서 재운의 귓가에 대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재운도 그에게 할 말이 있었기에 거부하지 않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봅시다.”

수업의 끝을 알리는 교수님의 목소리가 강의실을 울렸다. 삼삼오오 친구들과 모여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재운도 함유재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저번에 내가 말한 거 생각해 봤어?”

“……진짜로 나 도와줄 수 있는 거야?”

“당연하지. 네가 원해서 걔네들이랑…… 그런 거 아니잖아.”

재운이 순간 터져 나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랫입술을 콱 깨물었다.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재운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에게서 잘못을 찾게 됐다.

내가 오메가니까.

히트 사이클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그 사달이 일어나게 만들었으니까.

……윤일우를 좋아하는 마음이 죄가 되니까.

수년을 친구로 지내 온 이들이 한순간에 돌변했다. 함유재는 따지고 보면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이였다.

함께 지낸 시간을 세면 그들과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서도 재운을 도와주려고 하고 있었다.

충분히 모른 척해도 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해 줘?”

날이 갈수록 제 존재 가치는 좆집으로 전락하는 상황이었다. 재운이 함유재를 올려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말 하면 웃긴 거 아는데……. 너 처음 본 날,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어. 같은 과인 거 알게 된 순간에는 정말 기뻤고.”

함유재의 목소리도 재운의 목소리 못지않게 떨리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듯 재운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윽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걔네가 너한테 하는 짓, 잘못된 거잖아. 보고서도 그냥 지나치면 사람이 아니지.”

부담스러워하지 말라는 듯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어 주는 얼굴에 재운이 꾸욱, 꾹 눌러 담았던 감정을 토해 냈다. 삽시간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지만 한번 터진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아이처럼 엉엉 우는 재운을 보며 함유재가 손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우는 사람을 달래 본 적이 없어 손길이 서툴렀다. 등을 쓰다듬는데 손끝이 떨렸다.

옷 위로도 재운의 가느다란 뼈대가 만져졌다. 처음 봤을 때보다도 마른 등에 함유재가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핸드폰 연락은 받을 수 있어?”

“……좀 위험해.”

윤일우가 재운의 핸드폰을 매일 검사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재운은 이미 윤일우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그에 대한 마음도 현재는 사랑인지, 증오인지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웠다.

구멍 속에 좆이 두 개나 쑤셔졌던 날, 재운은 부서졌던 마음이 또 한 번 짓밟히는 경험을 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그가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빨개진 눈동자가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핸드폰을 감시하는 장치를 설치했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거 줄게. 간단하게 메신저도 확인할 수 있고, 통화도 가능하니까 연락하는 데 문제없을 거야.”

“……고마워.”

재운이 함유재가 건네는 스마트 워치를 받아 들었다. 함유재가 알려 주는 사용 방법을 귀담아듣는데 심장이 두근두근 요란한 소리를 냈다.

손바닥에도 자꾸만 식은땀이 배어나 바지에 문질렀다.

자신은 누군가를 속이는 데 소질이 없었다. 그러나 지옥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윤일우를 비롯한 이들을 속여야만 했다.

재운은 함유재와 헤어지고 걸어가면서 워치가 든 가방을 꽈악 끌어안았다.

붉어진 눈가를 문지르는 손길에 그답지 않게 단호함이 묻어났다. 함유재가 내민 손길은 하늘이 마지막으로 재운에게 내려 준 동아줄 같았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재운은 영영 윤일우에게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 * *

“너네 학교 축제 장난 아니다.”

“잘 놀기로 유명하니까. 저쪽으로 가자. 무용과 애들이 주점 열었대.”

“어디?”

진대원과 송진오가 나란히 걸으며 왁자지껄한 주변을 둘러봤다. 재운은 조용히 윤일우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눈동자가 공허했다.

“……조심해.”

“고, 고마워…….”

몸은 이곳에 있지만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발치에 굴러다니는 캔을 보지 못한 재운이 휘청거렸다.

재운의 옆에서 걷고 있던 김본기가 재빨리 팔을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넘어졌을지도 몰랐다.

“오늘따라 멍하네.”

작은 소란에 뒤를 돌아본 윤일우가 재운에게 다가와 이마를 짚었다. 움츠러드는 어깨를 재운이 애써 폈다.

“그냥…… 조금 졸려서 그래……. 아래도 조금…… 아프고.”

재운의 걸음걸이는 눈에 띄지는 않아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을 만큼 어정쩡했다.

새벽까지 윤일우가 좆을 아랫구멍에 쑤셔 박은 결과였다. 기절하듯이 잠들었다가 수업도 나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1학년 때는 축제를 즐겨야 한다며 윤일우의 집으로 쳐들어온 진대원과 송진오에게 이끌려 학교에 나온 참이었다.

아직 해가 떨어지기도 전인데 학교 안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이미 술에 취한 듯 헤롱거리면서 오가는 학생들도 많았다. 형질인들 중에서 술에 취해 페로몬을 조절하지 못하는 이들이 넘쳐나 학교 안은 온갖 페로몬들로 가득했다.

페로몬에 유독 예민한 이들은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상태였다. 진대원도 팔을 들어 코를 막고 있었다.

“아…….”

“잠시만 이러고 있자.”

윤일우가 결국 가던 길을 멈추고 재운을 끌어안았다. 교정을 오가던 학생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꽂히듯이 날아들었다.

윤일우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운의 목덜미에 코를 파묻었다.

“……머리 아파.”

재운이 목덜미에 닿아 오는 뜨거운 숨에 마른침을 삼켰다. 윤일우와 가까이 몸을 대고 있자 그의 페로몬이 옅게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항상 강하게만 보이던 윤일우가 한 번씩 약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재운은 가슴께가 꽉 조여들었다. 수없이 윤일우에게 짓밟혔으면서도 죽지도 않고 살아나는 마음에 재운의 표정이 멍하게 풀려 갔다.

“둘이서 뭐 하냐? 영화 찍냐?”

앞서 걸어가던 진대원이 길 한복판에서 끌어안고 있는 재운과 윤일우에게 다가왔다.

재운이 본능적으로 윤일우의 허리에 가려던 손에 힘을 줘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애들 데리고 와. 가서 자리 잡고 있을 테니까.”

송진오는 무용과가 연 주점 쪽으로 먼저 걸음을 옮겼다. 진대원이 윤일우의 어깨를 툭 쳤다.

“페로몬 때문에 힘들면 넌 먼저 집에 가 있던가. 너 때문에 제대로 못 놀잖아.”

“……냉정하네. 나 집에 가면 재운이도 데려갈 거야.”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윤일우가 재운의 목덜미에서 고개를 들며 입매를 비틀었다. 관자놀이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하던 두통이 재운의 페로몬에 한결 가라앉았다.

진대원이 인상을 사납게 찌푸리자 김본기가 진대원의 팔을 붙잡았다. 윤일우가 재운의 어깨에 가볍게 팔을 둘렀다.

“가자. 술이라도 한잔 마셔야겠어.”

테이블 하나를 잡은 송진오가 팔을 들어 흔들고 있었다. 재운이 윤일우에게 끌려가면서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오늘.

함유재의 도움을 받아 도망가기로 한 날이 오늘이었다. 재운이 차오르는 긴장감을 줄이기 위해 손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주먹에 힘을 줬다.

“왜 이렇게 몸을 떨어?”

“어……?”

“오늘 진짜 이상한데. 새벽에 너무 괴롭혔나.”

윤일우가 팔에 닿아 오는 떨림에 인상을 미세하게 찌푸렸다. 단순히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기에는 재운이 이상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저도 모르게 팔에 힘이 들어갔다.

“아, 아파…….”

“재운아,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

“내가……?”

진짜 이상했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니 재운은 이마에도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윤일우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재운을 살펴봤다.

억눌린 재운의 페로몬이 불안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보통 자신이나 다른 애들이 섹스를 하려고 할 때 보이던 반응과 비슷했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히 축제를 즐기러 외출한 참이었다. 재운으로서는 반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들 재운과 하는 섹스에 반쯤 미쳐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일을 벌였던 적은 없었다.

술을 마시러 가는 상황인데 재운이 왜 이렇게 불안해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따라 계속 이상하게 행동했던 것도 같고.

최근 들어 본가에 자주 불려 가는 바람에 재운을 혼자 두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끔은 같이 듣는 학교 수업도 재운 홀로 보낼 때도 있었다.

재운이 순간순간 보였던 모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무언가를 숨기는 사람처럼 눈알을 굴린다든가, 땀이 잘 나지 않는 편인데 요즘따라 유독 식은땀을 흘린다든가, 지금처럼 목울대가 울리도록 침을 삼킨다든가.

“너희 굼벵이야? 왜 이렇게 늦게 와!”

상념에서 벗어난 건 송진오가 신경질적으로 외치는 소리 때문이었다. 윤일우는 곧 별일 아닐 거라며 불현듯 찾아온 예감을 지워 냈다.

구멍에 좆을 두 개 쑤셔 넣었던 날 이후로 재운은 배 속에 정액이 들어차면 불안해했다.

윤일우는 조만간 재운에게 피임 시술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며 발걸음에 속도를 더했다.

품에 감싸 안은 몸이 벌벌 떨리면서도 제게서 벗어나지 않는 게 묘한 충족감을 가져다줬다.

의심스러운 마음을 속 깊숙이 누른 건 재운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윤일우가 아는 재운은 절대로 제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 * *

“애들이 생각보다 괜찮네. 너네 학교 오메가들도 괜찮은 애들 많냐?”

“몰라.”

“모르긴 왜 몰라.”

“관심 없어.”

“미친. 진대원, 너 갈수록 점점 이상해진다. 대학교 가면 일주일마다 오메가 다른 애로 갈아 치운다고 호언장담할 때는 언제고.”

“내가 언제?”

진대원이 송진오의 말에 들고 있던 술잔을 탁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 위에 내리쳤다.

송진오는 진대원이 짜증을 내도 여유롭게 웃었다. 주점을 돌아다니는 오메가들을 바쁘게 훑는 시선이 집요했다.

언뜻 보면 다들 평범한 옷을 입은 것 같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군데씩 묘한 데가 있었다.

“저기요.”

“네. 혹시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그런 것보다 끝나고 뭐 해요?”

송진오가 곁을 스쳐 지나가는 여리여리한 남성 오메가의 팔목을 잡았다. 흠칫 놀라던 오메가는 송진오의 얼굴을 보고 경계심을 풀었다.

오메가가 입은 커다란 니트가 한쪽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자연스럽게 뼈가 두드러진 어깨가 드러났다.

송진오가 핥듯이 어깨를 시선으로 훑으며 눈매를 유려하게 휘어 보였다. 겉보기에는 흠잡을 데 없는 잘생긴 얼굴이었다.

“약속 없으면 저랑 술이라도 한잔할래요?”

“아…….”

오메가가 곤란하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더니 곧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절하기에는 송진오의 외모나 걸치고 있는 것들이 무시하기 힘들었다.

“핸드폰 좀…….”

송진오가 날카로운 인상이 무너지도록 웃으며 핸드폰을 오메가에게 건넸다. 핸드폰 화면에 적힌 번호에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끝나고 연락드릴게요.”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낸 오메가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수줍게 웃어 보였다. 하얗던 볼에도 붉은 물이 들었다.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송진오가 끝까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메가를 향해 흔드는 손길이 살랑거리는 봄바람처럼 다정했다.

“입꼬리 찢어지겠다.”

진대원이 그런 송진오를 향해 혀를 끌끌 차 보였다. 그러다 화장실에 다녀온다던 재운이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야, 이재운 화장실 간 지 꽤 되지 않았어?”

“큰 거라도 나오나 보지.”

송진오는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며 손에 들고 있던 맥주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병에 든 맥주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윤일우는 또 어디 갔어?”

“걔 요즘 바빠. 회장님이 들들 볶는 거 같던데. 아까 전화받으러 갔잖아.”

윤일우도 자리를 비운 지 오래였다. 진대원이 한쪽 다리를 테이블이 흔들리도록 달달 떨었다.

“아이씨. 너 왜 그래 자꾸. 분리불안증 걸린 개새끼냐?”

“아니, 느낌이 이상하다고…….”

진대원이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상하게도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나 이재운 좀 찾아 보고 올게. 너는 술이 떡이 되도록 처마시든지 말든지. 김본기, 윤일우 오면 나한테 전화 좀 하라고 해.”

“……응.”

조용히 술을 마시던 김본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대원이 서둘러 오메가 남성 전용 화장실로 향했다.

누가 봐도 알파인 진대원이 화장실 앞을 서성거리자 화장실을 드나들던 오메가들이 그를 힐끔거렸다. 일부는 그의 주변을 서성거리기도 했다.

“전화도 안 받고.”

진대원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통화 버튼을 재차 눌렀다. 신호는 가는데 상대방의 응답이 없었다.

“이재운!”

“지금 뭐 하시는…….”

“나와 봐.”

결국 진대원이 참지 못하고 화장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볼일을 보고 있던 오메가 학생들이 놀라서 진대원에게 소리쳤지만, 이미 그는 좌변기 칸을 하나씩 미는 중이었다.

“이재운, 여기 있어?”

쾅,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열다가 마지막 칸 안에만 사람이 있자 진대원이 그 앞을 가로막고 섰다.

“대답 좀 해 봐. 너 여기 있냐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초조함은 재운의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어야지만 사라질 기세였다. 그 정도로 진대원은 빠르게 평정심을 잃어갔다.

끼이익. 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는 소리에 드디어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진대원이 천천히 열리는 문틈에 손을 넣어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나 드러난 광경은 그가 기대하던 것이 아니었다.

“왜, 왜 이러세요…….”

낯선 얼굴의 오메가 남성이 인상이 사납게 찌푸려진 진대원을 보며 울먹였다. 작은 화장실 안을 가득 메울 듯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날 선 알파 페로몬도 한몫했다.

반사적으로 반응한 몸에 몸이 덜덜 떨렸다. 알파가 오메가에게 합의되지 않은 상태로 페로몬을 풀어 내는 건 범죄 행위였다.

“하, 씨발…….”

진대원이 화장실 안에 재운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화장실 밖으로 움직였다. 소란을 듣고 모인 건지 입구 앞은 몰려든 인파들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지금 경찰에다 신고했으니까 기다리…….”

“꺼져.”

몰려 있던 이들 중 한 명이 진대원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눈빛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진대원이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하며 윤일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야? 너 왜 이렇게 빡쳤어?”

헌팅한 오메가 학생과 은밀한 눈짓을 주고받던 송진오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대원의 표정만 보면 누군가를 죽일 기세였다.

“윤일우, 어디야.”

-다 왔어. 끊어.

진대원은 송진오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전화를 받은 윤일우에게 대뜸 위치를 물었다. 무섭게 굳은 표정과 달리 진대원의 말끝은 미세하게 떨리는 중이었다.

“재운이는?”

“너 이재운이랑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야?”

윤일우가 핸드폰의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며 다가왔다. 오자마자 이재운을 찾는 윤일우를 보며 진대원은 그도 재운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

“너희랑 같이 있는 거 본 이후로는 한 적 없지.”

“이재운, 화장실에 간다고 하더니 거기에 없어. 전화도 계속 안 받고.”

진대원의 말에 윤일우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가 핸드폰 통화 목록을 열어 재운의 번호를 눌렀다. 그도 인지하지 못하는 새에 엄지손가락 끝이 떨렸다.

“안 받는다니까?”

“뭐야, 이재운 드디어 도망간 거야?”

심각한 두 사람과 달리 송진오는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친구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한 번쯤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이재운의 성격상 지금까지 버틴 것도 용했다. 다들 예견 가능한 일이었을 텐데 충격에 빠진 친구들의 표정에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심약한 애를 극한까지 몰아간 건 그들이었다.

“신 비서님, 지금 당장 사람 풀어서 이재운 좀 찾아요.”

“추격전 찍는 건가. 이재운 잡히면 장난 아니겠는데.”

송진오가 피부를 따끔따끔하게 울리는 윤일우의 페로몬에 잠시 재운의 안녕을 빌었다.

재운이 어떻게 도망간 건지는 몰라도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윤일우가 집안의 힘을 써서 사람을 풀기 시작하는 순간, 재운이 아프리카 오지에 숨지 않는 이상 꼬리는 밟히기 마련이었다.

“나는 먼저 간다. 이재운 잡히면 알려 줘.”

송진오가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치를 보아 하니 진대원과 김본기도 집안의 힘을 빌리려는 모양이었다.

세 명이 작정하고 이재운의 뒤를 쫓는 상황이었다. 자신 한 명은 그동안 여유롭게 구경하면서 새로 낚은 물고기나 잡아먹고 있어도 충분했다.

* * *

“강원도로 넘어가는 도로에서 마지막 행적이 찍혔습니다. 이후로는 차를 바꿔 탄 것 같습니다. 추적이 되지 않는 차로요. 지금 사람을 풀어서 포위망을 좁히고 있습니다.”

“……강원도라.”

윤일우가 소파의 팔걸이를 툭툭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입매를 비틀었다. 윤일우의 앞에 서 있던 신 비서가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윤일우에게서 흘러나오는 살기 어린 페로몬에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던 때부터 모셔 온 사람이었다. 알파로 발현한 이후에도 좀처럼 페로몬을 내보이지 않아 이토록 선명하게 페로몬을 맡은 건 처음이었다.

위치상 수많은 알파들을 만나 봤다. 정재계에서 한자리씩 차지한 인물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현재 윤일우만큼 압도적인 페로몬을 보인 사람은 없었다.

“내일까지 시간 드릴게요. 자정 지나기 전까지요. 내일 이후가 되면 제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것 같거든요.”

윤일우가 신 비서를 보며 눈매를 휘어 보였다. 언뜻 보면 선량해 보일 정도로 다감한 미소였지만 색소 옅은 눈동자는 여느 때보다 살기가 짙었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나가 보세요.”

“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윤일우가 억누르고 있던 페로몬을 완전히 해방시켰다. 신 비서는 윤일우가 페로몬을 다 풀어낸 것으로 알지만 아니었다.

요즘처럼 페로몬을 조절하는 게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 방금 전에도 신 비서가 있는 자리에서 페로몬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

방의 주인은 사라졌는데 여전히 방 안에는 재운의 페로몬이 옅게 남아 있었다.

재운의 페로몬을 인식한 순간 알파의 페로몬이 거센 폭풍우를 만난 조각배처럼 요동쳤다.

“재운아,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윤일우가 두 손을 들어 마른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재운을 한계까지 몰아가면서도 한 번도 그가 도망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자신이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하는 건데.”

내가 너를 풀어 줬어. 그렇지?

마치 앞에 재운이 앉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윤일우가 선량한 미소를 지었다.

주먹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눈앞에 재운이 있다면 가느다란 목을 손에 넣고 하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도록 조르고 싶었다.

“누가 도와준 걸까…….”

그러다 재운을 도와준 누군가에게 생각이 미쳤다. 재운 혼자서는 이렇게 용의주도하게 도망가지 못한다.

분명 조력자가 있는 거였다.

“……함유재라고 했나.”

재운의 주변 인물은 한정적이었다. 새롭게 재운의 곁에 다가온 이는 딱 한 명뿐이었다.

“신 비서, 한국 대학교 경영학과 함유재에 대해서 알아 오세요. 지금 당장.”

언뜻 기억에 함 씨 성을 가진 중견 기업 기업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함유재가 나이를 먹으면 그대로 닮아 갈 듯한 인상의 중년 남자였다.

“제대로 알려 줘야겠네. 남의 것을 탐내면 어떻게 되는지.”

윤일우가 신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추가 지시 사항을 내렸다. 집안의 힘을 제대로 쓰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들 윤일우의 배경에 알아서 기었다. 윤일우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었다.

신 비서도 윤일우가 그만큼 현재 평정심을 잃은 상태라는 걸 알아차렸다.

―최대한 빨리 알아보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윤일우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숨을 깊게 내쉬었다.

어느 순간부터 재운은 항상 제 곁에 있었다. 처음으로 느껴 보는 부재감에 가슴 한구석에 휑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

이성이 뚝뚝 끊어질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곧 화는 비정상적인 그리움에 힘을 잃어 갔다.

“……어디 있어, 이재운.”

* * *

“재운아, 잘 지내고 있었어?”

“……이게 다 뭐야?”

“별장을 오랫동안 비워 놔서 기본적인 생필품 말고는 없잖아. 이것저것 사 왔어.”

재운이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에 현관문을 열었다. 함유재가 양손에 짐을 잔뜩 들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어젯밤에 별장에 도착한 후로 재운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윤일우와 친구들에게서 벗어났다는 해방감보다도 불안한 마음이 더욱 컸다.

윤일우가 전화를 받으러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화장실을 간다고 말하며 도망쳤다.

함유재가 미리 알려 준 장소로 향하면서도 재운은 당장이라도 목덜미를 붙잡힐까 봐 바들바들 떨어야만 했다.

간신히 함유재가 보낸 사람과 만나 강원도로 이동했다. ……끔찍했던 일이 벌어졌던 장소와 비슷한 별장이었다.

‘여기에서 지내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별장까지 데려다준 사람과 인사하고서 별장의 1층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시간을 죽였다. 큰 창을 통해 들어오던 달빛이 숨을 죽이다 일어나는 해에게 밀려 사그라들 때까지.

“아직 경찰 쪽에 신고는 안 한 것 같아. 핸드폰은 꺼 놨지?”

“……응.”

함유재가 쇼핑백 두 개는 소파 위에 두고, 생필품이 든 봉지는 부엌 식탁 위에 올려 뒀다.

재운이 함유재의 곁에 다가와 그가 풀어 놓는 식료품들을 하나하나 냉장고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거.”

“아…….”

함유재가 쇼핑백 가장 안쪽에 있던 것을 꺼내 재운에게 건넸다. 직사각형의 상자 위에는 ‘오메가 히트 사이클 억제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걸로 사 왔어. 혹시 모르니까.”

“……고마워.”

재운은 그날 이후로 히트 사이클이 온 적이 없었다. 보통 오메가들은 첫 히트 사이클 이후 일정한 주기로 히트 사이클을 겪는데도 그랬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챙겨 줘서 고마웠다. 자신이 챙겼어야 하는 부분인데도 경황이 없어 챙기지 못했다.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거야.

함유재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지만 그 또한 알파인 건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또다시 히트 사이클이 터진다면 그날의 악몽이 재현될 수도 있었다.

재운은 스스로가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무의식중에 힘이 들어간 손아귀에서 약 포장지가 우그러졌다.

“어디 아파? 억제제는 일단 하나만 사 오기는 했는데. 다음번에 올 때 더 사 올게. 이거는 다른 비상약들이야.”

함유재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재운의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으며 다른 약들도 꺼냈다.

종합 감기약에 진통제까지. 약국에서 파는 약들을 종류별로 사 온 듯했다.

“……내가 이 은혜는 꼭 갚을게.”

재운이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입술이 희게 질리도록 깨물었다.

마음 편히 눈도 붙이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편안한 상황이었다.

언제, 어디에서 두꺼운 좆에 쑤셔질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은 생각보다도 커다랬다.

“친구 사이에 은혜는 무슨. 여기에서 다른 건 걱정하지 말고 푹 쉬고 있어.”

자신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는 듯 웃어 보이는 함유재에게 재운도 작게나마 미소를 지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웃어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윤일우를 비롯한 이들에게 그나마 고마워해야 하는 점은 억지로 재운이 웃도록 만들지는 않았다는 거였다.

그랬기에 재운의 표정은 내내 우울하게 가라앉아 있거나 고통과 슬픔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입가의 근육을 움직이는 게 어색했다. 재운이 힘겹게 입매를 끌어 올렸다.

“밥 아직 안 먹었지? 내가 요리할 수 있는 게 몇 개 없기는 한데……. 그래도 먹을 만할 거야.”

함유재가 입고 있던 셔츠의 소매 단추를 풀어 끌어 올렸다. 움직일 때마다 적당히 근육이 잡힌 팔 위로 핏줄이 도드라졌다.

알파다운 팔에 누군가가 떠오르려고 해 재운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도망쳤으면서도 그를 떠올리는 자신이 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김치볶음밥 괜찮아?”

“……응.”

사실 재운은 그동안 특정한 음식을 먹고 싶어서 먹은 게 아니라 먹어야 해서 먹었다.

입맛도 없었지만 끼니를 거르면 윤일우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윤일우는 재운을 괴롭히면서 재운의 건강에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억지로 먹은 음식을 재운의 몸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팔목이 가느다래지는 이유였다.

“나도 도와줄게.”

재운이 함유재의 곁에 서서 그가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손질하는 걸 도왔다.

“도와줘서 고마워. 그러면 이거 햄만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줄래? 칼질 괜찮아?”

“응.”

손을 씻고 난 후 재운이 함유재가 도마 위에 올려 준 칼을 들어 천천히 햄을 썰기 시작했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인형이 아닌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윤일우네 집에서 생활할 때 재운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요리도, 청소도 일하시는 분이 따로 있었다.

재운은 그저 윤일우가 밥을 먹으라면 먹고, 섹스하고 싶어 하면 구멍을 내주고, 학교를 가라면 가는 생활을 이어 갔다.

화려한 집 안에서 재운은 윤일우가 키우는 애완동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주인의 허락이 없으면 제 마음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손 조심해.”

함유재가 햄을 제외한 재료들을 손질하며 재운을 힐끔거렸다. 재운의 손에 들어간 칼날이 유독 날카롭게 보였다.

칼날이 햄을 파고들어 도마의 단면과 만날 때마다 재운이 혹여 손가락을 베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손바닥에 식은땀마저 배어났다.

재운을 두르고 있는 아슬아슬한 분위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몰랐다.

지금 이렇게 일상생활을 유지하다가도 재운이 칼을 들어 팔목을 그을 것 같은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재료를 써는 함유재의 손길이 빨라졌다. 조금이라도 빨리 재운의 손에서 칼을 떼어 놓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재운아, 나머지는 내가 할게.”

“거의 다 했는데…….”

“이제 재료만 볶으면 되니까. 그러면 여기에 앉아서 나 요리하는 거 지켜봐.”

함유재가 재운이 반쯤 썬 햄을 가져가 순식간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크기가 제각각인 재운이 썬 햄들과 달리 모두 일정한 크기였다.

“이거 마시고 있어.”

아예 냉장고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 재운의 앞에 놓아 줬다. 재운이 표면에 물방울이 맺힌 음료수병을 만지작거렸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함유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불안함으로 일렁이던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다 됐다. 비주얼 괜찮지?”

“응. 파는 것 같아.”

함유재가 완성된 김치볶음밥을 그릇 두 개에 나누어 담았다. 반숙으로 익은 계란 프라이를 올리고 파슬리 가루까지 뿌리자 재운의 말대로 파는 것 못지않았다.

“뜨거우니까 한 김 식혀서 먹어.”

재운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천천히 김치볶음밥 한 수저를 떴다. 윤일우네 집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객관적으로 비교하면 더 훌륭했다. 그러나 지금 먹는 음식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음식의 맛이 제대로 느껴졌다. 그곳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모래를 씹은 것처럼 까끌거리는 느낌이 강했는데.

“……울 정도로 맛있어?”

“으, 응…….”

재운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던 함유재가 당황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티슈를 찾아와 재운에게 건네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밥을 먹는 재운을 보는데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 입안이 바짝 말랐다.

“……내일도 해 줄게.”

“고마, 워…….”

재운이 함유재가 건넨 물잔을 받아 들어 물을 마셨다. 주먹 쥐어 잡은 숟가락이 흔들리며 밥알을 사방으로 떨어뜨렸다. 그래도 재운은 먹는 걸 멈추지 않았다.

꾸역꾸역 접시 한 그릇을 다 비워 가면서 눈물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눈 빨개졌다. 이것 좀 대고 있어.”

함유재가 수건에 차가운 물을 묻혀 재운에게 건넸다. 재운이 부어오른 눈두덩이에 수건을 올리며 함유재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시선에서는 재운이 미친 사람일지도 몰랐다. 밥을 먹다가 뜬금없이 오열했던 모습이 떠오르자 귓불이 달아올랐다.

“……미안해. 갑자기 울어서.”

“그게 왜 미안한 일이야. 나는 우리가 한층 가까워진 거 같아서 좋은데.”

함유재는 재운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정하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눈물을 쏟아 내 부어오른 눈두덩이가 발갰다.

재운이 어느 정도 진정한 듯 보이자 함유재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계속해서 묻고 싶었으나 선뜻 묻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어? 걔네한테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은 거지?”

“……잘 모르겠어.”

함유재가 묻는 질문에 재운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고달픈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함유재의 도움을 받아 피신했다. 그러나 평생 윤일우를 안 보고 살 생각이냐고 물으면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변할 수가 없었다.

재운에게 윤일우는 하나의 세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날 이후로 버티고 버틴 것도 재운에게 그런 짓을 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윤일우라서였다.

그만큼 배신감도 컸지만 가해자가 윤일우였기 때문에 재운은 이만큼이나 버티는 게 가능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재운은 진즉에 숨을 끊어 내려고 했을지도 몰랐다.

“일단은 여기에서 지내면서 고민해 봐.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도와줄 테니까.”

“……응.”

모든 게 막막한 상황이지만 재운은 함유재의 말에 조금은 편히 숨을 고를 수가 있었다.

대한민국에 있는 한 그들의 눈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언제까지고 함유재의 도움을 받아서 숨어 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잠깐이지만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윤일우의 곁에서 재운은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의 눈치를 보기 바빴고, 강간이라도 당하는 날은 한동안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몸을 회복하는 데 온 기력을 쏟아야만 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내일도 이 시간에 올게.”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함유재가 식탁 위에 늘어진 접시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재운도 자리에서 일어나 함유재를 도왔다.

“불편할 거 같아서 일하는 분은 따로 안 불렀어.”

“……고마워.”

“고맙다는 말 매번 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재운이 함유재에게 할 수 있는 건 고맙다는 인사뿐이었다. 돈을 줄 수도 없었고, 그 외에 다른 도움을 줄 만한 능력도 없었다.

잠시 보잘것없는 몸뚱이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고개를 흔들어 서둘러 지워 냈다. 윤일우에게서 벗어난 지금, 자신이라도 제 몸을 소중히 여겨야만 했다. 재운은 의식적으로도 그렇게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서우면 전화해. 알겠지?”

“……응.”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말에도 재운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함유재가 자신이 최대한 부담스러워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농담을 하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현관문까지 함유재를 배웅하고 재운이 거실로 들어왔다. 혼자 남게 되자 시야에 들어오는 장면 위로 묵혀 둔 기억이 떠오르려 했다. 불안한 눈동자가 주변을 끊임없이 살폈다.

“……여기는 안전해. 괜찮아.”

재운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괜찮다고 말을 하며 1층에 있는 침실 하나를 찾아 들어갔다.

잘 정돈되어 있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적당한 실내 온도인데도 이상하게 몸에 한기가 들었다.

분명히 혼자 있는 장소였다. 그런데도 재운은 누군가 닫힌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윤일우에게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전혀 벗어나지 못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꿈속에 나오지 마, 제발…….”

재운이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빌었다. 윤일우가 제게 한 짓을 포장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재운의 무의식은 자꾸만 재운에게 윤일우와 함께했던 추억들을 꺼내 보였다.

윤일우는 여전히 네 세상이니 외면하지 말라는 듯이.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방 안에 고른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새하얀 커튼이 쳐진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만이 재운의 곁을 지키는 밤이었다.

* * *

“……재운아, 아무래도 오늘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할 것 같아.”

“무슨 일…… 생긴 거야?”

“아, 그런 건 아니고……. 여기보다 다른 곳이 더 안전할 것 같아서.”

재운은 버터를 발라 구운 토스트를 깨작거리다가 함유재의 말에 시선을 들었다.

함유재가 그답지 않게 초조해하며 재운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재운이 그의 도움으로 도피 생활을 한 지도 여러 날이 흘렀다.

사실 재운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매일매일 무거운 침묵 속에 잠겨 살았다.

함유재가 별장에 들르는 시간만이 유일하게 재운이 움직이고, 말하고,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이외의 시간에는 악몽이 떠오르지 않도록 일부러 생각을 죽였다.

“그래. 밥 먹고 바로 이동할까?”

“……응.”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재운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함유재에게 일방적으로 의지해서 이어 나가는 도피 생활이었다.

별장 주인인 그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럴 수 없다며 고집을 부리기는 힘들었다.

재운은 함유재와의 대화를 통해 결국 이 관계 또한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은 정말……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버림받아 보육원에 간 것부터 잘못된 걸까.

원장에게 밉보여서 숨 쉬는 것도 불쾌하다는 이유로 모진 폭력을 당했던 게 제 탓이었을까.

한때는 그때 그런 일이 있었기에 윤일우와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모르겠다.

재운은 제 마음인데도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문제를 들여다보는 절망감이 들었다.

입에서 씹고 있는 토스트의 맛이 고무나 다를 바 없이 느껴질 즈음 재운이 식기를 내려놓았다. 함유재도 동시에 식사를 끝냈다. 그의 접시 위에 담긴 토스트도 재운의 것처럼 먹은 흔적이 거의 없었다.

“치우는 건 다른 사람이 와서 해 줄 거야. 우리는 바로 나가자.”

재운이 결국 접시를 치우기 위해 일어났을 때였다. 함유재가 재운의 접시와 제 접시를 함께 집어 들었다. 함유재의 손에 들린 접시들이 부딪치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함유재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재운의 눈치를 살폈다. 개수대 안에 접시를 놓은 그가 바지에 손을 문질렀다. 접시를 들 때 묻었던 버터 자국이 바지에 새겨졌다. 평소 깔끔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행동이었다.

“혹시 짐 챙길 거…… 있어?”

“아니.”

재운의 짐이라고 해 봐야 함유재가 사다 준 게 다였다. 재운이 차 키를 챙겨서 별장을 나서는 함유재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그저 주차되어 있는 차를 향해 걸어가는 거였다. 하지만 재운은 이상하게도 스스로 진창을 향해 걸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함유재가 오늘 별장에 들어온 순간부터 느껴지던 묘한 분위기가 지금은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목을 죄어 오는 듯했다.

“혹시 지금 가는 데가 어디인지…… 물어봐도 돼?”

재운이 느려지던 걸음을 완전히 멈추고 이미 운전석 문을 열고 있는 함유재에게 물었다. 자그마한 목소리였지만 주변이 고즈넉했던 터라 재운의 목소리는 함유재에게 여과 없이 전달됐다.

그러나 함유재는 재운의 별거 아닌 질문에도 한참을 대답하지 못했다. 재운의 눈조차 쳐다보지 못한 채 그는 반쯤 열린 차 문을 매만지기만 했다.

죄책감으로 얼룩진 그의 얼굴에 재운이 조금씩 발걸음을 뒤로 물렸다. 재운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지는 등허리를 느끼며 주변을 둘러봤다.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한 별장이었다. 별장 주변을 돌아다닌 적은 없지만 넓은 창을 통해 주변에 인가가 없다는 것 정도는 파악했다.

“나, 나…… 가 볼게.”

“……재운아!”

재운이 무작정 몸을 돌려 산속을 향해 뛰어들어 갔다. 뒤에서 함유재가 놀란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는 게 들려왔지만 오히려 땅을 박차는 발에 힘을 더했다.

애초에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던 걸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제 의지와 힘으로 벗어났어야만 했다. 지금이라도…… 그래야만 했다.

재운이 무성한 풀을 헤치고 어딘지도 모를 목적지를 향해 도망쳤다. 날카로운 가지에 얼굴이 스치고, 옷 위로 드러난 피부를 할퀸 풀들이 생채기를 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재운은 힘이 풀리려는 다리에 힘을 줘 버텼다.

“허억, 헉…….”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속눈썹에 맺힌 땀에 눈이 시큰거려 재운이 눈가를 손등으로 훔쳤다.

거친 숨에 갈비뼈가 뻐근할 정도였지만 재운은 무력하던 그동안의 모습이 거짓말인 것처럼 몸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불, 빛…….”

다행히 하늘이 재운을 버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저 멀리서부터 보이는 불빛에 재운이 무너지려는 다리에 힘을 불어넣었다.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면 경찰서로 향할 생각이었다. 재운은 영상이 풀리는 게 차라리 낫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함유재의 도움을 받아 도망치면서 학교나 다른 일상생활에 대한 미련을 어느 정도 버렸다.

영상이 풀리면…… 사회에 얼굴을 내놓고 다니기 힘들겠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게 아예 불가능해질지도 몰랐다. 자극적인 이슈가 넘쳐나는 세상이었다.

별 볼 일 없는 오메가의 섹스 동영상은 잠깐 이목을 끌었다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게 분명했다. 그깟 영상이 풀리는 게 뭐라고, 지금까지 바보처럼 끌려다닌 걸까.

재운은 더 늦기 전에 용기를 내기로 결심했다.

결심한 마음처럼 당장이라도 까무러치려는 몸에 힘을 줘 불빛에 다가갔다.

“저, 좀…… 도와주…….”

재운이 본 불빛은 정차된 차에서 흘러나오는 헤드라이트였다. 차 옆에 서 있는 사람에게 경찰서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려던 재운의 입술이 일자로 굳어 버렸다.

어렵게 먹은 마음이었다. 시체처럼 살다가 이제라도 사람답게 살아 보려고 필사적으로 내딛은 걸음이었다.

“오랜만이야, 재운아.”

길쭉한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를 들어 입에 문 윤일우가 재운을 향해 생긋 웃어 보였다. 불씨에서 피어오른 뿌연 연기가 윤일우의 얼굴 주변을 맴돌다 사라졌다.

당장 화보로 찍어도 될 만한 화사한 미소였다. 다만 그 미소를 목격한 재운은 심장이 뜯겨 나간 사람처럼 눈꺼풀조차 깜박이지 못했다.

윤일우의 주변으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도 보였다. 재운이 다시 등을 돌려 도망간다고 하더라도 금세 붙잡히고 말 게 분명했다.

“어, 어떻게…….”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어. 네가 도망갔다는 사실이.”

재운이 성대를 쥐어짜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는 순간 윤일우가 물고 있던 담배를 땅에 뱉었다.

주홍빛 불씨를 신발 밑창으로 지그시 짓누른 그가 느긋한 발걸음으로 재운을 향해 걸어갔다.

창백하게 질린 손가락 끝이 움찔 떨렸으나 그뿐이었다. 재운은 보이지 않는 끈이 제 몸을 칭칭 감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차가운 시선에 숨이 막혔다. 실제로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재운이 끄윽, 끅, 억눌린 숨을 토해 냈다.

“나한테 약속했잖아.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절대로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커다란 손이 식은땀에 젖어 더욱 새까매진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애정 어린 손길이었다. 그런데도 재운의 커다란 눈망울은 순식간에 습한 눈물로 얼룩지고 말았다.

“말뿐인 거짓이었어?”

반듯한 이마에 제 이마를 마주 댄 윤일우가 가느다란 눈매를 유려하게 휘었다.

코끝이 스칠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동시에 재운은 제 몸을 덮쳐 오는 알파의 무지막지한 페로몬을 느꼈다. 잘 버티고 있던 무릎이 꺾였다.

땅바닥에 주저앉는 재운을 따라 윤일우가 몸을 굽혔다.

“너는 나한테 그런 약속을 하면 안 됐어. 내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을 거야. ……좋아한다고 고백만 안 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사달이었다고.”

“끄윽, 흑…….”

재운이 후드득 눈물을 떨어뜨리며 몸을 벌벌 떨었다. 그동안 윤일우가 제게 쏟아 냈던 페로몬은 장난이었다.

성적인 의미도 묻어 있지 않고 그저 생명체를 지르밟기 위한 의도였다. 하지만 재운의 몸은 그런 알파의 페로몬마저도 게걸스럽게 받아먹으며 입구를 축축하게 적셨다.

강간을 당할 때처럼 쾌락과 고통이 동시에 느껴졌다.

윗니로 짓씹은 아랫입술에서 피가 터졌다. 윤일우는 직접적으로 손을 올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재운은 짧은 시간 만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사, 살려 줘…….”

재운이 버티지 못하고 윤일우에게 애원했다. 힘이 풀려 버린 다리를 움직여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손바닥이 닳도록 비볐다. 윤일우는 재운을 정말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었다.

그동안 윤일우가 얼마나 자신을 온기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던 건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차갑다고 생각했던 시선마저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시간들이 신기루인 것처럼 죽음이 눈앞에 드리우자 살고 싶었다.

사람 마음이 이토록 간사하다고, 좌절할 여유도 없었다. 재운의 얼굴에서 붉은 기가 사라지고 새파랗게 질려 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윤일우가 움직였다.

“으윽…….”

재운의 멱살을 잡은 윤일우가 그대로 재운을 뒤집었다. 흙먼지가 부옇게 두 사람 주변으로 피어올랐다.

“콜록, 콜록…….”

재운이 뜨끈해진 눈시울에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쉴 때였다. 아래에서 휑한 느낌이 났다. 다음에 이어질 일이 무엇인지 예상이 갔다.

“이, 일우야……?”

“여기가 왜 이렇게 젖었어?”

“아…….”

푸욱, 예고도 없이 굵직한 손가락이 입구를 파고들었다. 재운이 놀라 눈을 홉뜨고 뒤를 돌아봤지만, 곧 커다란 손에 목 뒤가 잡혀 재차 흙바닥에 얼굴이 처박혔다.

숨이 막혀 반사적으로 호흡을 하고 말았다. 재운은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흙에 연신 콜록거리며 손을 뒤로 뻗었다.

애처로운 손길이 윤일우의 상체 곳곳에 닿았지만 윤일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윤일우는 묵묵히 손가락을 물이 흘러나오는 구멍에 쑤실 뿐이었다.

“하, 지 마……. 제발…….”

눈물로 얼룩진 시야에 다른 사람의 신발이 보였다. 재운의 뒤를 쫓아오던 함유재인지, 아니면 윤일우가 데려온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재운이 윤일우에게 억지로 당하는 장면을 타인이 보고 있다는 거였다.

“그동안 너한테 너무 부드럽게 대해 준 것만 같아서 후회를 많이 했어.”

손가락이 하나에서 세 개로 늘어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윤일우의 페로몬은 여전히 성적인 의미보다는 재운을 징벌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알파의 페로몬에 반쯤 미쳐서 애액을 흘리는 구멍이 아니었다면 찢어졌을지도 모를 만큼 무지막지한 손길이었다.

“아악……!”

“힘, 풀어. 구멍 찢기고 싶지 않으면.”

손가락 세 개가 들락날락해도 윤일우의 성기 둘레와는 비교하기가 힘들었다.

어느 정도 구멍이 풀렸다 싶은 순간 윤일우가 성기만을 꺼내 그대로 재운의 구멍에 맞췄다. 고통에 튀어 오르는 얼굴을 윤일우가 재차 바닥으로 처박았다.

바닥에 강하게 부딪힌 머리에서 아찔한 통증이 일었다. 하지만 아래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애액이 흘러나왔다고는 하나 재운이 공포에 질린 게 문제였다. 좁은 구멍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자꾸만 수축했다.

윤일우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무자비한 힘으로 성기를 망치처럼 박아 넣었다. 투둑, 결국 견디지 못한 살이 찢어졌다.

재운이 손톱으로 흙바닥을 긁어내렸다. 조금이라도 제 몸을 꿰뚫은 살 꼬챙이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허리를 뒤로 물렸다 그대로 처박는 움직임에 손톱이 벌어지도록 바닥을 움켜쥐는 걸로 고통을 참아야만 했다.

좁은 내벽이 억지로 벌려졌다. 깊숙이 파고드는 성기는 살과 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뜨겁게 달궈진 쇠 파이프 같았다.

“흐, 아, 아파…….”

재운이 발바닥에 짓밟힌 벌레처럼 바르작거리며 울부짖었지만 윤일우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원초적인 행위였다. 사람 간에 나누는 정사가 아니라 발정 난 짐승이 붙어먹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몸부림치는 재운을 짓누르며 윤일우는 기어코 좆을 끝까지 밀어 넣었다. 홀쭉한 아랫배 위로 성기의 윤곽이 희미하게 비칠 만큼 깊은 삽입이었다.

이미 찢어진 구멍이 거친 삽입에 재차 찢어져 피를 냈다. 바들바들 떨리는 허벅지를 타고 새빨간 선혈이 흘러내렸다.

가느다란 허리를 양손으로 잡은 손아귀가 억셌다. 재운은 고정된 상태로 윤일우의 밑에서 하염없이 흔들렸다.

바지가 무릎에 걸쳐져 있었지만 윤일우가 뒤에서 박을 때마다 무릎이 천에 감싸인 채 바닥에 쓸려 쓰라렸다.

얼굴에서도, 손에서도, 무릎에서도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가장 아픈 건 아래였다. 좁은 내벽이 억지로 벌어질 때마다 목 뒤가 식은땀으로 젖어 들어갔다.

왜……. 도대체 왜…….

그러나 재운을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건 윤일우가 아니었다. 이 와중에서도 발기한 채 꺼떡거리는 제 좆이었다.

재운은 아프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런데도 좆은 제 주인과 달리 윤일우의 좆이 몸속을 파고들 때마다 선액을 질질 흘려 댔다.

커다란 좆은 윤일우가 의도하지 않아도 재운의 성감을 있는 대로 짓눌렀다. 고통 속에서 느껴지는 쾌감을 재운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좇을 수밖에 없었다.

본능대로 몸이 반응한 건지만 재운의 눈동자에서는 생기가 꺼져 나갔다. 땅바닥을 긁어내리던 손에서도 힘이 빠졌다.

반항할 의지조차 꺾인 몸은 인형처럼 반응이 적었다. 여전히 윤일우의 좆 둘레만큼 늘어난 내벽은 좆을 꽉꽉 조여 물었다. 그러나 윤일우가 원하는 건 시체 같은 반응이 아니었다.

재운의 변화를 기민하게 눈치챈 윤일우의 눈빛이 서늘하게 굳었다.

“으억…….”

윤일우가 재운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헐벗은 하체와 달리 옷을 입고 있는 상체가 하늘에 박혀 있는 달처럼 휘었다.

퍼억, 퍽, 퍽, 살갗이 맞붙는 소리가 들릴수록 거대한 좆이 재운의 안쪽 깊은 곳까지 틀어박혔다. 윤일우는 아예 재운의 성감대를 부수듯이 짓누르며 좆을 박았다. 심장까지 좆을 쑤실 생각으로 내벽을 있는 대로 헤집었다.

어마어마한 통증과 함께 버티기 힘든 쾌락이 재운의 전신을 짓누를 때까지 윤일우는 멈추지 않았다.

“흐, 아아…….”

“재운아, 질질 쌀 만큼 좋아?”

질척한 액이 선단에 고였다가 흙바닥으로 투욱, 툭 떨어져 내렸다. 사정의 여운으로 경련이 이는 사람처럼 재운이 몸을 벌벌 떨었다.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을 놓자 재운이 바닥으로 힘없이 쓰러져 내렸다.

윤일우가 상체로 재운을 감싼 뒤에 여전히 빳빳한 성기로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린 내벽을 쑤셔 박았다.

뇌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재운이 까끌까끌한 바닥에 이마를 문질렀다. 이마 위에 생채기가 나는 것조차 시원하다고 느낄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뜨거운 좆 끝이 한 부분을 쑤시자 고통에 뒤섞인 쾌락이 전신으로 번져 나갔다. 윤일우가 재운의 허리 앞으로 팔을 둘러 일으켜 세웠다. 재운 고개가 줄기 꺾인 꽃처럼 흔들렸다.

이마에 맺힌 핏방울이 핏줄기가 되어 하얀 얼굴 위를 가로질렀다.

“임신은 왜 걱정하는 거야?”

“으흑, 윽…….”

윤일우가 정액이 흘러내린 채 번들거리는 재운의 성기를 손으로 인정사정없이 주물렀다.

“아, 아악…….”

재운이 허리를 뒤틀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질렀다. 찢어진 구멍처럼 윤일우는 재운의 성기도 망가뜨리려는 게 분명했다. 좆이 고간에서 떼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무자비했다.

“하아……. 내가 이렇게 싸 줘도 임신 안 했잖아.”

커다란 손이 성기를 우그러뜨리듯 쥐어짠 순간이었다. 재운의 내벽이 꿈틀거리며 윤일우의 좆을 빠듯하게 조여 왔다. 눈물로 얼룩진 새까만 눈동자가 초점을 잃었다. 버틸 수 있는 감각이 아니었다.

무너져 내리는 정신과 별개로 재운의 하체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 내벽이 수축하면서 안에 가득 들어찬 좆을 쥐어짜듯이 조였다.

그 즈음에는 윤일우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윤일우가 재운이 곁에 없는 동안 모아 놨던 정액을 아낌없이 재운의 안쪽에 싸질렀다.

사정하는 와중에도 들락날락하는 성기의 움직임을 따라 쿨쩍거리는 소리가 공간을 자욱하게 울렸다. 접합부에서 분홍빛으로 물든 정액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폭력적으로 쑤셔 박던 방금 전과 달리 느릿하게 움직이는 좆에 재운이 바닥에 뺨을 댄 채 숨을 골랐다. 종아리에 쥐가 난 것처럼 뻐근한 감각이 일었다.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성기에서는 둔중한 통증이 울렸다. 느릿하게 눈을 깜박일 때마다 조각난 마음이 눈물과 함께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재운아.”

윤일우가 다정한 목소리로 재운의 이름을 불렀다. 재운이 대답하기 위해 입술을 떼었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인 와중에서도 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재운의 목에서는 바람 빠진 소리만 흘러나왔다.

“이재운.”

“흐윽…….”

재운이 대답하지 못하자 윤일우가 입구에 걸쳐져 있던 좆을 순식간에 안쪽까지 밀어 넣었다.

닫혀 있는 자궁구에 좆 대가리가 닿자 재운의 몸이 훅 앞으로 쏠렸다. 재운이 피투성이가 된 손끝으로 바닥을 박박 긁어내렸다. 귀두가 자궁 입구를 뭉개는 감각은 지독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거기에다 윤일우가 하려는 행위가 뭔지 알 것 같았다. 윤일우는 지금 재운의 자궁 안에 정액을 넣으려고 하는 거였다. 임신만은 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재운에게 없던 힘도 끌어다 줬다.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는 작은 머리통을 보면서도 윤일우의 얼굴은 싸늘했다.

“임신해도 뭐가 걱정이야. 아기 따위 죽여 버리면 그만인데.”

높낮이가 거의 없는 저음이 재운의 귓속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재운은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이 환청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새까만 밤하늘 아래에서도 윤일우의 눈동자는 색소가 옅었다. 사람의 눈동자라기보다는 흠 하나 없는 보석 같았다.

끔찍한 말을 했다는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선량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생명이었다. 재운도 원하지 않고, 재운의 몸속에 정액을 싸지르는 그들 또한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의 생명이었다.

충격에 빠져 흔들리는 커다란 눈동자를 보면서도 윤일우는 별다른 동요 없이 상체를 굽혔다.

재운의 등에 상체를 바짝 붙이고 눈물 젖은 눈가에 입술을 붙이는 행위가 다정한 연인 같았다.

“아…….”

그러나 이어 귓불을 깨무는 입질은 재운의 귀에서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사나웠다.

“아니면 갖고 싶어? 이렇게 너를 강간하는 새끼의 애를?”

재운이 반쯤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어물거렸다. 지독한 일을 당하고서도 윤일우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재운의 덜떨어진 정신을 차갑게 깨우는 말이었다.

가족.

재운에게는 사막의 신기루처럼 손에 잡기 어려운 거였다.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재운은 보육원에서 자랐다.

보육원에서의 생활이 버틸 만했다면 모를까. 그곳에서의 하루는 매일매일이 생존이었다.

윤일우와 만난 후로 빠르게 안정을 찾았지만, 그마저도 지금 다시 이어 붙이기 힘들 정도로 산산조각 나 버렸다. 재운에게 윤일우는 구원이었고, 가족이었고, 친구였으며,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재운의 세상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끌어안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했던 시간들이 헛되이 사라졌다.

차라리 이대로 숨이 끊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무너져 내리는 마음의 고통은 구멍이 헐어 버린 고통보다도 더 끔찍했다.

“원하면 말해. 임신할 때까지 좆물 실컷 싸 줄 테니까.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윤일우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쯤 빼냈던 성기를 재차 안쪽으로 쑤욱, 밀어 넣었다.

“히익…….”

재운이 반사적으로 신음을 흘렸다. 몸과 정신이 분리되고 있었다. 윤일우의 입꼬리가 매끄럽게 올라갔다. 재운의 속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도 모르고, 윤일우는 다시 되찾은 재운의 속살을 유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그날 이후로 히트 사이클이 안 오잖아. 히트 사이클이 와야 자궁 안에 정액을 싸 주는데.”

지금도 윤일우의 좆은 재운의 자궁구를 쾅쾅 들이박고 있었다. 그러나 자궁구는 움찔 떨리기만 할 뿐 내밀한 속살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그거 알아? 나도 그날 이후로 러트가 안 와. 신기하게도.”

윤일우가 핏방울이 흘러나오는 귓바퀴를 혀로 핥으며 허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다음번에 러트가 오면 그날은 어디에도 안 가고 하루 종일 좆 쑤셔 줄게. 재운이가 임신할 때까지.”

“아, 아…….”

재운의 눈동자가 가판대에 올려진 생선의 눈처럼 퀭하게 풀렸다. 입을 다물지도 못해 입가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재운은 이미 덫에 걸려 죽어 버린 짐승 같았다.

윤일우가 재운의 앞가슴을 팔로 감아 재운의 상체를 들어 올렸다. 엉덩이 살이 뭉개지도록 윤일우가 허리를 치댔다.

단단한 좆이 불룩하게 솟은 지점을 짓누르자 재운이 성기에서 맑은 액을 조르륵 쌌다.

발기하지 않아 미성숙한 성기가 새빨개진 채 허공에서 달랑거렸다.

“그러니까 힘내. 알았지?”

임신하면 바로 아기를 죽일 거라고 말했으면서. 윤일우는 재운이 한시라도 빨리 임신하기를 원하는 사람처럼 좆으로 속살을 짓눌렀다.

윤일우를 따라온 이들의 시선이 재운에게 모였다. 재운은 낯선 이들의 시선이 온몸에 달라붙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세상이 온통 잿빛이었다. 지금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자신은 누구인지조차 잊어 갔다.

“흐으, 으, 아, 흐…….”

재운이 좆이 쑤셔지는 순간에 맞춰 억눌린 신음을 토해 냈다. 초점 없는 눈을 깜박이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윤일우가 흐느적거리는 재운의 무릎 아래 손을 집어넣어 재운을 들어 올렸다. 마른 몸이 다리가 접힌 채로 허공에 박제됐다.

흉흉한 성기가 작은 엉덩이 사이를 들락날락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재운의 체중까지 더해지자 삽입은 더욱 깊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재운의 신발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신고 있는 양말도 온통 피투성이였다. 좆이 둔덕 사이로 사라질 때마다 발끝이 우그러졌다.

“흑, 으흣……!”

윤일우의 허리 움직임이 점점 격해졌다. 재운은 의지 없이 신음만을 흘렸다. 와중에도 빠듯하게 벌어진 내벽을 움찔 떨며 조였다.

내장이 뒤흔들리는 고통보다 부서져 내린 마음이 더 아팠다.

흔들리는 시야에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들어왔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입을 벌리고 경탄했을 만큼 멋들어진 광경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재운은 배가 더부룩하도록 좆물을 받아먹은 채 지금도 좆에 꿰뚫려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사정하기 싫었다. 하지만 윤일우의 페로몬이 살갗을 찌르르하게 울리면 재운의 몸은 본능적으로 사정할 준비를 했다.

요도 구멍을 통해 나오는 게 정액인지, 오줌인지, 아니면 다른 액체인지도 구별이 가지 않았다.

밀폐된 공간이었다면 질식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두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페로몬의 농도가 짙었다.

재운이 윤일우의 페로몬에 영향을 받아 히트 사이클이 온 오메가처럼 페로몬을 방출하는 탓이다.

“아, 아……! 흑……!”

성대에도 피가 맺혔을 것 같았다. 상처투성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신음성이 사포로 긁은 것처럼 거칠기만 했다.

윤일우는 재운이 신음을 더 내지르도록 허리를 더 빠르게 치댔다. 재운이 결국 더는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어지럽게 흘러들어 오는 장면들에 머릿속도 배 속만큼이나 곤죽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윤일우의 페로몬뿐만 아니라 다른 알파의 페로몬도 느껴졌다. 언젠가 맡아 본 적 있는 페로몬이었다.

‘너도 이번 학년 입학생 맞지? 한국 대학교 경영학과.’

살갑게 웃으며 자신에게 말을 걸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윤일우처럼 재운에게 좆을 처박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성적인 의미를 다분히 담은 페로몬이 틈을 노리고 재운에게 다가왔다.

재운의 감긴 눈가로 투명한 눈물방울이 물줄기가 되어 흘러내렸다.

“으흐……. 아, 흑…….”

착, 착, 물기 어린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재운이 흐느끼는 소리도 커져 갔다. 축축해진 신음에도 윤일우는 말없이 재운의 몸을 옭아맸다.

빠르게 치대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졌다. 좆을 귀두까지 빼냈다가 내벽을 제 좆 모양대로 늘리는 움직임이 천천히 이어졌다.

“으응……. 그, 만…….”

왜 완전히 미치지도 못하는 걸까. 차라리 아프게 하는 게 나았다. 그러면 지금 이 행위가 일방적인 섹스라는 걸 무의식중에 되뇌는 거라도 가능했다.

그러나 윤일우는 재운의 애원에도 벌을 주는 것처럼 처박던 행위를 그만뒀다. 재운이 온전히 느끼길 바라는 것처럼 부드럽게 재운의 몸속을 드나들었다.

따끈따끈한 점막이 좆에 게걸스럽게 달라붙어 왔다. 싫다고 몸부림치는 재운의 행동과는 사뭇 다른 본능이었다.

그 사실이 윤일우는 마음에 들면서도 거슬리는 묘하게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다.

폭력적으로 굴어도 여전히 재운이 자신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심취해 있던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재운은 더 이상 도움이 필요한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언제라도 윤일우의 곁을 제 의지로 도망칠 수 있는 성인이었다. 간단한 사실을 윤일우는 지독한 상실감과 분노를 통해서 깨달았다.

“흐으, 으, 읏……!”

잠시 느려졌던 윤일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재운이 느끼는 지점만을 귀두로 뭉개듯이 짓누르는 탓에 마른 몸이 배배 꼬였다.

울컥, 다시 한번 배 속 가득 정액이 들어찼다. 좆 모양대로 벌어진 접합부를 따라 채 머금지 못한 정액이 새어 나왔다. 구멍은 아물다가도 거친 행위에 자극받아 상처가 벌어졌다.

“흐윽…….”

콰앙. 재운의 몸이 따뜻한 보닛 위에 거칠게 얹어졌다. 걸음을 옮길 때도, 재운의 몸을 차 위에 올려놓는 순간에도 윤일우는 허리를 멈추지 않았다.

쑥, 쑤욱, 팔뚝만 한 좆이 가느다란 몸 사이를 파고들었다가 빠져나왔다.

맥없이 흔들리는 몸체처럼 검은색 차체도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멍 자국이 남은 좆이 선액을 차체 위로 흩뿌렸다.

얼기설기 흩뿌려진 체액 위에서 재운이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애써 다리에 힘을 줬다.

“아, 흐…….”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재운이 몸에 힘을 줘도 뒤에서 들이박는 거친 움직임에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좆에 쑤셔지는 내벽뿐만 아니라 차체에 부딪히는 몸 곳곳에도 멍이 늘어 갔다.

재운이 귓가에 달라붙는 쿵쿵거리는 소리에 손을 뒤로 뻗었다. 좆만 빼낸 채로 박고 있는 터라 윤일우의 옷차림은 멀리서 보면 멀끔할 정도였다. 손바닥에 닿아 오는 천을 쥐어짜듯이 붙잡았다.

“너무, 힘들어…….”

핏자국이 말라붙을 새도 없었다. 공기에 닿아 응고되려고 하다가도 틈을 비집고 새어 나오는 핏줄기는 연신 재운의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으, 으응……!”

윤일우는 재운의 절박한 손길에 행위를 멈추는 대신 손 하나를 움직여 상의 안쪽을 파고들었다. 꼿꼿하게 선 살덩이가 손가락 사이에서 엉망으로 짓눌렸다.

재운의 구멍이 바짝 조여들었다. 미간을 미세하게 찌푸린 윤일우가 작은 살점을 더욱더 거세게 비비며 허리를 쳐올렸다.

계절은 봄이어도 산속이라 쌀쌀한 날씨였다. 식은땀이 마르면서 재운의 체온을 앗아 갔다. 그러나 곧이어 온몸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열기가 들끓었다.

아픔과 한데 엉킨 쾌락이 좆이 쑤셔질 때마다 척추를 타고 흘렀다.

“아, 아아……! 흑……!”

오늘따라 신음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에 좆이 쑤셔 박혀서일 수도 있었고,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무너진 정신 때문일 수도 있었다.

뭐가 됐든 재운은 망가진 인형처럼 흔들릴 뿐이었다. 기절하고 싶어도 아래를 파고드는 좆처럼 뇌 속에도 쇠꼬챙이가 쑤셔지는 기분이었다. 각성제를 다량 흡입한 사람처럼 동공만 확장됐다.

“흐윽, 윽…….”

여물지 못한 성기 끄트머리에서 픽 좆물이 쏘아져 나와 차체 위를 얼룩덜룩하게 물들였다.

분홍빛 물이 흘러내리는 허벅지에도 새로운 좆물이 덧씌워졌다.

개처럼 엎드린 자세 때문에 재운의 시야에 보이는 거라고는 한정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곳에 함께하는 사람의 형상은 보이지 않았다는 거였다.

눈을 감으면 귓가에 여러 사람의 신음 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개중에서도 가장 크게 들리는 소리는 상체를 맞붙이고 있는 윤일우의 낮은 숨소리였다.

“더 조여 봐, 재운아.”

“으, 아아……!”

윤일우의 좆 대가리가 재운의 배 속에서 부피를 키워 갔다. 안 그래도 좆이 움직일 때마다 주먹이 내벽을 후려치는 듯한 아픔이 일었다.

알파의 페로몬에 절여졌어도 히트 사이클이 온 건 아니었다. 히트 사이클 상태에서도 버겁던 노팅이었다.

자궁구는 여전히 열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윤일우는 자궁이 열린 것처럼 좆을 부풀린 채 재운의 안쪽을 향해 거칠게 허리를 치댔다.

꼬집히는 가슴에서도 선득한 통증이 일었다. 윤일우의 좆 모양대로 늘어났던 내벽이 비명을 질러 댔다.

좆을 뒤로 물릴 때면 좆에 달라붙어 내벽이 딸려 나갔다. 선득한 공기가 좆을 타고 재운의 내벽을 후려쳤다.

“아, 으, 아…….”

재운의 다물리지 않은 입가를 타고 침이 흘러내려 차체 한구석에 흥건하게 고였다. 체액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이 차체에 처박혔다.

온몸의 뼈가 작살난다면 이런 아픔일까.

재운의 검은자위가 힘없이 뒤로 넘어갔다. 아픔을 버티지 못한 이성이 결국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순간이었다.

“커윽…….”

“누가 기절하래. 아직 끝나려면 멀었는데.”

스러져 가는 정신을 붙든 건 가느다란 목을 조르는 손이었다. 목소리가 아니라면 송진오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자비 없는 손길이었다.

재운이 힘없이 눈을 깜박였다. 속살은 살기 위해 윤일우의 좆에 달라붙어 사정을 보챘다.

안에 고인 좆물이 거대한 좆이 움직일 때마다 찰랑이며 재운의 몸속을 정액으로 물들였다.

“아악……!”

재운의 몸이 돌려졌다. 사정 직전에 윤일우가 여전히 부풀어 있는 좆을 빼냈다.

찢어졌던 부위가 더 크게 벌어지며 상처가 났다. 버틸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재운이 실핏줄이 터진 눈동자로 간절하게 윤일우를 올려다봤다.

버틸 만하다 싶으면 더한 고통이 소낙비처럼 내렸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만큼의 고통이 지속되자 재운의 얼굴이 서럽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시야에 들어온 건 제 얼굴 위로 쏟아져 내리는 좆물이었다. 상처투성이 얼굴이 이마, 눈, 코, 입 할 것 없이 좆물에 뒤덮였다.

식은땀에 젖은 머리카락에도 좆물이 쏘아진 탓에 머리카락을 타고 정액이 뚝뚝 흘러내렸다.

“사, 살려……. 우읍……!”

절박하게 내뱉은 말은 끝맺지 못했다. 윤일우가 재운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제 고간에 처박은 탓이었다.

차체 위에서 끌어 내려진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하체에서 찢어질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읍, 읍…….”

곧 아픔은 얼굴에서도 피어났다. 윤일우가 재운의 머리통을 잡고 좆을 욱여넣었다. 정액과 애액, 핏물로 범벅된 살덩이가 입안을 밀고 들어왔다.

아래처럼 찢어진 입가를 따라 핏물이 흘러내려도 멈추지 않았다. 주먹이 쑤셔지는 고통이었다. 뼈가 어긋나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맺혔다.

재운이 눈조차 뜨지 못하고 턱이 부서져라 입을 벌렸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이에 윤일우의 좆 표피가 쓸렸다.

공기 대신 돌덩이가 들어찬 풍선이 입안에 쑤셔진 것 같았다. 윤일우는 재운이 목구멍을 벌리지 못하자 좆을 반쯤만 넣은 채 허리를 움직였다.

“못 삼킨 부분은 잡아. 안 그러면 목구멍도 찢어 버릴 거니까.”

윤일우가 발을 들어 늘어진 재운의 팔을 툭툭 쳤다. 재회한 윤일우는 재운이 알던 사람과 다른 존재 같았다. 이전의 행위가 부드럽게 느껴질 줄은 정말 몰랐다.

세 사람 중에서 가장 자신을 함부로 대했던 사람은 송진오였다. 하지만 지금 윤일우가 하는 행동은 송진오에 비할 바도 아니었다.

재운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재운은 현재 성 처리 도구나 마찬가지였다. 윤일우의 화가 풀릴 때까지 온몸이 부서져라 감내해야 하는 물건이나 다를 바 없었다.

재운이 바들거리는 팔을 들어 삼키지 못한 좆 기둥을 잡았다. 손이 덜덜 떨려서 자연스럽게 살덩이가 손바닥에 문질러졌다.

“으읍, 읍, 흐읍…….”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재운은 이대로라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원하던 끝이 다가오는 건데 왜 서러운 눈물은 멈추지 않는지 영문을 몰라 답답했다.

조금 전부터 시야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다. 심장은 가슴을 뚫고 나올 것처럼 거세게 뛰다가 지금은 두웅, 두우웅, 느려지고 있었다.

가까스로 좆을 붙잡고 있던 재운의 손에서 힘이 풀린 순간이었다. 툭 떨어지는 손과 함께 아득해지는 귓가로 이질적인 소리가 끼어들었다.

5.

“아, 씨발……! 길이 왜 이래!”

“왜 이러기는. 시골길이니까 그렇지. 야, 작작 밟아. 너랑 같이 뒤지고 싶은 생각 전혀 없거든. 지금 도대체 속도가 몇이야?”

“입 닥쳐. 지금 더 밟고 있는데도 차가 안 나가는 거니까.”

송진오는 더 말할까 하다가 진대원의 눈동자가 제정신이 아닌 듯해서 입을 다물었다. 아직 해 보지 못한 것들이 가득한데 이른 나이에 요절할 생각은 없었다.

진대원의 차는 차체가 낮았다. 차 아래가 돌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왔다.

매캐한 냄새까지 나는 건 송진오의 착각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만큼 지금 진대원은 반쯤 미쳐서 차를 몰고 있었다.

“이쪽 길 맞아? 윤일우고, 이재운이고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보이잖아!”

“맞는다고. 윤일우 새끼한테 도청 장치 다는 게 쉬웠는 줄 알아?”

진대원이 울퉁불퉁한 숲길만 이어지자 송진오를 윽박질렀다. 흥분한 진대원과 달리 송진오는 평소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진대원의 목소리에 답한 송진오가 고개를 차창으로 돌렸을 때였다.

“야, 저쪽에서 불빛 보이는데.”

“어디?”

“우측으로 꺾어.”

끼이이익, 진대원이 속도를 줄이지 않은 상태로 차를 꺾었다.

“운전을 뭐 이따구로……!”

진대원의 상체에 머리를 처박은 송진오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이마 한가운데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일었다.

그러나 진대원은 불빛을 향해 돌진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브레이크를 밟는 대신 가속 페달을 밟아 차체로 밀고 들어갔다.

불빛이 가까워지면서 검은색 차체와 서 있는 사람들의 형상이 보였다. 진대원이 검은색 SUV에 부딪히기 직전이 되어서야 아슬아슬하게 차체를 측면으로 틀었다.

“네가 운전하는 차 한 번만 더 타면 내가 사람이 아닌……!”

“저 씨발 새끼가……!”

송진오가 안전벨트에 손을 올리고 이를 갈 때였다. 진대원이 안전벨트를 쥐어뜯듯이 풀어내며 차를 박차고 나섰다.

젖은 소리와 죽어 가는 신음만이 울려 퍼지던 공간에 묵직한 파열음이 뒤섞였다.

“윤일우 제대로 미쳤네.”

진대원의 뒤를 이어 차에서 내린 송진오가 처참한 현장을 보고서 혀를 쯧쯧 찼다.

고개가 약간 돌아간 윤일우의 아래에 피투성이 인영이 있었다. 힘없이 무너지는 몸을 진대원이 재빠르게 제 품으로 끌어안았다.

“너…… 미쳤냐?”

한없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진대원이 짓씹듯이 내뱉었다. 윤일우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지독한 살기로 번들거렸다.

제 품에서 덜덜 떨리는 몸이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윤일우의 목을 분지를 기세였다.

그런 진대원의 모습을 마주하면서도 윤일우의 시선은 재운에게 못 박히듯 고정된 채였다.

“내놔.”

윤일우가 손을 뻗었다. 탁, 소리가 나도록 윤일우의 손을 쳐 낸 진대원이 재운을 안은 상태로 뒤로 물러났다.

“아직 볼일 안 끝났으니까 기다려. 너도 박고 싶으면.”

“미친…….”

윤일우는 말이 통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완전히 돌아 버린 눈동자가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진대원은 살면서 윤일우가 이토록 감정에 미쳐 날뛰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세상에서 한 발자국 물러난 사람처럼 살던 놈이었다. 그랬던 놈이 지금은 이성을 잃고 날뛰었다.

“크윽…….”

“그러니까 내가 내놓으라고 했잖아. 말을 들었어야지.”

진대원의 무릎이 꺾였다. 지독할 정도로 거센 알파의 페로몬이 진대원의 숨통을 옥죄어 왔다.

한때 별장에서 진대원을 압박하던 때와도 비교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피가 맺힐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고통으로 버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미 진대원의 팔에서는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재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를 감싸고 있는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송, 진오……!”

진대원이 결국 방관자처럼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송진오를 불렀다. 사실 송진오는 어떻게 해야 할지 노선을 취하지 못한 상태였다.

재운이 죽을 것 같지만 재운 때문에 윤일우와 맞서기에는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제발, 좀……!”

“후우……. 이런 새끼들이랑 친구인 게 죄지.”

그러나 이어지는 진대원의 절박한 음성은 그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재운도 친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사이였다. 게다가 재운의 구멍을 몇 번이나 맛보기까지 했으니 이성적으로 뿌리치기는 힘들었다.

“윤일우, 그만해. 이재운 죽일 생각은 아니잖아.”

송진오가 진대원의 곁으로 다가가 섰다. 진대원에 이어 송진오까지 자신을 막아서자 윤일우의 페로몬이 더욱더 사납게 날뛰었다.

피부가 아릿할 정도로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송진오는 진대원처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손바닥이 파이도록 힘을 줬다.

“끄윽, 윽, 끅…….”

세 사람의 대치 상황이 달라진 건 기절한 듯 눈을 감고 있던 재운이 발작을 일으키면서였다.

“뭐야, 얘 왜 이래……?”

진대원이 놀라 재운의 볼을 가볍게 쳤다. 재운은 간질 환자처럼 몸을 뒤틀었다. 입가에서는 피거품까지 흘러내렸다.

이러다가는 혀를 씹을 기세였다. 진대원이 욕을 짓씹으며 입고 있던 상의를 벗었다. 천을 뭉쳐 재운의 입속에 넣는 순간에도 재운은 목에 핏대가 서도록 몸을 비틀었다.

“이재운 병원 안 데려가면 진짜 뒤질 것 같은데. 저대로 둘 거야?”

송진오가 보이는 그대로 상황을 말했다. 재운의 페로몬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꺼질 듯 희미하게 줄어들었다가 몸이 움찔 떨릴 정도로 강하게 흘러나오기도 했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가느다란 목에 선 핏대가 선명하게 불뚝거렸다. 뼈 하나가 부러질 정도로 움직이는 몸에 진대원이 재운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아 고정했다.

윤일우의 눈동자에 초점이 서서히 맞춰줬다. 동시에 사납게 날뛰던 페로몬도 갈무리되어 사라졌다.

“줘. 병원 데려갈 거니까.”

윤일우가 진대원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진대원은 잠시 고민하더니 순순히 재운을 그에게 건넸다.

실랑이하는 시간에도 재운의 몸 상태는 실시간으로 나빠지고 있었다. 일단은 재운을 병원으로 데려가는 게 우선이었다.

“병원 어디로 갈 건데? 우리 병원으로 가. 지금 VIP실 준비해 두라고 할 테니까.”

송진오네 집안에서 운영하는 송의 병원은 대한민국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병원이었다.

윤일우는 말없이 재운을 안은 채로 주차되어 있는 차들 중 하나에 올라탔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진대원도 윤일우의 뒤를 따랐다.

마지막으로 송진오는 한쪽에 서 있는 함유재를 매섭게 노려보고 앞 좌석에 올라탔다.

남은 이들이 범죄 현장 같은 장소를 빠르게 정리했다. 함유재는 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희미해지는 불빛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아직도 안 일어났냐?”

진대원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 잠들어 있는 이에게 말을 걸었다. 기계음과 링거대만 아니라면 호텔 룸이라고 봐도 무방한 공간이었다.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은 진대원이 조심스럽게 재운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상처도 거의 다 아물었네.”

입가에 흉하게 자리 잡고 있던 상처가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있었다. 흉이 지지 않게 하기 위해 매일같이 연고를 발라준 덕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상처였다.

목에 남았던 멍 자국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의사가 경악했던 아래의 상처도 아물었다. 하지만 재운은 여전히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페로몬 수치도 안정적이었다. 의사는 환자가 큰 충격을 받아 의식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성의 없는 진단을 내렸다.

진대원의 손에 멱살이 잡힌 이후에도 의사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오진일 가능성은 적다는 말이었다.

“도망갈 거면 제대로 좀 가지. ……나한테 부탁하거나.”

재운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 날, 진대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처음에야 강간으로 시작했어도 이후로는 나름대로 재운에게 잘해 주려고 노력도 했다.

그런데 재운이 아무도 모르게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배신감도 들었고, 화도 났다.

하지만 재운이 피투성이로 윤일우에게 유린당하는 모습을 본 순간에는 재운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제 알았냐? 윤일우가 어떤 새끼인지.”

재운이 윤일우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항상 맹목적인 감정이 담겨 있었다.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눈빛이었다.

윤일우도 재운의 앞에서는 다정한 가면을 쓰고 생활했다. 재운이 윤일우의 본모습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을 거였다.

“우리 중에 제일 미친놈이 걔야. ……그래도 너한테는 잘 숨기고 있었던 거였어.”

재운의 도망이 윤일우의 가면을 부서뜨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윤일우가 재운이 정말로 죽을 것 같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는 점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재운은 정말로 숲속에서 차디찬 시신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도착하는 게 십 분만 더 늦었어도 재운을 영영 잃을 뻔했다.

“……언제 일어날 거야. 웃는 거 보고 싶은데.”

재운이 미소를 잃은 지는 오래되었다. 웃더라도 억지로 지은 미소일 뿐이었다. 미소라기보다는 일그러진 표정에 가까웠다.

진대원은 예전처럼 재운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네가 적응하는 수밖에 없어. 또 한 번 도망가면…… 윤일우가 이번에는 진짜 너 죽일지도 몰라.”

물론 재운이 죽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진대원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이용해서 막아 낼 생각이었다.

다만 윤일우를 혼자 상대하는 건 쉽지 않았다. 집안의 힘을 이용하는 것도 진대원은 여러 제약이 따랐다.

그러나 윤일우는 이미 후계자로서의 지위가 확고했다. 후계자가 한 명밖에 없는 탓이다. 게다가 윤일우의 부친은 윤일우를 진심으로 아꼈다. 자신의 부모와 달리.

“그래도…… 지켜 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러니까 그만 무서워하고 얼른 일어나.”

진대원이 재운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병실 안에는 훈훈한 공기가 맴도는데도 마른 손은 차갑기만 했다.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어 재운은 링거액으로 생명을 연명하는 중이었다. 안 그래도 말랐던 애가 광대뼈가 두드러질 정도로 볼이 홀쭉해졌다.

색색거리는 숨소리와 심전도 기계의 일정한 그래프만 아니라면 숨이 멎은 사람이라고 보일 정도였다.

진대원이 말을 멈춘 이후 적막함만 감돌던 공간에 진동음이 울렸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한 진대원의 미간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내일 또 올게. 내일은 일어나라, 꼭.”

진대원이 상체를 굽혀 재운의 동그란 이마 위에 입을 맞추고는 서둘러 병실을 나섰다.

문이 탁 닫히는 순간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가느다랗게 열린 눈매 사이로 초점이 흐릿한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액, 색…….

진대원이 있을 때보다 재운의 마른 가슴이 더욱 크게 들썩였다. 산소 호흡기 안에 차오르는 뿌연 김을 따라 새까만 눈동자에서도 힘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다시 힘없이 눈꺼풀이 감긴 순간이었다.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재운이 누운 침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재운의 손끝이 미세하게 움찔 떨렸다. 눈을 감고 있어도 온몸으로 전해지는 게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재운은 윤일우의 존재를 그의 미세한 페로몬으로 인지했다.

마치 윤일우가 페로몬으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그는 그저 숨을 내쉬고, 걸음을 옮기는 것뿐인데도 재운은 그의 페로몬을 먼저 느꼈다.

“꿈속이 더 편안한 모양이야.”

재운은 정신을 차린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이불 속에 감춰진 손을 웅크렸다.

간절한 바람이 닿은 덕분일까. 귓가에 들려오는 심전도 소리는 일정했다.

온기를 머금은 손끝이 메마른 눈가에 닿아 왔다. 깃털을 매만지듯 부드럽던 손길이 볼가를 스쳐 목덜미에 닿았다.

혈관이 맥동하는 자리를 지그시 누르는 손끝에 재운의 속눈썹 끄트머리가 부르르 떨리고 말았다. 윤일우가 고개를 숙여 재운의 귓가에 입술을 붙이고 속삭였다.

“재운아, 계속 의식 못 차리면 난 지금 이 상태로 너한테 좆 쑤실 거야.”

부드럽던 손길이 변한 건 한순간이었다. 툭, 툭, 재운이 입고 있는 환자복 상의의 단추가 하나씩 풀려 갔다.

삑, 삑, 삑―.

결국 심전도 기계의 소리가 달라졌다. 윤일우가 손끝을 세워 말랑말랑한 유두를 짓눌렀다.

“으읏…….”

가슴에서 느껴지는 선득한 감각에 재운이 신음을 흘렸다. 가느다란 눈매가 완전히 휘었다.

“몸이 갈수록 예민해지네. 아래도 벌써 젖었어?”

재운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채였다. 그러나 윤일우는 그런 건 이제 상관없다는 듯이 재운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호흡기를 치웠다.

온전히 드러난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싸 안아 뭉근하게 쓰다듬었다.

고개를 움직여 까끌해진 입술을 혀끝으로 핥았다. 입술 위의 주름이 평평하게 펴질 때까지 윤일우는 한참 동안 재운의 숨결을 탐했다.

“하아, 하…….”

“재운아, 잘 잤어?”

눈물로 얼룩진 새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윤일우가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상황에 맞지 않는 다정한 음성이었다.

재운이 가쁜 숨을 몰아쉴 때마다 헐벗은 가슴이 들썩거렸다. 한쪽만 눈에 띄게 붉어진 가슴에 윤일우의 시선이 닿았다. 색소 옅은 눈동자에 열기가 깃들었다.

“보고 싶었어.”

“그…….”

“그만하라는 말 하지 마.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하고 싶어져.”

어느새 눈물이 고인 눈가를 엄지로 훔치는 손길에 힘이 들어갔다. 윤일우가 입매를 둥글게 휘었다.

“나한테서 도망치니까 행복했어?”

재운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윤일우가 믿든 말든 그를 떠나는 건 재운에게도 정말 힘겨운 일이었다.

몸은 편했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차마 버리지 못한 감정들이 가득 남아 재운을 괴롭히고는 했다.

“나는 네가 내 곁에 없으니까…… 미칠 것 같았는데.”

윤일우의 눈동자가 그늘이라도 드리운 것처럼 어둑해졌다. 현재 눈앞에 있는 재운을 보는 게 아니라 과거를 떠올리는 듯 초점마저 흐릿했다.

“집에 가도 네가 없고. 학교에 가도 없고. 핸드폰에 연락해도 받지도 않고.”

그의 표정만 본다면 재운이 정말 큰 잘못을 한 것만 같았다.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처럼 처량한 얼굴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착각할 만큼 처연했다.

“그동안은 네가 내 곁을 떠나지 않을 줄 알았어. 내가 어떤 짓을 해도…….”

그럴 생각이었다.

스무 살이 되고 벌어진 일련의 일들만 아니었다면 재운은 평생 그의 곁에서 그림자처럼 살았을 거였다.

윤일우는 언젠가 집안에서 맺어 준 집안 좋은 오메가와 결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연인은 꿈꿀 수도 없으니, 친구의 자리라도 죽을 때까지 지키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윤일우에 대한 마음이 커질수록 재운은 자라나는 마음을 잡초 뜯듯이 뜯어내며 버텼다. 그랬던 시간을 망가뜨린 건 윤일우였다.

“함유재랑 도망칠 줄 알았다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건데. 등신같이 너를 믿었어, 내가.”

“그건…….”

차갑게 굳어 있던 눈동자에 균열이 어렸다. 재운은 윤일우가 자신의 도망에 진심으로 상처를 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은 구제 불능이다. 상처받은 표정에 가슴 한편이 욱신거렸다.

“그래서 앞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재운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정신을 잃기 전 있었던 일들이 떠오른 탓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야외에서 구멍이 헤집어지도록 좆에 박혔다.

마지막에 크게 부푼 좆으로 아래와 위가 쑤셔졌을 때에는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에 잡아먹혔다. 윤일우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까지 했다.

지금은 호화스러운 병실 안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언제든지 그때 같은 상황은 벌어질 수 있었다. 모든 게 윤일우 마음대로였다.

“……미안해. 잘못했어.”

앞으로 어떤 일이 제게 벌어질지 예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진대원이 지켜 준다고 약속했지만 그도 수가 틀리면 언제든지 재운을 함부로 대할 사람이었다.

좆이 두 개나 쑤셔 박히던 순간 또한 잊히지 않고 재운의 기억 속에 낙인처럼 남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벽을 짚고 한 걸음, 한 걸음 위태롭게 걸어갔지만 죽을 것만 같았다.

말라 죽거나, 아니면 목적지를 알 수 없다는 절망감에 허우적거려 숨이 멎거나. 그도 아니라면…… 스스로 모진 숨을 끊어 내는 선택지밖에 없다.

“사과하지 않아도 돼. 나도 너한테 미안하다는 말 안 하잖아.”

사과를 들은 윤일우가 가볍게 웃어 보였다. 윤일우는 사과보다 재운이 앞으로 제 옆에 계속 남아 있는 게 중요했다.

재운의 속마음은 확인했다. 그러니 재운을 믿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짓은 다 해서라도 재운의 목에 목줄을 채우면 될 일이었다.

“아니다. 미안하다고 미리 말해야겠구나.”

타액이 묻은 분홍빛 입술을 문지른 윤일우가 코끝이 스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재운과 시선을 맞췄다.

“재운아, 학교에는 내가 휴학계 냈어. 한동안은 집에서만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이미 수업을 너무 많이 빠지기도 했고.”

“뭐……?”

학교는 유일하게 재운이 윤일우를 벗어나 바깥 활동을 할 수 있던 창구였다.

유일한 숨통을 막아 버렸다는 말을 하면서도 윤일우는 별다른 죄책감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설레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우리 이사 갈 거야. 공기 좋은 곳으로.”

왜 그 말이 재운은 집을 벗어나더라도 도망갈 수 없는 감옥으로 간다는 말로 들리는 걸까.

재운이 떨리는 시선을 옮겨 병실 안을 둘러봤다. 윤일우와 자신만 있는 공간이지만 병실 문을 벗어난다고 해도 지키는 사람이 있을 게 분명했다.

“아직 못 알아챘구나.”

수척해진 볼을 한 번 쓰다듬은 윤일우가 재운의 몸을 덮고 있는 이불을 거뒀다.

“이게, 무슨…….”

그제야 재운은 제 발목에 안감이 덧대어진 족쇄가 채워져 있는 걸 발견했다.

“혹시 모르잖아. 재운이 네가 정신 차려서 도망칠지. 그러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기라도 하면 어떡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발은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재운이 덜덜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봤다.

족쇄에 연결된 쇠사슬이 스르륵 끌려와 침대 위에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흐윽, 윽…….”

눈물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런데도 재운은 시야를 부옇게 흐리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추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배고프지 않아? 갈비뼈가 더 두드러졌어.”

재운이 서럽게 우는데도 윤일우는 재운의 상체를 유심히 들여다보기만 했다. 기다란 손가락이 갈비뼈의 윤곽을 그림 그리는 것처럼 덧그렸다.

그러다 그의 시야에 걸린 건 불룩하게 솟은 재운의 고간이었다. 속옷은 일부러 입히지 않았다. 하얀 병원복의 한구석이 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젖었네.”

숨길 수 없는 웃음기가 색소 옅은 눈동자에 듬뿍 묻어났다.

“나도 벌써 섰는데.”

윤일우가 순식간에 재운의 위로 올라탔다. 단단한 고간으로 재운의 하체를 꾸욱 눌렀다.

재운이 몸을 비틀며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링거액으로 연명한 몸은 조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숨을 헐떡일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페로몬 맡으니까 정말 좋다.”

윤일우가 날카로운 콧대로 재운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재운이 정신을 잃었을 때도 그는 재운의 곁에 앉아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고는 했다.

그때에도 달콤한 페로몬은 조금씩 흘러나왔지만 집중해야 느낄 수 있을 만큼 옅었다.

그러나 지금은 딱히 집중하지 않아도 재운의 페로몬이 온몸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솜털 하나하나까지 설 정도로 온몸의 감각이 재운을 향해 기울었다. 무거운 물속에서 숨 쉬는 듯하던 답답함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흐읏…….”

혀를 내밀어 보들보들한 살결을 핥아 올렸다. 재운이 몸을 뒤틀며 반항했지만 그 반항마저 기꺼웠다.

윤일우의 손이 환자복 바지를 한 번에 벗겨 냈다. 발목까지 내려간 바지는 구속구 때문에 완전히 벗겨지지 못한 채 발목 부근에서 뭉쳐졌다.

“부끄러워하지 마. 너만 발정 난 거 아니야. 나도 그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가쁜 숨을 내쉬는 재운을 보는 눈매가 휘어졌다. 윤일우가 재운의 손을 제 고간으로 이끌었다.

손바닥에 닿아 오는 선연한 열기에 가느다란 손가락이 움츠러들었다. 윤일우는 재운의 손등 위로 제 손을 겹쳐 두툼한 양감을 지그시 압박했다.

“왜 너한테만 이런 욕구가 드는 걸까.”

윤일우는 제 마음인데도 가장 풀기 어려운 난제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재운이 도망갔을 때 느꼈던 감정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었다.

자신이 싫어서 도망간 사람이었으니 놓아 주면 그만이었다.

그도 아니면 아예 세상에서 지워 버리거나.

그런데 윤일우는 두 가지 선택지 중 어떤 것도 선택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 어느새 재운은 새장에 갇힌 새가 되어 있었다.

이상하게도 재운이 제 곁을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 속에 만족스러운 고양감이 피어올랐다.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흐으……. 그, 아파…….”

손가락 하나가 젖은 구멍 속을 제집처럼 파고들었다. 재운은 그만해 달라는 말을 하려다가 방금 전에 윤일우가 했던 말이 떠올라 아프다는 말로 바꿨다. 훈련된 개처럼 재운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윤일우의 뜻대로 사고하고, 행동했다.

“나는 네가 아파하는 것도 계속 보고 싶은 것 같아.”

윤일우가 눈물에 젖어 가닥가닥 모여 있는 속눈썹 위에 입을 맞췄다.

친구들이 재운을 아프게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주는 고통에 우는 재운을 볼 때면 선득한 희열마저 느껴졌다. 비정상적인 감정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나 완전히 미쳐 버렸나 봐. 어떡하지?”

말에 담긴 뜻과 달리 윤일우의 표정은 흥미로운 장난감을 손에 쥔 어린아이처럼 들떠 보였다.

재운의 뒷머리에 손을 넣어 작은 머리통을 고정한 채 윤일우가 손가락의 개수를 늘려 갔다.

거대해진 좆이 쑤셔져 찢어졌던 구멍은 원래대로 돌아온 상태였다. 그만큼 재운이 정신을 잃은 채 흘러간 시간이 길었다.

액이 흘러나오는데도 구멍은 손가락을 받아먹는 것도 힘겨워했다. 그게 꼭 섹스를 할 때마다 울먹거리는 재운을 닮았다.

“달다.”

윤일우가 고개를 숙여 경련하듯 떨리는 목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어느 순간부터 흘러나오던 제 페로몬을 더욱더 농밀하게 풀어냈다.

“으, 읏…….”

알파의 페로몬에 영향을 받은 재운의 페로몬도 진득해졌다. 페로몬의 맛이 느껴지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윤일우는 구멍을 풀면서 동시에 한참을 목덜미를 물고 빨았다.

“아, 아아…….”

윤일우가 재운의 한쪽 다리만 들어 올린 채 입구에 좆을 맞췄다. 굵직한 살덩어리가 조금씩 재운의 몸속을 파고들어 갔다.

재운이 다리를 버둥거릴 때마다 발목에 달린 쇠사슬이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재운아, 힘 좀 풀어 봐.”

좆을 끊어 먹을 듯 조여 오는 구멍에 윤일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손을 뻗어 말랑말랑한 살덩이를 매만져도 재운은 좀처럼 힘을 풀지 못했다.

“흐, 으으…….”

좆이 목구멍까지 꿰뚫고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재운은 의식을 차리자마자 좆에 박히는 처지가 서러웠다.

아픔 때문인지, 아니면 가슴을 조이는 감정 때문인지, 눈물이 계속해서 눈가를 따라 주르륵 흘러내렸다.

기운이 없는 몸 때문에 구멍이 빠듯하게 벌어지는 감각마저 더 버거웠다.

“이게 좀 불편하기는 하네.”

재운의 몸을 뒤집으려던 윤일우는 쇠사슬 때문에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윤일우가 재운의 몸을 안은 상태로 침대에 앉았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남아 있던 좆이 재운의 무게가 더해져 안쪽으로 사라졌다.

재운이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윤일우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뜨거운 숨이 옷 위로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거의 헐벗은 재운과 달리 윤일우는 좆만 빼놓은 상태였다. 그게 또 그와 제 처지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것만 같아 재운이 어깨를 들썩였다.

“왜 자꾸 울어. 나는 오랜만에 섹스해서 기분 좋은데. 눈 엄청 붓겠다.”

윤일우가 좆을 넣은 상태로 재운의 등허리를 매만졌다. 오목하게 파인 척추 라인을 손끝으로 훑자 재운의 떨림이 강해졌다.

눈물 젖은 뺨에 입술을 붙이고 허벅지를 매만졌다. 제 허벅지의 반도 되지 않을 두께에 잠시 한숨이 흘러나왔지만, 금세 재운이 주는 쾌락에 빠져들었다.

재운의 몸 상태를 걱정해 불이 붙은 행위를 그만두는 건 윤일우의 선택지에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제 성정 자체가 글러 먹었다는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제 눈에 띈 재운의 잘못이다. 애초에 자신의 눈에 띄지 않고,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면 윤일우는 영영 재운이 주는 쾌락을 모르고 살아갔을 테니까.

배 속에 묵직하게 들어찬 감각에 재운이 숨을 헐떡였다. 좆에 자리를 내준 내벽 때문에 장기들이 짓눌렸다.

“으, 흐윽…….”

까끌한 음모가 여린 살결을 자극하고 있었다. 윤일우가 고개를 틀어 재운의 입술을 찾았다.

사나운 입맞춤이 이어졌다. 재운의 입가에 맺혀 있던 딱지가 떼어져 피 맛이 나도 멈추지 않았다. 윤일우는 혀로도, 입술로도 재운의 숨결을 거칠게 탐했다.

“윽, 흐, 으윽…….”

윤일우가 입술을 떼어 내고 본격적으로 허리를 쳐올렸다. 재운의 팔이 윤일우의 어깨 위에서 힘없이 흐느적거렸다.

재운이 흔들리는 시야가 어지러워 눈을 감았다. 목구멍까지 좆이 불쑥 튀어나왔다가 내벽을 휘감아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부드러운 내벽은 오랜만인데도 딱딱한 좆의 감촉을 남김없이 훑으며 오물오물 먹어 치웠다.

흔들리는 몸체를 따라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단단한 어깨를 쥔 재운의 손등에 핏줄이 올랐다.

살이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조용한 병실 안을 가득 메웠다. 재운의 몸 곳곳에 달라붙어 있던 검사 장치들은 침대 위와 바닥에 엉망으로 흐트러진 지 오래였다.

윤일우가 허리를 움직이면서 재운의 몸에 영역 표시를 했다. 이미 울긋불긋해진 목덜미 위로도, 뼈가 두드러진 어깨 위에도 여지없이 입술이 내려앉았다.

사나운 입질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통이 따라왔다. 재운이 가물가물 감기는 눈꺼풀에 고개를 저었다. 눈물이 얼마 고이지도 못하고 추락했다.

“으으, 윽…….”

몸 안은 알파의 좆이 좋다고 환호성을 지르는데 재운은 정작 고통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었다.

재운이 결국 입을 벌려 윤일우의 어깨를 물었다. 절박한 심정을 담아 문 터라 아플 텐데도 윤일우는 낮은 웃음을 흘리기만 했다.

“제대로 물어.”

윤일우는 상의를 어깨 아래까지 끌러 내린 후 재운의 입 앞으로 맨살을 가져다 댔다. 재운은 거절하지 않았다.

윤일우가 제게 했던 것처럼 치아로 매끈한 살결 위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알파의 페로몬이 짙게 흘러나오는 목덜미에도 입술을 붙였다. 콰직, 부드러운 살이 짓이겨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재운이 입술에 묻은 피를 혀로 핥아 냈다. 비릿한 맛에 머리가 돌아 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더 해도 돼.”

윤일우가 재운의 뒤통수를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었다. 목소리 또한 재운과 재회한 이후 가장 부드러운 음률을 담고 있었다.

“흑, 으윽…….”

재운을 칭찬하면서도 윤일우는 좆을 처박는 걸 쉬지 않았다. 단단한 살덩어리가 여린 내벽을 짓누를 때마다 재운의 입술 새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재운은 고통이 강해지면 윤일우의 피부 위에 상처를 냈다.

본능적인 행위였다. 무너졌던 정신이 조금이나마 돌아왔지만, 산산조각이 난 유리 화병을 접착제로 이어 붙인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재운은 윤일우에게 아픔을 주는 방법을 택했다.

“흐으읏……!”

고통만이 느껴졌다면 재운은 언제까지고 윤일우의 몸에 상처를 냈을지도 몰랐다. 중간중간 고통보다 더한 쾌락이 뇌를 들쑤셨다.

재운의 목이 뒤로 꺾였다. 연분홍빛 살덩이에서 쏘아진 정액이 두 사람의 배 위를 물들였다.

윤일우가 아예 상의를 벗어 냈다. 손가락으로 재운의 상체에 남은 정액을 훔쳤다.

“빨아. 깨물어도 되고.”

길쭉한 손가락이 벌어진 채로 굳은 재운의 입속을 향했다. 재운이 움직이지 않자 윤일우가 손가락을 깊숙하게 집어넣었다.

“우윽…….”

재운이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손가락에 묻은 비릿하고 씁쓸한 맛이 입안에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알고 싶지 않은 제 정액의 맛이었다. 재운의 미간이 찌푸려지자 윤일우가 눈매를 휘며 재운의 코끝을 깨물었다.

“맛없어? 내 정액 먹을 때보다 표정이 별로네.”

윤일우가 움직이는 속도를 천천히 줄여 나갔다. 느릿하게 성기가 재운의 안쪽을 문질렀다.

재운의 구멍이 윤일우를 재촉하듯이 움찔 조여들었다. 윤일우는 이후로도 한참을 움직인 후에야 재운의 안에 사정했다.

팽팽하게 벌어진 접합부를 따라 정액이 조금씩 비집고 흘러나왔다.

“흐윽, 윽, 윽…….”

사정을 했지만 재운은 여전히 고통 어린 신음을 냈다. 윤일우는 페로몬을 더 풀어내며 재운이 느끼는 지점을 좆으로 으깨듯이 문질렀다.

“으으응……!”

신음의 양상이 달라진 순간, 윤일우가 재운의 안쪽을 찢어발길 기세로 허리를 쳐올렸다.

붉게 물든 몸이 허공에서 정신없이 흔들렸다. 병원 침대가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삐걱거렸다.

윤일우의 목 뒤를 두른 재운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윤일우는 기꺼이 제 얼굴을 재운에게 가까이 붙이며 핏방울이 맺힌 입술을 쓸어 올렸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쓰라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재운은 하체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듯한 감각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몸이 마치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듯했다. 그러다 윤일우의 좆에 쑤셔져 허공으로 떠오를 때면, 그제야 잠시 물 밖에 나와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재운은 절박한 몸짓으로 윤일우에게 매달렸다. 서로의 몸에 묻은 정액의 양이 늘어날수록 재운의 신음도 격해졌다.

“아, 흐, 아아……!”

귀두가 자궁구를 뚫을 듯이 콱 짓누르는 순간이었다. 재운의 눈꺼풀이 스르륵 감겼다.

난폭하게 재운의 안에 사정한 윤일우가 늘어지는 재운의 몸을 품 안으로 이끌었다.

여전히 좆이 들어간 상태였다. 윤일우가 주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난 구멍 주변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흐으…….”

“정신 잃은 거 맞아?”

낮은 웃음이 땀에 젖은 머리카락 위로 흩뿌려졌다.

좆 두 개가 들어가던 순간이 기억이 났다. 하나의 좆도 버거워하던 게 용케도 두 개를 물었다.

“앞으로 실컷 먹여 줄게. 다른 생각 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윤일우는 앞으로 재운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못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자신들하고 있으면 재운은 괜찮았다. 함유재 같은 놈이 재운의 귓가에 불손한 말을 속살거려 이 사달이 난 거였다.

“너한테는 나만 있으면 되잖아. 그렇지?”

항상 맹목적으로 자신만을 따라다니던 눈동자였다. 다른 놈이었다면 쳐다보지 못하게 눈을 멀게 했을 텐데.

재운의 시선은 가끔은 귀찮아도 없으면 허전했다.

“내 세상에서 같이 살자. 지금처럼 행복하게.”

한참 시달리다 정신을 잃은 탓에 재운의 눈가에는 여전히 눈물이 고여 있었다. 윤일우가 엄지로 눈물을 훔쳐 혀끝으로 눈물방울을 맛봤다.

“맛은 없네.”

윤일우가 손을 뻗어 재운의 발목과 연결된 쇠사슬을 끊어 냈다. 투둑, 손쉽게 끊어진 쇠사슬이 가느다란 발목 아래 휘장처럼 늘어졌다.

욕실로 향하면서 사람을 불러 정리하라 시켰다. 좆을 빼지 않고 움직이는 탓에 재운이 윤일우의 품에서 몸을 뒤척거렸다.

괴롭게 찌푸려진 미간 위에 가벼운 입맞춤이 내려앉았다.

* * *

“나 진짜…… 아무 데도 못 나가?”

“응.”

재운이 두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눈치를 보며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단호하기만 했다.

당황한 눈동자가 제 발목에 닿았다. 병실에서는 쇠사슬이 연결된 족쇄가 달려 있었다.

윤일우와 섹스를 한 후 정신을 잃었다. 의식을 차리자마자 재운은 발목부터 만져 봤다.

그런데 족쇄를 대신한 무언가가 제 발목을 차지했다.

언젠가 성범죄자들의 발목에 이런 걸 채운다는 기사를 봤던 게 떠올랐다.

“별장에서 100미터 이상 벗어나면 경보음이 울려. 주변에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바로 네 위치를 알 수 있기도 하고. 나한테 보고도 즉시 될 거야.”

범죄였다.

재운이 비록 고아에 아무런 뒷배경도 없다고 하지만, 사법 기관에 신고하면 윤일우의 행동은 법적으로 처벌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멀쩡한 사람의 발목에 구속구를 채워 감금하는 건 경범죄도 아니고 중범죄였다.

그런데도 윤일우의 표정에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어 보였다.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안 될 걸 알면서도 재운은 윤일우의 감정에 호소해 봤다. 윤일우의 곁에서 지낸 지 십 년이 넘었다.

하지만 재운은 그동안 자신이 알던 윤일우는 그의 수많은 모습 중 일부분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아 가는 중이었다.

“내가, 내가 너한테 좋아한다고 그래서…….”

떠오르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재운은 그저 히트 사이클이 왔을 때 윤일우만 떠올랐을 뿐이었다.

그를 제외한 이들과 몸이 닿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첫 몽정을 했을 때도 재운의 꿈에 찾아온 건 그였으니까.

재운이 윤일우에게 매달리며 좋아한다고 말한 순간부터 모든 것들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곱게 넘겨지던 인생의 페이지가 그 순간을 기점으로 찢기고, 구겨졌다. 점점 핏빛으로 물들어 가는 페이지에 재운이 무너져 내렸다.

“맞아. 처음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왜 이러는지.”

윤일우가 소파에서 일어나 천천히 재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재운은 침대에서 일어난 이후로 망연자실하게 제 발목에 채워진 구속구만 바라보고 있었다.

“재운아, 학교 다니고 싶어?”

커다란 손이 동그란 머리통 위에 닿았다. 머리카락이 가느다란 실타래처럼 손가락 사이사이로 흘러내렸다.

“응……. 이렇게 생활하는 건…… 아닌 거 같아…….”

재운이 옅게 떨리는 손가락을 주먹 안으로 감추었다. 정말 좋아했던 사람인데, 이제는 윤일우의 페로몬을 맡으면 몸이 반사적으로 떨렸다.

두려움과 뒤섞인 설렘.

양가적인 감정이 폭풍우처럼 재운의 마음속을 뒤흔들었다. 재운은 여전히 그를 증오할 수도 없었고, 예전처럼 마음 편히 좋아할 수도 없었다.

혼란스러울수록 늘어나는 건 스스로에 대한 혐오였다.

“아직 낯설어서 그래. 생활하다 보면 금방 적응할 수 있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할 거니까.

뒷말은 속으로 삼킨 윤일우가 다정히 재운의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별장에서 재운이 자신의 의지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별장 주변에 설치해 놓은 CCTV와 풀어놓은 사람만 해도 수십이 넘어갔다.

“조금 있으면 다른 애들도 올 거야. 애들이랑 오랜만에 다 같이 저녁 먹자.”

재운의 눈시울을 붉힌 눈물방울이 구슬처럼 볼을 타고 뚝뚝 떨어져 내렸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

잠시 진대원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가 자신을 이곳에서 도망치게 해 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먹고 싶은 거 있어? 계속 밥 못 먹어서 배고플 텐데.”

재운이 고개를 저었다. 모든 자유가 박탈당한 채 갇힌 상황에서 식욕이 돌 리가 없었다.

“일단 내려가자. 집 구경시켜 줄게.”

재운에게 선택권이란 손에 잡히지 않는 허상이었다. 윤일우가 재운을 품에 안고 일어났다. 순식간에 높아진 시야에 윤일우의 어깨를 짚은 재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여기가 재운이 침실이고. 이 문으로 연결된 건 내 방.”

방에서 가장 많이 부피를 차지하는 건 커다란 침대였다. 성인 남성 대여섯 명이 뒹굴어도 될 정도로 컸지만, 방이 그만큼 넓어서 답답하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방 한쪽 벽면에 문이 나 있었다. 문이 열리자 재운의 방과 비슷하게 디자인된 공간이 나왔다.

“이 층에 다른 방들도 있는데 그건 손님방. 방 안에 드레스 룸이랑 욕실도 있으니까 생활하는 데 불편한 건 없을 거야.”

윤일우의 말대로 방 안에는 소파와 테이블이 놓인 공간도 있었다. 방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커다란 원룸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복도를 지나면 계단이 나와.”

복도는 살짝 어두운 편이었다. 천장에 조명이 켜져 있지만 일부러 명도를 낮춘 것 같았다.

집이 얼마나 큰 건지 윤일우의 방문과 비슷한 문이 복도에 다섯 손가락을 넘어갔다.

“다른 방에 들어가도 돼. 네가 원하는 대로 꾸며도 좋아. 필요한 건 주문하면 되니까.”

어떤 누군가는 행복한 감금이라도 칭할 정도로 호화로운 생활이었다. 하지만 재운은 제 의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모든 게 불편할 뿐이었다.

“누가 온 모양인데?”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층고의 높이를 알려 주는 것처럼 꽤 가팔랐다.

윤일우는 재운을 안고 있으면서도 안정감 있게 계단을 내려갔다. 1층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두 사람만 있던 공간에 이질적인 소음이 끼어들었다.

“내려왔네.”

“이재운, 이제 일어났냐?”

“……오랜만.”

재운이 아랫입술을 깨물어 입안으로 말아 물었다. 지금까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제 몸에 닿고 나서야 알게 됐다. 제가 커다란 잠옷 상의 하나만을 걸치고 있다는 걸.

다행히 속옷은 입고 있었지만 거의 헐벗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뭐 하는 거야?”

“저녁 먹자며. 여기에서 요리할 줄 아는 사람 나밖에 없잖아.”

윤일우가 다가오려는 진대원을 지나쳐 거실 소파에 재운을 내려 줬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송진오가 가져온 식재료가 가득 담긴 종이봉투가 널브러져 있었다.

“너네 뭐 먹고 싶냐. 내가 오랜만에 솜씨 발휘 좀 하려고 하는데.”

송진오는 예민한 성정만큼 요리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모두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그의 시선은 재운에게 길게 머물렀다.

정작 시선을 받은 재운은 상의 아래 훤하게 드러난 다리를 감추기 위해 무릎을 팔로 감싸 안고 꼼지락거렸다.

“……이거.”

재운의 곁에 앉은 김본기의 손끝이 검은색 구속구에 닿았다. 손가락 두 마디는 될 법한 두께의 구속구에서는 초록색 불빛이 일정하게 깜박거리고 있었다.

“재운이 맞춤으로 만든 거야. 일정 범위 이상 벗어나면 빨간색으로 변해.”

“……미친놈.”

김본기가 앉은 반대 방향에 앉은 진대원이 낮은 목소리로 욕을 짓씹었다.

이미 이 집부터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반경 1km 내에 있는 거라고는 산뿐이었다. 윤일우네 집안에서 소유한 땅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 한적하게 휴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별장이었다.

그런 별장을 윤일우는 재운을 가둬 놓는 새장으로 활용하고 있어서 문제였지만.

“진대원, 내 방식이 마음에 안 들면 빠지면 돼.”

윤일우가 기다란 다리를 꼬고 등받이에 몸을 편하게 기댔다.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 손길이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치이익. 정적이 인 공간에 윤일우가 담배 끝에 불을 붙이는 소리만이 은은하게 흘렀다.

“너는 왕권 시대에 태어났으면 폭군이 됐을 놈이야.”

“칭찬 고마워.”

진대원이 악담을 퍼부어도 윤일우는 볼이 홀쭉하게 파이도록 담배만 피웠다.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흔들어 보이며 여유롭게 웃는 표정에 진대원만 애꿎은 이를 갈았다.

“너네 뭐 먹고 싶냐고. 그냥 내가 알아서 한다?”

“어. 아무거나 해, 그냥.”

송진오가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신경질을 냈다. 진대원이 식재료가 든 봉투들을 송진오를 향해 툭 던졌다.

자그마한 소리에도 재운이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그 모습에 또 한숨이 새어 나와 진대원이 머리카락을 거센 손길로 헤집었다.

새롭게 금색으로 탈색한 머리카락이 손가락 아래에서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이재운, 몸은?”

“……괘, 괜찮아.”

진대원이 목을 가다듬고 재운에게 안부를 물었다. 대충 훑어봐도 재운의 안색이 나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다만 이러다 죽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심하게 다쳤던 그때에 비한다면 지금은 멀쩡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병원에서 시체처럼 누워 있을 때보다도 혈색이 옅게나마 돌았다.

“뭐 필요한 거 없어? 저 새끼가 웬만한 거는 다 갖춰 놓긴 했겠지만.”

움츠러든 제 발끝만 내려다보던 재운의 시선이 진대원에게로 향했다. 입술을 어물거리며 망설이던 재운이 원하는 걸 자그마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 내 핸드폰 좀…….”

“핸드폰? 윤일우, 이재운 핸드폰 어디에 있어?”

“글쎄.”

재운이 원하는 걸 말한 것 자체가 진대원은 기분이 좋았다. 곧장 핸드폰의 행방을 알 윤일우에게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의뭉스럽기만 했다.

“쟤 성격에 그걸 가만히 놔뒀겠냐? 다시 못 쓸 정도로 부쉈겠지.”

부엌에서 들려오는 송진오의 목소리에 진대원이 한쪽 눈썹을 비스듬히 치켜세웠다.

“진짜야?”

“그랬던 것도 같고.”

“아, 씨발. 너 지금 나랑 스무고개 하냐? 왜 자꾸 말을 빙빙 돌려.”

진대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재운이 도망간 것 때문에 그도 화가 나기는 했지만, 얘를 세상이랑 단절시켜서 가둬 두는 것부터가 신경에 거슬렸다.

무엇보다 윤일우는 진대원을 비롯한 이들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다. 재운에게 했듯이 그들에게도 일방적으로 통보했을 뿐이었다.

마치 재운이 제 소유물이라고 광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대원은 불쾌한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참아, 진대원.”

바들바들 떠는 재운을 흘낏 쳐다본 김본기가 흥분한 진대원의 팔을 붙잡았다. 진대원은 한동안 씩씩거리면서 분을 참다가 제 핸드폰을 꺼내 재운에게 내밀었다.

“내 거 써. 나는 다른 거 하나 더 만들면 되니까.”

“……네 거를?”

“어. 핸드폰이 뭐 대수라고.”

재운이 눈앞에 들이밀린 핸드폰을 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핸드폰 안에 개인적인 정보가 들어 있을 게 뻔한데도 제게 핸드폰을 내미는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윤일우의 눈치를 보면서 핸드폰을 받기 위해 손을 뻗을 때였다.

“재운이가 외부에 전화라도 하면 곤란해서. 핸드폰 같은 건 위험해.”

윤일우가 진대원의 손에 놓인 핸드폰을 재운보다 먼저 낚아챘다.

“너 이거 범죄라는 자각은 있냐?”

“응. 있는데. 그래서 핸드폰 못 쓰게 하려는 거잖아.”

“……말이 안 통하는 새끼.”

진대원이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윤일우가 이렇게 나오는 이상 재운에게 핸드폰을 주는 건 어려웠다. 몰래 주더라도 저택 안에는 CCTV가 가득할 게 분명했다. 금방 뺏기고 말 테지.

“너 여기에 하루 종일 있을 것도 아니잖아. 이재운 여기서 혼자 뭐 하라고.”

어떻게든 재운을 내보내기 위해 진대원이 현실적인 얘기를 내놓았다. 아직 학기 중이었다.

게다가 윤일우는 점점 회사 일에 뛰어들고 있어서 여기에 모인 사람 중 가장 바빴다.

“곧 있으면 여름 방학이잖아. 내가 없을 때는 너네가 있으면 되고. 재운이 혼자 둘 거야?”

윤일우의 물음에 진대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말처럼 여름 방학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직 1학년이었기 때문에 윤일우를 제외하면 다들 여름 방학에 특별히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장 한량인 사람을 뽑자면 진대원이었다. 공부도 제일 못했고, 집안에서의 기대치도 가장 낮았다. 큰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부모님도 진대원을 규제하지 않는 편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진대원이 헛기침을 했다. 방학 동안 재운과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렇게 된 거…… 요양하러 왔다고 생각해.”

진대원이 하는 말에 재운은 말없이 무릎 위로 고개를 묻었다.

어차피 큰 기대도 없었다. 진대원 또한 적극적으로 윤일우에게 맞서 자신을 지켜 주지는 않으리라고 예상했으니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리는 건 재운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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