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3권) (9/11)

3장. sunflowers_999

8.

“으으, 흐, 으흐…….”

재운이 부자연스러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렸다. 잠깐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몸은 여전히 흔들리는 채였다. 정신을 잃기 전에도 몇 개인지도 모를 좆에 쑤셔지며 헐떡거렸다.

“일어났어?”

“일, 우야……?”

“응.”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젖꼭지와 아랫구멍도 뭐에 비틀리고 헤집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쓰라리고 욱신거렸다.

아픈 와중에도 몸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감각은 또 쾌락이라 미칠 지경이었다.

“구멍이 엄청 부었어. 그래서 평소보다도 좆이 더 빠듯하게 조여.”

재운이 멍한 눈길로 주변을 둘러봤다. 침대 위에서 섹스를 하던 와중에 암전이 찾아왔다.

나중에는 개처럼 엎드려서 아래로는 좆 두 개를 받아 내고, 목구멍으로도 좆을 게걸스럽게 빨아 먹었다.

몸이 흔들릴 때마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구멍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욕실이야. 안에 정액이 너무 많아서 빼내는 중이고.”

재운의 눈동자에 어린 의문을 읽은 윤일우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다정한 말과는 달리 재운의 아래를 드나드는 좆의 기세는 사납기만 했다.

“재운아, 좆이 그렇게 좋아? 정신도 못 차리고 계속 받아먹으면 어떡해. 누구 좆인지도 상관이 없는 거야?”

“흐, 아아…….”

윤일우가 물방울이 맺힌 젖꼭지를 잡아뗄 것처럼 강하게 잡아당겼다.

재운이 상체를 비틀며 벗어나려고 했지만, 이미 아래가 좆에 꿰뚫린 상황이었다.

재운의 몸부림은 오히려 물을 윤활제 삼아 좆을 더욱 깊숙한 곳까지 끌어당기는 결과만 낳았다.

철퍽, 철퍽, 좆이 구멍을 들쑤시면 욕조를 가득 채운 물이 출렁거리면서 넘쳐흘렀다.

욕실 바닥이 물로 흥건했다. 물 군데군데 섞여 든 희뿌연 정액 때문에 발을 디디면 미끄러질 듯 매끈거렸다.

“아, 흐으, 너무, 깊어…….”

잠깐 잠에 들었다 깬 덕분에 재운은 정신을 거의 다 차리고 말았다.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는 것처럼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안 그래도 어지러운 머리가 물속에서 흔들리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깊어서 좋다는 거지?”

재운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면서 윤일우는 좆을 빼내지 않았다. 오히려 닫혀 있는 자궁구마저 비집고 열 기세로 귀두를 쾅쾅 박아 댔다.

정신을 잃은 와중에서도 몸에 차곡차곡 쌓였던 쾌락의 여운이 재운을 잔파도처럼 덮쳤다.

“으, 하윽…….”

재운이 온몸을 벌벌 떨면서 목을 뒤로 젖혔다. 수증기 속에서 드러난 재운의 몸은 여백을 찾기 힘들 정도로 울긋불긋했다.

그나마 깨끗한 곳은 목 주변이었다.

하지만 이어 윤일우가 고개를 숙여 남은 여백을 빼곡히 울혈로 채워 갔다. 살이 강하게 빨리는 와중에도 재운은 몸을 가만두지 못하고 비틀었다.

“너무, 힘, 드러…….”

말이 늘어져 조각난 채로 혀끝에 걸렸다. 좆의 둘레만큼 벌어진 구멍이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 댔다.

“여기가 엄청 붓긴 했어. 내일이면 손가락 하나도 못 먹을 정도로.”

윤일우가 손가락으로 구멍 주변을 지분거렸다. 주름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부어오른 살결이 갓 쪄진 호빵처럼 따끈따끈했다.

“좆 하나로는 만족 못 하던 거 아니었어? 손가락 넣어 줄까?”

재운의 귓불을 잘근잘근 씹던 윤일우가 속삭인 말에 재운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후드득 떨어져 발간 뺨을 적셨다.

“괜, 찮, 흐윽…….”

그러나 재운의 거절에도 윤일우는 기어코 좆을 비집고 제 손가락 하나를 쑤셔 넣었다.

커다랗게 벌어진 입안에서 선홍빛 혀가 무언가를 찾듯이 더듬거리며 움직였다. 한쪽 입매를 끌어 올린 윤일우가 재운의 입안에 제 혀를 물렸다.

“우읍, 읍…….”

동시에 페로몬을 풀어내자 자그마한 혀가 윤일우의 혀에 달라붙어 왔다.

윤일우는 기꺼이 재운의 혀를 휘감아 쪽쪽 빨아먹었다. 혓바닥 아래 고인 타액마저 혀끝으로 훔쳐 내 맛봤다.

재운의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욕조 안에 늘어져 있던 팔을 뻗어 윤일우의 목 뒤로 둘렀다.

윤일우의 페로몬이 느껴지자 지독히도 몸을 괴롭히던 고통이 조금이나마 사그라들었다.

마취제처럼 고통을 둔탁하게 만드는 페로몬을 재운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

“흐으읍……!”

윤일우가 넣은 상태로 가만히 있던 검지를 구멍 안에서 둥글게 돌렸다. 손가락에 감겨 딸려 오는 내벽이 평소보다도 뜨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검지에 이어 중지도 넣어 주자 구멍은 버거워하면서도 윤일우의 손가락을 부드럽게 받아들였다.

좆을 밀어 넣는 움직임에 맞춰 손가락 두 개도 가위질하듯 벌렸다.

찰기 어린 점막이 구멍과 손가락을 세게 조여 왔다. 찌걱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재운의 배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정액이 흘러나왔다.

투명했던 물이 순식간에 뿌옇게 변해 갔다. 깨끗한 물이 계속해서 욕조 안으로 부어지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있는 욕조 안은 진즉에 탁하게 물들었을 거였다.

“후으, 으으응……!”

입술이 막혀 있어 재운이 코끝으로 신음을 흘렸다. 부어오른 구멍처럼 재운의 눈두덩이도 두툼하게 살이 올랐다.

윤일우가 아래를 드나드는 성기처럼 재운의 입안 곳곳을 혀로 찔러 댔다.

용케 찢어지지 않고 늘어나는 구멍이 기특했다. 약지까지 집어넣어 주자 구멍이 손가락과 좆을 오물거렸다.

윤일우가 재운의 목구멍 깊은 곳까지 찔러 댈 기세로 비비던 혓바닥을 뒤로 물렸다.

“맛있어? 잘 먹네.”

시달릴 대로 시달린 재운의 좆은 발기하지도 못한 상태로 묽은 액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윤일우가 고개를 떼어 냈을 때 재운은 힘없이 윤일우의 어깨 위로 이마를 묻었다.

“아, 으, 흐으…….”

좆 하나를 물고 손가락까지 문 자신의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뻐끔거리는 입구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제 몸은 정말 임신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자궁은 문을 열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액을 쏟아 냈다. 페로몬도 마찬가지였다. 입으로만 그만해 달라고 말하면 뭐 하나.

재운의 페로몬은 윤일우의 페로몬을 게걸스럽게 혀를 날름거리며 반기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알파를 유혹하는 오메가의 페로몬이었다.

자신의 페로몬인데도 욕실 안을 진동하는 페로몬에 질식할 기세였다.

“물 마시자. 탈수 증상 올지도 모르니까.”

윤일우가 옆에 놓인 물병을 들어 입에 물을 머금었다. 서럽게 흐느끼는 얼굴을 들어 물을 건넸다.

이미 여러 번 정신을 못 차리는 재운에게 물을 먹였다. 반항하지 않는 모습에 불쾌감으로 갉작거리던 마음 한구석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졌다.

“더 마실래?”

물기 젖은 입술로 귓불을 감쳐물었다. 자그맣게 속삭이는 목소리에도 재운은 몸을 흠칫 떨었다.

작게 고개를 내젓는 얼굴 위에 입술을 묻으며 윤일우가 잠시 멈췄던 움직임을 이어 갔다.

“흐윽, 으, 아, 흐…….”

손가락 세 개를 둥글게 모아 좆과 함께 쑤셨다. 재운이 자지러지는 신음을 토해 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수증기가 차오른 욕실처럼 머릿속이 흐리멍덩하게 변해 갔다.

이성적인 사고를 이어 갈 힘이 생기기도 전에 윤일우가 재운을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솜털 하나하나까지 모두 쾌락에 잠식된 기분이었다. 재운은 어느 순간부터 윤일우의 몸짓에 맞춰서 허리를 뒤흔들었다.

섹스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고통마저도 숨을 죽였다.

신체적인 고통이든, 정신적인 고통이든 구석으로 숨어들어 갔다.

좆이 내벽을 엉망으로 휘저으면 그만큼 재운도 허덕이면서 행위 자체에 침몰되어 갔다.

윤일우가 손가락을 쑤욱 빼냈다. 안쪽에 고여 있던 물이 윤일우의 팔목을 타고 흘렀다.

“내 좆을 제일 좋아해야지, 재운아. 이 좆, 저 좆 다 좋다고 물면…….”

말이 끝맺기도 전에 윤일우가 재운의 몸을 안고 일어났다.

“흐으으……!”

아래로 훅 꺼지는 감각에 재운이 윤일우의 목 뒤로 간절하게 팔을 둘렀다.

두 사람의 몸에서 채 떨어지지 못한 물방울들이 착, 착,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튀었다.

재운의 가느다란 다리가 윤일우의 팔에 한쪽씩 걸려서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으, 흐으, 아, 흣……!”

고환이 볼기를 때리는 순간마다 붉은 입술 사이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너를 혼낼 수밖에 없잖아.”

윤일우가 욕조에서 나와 욕실 벽에 재운을 밀어붙였다. 등이 벽에 닿는 안정감도 잠시. 팔뚝만 한 좆이 핏줄을 흉흉하게 휘감은 채로 재운의 몸을 뒤흔들었다.

속살이 발발 경련을 일으키면서 거대한 좆을 삼켜 물었다. 성기가 빠져나갈 때는 좆 표피에 달라붙어 붉은 점막이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

두꺼운 좆 중에서도 가장 두툼한 귀두 대가리가 몸속 깊은 곳을 헤집는 순간 재운이 울부짖었다.

“흐아아아……!”

열에 녹아 다 풀려 버린 눈동자가 스르륵 감기는 눈꺼풀 아래로 자취를 감추었다.

재운이 기절한 이후로도 윤일우는 텅텅 빈 재운의 배 속이 다시금 정액으로 차오를 때까지 좆질을 멈추지 않았다.

재운은 구멍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뜨거운 살덩이를 조여 문 채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심장이 멈추지 않고 뛰는 것처럼 윤일우의 좆도 재운의 몸속에서 역동적으로 맥박 쳤다.

“앞으로는 네가 누구 거인지 알 필요가 있겠어. 너도, 다른 놈들도.”

정신을 잃은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새벽녘의 공기처럼 차디찼다.

* * *

어린 시절의 기억은 희미한 듯하면서도 선명하게 윤일우의 내면에 자리 잡았다.

“일우야, 우리 소중한 아들……. 아빠가 우리 일우 정말 사랑하는 거 알지?”

“……네. 저도 아빠 사랑해요.”

말을 알아듣기 시작한 후부터 윤일우가 오메가 부친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우리 아들, 사랑해.’라는 말이었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뜻도 제대로 모를 나이부터 귀에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었다.

짜악, 짜악.

“아빠가…… 일우를 정말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문제는 그가 어린 윤일우를 구석진 방으로 끌고 가 체벌을 가할 때도 사랑이라는 말을 했다는 거였다.

“저도…… 아빠 사랑해요.”

“그렇지? 아빠가 우리 일우 아프게 해도…… 일우는 아빠 사랑해 줄 거지……?”

“……네.”

얼굴 한쪽이 퉁퉁 부어올라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윤일우는 부친을 향해 어여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면 부친은 흐느끼면서 윤일우를 품 안에 끌어안고 상처 곳곳에 입을 맞춰 줬다.

평소에는 말로만 사랑한다 하고, 좀처럼 윤일우에게 애정 어린 스킨십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윤일우는 잠시 잠깐만 고통을 참으면 달콤한 보상이 뒤따른다 여겼다. 둘만 있을 때만 벌어지는 은밀한 폭력을 알파 부친에게 숨긴 이유였다.

“이건 어쩌다 생긴 상처지.”

오랜만에 세 식구가 한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시간이었다.

윤일우는 오메가 부친에게 학대를 당한 날이면 한동안 몸이 가려지는 옷을 입었다.

오메가 부친이 윤일우의 얼굴을 때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은 옷에 가려 보이지 않는 부위를 주먹으로 때리거나 꼬집을 때가 많았다.

오늘도 신경 써서 긴팔 셔츠를 입었다. 그런데 잠깐 물잔을 잡기 위해 들어 올렸던 팔의 안쪽을 본 모양이었다.

“아, 그게…… 우리 일우가…….”

오메가 부친은 지나치게 남편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었다. 그가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윤성훈의 눈매가 가느다래졌다.

“이주영. 너 설마…….”

“아, 아니에요……!”

“뭐가 아니라는 거야.”

“그게, 그러니까…….”

큰소리가 오가던 다이닝 룸에 물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울렸다.

“아버지, 이 상처 진대원이랑 놀다가 생긴 거예요. 힘겨루기 하다가.”

“대원이?”

“네.”

“마, 맞아요……! 어제 대원이가 집에 놀러 와서 일우랑 놀다가 생긴 상처예요……!”

이주영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렸다. 윤성훈은 미심쩍어하면서도 이후로 윤일우의 몸에 난 상처에 대해 말을 더 얹지는 않았다.

* * *

“너만 없었으면……. 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눈을 감고 있는 제 머리맡에 앉아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손길이 바뀐 건 한순간이었다.

“…….”

윤일우는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여물지 못한 턱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자신이 이렇게 표정을 굳혀도 어차피 이주영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사람이었다.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 엉키듯이 잡힌 머리카락이 뿌리째 뽑히는 아픔이 들었다.

생리적으로 눈가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아팠다. 그런데도 윤일우는 이주영의 푸념을 못 들은 척 감은 눈을 그가 방을 나설 때까지 뜨지 않았다.

* * *

“……아버지?”

“정말…… 한국으로 다시 들어온 거예요?”

이주영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화실 앞이었다. 윤일우가 그를 자그마한 목소리로 불렀다.

하지만 이주영은 핸드폰이 구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간절하게 붙잡고 누군가와 하는 통화에 몰두해 있었다.

“나 좀…… 데리고 도망쳐 줘요……. 여기는 지옥이에요……. 알잖아요, 해성 씨. 저 하루도 해성 씨 생각 안 했던 적 없다는 걸…….”

해성 씨.

가끔 이주영이 무의식중에 내뱉고는 하던 이름이었다.

윤일우는 기억력이 좋았다. 해성이라는 단어를 내뱉을 때 이주영의 표정이 아련하게 물들었다는 걸 또렷하게 기억했다.

“……일우요? 걔가 뭐가 중요해요. 가지고 싶어서 가진 것도 아니고……. 지금도 걔 얼굴 볼 때마다 끔찍한데…….”

“아…….”

한 번 더 이주영을 부르려던 윤일우는 그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열린 방문 옆에 서서 윤일우는 이주영이 해성이라는 사람에게 자신에 대해서 하는 말을 남김없이 들었다.

계속 듣지 말고 어서 자리를 벗어나라고 본능이 소리쳤지만, 이상하게도 발바닥이 땅에 붙기라도 한 것처럼 한 걸음도 옮길 수가 없었다.

* * *

“……아버지, 어디 가요?”

“지금 시간에 왜…….”

그 통화를 듣고 난 뒤 윤일우는 이주영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유심히 관찰하게 됐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퍼부었다. 넓은 정원에 가득한 초목들마저 숨을 죽인 시간이었다.

윤성훈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해외로 출장을 가는 날도 많았고, 워커 홀릭인 사람이라 회사에서 날밤을 새우는 날도 적지 않았다.

거대한 저택에는 수많은 사용인들이 있었지만, 일주일 전부터 이주영이 밤부터 새벽까지는 입주 사용인까지 모두 퇴근하라고 일러 뒀다.

두 사람만이 남은 저택에서 윤일우는 매일 밤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유는 별게 없었다.

이주영의 표정이 여느 때보다 밝고, 행복해 보여서였다.

자신과 윤성훈과 있을 때는 항상 우울해 보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용인들을 강제로 퇴근시킨 날부터 창백하던 뺨에 홍조를 띠고 돌아다녔다.

그때부터는 윤일우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구석진 방으로 끌고 가는 일도 없었다.

마치 윤일우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는 핸드폰만을 붙든 채 설레는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기만 했다.

직감이었다.

윤일우는 이주영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아니,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몰라도 그가 자신을 때리는 행위마저 감내할 정도로 그를 아꼈다.

그런 그가 자신을 떠나려고 한다는 걸…… 어린 마음으로도 직감해 버리고 말았다.

“일우야……. 아빠가 우리 일우 정말 사랑하는 거 알지……?”

“…….”

그날, 윤일우는 처음으로 이주영이 사랑한다고 하는 말에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커다란 우산을 쓰고 있었고, 윤일우는 잠옷 차림으로 비를 맞고 있었다.

축축해진 정원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이주영이 아이답게 통통한 뺨을 매만졌다.

“……미안해. 이제는 아빠 잊고 일우도 행복하게 살아.”

묻고 싶었다.

나는 당신에게 불행이었냐고.

하지만 윤일우는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이주영이 퍼붓는 비에 체온이 식어 가는 자신을 그대로 둔 채 우산을 쓰고 넓은 정원을 벗어날 때까지.

그저 망부석처럼 서서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시야에 담았다.

* * *

“……그놈은 잊어. 아빠 자격도 없는 놈이니까.”

차가운 빗줄기 속에서 밤새 서 있던 대가는 컸다. 윤일우는 태어난 이후로 가장 크게 앓았다.

시야가 부옇게 흐려지고, 누워 있는데도 머릿속이 어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수액을 팔목에 달고 누워 있는 어린 아들에게 윤성훈은 이주영을 잊으라 했다.

“……곧 새로운 사람이 올 거야. 이번에는 제대로 된 사람으로 데려오마.”

윤일우는 윤성훈을 닮았다. 그의 어린 시절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신을 버리고 사라져 버린 이주영의 흔적은 색소가 옅은 머리카락과 눈동자뿐이었다.

자신보다 채도가 짙은 윤성훈을 올려다보며 윤일우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 * *

“도련님, 오늘 일정이 담긴 스케줄 표입니다.”

이후 윤일우는 천천히 이주영을 제 삶 속에서 지워 냈다. 가끔 윤성훈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걸 들어도 애써 기억에 담지 않으려 노력했다.

비서가 건네준 태블릿 안에 담긴 일정표를 스윽 훑는 눈초리가 어린아이답지 않게 서늘했다.

“……대한 보육원?”

“네. 대한 그룹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입니다. 오늘 사장님과 함께 들러서 사진을 찍을 예정입니다.”

“알겠어요.”

태블릿을 비서에게 돌려준 윤일우가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독 날이 맑은 날이었다.

……자신을 버린 그 남자가 좋아하는 꽃향기가 차창을 넘어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저쪽에서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아요?”

“제가 가서 확인해 볼까요?”

“아니요.”

윤성훈과 함께 일정의 목적인 사진을 찍었다. 그가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윤일우는 보육원을 둘러봤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자신도 저 아이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놀면서 지내야 하는 나이였다. 그런데 하루가 멀다 하고 배워야 할 것들이 늘어났다.

윤성훈은 하나뿐인 어린 아들에게 벌써부터 후계자 교육을 하고 있었다. 윤성훈의 곁에 계속 있다가는 숨이 막힐 것 같아 자리를 피했다.

웃음이 넘쳐나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할 때 이질적인 소음이 귀에 잡혔다. 작은 소란이었다.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소리였다. 그런데 윤일우는 이상하게도 소란이 들려오는 곳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도련님, 혹시라도 위험한 일이 생기면……!”

윤성훈이 윤일우를 보좌하도록 하기 위해 붙여 준 신 비서가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윤일우는 묵직한 파열음과 억눌린 신음이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이사이 흥분한 성인 남성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내가……! 분명히……! 방 안에 얌전히 있으라고 했지……!”

“으윽, 윽…….”

남자가 둥글게 말린 무언가를 퍼억, 퍽 소리가 나도록 내려치고 있었다.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애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윤일우가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빠…….’

‘너는……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무자비하게 몸에 내려앉던 손길이 떠오르는 순간 윤일우는 이성 대신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어떤 새끼……! 아, 그, 그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불과 몇십 분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윤성훈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선한 얼굴로 웃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얼굴은 야차같이 일그러진 상태였다. 살기로 번들거리던 눈동자가 윤일우를 본 순간 당황해 흔들렸다.

윤일우의 시선이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에게 닿았다.

날이 좋아 햇볕이 내리쬐는 날씨인데도 유독 그늘이 진 곳에서 아이는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었다.

덥수룩하게 정리되지 않는 머리카락 사이로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눈동자만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색소가 옅은 자신과 달리 별 하나 뜨지 않은 밤하늘을 담아 놓은 것처럼 새까만 눈동자였다.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어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일렁이는 눈동자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얘가 손버릇이 좋지 않아서 교육 중이었습니다.”

윤일우의 눈치를 보던 남자가 비굴한 목소리로 변명을 했다. 새까만 눈동자가 의아함으로 물들어 가는 게 보였다.

“아버지가 원장님이 이러시는 거 아시나요?”

“헉……! 사장님한테는 제발 아무 이야기도 하지 말아 주십시오…….”

남자가 정수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이고 있던 걸 넘어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상처투성이인 아이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천천히 깜박거리는 눈꺼풀 사이로 드러나는 눈동자가 유독 맑고 깊었다.

윤일우는 남자에게 말을 걸면서도 아이의 반응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했다.

“아무래도 보육원 내에 CCTV를 설치해야겠어요. 가능하면 사각지대가 없도록.”

CCTV가 있기는 하지만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에만 있는 걸로 알았다.

“죄, 죄송합니다……! 도련님, 한 번만 선처를……!”

윤일우는 자신의 말에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기세로 벌벌 떠는 남자를 차갑게 내려다봤다.

“신 비서.”

“네, 도련님.”

“원장을 바꿔야겠어요. 아버지한테는 제가 따로 말씀드릴 테니까 쓰레기는 있어야 할 곳으로 치워 주세요.”

“네.”

“도련님……!”

아직 자라지도 못한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건 쓰레기나 하는 짓이었다.

이주영이 제게 한 짓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알면서도 그의 행위를 눈감았던 자신의 과거가 칼날처럼 마음에 박혀 들었다.

윤일우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 아이의 앞에 몸을 굽히고 앉았다.

“너 이름이 뭐야?”

“…….”

자신이 질문을 던져도 아이는 대답 없이 멍하니 입을 벌리고만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허옇게 부르튼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말을 못 해?”

“아, 아니…….”

이어 꺼낸 질문에 자그맣게 흘러나온 목소리가 풀잎 위에 맺힌 이슬처럼 여렸다.

어딘지 모르게 과거의 자신과도, 또 툭하면 눈물을 터트리던 그 사람과도 닮은 아이였다.

“할 줄 아네. 이름이 뭐냐니까?”

“이, 재운…….”

친구들이 봤으면 이상하다고 손가락질했을 만큼 윤일우는 처음 만난 아이에게 안 하던 짓을 하고 있었다.

이재운.

입안에서 굴린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동글동글한 아이의 눈동자만큼 부드러운 이름이었다.

“난 윤일우.”

의식하지 않아도 눈매가 저절로 휘어졌다. 사람을 상대할 때 숨 쉬듯이 짓고는 했던 미소지만, 이상하게도 아이 앞에서는 진심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자신의 웃는 얼굴을 마주하고 점점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보는데, 그날 이후 처음으로 공허했던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 * *

“이게 다…… 뭐야?”

“선물.”

틈만 나면 보육원을 찾아갔다.

애완동물이 생기면 이런 기분일까, 실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놔둘 정도로 재미가 없던 세상 속에서 그 아이를 만나면 그런대로 삶이 흥미로워졌다.

오전부터 백화점에 들러 재운에게 어울릴 만한 것들을 잔뜩 샀다.

신 비서의 손에 들려 있던 쇼핑백들을 아이의 앞에 내려 두자 크게 뜨이는 눈동자가 마음에 들었다.

“나 이, 이런 거…… 필요 없는데…….”

“흐음…….”

두 사람은 보육원 원장실 안에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보육원 내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공간이었다.

평소에 사용하던 소파보다 훨씬 불편한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던 윤일우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신 비서.”

“네, 도련님.”

“재운이가 이거 다 필요 없다고 하네요. 버려요.”

“알겠습니다.”

물건들을 버리라는 말에 당황한 얼굴이 볼만했다.

“이, 이거를 다 버린다고……?”

“응. 너 주려고 산 건데, 너는 필요 없다며. 나도 필요 없는 것들이라서.”

“그런…….”

세상에서 가장 어이없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새까만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필요해진 거 같아?”

“……응.”

“그러면 이거 입어 봐.”

아이는 평소 자신이 어울려 노는 애들과 달리 순했다. 협박 같지도 않은 말에 금세 제 의견을 굽혔다.

널려 있는 쇼핑백 중에서 연분홍빛 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를 꺼냈다.

마네킹에 입혀져 있는 걸 봤을 때부터 재운에게 어울리겠다 생각한 옷이었다.

“아, 알겠어…….”

제가 건넨 옷을 받아 든 손이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깡말랐다.

“옷 갈아입고 나랑 외출하자.”

“외출……?”

“응.”

보육원에다 식단을 신경 쓰라고 말했는데도 볼 때마다 살이 붙지 않는 아이를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가 봤던 곳 중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소를 떠올리는 시간은 지루하고 힘겨운 일상 속에 찾아든 단비였다.

* * *

“흐윽, 흑…….”

재운이 살이 붙지 않는 원인이 있다는 걸 알아차려야 했다. 워낙 제 얘기를 하지 않는 아이였다.

그냥 자신의 얼굴만 봐도 좋은 것처럼 자신이 무슨 얘기를 하든 눈동자를 반짝거리면서 듣고는 해 발견하는 게 늦었다.

눈, 코가 새빨개진 채로 서럽게 우는 재운을 보는데 가시가 손톱 밑에 박히기라도 한 것처럼 거슬렸다.

“너 여기서 뭐 해?”

“어…….”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눈동자가 눈물로 얼룩져 일그러졌다. 그러다 제 몸에 가득한 상처를 발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숨기기 위해 움츠리는 꼴에 기분이 불쾌해졌다.

“누가 이랬어?”

윤일우는 재운에게 다가가 휘장처럼 내려앉은 앞머리를 이마 뒤로 넘겼다. 광대뼈가 두드러질 정도로 마른 얼굴이 눈물로 엉망이었다.

선득한 바람 한 줄기가 마음속을 가로질렀다.

“넘어졌어…….”

한참 동안 입술을 어물거리다가 꺼내 놓은 말은 누가 봐도 거짓말이었다. 거짓말도 못하면서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 이러는 건지 속이 답답했다.

“거짓말하면 나쁜 아이인데.”

보기만 해도 아픈 코 부근을 검지로 톡톡 건드렸다. 코를 타고 번지는 아픔에 움찔 떨리는 얼굴을 보자 불쾌했던 기분이 한결 가라앉으려 했다.

“다시 물을 거야. 이번에도 거짓말하면 나 다시는 너 보러 안 와.”

“…….”

반쯤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며칠이 지나면 자신은 무의식중에 재운이 있는 장소로 걸음을 옮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도 헷갈리는 제 속마음을 아이가 알 리가 없었다.

제가 정말 자신을 안 볼 거라고 생각했는지 커다란 눈망울에 고인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아래로 툭 떨어져 내렸다.

흙먼지에 뒤덮여 있던 뽀얀 살결이 눈물길을 따라 드러났다.

“누가 이런 건지 말해. 주동자 이름.”

윤일우는 다시 한번 재운에게 기회를 줬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보이지 않는 관용이었다.

제 인생에서 여러 번 기회를 주고, 곁에 둔 건 재운이 그 사람 이후로 처음이었다.

“강, 윤조…….”

이름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었다.

그러고 보니…… 재운과 같은 나이인 애들 중에서 유독 또래보다 키도, 덩치도 크던 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용기를 내 말한 재운의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팔을 아래로 내려 움츠러든 손을 잡자 재운이 꼼질거리며 제 손을 마주 잡아 왔다.

맞닿은 살결을 따라 번지는 온기에 오늘도 윤일우의 입매에는 진심 어린 미소가 피어났다. 부친을 비롯한 사람들 앞에서 꺼내 보이던 가면 같은 미소가 아니었다.

“가서 치료하자. 코는 엑스레이도 찍어 봐야 할 것 같으니까 아예 병원으로 가는 게 낫겠다.”

자신보다 한참 작은 아이와 손을 잡고 길을 걷자 바람마저 기분 좋은 손길로 볼을 간질였다.

윤일우는 제가 느끼는 감정이 ‘외로움’이라는 걸 자각하지도 못했다.

자신을 학대하는 이주영의 손길마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었던 건 사용인들과 가끔 만나는 또래의 애들이 아니면 삭막한 제 일상 때문이었는데.

사랑한다는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어린 마음에도 본능적으로 알았으면서.

윤일우는 그런 사랑과 애정이라도 받고 싶은 본능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재운과 함께 있으면 윤일우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공허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 줘?”

자신을 보며 볼을 붉히던 아이가 불쑥 건넨 질문에 윤일우는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글쎄…….”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제 시선을 끌었던 아이였다. 세상사 관심 없는 자신이 귀찮은 것도 감수하고 구해 줬던 사람은 재운이 처음이었다.

“우는 게 마음에 들어서?”

“그게 뭐야…….”

눈물로 평소보다 투명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네가 우는 모습이 좋은 것 같아.’

이상한 감정이었다.

그랬기에 윤일우는 재운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길을 가다 다 죽어 가는 새끼 고양이를 봤을 때 나한테는 별거 아닌 행동이 저 여린 생명체에게는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크나큰 일이라는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한순간의 충동이었고, 변덕이었다.

자신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손을 꼬옥 붙잡아 오는 재운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노을빛이 꽃처럼 내려앉은 운동장을 걸어가면서 윤일우는 재운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 보였다.

* * *

“……이주영이 한번 만나자고 하는구나.”

잊고 지내던 사람이 인생에 끼어든 순간은 전조도 없었다.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되던 날이었다.

윤성훈과 단둘이 하는 식사 자리는 식기가 움직이는 소리만이 자그맣게 울렸다.

침묵을 뚫고 윤성훈이 한 말에 윤일우가 테이블에 두고 있던 시선을 올렸다.

“그 사람이 누구인데요?”

“너 그게 무슨…….”

“저 버리고 떠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제가 마음이 넓지 않아서요.”

“그건…….”

부자는 얼굴만 닮은 게 아니라 이주영에게 약한 것까지 꼭 빼닮아 있었다.

윤일우는 비가 오는 날마다 차갑게 버려지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를 제 인생에서 지워 나갔다.

하지만 윤성훈은 여전히 그를 온전히 지워 내지 못했다. 조명 아래에서 격하게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만 봐도 그랬다.

“절 낳아 주신 분은 죽었어요. 십 년도 전에.”

자신이 원할 때는 제 곁에 없다가 다 크고 나니까 보고 싶다고 찾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새아빠가 서운해하겠어요. 그래도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산 세월이 그 사람보다 많은데.”

윤일우가 비어 있는 자리를 눈짓했다.

윤성훈은 이주영이 떠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혼을 했다. 비슷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오메가 도련님이었다.

다만 몸이 약한 그는 방 안에서 지내는 날이 많았다.

오늘도 식사 시간 직전에 열이 나 식사 자리에 함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전언만을 보냈다.

“……그래.”

바깥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다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윤일우와 이주영한테만큼은 꽤 다정하게 굴었다.

지금도 윤일우가 버릇없이 말을 하는데도 그의 눈동자는 착잡함으로 물들어 있을 뿐이었다.

윤일우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제 인생에서 이주영의 흔적을 완전히 뿌리 뽑았다고 착각했다.

언뜻 보면 평화롭게 흘러가던 일상이 어긋나기 시작한 건 한순간이었다.

잔잔한 수면 위에 물방울 하나만이 떨어졌을 뿐이었다. 동심원이 중심부터 가장자리까지 퍼져 나가듯, 윤일우는 재운의 말 한마디에 이성을 잃었다.

* * *

“흐윽, 좋아해…….”

“……뭐?”

재운이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쯤은 자신을 향하는 눈길과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불쾌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맹목적으로 바라보는 눈길을 인식하다 보면 다른 어떤 일보다 큰 만족감이 들기도 했으니까.

“일우야, 좋아해……. 그러니까 제발…….”

좋아한다는 말이 뭐길래. 그 감정이 도대체 어떤 것이길래.

오메가 페로몬을 질질 흘리면서 재운이 건넨 말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일우야, 우리 아들……. 아빠가 사랑하는 거 알지?’

재운과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 그걸 몰랐던 것도 아니었다. 어린 시절 떠나갔던 사람의 흔적은 이미 다 지워 냈다. 아니, 그렇게 자위했다.

“하…….”

자신을 향해 고백하는 재운을 보면서 무의식중에 억누르고 있던 것들이 한순간에 터지고 말았다.

“야, 윤일우……!”

진대원이 말려도 윤일우의 시선은 재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힘을 조금이라도 주면 부러질 것처럼 가느다란 목을 쥐었다.

“재운아, 내가 좋아?”

“콜록, 콜록…….”

얼굴이 새빨개진 채 기침을 토해 내면서도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에 파괴적인 욕망이 들끓었다.

윤일우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역린이었다.

자신은 괜찮아진 게 아니었다. 그 사람을 인생에서 지워 냈다는 건 착각이었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제 마음은 망가졌던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그걸 모르고 부서진 잔해 위로 흙더미를 덮고,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물을 줬다.

재운의 말 한마디에 드러난 잔해는 썩을 대로 썩어서 영혼을 물들일 듯한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이성이 어느 정도 돌아온 건 재운의 눈동자가 뒤로 돌아갈 때가 되어서였다.

“그만.”

“뭐? 너 미쳤어?”

“하아……. 이 상태에서 어떻게 그만둬. 잠깐만 기다려 봐.”

정액과 페로몬에 절여지다시피 한 재운을 안아 들고 일어났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제 시선은 재운에게서 벗어나지 않았다.

“으흐, 으…….”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앓는 재운이 어떤 모습이든 제 품 안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에 들었다.

* * *

지금도, 재운은 여전히 윤일우의 품 안에서 숨을 쉰다. 그 사실을 인식하자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졌다.

“아, 흐으…….”

무슨 꿈을 꾸는지는 몰라도 재운의 얼굴은 온통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였다.

“재운아.”

“으응…….”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이마 뒤로 넘기고 재운의 이름을 불렀다. 조그마한 목소리가 부어오른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잠결에서도 제 목소리에 반응하는 게 좋았다.

……이런 게 좋은 감정인 건가.

불현듯 든 생각이었다.

싫어하고, 불쾌한 감정은 확실하게 자각이 든다. 그러나 윤일우는 어린 시절부터 좋아한다는 감정만큼은 선뜻 말하기가 어려웠다.

겉치레로 어떤 색이 좋다, 음식이 좋다, 냄새가 좋다, 얘기하는 건 쉬웠다.

그러나 아무도 듣지 못할 속마음에서 무언가를 좋다, 라고 표현하는 건 윤일우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너는 내가 왜 좋은 거야?”

“흐으응…….”

동그란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대고 말을 걸어도 재운은 희미한 신음만 냈다.

지칠 만도 했다. 미약을 먹어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알파와 베타 네 명을 상대했으니까.

“……이제는 나 싫어하려나.”

그러나 제게서 재운이 도망쳤던 순간을 떠올리자 재운이 이제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때의 자신이 한 행동은 지금 돌이켜 보면 꽤나 잔인했다.

“……나는 아직도 헷갈려. 너를 향한 내 감정이 뭔지.”

처음에는 분명 호기심이었다.

자신처럼 어른에게 학대당하는 재운을 보고 충동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후로는 언젠가부터 재운을 보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라도 돋은 것처럼 불쾌했다.

재운이 제 시야 안에 들어와 있어야 했다. 다른 사람을 보는 시선과 저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야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네가 내 곁에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아. 네가 원하지 않아도, 나는 너를 내 곁에 둘 거니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재운이 어떤 감정으로 자신을 보고, 제가 재운을 어떻게 바라보든지 간에 함께 있어야만 한다는 거였다. 재운과 자신은 그런 사이였다. 죽을 때까지 함께해야만 하는 사이.

“너는 내 거야, 재운아.”

따끈따끈한 몸체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코끝을 비볐다. 솔솔 흘러나오는 페로몬이 느릿하게 온몸으로 전해졌다.

분명 안고 있는 몸은 따뜻한데도 새하얀 눈이 흩날리는 설경 위에 덩그러니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더럽히고, 더럽혀도 너는 여전히 새하얀 눈밭 같네…….”

자신은 추악한 늪이 된 지 오래인데. 재운은 여전히 처음 만났던 그날과 달라지지 않은 것만 같았다.

“떠나지 마, 너는……. 그 사람처럼…….”

유난히 동그란 눈동자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일우는 이제 그 사람 없이는 살 수 있지만, 재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다.

재운이 제 곁에 없는 시간 동안 느꼈던 절망감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흔적처럼 윤일우의 뇌리 속에 강하게 박혔다.

“또 한 번 내 곁을 떠나가려고 하면…….”

윤일우가 재운의 목덜미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부어오른 입술이 반쯤 벌어진 채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으니까.”

재운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갔다고 하더라도, 윤일우는 정말 마지막 이성만큼은 놓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함유재도 죽여 버리고 싶었고, 재운도 혼자서는 걸어 다니지 못하게 발목의 인대를 끊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가까스로 인내했다. 어린 시절부터 체득한 인간적인 감정들을 긁다시피 끌어모은 결과였다.

“그러니까 내 곁에 계속 있어. 지금처럼 나만 바라보면서…….”

재운도 처음에만 힘들지 서서히 적응해 나갈 게 분명했다. 재운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 봐야 자신과 친구들이 다였다.

친구들마저 멀어지게 만들면 결국 재운의 곁에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그 사실을 인식하자 눈빛이 다정한 빛으로 물들어 갔다.

“너도 적응하면 괜찮아질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게.”

다른 사람 모두가 제 행동을 범죄라 욕해도 상관없었다. 윤일우는 그 모든 걸 무마할 힘도 지녔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한참 울어 붉은빛이 채 사라지지 않은 눈가를 엄지로 매만졌다. 손바닥 안에 다 담길 정도로 자그마한 얼굴을 보자 저절로 입매가 둥글게 휘어졌다.

“목줄이 필요 없어질 정도로 네가 이 생활에 적응하면, 그때는 바깥에 나갈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 알았지?”

기다란 속눈썹을 손끝으로 매만지다가 입술에 초옥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췄다.

가끔 골이 깨지도록 지끈거리던 두통도 재운의 체향과 페로몬을 맡으면 한결 나아지고는 했다.

혼자서는 깊게 잠들지 못하는 밤도 마찬가지였다.

윤일우는 재운의 다리에 제 다리를 얽어 가느다란 몸을 온몸이 마주 닿도록 끌어당겨 안았다.

아무것도 입지 않아 자연스럽게 비벼지는 하체에 어느 순간 좆이 발기해 아랫배에 올라붙었다.

윤일우가 손을 아래로 내려 발개진 볼기 중앙을 가로질렀다. 언제라도 박으라는 듯이 입구에 맺혀 있는 액이 손끝에 묻어났다.

“흐으…….”

재운이 잠결에 윤일우의 가슴팍을 파고들어 제 이마를 비볐다. 좆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구멍이 부어올라 매끈했다.

손가락 하나만을 집어넣은 채로 안쪽을 부드럽게 휘젓자 안쪽에서 액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제 좆을 머금을 수 있을 정도로 구멍을 풀어 준 윤일우가 가장 두꺼운 부위부터 구멍 속으로 집어넣었다.

한쪽 다리가 들린 채로 구멍이 늘어지는 느낌에 재운이 결국 눈을 뜨고 말았다.

“누, 누구…….”

“나야, 재운아.”

“으아아…….”

가만히 있어도 아픈 곳을 좆 대가리가 인정사정없이 벌리고 침입하고 있었다. 재운이 눈물을 펑펑 쏟아 내며 윤일우의 상체 위로 가쁜 숨을 흩뿌렸다.

“너 진짜……, 흐윽…….”

눈물이 쏟아지듯 흘러내리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였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다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히트 사이클이 왔던 이유가 김본기가 먹인 약 때문이었다.

진실을 알기 전에는 그래도 재운은 어느 정도 제 탓도 있다고 여겼다.

자신이 오메가인 게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그다음에는 억제제 하나 챙기지 못해서 갑작스럽게 히트 사이클이 온 제 체질 때문이었다.

친구였던 이들을 발정 난 개들로 변하게 만든 원인을 자신이 제공했다.

그런데 자신의 잘못은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이미 일은 터졌다. 자신의 위치는 그들과 동등했던 친구 자리에서 그들이 원할 때마다 몸을 내주는 위치로 전락했다.

정신을 잃기 전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빨리 넣어. 어차피 풀어져 있잖아.’

하나로도 버거운 좆을 두 개나 머금었던 순간부터.

‘……이번에는 내가 한다.’

저를 나락으로 끌어 내리는 원인을 제공한 김본기가 좆을 쑤셔 넣던 감각도.

‘구멍이 엄청 부었어.’

욕실 안에서 윤일우의 좆에 꿰뚫린 채 울부짖던 마지막까지.

암전이 찾아들기 전에도 좆에 박히고 있었는데. 깨어난 이후로도 여전히 좆이 몸을 파고들고 있는 상황에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 힘든데……. 왜 자꾸…….”

재운이 이토록 서러운 속마음을 일부분이라도 내보낼 수 있는 건 자신을 바라보는 윤일우의 눈빛이 바뀌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껴서였다.

자신이 도망갔다가 붙잡혔을 때 마주한 윤일우는 정말로 무서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화가 풀린 걸까.

재운은 지금 구멍 속을 파고드는 좆의 움직임이 여느 때보다 부드럽다는 걸 깨달았다.

부어오른 구멍처럼 내벽도 아프게 쓸린 상태였다. 만약 윤일우가 재운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뚫듯이 좆을 쑤셔 넣었으면 고통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많이 힘들어? 엄청 우네.”

얼굴을 쓰다듬는 손길에 애정이 묻어났다. 그가 자신을 아낀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알 수 있을 정도로 듬뿍.

그게 정상적이지는 않더라도 재운은 애정 어린 손길 하나만으로도 다쳤던 마음 위에 연고가 한 겹 발리는 기분이었다.

윤일우가 미쳤듯이 재운도 미친 지 오래였다. 윤일우를 증오하지도 못하고, 그가 제게 손을 뻗을 때마다 발정하는 건 그 탓이었다.

재운은 윤일우에게 완전히 미쳤다. 어쩌면 이제는 목숨마저 그에게 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재운은 이제는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다.

“넣고만 있을게. 이렇게 안고 있으면 괜찮지?”

윤일우가 느릿하게 좆을 뿌리까지 재운의 몸속에 집어넣었다.

부어오른 살갗에 닿은 까끌까끌한 음모의 감촉이 선명했다. 재운이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재운의 머리카락을 이마 뒤로 넘긴 윤일우가 동그란 이마 위에 입을 맞췄다.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리는 눈가를 엄지로 훔치고 작은 얼굴을 손안에 담아 들어 올렸다.

“재운아.”

“응…….”

배 속 가득 들어찬 좆 때문에 숨 쉴 때마다 버거웠다. 재운이 숨을 몰아쉬며 윤일우와 시선을 맞췄다.

명도가 낮은 침실에서도 윤일우의 눈동자는 색이 맑고 깊었다. 눈물로 부옇게 흐려지는 시야에 다정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 마음에 박히듯이 들어왔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리는 제 이름이 좋아 재운이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도르륵 굴러떨어지는 눈물방울을 따라가던 시선이 눈물의 궤적을 거슬러 새까만 눈동자에 닿았다.

“내가 아직도 좋아?”

“…….”

윤일우의 질문에 재운이 숨을 멈췄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재운은 자신이 윤일우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다가 무슨 일이 벌어났는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 나는…….”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다. 차마 입술 밖으로 튀어나오는 문장이 없었을 뿐. 심장이 두근두근 맥동하기 시작했다.

좋아한다는 말은 이제 재운에게도 금기어나 마찬가지였다. 그 말을 왜 다시 윤일우가 꺼내는지 몰라 불안했다.

제가 화가 풀렸다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던 걸까. 여전히 윤일우는 화가 난 상태일지도 몰랐다. 극도의 공포감이 치밀어 올랐다.

재운이 입술을 어물거리기만 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배 속 가득 들어찬 좆이 꿈틀거렸다. 재운이 숨소리마저 죽여 나갔다. 숨을 조금이라도 크게 쉬면 윤일우가 다정한 가면을 벗어던져 버리고, 제 몸을 사납게 파고들 것만 같아서였다.

“화난 거 아니야. 그냥 솔직한 네 마음을 알고 싶어서 그래.”

잘게 떨리는 등허리를 열기를 머금은 손이 스윽 쓸어내렸다. 오목하게 파인 부분을 느긋하게 쓸어내리고 보들보들한 엉덩이 위를 배회했다.

“아, 안 좋아해…….”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재운이 어렵게 말문을 뗐다. 계속해서 격하게 뛰는 심장 탓에 가슴께가 뻐근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려움이 커져 갔다.

재운은 윤일우가 없는 시간 속에서도 그를 그리워했다. 함유재의 도움을 받아 도망간 순간마저도 그랬다. 눈을 떠도, 감아도 부지불식간에 윤일우와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 재운의 마음을 제집처럼 헤집어 놨다.

감정이 마음대로 움직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자신을 엉망으로 망가뜨려도, 재운은 윤일우를 미워할 수 없었다. 재운에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그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잊어버리는 일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윤일우에 대한 감정을 손으로 잡아 쥐어뜯어 내고도 싶었다.

“정말? 나는 네가 아직도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는데. 앞으로 계속 변함없이.”

“뭐……?”

이어지는 윤일우의 말에 재운이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올려다봤다.

빛을 모아 빚은 것처럼 예쁜 눈동자가 재운의 반응을 하나하나 남김없이 담고 있었다.

“나는 좋아한다는 감정을 잘 몰라. 그래도 이 세상에서 제일 아끼는 게 뭐냐고 누가 물어보면…….”

잦아드는 말소리에 재운이 입안에 고인 침조차 삼키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볼을 매만지는 손길을 따라 자글자글한 소름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옅게 들썩이는 몸을 따라 내벽이 요동쳤다. 그만큼 윤일우의 좆도 평온한 그의 얼굴과 달리 핏줄이 불거졌다.

“너라고 말할 거야.”

눈동자 안에 고여 있던 눈물방울이 툭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나는 항상 네가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 네 머릿속에는 온통 내 생각만 가득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굳어 버린 얼굴 위로 미약한 입맞춤이 곳곳에 내려앉았다.

마지막 종착지인 재운의 입술 위에서 숨을 멈춘 윤일우가 마른 뺨을 매만졌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네가 나를 좋아하는 감정이 변하지 않기를 원해.”

이기적인 말이었다.

좋아한다면 그 사람을 아껴 주고, 다치지 않게 지켜 주고, 슬퍼하지 않도록 보듬어 줘야 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도 재운은 윤일우의 말이 이어질수록 점점 더 빨리 뛰는 심장 때문에 가슴이 욱신거렸다.

“다른 사람한테는 들지 않는 생각이야. 나는 너를 어쩌면……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

재운이 아랫입술이 희게 질리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고작 이런 말로는 그동안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영영 아물지 않을 상처가 이미 제 마음속에 너무나 많이 쌓였다.

그런데 윤일우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목소리에 머릿속이 아득한 빛으로 물들어 갔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기쁜 듯도 했고, 더없이 슬프기도 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헤매다 오랜만에 빛을 마주한 사람처럼 환희가 느껴지는 것 같다가도, 울적한 체념이 마음속을 뒤흔들었다.

“이제 나 싫어진 거야?”

윤일우가 그답지 않게 눈썹을 추욱 늘어뜨렸다. 대체로 재운한테는 다정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이지만, 이렇게 대놓고 불쌍한 표정을 짓는 건 처음이었다.

재운이 방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두꺼운 좆이 몸속에 들어 있어 더 그랬다. 두 사람의 감정이 달라질수록 내벽도, 좆도 같이 요동을 쳤다.

“그, 그건 아닌데…….”

“그래. 그거면 됐어.”

윤일우는 재운을 압박하는 대신 손을 뻗어 그를 끌어안았다. 목덜미에 코를 비비자 재운의 페로몬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복잡한 심경을 나타내듯이 흔들리는 페로몬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제 페로몬도 풀어내자 재운이 몸을 움찔 떠는 게 느껴졌다. 어정쩡하게 놓여 있던 가느다란 팔이 허리를 둘러 왔다.

윤일우가 조금 더 재운의 몸에 제 몸을 붙였다. 맞닿은 면적이 넓어질수록 재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그의 페로몬은 짙어지고 있었다.

“……진짜로 나를 아껴?”

“응.”

얌전히 안겨 있던 재운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화두를 던졌다. 윤일우는 망설임 없이 대답하며 재운의 목덜미에 입술을 붙였다.

“그러면 나…… 다른 애들이랑은…… 안 하면 안 돼……?”

재운은 깨달았다. 자신은 죽을 때까지, 어쩌면 죽어서도 윤일우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자의로도 떠날 수 없었고, 윤일우도 자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다.

영원히 그와 함께 있어야 한다면 재운은 오로지 그만을 품고 싶었다. 마음에도 없는 이들에게 몸을 억지로 내주는 일만큼은 감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싶어?”

“……응.”

널찍한 가슴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윤일우가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하자 재운이 윤일우의 품속에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잠시 멈췄던 눈물이 커다란 눈동자에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었다.

“너 아닌 사람이랑…… 하는 거 진짜 싫, 어…….”

매달리듯이 달라붙어 오는 시선이었다. 절벽 끝에서 떠밀려 떨어지다가 드디어 유일한 구명줄을 발견한 사람처럼 절박했다.

“나하고 하는 건 좋다는 말이야?”

윤일우는 오늘따라 재운의 입에서 여러 말을 듣고 싶었다. 아니, 본인이 원하는 말을 듣고 싶다는 게 더 정확했다.

꾹 맞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입술에 닿은 시선이 뜨거웠다.

“……무섭게 안 할 때는.”

망설이던 재운이 자그맣게 속삭인 말에 윤일우가 미소를 짓고 재운의 입술을 감쳐물었다.

“그래. 이제 무섭게 안 할게. 재운이가 내 말만 잘 듣고, 내 옆에만 있으면 돼.”

윤일우가 재운의 얼굴을 부여잡고 눈을 맞췄다. 서로의 숨결이 얼굴을 매만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얽히는 시선을 따라 재운의 볼가에 농도 옅은 열꽃이 피었다. 새하얀 피부 위로 번져 가는 열기를 뭉근히 문지르면서 윤일우가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재운도 용기를 내 혀를 마주 내밀었다. 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하던 재운이었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처럼 제 혀를 조심스럽게 비비는 자그마한 살덩이에 윤일우가 이성을 놓았다.

“으읍……!”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의 입맞춤처럼 부드럽게 오가던 살덩이의 움직임이 급변했다.

재운이 밀려들어 오는 혀를 피해 고개를 옆으로 움직였지만 소용없었다. 소리 없이 목 뒤를 옭아맨 손에 붙들려 무력하게 입을 벌렸다.

입술이 스치듯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순간만이 재운이 숨을 제대로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허억, 헉……. 흡…….”

막혔던 숨을 얼마 몰아쉬지도 못했다. 재운은 아랫입술을 물듯이 빨고 들어오는 혀에 눈을 질끈 감았다.

서로의 고간이 얽혀 드는 혀처럼 문질러졌다. 천 너머로도 느껴지는 데일 듯한 열기에 재운이 숨을 헐떡거렸다.

더욱 깊게 파고들기 위해 윤일우가 고개를 틀면 코끝에서 부서진 숨결이 헝클어져 두 사람 사이를 맴돌았다.

조금만 힘을 줘도 부러질 것 같은 가느다란 목덜미를 매만지던 손이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두피를 손끝으로 긁어내릴 때마다 재운이 앓는 듯한 소리를 냈다.

열이 올라 말랑말랑해진 귓불을 매만지던 손이 스르륵 재운의 상의를 파고들었다.

“흐읏…….”

이미 여린 살덩이는 꼿꼿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윤일우가 손가락 사이로 유두를 집어넣어 다정하게 비볐다.

재운이 발뒤꿈치로 시트를 밀어냈다. 안으로 휘어지는 허리를 곡선을 따라 쓸어 올리는 손길이 뜨거웠다.

뜨거운 혀는 집요하게 움츠러드는 재운의 혀에 달라붙어 입 밖으로 끄집어냈다.

단순히 혀끼리 마주친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외설적인 소리가 침대 위를 퍼져 나갔다.

혀에서 피어오른 열기가 몸 전체로 퍼져 나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재운은 그저 눈을 감고 여느 때보다 윤일우에게 제 몸을 온전히 맡겼다. 망설이던 팔을 뻗어 그의 목을 휘감아 매달리듯이 안겼다.

바들바들 떨리는 허벅지가 자연스럽게 양쪽으로 벌어졌다. 두 사람의 몸을 가리고 있던 천들이 한데로 뭉쳐져 바닥 위에 작은 언덕처럼 쌓였다.

“하아, 하…….”

윤일우가 거친 숨을 내쉬는 재운을 다정한 눈길로 훑어 내렸다. 반쯤 선 성기 끝에서 흘러나온 말간 액으로 고간이 번들거렸다.

작은 알사탕 같은 고환 아래에서도 액이 흘러나와 시트 한구석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재운아, 빠르게 해도 괜찮아?”

동그란 무릎을 매만지면서 건네는 말에 재운이 손끝을 움찔 떨었다. 언뜻 보면 윤일우의 표정은 담담했다. 윤일우가 재운의 몸속에 있던 좆을 빼낸 후 위아래로 쓸었다.

두께와 길이, 그리고 핏줄이 흉흉하게 선 걸 제외하면 윤일우의 얼굴처럼 곧고 잘생겼다.

손끝으로 시트를 긁어내리던 재운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던 윤일우가 자신에게 허락을 구하는 상황이 낯설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을 간질이는 감각은 달콤한 디저트를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다디달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재운은 짙은 슬픔을 느꼈다.

“아프면 말해. 멈추지는 못해도…… 최대한 부드럽게 할 테니까.”

윤일우가 무릎 위에 입을 맞춘 후 손가락 두 개를 뻐끔거리는 구멍 속으로 집어넣었다.

계속해서 좆을 넣고 있다가 뺀 거라 굳이 풀어 주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윤일우는 지금만큼은 차근차근히 재운의 몸을 열고 싶었다.

처음만 해도 반응이 없던 구멍은 이제 몸을 조금만 만져 줘도 좆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으응…….”

천천히 진입하는 손가락에 재운이 허리를 얕게 들썩였다. 부어오를 대로 부어올라 따갑고 이물감이 들었다.

가위질하듯 윤일우가 손가락을 벌릴 때마다 구멍을 적시는 액의 양이 늘어났다.

찔걱, 찔걱, 젖은 소리가 구멍을 물들였다. 어느새 개수가 하나 더 늘어난 손가락이 뜨거운 내벽 안을 제집처럼 휘저었다.

“숨 참지 마.”

구멍을 빠져나가는 손가락을 따라 투명한 액이 은사처럼 길게 늘어졌다. 윤일우가 다물어지는 구멍 입구에 좆을 맞췄다.

가장 두꺼운 귀두로 구멍을 얕게 쑤셔 주자 구멍이 오물오물 입을 움직였다.

“흐으으…….”

재운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풀린 순간이었다. 윤일우가 무릎을 잡아 양쪽으로 벌리며 좆을 집어넣었다.

아래가 빠듯하게 벌어지는 감각에 재운의 얼굴이 서서히 뒤로 젖혀졌다.

덩치 차이가 크게 나는 몸체가 재운의 몸 위로 장막처럼 드리워졌다. 달뜬 숨을 뱉어 내던 입술이 삼켜졌다.

느릿하게 파고드는 좆에 몸이 반쪽으로 쪼개지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좆이 둥글게 솟은 부분을 짓누르자 재운이 숨넘어가는 신음을 흘렸다.

“하, 읏…….”

온몸의 세포가 번져 가는 열기를 따라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졌다. 재운이 윤일우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혀를 내밀어 모양 좋은 입술을 핥고 아이처럼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번갈아 가면서 빨았다.

“일우야……. 페로몬 풀어 줘…….”

재운의 페로몬은 점점 농도 짙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반면 윤일우의 페로몬은 지면을 겨우 적실 정도로만 퍼져 나왔다.

“내 페로몬이 좋아?”

“으응…….”

윤일우가 미소 지으며 재운의 콧방울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재운이 순한 얼굴로 그렇다 대답한 순간 윤일우가 억누르고 있던 페로몬을 양껏 풀었다.

“흐, 아아……!”

붉은빛을 한 겹 입은 재운의 성기 끝에서 말간 정액이 터졌다. 작살에 꿰인 물고기처럼 재운의 몸이 펄떡거렸다.

“재운아, 너무 좋아서 싼 거야?”

“으, 하으, 으응…….”

그동안 재운은 윤일우의 페로몬에 온몸이 절여져도 공포에 질려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윤일우가 재운을 다정하게 품어 주고 있었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윤일우의 고백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기만으로 느껴져도, 재운의 몸은 정직하게 반응했다. 재운이 스스로를 속여 갔다. 자신은 여전히 윤일우를 예전처럼 사랑한다고.

마음의 빗장이 열린 만큼 재운의 몸도 예민해져 작은 자극에도 요동쳤다.

제대로 대답도 못 하는 재운의 숨을 훔치면서 윤일우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남아 있던 좆을 콱 들이박았다.

“으으으……!”

연분홍빛 성기 끝에 남아 있던 정액이 주르륵 기둥을 따라 흘러내렸다. 코앞에서 터지는 숨결이 열기를 잔뜩 머금었다.

윤일우가 재운을 안아 들어 침대 헤드에 몰아붙였다. 앉은 자세에 성기가 깊숙이 재운의 몸속을 파고들어 갔다.

퍼억. 좆을 반쯤 빼냈다가 그대로 쑤셔 박는 움직임에 재운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흐아……!”

재운이 윤일우의 목을 힘껏 끌어안았다. 거친 움직임에 쓸리는 등과 벽에 부딪히는 머리가 아팠지만 지금은 아픔마저도 달게 느껴졌다.

녹진하게 풀린 내벽을 쑤셔 박던 윤일우는 커다란 손을 들어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재운의 몸은 딱딱한 벽 대신 윤일우의 손에 부딪혔다. 재운의 살 대신 윤일우의 살갗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재운이 윤일우가 물려 준 혀를 빨아 먹으며 눈물을 흘렸다. 쾌락이 정수가 되어 눈가에 고이자마자 바닥으로 추락했다.

간절하게 윤일우의 목을 붙든 팔과는 달리 한껏 벌어진 재운의 두 다리는 널브러져 있었다. 윤일우가 움직일 때면 흔들리는 다리가 끈 떨어진 인형을 떠올리게 했다.

“재운아, 힘들어?”

힘들 만도 했다. 시달릴 대로 시달리다가 기절한 후로 시간이 오래 흐른 것도 아니었다.

“멈, 추지 마…….”

윤일우가 말과 함께 허리를 뒤로 물리자 재운이 안간힘을 쓰며 다리를 끌어모았다. 근육이 선명하게 굴곡진 허리를 휘감았다.

“부드럽게 하는 게…… 진짜 힘든 거였네.”

재운이 하는 모양을 지켜보던 윤일우의 입매가 둥근 곡선을 그렸다. 어느새 좆은 귀두선까지 입구에 빠져나와 있었다.

윤일우가 단번에 좆을 자궁구까지 쑤셔 넣었다. 여린 살이 단단한 몸에 짓눌려 뭉개질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아흐윽……!”

자궁구를 짓이기는 좆 대가리에 재운이 눈물을 펑펑 쏟아 내며 앓았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빼꼼히 모습을 드러낸 혀를 보는 윤일우의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고개를 튼 윤일우가 재운의 입술을 거칠게 삼키며 혀가 녹진하게 풀리도록 빨았다. 입술을 자연스럽게 얼굴 옆으로 옮겨 가 붉어진 귓불을 타액으로 적셨다.

땀에 젖어 반들거리는 목덜미를 윤일우가 콱 깨물었다.

“흐, 으으…….”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고통에 재운이 구멍을 바짝 조였다. 재운의 귓속을 파고드는 숨이 한층 짙어졌다.

간신히 눈을 뜬 재운이 눈꺼풀을 한 번 깜박이기도 전이었다.

등 뒤에 푹신한 감촉이 느껴졌다. 윤일우가 재운을 침대 위로 눕히고 한 손에 잡히는 양 발목을 손으로 잡아 벌렸다.

재운의 손안에 담긴 시트 자락이 엉망으로 구겨졌다. 잠시 흐트러진 재운의 모습을 눈에 담던 윤일우가 퍽 소리가 나도록 허리를 움직였다.

“으읏, 흐, 아흐…….”

좆이 안쪽 어딘가를 짓누를 때마다 재운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침실 안에 자욱한 윤일우의 페로몬 때문에 이성이 혼몽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윤일우가 하체를 고정하고 성기를 들이박다시피 해서 박으니 몸 전체가 좆집이 된 것처럼 달아올랐다.

코끝에서 터지는 달뜬 숨에 얼굴 아래가 온통 뜨거웠다. 부연 시야에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움직이는 윤일우의 모습이 보였다.

재운이 손을 움직여, 몸이 흔들릴 때면 덩달아 앞뒤로 움직이는 제 좆 주변을 배회했다.

스스로 더한 쾌락을 느끼기 위해 움직이는 것 자체가 재운에게는 죄악처럼 느껴졌었다.

친구였던 이들이 제게 하는 행위가 강간이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 재운은 차라리 고통만이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또 바랐다.

재운은 제 몸을 어루만질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재운도 오늘은 고통 없이 온전히 쾌락만을 느끼고 싶었다.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아서였다. 몸도, 마음도.

“재운아, 좆 흔들고, 싶어?”

말이 끊어지는 마디마다 고환이 달아오른 볼깃살에 부딪쳤다. 차마 성기는 만지지도 못하고 아랫배 주변을 맴돌던 하얀 손끝이 움찔 떨렸다.

“잡고 흔들면 돼. 어려운 거, 아니야.”

윤일우가 망설이는 재운을 도와주기 위해 재운의 손을 잡아 연분홍빛 성기 위로 올렸다. 발기해서 덜렁거리던 살덩이는 접촉이 생기자 끄트머리에서 말간 액을 뚜욱, 뚝 떨어뜨렸다.

“으응, 흐으응…….”

망설이던 움직임은 곧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빨라졌다. 재운이 두 손을 움직여 제 좆을 잡고 흔들었다.

윤활제로 쓸 액은 이미 충분한 상태였다. 손바닥에 잡힌 온기가 코끝에서 터지는 숨만큼이나 뜨거웠다.

“앞에 만지니까 좋아? 구멍이 아까보다 더 조이네.”

재운을 내려다보는 윤일우의 눈매가 붉었다. 고통에 바르작거리면서 우는 모습도 보기 좋았지만, 온전히 쾌락에만 취해 녹아내리는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일, 우야…….”

“응. 나 여기 있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애달팠다. 서투른 손길로 작은 살덩이를 매만지는 모습이 꼭 낭떠러지에서 얇은 나뭇가지를 손아귀로 움켜쥔 사람 같았다.

문득 재운의 발목이 의식됐다. 조금만 힘을 주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가느다란 게 손안에 꽉 잡혀 있었다.

잠시 재운이 제대로 걷지 못하는 장면이 떠올랐지만 윤일우는 어두운 상상은 흩어 버리고 발목을 놓아줬다.

고정해 주던 힘을 잃자 재운의 다리는 무력하게 침대 위로 떨어졌다. 윤일우가 재운의 오금 위로 팔을 겹치며 고개를 숙였다.

츄웁, 츕, 아래를 드나드는 살덩이만큼 축축한 소리가 서로의 입술을 타고 흩어졌다.

“으음, 응…….”

재운이 얌전히 벌린 입안을 거리낌 없이 맛보면서도 흉흉한 좆은 자그마한 구멍을 제 몸집에 맞춰서 늘리고 있었다.

좁은 내벽이 좆의 두께와 길이에 따라 넓혀져 길을 냈다. 내벽과 달리 닫혀 있는 자궁구를 아쉽다는 듯이 좆 대가리가 쿵쿵 찍었다.

“흐으, 으, 으응…….”

재운이 눈을 질끈 감고 바들바들 떨었다. 차가운 비를 맞은 어린 새처럼 떠는 모양이 가련했다.

윤일우가 재운의 숨을 막고 있던 입술을 떼고 이마와 콧등, 뺨 곳곳에 입을 맞췄다.

목덜미에 난 잇자국을 보는 눈동자에 만족스러운 빛이 어렸다. 페로몬이 강하게 흘러나오는 곳을 혀끝으로 문지르자 달큼한 향이 온몸을 적실 듯이 쏟아져 나왔다.

“재운아, 페로몬 풀어서 좋아?”

“으응…….”

좆을 안쪽까지 강하게 치받을 때마다 재운의 몸이 덜컹거리며 흔들렸다. 커다란 침대가 당장이라도 부서질 기세로 삐걱거렸다.

윤일우의 좆질을 받아 내는 재운의 몸 또한 망가질 것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눈 속에 파묻힌 기분이야…….”

윤일우가 눈을 지그시 감고 재운의 페로몬을 폐부 깊숙이 받아들였다. 시린 겨울에서도 기어코 꽃을 피워 내고 마는 절개가 재운의 페로몬에서 느껴졌다.

자신과는 다른 향이었다. 메마르고 메말라 제 영혼마저도 비틀어 향을 내는 제 페로몬과 달리 재운의 페로몬은 언제 맡아도 순결하고 깨끗하기만 했다.

“재운아, 나 좋아한다고 말해 봐.”

윤일우가 얼굴을 움직여 말랑말랑한 귓불을 잘근잘근 씹었다. 귓바퀴를 덧그리듯 혀로 훔치자 마른 어깨가 경직된 채로 움츠러들었다.

한동안 떨리던 입술은 희미하게 가라앉는 눈빛과 함께 윤일우가 바라는 말을 완성했다.

“좋아해……. 일우야……. 나는 진짜, 네가 좋아…….”

재운이 눈물 젖은 눈동자를 깜박이며 윤일우를 애타게 바라봤다. 좋아한다는 말이 뭐라고, 그 말을 꺼낼 때마다 가슴 전체가 아릿하게 욱신거렸다.

재운은 윤일우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때마다 제 심장이 피를 흘리게 될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더는 아프지 않을 수 있고, 겉으로나마 멀쩡하게 윤일우의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발현한 날, 기억나?”

“으응…….”

두 사람은 한 날, 한 시에 알파와 오메가로 발현했다. 보통 형질인으로 처음 발현되는 시기는 열다섯 살에서 열입곱 살 사이였다.

두 사람도 그때쯤에 형질인으로 발현했다.

재운이 윤일우의 물음에 열여섯, 하늘이 찢어진 것처럼 비가 내리던 어느 여름날을 떠올렸다.

윤일우는 비가 오는 날이면 기분이 가라앉고는 했다. 다른 이들은 잘 눈치채지 못하는 변화였다.

항상 윤일우만을 바라보던 재운만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여름 방학 기간이었다.

학교의 애들은 대부분 방학이면 외국으로 단기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왔다. 진대원과 송진오, 김본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재운은 텅텅 빈 기숙사 방에서 홀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그날도 다른 날처럼 소설책 하나를 꺼내 조용히 읽고 있었다. 에어컨 바람이 추워 에어컨을 끄고 대신 여름 바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솨아아아아.

책에 빠져들 무렵 귓가를 간질거리는 소리가 났다.

‘……비?’

우산 없이 걸으면 순식간에 온몸이 젖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재운은 읽던 책도 덮고 턱에 손을 괸 채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일우 보고 싶다…….’

윤일우는 다른 애들과 달리 외국에 잘 나가지 않았다. 나간다고 하더라도 며칠만 지내고 오는 게 다였다.

재운이 윤일우가 언제 돌아온다고 했는지 기억을 곰곰이 떠올릴 때였다.

똑, 똑, 똑.

닫힌 기숙사 문에서 정갈한 노크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재운을 찾아올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재운에게 악감정을 가진 이들이 찾아올 때가 있었다.

재운이 몸을 일으켜 긴장한 숨소리를 감추기 위해 주먹을 말아 쥐었다.

‘……나야.’

‘일우?’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이 윤일우라는 걸 알게 되자마자 재운이 서둘러 문을 향해 걸어갔다.

닫힌 문을 여는 손이 인지하지 못하는 새에 떨리고 있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마주한 광경에 재운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 이렇게 젖었어…….’

비 맞는 걸 싫어하는 아이였다. 그랬던 윤일우가 머리카락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온몸이 흠뻑 젖은 채 서 있었다.

‘들어가도 돼?’

‘어, 어……? 들어와도 되지. 당연히.’

놀란 재운과 달리 윤일우의 표정은 고요하기만 했다. 마치 얼굴 위로 흘러내린 빗줄기를 따라 그가 느꼈을 모든 감정들이 씻겨 내려간 것처럼 무감해 보이기도 했다.

재운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윤일우가 깔끔하게 정리된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윤일우가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흥건한 물 자국이 흔적처럼 남았다.

‘여기 앉아 있어. 몸 닦을 만한 거 가져올게.’

재운은 제 침대가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윤일우의 팔을 잡아끌어 침대로 이끌었다.

윤일우는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얌전히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재운이 수건이라도 가져오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헉…….’

순식간에 시야가 뒤집어졌다. 몸이 뒤로 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곧 등 뒤로 푹신한 감촉이 느껴졌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이는 색소 옅은 눈동자에 재운이 눈조차 깜박이지 못하고 숨을 멈췄다.

윤일우의 머리카락에서 흘러내린 물방울이 토옥, 톡 재운의 얼굴 위로 떨어져 내렸다.

차가운 느낌에 눈가가 움찔 떨렸다. 서느런 비 냄새와 윤일우의 체향이 뒤섞여 재운의 코끝을 여름 바람처럼 스치듯이 지나갔다.

서로의 코끝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재운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야 말았다.

무언가를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의식중에 재운은 윤일우와 친구 사이가 아닌 다른 관계를 원했던 거였다.

‘나 졸려…….’

숨조차 머금고 기다리던 시간은 어깨 위로 툭 떨어져 내린 무게와 함께 끝이 났다.

재운이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들어 올렸다. 윤일우가 재운의 쇄골과 목덜미 언저리에 고개를 묻고 달뜬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제야 재운은 윤일우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겁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 일우야……?’

‘시원해…….’

재운이 손을 들어 올려 반듯한 이마를 어루만졌다. 손바닥에 닿아 오는 온기가 데일 듯이 뜨거웠다.

시원한 게 기분이 좋은지 윤일우가 재운의 손을 붙잡고 열이 오른 이마를 비비적거렸다.

재운이 방 안에 구비해 둔 비상약이 어디에 있나 고심할 무렵 윤일우가 재운을 제 품으로 껴안았다.

‘아…….’

비 내리는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윤일우의 열이 몸에 옮겨붙기라도 한 것처럼 재운도 목덜미부터 번져 가는 열을 막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그 소리가 혹시라도 윤일우에게 들릴까 싶어 겁을 집어먹었다.

그러나 윤일우는 말없이 재운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재운이 용기 내어 한 일이라고는 떨리는 손을 들어 식은땀에 젖은 윤일우의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은 것 정도였다.

번져 가는 열처럼 재운도 서서히 윤일우의 숨소리에 제 숨소리를 맞춰 갔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몰랐다. 정신을 차렸을 때 재운은 병실에 입원한 상태였다.

‘제가…… 오메가로 발현이 됐다고요?’

‘네. 환자분의 오메가 페로몬 수치가 높은 편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해서 형질인이 아니라고 단정할 정도도 아니고요. 수치 변화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오메가로 발현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의사가 하는 말에 재운은 멍하니 생각에 잠겨 들었다.

새벽녘에 코끝을 스치는 뜨겁고도 달콤한 향을 느낀 적이 있었다. 후각으로만 느껴진다고 하기에는 묘했다.

단순히 향이라고만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제 몸을 뒤덮은 기분이었다.

그게 일우의 페로몬 향이었구나.

오메가로 발현한 재운과 달리 윤일우는 알파로 발현했다. 사실 재운은 그가 언제든 알파로 발현할 거라고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재운뿐만 아니라 윤일우를 아는 모든 이들이 그랬다.

‘……재운아.’

‘환자분, 지금 움직이시면……!’

‘비켜.’

재운이 곰곰이 지난 밤 느꼈던 윤일우의 페로몬을 떠올릴 때 병실 문이 열렸다. 당황한 의료진이 그를 막아섰지만 날 선 기운에 길을 비켜 주고야 말았다.

의료진을 제치고 걸어온 윤일우에게서는 제어되지 않은 알파 페로몬이 위험할 정도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흐읏…….’

재운 또한 오메가로 발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알파 페로몬에 영향을 받은 재운의 페로몬도 병실 안을 가득 메워 갔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두 아이는 페로몬 수치가 안정적으로 변할 때까지 나란히 병실 침대에 누워 서로의 페로몬에 익숙해져 갔다.

“그때 이야기는 왜……?”

재운이 윤일우를 올려다보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날 이후 재운에게 가장 익숙한 알파의 페로몬은 윤일우의 것이었다.

처음에 오메가로 발현했을 때부터 느꼈던 페로몬이 그였다. 각인 효과라는 말이 있듯이 재운은 어쩌면 그때 윤일우의 페로몬에 발이 묶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제 목까지 죄어 들지도 모르고. 바보처럼 형질인으로 발현한 순간마저 맹목적으로 윤일우를 바라봤다.

“아침부터 몸이 안 좋았어. 이상하게 의식이 부연데…… 너만 생각이 나는 거야.”

여전히 윤일우의 좆은 재운의 몸 안에 가득 들어찬 상태였다. 윤일우가 말할 때마다 재운의 몸이 움찔 떨렸다.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은 윤일우가 재운의 몸을 옭아매듯이 감싸 안고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흐응…….”

“발현하고 나서도, 다른 페로몬은 다 불쾌하기만 한데……. 재운이 네 페로몬만 이상하게 불편하지 않았어.”

윤일우는 감정을 깨닫는 데 둔했다. 다른 것들은 나이에 맞지 않게 빨리 습득하면서도 보통 사람은 의식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노력해야만 깨달을 수 있었다.

“으읏, 흐으, 으응…….”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내가 너를 정말 아꼈나 봐.”

제 좆으로 쑤셔 주면 달뜬 숨을 터트리는 얼굴을 보자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졌다.

윤일우는 재운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까지 눈에 담으며 재운이 느끼는 지점만을 뭉근하게 좆 대가리로 짓눌렀다.

“흐, 아흐……. 느낌이 이상…….”

몰아붙여지는 섹스에 익숙한 재운은 생경한 감각에 몸을 떨었다.

눈물이 고인 눈가를 훔치는 손길도, 얼굴 곳곳에 내려앉는 입맞춤도, 부어오른 내벽이 녹진하게 녹아내릴 정도로 부드러운 좆질도.

어느 것 하나 익숙한 게 없었다.

낯선 것들투성이인 상황에서도 재운은 자꾸만 오므라드는 허벅지를 좌우로 활짝 벌렸다.

지금도 버거울 정도로 윤일우가 제 몸에 들어온 상태였지만, 그의 존재를 조금 더 온몸으로 느끼고만 싶었다.

재운이 엉망으로 떨리는 팔을 뻗어 윤일우의 목을 감싸 안았다.

“용서해 달라고 말하지 않을 거야.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거 아니까. 그리고 사실…… 용서받을 생각도 없어.”

얌전히 재운이 이끄는 대로 몸을 숙인 윤일우가 재운의 코끝을 살짝 깨물고 말을 이어 갔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 있어도 그걸 아낄 줄 몰라.”

재운이 좆이 계속 쑤셔져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윤일우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노력했다.

아래가 벌어지면서 느껴지는 감각 때문에 정신이 자꾸만 혼몽해졌지만, 윤일우가 드물게 제 속마음을 터놓는 순간이었다.

“내가 너를 주웠잖아. 보육원에서.”

“으응…….”

“살면서 처음으로 내 곁에 둘 사람을 고른 거야. 내 의지로.”

지금도 윤일우는 가끔 재운을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오르고는 했다.

꼬질꼬질한 외양에 봐줄 것이라고는 커다란 눈망울밖에 없던 그 시절의 재운이.

“좋아한다는 건…… 뭐랄까. 좋아한다는 말로 사람을 방심하게 만들어 놓고, 뒤통수를 치기에 더없이 좋은 거야.”

윤일우에게 사랑이란 그런 의미였다.

태어나 처음 보고 배운 사랑이 그 모양이라서. 재운이 자신에게 좋아한다는 말로 고백했을 때 재운을 아껴 줄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짓밟고, 망가뜨려 버릴 생각부터 들었다.

“재운아, 너는 이미 나를 한 번 배신했어.”

윤일우가 재운의 등 뒤로 손을 넣어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했다.

그 상태로 허리를 퍼억, 퍽 소리가 나도록 쳐올렸다. 볼깃살이 뭉개질 정도로 엄청난 힘에도 재운은 밀려나지도 못하고 윤일우의 좆에 꿰뚫렸다.

“흐, 아아……! 아, 흑……!”

내장이 우그러지는 고통이 쾌락과 뒤섞여 재운을 온통 뒤흔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너를,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아예 도망치지 못하도록, 내 옆에 묶어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

말이 끊어지는 마디마다 윤일우가 재운의 살을 물고 빨았다. 잇자국이 난 목덜미 주변에도 붉은 흔적이 어지럽게 피어났다.

새하얀 눈밭 위로 새까만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난 것처럼, 재운의 몸이 윤일우의 흔적으로 가득 물들어 갔다.

제가 남긴 흔적을 내려다보는 윤일우의 눈동자가 달조차 삼켜 버린 밤처럼 어둑하게 가라앉았다.

윤일우는 그 순간 모든 생각을 뒤로 하고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 하나만을 읊조렸다.

“사랑해, 재운아.”

“흐윽……!”

윤일우가 재운의 귓가에 입술을 붙이고 달큼한 고백을 했다. 하체는 난잡하게 재운을 들쑤시고 있으면서도 그의 목소리만큼 꿀이라도 바른 것처럼 달았다.

“나는 아무래도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아.”

윤일우의 고백이 재운의 마음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줄 몰랐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자 그동안 윤일우가 제게 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재운에게 사랑이란 사랑하는 대상을 진심으로 아끼고, 보듬어 주고, 그가 힘들어할 때는 어깨를 빌려주는, 그런 마음이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그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하고, 기분이 가라앉은 것 같으면 어떻게 해서든 기분이 나아지게 해 주고 싶어 안달복달하고.

그러나 윤일우가 재운에게 보인 사랑은 파괴하고, 억압하고,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하게 하는 거였다.

그 차이가 못내 서러워서 재운이 얼굴이 일그러지도록 울음을 쏟아 냈다.

“으윽, 끅, 흑…….”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우는 재운을 보면서도 윤일우는 좆을 빼내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두 손은 재운의 어깨를 쥐고 재운이 밀려나지 않도록 고정하고 있었다.

아래를 들쑤시는 좆도 매한가지였다.

발정 난 짐승처럼 윤일우는 내벽이 늘어났다 줄어드는 감각을 만끽하며 씨물을 싸지를 준비를 했다.

윤일우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재운의 입술을 제 입술로 틀어막은 순간 재운이 구멍을 바짝 조였다.

동시에 윤일우도 재운의 안에 사정했다. 정액으로 더욱 뜨끈하게 달아오른 내벽을 좆이 나릿나릿하게 드나들었다.

“흐윽, 끄윽…….”

“재운아, 왜 이렇게 울어. 내 고백이 엉엉 울 정도로 좋은 거야?”

작은 얼굴이 눈물, 콧물로 엉망이었다. 입가에는 채 삼키지 못한 타액도 고여 있었다.

윤일우는 재운의 우는 얼굴을 보자 방금 사정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랫배가 콱 조여드는 감각이 일었다.

금세 발기한 성기가 볼록하게 튀어나온 지점을 뭉근하게 짓누르면서 자극했다.

“사랑, 끅, 하는데…… 왜…….”

커다란 눈동자에 억울하고 서러운 감정이 가득 묻어났다. 계속해서 눈물을 흘려 벌겋게 짓무른 눈가를 매만지며 윤일우가 고개를 숙였다.

날카로움이 다른 코끝이 마주 비벼졌다. 재운이 울 때마다 윤일우의 좆을 감싼 내벽이 파도처럼 너울 쳤다.

“말했잖아. 나는 좋아하는 게 있어도 그걸 제대로 아낄 줄 모른다고. 우리 재운이가 그동안 나 때문에 많이 서운했구나.”

윤일우가 재운의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었다. 울면서 열이 오른 몸뚱이가 기분 좋은 열기로 뜨끈뜨끈했다.

“뭐가 제일 서운했어?”

비정상적인 대화였다.

재운은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대화의 방향에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쉬지 않고 배 속을 드나드는 윤일우의 좆도 재운의 정신을 흐리멍덩하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윤일우의 고백 때문에 그동안 꾸욱, 꾹 눌러 담았던 감정이 봇물 터지듯이 넘쳐흘렀다는 점이었다.

“다, 다른 애들, 끄윽, 이랑…….”

“응. 또?”

“가, 강간한 거랑…….”

“그랬구나. 내가 어떻게 해야 재운이 기분이 풀릴까.”

윤일우는 사과를 할 줄도 몰랐다. 어차피 재운 말고는 사과할 사람도 없었다.

재운이 우는 모습도 보기 좋지만, 옛날처럼 자신을 보면서 수줍게 웃던 모습을 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달래듯이 재운의 몸을 끌어안고 일어나 앉았다. 한층 더 깊어진 교합에 재운이 앓는 소리를 내면서 윤일우의 목을 끌어안았다.

“흐윽, 읏…….”

“응? 재운아. 내가 어떻게 해야 네 기분이 풀릴 것 같아? 마음 풀릴 때까지 미안하다고 사과할까? 아니면 분이 풀릴 때까지 나 때릴래?”

달라진 자세에 적응하느라 말을 멈춘 재운의 볼을 만지작거리며 윤일우가 선택지를 건넸다.

누군가의 기분을 풀어 줄 방법 따위 모르니 재운이 말해 주는 대로 행동할 생각이었다.

“그냥…….”

“응.”

재운이 윤일우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윤일우의 등 뒤에서 맞잡은 손이 꼼지락거렸다.

“괜찮아. 네가 원하는 거 솔직하게 말해도 돼.”

윤일우가 어떤 것이든 말하라는 듯이 재운의 등허리를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었다. 고랑이 파인 선을 훑어 올라가는 손끝에 진득한 열기가 고여 있었다.

“아프게, 하지 말고…….”

“안 아프게. 알았어. 다른 거는?”

“다른 사람한테 건네주지 말고…….”

“나도 이제는 그러기 싫어.”

“사랑한다고 다시 한번만, 말해 줘…….”

마지막 말은 눈을 맞추면서 했다. 기다란 속눈썹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파르르 떨렸다.

“……그거면 돼?”

“……응.”

재운이 대답과 함께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순진하고 무구한 동작이었다.

“……갑자기 걱정이 되네.”

“뭐가?”

“이 험한 세상을 재운이가 어떻게 살아 나갈까, 하는 그런 생각?”

“그게 뭐야…….”

윤일우는 자기 객관화를 잘했다. 자신이 재운에게 한 짓은 몇 마디 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었다.

그런데도 재운은 고작 몇 마디 말로 자신을 용서해 주려고 했다. 그 사실에 답답한 숨이 가슴 부근에서 맴돌았다.

“아, 그리고…….”

“더 생각난 거 있어?”

“으응. 영상…….”

눈물에 푹 젖은 속눈썹을 깜박이던 재운이 불쑥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얘기했다.

재운이 처음에 도망가지 못했던 건 윤일우가 보낸 영상 때문이었다. 이번에 도망갈 때는 영상이고, 뭐고 살아야겠다는 본능에 움직였지만, 윤일우가 이렇게 나오니 영상이 떠올랐다.

“영상 다른 사람한테 안 보여 줬어. 나만 가끔 꺼내 봤지.”

“……정말?”

“응. 이제는 네 이런 모습 아무한테도 보여 주기 싫은데.”

윤일우가 재운의 콧방울을 살짝 깨물었다. 반사적으로 찌푸려지는 미간 위에 입술을 붙이자 금세 순하게 풀렸다.

“같이 지우러 가자.”

“흐읏…….”

윤일우가 재운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움직이면서 좆이 재운의 내벽을 긁고 빠져나갔다.

벌어진 구멍을 따라 안쪽 가득 채워진 정액이 덩어리져 주르륵 흘러내렸다.

윤일우는 바닥이 체액으로 더러워지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재운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서재로 향했다.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은 추락감에 재운이 두 다리로 윤일우의 허리를 감았다.

대화를 하면서 조금이나마 힘이 돌아와서 다행이었다. 페로몬이 가득 차 있는 침실을 나서자 한결 숨을 쉬기가 편안해졌다.

윤일우의 페로몬은 좋지만, 좋은 만큼 재운의 몸과 마음을 비이성적인 방향으로 몰아갔다.

재운이 윤일우의 어깨 위로 볼을 비볐다. 구멍뿐만 아니라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뻐근한 감각에 온몸이 저릿했지만 마음만큼은 편안했다.

상처 난 마음이 완벽하게 아무는 순간은 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재운은 익숙하게 체념했고, 현실에 안주하기로 했다.

윤일우가 앞으로 다른 이에게 자신을 건네지 않고, 아프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기를.

때때로 무너져 내릴 제 마음 따위는 하등의 가치도 없는 거니까.

자신을 어루만지는 윤일우의 손길도, 그의 기분을 반영하듯 다정한 윤일우의 페로몬도 모두 지금 이 순간이 꿈결인 것처럼 아늑했다. 그 감각만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재운은 눈을 감았다.

“졸려?”

“응…….”

“영상 지우는 거는 보고 자야지.”

눈이 반쯤 감긴 재운을 발견한 윤일우가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서재에 도착해 재운을 아기처럼 안고 노트북을 열었다.

“네가 지워.”

윤일우가 삭제 버튼 위에 마우스 커서를 놓고 재운의 손을 움직여 마우스 위에 놓았다.

달칵. 작은 소리와 함께 재운을 궁지로 몰아갔던 영상이 지워졌다. 윤일우는 이후로 영상이 확실하게 삭제됐다는 걸 재운에게 확인시켜 줬다.

“다른 데 백업해 둔 거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응. 믿어.”

아야.

재운이 윤일우가 손끝으로 튕긴 코끝을 쥐고 양 눈썹을 늘어뜨렸다. 믿는다고 말했는데 윤일우가 왜 코끝을 아프게 튕겼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만 믿어. 다른 새끼들한테는 이렇게 무르게 행동하지 말고.”

“……너한테만 그래.”

재운도 다른 사람에게 멍청하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자신이 윤일우에게 약하다는 자각은 있었다.

그렇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는 거였으면 이토록 윤일우에게 질질 끌려다니지도 않았을 거였다.

“그리고 절대로 다시 도망갈 생각하지 마. 다음번엔 나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으니까.”

“……네가 나랑 한 약속만 지키면.”

말과는 달리 재운은 이제 도망갈 의지마저 잃었다. 만약 다시 한번 더 도망갈 마음을 품는다면 그때는 영원한 끝일 게 분명했다.

“잠깐 사이에 똑 부러지게 변했네.”

윤일우가 오물거리는 작은 입술을 아프지 않게 감쳐물었다. 내벽이 거세게 짓눌릴 때마다 재운이 물고, 깨물어 원래도 불그스름했던 입술이 퉁퉁 불어 있었다.

부어오른 살결을 혀끝으로 살살 어루만지자 재운이 자연스럽게 입을 벌렸다.

작은 틈새로 말캉한 살덩이가 물 흐르듯이 파고들어 갔다. 제 혀에 반응해 조금씩 몸을 부딪쳐 오는 살덩이를 휘감아 쪽쪽 빨아 당겼다.

“으음, 응…….”

달큼한 비음이 맞닿은 입술을 타고 번져 나갔다. 코끝이 뭉개지면서 크기가 다른 혀가 서로의 입속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윤일우의 손이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유두를 손가락 새로 넣고 적당한 압력으로 문질렀다.

“흐으응…….”

재운의 숨결에 섞인 비음이 더욱 강해졌다. 유두를 자극하던 손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가 말랑말랑한 둔부를 만지작거렸다.

재운이 다리를 벌려 윤일우를 마주 보는 자세로 윤일우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았다.

잠깐 떨어졌던 입술이 아쉽다는 듯 재운이 곧바로 고개를 틀어 윤일우에게 입을 맞췄다.

점액질이 흘러나오는 구멍은 마디가 굵은 손가락 하나 정도는 쉽게 받아먹었다. 쿨쩍쿨쩍, 연이어 손가락 두 개를 넣어 구멍을 푼 윤일우가 재운의 허리를 두 손으로 잡았다.

손끝이 아슬아슬하게 닿을 정도로 가느다란 허리가 허공으로 달랑 들렸다.

“스스로 넣어 봐, 재운아.”

윤일우는 그 상태에서 움직임을 멈추고 재운의 턱선을 따라 입을 맞췄다. 멀어지는 혀를 찾아 혀를 입 밖으로 빼꼼히 내민 재운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흉흉하게 꺼떡이는 성기가 구멍 주변을 문지르고 있었다.

구멍은 좆이 단번에 들어와도 될 정도로 풀어져 있는데, 입구 주변에도, 좆 대가리에도 미끈거리는 액이 넘쳐날 정도로 뒤덮여 있어 오히려 구멍을 파고들지 못했다.

“으읏…….”

재운이 손을 뒤로 뻗어 아래위로 움직이는 좆을 고정했다. 손 하나로는 둘레가 채 손안에 담기지 않을 만큼 묵직한 양감에 입안이 바짝 말랐다.

“끙끙거리기만 하지 말고, 어서.”

재운의 허리를 잡고 있는 윤일우의 손등과 팔 위로 푸른 핏줄이 풀쑥풀쑥 솟아올랐다.

여유가 없는 건 재운보다 윤일우가 더했다. 당장이라도 재운을 책상 위에 엎어 놓고 구멍을 찢을 듯이 좆을 쑤셔 박고 싶었다.

하지만 재운이 스스로 제 좆을 집어넣는 모습을 보고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득그득 차오르는 욕망을 짓밟는 중이었다.

“흐, 아아…….”

마침내 재운이 좆 끄트머리를 구멍에 맞추고 구멍을 옴쭉옴쭉 조였다. 구멍이 뻐끔거릴 때마다 좆이 손가락 반 마디씩 재운의 몸속으로 사라져 갔다.

재운이 좆을 조여 무는 길이만큼 윤일우가 재운의 허리가 떠오른 높이를 줄여 나갔다.

“배가…….”

“잘했어.”

음모가 엉덩이 아래에서 느껴질 지경이 되자 재운이 윤일우의 어깨를 쥐고 헐떡였다.

아랫배가 가득 찬 느낌은 언제 겪어도 익숙해지기가 힘들었다. 앉은 자세에서는 제 무게까지 더해져 삽입이 깊어졌기에 더 버거운 것도 있었다.

“근데…….”

“응.”

“왜 아까 한 약속…….”

재운의 몸을 쓰다듬으며 그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던 윤일우가 자그마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약속이라는 단어에 재운이 제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랑해 달라고 다시 한번 더 말해 달라고 했다.

윤일우의 시야에 붉게 달아오른 귓불이 보였다. 말을 꺼내 놓고서는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섹스하면서 말하면 네가 싫어할까 봐 나중으로 미룬 건데. 지금 듣고 싶어?”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지금보다는 제대로 옷을 갖춰 입고, 분위기라도 좋은 곳에서 말해 주려고 했다.

“……응. 지금 말해 줘.”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재운이 윤일우와 시선을 얽었다. 지척에서 덩굴처럼 얽히는 시선이 태양 아래 이글거리는 사막의 모래처럼 뜨거웠다.

“사랑해, 재운아.”

“흐읏…….”

마음이 간질거릴 정도로 낮고 그윽한 목소리였다. 귓전을 울리는 사랑 고백에 재운이 바르르 떨며 사정했다.

“내 고백이 사정할 정도로 좋았어?”

“…….”

재운이 대답하지 못하고 윤일우의 어깨 위로 고개를 묻었다. 한 번쯤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윤일우가 특유의 목소리로 재운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을.

유독 낮고 울림이 깊은 목소리는 동굴 안에서 말하는 것처럼 작아도 귓속을 파고들고는 했다.

그런데 지금 윤일우가 그런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불러 주고, 사랑한다고 고백해 주고 있었다.

현실감 없는 일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부지불식간에 고백이 허공으로 흩어져 채 귀에 담아 들을 시간이 없었다.

이번에는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에서 들었다. 재운은 할 수만 있다면 제게 사랑 고백하는 윤일우의 목소리를 녹음하고만 싶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문득 마음속에 뻥 뚫린 구멍이 제 존재를 집어삼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앞으로도 계속 해 줄게.”

재운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한 말에 고개를 들었다. 서재에 켜진 불빛이라고는 책상 위에 올려진 스탠드에서 흘러나오는 게 다였다.

백색 등이 윤일우의 눈동자를 말갛게 비췄다. 윤일우의 눈동자만 바라보면 그가 제게 한 짓들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맑고 투명하기만 했다.

“그러니까 울지 마.”

커다란 눈망울 가득 차오른 눈물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윤일우가 입술을 겹쳤다.

따뜻한 점막을 헤치는 혀처럼 좆도 좁은 내벽을 가르고 파고들어 갔다.

윤일우가 재운의 허리에 팔을 감아 바짝 잡아당겨 안았다. 틈 없이 밀착된 단단한 상체에 재운의 유두가 비벼졌다.

마른 배를 타고 흐른 정액이 굴곡진 근육을 따라 접합부까지 흘러들어 갔다.

“으응, 응, 흐응…….”

성감을 부드럽게 자극하는 섹스에 재운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눈을 감아도 자신을 안온하게 품어 오는 윤일우의 페로몬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무섭지 않은 섹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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