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원민준 이사의 사무실에 끌려와 있다. 책상 앞에 느긋하게 앉은 그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런데 아는 척하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나는 작게 말을 이었다. 조금 전, 회사에서 민준을 모른 척한 일로 추궁당하고 있던 나였다.
“회사인데 그러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제가 이사님 친구도 아닌데.”
회사가 장난도 아니고 뭘 어쩌라는 건지. 아까만 해도 나이 있는 상무님과 나란히 서 있던 원민준이었다. 평사원인 내가 이 회사의 대표 이사인 그를 태연하게 아는 척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분히 생각하다 보니 나는 울컥했다.
“그래요, 대놓고 아는 척하기는 창피하다, 그럴 수도 있죠.”
“창피한 건…. 아닌데.”
“서윤 씨는 눈에 띄는 걸 싫어하는 타입이니까 그럴 수도 있네요.”
“네.”
“그럼 눈인사라도 해요.”
“네?”
이어진 그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되묻는 걸 싫어하는 민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좋아하는 대답은 무조건 단답형의 네, 뿐이다.
“눈인사요. 대놓고 아는 척하기 싫으면 그렇게라도 나한테 사인을 보내야죠. 만나서 반갑다 기쁘다, 그렇게 인사는 해야 사람 구실을 하는 거죠. 기본적인 예의도 모르면, 이렇게 서윤 씨를 공들여서 가르치고 있는 저는 뭐가 됩니까. 그렇게 벌을 줘도 달라지는 게 없으면.”
“네, 죄송해요.”
나는 또다시 사과해 버렸다. 사느니 죽지. 아까 먹은 커피의 칼로리가 이 짧은 대화로 아주 쫙쫙 소모되는 것 같았다.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역시 슈퍼 브라만 변태, 원 이사답다.
“그러니까 눈으로 웃으면서요.”
“네…. 네?”
“눈웃음 잘 치잖아. 아까도 아주 실실 좋아 죽던데. 그렇게 베타 여자들이 좋습니까? 어차피 그쪽은 오메가라 번식도 안 되지 않습니까.”
내가 얼이 빠진 사이 그가 원투 펀치를 날리기 시작했다. 그 세 치 혀 공격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쪽하고 조금이라도 교미해 줄 것 같은 가능성이 있는 베타 여자만 보면 정신 놓잖아요, 서윤 씨. 꼴에 서윤 씨도 사내라고 그러고 다니는 거 보기 안 좋습니다.”
“네.”
“네가 답니까.”
“아니요, 네, 죄송해요.”
“그래요.”
민준은 어조의 큰 변화도 없이 나직하게 뱉어 냈다. 그리고는 나를 다시 빤히 바라본다. 나는 무릎을 꿇어야 할 것 같은 충동에 시달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작은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저, 묶으실래요?”
나는 충동적으로 민준의 눈치를 보며 제의했다. 정말로 나는 회사에서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민준은 나를 때리는 것 이상으로 나를 묶는 걸 좋아했다. 호텔방이나 그의 집에 끌려가서 묶여 본 경험은 여러 번 있었다. 이제 가볍게 결박당하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런 것도 익숙해진다는 점이 슬프다.
“묶어 줄까요?”
“네, 그러고 나면 기분 좋아지시잖아요.”
나는 무표정하게 민준을 보았다. 민준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가 드디어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그가 나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드러내 놓고 나를 미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천성적으로 남의 눈치를 보는 나는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배알도 없는 성격이라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돈가스나 스테이크가 될 순 없다. 나처럼 아무도 먹지 않는 메인 디시 옆의 브로콜리 같은 인생도 있는 것이다. 연희나 그와 같은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나는 조연, 엑스트라. 사랑받기보다 미움받지 않는 걸 목표로 하는 인생도 있다. 사는 게 그렇지 뭐.
“회사니까 오늘은 그냥 보내 줄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민준은 잠시 어떤 생각에 빠진 듯 침묵했다. 그가 대표 이사 명패가 놓인 책상 위 전화기의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 네 이사님.
“손님이 왔는데 마실 것이 없네요. 얼음 좀 가져오세요.”
- 얼음만요?
“…네. 손님이 목이 많이 마른 것 같네요.”
네. 여자 비서가 짧게 대답을 했다. 스피커폰이 꺼졌다. 곧이어 노크 소리가 들린다. 민준이 턱짓했다. 나는 그 말뜻을 알아듣고 문가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여자 비서가 컵 두 개를 올린 쟁반을 들고 서 있었다. 쟁반 위 컵에는 얼음이 잔뜩 채워져 있다. 가져오란다고 바로 얼음만을 잔뜩 가져오는 걸 보니 민준은 순종적인 직원을 선호하는 것이 분명하다. 순종적인 오메가를 선호하는 것처럼.
“받아요.”
나는 반쯤 어리둥절하면서 쟁반을 대신 받았다. 비서가 문을 닫고 나갔다. 이제 이걸 서빙하면 되는 건가? 나는 멀뚱히 민준을 한 번 보고 얼음 잔을 그의 책상 위로 옮겼다.
“묶는 것까지 이야기했죠.”
“…네.”
“그런데 오늘은 마땅히 묶어 줄 게 없네요.”
그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민준은 손을 들어 자신의 타이를 끌렀다. 실크 타이였다. 민준이 등 뒤로 다가오자 나는 얌전히 두 손을 뒤로 겹쳐 내민다.
민준은 나를 묶을 때 한 번도 성의가 없었던 적이 없다. 꼼꼼하게 내 두 손을 단단히 묶는 데는 2, 3분의 시간이 걸렸다. 등 뒤에서 옅은 그의 알파 냄새가 났다. 나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서윤 씨, 회사에서 묶이니까 잘 어울리네요. 사원증도 목에 걸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엔 걸고 올게요, 가 그가 원하는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그렇게 대답할 순 없었다. 아무리 나라도 회사에서 이런 꼴을 두 번 당하는 건 사양이었다. 민준이 뒤에서 내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나는 자동으로 무릎을 꿇었다. 다행히 알몸 행은 피할 것 같다. 그라면 여기서 다 벗길지도 모른다고 각오했지만.
“감질나네. 요즘 서윤 씨 제대로 못 묶어 줬는데요.”
“네… 저기, 다음에.”
그러니까 오늘은 그만 보내 주세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민준이 계속하라는 듯 나른하게 눈짓했다.
“다음에. 다시 묶어 주세요.”
“네, 그래요. 기대되죠.”
“…네.”
나는 입술이 마르는 걸 느끼며 눈을 내리깔았다.
원민준이 전면창의 블라인드를 열었다. 새까만 밤을 배경으로 야경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너머 보이는 고요한 강과 네온사인 밭은 내가 근무하는 층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다. 나는 멍하니 야경을 바라보다가 그 앞의 책상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원민준을 응시했다. 윗단추를 하나 풀고 의자에 앉아 야경을 배경삼아 나를 내려다보는 그는 잘생기다 못해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서 두 손이 타이로 묶인 채 자진해서 무릎을 꿇고 그를 올려다보는 나. 꼭 무슨 포로 같은 몰골이다.
“어느 쪽이 진짜 성격입니까.”
“어느 쪽이라뇨?”
“연희 앞에서는 웃고 장난도 잘 치는데 지금은 우울해 보이고 표정도 별로 없고. 어느 쪽이 진짜 성격인지 궁금해져서요.”
“이쪽이 진짜 성격인 것 같아요.”
민준은 나의 사생활에 대해서 이것저것 캐묻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일종의 관음적 도착증도 있는 사람이다. 보통 특이한 성 취향을 가진 사람은 두세 가지 기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그런 경우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오늘도 그의 말에 성실하게 대답한다. 당연히 이쪽이 진짜 성격임이 당연하지 않은가. 남들 앞에서 내가 이렇게 암울하게 있으면 남들이 나를 얼마나 불편해하겠는가.
내 본성이 그리 호감 가는 모양새는 아니다. 나는 고아에, 감정 표현도 잘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 자랐다고 나는 불행해요 하고 얼굴에 써 놓고 다니는 사람만큼 꼴사나운 사람은 없다.
나는 그래서 민준과 함께 있는 시간이 무서웠지만 한편으론 늘 기묘하게 편했다. 민준도 내게 가식 차릴 필요가 없어 나를 마음대로 대하니 나도 그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 사이에 유일하게 동등한 점이 있다면 그런 부분이겠지. 결론적으로 나는 나를 막 대하는 사람에게 평안을 느끼는 최악의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다. 원민준은 그걸 잘 파고드는 종류의 인간이고.
“솔직하네요. 착해요.”
“네….”
민준이 나를 칭찬하자 내 마음도 편해졌다. 그의 기분은 한층 풀린 모양이다. 나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내리깔았다.
이다음엔 무얼 해야 민준이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꺼낼까, 구두에 키스라도 할까? 하지만 오늘은 거기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그의 몸에서는 옅은 알파 체향이 났다. 나는 무거운 공기를 느끼며 조금씩 몸을 꼼지락댔다. 민준이 내게 다가온다…. 한 손엔 얼음 컵이 들려 있었다. 민준이 내 무릎 옆에 얼음 컵을 내려놓았다. 그가 내 다리 사이를 보더니 몸을 굽힌다. 민준이 손을 내렸다. 내 바지 지퍼가 내려갔다.
“묶이는 것에 흥분하는 건지… 내 몸 냄새에 흥분하는 건지.”
민준이 느긋하고 나른하게 말했다. 드러난 내 성기는 조그맣게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내 귓가가 붉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긴장감과 몸 냄새 때문에 흥분한다는 것이 맞겠다. 나 같은 열성 오메가에게 우성인 민준의 체향은 불가항력의 것이다.
나는 빨리 이 상황을 탈출하고 싶어졌다. 차라리 맞으면 좋을 텐데. 벌을 받고 풀려나고 싶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작게 말했다.
“저기… 체벌… 하시고 싶으면 하셔도 돼요.”
“지금 말입니까.”
“네. 어차피 체벌 받아야 하니까, 제가 잘못했잖아요.”
어쨌든 그가 나를 이사실까지 호출했을 정도면 고이 돌려보내 줄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지금은 서윤 씨 전용 도구들도 없는데, 나중에 하죠. 달아 둘게요.”
나는 그 말에 엉뚱하게 심장이 조금 뜨거워졌다. 전용 도구라니. 민준은 아무래도 나 말고 다른 오메가들을 그 도구들 – 매나 밧줄, 채찍 같은 것들 – 로 괴롭히진 않는 것 같았다. 그와 나 사이에 독점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가 연희와 사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순간 원민준이 다른 오메가들을 나처럼 묶거나 괴롭히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하찮은 독점욕에 나는 조금 우울해졌다. 나는 그를 발개진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내 인생이 자꾸만 꼬여 가는 소리가 들린다. 쓸데없는 감정 가지지 말자. 스스로에게 되새긴다.
“빚은 싫어요.”
“사채라도 져 본 적 있어요?”
그가 재미있다는 듯 살짝 웃었다. 새하얀 얼굴에 팽팽한 균형이 생기며, 나른하게 잘생긴 얼굴이 더욱 빛이 났다.
“아니요, 없어요….”
빚에 허덕일 정도로 가난한 시절이 있었지만 아주 어릴 적 일이었다. 불행 자랑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였다. 가능하면 그런 일들은 말하고 싶지 않다.
민준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나는 이어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을 끊는 것이 버릇없는 행동이긴 했다. 그러나 그가 캐묻기 시작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손바닥으로 때려도 되잖아요.”
예전에 우연히 본 야한 동영상에 그런 장면이 있었다. 남자가 여자를 무릎 위에 올린 채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때리는 것을 본 적 있다. 민준이라면 그런 것도 아주 좋아하겠지. 나는 어차피 받을 처벌이 뒤로 미뤄져, 나중에 그가 나를 맘대로 다룰 구실로 쓰이는 것이 싫었다. 더 심한 일을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준이 느릿하게 웃으며 재킷 앞주머니를 뒤졌다. 담배를 꺼내려다가 여기가 사무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 멈췄다. 어쨌든 그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걸 기분 나빠하진 않는 것 같았다.
“그래요. 손바닥이 있었네요. 그것도 괜찮겠네요.”
그가 턱짓해 나를 다가오게 했다.
“서윤 씨.”
“네.”
나는 저릿한 다리를 느끼며 민준에게 다가갔다. 나는 다가가 다시 그의 발치에 무릎 꿇었다. 그는 내 뺨을 툭툭 치며 속삭였다.
“관계를 주도하려고 하지 마세요. 건방지네.”
“…….”
내 심장이 금세 두방망이질 쳤다. 겁에 질린 내 표정을 본 그가 미소를 지우고 내 뺨을 가볍게 한 번 더 두드렸다.
“그래도 장하네요, 그런 생각도 할 줄 알고. 잘했습니다.”
그가 몸을 숙여 귓가에 좀 더 밀착해 속삭였다.
“이번 주에 꼭 손바닥으로 직접 때려 줄게요. 서윤 씨 발기할 때까지.”
“…네.”
우성 알파의 향을 느끼며 나는 몸을 떨었다. 한 줄기 기대감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정말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감질나니까 빨리 제대로 묶고 싶네요, 많이 기대돼요.”
그런 그의 말이 퍽 감정적으로 들려서 내 심장은 더욱 거세게 뛰었다.
“이번 일요일에 외박할 준비 해 놔요. 알겠죠. 오래 예뻐해 줄 테니까.”
“네.”
민준은 느릿하게 내 대답을 음미했다.
“어쨌든 잘못했다고 하니 벌은 받아야겠지요.”
“예….”
민준이 내 눈앞에서 얼음이 가득 담긴 투명한 컵을 흔들었다. 방금 그의 비서가 두고 간 것이다. 설마… 내 등골이 오싹했다.
“오늘은 이거 다 녹을 때까지만 참고 있으면 봐줄게요.”
“…….”
“무릎 세워서 앉아.”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무릎을 세워서 앉았다. 나의 하반신은 아직 앞부분만 흉하게 풀려 있었다…. 그가 큼직한 사각 얼음을 집었다.
“엎드려야지. 착하게.”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카펫이 깔린 바닥을 향해 얼굴을 숙이고 엉덩이를 올렸다. 바지가 무릎 아래까지 내려갔다. 속옷도 함께. 내 구멍은 민준의 페로몬을 조금 맡는 것만으로 벌름대고 있었다…. 민준이 사각 얼음을 내 엉덩이 사이에 밀어 넣는다.
“몇 개 넣으면 좋을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한 개, 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그럼 그의 분노를 살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얼굴을 댄 채 억눌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해 주세요….”
“그럼 오늘은 두 개만 해요.”
“…감사합니다.”
나는 아주 작게 속삭이듯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바로 나는 탄성을 올렸다.
“아…!”
차갑고 딱딱한 사각 얼음이 내 안에 비집고 들어왔다. 배 속이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민준이 주사를 놓기 전처럼 내 엉덩이를 살살 탁탁 내려쳤다. 그리고 두 번째 얼음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 것 아니라도 잘 들어가네.”
나의 귓가가 더욱 붉어진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두 개의 얼음이 몸 안에 자리를 잡는다. 차가운 이물감이 온몸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다. 민준이 큰 손바닥으로 내 엉덩이를 막은 채 살살 달랬다.
“무릎 꿇어야지.”
나는 민준이 엉덩이를 막아 주는 사이, 조심스럽게 상체를 세워 다시 무릎을 꿇었다. 몸 안에서 얼음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미간을 흐리며 구멍에 힘을 주었다.
“이물질을 넣기는 아깝지만… 뭐 녹는 거니까.”
민준이 속삭이며 내 뺨을 만졌다. 나는 더 붉어질 수도 없는 얼굴을 하고 숨을 내쉬며 민준을 보았다. 민준이 부드럽게 속삭이며 내 뺨을 툭툭 쳤다.
“입 벌리고.”
나는 치과 검진을 받을 때처럼 조심스럽게 입을 벌렸다. 민준이 내 입에도 큼직한 사각 얼음을 물렸다. 차가워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가 나를 다시 달래듯 머리를 어루만졌다. 퍽 다정한 손길이다.
“나 외에 다른 걸 몸 안에 넣고 흥분하면 안 되잖아요.”
민준이 그렇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가 얼음을 하나 더 꺼냈다. 설마…. 그가 사각 얼음을 내 앞쪽 성기에 가져다 댔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몸을 한 번 크게 움직였다. 얼음이 몸 안에서 달그락거리며 튀어나오려 했다. 차가워서 온몸의 피까지 식는 것 같다.
“가만히.”
그가 강아지를 어르듯 나를 꾸짖었다. 나는 눈을 다시 질끈 감았다. 흥분하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가라앉혀. 민준이 속삭인다.
“응…!”
그가 천천히 내 페니스에 얼음을 돌리면서 문대기 시작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입 안과 몸 안, 성기 바깥쪽이 각기 다른 애틋한 열을 내며 얼음을 녹이기 시작했다. 흥분하자마자 그것이 얼음에 의해서 식고, 또 달아오르고, 식고…. 나는 얼음을 문 채 코로 숨 쉬며 그를 애타게 바라보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녹초였다. 혼자서 일을 거의 다 마친 김인영이 약간 삐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그러다 혼이 빠진 나를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도대체 누굴 만나고 왔기에 그래?”
그러고 보니 김인영에게 회사 앞으로 지인이 찾아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나갔었지. 나는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머리 속은 이미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전쟁을 치르고 온 기분이다. 김인영 대리는 내가 이사실에 다녀온 사이에 많은 일을 해치운 상태였고 나는 자잘한 뒷정리만 도와주었다.
“야근 수당 결제 안 올릴게요, 다음에 일 또 도와드릴게요. 오늘은 정말 죄송해요. 대리님.”
“아니에요. 아까 많이 도와주고 가서 빨리 끝났는걸, 서윤 씨 평소에 도와주는 것만도 어딘데. 고마워요, 서윤 씨.”
라고 말하면서 싱긋 웃는 그녀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보통은 성질을 낼 상황인데. 나는 피곤한 가운데서도 그녀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그런데 얼굴이 계속 빨개요, 서윤 씨… 왜 이렇게… 이런 말 미안한데 섹시해요, 요즘? 가끔 다른 사람 같아.”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난 얼굴이 그만 새빨개져 버렸다.
그리고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 확인해 본 핸드폰에는 문자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금전적인 문제가 있다면 해결해 주겠습니다. 연희가 모르게 처리해서요.
-원민준」
나는 핸드폰을 침대에 집어 던졌다. 기분이 정말 괴상해졌다.